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교회 비판 | 운영자 | 2017-02-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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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들어가는 말
최근에 가장 활동이 두드러진 이단 단체들은 단연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과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일 것이다. 특히 자신들의 교세가 100만 명을 넘는다고 주장하는 ‘하나님의교회’의 포교 전략이 주목을 받고 있다. 신천지처럼 가정불화 등의 반사회적인 문제들을 야기하기보다는, 사회봉사와 같은 친사회적 인 활동을 통해 주변 사회의 인정을 받으며 꾸준히 교세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편승하여 정통 교단의 교리적 인정보다는 다수를 차지하는 비기독교 인들의 사회적 인정을 받으려는 이들의 포교 전략이 현재는 어느 정도 주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1) ‘하나님의교회’ 봉사활동의 전략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반드시 왼손이 알게 하는 비성서적인 전략이다. 사회봉사 활동을 한 후, 언론들에게 보도 자료를 보내 게재하도록 하고, 그리고 이들 기사들을 가지고 지방 자치 단체나 관할 경찰서를 찾아가서 표창을 요청한다. 이렇게 받은 상장들을 인터넷에 올리고, 자신들이 건전한 종교 단체라고 주장하며 사람들을 미혹하는 전략이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한국 교회의 알려지지 않은 사회봉사가 훨씬 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안타깝게도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해내지 못하고 있는 한국 교회를 대신하여 오히려 이단들이 국내외에서의 활발한 사회봉사 활동을 통해 그 영향력을 확장해 나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예전 이단들이 노골적으로 교주를 신격화하고 가정을 파괴하는 등의 비상식적이고 반사회적인 문제들을 야기 했다면, 최근 이단들은 간접적이고 지능적인 교주의 신격화와 친사회적인 사회봉사 활동을 통해 공신력을 얻어 가는 진화된 모습을 새로운 트렌드로 보여 주고 있다.2) 안식교에 뿌리를 둔 ‘하나님의교회’는 1985년에 사망한 부산 해운대 출신의 안상홍을 “재림 그리스도”와 “하나님”으로 믿고 있는데, 이들의 교세는 십 수만 명에 이르고 있으며 30-40대가 많이 있다고 한다. ‘하나님의교회’의 정관에는 “성령 하나님 安商洪 님의 이름과 성령 하나님의 신부되신 어머니 하나님(長吉子 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진리를 믿는다.”고 되어 있다. 또한 이들은 주기도문과 비슷한 소위 ‘하나님의교회’ 기도문을 가지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3)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안상홍 님, 아버지께서 강림하실 날은 임박하였사오나 우리들은 아무 준비도 없사오니 아버지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아버지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아버지 강림하실 날에 부족함이 없이 영접하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안상홍 님의 이름으로 간구하옵나이다.”
II. 본 론 1. 교 리4) 가. 안상홍이 성령 하나님 안상홍은 이 땅에 재림예수격으로 왔다고 했다. 예수님은 다윗의 위로 왔는데 다윗의 재위 기간이 40년인데 비하여 예수님은 3년밖에 일하지 못했지 않느냐는 이야기, 그러므로 재림 예수가 다시 와서 37년을 채워야 다윗의 위 40년이 이루어진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다시 오는 방법은 구름타고 오는 것이 아니고 육체로 와서 초림예수가 세워 놓았으나 암흑세기동안 짓밟힌 유월절의 성만찬을 회복하여 구원받을 성도 144,000명을 위한 진리를 찾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안상홍이가 이 모든 것을 충족시켜 주는 재림예수라는 주장이다. 그는 1948년 30세 되던 해에 침례(안식일교회에서)를 받았고 37년째인 1985년 2월 67세로 운명했다는 것, 37년간 복음사업을 하고 죽을 것이라는 예언을 수차례 해 왔었는데 그 예언대로 이루어졌으며 니케아회의(325년)에서 폐지되어 1600년간 지키지 못한 성만찬을 회복시켜 사망을 영원히 면하게 하는 영생을 주는 진리를 찾아 주었다고 한다. 재림예수가 육체를 입고 와야 한다는 주장은 눅 3:21에서 이미 침례를 받은 후임에도 불구하고 눅 12:50에서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하는 것으로 보아서 예수님이 다시 와서 침례를 받을 것을 시사하고 있으며 침례를 받기 위해서는 육을 입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또 사 25:6-9을 제시하면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했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풀어 사망을 영원히 멸하신 분이 우리의 하나님>이므로 유월절을 회복하여 사망을 영원히 멸하고 유월절을 지키는 자에게 구원을 준 안상홍이 하나님이며, 요 16:6의 예수님이 떠나가면 보혜사가 오리라 했는데 그 보혜사가 안상홍이요 성령 하나님이라는 근거를 성경 여기저기에서 찾아 보충하였다. 계 10:1-4에 예언의 말씀을 인봉했는데 말세 때에 개봉되어야 함에도 합당한 자가 없으나 유다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떼어 줄 것(계 5:1)이나 계시록이 기록될 때는 이미 예수님이 승천한지 60여년이나 지난 후이므로 예수님이 그 인봉을 뗄 수 없고 마지막이 임박한 시기에 재림예수가 와서 증거해야 되지 않겠느냐며 그가 바로 안상홍이라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안상홍 주장은 유월절을 지켜야 구원받을 수 있는데 성경의 예언대로 안상홍이 재림예수격으로 와서 유월절의 진리를 가르쳐 주었으며 성령시대인 이 시대는 안상홍의 이름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나. 안상홍과 하나님의 신부 안상홍은 늘 흰옷을 즐겨 입는 청렴한 예수의 모습으로 해운대 빈민가 쓰러져가는 오막살이에서 사는 것을 고집했다고 한다. 6.25직후 부산 해운대 판자촌의 고철 취급소에서 고성능 폭탄이 터져 그 일대가 폭삭 주저앉았는데도 안상홍이 거처하는 집만 참외 밭의 원두막처럼 남아 있어 당시에 부산의 구경거리였다고 말했다. 이런 신비스럽고 기적적인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다는 장길자 여인. 장 여인은 안상홍에 의해서 1981년에 하나님의 신부로 택함 받았다. 하나님 신부의 성경적 근거로 계시록 22장 17절을 제시한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에서 성령에게는 신부가 있다는 것. 마태복음 22장 1절에서 시작되는 혼인잔치의 비유에서 신부를 찾아볼 수 없는데 신부는 마지막 때 등장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아담은 예수님의 표상인데 완전한 아담이 되기 위해서는 하와와 동행해야 하듯이 예수에게도 신부가 있어야 하는데 안상홍이 장여인을 하나님의 신부로 택하여 세웠으니 초림예수가 해결되지 못했던 갈비뼈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신부로서 이들 교회에서 어머니적 역할을 하고 있는 장 여인은 안상홍 교주가 심판주로 공중강림하면 천국에서 혼인잔치가 열리고 하나님과 결혼한다는 꿈에 부풀어 있다. 장여인을 신부로 택하는데도 계시에 의한 선택이었다. 1981년 안상홍이 야생마가 들판에서 마음대로 뛰어다니는 꿈을 꾸었다. 길길이 뛰던 말이 안상홍의 앞에 끌려와 그가 등을 두드리자 조용히 순종했고, 식사하는 데까지 따라 들어와 밥을 같이 먹고 식사가 끝나자 다소곳이 앉더니 장 여인으로 변했다고 한다. 안상홍 교주에게 본 부인(부산)과 자녀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그 부인이나 자녀들과 안상홍 신상에 대한 이야기는 꺼려하고 있다.
