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동의 마귀론 비판 | 운영자 | 2017-02-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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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동의 마귀론 비판(라요셉)
목 차
Ⅰ. 들어가는 말 / 1
Ⅱ. 베뢰아의 주장 / 1 1. 신약교회와 베뢰아 운동 / 1 1) 베뢰아운동이란 / 1 2. 베뢰아운동의 전개 / 2 3. 베뢰아운동의 이상 / 3 4. 베뢰아운동과 서울성락교회 / 3 5. 부흥과 핍박을 겸하여 받는 교회 / 5 6. 김기동의 설교 원리 / 6 1) 절대 실존주의: 세 영적 존재 / 6
Ⅲ. 김기동의 신학비판 / 8 1. 마귀론 / 8 2. 개신교 신학적 평가(루터와 깔뱅을 중심으로) / 12
Ⅳ. 나가는 말 / 12
참고문헌
Ⅰ. 들어가는 말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또 불택자의 영이 귀신이 된다고 믿고 있는 교역자도 많다.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귀신으로 돌아간다는 교리는 불교의 육도윤생의 교리에서 주장하는 것이다. 불교의 육도윤생의 교리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죽으면 그 순간 다시 다른 존재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6가지 존재로 윤회하면서 산다는 것이다. 그 6가지 존재는 인도(사람), 아수라(용), 축생(짐승), 천신, 아귀(악귀), 지옥이다. 이 과정에서 아귀(악귀)로 돌아가는 것이 곧 귀신이 된다는 원리이다. 이것은 기독교에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한국의 일부 목회자들도 귀신은 죽은 불신자의 영으로 불신자의 사후 존재라고 강력히 주장한다. 또한 어떤 목회자들은 사후의 영이 계속 귀신으로만 남아있는 것이 아니고, 자연 수명이 만수될 때까지 귀신으로 활동하다가 자연 수명이 만수되는 그는 무저갱으로 간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독교의 교리는 사람은 영과 육으로 조직되었고 죽음은 영과 육의 분리이며 육은 흙으로 돌아가고 영도 그 주신데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영은 심판을 받아 낙원이나 음부로 들어가면 부활 전에는 다시 세상에 나올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된다는 생각과 귀신은 불택자의 영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어디서 오는 것인가?1)
Ⅱ. 베뢰아의 주장 1. 신약교회와 베뢰아 운동 20세기 세계 교회는 사상 유래 없는 성장을 기록하였다. 그것은 오순절운동으로 대표되는 성령운동이 교회들에 준 영향이었다. 20세기의 성령운동 영향으로 인한 교회의 양적 부흥을 21세기에는 질적인 부흥을 모색하는 한편, 속히 오실 주님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항상 깨여 있어야 할 때이다. 여기 사도시대의 신앙관에 입각하여 하나님의 의도를 바탕으로 한 신본주의 신앙운동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베뢰아운동이다.
1) 베뢰아운동이란 신앙운동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신앙이 고양되어 계시된 성서의 약속대로 실천하려는 사람들의 의도적이고 헌신적인 행동이다. 예수께서는 부활하셔서 보좌에 계시고, 이 땅에서 이 신앙운동을 인도하는 분은 성령이시다. 신앙운동은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주하셔서 그들을 가르치시고 인도하시는 성령의 사역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의 신앙운동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하심에 온전히 순종하는 성도들이 예수를 증거 하여 회개케 함으로 영혼들을 구하는 운동이다. 베뢰아운동은 바로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다.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온전히 알고 순종하자는 것이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며 베뢰아운동이다. 베뢰아운동을 그 개념적으로 정리하자면 3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다. 첫째로 베뢰아운동은 성경 닮기 운동이다. 베뢰아 사람들이 가진 신사적인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또한 그런가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 중에는 믿는 자가 많았다고 한다. 성경닮기운동이란 성도는 성경의 약속을 믿어야하고, 성경의 믿음을 소유해야 하며, 성경의 능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성경으로의 복귀 운동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신다 약속하셨고(마 28:20), 우리가 예수가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할거라 예언하셨으니(요 14:12), 우리는 믿는 자에 따르는 표적으로(막 16:17-18)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어야 하는 사명이 있다(행 1:8). 둘째는 평신도운동이다. 평신도운동이란 성경에 근거한 평신도의 능력을 얼마든지 인정하고 평신도의 참여를 적극 유도한다. 성경 어디에도 ‘너희는 평신도이기에 이런 일을 하여서는 안된다’라는 내용이 없다. 오히려 보편적 능력의 공유를 강조하고 있고 이는 오직 믿음에서 온다고 하였다(마 17:17). 또한 회중의 자유를 인정해야하며 평신도들이 실제로 사역할 수 있도록 성경을 가르치며 능력을 행하여야 한다. 셋째는 바로 신약교회운동이다. 베뢰아운동이 당면한 과제는 교회의 개혁이다. 이 개혁은 인본주의와 신비주의에 대한 투쟁이라 볼 수 있다. 성경 말씀의 인본주의적 해석으로 인간본위로 말씀을 왜곡하여 하나님이 인간을 위하여 봉사하는 자로 전락시킨다. 이는 하나님을 절대적 창조주에서 인간의 보조적 위치로 격하시키는 행위로 능력의 역사를 훼방한다. 또한 신비주의는 이방종교에서의 능력이나 신비들을 하나님의 능력인양하며, 신비제일주의의 추구로 신자들에 나타나는 능력을 막고 있으며 신비에만 의존하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성경이 주장하는 믿음을 갖고 하나님의 의도(意圖)대로 성경을 아는 일은 우리 인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선물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이며 성령이 역사 하는 신약교회로 돌아가야 한다.
