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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2 2 <빌립과 나다나엘을 부르심> 이정현 목사 2025-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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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복음1:43-51절 개역개정

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522일 요 1:43-51 빌립과 나다나엘을 부르심

 

요한복음 1장에서 지금까지 기독론적 계시가 이어져 왔습니다. 기록론적 계시라는 말은 성경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한 계시를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 성경을 통하여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나타내 보여주셨다는 뜻입니다. 지금까지의 성경에서 예수님은 말씀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선재하신 분이시며,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고 메시아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가 이제 본문에서는 몇 가지 추가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나사렛 예수이시고, 이스라엘의 임금이시며 그리고 인자로 계시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빌립과 나다나엘을 부르셨을 때 그들이 에수님에게 고백을 한 것에 따라서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빌립을 주도적으로 부르셨고 빌립은 즉시로 주님을 따르는 자가 되었습니다. 주님이 인간을 도구로 사용하지 않으시고 직접 빌립을 부르셨고 그 부르심에 그는 즉시로 주님을 따르는 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빌립이 먼저 주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주님이 먼저 인간을 찾아오신 셈플이 되겠습니다. 이것은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제자가 된 순서로 따지면 안드레, 요한, 시몬 다음에 빌립입니다.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같은 동네 벳새다 출신이었습니다(44). 이 말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전 이들은 서로 잘 알고 있었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합니다.

 

빌립은 예수님을 만난 후 나다나엘을 찾아갔습니다. 안드레가 그랬던 것처럼 빌립도 나다나엘을 찾아서 그리스도를 전한 것입니다.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전도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의 명단을 기록할 때 여기서는 빌립과 나다나엘을 짝지어 기술하지만 공관복음서에서는 빌립과 바돌로매로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다나엘과 바돌로매가 교차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때에 둘은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의 나다나엘은 공관복음서의 바돌로매라는 것입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전한 이 내용은 매우 역사적이고 총체적이고 현실적이었습니다. 이 내용이 역사적이라는 말은 모세의 율법과 이어 선지자의 글을 거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로부터 시작된 성경이 말라기 선지자까지의 기록은 곧 구약 성경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이라는 말입니다. 뿐만아니라 빌립의 이 말은 총체적이라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 전체에 기록된 그분을 우리가 만났다는 것입니다.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39권 전체에서 예언하고 있는 그분을 만났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구약 성경에 기록된 그분이 곧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고 증언합니다. 이것은 현실적이며 실제적인 내용입니다. 빌립에 의해서 예수님은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로 계시가 되었습니다. 본문에서 요셉의 아들로 표현이 되었지만 사실 예수님은 요셉과 마리아의 부부관계를 통하여 태어나신 분은 아닙니다. 어머니의 몸을 빌어 태어나기는 했지만 어머니의 난자를 이용하신 것은 아닙니다. 단순히 마리아의 몸을 빌어 태어나신 것 뿐입니다. 그의 잉태는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되어 태어나신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가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호적상 그의 아버지는 요셉입니다. 그래서 요셉의 아들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요셉의 아들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렇다고 요한은 여기서 예수님을 허구적인 인물이나 가상의 인물로 말하지 않고 그의 가족과 출신지를 밝힘으로 그가 역사적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고 진술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의 역사성과 메시아 계시를 보여주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빌립의 말을 들은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고 말합니다(46).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지만 헤롯의 칼날을 피하여 애굽으로 피신가셨다가 다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 가셔서 살게 되신 것입니다. 이것도 구약의 예언을 이루기 위함이었다고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나사렛 동네는 로마의 수비대가 주둔해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로부터 멸시를 당하였던 곳이라고 합니다. 도덕과 신앙면에서 좋은 평판을 받지 못하는 동네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구약 성경에 전혀 그 동네가 언급 되어있지 않고 선지서의 예언에도 메시아가 나사렛에서 난다는 그 어떤 예언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다나엘의 고향이 가나인데, 가나에서 나사렛 동네까지는 6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나사렛에 대한 평판은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다나엘이 그 나사렛을 좋지 못한 동네로 보았던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사실들을 근거하여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를 증언했던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와서 보라고 말합니다. 빌립은 예수님에 대하여 나다나엘과 논쟁하지 않았습니다. 빌립은 나다나엘을 여러가지 말로 설득하려고 하지 않고 그를 예수께로 데리고 가면 분명히 그도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을 가질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증거했을 때 약간의 반대에 부딪혀도 거기서 중단하지 않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와서 보라.’ 빌립은 나다나엘을 데리고 그리스도에게로 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47)라고 말합니다. 주님은 그를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칭찬을 하셨습니다. 참 목자이시고 참 포도나무이신 그분이 나다나엘에게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그를 진짜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인정을 하신 것입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나다나엘에게 간사함이 없다고 하셨습니다(47). 여기의 간사함은 속임, 교활함, 거짓됨이라는 뜻입니다. 나다나엘은 그런 특성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기, 속임, 교활은 구약의 야곱을 생각나게 하는 단어입니다. 야곱은 형의 권리를 빼앗고 아버지를 속인 간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의 나다나엘은 간사함이 없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은 나다나엘의 속마음까지 다 아셨던 것입니다. 사람의 겉모습이나 말투를 보고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하겠지만 처음 만난 사람의 마음이나 성품을 판단하여 평가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써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다나엘을 보시고 그 속에 간사함이 없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이에 나다나엘이 놀라서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주님은 빌립이 그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하셨습니다(48). 주님으로부터 이 말씀을 들었던 나다나엘은 이전보다 더 놀랐을 것입니다. 조금 전에는 자기의 내면의 상태를 아셨고 이제는 자기의 과거 행적을 알고 보았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까지 다 알고 계시는 분이시고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주님은 우리의 지난날의 과거를 속속들이 다 보고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분 앞에 숨길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주님이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고 하셨습니다. 스가랴의 예언에 보면 메시아 시대에 사람들은 포도나무나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를 초대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메시아 시대에 이루어질 종말론적 풍성한 축복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모든 죄악은 용서함을 받고 사람들은 메시아 왕국의 퐁성한 열매를 경험하고 누리게 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나다나엘은 이 무화과나무 아래서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스가랴가 예언한 메시아가 가져올 그 풍성한 축복과 은혜를 기다리며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러한 나다나엘을 알아보고 간사함이 없는 참 유대인이며 참 하나님의 백성임을 알았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전지하심을 엿볼 수 있는 구절입니다. 주님은 개인의 마음과 생각과 뿐만아니라 과거의 모든 일들도 다 아시는 전지하신 분이십니다.