다. 구원론 소위 성령시대인 이 시대는 예수의 이름만 가지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성령의 이름인 베드로전서 2장 4절의 흰돌 위의 새 이름으로 인침을 받아 유월절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성부 시대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았고(사 43:10-13 인용), 성자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으며(행 4:12 인용), 성령 시대인 이 시대는 보혜사 성령으로 온 안상홍 하나님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는다(벧전 2:4, 계 2:7 인용)
성 부
성 자
성 령
구원자
시 43:10, 여호와
행 4:12, 예수
계 3:11-12, 나의 새 이름
증 인
시 43:10, 여호와
행 1:8, 예수
새이름 증인회
기 도
시 116:4, 여호와
예수
새이름
구 원
욜 2:31, 여호와
예수
새이름
찬 송
여호와
예수
새노래
또한 그들의 교회가 구원의 도피성이며 벌써 1,000여명이 인침을 받았다고 하면서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고 주장하였다(1985년).
라. 종말론 1988년이 다 가기 전에 늦은 비 성령이 오실 것이며 144,000명의 인치는 역사가 끝나면 지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안상홍의 인을 받은 144,000명만 휴거되어 천국에 들어갈 것이며 구원받을 신자도 144,000명으로 국한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내렸던 성령은 이른 비 성령이며 성령이 오심으로 초대 교회가 급격히 확장된 것과 같이 늦은 비 성령이 내리면 자신들의 복음이 급격히 전파되어 144,000명을 인치면 안상홍이 공중재림하고 지구는 흔적도 없이 멸망한다고 하며, 현재 기성교회에서 이야기 하고 또 성령의 역사라는 것은 모두 마귀의 장난이며 성령은 떠나가고 이 땅에 계시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들은 종말론을 수시로 정하고 안 이루어지면 거짓으로 연장하고 2000년도 종말이라고 주장하였다.
마. 예배관 예배실 안에는 신을 신고 들어갈 수 없고(모세가 호렙산에서 신을 벗은 것같이), 바닥에 앉아서 하며 여자들은 수건을 쓴다. 묵상으로부터 시작된 예배는 그 묵상기도에서부터 당혹케 한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닌 안상홍 이름으로 기도하였다. 찬송가는 새찬송가를 사용하였으나 자신들의 교리에 맞게 개사해서 사용하고 있다. 하나님이나 성령, 주(主)같은 부분을 안상홍님으로 바꾸어 불렀다. 마지막 순서에는 하나님의 신부라는 장길자 여인의 간절한 거짓기도가 있은 후 ‘144,000의 원하는 기도’라는 기도문5)으로 예배를 마친다. 안상홍 교주가 죽고 오순절의 성령강림과 같은 늦은 비 성령이 내리기를 갈망하면서 가슴에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 증인회’라 쓰인 배지를 달고 포교유인물을 돌리는 등 최근 들어 활동이 두드러지게 눈에 띄고 있다. 그들이 주장하는 예배관의 특이점 일곱 가지를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여자는 머리에 수건을 쓴다. 2) 세례를 받지 않고 침례를 받는다. 3)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킨다. 4) 성탄절은 태양신 기념일이므로 지키지 않는다. 5) 유월절을 지킨다. 6) 십자가는 우상이다. 7)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칠칠절, 나팔절, 대속죄일, 초막절 등 3차 절기를 철저하게 지키는 것으로 중세의 왜곡된 교리를 바로 잡아 하나님의 바른 진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 ‘하나님의교회’의 문제점과 조직신학적 비판6) ‘하나님의교회 안상홍증인회’는 한기총의 이단심의위원회의 연구에 의해서 1999년 11월에 이단으로 판정받았다. 또한 현대종교를 비롯한 많은 이단 연구 단체에 의해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번 장을 통해서는 ‘하나님의교회’의 이단성에 대해 조직신학의 구도로 비판해 보고자 한다.
