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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 26 <세례 요한의 증언과 그 결과> 이정현 목사 2025-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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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복음1:19-42절 개역개정

19.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20.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21.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22.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23.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24.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라

25. 또 물어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

26.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27.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28. 이 일은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5126일 요 1:19-42, 세례 요한의 증언과 그 결과

 

본문의 내용은 다른 복음서에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는 이 부분은 4복음서에 다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3:1-12, 1:7-8, 3:15-17).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를 전파하니까 요한이 도대체 누구인지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요한을 조사하러 온 두 그룹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예루살렘 유대인들이 보낸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입니다(19). 이들이 요한에게 4가지를 질문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네가 그리스도냐라고 물었습니다(20).

1세기를 살아가는 거의 모든 유대인들은 메시아 대망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수천년 동안 강대국들의 억압 속에 살았고 아울러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계속적으로 메시아의 도래를 예언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타국의 억압과 착취와 강제 노동과 무거운 조공을 바치며 살아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진정한 종교적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우상숭배의 강요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때로는 지배국의 포로로 끌려가서 억울한 노예 생활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메시야를 보내겠다, 메시야를 보내겠다고 하시며 그가 오면 그로 말미암아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누리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언을 읽고 듣고 배우고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 메시아를 대망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희망이요 이스라엘의 위로요 구원이시오 이스라엘의 자유와 평화이신 그분을 대망하며 하루 하루를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 지도자들 즉,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첫 번째로 이런 질문을 한 것 같습니다. ‘네가 그리스도냐? 네가 메시아냐?’ 이에 대한 요한의 대답은 단호합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강하게 부정합니다(20). 우리 민족이 그렇게도 기다리고 바라는 그 메시아(그리스도)가 아니라고 요한은 말한 것입니다.

 

그들의 두 번째 질문은 그럼 네가 엘리야냐’(21)라고 질문합니다. 이들은 구약 성경을 잘 알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말라기 선지자의 예언에, ‘말세에 엘리야 선지자가 오리라’(4:5-6)는 그 예언을 생각하며, ‘네가 그 엘리야냐라고 물은 것입니다. 한마디로 종말론적 메신저 엘리야이냐라고 물은 것입니다. 이 질문에도 요한은 아니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런데 당황스러운 것은 마태, 마가, 누가복음 즉, 공관복음은 세례 요한을 엘리야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서에서만 세례 요한이 자기는 엘리야가 아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약간 혼란스러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성경 본문을 주의깊게 읽어보면, 마태와 마가는 예수님의 입을 통하여 세례 요한이 엘리야의 심정과 능력으로 온 자이라고 밝히고 있고 누가는 천사의 입을 통하여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한복음은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질문에 요한이 자신이 나는 엘리야가 아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질문하는 그 사람들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승천하신 엘리야가 직접 하늘로부터 오거나 아니면 그가 환생하여 다른 몸으로 올 것이라고 생각하여 이런 질문을 했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이해하고 있는 그 엘리야가 당신이냐라고 물었음으로 세례 요한은 나는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 엘리야는 아니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공관 복음서에서는 세례 요한은 엘리야의 심정과 능력으로 온 선지자가 맞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세 번째 질문이 이어집니다.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21). 이 질문은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그 선지자가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 주는 말입니다. 이는 신명기에 있는 모세의 예언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신명기 18장에 이렇게 예언이 되어 있습니다. “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 18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18:15, 18). 이 예언에 나타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염두에 두고 너는 그 선지자가 아니냐고 물은 것입니다.

 

또한 외경에서도 종말에 이사야나 예레미야가 출현할 것이라고 말하는 자들도 있었고요,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도 1세기의 팔레스틴 지역에 자신을 이스라엘의 구원할 선지자로 일컫는 자들이 들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다양한 배경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세례 요한에게 네가 그 선지자냐라고 물었는데 요한은 아니라고 부정하였습니다. 비록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임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그렇게 인식되는 것조차도 거부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계속 다구치며 네 번째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너는 누구냐’, 우리를 보내 사람들에게 가서 대답하게 하라고 말합니다(22). 그때서야 세례 요한이 자기가 누구이며 무엇을 하라고 보냄을 받았는지를 밝힙니다. “23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자기는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선지자도 아니라고 하면서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여 자신에 대하여 말한 것입니다. ‘나는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 자기는 구약 이사야 40:3의 예언을 따라 온 자임을 밝히나 겸손하게 자기는 외치는 한 소리, 그것도 광야에서 외치는 한 소리라고 말합니다.

