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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3 23 <가나에서의 두 번째 표적>
이정현 목사 2025-03-23 추천 0 댓글 0 조회 256
[성경본문] 요한복음4:43-54 개역개정

43.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44. 친히 증언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45.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46.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47.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49.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51.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

52.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53.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54.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5323일 요 4:43-54, 가나에서의 두 번째 표적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이 갈릴리 가나에서 행한 두 가지 표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물로 포도주를 만든 것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예수님은 새로운 창조자로서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시작을 알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메시아로 말미암아 기쁨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나에서 예수님의 두 번째 표적이 오늘 본문에 기록된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쳐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표적을 통해서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내고자 하셨을까요? 표적이라는 것은 단순한 신적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어떤 하나님의 계시를 함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건, 이 표적이 그리스도의 어떤 면을 드러내고자 하셨는가라는 것입니다. 왕의 신하의 아들을 살려주신 예수님의 이 표적을 통하여 우리는 주님을 어떤 분으로 알아야 하겠습니까?

 

본문 첫 구절을 보면 예수님이 사역의 장소를 옮겨 가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3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이틀 후에 거기를 떠나, 즉 사마리아의 수가성을 떠나 북쪽 갈릴리로 가시게 된 것입니다. 꽤 먼 거리를 여행하시면서 예수님이 선지자가 고향에서 높임을 받지 못한다(44)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인지 아니면 전해 내려오던 격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옛날부터 전해져 오는 속담과 같은 것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이 속담을 긍정적으로 선지자들이 자기 나라에서보다 다른 곳에서 더 높음을 받는다는 평범한 진리로 표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자기 고향 아나돗 사람들로부터 속임을 받고 죽이려는 위협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도 자기 백성으로부터 배척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엘리사도 예외는 아니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것처럼 예수님도 자기 고향에서 높임을 받지 못했고 환영과 영접을 받지 못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갈릴리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하였다(45)고 되어있습니다. 선지자가 고향에서 높임을 받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의외로 이 지방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모신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은 이들이 명절에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기 때문이라’(45)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순수한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보고 예수님을 대단한 분으로 인식하고 영접을 하였기 때문에 진실한 믿음의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육체적 요구를 만족시켜 주며 우리 민족의 애환을 풀어주고 그곳으로부터 건져 줄 사람으로 주님을 믿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메시아 사역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주님이 갈릴리에서도 가나로 가셨습니다.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던 장소입니다. 예수님이 이곳에 도착하셨을 때 왕의 신하가 가버나움에서 왔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들의 병을 고쳐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입니다. 가버나움에서 지금 예수님이 계시는 가나까지는 약 34km 정도의 거리입니다.

 

그가 가나에 계시는 예수님을 찾아와서 다 죽어가는 아들을 생각하여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라고 요청합니다. 아들이 거의 죽게 되었다고 했는데, 무슨 병인지 본문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아마도 선천성 난치병이었을 거라고 추측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46절의 병들었더니’(아스테네오)라는 단어가 계속해서 병을 앓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47절의 죽게 되었다’(아포드네스코)는 말은 대개 자연사를 가리키는 단어임을 생각할 때 선청성 난치병으로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이 아이는 태어날 때의 그 모습이니 그대로 죽어간다는 입장에서 자연사라고 한다).

