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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파 비판 운영자 2017-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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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파 비판

 

1.  들어가는 말

대한민국의 경제 사회 활동을 위축 시키고 온 나라를 슬픔과 비통함으로 몰고 간 세월호의 청해진 해운이 옛날 오대양사건과 연관된 구원파 소속인 것이 밝혀지면서 전 국민과 종교계가 구원파에 대한 관심이 쏠렸다. 

일명 구원파라고 하는 기독교복음침례회는 기성교회에서 이탈한 사람들이 새로운 성서해석을 하는 교주 권신찬의 주장을 따르는 종파이다. 이 기독교복음침례회로 인한 교인들의 미혹과 혼란, 반교회적 적대감 조성, 제도적 유형 교회의 부정, 가치관의 급변으로 인한 사고의 혼란 등 극심한 해독이 극에 달하고 있다. 더구나 이 집단의 ‘기독교복음침례회’라는 침례교를 표방한 비슷한 명칭 때문에 ‘기독교한국침례회’라는 기성 교단이 큰 피해를 입고 있다. 설상 가상으로 이 집단에서 뜻을 달리하고 분파된 집단이 공교롭게도 모두 ‘예수교복음침례회’ ‘대한예수교침례회’ 라는 침례교 간판을 부착하고 있어 기성교단인 침례교가 입는 피해 중 하나는 잘 알지 못하는 타교 파 교인들이 ‘이단’으로까지 오해하는 일도 흔히 있어 기성교단인 기독교한국침례회는 더욱 곤혹스럽기만하다. 기독교복음침례회 (권신찬,유병언파), 예수교복음침례회 (박옥수파), 대한예수교침례회 (이복칠파)가 있고 인천에 이창범 목사파 등이 있으며 이들이 주장하는 교리가 대부분 유사하므로 구원파라는 통칭으로 한다. 특히 박옥수계열은 기쁜 소식 선교회라는 단체로 활동하고 신문과 방송매체를 통한 ‘죄 사함과  거듭남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크게 홍보하며 체육관을 빌려 성경세미나를 개최하여 세력을 과시하는 등 성도들과 교회를 미혹하고 있다.

 

(1)  기독교복음침례회 창교자와 창교 과정 

권신찬(현재 고인)씨는 1923년 1월 13일, 경북 영덕군 병곡면 원황리 934번지에서 태어났다. 1951년 11월 30일 목사 안수를 받고 예장 통합 측 장로교 목사로 활동하다가 네델란드 선교사 케이스 글라스(길기수: Case Glass)의 영향으로 1961년 11월 “죄 사함을 깨달아” 침례를 받음으로 합동총회 경북노회로부터 이단으로 정죄 받아 목사면직을 받았다. 1962년 12월 21일 경북노회로부터 이단으로 목사 면직처분을 받기까지 12년간 주로 경북지방에서 목회를 했다. 1962년 12월 30일 독립교회에서 시무하다가 1966년 2월 10일 인천에 있던 복음주의방송국(현 극동방송국)의 전도과장으로 일했다. 1969년 대구에서 평신도복음선교회를 만들고 방송국에서 <은혜의 아침>시간을 통해서 특유의 사상(장로교사상+워치만니의 사상)을 펴서 말썽이 되기도 하였다.  권 씨는 사위 유병언씨를 부국장에 앉히고 구원파 신도들에게 간부직을 맡기는 등 극동방송국을 점거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1974년 9월 10일 극동방송국 측으로부터 파면 당했다. 파면 이후 권 씨는 은밀하게 소위 ‘방교회’라 불렸던 것을 표면화해“한국평신도선교회” 라 하여 서울 삼각지를 중심으로 기성교단에 노골적인 대적자로 등장한다. 

유병언은 박옥수와 함께 1960년대 초 미국인 독립선교사 딕 욕(Dick York)1의 영향으로 운영하던 대구성경학교에서 6개월간 성경을 공부한 적이 있으나 1963년부터 선교사들과 관계를 끊고 독자노선을 구축, 1969년부터 1981년까지는 “평신도복음선교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으며, 1981년 12월 21일 기독교복음침례회 교단을 만들고 총 회장으로 의사인 변우섭을 선출하여 정식 출범하였다. 현 기독교복음침례회의 실질적인 대표인 유병언2은 1941년 2월 11일 일본 도쿄에서 출생하여 일본에서 소학교를 마치고 대구로 부모와 함께 이주해와 대구에서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6개월 코스 성경학교를 졸업하고 권신찬과 칠성예배당을 차리고 열심히 전도하던 중 권신찬의 외동딸과 결혼하였다. 

오대양 사건과 ㈜세모, 녹색회. 세월호와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유병언과 권신찬의 기독교복음침례회는 모든 구원파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그림1. 구원파의 계보3

 

 

(2) 극동방송과 구원파

권신찬은 ‘복음과 죄사함을 깨달음으로 구원을 확신’하고 1963년 선교사들과의 관계를 끊고 독자적인 선교활동을 하다가 1966년 2월 현 극동방송의 전신인 국제복음주의 방송에 방송선교 담당목사로 부임하였다. 방송선교활동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설파하던 중 1969년부터 1982년까지 ‘평신도 복음선교회’라는 명칭으로 청취자들을 규합 활동하였다.   1974년 2월 정통교회인 한국기독교장로회를 비롯하여 대한예수교장로회,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기독교대한감리회, 하나님의성회, 구세군, 복음교회가 공동으로 ‘권신찬 목사의 잘못된 설교가 시정되지 않을 경우 극동방송 청취 거부운동을 전개하겠다’는 질의서를 극동방송에 전달하였다. 당시 극동방송을 운영하던 TEAM 선교부는 숙의 끝에 극동방송 탈취음모를 꾸미던 구원파 직원11명을 1974년 7월 30일자로 해고하고 권신찬 목사를 해임하였다.

 

(3) 구원파 사업 활동

유병언씨는 방송국에서 쫓겨난 후 넘어져 가는 무역회사를 인수하여 삼우트레이딩 사장에 취임했고 이 시기에 무역거래를 이유로 미국, 독일과 왕래하면서 교세를 확장시켰다. 이즘 유씨는“기업이 곧 교회”라는 논리를 펴게 된다. 1983년 유병언이 신앙과 사업을 연계하여 헌금을 사업자금으로 활용하자 이에 교역자로 있던 이복칠과 그의 추종자들이 일제히 반기를 들고 이탈하여 지금의 대한예수교침례회 서울중앙교회를 세웠다. 

이 후 권신찬과 유병언은 더욱 사업확장(주식회사 세모, 세모 스쿠알렌, 세모관광 등)에 주력하였고 막대한 사업자금을 교인들의 헌금과 사채로 충당하였다. 1987년 8월 29일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주식회사 오대양 식당 천장에 32명이 집단 변사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이 배후에 기독교복음침례회와 유병언이 관련되어진 것이 드러났다. 또 2014년 한국 사회를 흔들어 놓았던 세월호 사건의 청해진 해운이 유 전 회장 일가족 소유이며 회사의 주요 임직원이 구원파 신도인 것도 구원파와 무관하지 않다는 관측이다. 이 같은 교회-기업의 연결고리는 고스란히 이어져 청해진해운 지주회사인 아이원아이홀딩스 등은 최근에도 구원파 소속 교회 부동산 등을 담보로 금융기관의 자금을 끌어 쓴 것으로 나타났다. 

세월호 사건은 오대양 사건이 지나고 30여년이 지난 현재 유씨 일가족 소유 회사의 주요 임직원이 구원파 신도인 점, 이들 계열사의 금융기관 대출에 구원파 교회가 관여된 점과 판박이다.

 

(4) 구원파와 권력형 비리4

1981년부터 유 전 회장은 '한국기독교멸공회'라는 반공단체와 함께 정부 지지집회를 열고 친정부 발언을 해왔다. 전경환 씨와 친분이 있던 유 씨는 전 씨가 새마을중앙회장을 지낼 당시 그에게 경호원을 붙여주는 등 꾸준히 편의를 제공했다. 1983년 미국 레이건 대통령 방한 때는 자신의 경호 요원을 파견시키기도 했는데, 이로 인해 유 전 회장은 내무장관으로부터 공로감사장을 받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4년 3월 23일, 인천시 초도순시를 마치고 부천에 들러 유 전 회장이 운영하는 삼우트레이딩 공장을 방문 후 전두환 전 대통령과 식사를 했다고 한다. 그 후 1984년 삼우트레이딩은 부도 위기를 맞은 가운데 한일은행으로부터 25억 원을 대출받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이형구 전 재무부차관보, 김명호 전 은행감독원 부원장 보 등이 한일은행에 대출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이 1991년 오대양 사건 및 5공 비리 수사 과정에서 제기됐었다. 

유 전 회장이 1982년 10월 급조된 회사인 세모를 전면에 앞세우고 여객 업에 뛰어든 것은, 1985년 9월 주식회사 원광과 함께 서울시로부터 한강유람선 사업 승인을 얻어낸 것이 계기였다. 당시 수사기관의 내사 기록 등에 따르면 세모가 한강유람선 운영권을 따낸 데에는 전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 씨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한다. 

