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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3 9 <내가 너에게 생수를 주리>
이정현 목사 2025-03-09 추천 0 댓글 0 조회 264
[성경본문] 요한복음4:1-15 개역개정

1. 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2.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베푼 것이라)

3.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4.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5.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7.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8.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9.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1.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5.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제공: 대한성서공회

2539일 요 4:1-15, 내가 너에게 생수를 주리라

 

요한복음 앞장(3)에서는 예수님이 니고데모하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4장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니고데모,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 사이의 대화는 여러면에서 차이점이 있습니다. 한번 비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3(니고데모) 4(사마리아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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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사마리아인

남자                                        여자

공회원                                     남편 다섯이 있는 여인

예수님께 찾아왔음                    예수님께서 먼저 말을 거심

밤에 찾아왔음                           낮에 만나주심

니고데모하고는 한정적 대화      사마리아 동네 사람들에게까지 확장된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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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복음을, 유대인을 넘어 이방인에게까지 전파하셨다.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를, 누구든지 마실 수 있다.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제자로 삼았습니다. 여기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12제자를 말하기보다 일반적인 추종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에게는 12제자뿐만 아니라 그 외의 제자들도 많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물론 주님이 직접 주신 것은 아니고 그의 제자들이 세례를 베풀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주변에는 이런저런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제자를 삼고라는 말을 세례를 베풀다는 말보다 앞세운 것은 신학적인 의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야 그 다음에 그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외적인 표로서 세례를 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례를 받고 믿으라는 얘기가 아니라 반드시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에게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으로 물로 인치는 행위인 세례를 준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교회는 이 순서를 잘 지켜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자에게 즉,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을 하는 자에게 세례를 준다는 사실입니다.

 

(지도를 보여줌)유대 땅에서 이런 사역을 하셨던 주님이 이제 유대지역을 떠나 다시 갈릴리로 가시고자 하셨습니다(3).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피해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시고자 하셨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의 세례가 인기가 있자 바리새인들이 시기하여 의도적으로 그들을 피하려 하셨던 것 같습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이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려면 사마리아를 거치지 않고 보통 요단강 동편을 통하여 유대에서 갈릴리까지 왕복을 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통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혼혈족으로 취급하여 멸시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들과의 접촉을 꺼려하여 그곳으로 지나다니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요단강 동편 길로 가지 아니하시고 사마리아를 통과하고자 하셨습니다(4). 주님이 굳이 이 길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었을까요? 어떤 일의 긴박성 때문에 사마리아를 거쳐서 가실 수도 있었고 또한 의도적으로 사마리아 여인과 그 동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함일 수도 있겠습니다. 지난번에도 목적이 있어서 이 길을 자주 다니셨겠지만 이번에는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이라는 분명한 목적 때문에 사마리아 길로 가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성의 수가에 이르렀는데 그곳에 야곱의 우물이 있었습니다(지도를 보여줌). 이곳은 여행객들이 쉬어가는 장소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도 행로에 곤하여 그 우물 곁에 앉았습니다(6). 야곱의 우물이라는 것은 이 당시부터 1700년 전에 있었기 때문에 이곳은 역사적인 장소라는 말이고 주님이 행로에 곤하여 이 우물 곁에 앉으셨다는 것은 주님의 인성을 잘 드러내 보여주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하는 복음서인데 이렇게 그분의 인성에 관해서도 자주 부각시켜 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때가 여섯시즘 되었다고 했는데, 유대 시간으로 6시는 정오가 되고 로마식으로 하면 저녁 6시가 됩니다. 이 시간은 유대식보다 로마식 시간 계산법대로 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1)사도 요한이 요한복음을 쓸 때 AD 90년 이후이기 때문에 그때는 유대가 망하였고 완전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고 또한 이것을 쓴 장소가 유대 땅이 아니라 로마의 영역이었던 에베소였기 때문입니다. 2)요한복음 19:14의 시간도 로마 시간으로 이해해야 다른 복음서와 일치를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오전 6시에 사형 언도를 받으시고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시고 정오에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였고 오후 3시에 운명하신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3)이 여자가 자기의 도덕적인 결함이 챙피하여 그것을 숨기기 위하여 사람들이 나오지 않는 정오에 나왔다고 한다면, 오히려 그것을 숨기고 피하기 위해서는 해질무렵인 저녁 6시가 더 적당했다고 보여 집니다. 왜냐하면 저녁 6시가 오히려 사람의 왕래가 적었기 때문입니다.

 

우물가에 앉아 계신 주님이 저녁 6시에 물을 길르러 나온 한 여인에게 물을 요청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피곤하고 목이 말라서 요청을 한 것입니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구하려 동네에 들어갔음으로 이런 요청을 할 수 있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봅니다. 그러나 사실 유대인도 사마리아 사람을 만나기를 꺼려했고 사마리아 사람도 역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물을 좀 달라고 하시는 예수님에게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시나이까’(9)라고 놀라움을 표현합니다.