 

이같은 주님의 말씀을 들었던 나다나엘이 다음과 같은 멋진 신앙고백을 합니다.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여기의 하나님의 아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나타내고 이스라엘의 임금은 통치자 메시아를 나타내는 말인데 이 두 말을 하나로 묶으면 당신은 메시아이십니다라는 고백입니다. 나다나엘은 주님과 몇마디 대화를 나누다가 그가 메시아임을 알고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35절 이하에서만 보더라도 그리스도에 대한 표현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36절에 하나님의 어린양’, 38절에 랍비’, 41절에 메시아’, 49절에 하나님의 아들’, ‘이스라엘의 임금이라고 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여러 사람이 그분에 대하여 표현하는 것이 다양하고 의미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더 풍성히 알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1달에 주신 말씀만 보더라도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를 너무 많이 알려 주셔서 가슴이 벅찰 정도로 감동이 있고 감사가 흘러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시간이 지나고 신앙의 연수가 더해감으로 주님을 더욱더 많이 깊이 알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아는 만큼 그 주님을 예배하고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주님을 경험하게 되고 말씀을 경험하게 되고 그때부터는 성령님의 온전한 통치 속에서 이끌림을 받아 살아있는 신앙생활을 하게되는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에서 이보다 더 큰 일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보게된다는 뜻입니다. 앞으로 나다나엘은 에수님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깨닫고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그리고 승천을 통하여 보여주실 하나님의 놀라운 계시를 나다나엘이 보게 될 것입니다.

 

또한 더 큰 일은 예수님의 다양한 표적과 이적을 두 눈으로 보게 될 것을 말합니다. 그는 가나 출신인데 앞으로 가나에서 일어나게 될 놀라운 두 개의 표적 사건-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고,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시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그가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주님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의 역사에도 그는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들을 포함하여 주님은 이제 앞으로 더 큰 일을 보리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진실로 진실로라는 단어는 요한복음에 무려 25번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에수님의 말씀의 권위와 진실성을 드러내는 말입니다.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이 믿을만하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언제나 아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어떤 말씀이 믿을만하다는 것입니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창세기 28장에 나오는 야곱의 사닥다리를 연상하게 합니다. 야곱이 에서를 피하여 하란으로 가는 도중에 벧엘에 이르러 꿈에 꾸게 됩니다. 그 꿈에 땅에서 하늘에 닿은 사닥다리가 나타났는데 그 위에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사다리 위에 서서 야곱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여기의 하늘이 열리다는 말은 한순간도 닫힘이 없이 항상 열려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는 곧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재확립이 되는 것을 말하며 곧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하늘이 열리고 그동안 죄로 인해 막혔던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었다는 의미로 이 말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역을 통하여 하늘이 열렸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천사들을 말합니다. 그 천사들이 인자위에 오르락 내리락 한다고 한 것은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을 통한 천사들의 수종 사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자는 다니엘서의 예언(7)에 근거하여 그리스도가 구원주이시고 중보자이시며 심판주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닥다리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 그리스도의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가 되셔서 그 역할을 감당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이 중보 사역을 통하여 인간이 하나님과 화목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

 

본문에서 중요한 내용은 빌립이 예수를 믿고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예수님을 전파한 내용입니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45). 구약 성경 전체에 예언된 그분은 바로 나사렛 예수라는 것입니다.

 

이것과 함께 중요한 내용은 예수님에 대한 나다나엘의 신앙고백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49). 이것은 당신은 메시아이십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이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끝부분에서 예수님이 스스로 자기를 계시하신 내용입니다. ‘나는 인간의 내면과 과거까지 알고 있으며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다’(47-48, 51). 이는 주님이 전지하신 분이시고 땅과 하늘을 잇는 유일한 사닥다리이시라는 것입니다.

 

빌립의 증언과 나다나엘의 신앙고백과 예수님의 자기 계시를 통하여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았습니다. 구약 예언의 성취자로 오셨으며 그분은 메시아이시며 그분은 유일한 중보자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중보 사역을 통하여 새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음으로 예수님을 왕으로 섬기는 새로운 영적 이스라엘 백성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새로운 나라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소속감과 자존감을 가지고 세상에서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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