세모는 여객선 운영 업을 할 준비가 안 된 회사였다. 유람선 건조 기간을 무리하게 단축하고 승선 인원이 210명으로 과다하게 책정돼 안전사고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후 한강유람선은 각종 사고를 내, 신문 사회면을 단골로 장식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모는 계속 유람선과 여객선을 운영했다. 1997년 부도가 난 이후에도 유 전 회장의 여객선 사업은 계속됐다. 각종 사고를 내놓고도 단 한 번도 면허를 빼앗기지 않고 여객선을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비정상적인 한국 사회의 권력 지형 덕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십 년에 걸쳐 이뤄진 부실 운행 행태가 결국 세월호 침몰로 이어진 것이다. 

이번에 참사를 맞은 세월호는 2009년 이명박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의 덕을 톡톡히 본 배였다. 18년짜리 배를 들여와 증축, 개조해 바다로 띄울 수 있었던 이유는 이명박 정부가 제한을 기존 20년에서 30년으로 늘린 ‘규제 완화’ 정책이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2008년 8월 국토해양부는 94건의 행정 규제 개선 과제를 발표하며 20년으로 획일화된 여객선의 선령 제한 시행령을 개정했다. 이런 <규제 완화> 정책으로 인해 유 전 회장은 2012년 18년 된 노후 선박을 국내에 들여왔다. 이후 벌어진 사건은 우리가 모두 아는 일들이다.  

그림2. 구원파와 권력과 유착

 

 

2. 구원파의 주장들

구원파는 다른 이단과 마찬가지로 신조와 교리를 함께 가르치고 있다. 예를 들어 그들이 제시한 12 신조(성경, 삼위 하나님, 죄, 구원, 교회, 재림, 천년왕국, 지옥, 천국 등 주제에 대한 신조)의 내용은 복음주의적 기존 교단의 신앙내용과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되어 있다5.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집단 지도자(권신찬 씨와 유병언 씨)가 성경이 아닌 본인의 경험에 근거해 가르치는 해괴한 주장과 가르침이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에서 너무나 이탈되어 있다는 점이다. 구원파들은 표리부동한 자세로 밀실교육을 시키면서 자신들의 구원진리의 깨달음을 간증하고 기존교인들에게 개종을 종용한다. 그들은 구원 받은 구체적인 장소와 시간 등을 알고 있어야 구원의 확실함을 믿는 등 개인의 구원체험을 중요시 여긴다. 그래서 그들은 “죄 사함과 거듭남, 또는 구원의 비밀”은 구원파의 교회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일종의 초대교회의 영지주의와 유사한 주장을 하고 있다.6

 

(1) 구원에 관하여7 

주장: 구원파의 가장 큰 문제는 구원관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속죄의 은혜를 입어 성령 안에서 주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기존교회의 주장과는 달리 자신이 스스로 구원에 대한 구체적인 체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그들은 깨달음이라고 한다. 그래서 구원을 받았다는 확실한 증거는 다음과 같은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깨달음은 생명책에 자신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지, 자신이 거듭난 것을 아는지, 성령님이 마음속에 있음을 아는지, 모든 죄가 용서 되었다는 것을 아는지, 구원받은 시간과 사건을 아는지, 재림 주를 영접할 준비가 되어 있는 지 등이다. 그리고 그들은 영의 구원을 강조하고 믿지만 육신의 구원을 부인 한다. 그들은 중생체험을 크게 강조하며 그것에 대한 확신에 구원의 근거를 두고 있다. 예수를 믿고 영접함으로써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구원은 자신들의 구원경험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론: 이러한 구원관은 의지적인 회개와 결단이 빠져 있고, 동시에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이 결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구원파는 종국적으로 구원의 조건으로 믿음이 아니라 깨달음으로 대치하는 오류를 범한 것이다. 구원파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죄를 사해주시는 것은 예수님이지 우리의 깨달음이 아니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2) 하나님에 관하여

주장: 구원파는 아버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을 구분하는 것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삼위에 대한 분명한 태도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기도 중에 하나님 아버지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한다고 하지 않는 대신에 언제나 ‘주님’께 그리고 ‘주님의 이름’으로만 기도한다. 이런 주장은 그들의 기도에 관한 가르침을 분석해 보면 그 주장의 진의를 파악할 수 있다. 구원파의 지도자들은 일반인은 기도할 필요가 없으며 일을 맡은 자만이 기도할 필요가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기 때문에 지도자 한 사람이 대표로 기도하면 된다는 것이다. 

반론: 이렇게 막연하게 예수의 이름으로만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바로 삼위의 구분된 인격체를 받아들이지 않는 그들의 신앙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 아버지께 한 성령 안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한다”(엡 2:18)라고 기록되어 있다.

 

(3) 성경에 관하여

주장: 구원파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고 하지만 성경해석에 있어서 정통교회의 해석을 부인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성경을 우화적 혹은 풍유적으로 해석한다. 유병언의 경우를 예를 들면 그는 구원파를 통해서 만의 유일구원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요한복음 14:6절을 이렇게 해석 한다. “구원파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자가 없다.” 그리고 요한복음 15:4-5절은 “사람이 (구원파)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영적으로 고립되어 멸망한다”는 식으로 해석한다. 권신찬은 기도에 대한 정의를 구원파 교인들이 그들의 사업체(주님의 일)를 위해 함께 교제하며 의논하고 상의하는 자체가 기도라고 해석한다. 

말라기 3장 16절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도들과 함께 주님의 일(세모그룹의 일, 한강유람선, 세모 스쿠알렌 등)을 위해 서로 상의하고 의논하는 성도의 교제는 참으로 중요한 기도가 되는 것이다” 구원파의 신도들은 권신찬과 유병언이 엉터리 성경해석을 하더라도 그들은 신도들에게 하나님이 기름부은 절대적인 존재들이기 때문에 의심없이 수용하고 있다. 구원파는 또한 십계명을 부인하며 율법과 계명 등은 성도를 괴롭게 하는 것이며 이러한 종교에서 분리되어 해방되는 것이 복음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율법 종교는 구약이라고 규정하며 구약성경의 권위를 약화 시킨다. 그래서 성경을 다 믿지 말라고 하며 마귀, 사단, 세상 말도 있으며 성경이라고 다 진리는 아니라고 가르친다.

반론: 이단 논쟁은 성서 해석학의 논쟁이다. 그들은 정통 기독교단에서 준수하고 있는 신학체계를 무시하고 우화적 해석을 일삼고 있다. 예를 들어 기도와 예배를 부인하기 위하여 말3:16절을 문맥과 관계 없이 성도들과 함께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해 서로 상의하고 의논하는 성도의 교제는 참으로 중요한 기도라고 해석한다. 즉 구원파 교인들끼리 사업과 교회일을 논의하는 교제가 기도를 대신한다는 억지해석이다.

 

(4) 죄에 관하여

?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죄가 없는가?

주장: 구원파에서는 이미 죄 사함을 받았으므로 죄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죄가 없다는 것은 그들 스스로의 생각일 뿐이다.

반론: 과연 성경은 이미 구원을 받았으며 이미 죄가 없다고 하는가? 사도요한은 죄가 없다고 하는 자는 스스로를 속이고, 진리가 없다고 말한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1:8-10). 구원파는 위 본문을 인용하여 자백만 하면 죄가 사해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요한일서 본문이 죄가 없는데도 자백을 하라는 내용인가? 성경은 분명히 죄가 있다고 말하며, 이미 죄사함을 받았으므로 자백만 하면 된다는 구원파 주장과 다르다. 죄가 더 이상 없다고 주장하는 구원파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며 스스로를 속이는 주장이 될 것이다.

② 육체에 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주장: 구원파는 사람을 영과 육을 장소적인 개념으로 분리시켜 영에는 하나님이 거하고 죄가 없으며, 육에는 사탄이 거하며 죄가 있다고 가르치는 주장이다. 

반론: 그렇다면 성경적 인간은 인간관은 무엇일까? 이교사상에서 말하는 정신과 물질이라는 구별과 성경에서 말하는 신과 피조물이라는 구별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다르다. 이교사상은 육체와 영혼은 완전히 별개의 요소로 파악하지만 성경은 육체와 영이 구별되고 대조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개인이라는 통일체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 우리들의 신체가 살아 있는 한 단순한 물질이 아니며, 영혼도 단순한 영적 존재가 아니고 양자가 산 인간이라는 통일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또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 또는 자연과 근본적 이질성에 의하여 창조자와 피조물로 구별 하고 이 피조물을 영적 피조물과 물질적 피조물로서 구별하고 있다. 인간의 영을 하나님의 영과 같이 생각하여 하나님과 같이 영원하고 자유롭다고 잘못 알아서는 안 될 것이다.

 

(5) 회개에 관하여

주장: 구원파는 회개는 일생에 단 한번만 하면 되고, 그 이후로는 자백만 하면 된다고 한다. 반론: 성경에서 회개(μετανο?ω:메타노에오)라는 단어는 '방향수정'이라는 뜻으로서, 성경에서는 2가지의 의미로 사용되어 진다. 회개가 단회적일 때는 믿음의 과정에서 거듭남을 말하지만 성경에서는 분명히 반복적인 죄의 경우에도 사용되며 그 때에는 죄에서 돌이키는 반복적인 성화의 과정을 말한다. 성경은 반복적인 죄에 대한 회개도 분명히 언급한다. 

구원파가 주기도문을 부정하는 이유는 주님이 가르쳐준 기도문이 반복적인 회개와 죄사함에 대한 교리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곱 번 죄 지은 자가 일곱 번 반복하여 회개하면 용서하여 주듯이 주님도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신다는 것이 주기도문의 내용이다. 일생에 한번 회개하라는 구원파의 주장은 분명히 비성경적이다.