2. 베뢰아운동의 전개 베뢰아운동의 배경에는 김기동목사(이하 ‘시무언(視無言)’이라 칭함)의 캠퍼스 선교가 있었다. 그는 1964년 서울대 농대생들을 중심으로 전도한 후 여러 학생들을 지도하였는데, 권세 있게 말씀과 사도적 권능으로 귀신을 쫓는 시무언의 소문이 퍼지게 되었다. 시무언에게 성경을 배우고자 신학대학생 몇 명이 토요일마다 성락교회에 왔다. 이때가 1973년 5월로서 시무언은 토요일마다 자기의 신앙과 신학을 정기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몇 사람을 중심으로 성경공부를 시작하였는데, 그들에게 큰 변화를 주었고, 모두에게 능력이 나타남으로써 큰 이적을 행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토요 모임에 점점 사람이 많이 모여들자 1976년 5월부터 그 모임을 ‘베뢰아’라고 불렀다. ‘베뢰아’란 이름은 사도행전 17장 11, 12절에 나와 있는 대로 ‘성경을 상고하여 성경에서 믿음을 얻는 사람들이 되자’는 뜻에서 취한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대할 때에 신학적인 선입관이나 교리에 집착하지 않고, 성경을 보아야 한다는 뜻에서 이 이름을 붙인 것이다. 시무언은 베뢰아 성경공부를 시작하여 교회 양적 성장뿐만 아니라, 질적 성장을 도모하고 평신도운동과 지도자 양육의 기틀을 다졌다. 1978년 10월에는 베뢰아아카데미를 설립하고 김기동목사가 원장으로 취임하였다. 이 당시부터 ‘일반 연구과’와 ‘본 연구과’로 구분하여 모집하였다. 일반 연구과는 평신도 지도자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했고, 본 연구과는 목회자들이 들어와 연구하도록 구분하였다. 수업연한은 2년제 4학기였으며, 교육과정은 입문 과정으로서, ‘성경을 보는 안경’(1-2학기), 핵심과정인 ‘하나님의 의도(意圖)(3학기)’, 적용 및 실천과정인 ‘복음중재론(4학기)’등으로 구분하였다. 시무언이 지도목사로서 지도하던 서울대 음대기독학생회의 지도교수였던 한만영 교수는 1980년 3월에 설립된 베뢰아선교회 회장을 맡았다. 시무언은 목회자를 대상으로 베뢰아 아카데미 ‘본 연구과’를 강의하였고, 성락교회에 출석하던 한만영은 평신도를 대상으로 ‘일반연구과’를 강의하여 목회자 단독의 체제가 아닌 평신도 참여의 운동체제화 하였다. 베뢰아운동은 1978년 10월 ‘베뢰아 아카데미’를 설립한 후 베뢰아 강의를 통하여 평신도와 목회사역자들에게 퍼져 나아갔다. 이 운동은 성경을 바탕으로한 영감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을 깨닫고 소유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수강생들은 베뢰아 아카데미를 통하여 성경을 배웠다. 이들은 베뢰아 아카데미에서 강의를 들으며 성경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신약교회의 정신을 다짐하였다. 베뢰아 아카데미는 1980년 5월 제1기 수료를 시작으로 최근 2000년 29기 수료까지 총 7,029명이라는 많은 수의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를 낳았다. 시무언은 베뢰아 성경공부를 통하여 교회의 양적 성장뿐만 아니라 질적 성장을 도모하고 평신도 운동과 지도자 양육의 기틀을 다졌다. 목회자 혼자만 신앙과 신학을 독점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성육신적 차원에서 아낌없이 나누어주고 가르쳤던 것이다. 결국 교회 정착 단계에서 베뢰아운동은 착실하게 교회에 뿌리를 내리고, 교회가 성장하면서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베뢰아운동의 확산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베뢰아운동은 세계 속의 신앙운동으로 뻗어가고 있다. 많은 외국인들이 베뢰아운동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들은 베뢰아 아카데미를 수강하여 이 능력의 복음을 본국으로 가지고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전 세계에 증거 하고 있다.
3. 베뢰아운동의 이상 베뢰아운동의 이상이라는 것은 역사적인 의미에서 이 운동이 가진 의미와 운동이 추진하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베뢰아운동의 이상은 베뢰아운동이 기독교회사의 관점에서 지금까지의 신앙운동의 고귀한 정신을 존중하며, 무엇보다도 초대교회의 순수한 신앙정신과 성경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순수한 신앙의 열정에서 기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예수 이래 2,000년 동안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있지만 각자 그 자리에서 자신들이 처했던 환경에서 오직 순수한 믿음을 지키려고 고통스런 핍박을 참아내며 진리를 지킨 믿음의 선진들을 존경한다. 또한 나아가 지금 현재 우리 자신이 처한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며 속히 오실 주님에 대한 믿음을 견고히 하고 신약교회의 표본이 되길 원한다. 이런 의미에서 베뢰아운동의 이상을 3가지로 말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베뢰아운동은 신본주의에 의거하여 하나님의 의도를 밝힌다. 오늘날의 기독교는 교리와 교권의 중심이 되고 인본주의화 하여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구하기보다는 인간의 행복과 성공을 추구하는데 이용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우리 성도들이 의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째, 능력의 보편성을 증거 한다. 초대교회의 능력이 기독교 역사에서 사라졌고 대부분의 교파들에서 기독교교리는 성령의 역사를 제한하고 있다. 심지어 알타이저(Thomas J. Altizer) 같은 세속신학자들은 ‘신은 죽었다’라는 사신신학 이론을 외치며 ‘남에 대한 관심과 사랑의 퍼짐’만을 강조하기도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심을 믿는다. 셋째, 침례를 주고 제자를 삼는다.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다. 이 침례를 지키기 위하여 역사적으로 믿음의 사람들은 온갖 핍박을 견디며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왔다. 우리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에 따라 모든 족속에게 침례를 주고 제자를 삼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믿는다.