가. 신 론 1)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비판 ‘하나님의교회’에서는 “모든 사람과 사물들은 이름이 있듯이 하나님의 이름도 있는데 그것이 곧 ‘안상홍’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다음은 그들이 사용하는 기도문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안상홍님 아버지께서 강림하실 날은 임박하였사오나 우리들은 아무 준비도 없사오니 아버지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아버지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아버지 강림하실 날에 부족함이 없이 영접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스도 안상홍님 이름으로 간구하옵나이다. 아멘” 이와 같이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이름은 ‘안상홍’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상홍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안상홍의 이름을 믿는다. 그렇다면 그들이 주장하는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에 관해 성경에서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인가? 벌코프의 조직신학 상(上)권 신론 부분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에 관해 이러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먼저 하나님의 이름은 단수로 기록되어 있는데(출 20:7; 시 8:1, 48:10, 76:1; 잠18:10), 이 경우에 ‘이름’은 백성들과 관계를 맺고 계신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현현을 상징하거나, 혹은 하나님과 동의어가 되는 인격에 대한 것이다. 이러한 용법은 동양적인 사고에 있어서 이름이 단순한 단어가 아니라 사물의 본성을 지시하는 표현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7) 그러므로 앞에서 언급한 대로 ‘하나님의교회’의 하나님 이름에 대한 해석을 ‘동양적인 사고’의 틀인 ‘안상홍(安商洪)’의 한문식 이름의 뜻으로 짜 맞추는 해석은 올바르지 못하다고 볼 수 있다. 가장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이름은 자기 계시로서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시는 것이다. 성경은 이에 대해 명백하다. 사도행전 4:12에서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라고 했다. 히브리서 13:8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라고 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그들의 주장이 성경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오류가 있으며, 이는 성경을 잘못 이해하면서 자기들의 방법대로 해석하려는 지나친 과오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2) ‘삼위일체론’에 대한 비판 먼저 이들은 타락한 인류의 역사를 세 시대, 곧 성부, 성자, 성령의 시대로 구분한다. 각 시대마다 삼위의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는 특별한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먼저 구약, 즉 성부시대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구원의 주체로 유월절을 제정하여 지키도록 명령하시고,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통해 그 백성을 구원하시어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셨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에 들어가게 된 것은 절기를 철저하게 지킨 결과였다고 본다. 다음 성자시대에는 예수께서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셔서 구약에 예표된 절기들은 그대로 이행하셔서 인간들을 위한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고 한다. 그리고 유월절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유월절을 성만찬으로 번역(히 7:12)하여 이를 새언약으로 세우시고 계속 지킬 것을 명령하신 후 승천하셨다고 본다. 그리고 세 번째 성령의 시대이다.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 성령을 약속하셨는데 이는 마지막 때에 “육체로 다시 오실 예수”를 상징한 것이라는 것이고 성령시대는 1844년 이후부터 예수 재림 때까지라고 한다. 마지막 때에 약속된 성령 곧 육체로 오신 예수께서 잃어버린 새언약 곧 유월절을 회복하시게 되는데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완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의 삼위일체론은 양태론적 단일신론(Modalistic Monarchianism)에 유사하다. 다음은 ‘하나님의교회’의 총회장인 김주철 씨의 삼위일체에 대한 해석이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구원사업을 진행하시는데 등장하셔야 할 시기와 형태와 그때마다 불리워질 이름이 다르게 호칭되어진다 할지라도 그 근본은 같은 한 분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1인 3역으로 구원사업을 완성시켜 나가는 것을 성삼위 일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8) 위에서 보듯이 이들은 삼위일체에 대한 이해를 단일신론에 기초한 양태론적 입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들은 안상홍 씨를 하나님 내지 구주로, 장길자 씨를 어머니 하나님으로 언급하면서, 이신론(二神論) 또는 다신론(多神論)적 입장을 취하고 있기도 하다. ‘삼위일체’를 이해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인격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인격성을 측정하기 위한 표준으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이다. 비록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인격적으로 자신을 계시하셨지만, 그 분은 무한한 완전으로 존재하시기 때문이다. 인간과 동물들의 접촉이 인간의 인격성을 설명해 줄 수 없음같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들과의 접촉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인격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삼위의 존재에 의하여 하나님 안에는 신적인 삶의 무한한 충만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삼위일체론에 관한 벌코프의 진술을 정리해 보면서 삼위일체에 대한 올바른 접근을 시도해 보도록 하자. 첫째, 신적인 존재 안에는 유일의, 구분할 수 없는 본체가 있다. 둘째, 이러한 신적 존재 안에는 세 위격들 혹은 개별적인 실체들(subsistences), 즉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존재한다. 셋째, 하나님의 나누어지지 않은 전 본체가 삼위의 각자에 동등하게 속한다. 넷째, 신적 존재 안에 있는 삼위의 실존과 활동은 분명하게 정해진 순서로 표시된다. 다섯째, 삼위가 구별되는 어떤 위격적인 속성들이 있다. 여섯째, 교회는 삼위일체를 사람의 이해를 초월하는 신비로 고백한다.9)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하나님의교회’의 삼위일체에 대한 이해는 크게 잘못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유월절 교리를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삼위일체론을 오용하고 있다. 삼위일체는 분명한 계시이지만, 사람이 그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으며, 또한 이해시킬 수 없다는 의미에서 신비이다. ‘하나님의교회’들도 역시 그것을 인간적인 인식의 틀에서 이해하려다 보니 신학을 벗어나 ‘그들만의 사색’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나. 기독론 1) 재림 예수론 비판 ‘하나님의교회’는 안상홍 씨는 재림 예수로 이 땅에 왔음을 주장한다. 그것은 이미 앞에서 살펴본 대로, 예수님이 다윗의 위(位)로 와서 다윗의 재위기간인 40년을 채우지 못하고 단지 3년 밖에 일하지 못했기 때문에 남은 37년을 채우기 위해 다시 와야 했으며, 이 37년의 기간을 채운 것이 바로 안상홍 씨라는 결론이다. 먼저 다윗의 위로 오신 예수님이 40년의 기간을 채워야 한다는 식의 논리 자체가 잘못이다. 예수님이 다윗의 위로 오셨다는 것은 선지자들로 예언된 다윗의 혈통적 뿌리일 뿐만 아니라, 다윗의 가계를 통해 실패한 왕권이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됨을 의미하는 그리스도의 왕권을 내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다윗의 위를 잇는 중보자적 왕직을 수행하며, 천지 만물을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구원 계획의 수행을 위하여 통치하는 그의 직무적 권력을 수행하신다. 그렇다면 재림 예수론은 어떠한가? 먼저 성경이 말하는 재림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벌코프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수의 승귀의 정점으로 보면서, 인간의 손에 수난 당하신 그분이 심판주의 자격으로 재림하실 때 도달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그리스도 자신이 이를 중보자적 특권이라고 말씀하셨고(요 5:22,27) 사도들도 이같이 증거했다(행 10:42, 17:31). 그리스도의 재림은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육체적 가시적인 재림임은 분명하다(행 1:11). 하지만 그의 재림이 ‘하나님의교회’의 주장과 같이 다윗의 위를 완성하고 죽는 식의 의미는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세상을 심판하고 그의 백성들의 구원을 완성시키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생사 간에 인간과 천사들이 그 앞에서 그들의 행위에 관한 기록에 의해 심판하시기 위함이다(마 24:30,31, 25:31,32). 그의 재림이야 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완성된 승리의 표지이다.10) 그러므로 ‘하나님의교회’의 주장대로 안상홍 씨가 재림주라는 주장은 억지에 가깝다. 그가 재림주라면 이 세상의 구원이 완성되고 벌써 심판받았어야 했으며, 결정적으로 그는 절대 죽어서는 안되었다. 하지만 1985년에 사망한 그를 재림주였다고 과거형으로 선포하는 식의 주장은 이미 성경을 벗어난 교리라고 볼 수밖에 없다.