 

(6) 기도에 관하여

주장: 구원파 권신찬은 거듭나기전에 하는 기도는 인간의 종교적 본능에 발산한 것으로 새벽기도는 옛날부터 한국사람들이 젖어있던 미신적인 종교의 발로라고 주장한다. 또 유병언은 기도란 마음에 성도의 교재로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새벽 기도도 필요 없고 시간을 내어 기도하는 것도 필요 없으며 기도는 교회안에 일을 맡은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새로운 교리를 만들어 냈다.

즉 기도는 개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대표해서 일하는 자만이 할 수 있고 죄의 문제를 해결한 거듭난 자만이 마음속으로 기도하는 것이며 성도의 교제가 기도를 대신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구원파의 정통교리와 맞지 않는 허무 맹랑한 주장은 현대 교인들의 약점을 이용하여 새벽기도회의 무용론을 주장하는 것이라 볼 수 있겠다.

반론: 성경은 새벽기도의 창시자가 예수그리스도임을 알리고 있으며 아브라함도 이삭을 받칠 때 아침 일찍 출발했음을 증거하고 있으며 예수님, 바울등 신약의 모범을 따라 여러 모양과 형태로 기도에 힘쓸 것을 가르치고 있다.

 

(7) 교회에 관해서

주장: 구원파는 기존교회의 존재나 제도 자체를 부인한다. 그들은 교회란 건물이 아니라 구원 받은 성도 그 자체이며, 인격체이고 교제라고 가르친다. 구원파 집단만이 진정한 영광스런 교회요 참교회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구원 받았기 때문에 교회에 갈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예배를 형식적인 것이라고 매도하며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형식의 예배는 필요 없다고 가르친다. 기도의 시간도 필요 없으며 마음속의 기도로 족하다고 하면서 통성기도 등을 부인한다. 특히 기존교회의 주일성수, 새벽기도, 십일조의 무용론을 주장하면서 이는 율법의 소산물로 매도하고 있다. 그들은 예배 대신 구원파 신도들의 교제로 예배를 대신한다.

반론: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교회의 본질은 선민의 사귐으로 무교회적 기독교란 있을 수 없다. 복음서신에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예수님의 말씀, 사도행전에서의 교회의 발전과 역사, 서신들과 묵시론까지도 교회를 상대로 쓴 것으로 보아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순수하게 전파되어 성례전이 정당히 집행 되어 지는 곳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모든 말씀을 무시한 구원파의 무교회주의는 믿음에 의해 의롭게 되어 지는 복음적 신앙이란 개인적이요, 영적인 것으로 교회 같은 매개가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여 더욱 양식이나 제도 같은 것은 교회의 교회의 부패를 가증시키는 요인으로 분석하여 비판하고 있다.여기서 웃지 못할 사실은 무교회주의자들도 사실 교회 아닌 교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보이는 교회 집단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제도를 갖고 있다. 

 그들이 주장하듯이 교회는 불완전하고 세속화 되었다. 그러나 이 세상교회는 완전할 수 없음을 이정해야 한다. 예수님 당시도 제자들이 예수님을 팔고 고린도교회는 너무 문제가 많아 여러 면으로 바울이 권면하였던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제 삼자 입장에서 비판하지 않고 부족한 교회에 들어가 그들의 부족과 아픔을 감당하려 했다. 우리는 저들의 비난이나 공격에 넘어지지 말고 우리의 신앙을 가야 할 것이다.

 

 (7) 종말론

주장: 구원파는 수십년전부터 임박한 종말을 주장하여 왔다. 그들은 세대주의적인 주장으로서 6000년을 인류사로 간주하고 구약 4000년과 신약 2000년이 지나면 종말이 오는 것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그들은 무화과나무를 이스라엘로 보아 1948년 이스라엘 독립을 열매로 해석하고 한 세대 안에 종말이 온다고 주장하여 왔다. 

또 유럽연합(EC)을 열뿔이라고 비유하여 유럽연합이 10개국이 되면 재림이 온다고 주장했지만, 현재 유럽연합은 27개국이며, 특히 기독교복음침례회의 권신찬목사는 십수년전부터 기차가 종착역에 도달하였다고 계속 주장하였지만, 그가 사망한 후에도 종말은 결코 오지 않았다.

반론: 이러한 종말론에 대해서 구원파들은 다니엘서와 계시록에 대한 비유적인 해석에서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극단적인 세대주의적인 종말론은 거의 유사하다. 이요한씨는 유럽연합이 지금은 27개국이지만 다시 10개국이 될 것이라고 자의적인 추측으로 주장할 뿐이다. 그러나 유럽연합이 27개국이 되었다가 다시 10개국이 된다는 그러한 성경은 어느 곳에도 없다.

 

 

3. 기독교 복음 침례회의 계보에 대한 소고

 

(1) 대한예수교침례회 (이요한)

이요한(본명 이복칠)씨는 중학교 졸업 후 한국전쟁 기간 중 대구 임시 신학교에서 기독교복음침례회의 창시자 권신찬씨에게 잠시 지도 받은 것이 교육배경의 전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구원파 초창기인 1960년대 중반부터 목포에서 권씨와 함께 활동하다 1971년 권씨에게 목사안수를 받았다. 기성 교회를 비판하고 시한부종말론 등을 내세운 이씨는 1983년 교회 헌금을 사업에 전용하는 것을 문제 삼아“유병언의 사업이 천국일”이라고 주장하는 유씨를 비판하면서“교회와 사업은 분리돼야한다.”는 성명을 내고“복음수호파”로 분리해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대한예수교침례회”를 설립했다. 서울교회로 활동하다 1994년 경기도 안양 인덕원의 1천여 평 대지에 교회를 신축하고 서울중앙교회로 개칭했다. 대한예수교침례회(대표 이요한)는 홈페이지“생명의 말씀 선교회”를 통해 이요한씨 측의 국내외 교회 소식과 성경강연회 일정을 공개하고 있으며, 설교 동영상과 MP3 파일을 제공하고 있어 사이트를 방문한 사람은 누구나 설교를 들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출판사“영생의말씀사”에서 이요한씨 측의 전도용 소책자와 신앙서적을 발행하고 있으며, “신앙상담”“성경강연회”등을 열어 자신들의 교리를 설명, 포교하고 있다.

 

(2) 대한예수교침례회 (박옥수)

박옥수씨는 경북 경산 선산 군에서 1944년 6월 출생했다. 네덜란드 선교사 케이스 글라스 Case Glass의 집회에서 크게 감화 받은 박씨는 Dick York 선교사에게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후 선교사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박씨가 선교학교를 이어받게 되고 이때부터 박옥수 구원파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990년 대전 한밭중앙교회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박씨는 2004년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기쁜 소식 강남교회로 옮겼다. 현재는“대한예수교침례회”라는 교단 명을 쓰고 있다. 대한예수교침례회(박옥수)는 여름과 겨울수양회 및 학생캠프를 통해 박옥수씨의 설교를 전파하고 있다. 주간「기쁜 소식」을 신문형태로 발행해 무료배포하고 있고, 최근에는 청소년 교양잡지로 가장한 계간「Tomorrow」를 창간해 청소년들을 포교하고 있다. 박옥수 구원파의 핵심조직인 IYF(International YouthFellowship, 대표 도기권)를 2001년 3월 조직, 대학교 내에서 영어말하기대회, 영어동아리등 학생들이 관심을 가지는 외국어나 문화적 요소로 접근한다. 또 청소년들의 해외문화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자극해 굿 뉴스코 해외봉사활동 봉사단을 모집하고, 각종 문화공연과 국내외 박옥수 성경세미나를 열어 포교하고 있다.

 

(3) 유병언 사후 기독교 복음 침례회

 

<혈연파> vs <비혈연파> 갈등… <분파> 가능성, 구원파 앞날 불투명8

유병언 사후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가 혈연파와 비혈연파로 나뉘어 혼전을 거듭하면서 구원파의 앞날과 후계구도를 두고 다양한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구회동(51)9 신도 의료인협회장이  최고 지위인 '총 회장'에 선출되면서 혈연 파가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혈연 파와 비결연파가 서로 '협의체'를 구성하고 교회 내 일을 나눠서 하고 있다는 전언도 나왔다.

