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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3 16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함>
이정현 목사 2025-03-16 추천 0 댓글 0 조회 263
[성경본문] 요한복음4:16-42 개역개정

16.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17.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19.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25.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27.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

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30.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31.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

32.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33.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하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35.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39.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40.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41.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5316일 요 4:16-42,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함

 

이 본문에서는 네 가지 담화가 나옵니다. 길게 되어 있지만 간단하게 설명함으로 말씀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매우 중요한 내용들이 담겨있음으로, 주의 집중하시기를 바랍니다.

 

1.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남편에 관한 대화입니다(16-18).

여기에서의 대화의 주제는 여인의 남편에 대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얼핏 보면 앞에서 말한 생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생수와 여인의 영적 필요를 연결하시려는 듯 보입니다. 그러므로 이야기는 생수와 잘 연결되는 말씀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본문의 여인은 여러 남편과 이혼한 경력이 있는 부도덕한 여인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당시 유대문화의 입장에서는 이혼의 주도권은 남편에게 있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신명기 24:1아내에게서 수치스러운 일을 발견하면 남편이 이혼 증서를 써 주면 이혼이 되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 당시의 힐렐 학파에서는 이것을 더욱 구체적으로 해석하여 여인의 다양한 종류의 문제를 이혼 사유로 해석하였기 때문에 남편이 쉽게 이혼을 결정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힐렐 학파가 주장하는 이혼 사유가 정말 하찮고 엉뚱한 것도 있습니다. 심지어 아내가 그릇을 깨트려도 이혼 사유가 되기도 하고 아내가 음식을 태웠다는 이유로 이혼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분명 이혼의 주도권은 남편에게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이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그 여인은 그런 물을 나에게 달라고 강열히 요청하였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 여인의 비참한 과거를 다 아시고 남편의 문제를 건드리신 것입니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16). 그녀의 은밀한 상처를 드러내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야 치료와 회복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영적인 필요를 채워주기 전에 그녀의 가장 은밀한 상처 혹은 가장 의지했던 그 부분을 다루시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어쨌던 남편 없이 이혼녀가 살아간다는 것은 비참했기 때문에 대부분 첩으로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유대 사회에서는 첩도 아내로 인정해 주었답니다(삼하 3:7). 그러나 이 여인의 다음의 말을 들어보면 첩이 아니라 내연녀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당시 이런 여자는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답니다.

 

혹자가 그 당시 이 사마리아 여인의 고통을 세 가지로 나누어 말했습니다. ‘1)남편에게 버림받은 아픔과 상처가 있을 것이고, 2)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였던 수치가 있을 것이고, 3)이혼 당한 여인이지만 여전히 남자를 의지하여 살아야 하는 연약함이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이런 여인을 치유하시고 생수를 주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그 여자에게 남편을 불러서 이리로 오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었던 여인이 조금 의외로 대답을 합니다.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17). 여인의 그 말을 들은 주님이 정확하게 그 여인의 상태를 지적해 주셨습니다.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예수님은 이미 그 여인의 과거나 현재의 상황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너에게 남편이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라는 말이 맞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벌써 5섯 남자에게 이혼을 당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혼과 재혼을 반복 하면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라고 하신 말씀을 볼 때 지금 이 여인은 어떤 남자와 살고 있기는 하지만 정식 혼인 관계가 아님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남자의 내연의 여자로 살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여러번 이혼하고 재혼한 여자로 보기보다는 더 가련한 여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가 일 단락 되는데, 여기까지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해 주시는 분, 사람들의 수치를 제거해 주시는 분, 사람들의 연약함을 품어주시는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예배에 관한 대화입니다(19-26).

 