다. 인간론 1) 인간기원에 관한 문제 안상홍 씨는 시편 78:2과 마 13:35을 근거로 창세기 1-2장의 창조 사업을 실제로 보지 않고 비유로 보고 있다. 곧 창세기 1장의 창조가 있기 5만 년 전부터 존재한 아메바가 5만년동안 진화하여 하나님께서 지구를 창조하실 때에는 원시 시대와 같이 모든 형태가 진화의 형태로 갖추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중 사람의 형태를 갖춘 원시인은 창세기 6:4의 ‘네피림’으로 이들은 짐승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창세기 2:7의 ‘흙’은 진화되어 이미 존재하고 있던 원시인을 가리키며 그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었다고 한다. 하나님은 이 원시인을 잠들게 한 후 그 코에 생기(영혼)를 불어넣은 것을 비유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당시 지구에는 진화로 인해 생물들이 존재해 있었지만 짐승 같은 원시인에게 하나님이 영혼을 불어넣기 전에는 하나님을 몰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 기원에 관한 그의 해석은 성경의 해석도 잘못되었고, 성경적인 창조론에서도 지극히 벗어나 있다. 먼저 시편 78:2과 마 13:35의 ‘비유’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마솰)’는 ‘비밀한 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신랄하면서도 주의할 가치가 있는 속담으로 자기 노래를 막연한 말로 감추지 않고, 하나님의 깊은 뜻을 좀 더 뚜렷하게 강조하려는 의지로 사용된 단어이다. 이는 저자가 이 주제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하게 하려는 의도에서 사용된 단어이다. 이 구절을 마태가 인용하여 그리스도께 적용시켰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백성들에게 ‘비유’(παραβολ?)로 말씀하심으로 그가 하나님의 특별한 선지자임과 그에 대한 더욱 큰 경외심을 유발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창세기의 창조기사를 단순한 비유로 해석하는 것 자체가 성경 해석에 있어서 큰 오류이다. 예수님이 구약의 역사적 사실을 단지 비밀한 일을 가르치기 위해 꾸며낸 비유에 불과하다고 평가한 구절은 한군데도 찾을 수가 없다. 또한 ‘네피림’을 원시인의 일종으로 보는 것 자체도 성경 해석의 오류다. 창 6:4의 ‘네피림’(????????)은 ‘?????(나팔)’에서 유래한 단어로, 그 뜻은 공격하는 자, 습격하는 자라는 뜻을 가진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타락한 천사들의 후손으로 보려하기도 하고, 괴물, 신동(神童) 등으로 보려는 시도도 있었다. 하지만 이 단어는 거대한 몸집을 가진 신체적 특징을 설명할 뿐 아니라, 도덕적 특성까지 암시하는 거대한 신체를 지닌 폭군들, 내지는 침략자들이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로 대변되는 셋, 에노스 계열의 ‘하나님의 아들들’과 구별되는 가인의 가계 일파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네피림을 ‘사람의 형태를 갖춘 원시인’이라 해석함은 무리가 있는 해석이다. 거기다 창 2:7의 ‘흙’을 진화 전 원시인의 단계로 보는 것도 억측이다. 여기서 흙으로 표현된 단어 ‘?????(아파르)’는 단지 ‘마른 흙, 먼지, 티끌’을 표현하는 단어로 성경에서는 문자 그대로 푸석푸석한 흙을 가리킬 때 사용된 단어이다(창 26:16; 출 8:16-17; 민 5:17; 전 3:20; 욥 4:19; 사 29:16; 창 13:16). 이 단어가 비유적으로 사용될 때는 너무나 흔하기 때문에 무가치함을 나타낼 때 쓰이기도 한다(습 1:17; 슥 9:3). 때로 너무 가벼워서 쉽게 흩어지는 것을 비유하기도 한다(왕하 13:7). 그러므로 이 단어를 비유적으로 해석하는 자체가 잘못이다. 여기서 인간의 기원에 관한 개혁신학자인 바빙크(Herman Bavinck)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먼저 그는 창세기 1장의 인간 창조 기사는 창세기 2장에 가서 더 확대되고 보다 더 상세히 전개되는 것으로 본다. 창세기 2장을 잘못하여 제2의 창조 이야기로 지칭하는 것은 성경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창세기 2장의 강조점은 사람의 ‘창조’에 있고 또한 사람의 창조가 일어난 방식에 있는 것이다. 바빙크는 사람의 창조에 있어서 하나님의 특별한 경륜을 말하며, 다른 피조물들과 달리 사람을 창조 하실 때는 그는 먼저 자기 자신과 더불어 의논하시고, 스스로 사람들을 그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시기로 결정하셨으며, 이는 사람의 창조야말로 하나님의 지혜와 선하심과 전능하심에 의존하는 것임을 시사해 준다. 또한 사람의 창조는 기타 피조물들과 종류가 다를 뿐 아니라, 본질이 다르다는 점을 언급한다. 그는 이어서 ‘진화론’을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만일 이 모든 특성들과 현상들이 점차로 진화되었다면, 그런 진화는 선사 시대-즉, 우리가 직접적으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그리하여 그저 몇 가지 사실들을 기초로 하여 이리저리 추측하는 정도밖에는 할 수 없는 그런 시대-에 일어났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어떤 학문이든, 그 선사 시대의 사실들을 빌려와서 거기서 사물들의 기원들을 발견하기를 원한다면, 문제의 본질상 반드시 추측과 가정과 추리에 의존할 수밖에는 없다.”11) 그러므로 안상홍 씨가 말하는 창조의 비밀을 밝히 말해 준다는 진리는 단지 ‘진화론’을 반복하는 오류일 뿐이요, 단지 그의 상상의 세계에서 발상된 추측에 불과하다.