그러나 현재 구원파는 은행 대출 상환일이 도래하고 계열사들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등 자금 압박에 시달리고 있어 지도부가 정부의 가압류나 검찰의 추징보전명령 청구가 없는 부동산을 매물로 내놓고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따라서 일부에선 당분간 구원파 지도부가 부동산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연명해 갈 것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유 전 회장의 최측근인 김혜경10씨가 체포되면서 김씨의 재산을 놓고 구원파 지도부와 김씨가 소송을 하는 등 갈등을 일으킬 소지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구원파 지도부는 김씨와 끊임없이 물밑 접촉을 시도해왔다. 구원파의 당면 과제는 경제적 위기를 해결하는 것으로,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혈연 파가 주도권을 잃고 분파가 형성돼 따로 독립하는 등 와해될 것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시각이다. 약 30년간 구원파에 몸 담아온 한 신도는 구원파의 앞날에 대해 "직위에 대한 말들이 많지만 누가 어떤 직위를 맡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권력을 잡을 것"이라며 "협의체를 구성해 여러 명이 이끌어갈 수는 있겠지만 독자적으로 자기 위치를 이용해 교회를 장악할 능력을 갖춘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가까운 미래에 내분이 생겨 분파가 생기고 혈연파는 세력이 줄어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단전문가들은 유병언의 뒤를 잇는 카리스마 있는 설교자가 나타나야 구원파가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현재 구원파 내부에는 유병언의 후계자가 될 만한 인물이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과거 유병언의 통역비서로 일한 정동섭 교수는 “구원파는 유병언 1인 독재체재였다. 실력 있는 설교자가 나와도 권력 이탈을 두려워 한 유병언이 모두 내쫓았기 때문에 현재 구원파 지도부도 난감한 상태일 것”이라고 말했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교주의 죽음으로 구원파의 세력은 약화될 전망이지만 구원파가 상당한 재산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와해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대신 유병언의 재산 분리 및 차명 재산 관리 여부를 두고 지도부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예상된다. 유병언의 죽음은 구원파의 또 다른 분파인 이복칠(이요한)의 대한예수교침례회와 박옥수의 대한예수교침례회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박옥수 측이 입은 타격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4. 맺는 말

구원파는 성경을 내세우지만 성경 뒤에 숨어 있는 이단이다. 성경을 이용하여 자신들만의 교리서를 가지고 주관적인 해석에 의하여 성경해석을 왜곡하고 있으며 성경 해석에 미묘한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존교회의 평신도들에게 그들의 잘못된 교리들이 잘 파악되지 않는다. 이단의 목적은 하나님의 교회를 붕괴하도록 훼방한다(엡4:14). 또한 기독교의 진리를 혼란케 하고, 거짓 교리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혹하며(요일4:1-6), 적그리스도(요일3:1-4)로 등장할 뿐만 아니라, 거짓 선지자(마7:15)나 교주를 세워 미혹한다. 그러나 그들의 종말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이다. 이단은 구원받지 못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살후2:10-12). 이단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거짓 교훈을 전하며, 사단의 영에게 이끌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숭배하게 하기 때문이다(살후2:1-4). 이미 성경은 이단들의 특성에 대해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이단들과의 싸움은 결국 ‘교리의 싸움’이다. 그렇기에 성경공부와 정통교리(개혁주의 교리) 공부를 충실히 해야한다. 다른 복음을 좇는 것은 기존의 성경공부와 정통교리 공부가 잘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4장 25절과 26절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고 하셨다. 주님께서 마지막 때에 이미 적그리스도들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것을 미리 말씀하셨다. 그러나 담대할 것은 마태복음 28장 20절 말씀에 “볼 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주께서 우리를 도우시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심창섭. 『기독교의 이단들』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1998.

탁명환. 『세칭 구원파의 정체』 국제종교문제연구소. 1974.

정동섭. 『구원파를 왜 이단이라고 하는가』 인카네이션. 2015.

탁지일. 『이단  두란노서원』 2014.

HAROLD O.J.BROWN. 『교회사 안에 나타난 이단과 정통』 라은성 역. 그리심. 2001.

 

별첨1. 구원파의 계보

 

1.  Dick York(덕인용,미국, 1928~ )

딕 욕이 유복자로 태어날 당시 딕의 어머니는 침례교인이었지만 딕은 신앙심 없이 자라서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나이가 15세였는데도 나이를 속이고 군입대를 하는 등 방탕한 생활이 심했다. 그와는 반대로 그의 형은 종교적으로는 꽤 열심있는 기독교인이었으나 구원을 받지 못하다가 캐나다 벤쿠버에 있는 큰 교회의 청년회장 직분을 맡고 있던 중 구원을 받았고 이 후 딕의 형은 목사가 되어 딕을 전도하여 1950년 11월 1일 새벽 4시30분, 딕의 나이 22세 때 딕이 구원을 받게 됐다. 구원받을 당시 딕은 대형트럭에 자동차를 싣고 미 대륙을 행단하며 자동차 판매 사업을 하던 때였다.

딕은 구원을 받고 고향 오리곤주 유진시에서 축호전도와 노방전도를 하기 시작했고 자기와 같이 마약하던 사람들이나 술주정뱅이들을 모아 성경을 가르쳤으며 이들 중 구원받은 자들을 모아 믿음의 방패 선교학교를 시작했다. 딕은 방송을 통해서도 전도를 했는데 딕의 방송을 듣고 감명을 받은 해리 홀트가 딕과 친분이 두터워지며 딕의 후원자가 돼 주었다. 그 때 딕의 나이는 25세, 홀트의 나이는 50여세였다.

홀트는 딕에게 한국에 나가 복음을 전하자고 여러 차례 권했으나 이에 대해 딕은 한국은 유래 없이 복음이 잘 전해진다고 신문, 잡지에도 기사화 됐고 빌리 그레햄도 한국을 놀랍게 복음이 전해지는 나라로 찬사를 아끼지 않았는데 내가 왜 한국에 복음을 전하러 가느냐? 만약 내가 선교사로 나가게 된다면 브라질로 가겠다고 하며 거절했다. 하지만 홀트는 포기하지 않고 한국에 기독교인들은 많으나 구원받은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며 2개월만 한국에 같이 나가보자고 끝까지 강권했다.홀트의 권유를 받아들인 딕은 2개월간의 일정으로 홀트와 함께 한국에 들어와 한국의 대도시는 물론 작은 시골마을과 심지어 울릉도까지 각 지방을 돌아다니며 약3개월 동안 집회도 하고 개인상담하면서 사실여부를 확인해 보고 홀트에게 한국 기독교인들은 신실하나 믿음은 타락했다는 말을 전했다.

한국의 대다수 기독교인들은 딕을 보고 “당신은 NAE에 속했느냐?”, “칼에 속했느냐?” 즉 합동측이냐?, 통합측이냐?는 질문을 퍼부어 댔다.결국 딕은 한국에 복음이 없다고 결론 내리고 미국으로 돌아가 자신이 시무했던 미국교회에 한국 선교사로 나가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하지만 미국교회에서는 딕이 한국에 선교사로 나가는 것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며 딕을 만류했다. 미국교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소명의식을 느낀 딕은 미국교회를 설득해 보았으나 미국교회에서 돌아오는 말은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겠다는 말뿐이었다.

1958년 4월, 딕은 미국교회의 반대를 뒤로 하고 한국선교사로서 미국을 떠날 굳은 결심을 할 당시 한국에 구원받은 사람 12명을 훈련시켜 놓고 미국으로 다시 돌아오겠다는 서원 기도를 했다고 한다. 그런 후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여 놓은 후 비행기 삯을 구하지 못해 안타까워 하고 있었을 때 비행기 출발 이틀 전 자신의 사서함에서 누군가 편지와 함께 돈을 넣어놓은 것을 발견하고 우체국 직원에게 하나님을 살아계신다고 간증하여 우체국 직원도 구원을 받고 딕은 그의 부인과 두 아들을 동반하여 다시 한국 선교사로 들어오게 됐다. 그가 김포공항에 내렸을 때 그의 손에는 겨우14불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고 한다. 딕은 한국에 나와 포항에서 1년 반을 거주하게 됐 는데 딕이 포항에 거주하게 된 이유는 딕의 제자 중 하나가 포항에 있는 미군 헬기장에 근무 중으로 딕에게 한국에 오면 포항으로 찾아 오면 자신이 기거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포항 거주 당시 포항에 있는 제자에 의해 미 공군부대 군목으로 설교하면서 포항에 홀트가 땅을 구입해 줘서 선교학교 건축을 진행했다. 미군의 협조에 의해 미군 트럭에 모래, 자갈을 실어다 나를 수 있었는데 모래, 자갈을 실어 나를 때 한국의 매장 문화를 모르는 미군들에 의해 무덤이 훼손되기도 했으나 동네 주민들은 6.25 직후여서 미군의 이러한 행동에 함부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가 교회가 지어진다는 말을 듣고 강력하게 반대를 했다. 그래서 딕은 동네 주민들의 반발을 겪자 결국 포기하고 대구로 올라갔다. 대구에서 길 기수(Kayes Glass), 원 대혁(Derek Earl), 말론·베이커, 해리 와이먼 등 구원받은 선교사들과 뜻을 같이하여 대구 YMCA 강당을 토요일마다 빌려 집회를 하며 복음을 전하던 중1961년 이종섭씨와 당시 통역을 맡았던 심남섭씨와 함께 딕의 집에서 성경을 배우며 모이기 시작했다.

 

1-1.  믿음의 방패 선교회(The Shield of Faith)

딕 욕 선교사와 길기수 선교사를 중심으로 대구에서 ‘믿음의 방패(Shield of Faith Mission)’ 선교학교를 열어 학생들의 신앙훈련을 시작했다. 그들은 한국인 전도자들을 기르기 위해 2년 과정 선교학교를 운영하였고 딕욕이 가장 긴 기간 동안 가르쳤다. 당시 학생들은 권신찬, 유병언, 박옥수, 김성준 등이 있었고 이요한은 학생은 아니나 함께 교제하며 영향 받았고 유병언은 중간 퇴교 조치11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5년 선교회 이름을 ‘Shield of Faith Mission International ,SFMI ,믿음의 방패 세계선교회로 개칭하였고 믿음의 방패 국제선교회 홈피(http://www.sfmiusa.org) 가 개설되어 있다.

 

2.  케이스 글래스(Kees Glass) - 길기수

길기수(Kees Glas) 선교사는 네덜란드 개혁 장로교회 장로의 아들로서 영국 왝(WEC)선교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1956년에 미혼 상태로 한국에 들어와 김성준과 경북 선산읍 장로교회 문덕무 장로 집에 기거하면서 한국말을 배우며 1년간 전도했다.