예수님이 여인의 남편 문제를 정확히 말씀하시니까, 여인은 갑자기 대화의 주제를 바꿉니다. 우선 자기의 사정을 너무나 정확히 알고 있는 분으로 생각하여 당신은 선지자입니다고 말합니다. 한 번도 일면식이 없는 사람인데 자기에 대하여 너무나 상세하고 정확하게 알고 계시는 분이라는 입장에서 일단 당신은 선지입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래도 에수님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높아졌다고 보여집니다. 처음에는 당신은 유대인’(9)이면서 어찌 나한테 물을 달라합니까?라고 했다가 조금 지나서는 유대인이 주님으로 바뀌어서 주여’(11, 15) 나에게 그런 물을 주십시오 그러다가 이제는 하나님의 선지자’(19)로 바뀐 것입니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19). 그녀는 에수님의 행동과 숨겨진 사실조차 아는 지적 능력을 통하여 예수가 선지자라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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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예배에 대하여 주님께 상담을 하는 것입니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어디서 예배해야 하는지 예배의 처소에 대한 질문을 하였습니다. ‘우리는즉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 산에서(세겜에 위치한 그리심 산) 예배하였는데, 당신들 즉,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있다고 하는데 둘 중 어느 것이 맞으며, 어디에서 예배해야 하느냐고 물은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신명기 12:5을 근거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성전은 예루살렘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솔로몬의 성전, 스룹바벨 성전, 헤롯 성전을 예루살렘에 건축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모세오경 자체에서 찾아야 하는데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에 들어간 후 제단을 쌓았던 세겜에 위치한 그리심 산이 그 장소라고 본 것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사마리아 사람들은 기원전 4세기 초(BC 322)에 그리심 산에 성소를 세웠습니다. 그러다가 기원전 129년 존 힐카누스에 의해서 그 성소가 파괴되었고 그 이후로 그들은 이곳에 모여서 기도회를 하면서 무너진 성전을 회복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 가운데서 이 여인은 예배의 장소, 어디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를 선지자 예수님께 물은 것입니다. 이것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심각하고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둘 중의 하나를 가르쳐 주실 줄로 알았는데 새로운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내 말을 믿으라고 하셨는데 원문에는 나를 믿으라로 되어 있습니다. 고로 주님은 자신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을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배의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할 때가 온다고 하셨습니다. 일단 주님은 그리심 산이냐 예루살렘이냐가 중요하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22절에서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 여인에게 아주 매몰차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너희는(사마리아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한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구약의 모세오경을 중요 시 하고 그것만을 중심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 전체에 비하면 모세오경이 얼마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 다섯권의 책에서 밝혀진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예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뜻입니다.

 

반면 우리는(유대인들) 모세오경 이후의 역사서, 예언서, 시가서를 가지고 예배를 드리고 있으니 너희들보다 좀 더 온전한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약 성경 전체에서 밝혀진 하나님을 알고 예배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너희는 잘 알지 못하고 예배를 드리지만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앎으로 예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아는 만큼 숭고한 예배, 영과 진리로 예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이 유대인에게 남이니라는 말은 메시아가 바로 유대인에게 나타난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메시아가 유대 땅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주님이 계속하여 예배에 대하여 가르침을 주시는데, 여기서는 영과 진리로 예배할 것을 그녀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이 두 구절을 통하여 간단히 세 문장을 뽑아서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1)영이신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는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예배하는 자는 이제 더 이상 장소에 구속받을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리심 산이냐 예루살렘이냐를 따지지 말고 이제부터는 장소보다 예배자의 마음과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의 영은 예배자의 영혼을 말하고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예배자는 형식적으로 몸만 앉아있지 말고 온 영혼을 다하여 진리의 말씀을 따라서 예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에게는 형식적이며 위선적인 예배가 많았습니다. 반면 사마리아인들에게는 비진리적인 예배가 많았으므로 이 두 그룹에게 예수님이 공히 그 문제점을 지적하시면서 동시에 그 해결책으로 영과 진리의 예배를 말씀하셨다고 보는 것입니다. 2)이렇게 예배할 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강림하신 이때,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가 이 세상에 임하신 이때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3)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은혜와 복을 주시고 그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고자 찾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예배자를 집요하게 찾아서 복과 은혜를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그 여자에게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만 한다는 사실을 말씀하셨을 때, 그 얘기를 들은 여인이 메시아를 언급합니다. “25 여자가 이르되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그가 오실 줄을 아는데라는 말은 이 사마리아 여인도 유대인들과 동일하게 메시아 대망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에는 유대 사람, 사마리아 사람 그리고 갈릴리 사람들이든 또한 해외에 흩어져서 살아가는 모든 유대인들은 동일하게 메시아가 오실 것인데 그가 오시면 자유와 평화를 주실 것이라는 대망 사상은 다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여인도 그 메시아 대망사상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예배에 대한 가르침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대하여 가르쳐 주실 것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가 바랬던 그 메시아는 아마도 모세오경에서 말하는 바로 그 선지자’(18:15-18)로서의 메시아일 것입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이 메시아를 특히 타헵’(회복자)이라고 불렀는데 그 메시아의 도래를 갈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인의 입에서 메시아, 그리스도라는 말이 나오자 예수님이 결정적으로 자기 계시를 하셨습니다.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에고 에이미를 사용하셔서 자신이 사마리아인들이 고대하던 그 메시아임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지금 너에게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네가 바라고 있는 그 메시아이다, 그리스도이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영원하신 메시아이심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 문단의 대화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장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배자의 마음과 태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우리는 반드시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합니다. 여기에서도 당위 동사를 써서 반드시 그리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3. 예수님과 제자들의 대화입니다(27-38).