라. 구원론 1) 구원의 방법 문제 ‘하나님의교회’를 소개하는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그들이 무엇을 믿는 지에 대한 다양한 정의들을 살펴볼 수 있다. 거기서 유월절에 관한 설명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천국을 목적 삼고 참된 신앙생활을 하고자 하는 진실한 성도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하나님의 규례가 있으니, 그것은 곧 새 언약의 유월절 규례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성경의 가르침대로 산다고 하면서도 성경의 중심 진리가 무엇이며, 영생 얻고 구원받게 하기 위해서 이 땅에 베푸신 하나님의 진리의 제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성경의 바른 가르침을 외면함으로써 거짓된 길을 서슴지 않고 자행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바로 보아야 하고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그 핵심을 찾지 못하고 중심을 잃어버려서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자신들이 찾은 새 언약의 유월절 교리야 말로 구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이다. 하지만 구원은 인간의 의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도 아니요, 인간의 노력여하에 달린 것도 아니다. 구원에 필요한 특별한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자신이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에, 사람이 원해서나 달음박질하는 것으로 구원이 결정되지 않는다. 오직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는 구원받는 것이다(롬 9:15-16).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지만, 믿음이란 하나님의 선택의 결과 혹은 열매이지, 선택의 조건이나 근거가 아니다. 믿음도 결국은 하나님의 선물이다(엡 2:8-9). 그러므로 ‘하나님의교회’가 주장하는 구원의 조건으로서의 유월절 등의 기타 절기 준수는 구원론에 대한 올바른 접근이 되지 못한다.
2) 극단적인 폐쇄적 구원론 비판 이들은 기존의 모든 교회를 불의한 교회요 사단들의 집단으로 간주하고, 자신들의 교회에만 구원이 있다는 폐쇄적인 구원론을 일색한다. 특히 이미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이들은 영생명부, 곧 ‘생명책’이 자기들에게만 있다고 주장한다. 요한계시록 13:8, 20:12에 보면 하늘에 생명책이 있다고 되어 있고, 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야만 구원받는다고 되어 있는데, 그 생명책이 자기들에게만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생명책이란 ‘하나님의교회’의 교적부로 자신들의 단체에 등록해야만 구원받는다고 하는 것이다. 또한 자신들이 주장하는 구원의 교리는 ‘비밀’에 속하므로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특정한 사람들, 곧 자신들만이 이 구원의 진리를 안다는 것이다. 개혁 신학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그리고 확실히, 선택받은 사람들만을 구원하기 위해 죽으셨다는 점은 사실이다. 이는 그가 자신의 구속 사역의 혜택을 실제로 베풀어 주신 사람들만을 구원하려는 목적에서 죽으셨다는 말이다. 이 ‘제한속죄론’의 근거는 하나님의 계획이 언제나 확실히 유효하며 인간의 행위로 인해 좌절될 수 없다는 점과 성경이 반복해서 주장하는 대로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그 목숨까지 버리신 사람들을 매우 명확히 한정시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그의 백성을 구속하신 은혜는, 단순히 인간의 의사에 의해 성취여부가 좌우되는 조건성을 가지지 않는다.12) 이에 대해 바빙크는 하나님의 선택이 특정한 사람들을 그 대상으로 삼지만, 그 사람들 자신이 선택의 근거나 기초가 아님을 말한다. 그 기초는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구원의 범위를 자신들의 의사에 따라 결정지으려는 시도 자체가 성경적 시각을 벗어난 것이다. 또한 앞서 비판했듯이 그들이 말하는 ‘생명책’ 교리 또한 성경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 교회론 1) 안식일 교리 비판 ‘하나님의교회’ 안식일 규례야 말로 천국을 목적 삼고 참된 신앙생활을 하고자 하는 진실한 성도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하나님의 규례라고 한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일요일을 멋대로 주일이라고 부르는 기성교회는 잘못되었고, 안식일을 지키는 자신들은 지극히 성경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들이 안식교의 또 다른 분파로서, 안식교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키는 ‘주일’에 대한 정당성은 어디서 찾아 볼 수 있는가? 이에 대해 세인트앤드류신학교의 신약학 교수인 리차드 보캄은 주일 곧 “주의 날”(Lord's Day, κυριακη ?μ?ρ?)이라는 단어는 요한계시록 1:10에 단 한 번 등장함을 언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은 기독교의 일요일 예배의 기원과 그 의미에 대해 고려할 때 반드시 다룰 수밖에 없는 중요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디다케나 이그나티우스 서신, 그리고 베드로 복음서에도 등장하는데 이는 이미 확정된 어떤 용법을 전제하고 있는 것처럼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κυριακη ?μ?ρ?’라는 말이 도미티안 치하에서 이미 일요일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었을 가능성이 훨씬 커진다. 특별히 요한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그리스도의 주권을 주장하는 새로운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으므로,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최초의 환상이 요한계시록 전체를 이해하는 밑그림이 된다. 이러한 점에서 크리스천들은 그들이 주의 날에 바로 이 주님을 예배하고 있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13) 특별히 ‘하나님의교회’는 주일을 황제 숭배일 또는 태양신 숭배일과 연관시켜 비판하는데, 오히려 ‘주의 날’은 매 달 있었던 ‘황제의 날’을 의도적으로 대조시키려 했던 요한의 의도를 발견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왜냐하면 요한 시대에 겪고 있었던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가 ‘황제 숭배’와 관계있었으므로, 오히려 ‘주의 날’에 크리스천들은 “온 세상의 임금들의 주”로 오시는 주님을 예배하였던 것이다. 성경적인 측면에서 안식일의 의의를 살펴보자. 