아버지인 왕의 신하는 헤롯 궁에서 일하는 헤롯 왕의 신하라고 생각됩니다. 그는 높은 사회적 명성과 나름대로의 권력과 부를 누리고 사는 사람임으로 사회적으로 모든 유명 의사들을 불러 보고 약을 만들어 먹임으로 아이를 살려보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차도가 없이 고통 가운데 죽어져 가는 아이로 인하여 너무 괴로웠을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의 유대로부터 갈릴리에 오셨다는 얘기를 듣고, 예수께로 가서 청한 것입니다.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47). 정말 이 아버지는 다급하게 요청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들의 현 상황까지를 얘기합니다. 아들이 거의 죽어가고 있습니다. 자식의 이런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그 마음이 찢어질 듯 하였고 차라리 내가 아들보다 먼저 죽어야지-이런 생각도 들지 않았겠습니까? 그런 절박한 마음으로 예수님이 가버나움으로 내려 가셔서 제발 내 아들 좀 고쳐 주세요라고 한 것입니다. ‘내려 오셔서라는 말을 볼 때에 이 신하는 예수님의 역사를 제한적으로 이해를 하고 이렇게 요청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이런 요청을 받으셨지만 오히려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48)고 하셨습니다. 약간은 엉뚱한 말씀을 하신 것처럼 보입니다. 아들의 병을 낫게 해 달라고 요청을 하였으면 낫게 해 주겠다든지, 아니면 나는 못한다든지, 아니면 지금 가보자 하시든지, 나중에 가자고 하시든지-가부간에 이런 말씀을 하셔야 하는데, 예수님은 엉뚱하게 너희들 도무지 믿지 못한다고 하심으로 믿음 없음을 책망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조금 전까지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을 보고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입니다. 그들과 함께 가버나움에서 찾아온 왕의 신하에게 동일하게 싸잡아서 너희들은 무슨 표적이나 기적을 보아야 믿느냐, 그게 아니고 내 말을 믿어야 이적을 경험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표적 신앙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말씀 신앙을 가지라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자기를 영접한 갈릴리 사람들과 자기에게 와서 아들을 고쳐달라고 요구하는 왕의 신하에게 믿음 없음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바울도 표적과 기사만을 찾고 따르고 있는 유대인들을 책망하신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표적주의를 책망하시면서 말씀을 붙들고 말씀을 믿는 신앙이 되어야 함을 간접적으로 지적하신 것입니다. 표적과 이적에 마음이 빼앗기게 되면 말씀에 별 관심이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혹자는 표적과 기사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영적 유익을 얻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도 많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표적에만 흥미를 느끼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정작 필요한 복음과 말씀에는 무관심하며 오히려 거역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의도를 잘 알아차리지 못하고, 답답한 마음으로 신하는 다시 한번 더 주님에게 요구합니다.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49). 두 번이나 이 신하는 주님이 내려오셔서 자기 아들을 고쳐 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아들의 병 상태가 위중하니까 빨리 가버나움까서 가셔서 내 아들을 고쳐 달라는 아비의 애절한 절규입니다. 아직도 이 아버지는 예수님의 능력을 제한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병실에 가야만 그 환자를 낫게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50)고 하셨고 그 신하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갔습니다. 지금까지 이 신하가 요구한 것은 내려 오셔서’ ‘내려오소서라고 요청 하였지만 이제는 믿음이 조금 생긴 것 같습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을 믿고 가버나움으로 발걸음을 제촉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확신이 생겼으므로 이제 모든 것을 그분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주님의 그 말씀이 믿어지니까 주님이 함께 가시지 않아도 곧장 출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신하가 지금 들고 가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말씀이라는 보증서였습니다. ‘네 아들이 살아 있다.’ 이 말씀의 보증서를 굳게 잡고 달려가는 것입니다. 자기 아들이 생명이 그리스도의 말씀 한 마디에 달려 있다고 믿고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오셔서 고쳐달라고 하던 사람이 이제는 말씀을 믿고 가는 사람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34km가 굉장히 길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내려 가는데 가버나움에서 오는 자기 종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이 말하기를 아들이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이 신하는 주님이 가나에서 가버나움까지 가서 내 아들의 종처 위에 손을 엊고 기도해 주심으로 낫게 해 주실 걸로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얼마든지 역사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다시 말하면 말씀 한 마디로도 얼마든지 그 능력을 행사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니 천지가 만들어졌다’(32:9)고 하시는 것처럼 주님이 네 아들이 살았다고 하시면 거의 죽어가는 아이도 살아나는 것입니다. 말씀이 위경가운데 있는 자를 살리시는 것입니다. 말씀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심령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반석을 쳐서 부서러뜨리고 모든 것을 불사를 수 있는 불같은 말씀입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신 주님의 입의 그 말씀, ‘네 아들이 살았다는 이 한마디로 그 아이가 살아 난 것입니다.

