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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1 11 <기쁨으로 십일조 하기>
이정현 목사 2026-01-11 추천 0 댓글 0 조회 75
[성경본문] 마태복음23:23 개역개정

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6114일 마 23:23 감사함으로 십일조 하기

 

올해의 표어에 따른 실천 사항 두 번째가 감사함으로 십일조 하기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주제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십일조(마아세르, tithe)라는 말은 열번 째 것이라는 말입니다. 짐승을 십일조 할 때, 우리에 양을 들여보내면서 한 마리 두 마리 ... 열 번째 것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렸다는 것입니다. 혹자는 성경에 열 번째 것이라는 말은 있어도 십일조라는 단어는 없다고 하는데, 열 번째 것을 십일조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소득의 1/10을 구별하여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십일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십일조의 성경적 배경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최초의 십일조는 창세기 14장에서 아브라함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돌라오멜의 연합군이 소돔과 고모라 성을 침략하여 사람과 많은 물건을 노략하여 갔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가신 318명을 데리고 북쪽까지 좇아가서 그들을 기습함으로 빼앗겼던 물건들과 사람들을 구출하여 돌아옵니다. 돌아오는 길에 아브라함은 살렘왕 멜기세댁을 만나게 되는데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19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14:19-20). 이 말을 들은 아브라함은 전리품의 1/10을 멜기세댁에게 드립니다. 아브라함의 이 행위는 자기의 힘과 능력과 전술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이 전쟁에 승리할 수 있었음을 인정하는 신앙 고백적인 행위입니다. 내 노력과 수고로 이런 것들을 얻은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인정하여 십일조를 드린 것입니다. 이것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십일조입니다.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도 자기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가다가 벧엘에서 하나님을 뵙게 됩니다. 그때 야곱이 내가 만약 살아서 이곳으로 돌아오게 된다면 하나님께 십일조를 바치겠다고 맹세합니다(28:22). 야곱 역시 내가 만약 안전하게 돌아온다면 그것은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호하심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 두 족장이 드린(야곱은 약속만 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하심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십일조도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서의 헌금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십일조는 나머지 것들에 대한 대표성을 갖는 것입니다.

 

이처럼 신앙의 고백이자, 감사의 표현이었던 십일조가 이제 율법으로 제정되게 됩니다. 이것을 제도화된 십일조라고 할 수 있으며, 십일조를 제도화하는 사람은 모세입니다. “30 그리고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 31 또 만일 어떤 사람이 그의 십일조를 무르려면 그것에 오분의 일을 더할 것이요 32 모든 소나 양의 십일조는 목자의 지팡이 아래로 통과하는 것의 열 번째의 것마다 여호와의 성물이 되리라 33 그 우열을 가리거나 바꾸거나 하지 말라 바꾸면 둘 다 거룩하리니 무르지 못하리라 34 이것은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이니라”(27:30-34). 여기서 알게 되는 세 가지 사항 중 하나는 모든() 십일조는 한 푼도 예외 없이 여호와의 것이라는 것과 31절은 식물에 관한 십일조 규례로서 식물은 식물 자체를 드리지 말고 그것에 상응하는 값으로 대체할 수 있으며 이때에는 십일조에 해당하는 식물값의 1/5을 더하여 바치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열 번째 것을 바꾸지 말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약 바꾸면 그 바꾼 것까지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인위적으로 구별하지 말라는 의도입니다.

 

율법에 따르면 이 십일조는 레위인들과 예배를 지원하는 데 사용이 되었다. “24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므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 2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6 너는 레위인에게 말하여 그에게 이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받아 너희에게 기업으로 준 십일조를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때에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거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27 내가 너희의 거제물을 타작 마당에서 드리는 곡물과 포도즙 틀에서 드리는 즙 같이 여기리니 28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는 모든 것의 십일조 중에서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여호와께 드린 그 거제물은 제사장 아론에게로 돌리되”(18:24-28). 곡식과 포도주를 비롯한 모든 소출의 십일조를 드림으로 레위인의 기업이 되게하고 그 중의 1/10은 제사장에게 돌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레위인이 제사장에게 돌리는 십일조는 자기들이 받은 것 중에서 가장 좋고 거룩한 것’(the best and holiest part)을 드려야 합니다(18:29-30).

