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08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다> | 이정현 목사 | 2024-12-0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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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도행전27:1-26절 개역개정1. 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2.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항해할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3. 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대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 받기를 허락하더니 4. 또 거기서 우리가 떠나가다가 맞바람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고 항해하여 5.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 시에 이르러 6. 거기서 백부장이 이달리야로 가려 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오르게 하니 7. 배가 더디 가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바람막이로 항해하여 8. 간신히 그 연안을 지나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 라새아 시에서 가깝더라 9.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10.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11.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12.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 13. 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하더니 14.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15.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16.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17.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18.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19.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20.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21.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23.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26.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24년 12월 8일 사도행전 27:1-26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다
우리는 이제 사도행전 27장에 왔습니다. 본문의 주요 내용은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는 것인데 우선 가이사랴에서 그레데까지의 항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1-8). 그 다음은 그레데에서 계속되는 항해 중에 해상에서 큰 풍랑을 만나 고전을 하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9-26). 그래서 본문을 두 부분으로만 나누어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 바울이 드디어 가이사랴를 출발해서 로마로 가다가 그레데의 미항까지 가는 내용입니다(1-8). 바울은 오랜 기다림 끝에 로마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때가 아마도 주후 59년 10월경이었을 것입니다. 배 이름은 ‘아드라뭇데노’인데, 이 배는 수리아와 소아시아의 해안을 항해하는 무역선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바울과 동행하는 사람은 적어도 주치의 누가와 수행원 아리스다고이고 밝혀지지 않은 그 외의 사람들도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배에 승선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죄수들입니다. 이 죄수들은 아마도 중죄인들로서 로마의 원형 극장에서 사형에 처해 질 죄수들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사람들의 호송책임은 아구스도 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이었습니다. 율리오는 베스도의 명을 받고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이사랴를 출발하여 150km 정도를 북쪽으로 항해하여 시돈에 도착을 하게 됩니다. 율리오 백부장은 바울을 선대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을 받을 수 있도록 허락하여 줍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바울은 시돈 지역의 형제들로부터 위로와 대접을 받았을 것입니다. 또 다시 항해는 계속됩니다. 시돈에서 맞바람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고 항해를 하는데 구브로는 1차 전도 여행 때 전도했던 지역이었습니다. 또한 3차 전도 여행 귀환 때에도 이곳을 보며 예루살렘으로 갔었습니다. 바울은 그때를 회상하며 지나갔을 것입니다. 그들은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 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본에는 시돈에서 무라까지 15일이 걸렸다고 하지만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무라 항구는 애굽에서 오는 곡물을 로마로 보내는 큰 항구입니다. 대부분의 알렉산드리아 곡물선이 이곳을 지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알렉산드리아에서 북서쪽 방향인 로마로 직행하는 것은 서풍으로 인하여 항해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체로 배는 무라에서 출발하여 그레데 섬의 북쪽을 거쳐 로마의 시칠리아 섬으로 갔던 것입니다. 그들은 무라에서 로마로 가는 큰 화물선인 알렉산드리아 배에 옮겨 타게 됩니다. 