 

말씀이신 예수님에 비해 자신은 한 소리라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흔적 없이 사라지는 소리로 자신을 표현했습니다. 새로운 출애굽을 선포하는 한 소리, 메시아를 준비하는 한 소리,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외치는 한 소리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요한에게 네 가지 질문을 했고, 요한은 그들에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나는 엘리야도 아니며 그 선지자도 아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한 소리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24절에 보면 요한에 대하여 조사하기 위하여 온 두 번째 그룹이 나옵니다.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들입니다(24).

 

이제 바리새인들이 보낸 두 번째 그룹이 요한에게 묻는 것입니다. 그러면 네가 왜 세례를 주느냐?’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라는 것입니다. 

요한이 이 질문에 대답을 하면서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시작을 합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이고 나는 그의 신발끈을 푸는 일도 감당하지 못한다’(25-27)고 했습니다. 요한은 나는 물로 세례를 주는 한 작은 종에 불과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다시 말해 성령을 보내주시는 분이심으로 나는 그분에 비하면 참으로 비천한 존재임을 말한 것입니다. 이처럼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높이고 자기는 종보다 더 미천한 사람으로 낮추었습니다.

 

랍비의 전통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제자는 스승을, 종이 그 주인을 섬기듯 섬겨야 한다. 단 신발을 벗기는 것은 제외한다.’ 이 말은 신발을 벗기는 일은 제자나 종들도 안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말에 근거하여 본다면 지금 요한은 자신을 노예보다 더 비참한 존재로 낮춘 것입니다.


요한은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세례를 베풀기도 하고 또한 말씀을 외치기도 하셨습니다. 여기의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는 마르다, 마리아와 나사로가 살았던 베다니와 다른 장소입니다(11:1). 다시 말해서 나사로의 집은 요단강 서쪽에 있었고 요한이 세례를 주던 곳은 요단강 동편에 있던 베다니였다는 것입니다.

이제 요한은 좀 더 본격적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 오는 것을 보시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29)라고 말합니다.

 

보라는 단어는 뒤의 말이 매우 중요하므로 주의 집중하라는 뜻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뒤에 나오는 말씀이 아주 귀한 말씀이니까 주의하라는 의미로 보라라는 단어를 쓴 것입니다.

 

이때의 세상 죄는 세상의 죄들의 총체를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죄 뿐만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개인의 죄든 가정의 죄든 나라의 죄든 아시아의 죄든 유럽의 죄든 이 세상의 인류가 지을 수 있는 죄를 총칭하여 세상 죄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고 간다는 말은 용서하다, 치우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예수님이 세상의 죄를 없애기 위하여 대신 죄를 짊어지시고 가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죄인들의 죄를 짊어지고 가시기 위함이고 또한 이것이 아버지의 뜻인 것입니다. 세상의 죄를 도말하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준비하시고 보내주신 어린양이라는 개념입니다. ‘어린 양은 제의적 중보나 메시아적 인물로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내신 중보자 메시아를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 자기에게로 나아 오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이렇게 외친는 것입니다. ‘보라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가시는 하나님이 보내신 중보자 메시아를.’ 하나님의 어린양의 핵심 사역은 세상의 죄를 해결하는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어서 요한은 계속하여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그분은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시지만 나보다 먼저 계신 분이시다(30). 세상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오신 그분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선재하신 분이라고 다시 한번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세례를 주는 최종 목적은 사람들을 회개시키고 하나님의 아들을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31).