 

제자들이 동네에서 돌아와서 야곱의 우물가로 왔을 때 예수님이 웬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고 놀라게 됩니다. 이상하고 낯선 광경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기 아내하고도 길거리에서 무슨 얘기를 나누면 수치스럽고 무례한 일로 여겼답니다. 그러니 주님이, 모르는 여자와 함께 1:1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에 제자들 눈에는 이상하게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주님께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왜 저런 여자와 얘기를 나누십니까?라고 묻는 자가 없었습니다(27).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었습니다.

여인은 이윽고 물동이를 버려두고’(28) 동네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물동이를 버렸다는 얘기는 자기가 이 우물로 찾아 나온 것은 물을 기르기 위함이었으나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의 행동인 것입니다. 더 우선적인 일이 있다는 뜻입니다. 동네의 사람들에게 두 가지를 말합니다. 먼저는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는 얘기이고 다음은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라는 말입니다. 이 여인의 말은 다소 부정적인 표현으로 그리스도에 대하여 진술한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예수가 그리스도와 메시아임을 확실히 믿고 하는 말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그리스도이지 않은가?’라는 말입니다. 아무튼 이 여자는 예수님의 메시아 정체성에 대한 확실한 믿음은 없었지만(약간의 의심이 있다 하더라도) 그가 메시아임을 전한 것입니다. 그리고 당장 예수님을 믿으라고 강요한 것이아니라 와서 보라고 하며 그들에게 믿음의 결정권을 맡긴 것입니다.

 

그녀의 이 말은 마을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작용을 하였습니다. “30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주위로부터 좋지 않은 평가와 도덕적으로 지저분한 여자로 평가받던 여자, 사회로부터 신뢰받지 못한 여인, 한 남자의 내연녀로 살고있는 이 여인의 말을 사람들이 듣고 예수께로 나온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자신에게 어떤 일을 행하였는지를 마을 사람들에게 증언하여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왔고 또한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39).

 

여기에서 우리는 그 여인의 전도의 열정을 찾기 이전에 그러한 부족한 믿음, 연약한 믿음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예수님)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완전하지 않은 믿음, 연약한 충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사용하셔서 대단한 그분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이 여자에게 예수님이 분명한 메시아야, 그리스도이라는 확실한 믿음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인의 그 연약한 믿음의 증언을 통해 수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를 믿어 구원받는 대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여자가 동네로 들어간 사이 제자들이 예수님께 먹을 것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행로에 곤하여 우물가에 앉아서 쉬고 계셨고 또한 많은 시간 여인과 대화를 나눈 상태였습니다. 당연히 시장하시고 피로가 더 밀려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랍비여 잡수소서라는 말에 주님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다’(32)고 하셨고 그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34)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의 양식을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것이라고 표현을 하셨는데 그러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고 하나님의 이 일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일은 사람들에게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 하신 그의 사역을 말합니다.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그 모든 일(하나님의 뜻과 일)을 이루셨다는 것입니다(19:30). 곧 주님의 양식은 이 땅에서 추구하신 하나님의 일을 행하여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육체의 양식을 통하여 육체의 만족을 얻는 것처럼 주님은 영의 양식을 통하여 영적 만족을 취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삶의 원동력으로서의 양식은 세 종류입니다. 1)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살아갑니다. 2)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갑니다. 3)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으로 살아갑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속죄의 은혜를 먹고 성령의 생수를 마시며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먹고 사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곧 제자들의 양식입니다. 이것을 먹고 이것을 이루어야 그리스도인들에게 참된 만족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35절 이하에서는 예수님이 전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35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보리 추수는 보통 4-5월에 이루어 집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은 추수할 때가 4개월이 남았다고 하시니 이 말씀을 하셨을 때가 이듬해 12월이나 그 해 1월 정도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추수 때가 그 때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주님은 지금이 희어져 추수할 때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당신께 나오는 것을 보시고, 지금 밭에 곡식이 희어져 추수 때가 되었다, 농부들의 낫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4개월이 지나야 추수 때가 아니라, 찾아 나오는 저 사마리아 사람들을 보니까 지금이 영적으로 추수할 때라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주님은 씨를 뿌리는 자와 곡식을 거두는 자를 같이 취급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함께 즐거워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씨를 뿌리는 노력을 하게 하였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들의 노력에 참여하게 하심으로 같은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뿌리는 자 뒤에 거두는 자가 따라가서 거둠으로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심는 자는 예수님과 세례 요한을 말한다면 거두는 자는 예수님의 제자들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이 일(전도사역)은 이제는 제자들을 통하여 그 구원 사역이 계승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그 구원 사역을 오늘날은 교회가 그 사역을 이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4.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 그리고 동네 사람들과의 대화입니다(39-42).