하나님의 창조사역과 함께 구속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을 완성한 재창조의 사건이다. 곧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한 사건은 안식의 개념을 바꾸어 놓은 사건인 것이다. 복음서의 기록에 의하면 부활절은 안식 후 첫날인 주일이었다(마 28:1; 막 16:1; 눅 24:1). 또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나타나 보인 날도 안식 후 첫날인 주일이었다(눅 24:1-12; 요 20:19-20). 또 주님의 제자들이 주님이 부활하신 그날을 기념하여 주일에 한자리에 모여 성찬예식을 행하고, 그 자리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다(행 2:42; 20:7). 또한 바울은 고전 16:1에서는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하면서, “매 주일 첫날에 연보하라”는 말을 하였다. 이를 통해 매 주일 예배 시 드리는 구제 헌금에 대한 개념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14) 특별히 주일에 대한 교회사적 증거로, 총신대 박용규 교수는 소 플리니가 트라얀 황제에게 보낸 문헌과 2세기 초엽에 기록된 디다케(Didache 14:1)와 바나바 서신(Epistle of Barnabas, 15:1)에서 찾을 수 있고, 또한 2세기 중엽의 순교자인 저스틴의 ‘제 일 변증서’의 67장에서 ‘일요일이라 부르는 날’에 행해진 기독교 예배의 전형적인 형태를 소상하게 기술하고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주일 성수는 2세기를 지나 3세기에 접어들면서 완전히 정착되어 시행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3세기 초엽에 활동했던 유명한 초대교회 교부 터툴리안의 증언과(On Idolatry 14., De Oratione, 23.), 3세기 후반으로 추정되는 시리아어 [사도들의 가르침]이라는 작품에서 ‘주일 첫날’을 기독교 예배를 위한 날로 선정하였음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15) 그러므로 이러한 증거들에서 우리는 ‘하나님의교회’가 주장하는 대로 콘스탄틴 황제에 의하여 태양신숭배일이 주일로 바뀌었다는 주장이 명백히 오류가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오히려 콘스탄틴 황제가 일요일을 공휴일로 선포한 것은 그가 일요일을 공휴일로 지정한 날로부터 주일이 시작된 것이 아니라, 교회가 주일을 지켜오고 있는 전통에 따라 그 날을 공휴일로 지정했다는 해석이 정당하다.
2) 유월절 교리 비판 ‘하나님의교회’는 기존 교회에 대한 성탄절, 부활절 등의 기존 절기를 비판하면서, 오히려 성경적인 절기인 유월절, 무교절 등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하나님의 계명으로, 영생을 주시기 위해 구약에서 제정되고, 신약에 와서 예수님이 유월절 만찬을 통해 새 언약의 유월절을 회복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자신들의 교주인 안상홍 씨가 이 잃어버린 유월절 교리를 ‘새 언약’으로(눅 22:20) 되찾아 증거했다는 이유로 그가 재림주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들은 유월절 교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첫 번째로 날짜에 대한 오류다. 유월절은 열 번째 재앙인 장자 재앙에서, 문설주의 피를 보고 하나님의 사자가 그 집을 넘어가 구원 얻은 것을 기념하여 지키는 절기이다(출 12:14). 닛산월(유대력 1월) 14일 해질 때에 유월절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밤에 집 안에서 그 고기를 구워 먹으며 반드시 집 안에 있어야 한다(출 12:22). 이 14일 일몰 후부터 아침까지가 유대인의 날짜로는 15일 밤까지이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 나름대로 만든 달력에 따라 1월 14일 저녁을 유월절로, 15일을 무교절로, 그리고 그 유월절 주간의 안식일 다음날을 초실절로 지킨다. 하지만 유대력은 우리가 쓰는 달력과는 다르고, 유대인의 하루에 대한 이해도 일몰부터 일출까지로 우리와는 다르다. 그러므로 그들은 날짜 계산에서부터 중대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절기에 대한 잘못된 이해다. 이들은 마치 기독교가 구약의 절기를 무시하고 지키지 않는 것처럼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예수님이 율법의 완성이며 성취이시기 때문에(마 5:17),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율법의 계명들을 지키며, 구약의 절기도 지키는 것이다. 먼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이 되시기 때문에(요 1:29; 고전 5:7; 벧전 1:18-19), 우리는 성만찬을 통해 유월절을 기념하며(마 26:17-30; 막 14:12-25; 눅 22:1-20), 이 유월절은 어린양의 혼인 잔치의 전조가 되는 것이다(마 26:29; 막 14:25; 눅 22:16-18). 무교절 또한 그리스도를 통해 이해될 수 있는데 무교병은 그리스도의 원형이며(요6:30-59; 고전 11:24), 진실한 교회의 원형이기도 하다(고전 5:7,8). 초실절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해될 수 있다. 곧 첫 열매는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의 원형이며(고전 15:20-23), 첫 열매는 모든 신자들의 육체적 부활을 보증하고(고전 15:20-23; 살전 4:13-18), 교회의 성별의 원형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의 절기는 율법과 함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으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섬기는 것으로 온전히 지켜진다고 볼 수 있다. 셋째, 구약과 율법에 대한 잘못된 이해다. 이들은 구약의 절기와 율법을 그대로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성경을 편향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바울은 골로새서 2:16-17에서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결국 절기나 월삭, 안식일 등의 구약의 율법은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한 그림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산다면, 절기나 안식일 등의 문제는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이런 논의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약의 율법과 절기 문제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교회’의 오류는 구약의 율법과 절기를 지키는 것이 훨씬 성경적이며, 예수님도 구약의 율법을 지켰기 때문에 의로운 사람인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다. 모든 해답은 그리스도께 있다.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은 잘못된 시각을 바르게 하여 올바른 성경적 안목을 회복해야 한다.