4. 베뢰아운동과 서울성락교회 베뢰아운동은 서울성락교회(“성락교회”에서 1996년 “21세기 선교 서울성락교회”로 개칭함)의 담임목사인 시무언이 본 운동의 주창자이기에 서울성락교회와 띄어서 생각할 수가 없다. 성락교회는 1969년 11월 30일에 설립되었다. 설립자 김기동목사(호 시무언(視無言): 이하 ‘시무언’이라 칭함)는 1938년 6월 25일 충남 서산에서 출생하여 예산에서 성장했으며, 1957년 10월 18일 오경린 목사(전 감리교감독회장)가 시무하는 예산감리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1958년 12월 15일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예산에서 조금 떨어진 비봉교회에서 평신도 목회를 시작하면서 목회의 길로 들어섰다. 1964년 봄 당시 장로교의 지도적 목사 중 한분이셨던 김치선 박사(대한신학교 설립자)의 권유로 대한신학교에 입학했다. 시무언은 1969년 11월에 신남동에서 ‘한국침례회연맹 성락교회’를 개척하였고, 2년 후인 1971년 7월에는 현재의 서울성락교회가 위치한 영등포구 신길동 355번지로 이전했다. 시무언은 평신도 시절부터 활발한 사역을 하였는데 1960년대와 70년대에 이르는 약 10년 동안 전국 천막 전도집회를 통해 수십만의 병자를 고치고 수백만의 영혼을 구원하였고 80년대 말부터 최근까지 대형 집회를 가져왔다. 매년 체육관, 학교 강당과 운동장, 야외 공연장 등에서 나라를 위한 구국성회, 전도집회 등을 열어 성락교회의 성장과 믿음을 나타내고 한국교회에 베뢰아운동을 소개하고 동참을 호소해 왔다. 베뢰아운동이 서울성락교회를 통하여 나타난 여러 현상 중 특징적인 것을 몇 가지만 나열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능력 전도 운동이다. 교회의 존속은 전도의 지속에 있다. 복음전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있는데, 이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다(고전 4:20). 그러나 현대 교회들은 능력은 부인한 채 말로만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고,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 계심을 능력으로 나타내기보다는 복음을 들음으로 마음의 평안을 다지고 있다.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부르셔서 제일 먼저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고(마 10:1),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12:28). 복음과 능력을 병행하여 예수를 증거하는 일은 모든 자들에게 허락하신 일이며(막 9:23), 주님께서 친히 부탁하신 일이다(마 28:18-20). 신약성서가 말하는 원리를 신사적으로 받아들여 전개하는 베뢰아운동의 전도방법은 당연히 주님이 부탁하신 능력전도이어야 하며 서울성락교회를 중심으로 오늘도 우리의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다. 둘째, 축사와 신유의 보편화이다. 병 고침과 귀신추방이 초대교회의 현저한 능력이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설교자로서 뿐만 아니라,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자로서 세상으로 나갔다. 더구나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항상복음 전파의 과정에서 행하여졌다는 점은 흥미 있는 사실이다. 귀신 추방의 현장을 통하여 보이지 아니하는 영적 존재를 실감케 하고 이방 신들과의 능력 대결에서 그들을 현저히 제압하며, 하나님의 현존을 체험케 할 수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옷자락이라도 만지면 병이 나았던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이 관념이나 환상이 아니고, 체험이어야 한다. 이 그리스도의 현재성인 신유가 복음의 확실한 중재가 될 수 있고,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능력이다. 신약교회의 성도는 이러한 능력은 소유한자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경의 내용을 그대로 믿고 따르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서울성락교회의 경우 평신도의 이런 능력의 보편화는 보통 새신자 교육시 나타나기도 한다. 셋째, 성경 닮기 운동이다.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행 5:42)라는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초대교회는 성경을 가르치므로 성경닮기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성경닮기운동은 예수 닮기 운동이며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가자는 운동이다. 특히 신약교회가 회중주의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성경닮기운동은 평신도의 능력을 회복시키는 운동이다. 평신도는 신약교회운동의 본체이기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능력 있는 삶을 살아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어야 한다. 성경닮기운동으로 서울성락교회는 매년 초 실시되는 성경1독 운동과 매주 월요일 실시되는 “성닮 세미나”가 있는데, 이 중 “성닮 세미나”는 최근 시무언의 직강으로 이루어져 성경말씀에 갈급해 하는 사역자와 평신도들의 요구에 부응하고 있다. 또한 전도의 사역화 방안으로 “10명 운동”을 펼치고 있다. 베뢰아운동으로 인하여 평신도들에게도 그 권능이 충분히 임하고, 이를 실제로 체험하고 있는 서울성락교회 성도는 각 성도 개인 개인이 충분히 구역장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판단하에 이 “10명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는 각 성도마다 하나의 구역장 또는 셀장의 개념으로 10명의 제자를 양성하는 것이다. 신약교회의 말씀의 능력을 지닌 성도들에게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일이라 시무언은 판단하여 2002년부터는 대대적으로 이 운동을 전개할 방침이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앞두고 최종적으로 그 곳에 의인 10명이라도 있으면 멸망치 않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냈다. 시무언도 처음 교회를 개척할 시에 “내게 10명을 주시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하여 영혼들을 수확하였다고 한다. 이 소중한 경험을 시무언은 각각 성도 개인이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매일 전도를 생활화함으로 각 성도들의 영성이 목회자와 같은 수준에 이르기를 원한 것이다.
5. 부흥과 핍박을 겸하여 받는 교회 초대교회는 로마정부로부터 극악한 핍박을 받았으나, 성도들의 목숨을 건전도로 교세는 확장되어간다. 베뢰아운동을 기반으로 서울성락교회는 폭팔적인 성장을 하였다. 시무언의 성령 충만한 설교와 뜨거운 영혼 구령에 힘입어1986년 7월에 장년교인 재적수가 3만 명을 돌파하여 세계 20대 교회 안에 들게 되었다. 이 같은 경이로운 교회성장은 세계적으로 주목과 인정을 받아1987년 5월 미국 사우스 웨스트 침례대학교에서 “김기동 교회성장학 석좌”를 설립하고 시무언을 특임교수 및 국제이사로 위촉하기에 이른다. 이어 1988년 3월 동교 국제대형교회연구소가 주최한 교회성장 세미나가 시무언과 존 번(John N. Vaughan)교수를 주강사로 하여 미국 스프링필드에서 열렸다. 이 세미나에서는 미국 내에서 출석교인 3천명이상인 미국 교회의 지도자들 20여 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서울성락교회의 성장은 북미(North America)의 가장 빠른 교회성장과 비교해 볼 때 2배의 속도이며, 미국의 17개 성장교회들과 비교하면 5배이상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매주일 1,000명 이상의 아동이 예배에 참석하고 있으며, 그들 중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인원은 침례를 받았다. 1992년 12월에는 넘쳐나는 성도들을 주일 설교에 수용하기 어려워 새 성전을 준공하고 입당하는데 본당의 좌석이 6,000명 규모이다. 현재 본당에서 주일예배는 5차례에 나누어 드리고 있고, 각 교육관에서도 위성중계로 동시에 예배를 드림으로 전국에 있는 수많은 성도들이 예배에 성공하도록 하고있다. 그러나 교회가 부흥과 찬사만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이 신약교회의 공통점이다. 서울성락교회는 1980년대 초부터 『현대종교』를 통하여 베뢰아 귀신론에 대한 이단 시비가 제기되어, 이러한 비난에 일일이 대응하기 보다는 교권주의에서 탈피하여 진실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약교회적 신앙운동을 자유로히 펼치고자 1987년 9월 교단을 탈퇴한다. 그리고 베뢰아운동을 기반으로 서울성락교회는 세계 선교를 향하여 “기독교남침례회”를 결성하였고, 1994년 교단명칭을 ‘기독교한국침례회(연맹)’으로 변경하였다. 이 교단설립의 정신을 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그의 제자들에게 직접 가르치시고 분부하신 모든 말씀을 성령의 감동을 받아 순종하여 실천하고, 또한 사도행전 17:11-12에 보여 준 베뢰아 사람들의 정신을 본받아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목회와 교회성장을 위하여 부흥운동을 자유롭게 하는 개교회 중심인 신약교회를 세운다.