신명기 1217절에서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14장에서는 레위인을 위한 십일조뿐만 아니라 가난한 자를 위한 십일조도 말씀하십니다. “22 너는 마땅히 매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23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24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너무 멀고 행로가 어려워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풍부히 주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25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 가지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으로 가서 26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그 돈으로 사되 소나 양이나 포도주나 독주 등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구하고 거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 27 네 성읍에 거주하는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자이니 또한 저버리지 말지니라 28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29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여기서는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과 제사 드릴 곳이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곳에 가서 마음에 원하는 것을 돈으로 사서 드릴 것과 매 삼년 끝에 성 중에 거하는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십일조를 드릴 것을 말하며 너희가 이 명령대로 그대로 시행하면 하나님이 너희가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레위인들을 위한 십일조와 달리 중앙 성소에서 함께 먹을 수 있는 십일조가 있고 또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십일조도 나타나는데 이는 안식년 후 3년마다 한 번씩 자기들의 성읍에 쌓아놓는 십일조를 한 것입니다. 마지막 사항, 즉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들을 위한 십일조는 신명기 26(12)장에 가서 한 번 더 말하여 강조합니다.

십일조의 역사는 사사기와 통일 왕국시대를 넘어 분열 왕국시대의 히스기야 통치 시기로 넘어간다. 역대하 31장에 나오는 기사를 보아 그 이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십일조를 제대로 드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5 왕의 명령이 내리자 곧 이스라엘 자손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꿀과 밭의 모든 소산의 첫 열매들을 풍성히 드렸고 또 모든 것의 십일조를 많이 가져왔으며 6 유다 여러 성읍에 사는 이스라엘과 유다 자손들도 소와 양의 십일조를 가져왔고 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별하여 드릴 성물의 십일조를 가져왔으며 그것을 쌓아 여러 더미를 이루었는데 7 셋째 달에 그 더미들을 쌓기 시작하여 일곱째 달에 마친지라 8 히스기야와 방백들이 와서 쌓인 더미들을 보고 여호와를 송축하고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축복하니라 9 히스기야가 그 더미들에 대하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물으니 10 사독의 족속 대제사장 아사랴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백성이 예물을 여호와의 전에 드리기 시작함으로부터 우리가 만족하게 먹었으나 남은 것이 많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에게 복을 주셨음이라 그 남은 것이 이렇게 많이 쌓였나이다.” 히스기야 왕 시절에 그동안 드리지 못한 십일조를 왕의 명령에 따라 많은 백성들이 드리게 되자 많은 성물이 성전에 가득 쌓이고 제사장들이 만족하게 먹고도 남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중요한 것은 왕의 명령이 입에서 떨어지자마자 곧장 백성들의 귀에 들어갔고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소산물의 맏물과 소득의 십일조를 엄청나게 바치게 된 것입니다. 드린 십일조를 5개월 동안 창고에 쌓은 것입니다.

 