 

자기 아들이 살았다는 얘기를 들은 아버지는 감격 중에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다”(52)고 말합니다. 고관은 자기 종들이 전하는 말을 듣고 열이 떨어지고 낫기 시작한 때를 물었습니다. 왕의 신하는 이 일이 우연인지 아니면 인술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확실히 주님의 능력에 의한 것인지를 확인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같은 세밀한 확인을 통하여 이것이 분명 예수님의 신적 능력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열기가 떨어진 시간이 어제 제7시라고 했는데 이는 곧 당시 대화가 이루어진 사람들의 시간에 따르면 오후 1시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때가 주님이 나에게 네 아들이 살았다고 말씀하신 바로 그 시간임을 확인했던 것입니다. 비록 갈릴리 가나에서 말씀하셨는데 34km나 떨어진 가버나움에서 주님이 지적하신 그 아들, 죽어가던 바로 그 아들이 살아난 것입니다. 공간을 초월하여 주님이 능력을 행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신적 능력을 체험하게 된 신하는 주님에게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53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이적을 체험한 결과로 그들은 모두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여기의 온 집안은 온 가족이나 식구를 말합니다. 헤롯의 신하로 고관이 그의 모든 가족과 더불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문제는 아니지만 이 신하는 온 식구들과 함께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결국 신하는 주님이 말씀하시면 된다, 주님이 말씀하시면 공간을 초월하여 역사가 일어난다, 말씀 한마디로 아이의 병을 치료하실 수 있는 분인 줄 믿었습니다. 이적과 표적을 통하여 주를 믿게 된 것입니다. 자기뿐만 아니라 온 집안이 다 믿었습니다. 한 사람의 믿음의 행동이 온 가족을 구원하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이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라'(54)고 했습니다. 첫 번째 표적은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이 표적의 결과는 예수님은 새로운 창조자이시며 자기 백성들의 필요를 채워주심으로 기쁨을 주시는 분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이 표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심으로 제자들이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표적은 왕의 신하의 아들이 고침을 받은 사건입니다. 이 표적의 결과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생명과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고 또한 신하의 가족이 전부 다 예수를 믿게 된 것입니다.

두 개의 표적을 통하여 갈릴리에서 전부 다 긍정적이며 좋은 결과와 반응이 일어 난 것입니다. 주님의 자기 계시로 인하여 주님을 좀 더 알아가게 되었고 그를 믿는 자가 많아지게 됨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 왕성하게 되었습니다.

 

말씀 선포, 복음 전파가 있었을 때 거기에 따른 반응이 부정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긍정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긍정적으로 나타나는 가운데서도 진짜가 있고 가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진짜 믿음과 가짜 믿음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로 참 믿음에는 반드시 행함이 따라온다는 사실입니다. 말로만 고백하는 믿음이 아니라, 참 믿음은 그 행함이 그의 믿음을 증명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행함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갈릴리 사람들처럼 행함이 있는 참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

 

중요한 것은 본문의 이 능력있는 사건을 통하여 예수님이 어떤 분으로 드러나셨느냐는 것입니다. 이 표적을 통하여 예수님이 어떤 분으로 드러나셨습니까? 서론에서 제기한 질문이 본론을 통해 오면서 그 해답이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그렇다면 이 표적을 통한 주님의 자기 계시는 무엇이라고 대답 하시겠습니까?

 

그것은 곧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말씀으로 신적 능력을 행하심으로 사람을 살리고 구원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역사하실 수 있는 분이시고, 말씀으로 먼데 있는 사람을 치료할 수 있는 대 의사이십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비록 적은 믿음으로라도 자신의 문제를 놓고 간절히 기도하면 주님은 응답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표적과 기사를 통하여 궁극적인 목적인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제자들의 믿음에 확신을 주셨고 갈릴리 사람들에게도 그랬고 왕의 신하에게는 더 확고한 신앙을 주셨으며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도 견고한 믿음을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제 자기의 생각과 뜻을 내려놓고 오로지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된다는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손에 예수님의 말씀의 보증서를 붙들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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