그래서 베뢰아운동을 기반으로 하는 신약교회운동에 뜻을 같이하는 회원교회들이 속속 가입하여 2001년 12월 현재 총교회수는 국내 133교회와 해외 19교회를 포함 모두 152교회가 동참하고 있다. 이중 59교회는 서울과 경기지역에 분포해 있다. 현재 기독교한국침례회(연맹)에 속한 교회와 성도의 규모는 전체적으로 보아 아직 미미한 규모이지만 신약교회운동의 중심교단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2)
6. 김기동의 설교 원리 김기동 신학의 다른 이름인 ‘하나님의 의도’는 김기동의 신앙과 신학의 원천이다. 그리고 그의 설교 또한 하나님의 의도 안에서 발현된다. 그것은 영적 존재 중심의 설교요, 복음과 능력의 보편성을 증거하는 설교요, 말씀의 현재성을 입증하는 설교다. 그리고 이러한 세 가지 차원의 특징은 절대 실존의 원리, 절대 보편의 원리, 절대 체험의 원리라는 용어로도 설명될 수 있다.
1) 절대 실존주의: 세 영적 존재 김기동의 설교의 바탕을 이루는 제1 원리는 영적 존재, 영적 실체에 대한 철저한 인정이다. 그에게 있어 성경은 결코 인간이 만들어낸 공교한 이야기나 신화가 아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이나 ‘역사적’ 예수와, 영혼을 지닌 영적 존재로서의 사람이 실존인 것처럼 성경의 영적 존재들은 모두 실재하는 존재이며 각각이 실상이다. 예컨대 성경에 나오는 천사나 귀신은 실재한다. 그것은 틸리히 류의 ‘철학적 관념적 실존’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주의 신학자가 보는 것처럼 ‘신비주의의 산물’이 아니며 불트만식의 ‘신화적 세계관’의 산물이 아니라 실재하는 영적 존재이다. 김기동은 이러한 성경의 영적 존재의 실체를 그대로 인정하며 그 활동을 체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김기동의 ‘하나님의 의도’에 의하면 이러한 영적 존재의 활동 영역과 관련한 세 공간으로서는 하나님이 계시는 셋째 하늘과, 공중 권세 잡은 자 마귀가 득세하는 둘째 하늘, 그리고 인간이 활동하는 첫째 하늘을 말할 수 있으며, 그 각각의 하늘에서 성취되는 하나님의 대역사는 아들의 보좌 상속과 마귀 진멸, 인간 구원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김기동에 의하면 성경의 영적 존재는 아래와 같이 세 영적 존재로 구분할 수 있다: a) 하나님(성부, 성자, 성령) b) 천사 a. 의의 천사: 여호와의 사자, 천사장, 일반 천사 b. 타락한 천사: 타락한 천사장 사단(마귀), 타락한 천사들(악령), 미혹의 영 (혹은 하나님이 부리시는 악신) c) 인간 a. 성도 b. 불신자/ 귀신 여기서 보듯 세 영적 존재 가운데 천사의 자리가 확고하다. 이에 대해 윤준호는 성경에는 엄연히 존재하고 나름의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으나 그간 무시돼 온 ‘실존으로서의 천사’의 발견을, 김기동 신학에서 이루어낸 ‘해석학의 잃어버린 연결고리’의 발견이라 말한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구약학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역을 그 동안 하나님과 인간이라는 두 존재의 단선적 상호 작용만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는데 ‘천사’라는 원래의 한축이 제자리를 찾음으로써 구약학 본문의 입체적이고 생생한 이해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영적 실존이 김기동의 설교에서 거의 언제나 언급되고 있다는데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는 세 영적 존재를 실재하는 ‘실존’으로서 뿐 아니라 그것들의 영적인 활동을 소상히 들여다보고 하는듯한 설교를 한다. 그 범위에 있어서도 신구약성경을 넘나들며 거침없이 증거 한다. 그의 설교의 특장은 ‘성경에 있는 그대로’라는데 있다. 김기동의 실존적 설교는 인간이 ‘연구’하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의도에서 발원 한다는 데서 독특하다. 이러한 특성은 그동안 성경의 난제들로 취급되어온 여러 가지 의문에 ‘명쾌하게’ 답하는 장점이 있다. 예컨대 김기동의 ‘미혹의 영’에 관한 설교가 그것이다. 그는 예레미야 6장 19절에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법을 버렸음이라”의 본문을 통해서 ‘생각’에 주목한다. 곧 인간이 무엇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엄청난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이것을 디모데전서 4장 1-2절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는 말씀과 연결시켜서 이해한다. 이런 본문들로부터 거짓말이 생각에서부터 나온다고 하며, 생각이 자꾸 거짓을 만들어 간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런 본문들 외에 많은 성경 본문을 가지고 미혹의 영의 존재에 대해 증거 한다. 그리고 김기동은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관계에 대해서도 조명한다. 그는 일반적으로 혼동되고 있는 미혹의 영, 악령, 귀신의 존재를 명확히 구분하면서, 미혹의 영은 귀신과 다르고, 또 하늘에서 쫓겨 내려온 사단과도 다르다고 말한다. 이 미혹의 영은 하나님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를 도우라고 보내신 천사(히 12:14)가 성도의 불의로 변해 버린 존재라고 한다(왕상22:19-23). 그런데 이 미혹의 영이 귀신이 사람 몸에 들어오는 통로 역할을해 준다는 것이다:
귀신과 미혹의 영을 구체적으로 알면 신앙 생활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미혹의 영은 귀신과는 다릅니다. 또 미혹의 영은 하늘에서 쫓겨난 사단과도 다릅니다.… 그러나 미혹의 영은 사단과 함께 쫓겨 내려온 영들과는 다릅니다.… 이렇게 자기 천사가 타락한 것을 미혹의 영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도우라고 보내신 천사가 성도의 불의로 변해 버린 것입니다. 미혹의 영은 성도 곁에서 그 사람을 괴롭힙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귀신을 쫓았는데 언제 들어 왔느냐고 꾸짖으면 ‘놀랄 때 들어 왔다, 십일조 도둑질할 때 들어 왔다,’는 식으로 어떤 환경적인 원인을 말합니다. 이때 놀라게 하고 혈기 나게 하며 거짓말하게 한 존재가 있는데 이들이 바로 미혹의 영입니다. 미혹의 영이 귀신이 들어올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 준 것입니다. 구원 얻은 후사들을 도우라고 보내 주신 천사가 변질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사야 66장 3-4절에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고 어린양으로 제사 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으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나도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며 주며 그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청종하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 악을 행하며 나의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했습니다. 생각을 잘못 먹을 때 하나님은 가증히 여기셔서 유혹을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거짓말을 되풀이하면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셔서 천사를 변질시켜 거짓말하는 영이 되게 하십니다.