그 후 길 선교사는 나의수 선교사가 대구 남산동에 창립한 부흥협회 총무로 일하며 산하에 승리의 생활사, 기독서회, 주암산 기도원, 고아원 등을 운영했다. 부흥협회는 대구 남산동의 큰 건물에 본부를 두고 초교파적으로 선교를 지원하는 단체로써 승리의 생활 월간지와 다량의 전도지를 배포했고 기독서회에서는 많은 양의 복음적인 서적들을 번역하여 출판하기도 했다. 그 때 길 선교사는 대구에서 결혼했다.

1963년, “승리의 생활” 설립자였던 나의수 선교사는 집에 들어온 도둑을 위협하려고 엽총을 들이 댔으나 실수로 살해하여 한국에서 추방당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부흥협회는 결국 문을 닫았다. 하지만 나의수 선교사의 적극적인 권유로 길 선교사와 우종학(당시 팀선교부 산하의 부산 축복산 고아원의 총무)은 1967년 4월 승리의 생활지를 재발간하게 됐고 사무실을 대구에서 대전으로 옮기면서 대구 삼덕동 선교학교는 칠성동 모임으로 합류했다. 그리고 길 선교사는 1973년, 17년간의 선교를 끝으로 한국을 떠나 본국인 네델란드로 돌아갔다.

 

2-1. WEC 선교회(Worldwide Evangelization for Christ)

WEC(Worldwide Evangelization for Christ)는 1913년 C.T. Studd에 의해 창립된, 100년 이라는 역사와 전통을 가진 복음적이고 초교파적인 국제선교단체다. 현재 50여개국에서 모인 2,200여명의 선교사가 80개 이상의 국가에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한국WEC국제선교회는 전세계의 17개의 WEC파송본부 중의 하나로서 1997년에 창립되어 현재까지 약 430여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WEC(Worldwide Evangelization Crusade ?Worldwide Evangelization for Christ, 후에 개칭),  WEC 선교회 홈피(http://www.wecinternational.org)가 개설되어 있다.

선교회는 현재 한국 웩(WEC)선교회 대표는 10여년간 감비아(Gambia) 사역을 하다 97년 귀국한 유병국 선교사가 맡고 있고 자신들이 구원파와 상관이 없다고 홈피에 밝히고 있다.

 

3. 권신찬

당시 길 선교사는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할 수 있어 전국의 많은 교회로 부터 부흥강사로 초빙을 받았는데 1961년, 대구 칠성장로교회 권신찬 담임목사도 길 선교사를 초빙하여 집회를 열고 말씀을 듣던 중 자신이 아직 구원받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강사숙소에 들어가 길 선교사에게 “내가 솔직히 구원을 받지 못했다”고 고백하고 도움을 구했으나 길 선교사는“대구 모든 목사들이 구원받지 않았다 해도 믿어지겠으나 권 목사만은 확실히 구원받았음을 내 안에 계신 성령이 확실히 증거합니다”라며 구원을 인정해줬다. 하지만 권 목사는 그 후 서재에서 구속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준비하던 중 로마서 3장 20~24절(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말씀과 히브리서 9장 12절 말씀(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을 읽은 후 영원한 속죄를 깨닫고 구원을 받아 길 선교사에게 동촌 금호강에 가서 침례를 받았다. 그러자 장로회측은 권 목사를 재침파 이단에 빠졌다며 목사직에서 제명 시켜버렸다.

권 목사는 칠성 장로교회에서 나와 단독주택을 새로 얻어 구원받은 사람들과 같이 가정에서 모임을 시작했다. 당시 대구에는 삼덕동 선교학교의 모임과 칠성동 권 목사를 중심으로 한 칠성동 모임이 따로 있었는데1964년에는 잠시 삼덕동 선교학교로 합치기도 했다가 몇 달 후 또 다시 칠성동으로 나누어져 모이기도 했다. 이는 권 목사에게는 자녀들이 많아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딕 욕 선교사는 1965년 미국으로 들어가면서 유병언을 권 목사 딸과의 불건전한 이성교제를 문제 삼아 선교학교에서 퇴학시켰다. 그 후 유병언은 경북 군위군 소보면 복성동에서 자신이 전도해서 생긴 모임에 가서 혼자 자취하며 전도하게 됐다.

 

 

딕 욕 선교사를 통역하던 심남섭씨는 1965년, 인천 국제복음방송국(후에 극동방송국으로 개칭) 총무부장으로 들어가서 1966년, 권신찬 목사를 방송국 상임방송목사로 추천하였고 생활고에 시달리던 권 목사는 사위인 유병언이 방송국에 입사하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상임방송목사를 수락하고 인천 도화동으로 이사했다. 이로 인해 대구 칠성동에서 권 목사가 인도하던 모임은 자연스럽게 유병언이 맡게 되었다.

당시 칠성동 모임이 활발할 수 있었던 것은 길 선교사가 대구 제일모직 여기숙사의 성경공부를 매주 정기적으로 인도해오다 승리의 생활사가1967년 대전으로 옮기자 제일모직 모임을 유병언이 맡아 전도하면서 구원의 역사가 활발하게 일어났고 이와 함께 대구 칠성동 모임이 더욱 힘을 얻고 탄력을 받게 되었다.

한편 권신찬 목사는 국제복음방송국에서 매일 이른 새벽에 20분간의“은혜의 아침”이란 코너를 맡아 방송설교를 했는데 방송을 듣는 청취자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권 목사의 설교시간이 큰 주목받게 됐고 복음의 역사가 활발하게 일어나면서 방송국 사주인 팀선교부에서도 매우 흡족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한국 평신도복음선교회와 팀선교회 선교사들간의 교제가 잘 되가면서 권 목사의 방송국내에서의 자리매김이 더욱 공고해지게 됐다. 그러자 권 목사는 팀선교부의 이름으로 목사 안수위원회를 만들었는데 이 때 강릉 이종섭목사가 첫 번째로 목사 안수를 받고 유병언이 두 번째 안수를 받았으며 세 번째로 이요한 목사님이 안수를 받았다.

이 후 극동 방송국이 적자누적으로 심각한 경영난을 겪자 권 목사는 팀선교부에 한국 방송프로그램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한국 평신도복음선교회에서 담당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이에 대해 방송국 사주측에서는 대환영을 하고 받아들였다. 이를 기회로 권 목사는 편재에도 없는 부국장 자리를 요구해 유병언을 방송국 부국장 자리에 앉혔고 후에 유병언은 방송국을 통째로 빼앗을 모사까지 꾸미게 됐다.

그동안에 극동방송국내의 직원들을 구원받은 사람으로 대부분 교체해 가던 중이었으나 유병언의 모사로 인해 방송국 측에서는 방송국 직원들 중 구원받은 사람들을 일괄 해고해 버림으로 결국 법정 싸움으로 까지 비화됐으며 권 목사와 유병언은 방송사를 상대로 한 1심, 2심, 3심에서 승소하고 그간 밀린 직원들의 임금과 퇴직금, 배상금 등 거금을 유병언이 받아 형제, 자매들에게 주지 않고 당시 몰락해 가고 있던 김포에 있는 (주)삼우 트레이딩 자수 공장을 인수해 사장에 취임하면서 처음으로 사업을 시작했으나 사업이 어려워지자 전국 교회의 주일헌금을 모두 사업자금으로 투자하게 됐다. 그래도 사업은 생각한대로 잘 되지 않아 급기야는 전국 교회의 부동산까지 다 팔아 사업에 쏟아 붓게 했다.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갖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을 하다 보니 잘 될 리가 없었던 것이다. 또한 부도위기에 직면하자 부도를 막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도저히 해서는 안되는 여러 가지 변칙적인 방법으로 돈을 끌어 모으는 정도에 어긋난 짓을 마구 자행했다.

 

별첨2. 구원파는 어떤 교회인가?  - 구원파의 교리 반박 보도자료 2014/06/11 09:27

 

중세 이단으로 몰린 평신도운동 대부분 종교개혁이 수용

구원파 교리, 기성 교회와 큰 차이 없어… 

사소한 차이로 이단 매도는 형제를 정죄하는 것

신앙은 신행(信行)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에서 신(信)은 무엇을 믿느냐 하는 교리의 문제이고, 또 행(行)은 믿는 그 교리를 어떻게 실천하느냐 하는 삶의 문제이다. 이 둘이 바르게 나타날 때 그 신앙은 정통이며 건강한 신앙이다. 교리는 바른데 신도들의 생활이 바르지 못하다거나, 교리나 삶이 일치하지 않다면 이는 ‘이단’이거나 ‘사이비’이다. 그들이 무엇을 믿는가 하는 문제는 그들의 교리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다음은 구원파 교회가 밝힌 ‘구원파가 믿는 믿음과 교리’이다.

 

1. 구원파의 교리

 (1) 성경론 : “신구약 성경은 모두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못됨이 없다고 믿는다”.

딤후 3장 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했고, 벧후 1장 21절에는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고 했다. 이로 보건대 성경을 기록한 이는 사람이지만 그 내용을 일러준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혹 번역상 오류가 있을 수가 있으나 그 본 내용은 오류가 있을 수 없다. 