˃

이제부터는 예수님이 본격적으로 여인에게 생수 이야기를 하십니다. 생수는 문자적으로 고여있는 물이 아니라 흐르고 있는 신선한 물을 말합니다. 이 생수는 신자로 하여금 영생에 이르도록 합니다. 이것은 어떤 댓가를 지불하고 받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받는 것이기 때문에 선물입니다. 선물은 사람끼리 주고 받는 선물이 있고, 제사 예물을 의미하기도 하고, 예외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을 뜻하기도 합니다. 신약에서 이 단어는(도레아, 선물) 예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선물을 말하고 사도행전에서는 자주 성령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의 생수는 무엇을 가리키는가요? 1)계시와 율법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2)성령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두 가지를 서로 나누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계시의 중보자로 새 언약의 말씀을 주실 뿐만아니라 친히 성령을 주셔서 그 능력으로 살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예수님이 주시고자 하시는 생수는 바로 생명입니다.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은 그를 믿는자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레위기 2:13, 17:13에서 하나님은 생수의 근원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이 생수를 주시는 분으로 되어 있고 생수의 근원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시를 주시고 말씀도 주시고 성령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대리자요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너에게 생수를 주었으리라’(10)고 하셨습니다. 네가 오히려 주님께 생수를 구하였을 것이고 주님이 너에게 그 생수를 주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선물은 구원을 말하고 물을 달라고 한 사람은 메시아임으로 네가 메시아인 나에게 구원을 달라고 구했으면 내가 너에게 구원, 생수를 주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자가 말하기를 이곳에는 물길을 그릇, 두레박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25m)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라고 말합니다. 두레박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생수를 얻어서 나에게 주겠다는 말입니까라는 물음입니다.

 

그러면서 여인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합니다.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사마리아인들은 야곱을 자기의 조상으로 믿고 있었으며 이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앉아 있는 예수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결코 야곱보다 더 위대할 수는 없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주님은 영적인 생수를 말씀하시는데 여인은 계속하여 문자적 생수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를 주십니다.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문자적인 야곱의 우물을 먹는 사람들은 목마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야곱의 우물과 주님이 자신이 주는 물을 비교하여 말씀하십니다. ‘야곱의 우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르다고 얘기하셨습니다. 모든 인간은 육신적 갈증을 채우기 위하여 물을 마십니다. 이런 물은 아무리 마셔도 갈증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처럼 이 세상에 있는 것들로는 인간의 영적 욕구를 채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 명예, 권세, 지식이 아무리 높고 많아도 그런것들로 우리의 영혼을 채울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야곱의 우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우리의 생명이요 진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영적 욕구가 해결이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물(생수)은 성령과 말씀을 통해 사람들의 영적 필요가 충족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영생하도록 솟아 나는 샘물은 신자의 내면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가리킨다고 봅니다. 이 성령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고로 말씀과 성령의 역사를 통해 신자들을 영생의 길로 인도해 주시는 예수님의 은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결코 우리를 목마르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샘물은 계속해서 솟아오르는 마르지 않는 샘물이기때문입니다.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7:37-38). 예수님이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가 되십니다.

 

결국 야곱의 우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르지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을 통하여 주님이 야곱보다 크시다는 것을 알리신 것입니다. 주님은 야곱보다 크신 분이시고 야곱보다 먼저 계신 분이십니다. 야곱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우물을 주어 목마른 갈증을 일시적으로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야곱보다 크신 예수님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샘물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여자가 즉시로 주님께 그런 물을 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15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여자가 예수님을 주여라고 부르며 그런 물을 나에게 주사라고 했는데 이는 강열한 요청의 의미가 담긴 명령입니다. 이것을 보면 아직도 이 여자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순히 갈증을 느끼지 않는 물질적인 물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집에서 이곳까지 물을 길으러 오는 것이 고통스럽고 챙피스러웠는지 그런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주님의 그 생수를 달라고 요청을 한 것입니다.

 

결론

본문에서 예수님은 사람을 대하실 때, 먼저 다가가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우물 곁에 앉아 계시다가 먼저 그 여자에게 다가가셨습니다. 그리고 물을 좀 달라고 하심으로 그녀와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예수님이 행로에 곤하여서 갈증으로 물을 요구하셨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물을 통하여 생수를 설명하고 생수를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은 이 생수를 그 여자에게 주시기 위하여 사마리아를 지나가시기로 결심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사람을 대하실 때, 신분을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그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를 다 알고 계셨습니다. 남편 다섯을 갈아가며 살았던 부정한 여인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여자를 손가락질 했겠으나 주님은 그 여자를 차별대우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자비와 구원의 대상으로 여기며 한 가련한 여인으로 대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생수를 주시는 분이시고 또한 생수의 근원이십니다. 여기의 생수는 계시와 말씀과 성령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계시를 주시고 말씀을 주시고 성령을 주시는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예수님이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심으로 우리가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야곱보다 더 크신 분으로,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의 영적 필요를 분명히 채워 주실 분이십니다. 야곱보다 크신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는, 누구든지 마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받아 마심으로, 영육적 만족을 얻는 소망의 모든 식구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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