이러한 미혹의 영을 통해서 김기동은 하나님의 성품인 공의와 자비를 설교 한다. 곧 하나님은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시지만, 성도의 행위가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스러울 때는 ‘미혹을 역사하기도 하시는’(살후 2:11, 롬 1:28)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김기동에 따르면 성도를 돕는 천사와 그것의 변질인 미혹의 영, 귀신 등 성경에 나타난 영적 존재는 확실한 실존이며 성도는 현실적으로 그 영향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 성경이 말하고 있는 모든 영적 존재가 실존한다는 바탕 하에 그의 모든 설교가 행해지고 있다. 따라서 그의 설교에는 소위 ‘영해’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성경이 말하는 모든 존재는 엄연한 실재이며 성경이 말하는 모든 사건은 실상이기에 굳이 비유나 제2의 영적인 해석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혹자는 창세기의 일부를 신화로 취급하거나, 성경의 이적을 영해로 변질시키고자 하지만, 김기동의 설교에서는 성경의 모든 말씀이 살아 있고, 사실이며, 모든 영적 존재가 실제로 활동한다.3)
Ⅲ. 김기동의 신학비판 한국교회의 귀신론에 관해서는 베뢰아의 김기동 목사의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또한 베뢰아에 관해서는 삼위일체, 창조론, 인간론, 구원론, 교회론, 계시론, 종말론 등에서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특히 본고는 마귀론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김기동 목사의 베뢰아는 1973년 초부터 가르치기 시작하여 토요일마다 가르치다가, 1976년 5월부터 “베뢰아”라고 부르면서, 동연 10월경에는 “베뢰아 아카데미”를 설립하였다. 이것의 영향으로 현재 부활의 교회 한만영의 “그레이스 아카데미”, “한국 예루살렘교회”의 이초석, 이명법의 “레마 선교회”, 그리고 유광수의 “다락방” 또한 베뢰아의 신학적 유사점 때문에 많은 논란이 되고 있다. 그들은 말하기를, 이 세상에는 악한 귀신들이 가득 차서 선량한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유혹과 질병을 일으키고 있으며 그런 귀신들의 활동 영역은 신자와 불신자를 가리지 않으며 또 그런 귀신들의 정체는 예수를 믿지 않은 불신자의 영혼이라는 주장을 펴고 잇다. 그래서 훈련받은 축신술사들은 병 걸린 사람에게 붙어 잇는 구신을 추방하기 위해 예수의 이름을 외치며 그 귀신의 정체를 파악해서 추방함으로써 모든 질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4)
1. 마귀론 김기동 목사와 베뢰아 아카데미는 1987년에 기독교한국침례회로부터 정식으로 이단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그해 11월 9일 김기동은 성락교회에서 (한국)기독남침례회 총회라는 교단을 창립하고, 베뢰아 연구과정을 중심으로 한 철저한 개교회주의를 표방하였다. 이에 기침측은 11월 16일 임원회를 열어 김기동의 ‘귀신론’과 ‘창조론’등의 주장을 이단으로 단정 하였다. 예장 합동측에서는 1989년 제74회 총회 때에 김기동을 ‘근본적으로 이단인바 시비할 가치조차 없다’라고 표현하였다. 김기동의 ‘마귀론’은 그의 저서 마귀론 상(마귀란?), 중(미혹의 영이란?), 하(귀신이란?)의 세 권에 나뉘어져 비교적 체계화되어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그 내용자체가 김기동 자신이 25년 간에 걸쳐 약 40여만 명의 귀신들린 자들에게서 축사하면서 경험하였던 것들을 현상적으로 정리한 것이기에, 성경적이라기 보다는 비성경적인 부분이 많고, 또 논리성도 결여하지만 얼핏 들으면 그럴 듯하나 계속해서 앞뒤를 비교하면서 분석하다 보면 전혀 황당무개하여 앞뒤가 맞지 않으며, 또 어떤 단어나 개념을 설정할 때에 전혀 이치에 맞지 않게 용어를 정의하는 등 비논리 투성이다. 김기동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이 사단박멸을 위함이시라고 주장함으로써 하나님의 넓으신 사역을 제한된 틀 속으로 한정 귀속시킨다. 김기동은 창조의 목적을 사단박멸이라고 보면서 둘째 날 하나님께서 마귀를 가두어 놓을 장소로서 궁창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이 둘째 날의 궁창창조에 대해서만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씀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논리는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따지면 창세기 1:1의 창조에 대하여도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씀이 없고, 또 1:27-28의 인간창조에도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씀이 없는데, 이 사실들은 과연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창세기 1:31에서는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셨고 또 완전하게 창조하셨다. 또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사랑하신다. 이 세상을 그토록이나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다(요 3:16). 이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다. 궁창은 마귀가 거하는 형무소가 아니다. 에베소서 2:2에서의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그렇게 해석하면 억지가 된다. 에베소서 2:2에서의 ‘공중’과 ‘권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하는 점에 있어서 신학자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음은 사실이지만 정통적인 견해를 가진 학자들 중에서 그 누구도 ‘공중’을 마귀가 갇혀진 형무소라고 보지는 않는다. 김기동은 창세기 1:27과 2:7의 사람과 아담이 다르다고 본다. 1:27의 경우에는 몸과 혼으로 이루어진 인격일 뿐이요 단지 동물의 자웅을 칭하는 용어인데 반하여, 2:7-8의 경우에는 몸과 혼의에 영을 받아 수많은 사람 중에서 뽑힌 개화된 인간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문제의 보다 확실한 판단을 위하여 창세기 2:4의 말씀을 정확히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즉 창세기 2:4의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라는 말씀에서 ‘천지와 창조된 대략’ 이라는 말씀은 1장과 다른 창조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1장에서 이미 서술한 천지창조를 이번에는 인간창조를 중심으로 해서 다시 구체적으로 설명하려고 하는 표현이다. 이는 기독교 정통적인 해석인바 더 이상의 논란의 여지가 없는 본문인 것이다. 김기동의 삼위일체론은 양태론적 삼위일체론이다. “하나님이 곧 성령이십니다. 성령이 예수 안에 있을 때 아버지가 되십니다. 아버지가 성도 안에 있으면 성령이 되십니다. 