이제는 십일조의 역사가 포로 귀환 이후로 넘어갑니다. 느헤미야와 말라기에서만 살펴보겠습니다. 느헤미야 1038절에 레위 사람들이 십일조를 받을 때에는 제사장 한 사람이 함께 있을 것과 그 중에서 제사장들의 몫을 따로 떼어두라고 하십니다. 아울러 십일조가 들어오지 않음으로 레위인들에게 양식을 공급하지 못함으로 그들이 다른 지파에 빌붙어 농사를 지어 먹기 위해 도망갔다고 말합니다(13:10). 느헤미야가 민장들을 불러 꾸짖고 이러면 하나님 앞에 예배가 될 수 없다고 밝히며 레위인들을 불러 다시 제 자리에 세우게 된다. 이에 온 백성들이 소산물의 십일조를 드림으로 예배를 회복시키게 됩니다(13:11-12). 이같은 현상은 동시대의 현상으로 말라기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말라기 3장을 십일조를 하나님의 복과 교환하는 수단으로 많이 이용합니다. 온전한 십일조만 하면 하나님이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주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 본문을 앞뒤 문맥에 맞추어 읽는 것이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는도다 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9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12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문맥에 맞추어 읽으면, 하나님이 먼저 너희가 조상대부터 지금까지 나의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나를 멀리 떠나 있었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가 어떻게 돌아가리이까라고 물었을 때, 이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으로 십일조 얘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십일조와 봉헌물을 도둑질하지 말고 하나님께 바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포도 열매가 풍성하게 되며 땅이 아름답게 될 것이고 이방인들로부터 복되다고 일컬음을 받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요구는 너희가 나를 떠나 멀리 갔으니 내게로 돌아오라는 것인데,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 중의 하나가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본문은 말라기 전체의 구조와 앞 뒤 문맥에 맞추어 해석을 해야합니다. 구조와 문맥에서 본다면 이 말씀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 맺은 언약을 깨뜨렸다는 것이고 그것을 회복하면, 즉 언약의 의무를 준행하면 다시 하나님의 풍성한 은총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뜨린 언약을 회복하는 방법이 바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언약 백성으로서의 의무 준수를 잘 함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고 레위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온전히 드리게 되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백성으로서 마땅한 의무가 십일조와 성물임으로 이것을 온전히 드림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계회복만 되면 그 관계 속에서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언약의 의무 준행만 잘 하면 하나님이 메뚜기를 금하여 토지 소산을 먹지 못하게 하고 포도원의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아울러 그들의 땅이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원문을 그대로 직역하면 너희가 아름다운 땅이 될 것이다입니다. 말라기는 단순히 땅의 복을 받아 풍성한 물질적 복을 누릴 것을 넘어서 백성들이 아름다운 땅이 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곧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기업이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들의 이런 행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통치가 구현되고 그 나라의 열매가 풍성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결국 말라기는 언약 백성다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하나의 예시로 십일조의 실천을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합당한 삶의 일부가 십일조라는 가치관으로 살 때 그 언약 안에서 새로운 은혜와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신약에는 십일조라는 단어가 거의 나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세 번 사용하시고(23:23, 11:42, 18:12) 히브리서 기자가 아브라함의 십일조를 얘기하면서 몇 번 사용합니다(5). 그러나 히브리서 7장의 그 내용은 창세기 14장의 사건을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거론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여기서는 마태복음 23:23의 말씀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기 원합니다. “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이 본문은 예수님의 7가지 화 선언에 대한 것 중 네 번째 화에 대한 말씀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박하는 향료식품을 말하고 회향은 미나리과에 속하는 양념의 향료를 말하고 또한 근채는 향기가 짙은 식물로서 양념이나 약용 식물을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 어디를 살펴보아도 이런 품목의 십일조를 내라는 말은 없습니다. 십일조의 품목은 토지소산물 중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 등의 십일조를 말합니다(14:22-23). 그러니까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에 정해진 것뿐만 아니라, 바칠 품목에도 들어가 있지 않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도 바쳤다는 것입니다. 정해진 것 이상으로 드렸으니 대단한 종교적 열심히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책망은 십일조는 이렇게 철저하게 드리는데, 이것보다 더 중한 바는 버렸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의 더 중한 바는 중량이 더 무겁다는 말이 아니라, 더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율법 조항보다 다음의 사항이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항은 정의와 긍휼과 믿음입니다. 여기서의 정의는 이웃에게 의롭게 처신하며, 말이나 행동에 있어서 어떤 사람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긍휼은 불쌍한 자와 고통받는 자를 보고서, 그들을 향하여 베푸는 친절이나 호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확신을 가리킵니다. 이 세 가지 즉, 의와 인과 신은 인간의 사회생활과 신앙생활에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덕목입니다. 미가서의 말씀에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6:8)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행하여야 할 선한 것은 정의, 인자, 겸손이라고 하신 것으로, 본문과 일맥상통한 말씀입니다.