 (2) 신론 : “전지전능하시고 만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본체는 한 분이시며, 아버지로서의 하나님과 그리스도이신 아들로서 하나님, 그리고 성령으로서의 하나님, 삼위로 계심을 믿는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마 28:19)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삼위가 하나이시다. 아버지 하나님은 천지 창조부터 인류 역사의 종말까지를 말씀으로 계획하신 분이고, 아들은 말씀을 이루신 분이며, 성령은 아들이 성취하신 일을 사람들에게 전달해서 사람 속에 나타내시는 분이시다.

 (3) 기독론 : “구약성경에 기록된 모든 내용은 예수의 탄생과 구속사역을 위하여 기록되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고, 세상 죄를 위한 대속의 제물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며 승천하셔서 우리의 대제사장과 대언자로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다시 오실 것이다”.

 (4) 성령론 : “하나님의 성령이 이 세상에 계셔서 사람으로 죄를 깨닫게 하시며 말씀을 통하여 거듭나게 하시고, 교회를 이루어 가심을 믿는다”.

요한복음 16장 7~8절과 14장 26절에서 아버지께서 아들의 이름으로 보내신다는 성령은 ‘보혜사’로서 오순절 날 120여명의 제자들이 모여 있을 때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를 내며 모든 사람에게 내리셨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3). 

 

 (5) 인간론 : “한 사람 아담으로부터 말미암아 온 인류는 죄인이 되었고, 전 인류는 그 죄성이 원인이 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죄를 저지르게 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이 가진 원죄와 자범죄에 대하여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믿는다”.

죄성을 가진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원죄가 뿌리가 되어 자범죄를 짓게 된다. 따라서 인간에게 심판은 필연적이다(히 9:27). 모든 인간이 이 심판을 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거듭나야만 한다(요 3:3).

 (6) 구원론 : “예수 그리스도는 온 세상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사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각 사람은 율법을 지키거나 인간의 선행으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속죄를 이루어 놓으신 사실을 말씀을 통해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게 된다”.

 (7) 교회론 : “교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로 이루어지고, 그것이 곧 그리스도의 몸이며 신부이다. 그리스도인은 그 몸의 지체이며, 사랑의 교제 가운데 성령이 역사하셔서 그 몸이 지어져 간다”.

 (8) 종말론 : “세상 마지막 때에는 대환란이 있고, 환난 전에는 공중 들림이 있으며, 이때 예수 안에 자던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같은 영광의 몸의 형체로 부활하고, 그 후 살아남은 그리스도인들도 변화함을 입어 함께 공중에서 주님의 영접을 받게 됨을 믿는다”.

 

2. 구원파의 교리에 대한 평가 

성경론, 신론, 성령론, 기독론, 인간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등 구원파의 조직신학적 교리는 기성 교회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장로교 교리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첫째, 장로교는 유아 세례를 시행하지만, 구원파는 유아 세례를 반대한다. 둘째, 장로교는 세례와 침례를 동일한 것으로 보지만, 구원파는 세례는 성경적이 아니라며 침례를 주장한다. 셋째, 장로교는 기도와 설교와 찬양 등 전통적 예식에 따른 예배를 중요시 하지만, 구원파는 기도와 말씀과 찬양을 통한 성도들의 교제를 중요시한다. 그들은 이것이 참된 영적 예배라고 믿는다. 또 어떤 사람들은 구원파는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을 받고 한번 그 영혼이 구원받은 사람은 어떠한 경우에도 영혼의 구원이 보장된다고 가르치는 것이 이단설이라고 한다. 이는 장로교의 선택 교리와 흡사하다. 장로교에는 구원받기로 선택된 ‘택자’는 하나님이 끝까지 그 영혼을 구원하신다는 “성도의 견인” 교리가 있다. 그렇다면 구원파의 교리와 장로교의 교리가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자기네 교파 신학만을 내세우지 말고, 이들의 주장 중에 성경적으로 지지받을 수 없는 교리가 있는지 여부를 먼저 살피는 것이 옳다. 이것은 신학자들의 몫이다.

그러면 이러한 차이를 이단이라 할 수 있는가. 천정웅교수(총신대)는 1991년 3월호 ‘목회와신학’에 실린 ‘구원파 교리의 문제점’을 통해 “필자는 먼저 결론부터 내린다면 ‘기독교복음침례회’ 속칭 구원파는 함부로 이단으로 정죄할 수 없음을 확인하였다. 내용을 자세히 검토하면 문제될 사항이 있긴 하지만 그것 때문에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라고 했다. 한국교회 신학자로서는 대단히 용기있는 객관적 견해를 밝힌 것이다.

 통합측 총회의 보고서가 말하는 것처럼 유아 세례를 반대하거나 침례를 주장한다고 이단이 되는 것은 아니다. ‘믿는 자의 세례’를 주장하는 침례교를 비롯한 환원파는 모두 유아 세례를 반대한다. 유아 세례를 반대하면 이단이 된다면 전 세계 개신교회의 약 2분의 1은 이단이 될 것이다.

또한 예배의 형식도 각 교파마다 다를 수 있다. 가톨릭교회의 예배가 다르고, 정교회의 예배가 다르며, 개신교의 예배가 다르다. 뿐만 아니라, 개신교 안에서도 교파마다 약간씩 예배의 형태가 다르다. 성공회, 루터교, 장로교의 예배 형태가 각기 다르다.

통합측 ‘예배와 예식’에는 “기독교의 참된 예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이 창조의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이룩하신 사실을 깨닫고 감격하여 드리는 응답의 행위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구원파가 친교를 중요시 한다고 해도 거기에 말씀과 성찬과 고백이 있다면 예배가 아닌 것은 아니다. 사도행전에도 거룩한 공회(교회)와 성도의 교제(친교)를 강조하고 있다. 이 성도의 교제는 구원받은 백성들이 이 지상에서 뿐 아니라, 죽음 이후 천상에까지 이르는 교제이다. 성도의 교제는 세상사람들의 교제와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한국교회의 이단은 ‘교주우상주의’와 ‘교리적 이단’에 있다

 구원파는 1981년 기독교복음침례회를 창립하며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 한국에도 초기의 개신교 선교사 등이 복음을 들고 이 땅에 왔을 때에는 장로교나 감리교나 중생의 경험을 거쳐서 신자가 되었던 것이며, 그들이 전한 복음 역시 중생의 경험을 통해서 구원을 얻는 복음이었다. 그러나 일제의 압박하에서 기독교는 그 본질인 영혼의 구원, 곧 중생의 교리를 전파하는 것보다는 민족사상의 중심이 되어 있었고, 그 후 민족해방을 맞아 자유의 물결과 함께 기독교는 수적으로는 놀라운 발전과 비대를 가져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독교의 핵심을 이루는 영혼 구원의 책임, 즉 중생의 경험 없는 신자들이 늘어남으로 말미암아 예배당에 나가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전부인 것으로 여겨졌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모든 종교개혁이 영적 체험인 구원의 역사로 시작한 것과 같이 이 (평신도)운동 역시 제도나 형식의 개혁이 아니라 영혼의 새로운 삶에서 시작되어 자연히 자라난 운동”이라고 밝히고 있다. 비록 교단을 만들어 하나의 교파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자신들의 교회는 어디까지나 평신도운동이라는 것이다.

중세교회에서 이단으로 매도되어온 평신도운동 가운데 대표적인 것들이 13세기의 알비파와 14세기의 왈도파 그리고 16세기 중교개혁 시대의 재세례파 운동이다. 알비파는 프랑스 남부에서 일어난 운동으로 유아 세례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교황청의 도덕적 타락을 비난한 죄로 십자군에 의해 무참히 학살되었고, 왈도파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일어난 운동으로 평신도도 설교할 수 있고, 성례를 집행할 수 있으며, 여자들도 전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는 이유로 종교재판소에 의해 모두 화형당했다. 그리고 16세기 재세례파는 유아 세례를 반대하고 성인의 재세례를 주장한다 하여 개혁자들로부터 박해를 받아 그 지도자들이 모두 죽었다.

그러나 알비파와 왈도파의 주장은 16세기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대부분 받아들여졌고, 그리고 재세례파의 주장 역시 오늘날에는 개신교의 대부분이 이단으로 보지 않는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교회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교회개혁을 주창하는 집단들에 대한 평가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그들에게 교주우상주의와 교리적 이단이 없다면 그들을 이단으로 매도하는 행위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자칫 형제를 정죄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 교회연합신문 (www.ecumenicalpress.co.kr)

별첨3. 사람들은 왜 이단에 자꾸 빠지나?

사람들이 이단에 잘 빠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이 이단인지 몰라서인가? 이단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처음에는 터무니 없는 것으로 반응한다. 그러나 정작 이단에 한번 빠진 이들은 왜 그것이 이단인지 알지 못한 채, 오히려 이단이 아니라는 것을 위해 변명한다. 가장 큰 이유는 명확한 판단 기준이 부재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성경을 이해하는 방법조차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 성도들은 왜 그토록 이단에 빠져드는가? 몇 가지 근본적인 문제들을 나열해 보았다.