삼위는 각각 개체의 인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장소에 따라 불려지는 이름이 다릅니다. 이는 곧 세모꼴을 어디서 보나 하나인 것과 같습니다. 서로 각각 인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인격은 오직 하나입니다. 각각 개체의 인격으로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 얼굴을 보는 방향에서 다르듯이 말입니다. 하나님과 성령이 따로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성령님이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는 자기가 자기 안에 있는 아버지에게 기도한 것입니다.” 그는 비록 삼위일체라는 용어는 사용하고 있으나 삼위일체에 대한 바른 이해를 결여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김기동이 특히 즐겨 인용하는 성경구절들 중의 하나는 요한 일서 3장 8절 말씀이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게 하심이니라”(요일 3:8)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첫째 하늘에서 하나님을 배신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은 원수를 심판하여 멸하고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려 하는 것 입니다”라고 창조의 목적과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목적을 마귀박멸에 두고자 한다. 우선순위의 문제를 굳이 말하자면 그렇다. 영생 즉 구원이 우선이지 마귀박멸이 우선이 아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하나님과 대등한 위치에 설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귀는 사실 그 박멸을 첫째 목적으로써 우선시해야 할 만큼 대단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하나님의 주된 관심은 결단코 마귀박멸에 있지 않고 인류구원에 있다. 그리고 그 구원받은 인간들을 통하여 당신의 찬송을 부르게 하시려는 데에 있다. 물론 그 구원의 과정 중에서 마귀박멸이 부차적인 목적으로 자연스럽게 따라 나와질 수는 있다. 부차적인 목적이기에 마귀박멸은 성경에서 주된 관심사항이 아니고, 또 그렇기에 성경은 천사나 마귀 또는 귀신의 언급을 최대한도로 자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귀론’이라는 주제는 우선시되거나 또는 정식으로 설정되어질 필요가 없는 주제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김기동은 말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실제 그 내용에 있어서는 제3위이신 성령하나님의 사역을 부인하고 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거의 모든 ‘하나님의 신’은 천사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임의적으로 해석하며, 또 신약성경의 오순절 사건도 성령이 아니라 천사들이 임한 것으로 마음대로 주장한다. “창세기 1장 2절에서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고 할 때 이것을 하나님이 움직이신 다거나 성령이 움직이신다는 뜻으로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오해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어디에나 충만하기에 운행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신’이라는 말에 주의하여야 합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신’이라 할 때는 보통 천사들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기에 하나님의 신이 운행한다는 말은 곧 천사들이 지킨다는 뜻입니다.” 김기동은 성령과 천사를 혼동한다. 신앙생활에 성공할 수 있는 관건은 많은 수의 천사확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 충만을 얼마나 더 충만 하게 받을 수 있는가 하는 데에 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 더 좋겠는가? 피조물인 천사들을 더 많이 확보하는 것이 더 좋겠는가? 권능은 성령에게서 나오는 것이지 천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천사는 다만 옆에서 도와 줄 수 있을 뿐이다. 미혹의 영이란, 성도를 섬기라고 보냄을 받은 천사들이 변질되었을 때에 성도들과 또는 삶들의 주변을 배회하면서 귀신이 침범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고 도덕적으로나 신앙적으로 타락하도록 미혹하는 영들이다. 귀신이란, 사람의 육체에 직접적으로 침입하여 병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저주의 신이 되기도 하는 불신자의 사후 존재들을 말한다.” 그런데 김기동의 마귀론 중에서 이 ‘미혹의 영’부분은 특히 김기동의 이론이 바른 신학에 서지 못하고 그가 미혹의 영에 의하여 미혹되고 있음을 쉽게 확증시켜 주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도무지 논리가 없고 황당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신자의 사후 존재가 귀신이다’라고 하는 귀신에 대한 그의 주장은 비록 억지이기는 하나 그의 주장대로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영’ 에 대한 주장은 도무지 이론이 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또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단지 헛된 가설일 따름이요 증명될 수도, 체계화 할 수도 없는 허무맹랑한 억지주장이기 때문이다. 한때 김기동과 입장을 같이 하였던 그레이스 선교회의 한만 영도 김기동의 마귀론을 현재에도 거의 대부분 수용하고 있기는 하나, 이 ‘미혹의 영’에 대한 부분과 ‘이중 아담론’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한다고 분명하게 선언하고 나섰다. 즉 한만영은 ‘베뢰아 이단론에 대한 그레이스의 신학적 입장’이라는 작은 팜플렛에서, “우리는 미혹의 영이 ‘자기 천사의 타락한 상태’라는 주장을 설득력이 약한 설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혹의 영을 자기 천사의 타락으로 보기 보다는, 별도의 악한 영적 존재로 본다”라고 김기동의 주장이 틀렸음을 정식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미혹의 영’이라는 헛된 가설에 의하여 근거되고 있는 김기동의 귀신에 대한 경험적, 현상적 정의 자체도 미혹된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김기동은 자신의 25년간의 축사경험을 중시하면서 ‘불신자의 사후 영이 귀신이 된다고 주장한다. 김기동은 헬라인들이 일반적으로 믿고 있었던 ‘죽은 자의 영이 귀신’이라는 헬라 사상에서 ‘죽은 자’라는 표현을 ‘불신자’라는 표현으로 바꾸어서 이것을 자기의 주장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김기동의 주장은 헬라의 이방인들에 기독교인들 중에서는 그 누구도 지지하지 않았던 견해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비성경적인 견해이다. 