그러시면서 예수님은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의 이것은의와 인과 신을 말하고 저것은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말합니다. NIV영어 성경에서는 후자를 실천하고 전자도 무시하지 말라’(You should have practiced the latter, without neglecting the former)로 되어있습니다. ‘십일조도 무시하지 말라는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이것은 분명 십일조를 부정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온전히 이루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바울도 말하기를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3:31)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여기서 율법의 준수뿐만 아니라 그 정신 이행까지도 강조하신 것입니다. 십일조도 행하고 의와 인과 신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십일조를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에서 할지니라’(에데이)는 말은 당위동사를 사용함으로 당연히’(ought to) 해야 한다는 뜻과 에데이’(ἑδει)데이’(δει)의 미완료 과거형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continually) 해야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가르침은 십일조는 당연히 해야되고 지속적으로 해야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십일조에 대한 예수님의 종결적인 말씀입니다. 주님의 이 말씀만 보더라도 십일조 폐기론자들의 주장은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십일조 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십일조를 율법으로 보아서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사실임으로 십자가 이전까지만 유효하다고 주장합니다. 지금 주님이 마태복음 23:23을 말씀하실 때가 돌아가시기 2-3일 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면 그 며칠 동안만 유효한 말씀을 하셨다는 말인가요? 결코 그럴 수 없다고 봅니다. 이것은 당연히 해야만 하고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사항입니다. 그리고 십일조는 율법 이전부터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십일조에 대하여 말한 적이 없습니다. 바울이 십일조에 관해 언급하지 않은 이유로 이미 그 당시의 십일조가 보편적으로 시행되고 있었고 초기 기독교인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너무 가난하였기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정말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은 마땅히 먹든지 마시든지 모든 것을 다하여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십일조만 드리고 나머지는 육신적인 쾌락을 위하여 사용해도 되는 입장이나 가치관이 아니라 나에게 은혜로 주어진 모든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곳에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헌금 원리는 나의 수입 전체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하는 헌금은 십일조를 포함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마게도냐 교회의 헌금 생활을 고린도 교회에 소개하면서 그들은 자기 자신들을 먼저 주께 드리고(고후 8:5) 극한 가난 중에도 풍성한 연보를 했다(고후 8:2)고 소개합니다. 마게도냐 교회가 바울로부터 헌금의 정신을 배워서 이렇게 하는 것으로 본다면 여기에서도 바울의 헌금 원리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과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힘에 지나도록 드린 것입니다. 헌금에 대한 이런 사상을 근거로 바울은 또한 체계적으로 그리고 그의 능력에 비례하여 헌금을 드리라(고전 16:2)는 것과 인색하지 않고 즐거이 내야 한다(고후 9:7)는 것과 심은 대로 거둔다는 원리(고후 9:8)와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하는 일(고후 8:4)과 감사와 헌신의 표로 드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만약 바울이 가졌던 이런 헌금의 정신을 바탕으로 우리가 십일조를 드린다면 그것은 전체를 대표한다는 의미로써 합당한 헌금이 될 것입니다.

 

구약 안에서 십일조의 용도를 종합적으로 말하면 1)레위인들의 양식을 위하여(18:21-24, 12:12, 18), 2)레위인들은 자신들이 받은 십일조의 십일조를 제사장에게 드림(18:26, 10:38), 3)3차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는 데 쓰이는 경비(14:23-26, 16:16-17), 4)3년마 다 한 번씩 오는 구제년의 구제비(14:28-29, 26:12-15)로 사용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랍비들과 오광만 교수는 십일조의 종류를 아래와 같이 지적합니다. 이것은 십일조의 용도에서 나온 내용에 근거합니다. 1)일반적인 십일조입니다(1의 십일조). 가나안 땅에서 나는 모든 소산물의 1/10을 드리면 이것으로 기업이 주어지지 않은 레위 사람의 양식으로 제공합니다. 여기서 제사장들에게 드리는 십일조가 파생되어 나온 것입니다. 2)레위인들과 함께 먹는 거룩한 음식의 십일조(2의 십일조)가 있습니다. 이것은 십일조를 내는 사람들이 년 3차 중앙 성소에 와서 레위인들과 함께 먹어서 소비하는 식사의 의미가 있습니다. 3)3년 마다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십일조(3의 십일조)입니다. 이것은 성읍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기 위해 마련한 일종의 공동 구제헌금에 해당됩니다. 이처럼 세 종류의 십일조가 있으며 그 십일조를 레위인들이 사용하든 가난한 사람들이 사용하든지 간에 율법에 명기된 십일조의 의무를 잘 지키려면 적어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태 동안은 해마다 소산의 2/10를 드려야 하고 삼 년마다 소산의 3/10을 드려야 했음을 알게 됩니다.

 

결론

 

성경을 기준으로 십일조의 기원과 그 역사를 살펴봄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첫째, 십일조에 대한 여러 부정적인 주장들이 성경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금 내듯이 십일조를 하는 것이 아니고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둘째, 복을 받기 위한 투자로 십일조를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말라기 3장의 말씀에서처럼 십일조하면 하나님이 복 주신다는 메시지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 아니라 언약 백성으로서의 깨뜨린 의무를 회복하라는 데 그 핵심이 있다는 것으로 저들의 잘못을 지적할 수 있겠습니다.

셋째, 좀 더 나아가서 십일조를 율법으로 이해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전까지만 유효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저것도 버리지 말지니라) 이것은 당연히,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논박을 했습니다.

우리는 감사한 마음과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신앙 고백으로, 대표성 원리에 따라, 기쁘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그렇게 드려진 십일조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과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쓰여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9/10도 물질의 청지기 정신으로 그런 목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이런 삶이 바울이 말한 것처럼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의와 인과 신을 행하며, 십일조 생활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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