 

1. 성경에 대한 이해 부재 

이단이 성서를 해석하는 방법은 비유적으로, 혹은 자의적으로 자신들에게 맞게 해석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그리 낯설은 것이 아니다. 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방법으로 성서를 종종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와 이단 사이의 성서해석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왜냐하면 이단은 그것으로부터 전혀 엉뚱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반면, 기성교회의 해석은 전체적으로 소위 조직 신학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성서해석이 옳다는 것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교인은 왜 성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까? 성도는 성서 해석을 하는데 다분히 교회 설교자의 해석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 교회에서 소위 ‘토라, 예언서 및 역사서’가 극히 일부 선택된 본문에서만 선포되며, 동시에 교회 구성원들도 그것에 무지하게 되었다는 것은 이러한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교회는 많은 봉사자들을 요구한다. 그것은 현대 교회뿐만 아니라, 현대 교회의 모태가 된 사도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열심 있는 교인들의 헌신으로 교회가 유지되는 부분도 있을 것이지만, 사도들은 하나님을 아는 것에 오히려 열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교인들에게 지적하였다. 나는 증언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열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열성은 올바른 지식에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롬 10,2). 열성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봉사는 쉽게 눈에 띄지만, ‘하나님을 올바로 알기’위해서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인지 많은 교인들은 ‘하나님을 알기 원하는 마음’이 있지만, ‘하나님을 알기’위해 노력하는 성도의 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교인들은 자신들의 수고가 드러나길 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을 아는 것’은 밖으로 쉬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봉사’라고 하는 것은 쉬이 드러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봉사를 열심히 한다는 것’은 언제부터인가 신앙이 좋은 것과 연결되어 있다 (봉사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은 구분되어져야 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요 1,1). 하나님에 대해 알려고 하지만, 성서를 알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에 대해 알고 싶어하지만, 성서를 알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얼마나 모순된 사실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한다”고 고백할 수 있을까? 

구약 성서에서 율법서들 가운데 특별히 강조되고 있는 것이 있다. 히브리어 “가르치다 (dml. Piel)” 라는 말이 신명기에서 특별히 4장과 31장에서 자주 등장하는데 (신 4,1.5.10.14; 31,12f.19.22), 이것은 자녀 혹은 백성들을 ‘하나님을 알기 위해’ 교육시키라는 것을 명령하고 있다.

예수님의 주요 사역중 한가지가 가르치시는 것 (Teaching) 이라고 신학에 입문하면서 배운다.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성도를 가르쳐야할 책임이 교회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인을 올바로 교육시키는 것을 등한시했던 한국 교회가 이단에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은 자승자박으로 이해되는 것은 당연하다.

 

 2. 믿음과 변화의 더딤

이단과 정통 기독교와 큰 차이점 중에 한가지를 들자면 ‘구원론’이라 할 수 있다. 교회에 나오면 무언가 다를 (구별될) 줄 알았는데, 교회에 10년 20년 다녔다는 사람들의 모습이, 교회 처음 나온 사람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더군다나 ‘구원’에 인간의 수고와 노력이 전혀 필요없다고 하는 것을 듣고 (롬 5,9), 구원에 대해 의심이 드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말 그리스도만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인가? (이것은 구원받은 자의 삶이 무엇인지 모르고 하는 질문이다.)

그것과 비교할 때, 이단의 구원론은 너무도 명확하다. 인간의 수고와 노력을 강조하고, 구원에 인간의 노력을 살짝 가미하는 것으로 기독교 구원론에 의구심을 품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해갈해준다. 구원 이후의 삶이 기독교에서는 너무도 ‘더디게’ 변화하는 것과 달리, 이단들은 ‘속히’ 변화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이와 유사한 것을 신약 시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불완전한 것으로 이해하여, 그것에 “할례”를 더하게 하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이 할례라는 인간의 행위를 통해 구원이 완성될 수 있다고 보았다: 몇몇 사람이 유대에서 내려와서, 이렇게 신도들을 가르쳤다. "여러분이 모세의 관례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행 15,1)

신약시대 그리스도인은 ‘받았지만, 아직은 아닌 (already ~ not yet)’ 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 구원을 받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며 죄를 짓는 상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여전히 불완전하여 우리 힘으로는 완전을 결코 이룰 수 없는 상태이다. 이단은 불완전한 것에 완전을 더할 수 있다고 가르치며, 인간의 노력으로도 할 수 있다거나, 혹은 교주와 특별한 관계를 통해 될 수 있다고 지도한다.

하지만 이단의 이러한 구원론은 피폐한 심령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뿐, 성서가 말하고자 하는 구원과 맞지 않는다. 교인은 자신에게 맞는 구원론을 찾기 원하는 것인지, 성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알고 믿을 것인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3. 교회의 불신 

교회에 대한 불신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가나안 교인” 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교회에 나온 사람들마저 한국 교회에 대한 불신의 벽은 높아져갔다: “소속없는 신앙인 (believing without belonging)” 또는 “교회 없는 크리스챤 (unchurched Christian)”. 왜 세상은 교회를 불신하고 있는가? 그것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3.1 교회의 교회되지 못함

1933년 L. Mueller 는 A. Hitler 의 도움으로 국가 주교 (Reichsbischof - 카톨릭 주교와는 구별된다. 개신교 정책을 담당하는 교회의 수장)에 당선된 뒤, 그는 국가 정책을 교회 현상에서 사람들에게 가르칠 것을 공공연하게 요구하였다. 그로인해 교회가 깨어지자 1934년 “바르멘 신학 선언 (Barmer Theologische Erklaerung)” 에서 칼 바르트는 세번째 테제 (Die 3. These)에서 교회는 무엇인가에 대해 선언하였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것에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는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한다 (엡 4,15.16)” 

그리스도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과 성례전에서 성령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주(主)로 현재 역사하고 계시는 형제 공동체이다. 교회는 순종과 믿음, 규정과 메시지를 통해 이 죄악 세상 가운데서 용서받는 죄인의 교회로서 증거해야할 것은,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며, 그가 나타나실 것을 기대하면서 오직 그의 위로와 인도하심을 따라 살고, 그렇게 살기를 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가 자신의 사명과 직책을 자기들이 선호하는 것에 혹은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이념적이고 정치적 확신들의 변화에로 양도할 수 있다는 이 거짓된 가르침을 우리는 배격한다.

3.2 교회안의 성도 - 신앙과 삶의 불일치

교회를 한번도 다녀보지 못한 사람들은 교인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한다: 여러분이야말로 우리를 천거하여 주는 추천장입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에 적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고, 읽습니다 (고후 3,2).

교인의 신앙과 삶 불일치가 타인이 이단에 빠지는 것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비 기독교인들 혹은 “가나안” 신도들에게 교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교인의 비뚤어진 삶을 통해 심어질 뿐 아니라, 이단의 설교들에서 공공연히 교회 (목회자와 교인) 의 부패성이 이야기된다. 개신교 단체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교회를 불신하는 이유 중 ‘언행일치가 되지 않다’ 라는 부분이 적지 않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9.4%).

 

4. 가시적 현상을 좇아가는 세태

소위 최신의 경향을 따라가는 성향이 유독 강하다는 것은 가시적 현상을 따라가는 세태를 반영한다. 신앙을 대하는 것이 마치 유행과 같으며, 심지어 신앙 서적을 대하는 것도 유행을 따라간다. 다량의 신앙서적이 팔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신앙서적 베스트 셀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인들의 삶이 변화되는 것은 더디다.

교인들의 이러한 신앙태도는 “교회의 쏠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유명한 사람을 따라 교회의 수평이동이 잦다. 여러 최신 프로그램들이 인기에 따라 여과없이 수용되는 가운데, 그것을 접하는 교인들은 점점 자극적으로 변하여, 점점 새로운 것을 요구한다. 과거 소위 인기있던 프로그램들이 지금 얼마나 문제되고 있는가!

때로는 카리스마적인 지도자가 나타나서 병자를 치료해주길 기대한다. 개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이루어지는 신앙생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위 치유집회 및 온갖 집회에 사람들이 모이며, 자신들이 모종의 병자라는 것을 자증하고 있다. 교회 안에 많은 프로그램들이 필요하고 또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를 구성하는 근본인 성서에 대한 프로그램은 찾기가 쉽지않다. 오늘날 우리에게서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단어는 '치유 (Healing)' 이다. 이것 역시 유행처럼 확장되고 있으며, 남발되고 있다. 

별첨4. “구원파 이단이라 하면서, 사실상 ‘구원파적 복음’ 선포” - 김세윤 박사(풀러신학교)

서울 논현동 서울영동교회(담임 정현구 목사) 목회자 세미나 中.

 

김세윤 박사는 한국교회의 위기를 ‘도덕적 타락과 신학적 부패’라고 요약하면서, 사제주의, 공로(상급)신학, 스콜라 신학방법 등 중세 가톨릭주의로의 회귀 부분적이고 왜곡된 복음 등의 원인을 열거했다. 김 박사는 “한국 보수교회, 개혁교회는 불쌍한 성도들이 이단의 밥이 되도록 하는 ‘모판’이 되고 있다”며 “이는 성경에 대해 비평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비평을 막아버려 성경은 중세처럼 ‘닫힌 책’이 됐고, 기존 교리들이나 문자적·율법적 방식으로만 해석하게 되고, 읽기 좋아하는 구절들만 읽는 천박한 현상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는 “보수 교회에서 어디까지나 교리에 맞춰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도리어 성도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복음에 힘이 없어졌다”며 “은혜는 싸구려로 전락해 버리고, 구원파를 이단이라고 하는 한국의 정통교회가 사실상 ‘구원파적 복음’을 선포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스콜라 신학방법론과 교조주의에 의해, 닫혀버린 성경의 가르침과 설교에 의해 수십 년 가르침 받은 사람들이 아무리 큐티를 해 본들 성경 메시지를 이해할 수 없다”며 “기껏 해야 감정적으로 고양시키는 말씀을 찾거나 복 주는 말씀을 읽는 문자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했다.