김기동은 이 우주가 곧 음부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우주 곧 음부 안에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도 포함되고 무저갱도 포함된 다고 주장하며, 또 천당과 낙원이 다르고 음부와 지옥도 다르다 고 주장한다. 이 우주는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창조하신 곳이지 결코 음부가 아니다. 그리고 사람(불신자)의 영이 귀신이 되어 세상을 떠돈다는 주장은 헬라 사상과 전래적인 정령숭배 사상에서 나온 미신일 뿐이지 결코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또한 성경은 천국과 낙원을 구분하지 않으며, 또 음부와 지옥도 굳이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한 구분은 마치 카톨릭의 연옥사상과 흡사한 점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사람이 죽으면 신자건 불신자건 간에 육체를 떠나 영혼이 신자는 즉시 낙원 곧 천국으로, 불신자는 음부 곧 지옥으로 들어가서 다가올 심판의 날을 기다리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을 뿐 불신자의 영이 귀신이 되어 세상을 떠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김기동은 그의 강의 테이프에서 주장하기를 성서는 얼마든지 가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그는 성경 66권을 성경과 성서로 구분하면서 성경은 모세오경과 공관복음서의 8권들 뿐 으로서 이는 결코 가감할 수 없으나, 나머지 58권의 책들은 성경이 아닌 성서로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증인들이 시인하고 지지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는 얼마든지 가감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권위를 약화시키는 이런 주장은 비단 개혁주의뿐만 아니라 전체 기독교회의 성경관에서도 전혀 거리가 멀다. 특히 ‘우리의 설교집과 간증들도 성서 같은 것이 될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바로 자신의 설교집과 간증들이 성서적인 가치를 가진다는 의미가 아니고 또 무엇이란 말인가? 이는 분명한 이단적 견해요 또 자기교만이다. 김기동 그가 이단인 이유를 요약적으로 다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창조론에서 그는 창조의 목적에 대하여 그릇되게 주장하고 있고, 둘째 날의 궁창 창조에 대하여 마귀를 가두어 놓을 장소라고 잘못 파악하고 있으며, 이중 인간창조설을 헛되이 견지하고 있다. 둘째, 삼위일체론에서 그는 양태론을 견지하고 있다. 셋째, 기독론에서 그는 성육신의 목적에 대하여 그릇되게 주장하고 있고, 그리스도의 온전하신 신성을 부인하고 있으며 또 인성을 제한하고 있다. 넷째, 성령론에서 그는 제3위 하나님이신 성령을 허수아비화 하고 있다. 다섯째, 천사론에서 그는 천사를 성령과 흔동하고 있고 또 권능과도 혼동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미혹의 영’을 ‘가변된 천사’라고 잘못 주장하고 있다. 여섯째, 내세론에서 그는 ‘불신자의 사후 영이 귀신이 된다’라고 그릇되이 주장하고 있고, 또 이 우주를 곧 음부라고 잘못 믿고 있다. 일곱째, 귀신론에서 그는 ‘모든 질병과 사고의 원인은 귀신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덟째, 성경관에서 그는 성경과 성서를 인위적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성경의 권위를 의도적으로 약화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이상과 같이 볼 때에 조직신학의 전 영역에 걸쳐서 그가 자기의 고집을 버리지 아니하고 그릇된 주장을 계속 하고 있으므로, 김기동 그는 이단이다.5)
2. 개신교 신학적 평가(루터와 깔뱅을 중심으로)6) 한국교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마귀론이 심각하고 뜨거운 주제로서 그것의 연구가 사실상 목회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학문 분야의 연구가 더욱 요청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요청에 부응하는 반가운 연구들이 최근에 나오고 있다. 『한국교회 신학자들이 본 마귀론 이해』가 그것이다. 그 책에서 이오갑 교수는 전통 신학의 관점에서 마귀론을 다루고 있는데 특히 루터와 깔뱅의 마귀론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이 교수의 연구 논문을 중심으로 김기동의 마귀론을 개신교적 전통신학의 입장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루터와 깔뱅의 마귀론을 언급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들이 마귀에 관해 언급했다는 이상으로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 차지하는 역사적이 정신적인 위상에 관계된다”고 하는 이교수의 주장은 전적으로 타당하다고 본다. 이 교수에 따르면 루터와 깔뱅의 마귀론은 지극히 성서와 신학의 전통적인 교리에 근거하고 있다. 그래서 루터와 깔뱅의 마귀론은 현재 한국의 개신교에서 수용해도 될 정도로 복음적이다. 그런 루터와 깔뱅의 마귀론과 김기동 이론의 주요한 면을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루터와 깔뱅 역시 정신병이나 각종 질병의 원인에 마귀가 개입해있다는 사상을 갖고 있다. 그 점도 특히 루터에게서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모든 질병의 원인이 된다는 점만을 부각시키지는 않았으며, 마귀가 인간을 괴롭히고 파멸로 몰고 가기 위해 행하는 수많은 행위들 중 하나일 뿐이며, 루터나 깔뱅은 병든 자를 고치기 위한 축사 행위에 관심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루터는 마귀를 쫓는 행위에 있어 주술적인 방법에 대해 강한 비판을 하였는데, 김기동이 목회현장에서 축사하는 형태가 바로 부터의 비판의 대상이 될 것이다. 둘째, 루터와 깔뱅은 마귀의 기원을 천사의 타락에서 비롯되었고, 귀신들은 마귀의 수하에 있는 세력으로 간주하였다. 그리고 불신자 사후 영이란 것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불신자 사후 영”설은 전통 신학적 관점에서는 그 근거가 미약하다고 한다. 셋째, 루터와 깔뱅은 마귀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성경을 토대로 했다. 주요한 개념과 성격을 성서로부터 가져왔고, 또 성경이 침묵하는 문제에 대해서 논하기를 삼갔다. 마귀에 대한 깊고 심오한 지식이나 이론이 문제가 아니라, 성서가 알려주고 시시해주는 것으로 충분했다는 것이다. 반면에 김기동이 주장하는 마귀론은 성서가 가르쳐 주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감정적이다. 그러나 마귀에 대한 지나친 사색과 사변적 논의보다는 오히려 성서에 주어진, 단순한, 혹은 소박한, 그러나 우리의 신앙과 구원에 있어서 충분한 지식을 토대로 마귀와 싸우는 신앙과 삶이 중요한 것이다.