바. 종말론 1) 시한부 종말론 비판 안상홍 씨는 자신의 예언대로 1985년 2월에 죽으면서 1988년에 재림할 것을 예언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 ‘하나님의교회’는 서울올림픽이 올리는 1988년 시한부 종말론을 내세우면서 신도들을 미혹한 일이 있다. 이후 1994년 종말설을 제시했으나 역시 성취되지 않았다. 그러자 몇몇 신도들이 실망과 불신으로 인해 떠났지만, 여러 번 자신들의 교리를 번복하면서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시한부 종말론이라는 자체가 모순이기도 하지만, 여기서 재림의 시기에 대한 분명한 언급이 필요하다. 주님께서 오실 정확한 시간은 누구도 알 수 없다(마 24:36). 그리고 그 날짜를 계산하려는 인간의 모든 시도는 허망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성경에 근거하면 날짜 계산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이 세상 마지막에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주의 날이 가까웠다는 말씀이나 마지막 날이 가까웠다는 말씀을 읽을 때 오히려 우리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마16:28, 24:34; 히 10:25; 약 5:9; 벧전 4:5; 요일 2:18). 우리가 종말에 관한 성경의 구절들을 접할 때마다 그 깊은 뜻을 묵상할 필요가 있다. 시간 개념에 있어서는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은 것이며, 주님이 자신의 재림에 대해 말씀하실 때 자신의 육신적 재림뿐만 아니라 성령을 통한 강림을 말씀하기도 하셨으며, 특히 세상 심판에 관한 구절은 A.D 70년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말씀과 마지막에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오시는 것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기 때문이다.16) 그러므로 재림의 정확한 시간을 확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시도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들은 역사적으로 모두 실패했다. 그러므로 시한부 종말론을 언급하기 시작하는 것은 그 시작부터 오류이다. 비록 요즘에 들어서 ‘하나님의교회’가 시한부 종말론에 대해서는 침묵하기 시작했지만, 이들이 시한부 종말론을 이미 언급했었다는 점에서는 다른 이단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2) 소위 “성경적 종말론”에 대한 비판 이들은 자신들의 시한부 종말론 교리 실현되지 않자 종말론에 대한 또 다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곧 자신들의 종말론을 “성경적 종말 신앙”이라고 명명하고 이것이 초대교회의 신앙을 계승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인간은 재앙을 면하려는 본능이 있으나, 재앙은 벗어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지만 종말론으로 위기감을 조성하거나 금전을 갈취하고, 가정과 사회를 위협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비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는 종말론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으며, 종말론이라는 말 자체에 거부감을 가질 필요가 없음을 역설한다. 오히려 현대인들, 특히 기독교인들조차도 종말신앙에 대하여 크게 거부감을 가진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도 은연중에 시한부 종말론을 암시하는 내용을 담지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곧 ‘운명의 날 시계’를 언급하거나 ‘그랜드크로스설’ 등을 예로 들면서 세상 종말을 통해 오는 위험을 설명하는 것이다. 또한 초대교회 이단 중 하나인 ‘몬타누스’파가 종말 신앙을 따라 살았기 때문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도 한다. 또 그와 관련하여 초대교회 성도들도 역시 ‘임박한 종말론’ 사상에 따라 종말을 사모하면서 현실에 충실했다는 점도 언급하고 있다(벧후 3:10;약5:1-6).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교회’야 말로 이러한 초대교회의 신앙을 그대로 따르는 진정한 교회이며,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재앙 중에서 살아나고 싶다면 어서 ‘하나님의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하라”라는 식으로 그들의 논리를 전개한다. 먼저 정통 교회는 종말론에 대한 거부감이 없으며, 오히려 종말 신앙이 가져다주는 좋은 유익이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박형룡 박사님에 의하면 참된 기독교는 내세의 교리, 곧 종말론이 명료하고 신적인 확실성을 가진다고 역설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독특한 권위를 인정하는 복음적 신앙의 소유자들에게 내세적 사상의 가치는 고귀무비(高貴無比)한 것이다. 내세론은 무엇보다도 기독교회와 기독신도의 이상의 완성을 계시하는 사상체계이다. 기독교회 전체나 그 신도 개인들이나 그 추구하는 이상을 현세에서는 완성하지 못한다(롬 8:24). 그 이상의 완성은 오직 내세에서 득달되는 것이다(고전 13:10). 그리스도인에게서 죄는 전적으로 근절되지 아니하며 성령은 오히려 유일 통치자가 아니시다. 그와 같이 교회도 아직 전투의 상태에 있고 그 승리는 미래에 있는 것이다. 오직 내세에서 기독 신도는 죄와 죽음으로 더불어 완전히 결연하며 기독교회는 시혹(試惑)과 부패(腐敗)를 다시 만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고로 진정한 종교의 안계는 영원에 향하여 확대되지 아니치 못하나니 어찌 내세적 사상의 가치를 경시할 수 있으랴?”17) 그러므로 그들의 주장과 같이 정통 기독교는 종말론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지도 않으며 오히려 종말을 사모하면서 현실의 삶에 더욱 성실하고자 노력한다. 또한 그들의 편협한 결론과 같이 ‘하나님의교회’만이 구원의 유일한 통로라고 주장하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 이는 자신들이 비판하는 또 다른 이단들의 폐쇄성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거기다 그들은 그 들의 기도문 중에 자주 등장하는 “아버지께서 강림하실 날은 임박하였사오니”(계 22:21)라는 말씀에서 아버지는 자신들의 교주인 안상홍 씨임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볼 때 이들의 재림론은 성경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
III. 나가는 말