 

39절에는 그 여자의 증언이 나옵니다.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말하였다는 증언입니다. 주님께서 자기에게 어떤 일을 행하시고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를 동민들 앞에서 증언한 것입니다. 비록 강한 확신속에서 나온 증언은 아니라 할지라도 이 증언을 통하여 그 동네 주민들 가운데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를 믿었다고 했습니다(39). 자기 한 사람의 믿음이 여러 사람에게 퍼져 나가서 이제 사마리아 주민 중 다수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여인의 증언의 결과로 사마리아 사람들이 마음이 열려서 예수님을 초청하여 자기들과 함께 더 유하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2일을 더 그곳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 이틀 동안 주님은 그 동네에서 무엇을 하셨을까요? 말씀을 전하셧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습니다. 회개와 믿음을 전하셨을 것입니다. 그랬더니 나타난 결과가 두 가지였습니다. 먼저는 주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졌습니다(41). 그리고 두 번째는 그 여자의 증언 때문이 아닌 주님이 친히 해 주신 말씀으로 인하여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알게 되었다’(42)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계시를 통하여 주님을 알고 주님이 세상의 구주이심을 확신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세상의 구주라는 말은 보통 로마 황제에게 붙여진 호칭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 이 호칭을 사마리아 사람들은 황제에게가 아니라 예수님에게 당신은 세상의 구주라고 고백한다는 것이지요.

 

주님은 3장에서 니고데모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이제는 유대인을 넘어 4장에서는 이방인인 사마리아 사람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복음이 점점 더 확장되어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 한 사람에게 전도하셨는데, 그녀는 수많은 동네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여 그들을 구원하게 되었습니다.

 

결론

 

1.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자에게 내가 생수를 주리니 이것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후에 주님이 그 여자 앞에서 자신이 메시아이며 그리스도이심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녀는 주님의 자기 계시를 통하여 메시아로 알고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습니다. 곧장 이 여자는 동네에 들어가서 전도하였습니다. 많은 수가성 주민들을 예수님에게로 인도하였습니다. 그 많은 사람 중에 어쩌면 자기와 함께 살고 있던 그 남자도 주님에게로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그때는 나오지 않았더라도 주님이 이틀 동안 그 동네에 머무시는 동안에는 분명 그 남자도 주 앞에 나와서 회개하고 예수를 믿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에게 생수, 즉 영생의 말씀을 주셨는데 그 말씀을 받은 사람이 곧장 가서 전도함으로 온 동네 사람을 다 전도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온 집안 사람이 예수 믿게 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내가 사는 아파트 라인의 이웃 사람들이 다 예수 믿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우리가 사는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예수 믿기를 원하십니까? 그것을 진정으로 원하신다면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예수 믿게 하면 됩니다.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전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이 그 여자와 예배에 대하여 많은 말씀을 나누셨는데 한 가지만 기억하실 것은 예배자는 반드시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런 예배는 하나님이 역겹다고 하시면서 내 입에서 토하여 내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여러분 일요일이니까 마지 못해서 부인 손에 이끌려 나온 사람은 없습니까?

예배 시간이 조금만 길어져도 짜증나고 지루해 하며 힘들어 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토요일에 충분히 잤는데도 불구하고 설교 시간에 졸음이 쏟아져 오고 말씀이 전혀 내 귀에 들리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까?

몸은 앉아있는데 영혼은 몸을 이탈하여 비몽사몽 간에 있는 사람, 또한 세속적인 잡념 속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사람은 없습니까?

 

하나님이 그런 사람 만져 주시기를 바랍니다. 어루만져 고쳐 주시기 바랍니다. 변화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은혜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회복시켜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앞으로의 예배가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너희가 예배를 드릴 때 반드시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만 한다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예배가 성령 충만한 예배, 은혜가 충만한 예배, 살아있는 예배, 영적인 감동이 있는 예배,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는 예배, 통회 자복함이 있는 예배, 감사의 눈물이 있는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집요하게 찾으시는 그런 예배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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