Ⅳ. 나가는 말 베뢰아 아카데미는 이단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김기동씨의 주장 중 분명히 ‘이단’이라고 규정지을 만한 몇 가지 근거를 보다 분명히 살펴보자. 첫째, 성경의 완전성을 부인한다. 그는 ‘현재 성경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다 알지 못하며, 성경을 초월하는 성령을 통하여 더 깊이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성경의 완전성을 부인하니 ‘이단’이다. 둘째, 지금도 계속적인 계시와 영감을 주장한다. 김기동씨는 성령님의 직접적인 계시가 성경을 초월하여 지금도 우리에게 주어지고, 또한 자신의 저서가 성령의 깊은 감동으로 해산된 것이라고 주장하니 이 또한 ‘이단’이다. 셋째, 김기동씨의 삼위일체론은 양태론적 일신론이다. 이 이론의 주창자인 Sabellius가 ‘이단’이 된 것 같이, 주후 325년 니케아 회의에서 이 견해를 주장한 Arius를 ‘이단’으로 정죄한 것 같이, Servetus가 칼빈의 종교 개혁시 이 양태론을 주장하여 ‘이단’으로 정죄된 것과 같이 이 이론을 주장하는 김기동씨 역시 ‘이단’임이 분명하다. 넷째, 김기동씨는 성령님의 ‘구원사역’을 부인하며 성령님을 단지 ‘능력’으로만 이해한다. 그의 결정적인 ‘이단’의 요소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성령님의 ‘구원사역’을 전혀 부정하며 더 나아가 ‘여호와의 증인’의 주장과 같이 제 3위이신 성령 하나님을 ‘능력’으로만 이해하니 하나님을 망령되이 하고 있다. 이상 네 가지의 분명한 교리적인 근거에 의해 김기동씨의 베뢰아 아카데미 신학 사상은 기독교의 이름은 가지고 있지만 기독교의 본질과는 전혀 다른 ‘이단’임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 이단 운동은 교회 주변에 항상 있어 왔다. 그러므로 이단의 역사는 교회의 역사만큼 길다. 그 이단들의 명칭과 모양들은 비록 다르나 복음의 핵심에 도전하여 교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은 늘 있어 왔다. 각 이단의 배경이 다르고 또 얼핏 주장이 다르다 할지라도 복음에 대한 절대성은 항상 다를 바 없이 나타났다. 그들이 혹 복음의 일부를 시인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그들의 주장을 더욱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성경을 이용하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김기동씨의 주장이 특히 그렇다. 성경을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자기의 주장과 사상을 합리화시키기 위하여 성경을 교묘한 방법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에 우리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단들의 도전 앞에서 성급한 응전을 서두르지 전에 우리 교회는 진지한 자아 반성과 영적인 재고 검사를 하여 우리의 신앙생활의 좌표를 새롭게 설정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의 믿는바 신앙 고백을 다시 한번 철저하게 다짐하여 그들의 열심과 헌신적 봉사를 훨씬 능가하는 신앙적 훈련과 교육적 노력을 지교회적으로 경주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김기동씨를 정죄하기 이전에 우리의 신앙을 반추해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모두 겸손히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특히 교역자들의 자질이 한층 더 요구되는 이 역사적 상황 속에서 말씀을 맡은 사역자들은 이 한국 교회의 신학적 혼란과 교파 분열에 대한 철저한 하나님 앞에서의 회개가 먼저 있어야 될 것이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호 4:6)라는 호세아 선지자의 외침이 오늘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커다란 깨우침으로 받아드려지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성도가 성도다워지고 교회가 교회다워질 때 이 세대와 오는 세대에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진실되게 증거 될 것이다.7)
참고문헌
김 연. “金基東 魔鬼論의 批判的 硏究” 신학대학부 논문. 그리스도신학대학원, 1998. 송기찬. “성경적 마귀론.” 목회학석사학위 논문. 안양대학교, 1997. 심창섭 외 3인. 『기독교의 이단들』. 서울: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1997. 신환중. “시무언 김기동의 설교연구.” 목회학석사학위 논문. 베뢰아국제대학원대학교, 2008. 이병선. “신약교회 운동에 대한 역사적 고찰과 베뢰아운동.” 목회학석사학위 논문. 베뢰아대학원대학교, 2001. 정해원. “개혁주의 입장에선 본 김기동씨의 베뢰아신학” 목회학석사학위 논문. 대한신학교, 1987. 황근배. “한국사를 통해 본 기독교 이단 활동 및 그 영향에 대한 연구.” 목회학석사학위 논문. 칼빈대학교신학대학원, 2004.
각주)----------------- 1) 송기찬, “성경적 마귀론” (목회학석사학위 논문, 안양대학교 신학대학원, 1997), p. 96. 2) 이병선, “신약교회 운동에 대한 역사적 고찰과 베뢰아운동” (목회학석사학위 논문, 베뢰아대학원대학교, 2001), p. 87-98. 3) 신환중, “시무언 김기동의 설교연구” (목회학석사학위 논문, 베뢰아국제대학원대학교, 2008), p, 33-37. 4) 황근배, “한국사를 통해 본 기독교 이단 활동 및 그 영향에 대한 연구” (목회학석사학위 논문, 칼빈대학교신학대학원, 2004), 41-42. 5) 심창섭 외 3인, 『기독교의 이단들』, (서울: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1997), 225-256. 6) 김연, “金基東 魔鬼論의 批判的 硏究”(신학대학부 논문, 그리스도신학대학원, 1998), 49-50. 7) 정해원, “개혁주의 입장에선 본 김기동씨의 베뢰아신학” (목회학석사학위 논문, 대한신학교, 1987), p. 39-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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