지금까지 우리는 이단 ‘하나님의교회 안상홍증인회’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앞서 살펴봄으로 알 수 있듯이 성경을 인용하지만, 성경과는 전혀 무관한 교리로 많은 사람들은 현혹하는 ‘하나님의교회’와 같은 이단에 대해 우리는 주의를 요해야 한다. 현재 우리의 현실은 우리 주변에 수많은 이단이 산재해 있다는 것이다. 과거가 달리 지금은 숨어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연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러한 이단에 대한 바른 성경적 대응과 실천적 방안들이 많이 형성되어서 이 땅에서 주님 오실 때까지 이단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미혹되어 있는 많은 영혼들을 구출해내고, 또 단단히 예비하고 예방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마지막으로 권의석의 이단 예방과 극복 방법18)을 제안하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먼저, 이단에 대한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신학교에서 목회자를 양성할 때 이단에 대한 교육이 먼저 선행되어져야 한다. 지도자들이 이단에 대한 실제적인 정보와 지식이 있어야 평신도들에게 교육을 통한 사전 예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단에 빠진 자들까지 상담하고 법적으로 잘 대처하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지도자를 양성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준비가 되어진다면 많은 영혼이 방황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교회에서 교인들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우리 교회에서 이단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이단에 대해서 아주 무지하기 때문에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단들이 어떤 교회들이며, 어떤 교리들이 잘못되었다는 간단한 지식만으로도 귀중한 성도를 지킬 수 있다. 교인들을 주목표로 삼고 전도하는 이단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성경공부 중에나 설교 시간을 통하여 주요 이단과 주요 교리를 알리고, 성경적인 바른 교육을 하면 아주 효과적일 것이다. 둘째, 교회의 사랑이 회복되어야 한다. 이단에 들어간 사람의 상당수는 이단임을 알고도 들어가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른 교회에서 교회의 목사와 성도에게서 도저히 느낄 수 없는 따뜻한 사랑을 받기 때문에 그 사랑에 감복해서 들어가게 된다. 가짜 하나님, 거짓된 성경논리를 믿으면서도 그들의 사랑은 진짜 하나님을 믿고, 성령의 역사하는 교회에 다니면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상 사람들을 품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다시 한 번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교회가 세상에 대한 전도의 열정과 봉사의 수고가 뜨거워져야만 하겠다. 그렇지 않으면 이단들은 더욱 성장할 것이다. 셋째, 총회차원의 이단연구와 대응을 위한 상설기구가 있어야 한다. 총회적으로 이단에 대한 연구위원들이 매년 선정되기는 하지만 지속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지속적이고 일관적인 이단을 대응하도록 상설기구가 필요하다. 이단에 대한 연구와 대응이 아주 미미한 것은 이단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이단들은 막강한 자금력으로 이단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공권력인 법으로 방해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단에 대한 정보와 법적인 자료들은 한 개인과 작은 단체가 감당하기에는 역부족함을 느낀다. 교단 산하에 상설기구와 법적자문까지 갖추어준다면 이단에 대한 사역이 보다 쉽게 이루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터넷홍보를 통한 이단대응사역이 있다. 오늘날 가장 많은 정보의 통로는 당연 인터넷이다. 그래서 이단대응사역을 인터넷으로 한다면 훌륭한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넷의 가장 큰 특징은 멀티미디어라는 점이다. 기존의 텍스트 중심의 사고에서 멀티미디어 중심의 사고로 패러다임이 전환되어야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인터넷 이해와 활용이 가능하다. 멀티미디어에 의해서 어디에서 누구든지 영상, 음성, 문자와 같은 다양한 정보를 쌍방이 교환할 수 있다. 이러한 멀티미디어의 특징을 잘 이용하여 이단에 대한 정보 전달과 상담이 쉽게 가능하게 되었다. 이단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만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단에 대한 문제로 혼란을 겪지 않을 것이다. 참고문헌
(국내서) 김성주. “자칭 ”하나님의교회“의 이단성과 개혁신학적 비판” 석사학위청구논문.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2006. 권의석. “자칭 ”하나님의교회 안상홍집단에 대한 실천적 대응 방안” 석사학위청구논문.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2007. 박희석. 『안식일과 주일』. 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2. 이대복. 『이단종합연구』. 서울: 큰샘출판사, 2002. 이상철. “한국교회 이단에 대한 연구와 교리적 비판” 신학석사학위논문. 안양대학교 신학대학원, 2010. 탁명환. 『빛을 가리운 자들』. 서울: 국제종교문제연구소, 1991. 탁명환. 『한국의 신흥종교 기독교편』. 제4권. 서울: 국제종교문제연구소, 1987. 탁지일. 『이단』. 서울: 두란노서원, 2014.
(번역서) Bavinck, Herman. 『개혁교의학 개요』. 원광연 옮김. 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4. Berkhof, Louis. 『조직신학 상(上)』. 권수경?이상원 옮김. 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1. ______________. 『조직신학 하(下)』. 권수경?이상원 옮김. 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1.
‘하나님의교회’ 공식홈페이지 http://www.watv.org
각주)----------------- 1) 탁지일, 『이단』 (서울: 두란노서원, 2014), p. 102. 2) 위의 책, p. 102-103. 3) 탁지일, 앞에 책, p. 105-106. 4) 이대복, 『이단종합연구』 (서울: 큰샘출판사, 2002), p. 493-498. 5) p. 1. 참조. 6) 김성주, “자칭 하나님의교회의 이단성과 개혁신학적 비판”(석사학위청구논문,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2006), p. 33-53. 7) Louis Berkhof, 『조직신학 상(上)』 , 권수경?이상원 역(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1), p. 238. 8) 김주철,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나니』 (서울: 멜기세덱출판사), p. 243-244. 재인용. 9) Louis Berkhof, 앞에 책, p. 282-287. 10) Louis Berkhof, 『조직신학 하(下)』 , 권수경?이상원 역(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1), p. 588-589. 11) Herman Bavinck, 『개혁교의학 개요』 , 원광연 역(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4), p. 234-235. 12) Louis Berkhof, 앞에 책, p. 636-638. 13) R. J. Bauckham,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주의 날’,” 『목회와 신학』 통권 제 141호 (2001년 3월호): 120-125. 14) 박희석, 『안식일과 주일』 (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2), p. 578-599. 15) 박용규, “교회사를 통해서 본 안식일과 주일의 문제,” 『목회와 신학』 통권 제 141호 (2001년 3월호): 127-129. 16) Louis Berkhof, 앞에 책, p. 977. 17) 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교의신학 내세론』, 제7권(서울: 한국기독교교육연구원), p. 29-30. 18) 권의석, “하나님의교회 안상홍집단에 대한 실천적 대응 방안”(석사학위청구논문,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2007), p. 83-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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