특히 김세윤 박사는 ‘칭의의 복음에 대한 왜곡’에 주목하면서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은 사라진 지 오래”라며 “의로운 삶이 없는 칭의론으로 인해, 본회퍼가 말했듯 싸구려(값싼) 복음과 구원파적 복음이 판을 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박사는 “보수 교회에서는 의로운 삶을 막고, 도리어 방해하는 칭의론이 공공연히 종교개혁의 유산으로 선포되고 있다”며 “한 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면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사람들에게는, 기독교 윤리란 몇 가지를 하거나 하지 않는 걸로 끝난다”고 밝혔다.

“교회에서는 주일성수·헌금·전도 세 가지만 하면 되고, 술·담배·제사 세 가지만 하지 않으면 훌륭한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 김 박사는 “술과 담배는 음식을 가리는 문제로, 예수님은 성경에서 이에 대해 신학적으로 ‘성별파’들인 바리새인·서기관들과 가장 논쟁을 많이 하시지 않았느냐”며 “예수님은 입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게 한다며 이런 부분들을 싹 무시하셨는데, 정작 우리는 이것에만 집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성경은 이에 대해 두 가지로 요약하는데,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려 하라는 것과 이웃 사랑의 관점에서 누구에게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는 것”이라고 했다.

 

신학적으로는 칭의론에 대해 법정적 의미만 강조하고 관계적 의미를 간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법정적 의미가 중요하지만, 의(義)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에서 나오는 의무를 다한다는 뜻도 있다”며 “그런 의미에서 의는 신실한 관계이고 원만한 관계는 바로 ‘샬롬’이 되며, 죄는 관계에서 나오는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으로 이것이 불의(不義)”라고 설명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차원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행위구원을 배격하기 위해 의인이 되었다는 말 대신 의인으로 칭함 받았다는 말만 강조하다 보니 생긴 현상이다.

또 칭의의 ‘종말론적 유보의 구조’가 무시되고 있다고 했다. 김 박사는 “칭의는 지레 받았다는 선취(先取)이지, 완성이 아니다”며 “그리스도인들은 선취한 의인됨의 상태 속에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서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칭의론을 조직적으로 전개한 로마서만 봐도 3-4장에서 칭의를 설명한 후 5장에서 ‘이 관계에 서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고도 설명했다.

‘예정론과 성도의 견인 교리에 대한 일방적이고 사변적 이해로 앙양된 잘못된 안심’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김 박사는 “이 교리를 부인하거나 약화시키면 안 되고, ‘오직 은혜로만’을 말하려면 예정론에 대해 분명히 말해야 한다”면서도 “칭의는 ‘다가올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하심’이라는 데서 보듯 결국 미래적인 것으로, 성경은 구원으로부터 탈락의 가능성에 대해 여러 차례 분명히 경고하고(고전 10:12, 롬 11:17-24, 히 6:1-10) 있다”고 했다. 밖에 “성화를 새로운 단계로 보아 버리는 우를 범했다”며 ‘구원의 서정 구도 안에서 성화론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이후 김세윤 박사는 ‘칭의론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대해 설명했다. 먼저 회심 때 우리는 그리스도 대속 제사의 덕(은혜)를 믿음으로 입어, 우리 죄에 대한 사면을 받고(aquittal) 의인이라 칭함받는다(declared righteous)는 것이다(은혜로만·믿음으로만). ‘의인이라 칭함받음’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회복됐다는 뜻이므로, 칭의란 ‘주권의 전이’, 즉 사단의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 하나님 아들 예수가 하나님 대신 왕권을 대행하는 나라(하나님 아들의 나라)에로 이전됨을 의미한다(롬 1:3-4, 고전 15:23-28, 골 1:13-14). 그러므로 바울의 ‘칭의의 복음’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의 구원론적 표현이다.

또 세례 때 얻는 ‘칭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있을 최후의 심판에서 얻을 칭의의 선취에 불과하므로(롬 8:31-39), 현재 회복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서 있음, 즉 하나님 백성으로서 삶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이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함으로써, 즉 하나님의 통치를 대행하는 하나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순종함으로써 가능하다.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실존에서 하나님과 이웃 사랑의 계명을 지키라는 요구로 우리를 통치하시며, 바울은 그래서 로마서 8장까지의 ‘칭의의 복음’에 대한 강해를 12-15장에서 ‘의로운 삶에 대한 권면’으로 이어간다. 그리고 하나님과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의 영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주권에 순종하여 이 두 계명을 지키도록 돕는다. 이러한 삶은 ‘의의 열매(빌 1:11)’를 맺음으로 하나님의 칭의된 자들임을 증거하게 되는데, 이는 곧 ‘성령의 열매(갈 5:22-23)’이다. 그리고 칭의는 구원의 전 과정(과거·현재·미래)를 통칭하는 것으로 이해해야지, 믿음의 시작점(세례) 때 다 이뤄지고 성화의 단계로 이어지는 것으로 이해해선 안 된다. 앞에서 언급했듯 ‘성화’는 칭의를 따르는 구원의 새로운 단계가 아니라 구원의 전 과정을 통칭하는 또 하나의 ‘그림언어’로, 칭의와 병행되는 언어로 이해해야 한다.

김 박사는 “성화는 하나님께 바쳐진 백성으로서 세상의 오염을 계속 피하고 거룩하게 사는 현재성을 띠어야 한다”며 “이러한 의미에서 칭의론을 실제적으로 의로운 삶을 살라는 윤리적 요구와 분리시키는 구원파적 왜곡은 ‘언어도단’”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그는 <칭의와 성화>에서 자세히 설명한 바 있다. 우리는 바울의 구원론을 ‘칭의-성화-영화’의 세 단계로 알고 있는데, 이것이 틀리진 않았지만 정확하지도 않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전통 신학계 ‘구원의 서정’에서의 ‘성화’는 칭의의 현재 단계에 대해 이름을 잘못 붙였다는 것. 그에 따르면 칭의 다음이 성화가 아니라, 둘은 같은 실재를 말하는 다른 그림언어들(metahpors)이다.

칭의가 죄를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징벌을 초래하는 것으로 보고 구원을 이 죄를 해결하는 것이라 표현하는 법정적 뉘앙스라면, 성화는 죄를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는 세상의 오염으로 보고 구원이 이를 해결하는 것으로 보는 제의적(cultic) 뉘앙스이다. 한 마디로 ‘성화’는 칭의의 구조 속 현재적 삶을 지칭하는 또 하나의 동의어적 어휘이다.

이렇게 보면, ‘성화’는 확정된 구원 이후 하늘나라 상급의 구도가 아니라, ‘칭의된 자’로서 우리로 하여금 의롭게 살려고 더 노력하게 만든다. 김세윤 박사는 “‘은혜로만·믿음으로만’의 구원과 윤리적 요구의 통합이라는 논지가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칭의(장로교)와 성화(감리회·성결교) 중 어떤 면을 강조하는 전통에 속하든 우리 모두 칭의론은 결국 하나님 또는 하나님 아들의 주권에 대한 ‘믿음의 순종(롬 1:5, 16:26)을 골자로 함을 잊지 않아야 한다”며 “이로써 의로운 삶을 무시하거나 방해하는 그릇된 칭의론이 아니라, 이를 요구하고 가능하게 하는 올바른 칭의론을 믿고 선포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정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김세윤 박사는 “삼위일체적 하나님에 의해 즉 하나님 은혜로만 이뤄지고 지탱되는 우리의 칭의·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고, 우리는 우리의 칭의(구원)를 ‘두려움과 떨림으로’ 이뤄가야 한다”며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순종하여, 즉 우리의 실존에서 그의 하나님·이웃 사랑의 계명을 성령의 도움으로 지킴으로써 의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연을 마무리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있을 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늘 의식하면서 의인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각주)-----------------

1 딕 욕(덕인영, Dick York)이 1960년대 자신의 구원관을 가지고 한국에 와서 선교활동을 하면서 형성되었다. 딕 욕은 정식 교단에서 안수를 받은 기록은 없고, 말 그대로 개인 신앙을 선교하러 온 자로 알려져 있다. 

2 유씨는 정식적으로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고등학교 졸업의 학력을 가진 사람이지만 그림, 조각, 설계 등은 물론 다양한 호신술을 겸비한 다재 다능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3 별첨1. 구원파의  계보 참조

4 일그러진 대한민국 성공 신화, '세월호' 유병언과 권력의 희한한 인연. 프레시안 박세열 기자. 2014.04.23 17:25:43

 

5 「새길」 1990 년 11, 12 월 p. 32.

6 정동섭, “구원파와 지방교회(회복교회)”, [한국기독교와 사이비이단운동], p. 150.

7 기독교 정통과 이단, 무엇이 다른가? 총회 신학부 p. 187

 

8 유병언 후계구도 '밑그림' 찾았다 ?데일리 한국, 신상미기자 frontpage11@naver.com 

입력시간 : 2014/09/06 09:28:32수정시간 : 2015.05.11 03:58:25

9 구 총회장은 항문외과 전문의로 강남 역삼동에 위치한 '더편한몸의원' 원장으로 재직한 바 있으며 유 전 회장의 장례식 당시 이용화 안성교회 대표, 김성일 전 총회장 등 5인의 공동위원장을 대표해 장례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10 유병언의 금고지기로 알려져 있음

11 딕 욕 선교사는 1965년 미국으로 들어가면서 유병언을 권 목사 딸과의 불건전한 이성교제를 문제 삼아 교학교에서 퇴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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