 

그는 계속하여 증언합니다. “32...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그분은 성령 충만하시며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는 이미 구약성경에 예언되어 있는 부분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사야 11:1이하의 그의 종들에게 성령을 부을 것이라는 예언이 예수님에 의해서 성취가 된 것입니다. 또한 마지막 날에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실 것인데 이 예언이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성취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히 세례를 받으시고 또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고 그 메시아를 증언하였다는 것입니다.
˃˃

본문 35절 이하를 보면 세례 요한이 그의 두 제자와 함께 등장합니다. 한 제자는 안드레이고 다른 한 제자는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제자요한일 것입니다(13:23). 세례 요한이 예수님이 거니시는 것을 보고,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소개를 했습니다. 두 제자가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요한의 말을 들었으면 요한을 따르는 게 정상인데 반대로 요한의 말을 듣고 따르기는 그리스도를 따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거하게 되었습니다(37). 안드레와 요한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원래 이들은 세례 요한의 제자였는데 세례 요한이 자기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했더니 그들이 예수님에게로 가서 예수님을 따르고 함께 거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특히 세례 요한의 제자 요한이 예수님의 제자 사도 요한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후에 안드레는 그의 형제 베드로에게 가서 예수님을 소개하게 됩니다.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하고(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자기의 스승 세례 요한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소개받은 안드레가 먼저 자기 형제 시몬을 찾아간 것입니다. 안드레가 자기 형제에게 전한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자기가 만난 경험을 형제에게 이야기 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머물지 않고 그를 데리고 예수님께로 옵니다. 어쩌면 여기까지가 우리가 해야할 일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에게 메시아를 전하고 그를 메시아에게로 데려오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를 보고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42)고 하셨습니다.

게바는 아람어로 바위라는 뜻이고 헬라어로 페트로스라고 합니다. 마태복음은 베드로를 요나의 아들로 소개하고(16:17) 요한복음은 요한의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베드로가 세례 요한의 영적 아들이라는 의미라고 설명을 합니다(벧전 5:13, 12:27). 그래서 이 부분도 세례 요한의 제자가 예수님의 제자로 변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왜 다른 복음서에서는 베드로를 요나의 아들이라고 하는데 요한복음서에서만 요한의 아들이라고 말하느냐는 것입니다. 이는 요나는 요한의 축약형으로 많이 사용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표현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안드레의 손에 이끌리어 나온 시몬을 주님이 게바(베드로)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결론

 

지난번 시가에 이어서 오늘도 세례 요한이 계속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세례 요한은 자기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며 그 선지자도 아니라고 분명히 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선지자의 예언을 따라 온 광야의 외치는 자의 한 소리라고 했습니다.

 

이후 계속적으로 요한은 그리스도를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했고 그분은 선재하신 분이시고 성령을 충만히 받으시고 또한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분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증거를 통하여 나타난 결과는 세례요한의 두 제자, 즉 안드레와 요한이 주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안드레는 자기 형제 시몬을 찾아가서 우리의 메시아를 만났다고 증거하고 그를 예수님께로 데려옴으로 시몬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세례 요한은 그가 이 땅에 보냄을 받은 사명, 즉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함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믿게하는 일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게 주님을 믿고 따르게 하였고, 또한 안드레에 의해서 전도 받은 시몬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이라고 전했고 안드레는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전파하였습니다.

 

우리도 어떤 모습으로든지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전파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다고 전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해 주실 메시야라고 전해야 합니다. 그분은 믿는자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어 주실 분이라고 소개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전도한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전도하는 놀라운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게 바로 성령님을 통한 재생산의 역사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믿는 사람들은 그분 안에 거하며 그분을 적극적으로 따라가야 합니다. 본문에 예수를 따르거늘’(37), ‘따르는 것을 보시고’(38), ‘함께 거하니’(39), ‘예수를 따르는’(40)이라는 말이 여러번 나타납니다. 여기의 따르다거하다는 동사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과 예수님과 함께 머무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두 동사는 요한복음에서 제자도를 의미하는 말로 자주 사용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을 열심히 따르는 자이고 예수님의 제자는 말씀 안에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항상 주님을 따르고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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