이 배는 바람 때문에 하루면 갈 수 있는 길을 여러 날 걸려서 겨우 니도(Cnidus) 맞은편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레데 섬의 남쪽 해안선을 바람막이로 삼아 여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람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다가 겨우 그레데의 미항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정박한 것은 바람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미항은 말 그대로 아름다운 항구이고 항만에 작은 섬들이 있어서 바람을 막아주기도 하며 라새아 성에서는 8km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가이사랴에서 출발해서 그레데 미항까지 오는 항해 여정을 기록한 것이 1-8절의 내용입니다. 두 번째 문단으로 9절부터 26절까지는 미항에서 항해를 하다가 광풍을 만나서 생명의 위험을 느끼며 고전하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 일행은 그레데 미항에서 여러 날이 지났고 유대인들이 대속죄일에 지키는 금식일이 이미 지나갔습니다. 이 속죄일 금식은 보통 유대력 7월 10일(현재 9월 20일)에 지켜졌던 행사인데 주후 59년에는 대속죄일이 10월 5일이었다고 브루스는 밝히고 있습니다. 이 날짜를 말하는 이유는 보통 이 지역을 항해하기에 적당한 시기는 10월 정도로 끝나고 11월부터 다음 해 3월까지는 항해를 중단하는 것이 보통이었기 때문입니다(닫힌 바다). 다시 말해 겨울에 지중해를 항해하여 로마까지 가는 것은 바람의 방향으로 인하여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항해를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여기서 과동 할 것인지를 서로 논의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바울은 미항에서 겨울을 나자는 입장으로,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10)고 권고했습니다. 바울은 신앙에 입각하여 이렇게 권고했는데 이것이 나중에는 예언 비슷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고 출항을 합니다. 선장은 배의 지휘권을 가진 자이고 선주는 배의 주인으로서 이들은 경험과 지식과 이해타산을 앞세워서 이렇게 주장했을 것입니다. 이같은 두 가지 입장에서 최종적인 결정을 내려야 할 사람은 백부장 율리오입니다. 그들이 미항을 떠나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1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 미항과 라새아 항구는 빈약한 촌락이고 겨울에 춥기도 하므로 과동하기가 불편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곳보다 더 번창하고 겨울을 지내기에 편한 뵈닉스로 가자는 것입니다. 이런 결정에 때맞춰 남풍이 순하게 불어서 항해에 용이 한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를 합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잘 되어서 쉽게 뵈닉스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되어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유라굴로는 라틴어로 ‘동북풍’이라는 뜻입니다. 이 유라굴로가 생기는 원인은 그레데 섬 한 가운데 있는 2,100m 정도 되는 이다(Ida) 산맥의 영향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두 반대 기류가 충돌하여 태풍을 일으켜 남풍은 급격한 북풍으로 바뀌게 된다고 합니다. ‘이 근해에서는 남풍에서 맹렬한 북풍으로 바뀌는 일이 허다하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항해자들은 바로 이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난 것입니다. ‘광풍’을 ‘튀포니코스’(typhonnikos)라고 하는데 여기서 태풍(typhoon)이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두 기류가 정면으로 부닥치면서 구름과 바다에 강한 회오리 현상이 일어나면서 한 쪽 방향의 강한 바람을 말합니다. 이것 때문에 백부장과 선주는 물론 선장까지도 배를 조종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배가 바람에 밀려 가는대로 두는 것입니다. 바람에 밀려가던 배는 약 38km나 떠내려가서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까지 갔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여기서 태풍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우선 거룻배를 간신히 끌어올립니다. 거루는 배의 고물에 매달아 끌고 다니는 작은 배를 말하는 데 날씨가 좋지 않으면 이것을 갑판 위로 끌어올립니다. 하지만 경황이 없어서 하지 못하다가 이제야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거루를 끌어 올린 후에는 밧줄로 그 선체를 둘러 감아서 고정시켜 놓았습니다. 그리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 갔습니다. 스르디스(Syrtis)는 해안에 있는 유사(流砂), 즉 넓은 모래 바닥을 말합니다. 이것이 위험한 것은 모래 바닥의 유동이 심하고 또한 이곳에서의 조류의 교착이 심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항해자들은 항해 중 이 스르디스를 만날까 두려워한다는데 이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연장을 내리는데 이는 돛을 갑판 위로 끌어 내렸다는 말일 것입니다. 이렇게 그들은 풍랑을 만나 지금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였지만 이같은 인간적인 노력은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도 풍랑은 잠잠해지지 않았습니다. 직원들은 풍랑을 이겨보기 위하여 안간힘을 씁니다. 다음 날은 사공들이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하여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그 다음 날에는 배의 기구들을 버립니다(18-19). 그러나 점점 희망은 사라지고 그들은 절망 속에 빠졌습니다.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20). 그들은 계속되는 풍랑으로 인하여 여러 날 해와 별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별을 통하여 항해의 방향이나 위치를 찾았는데 별을 보지 못했다는 말은 그것을 전혀 할 수가 없었다는 것으로 흑암 중에 표류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절망하며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 없이 인생을 항해하는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사람 바울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선원들을 격려합니다(21-26). 너희들이 배는 잃겠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며 용기를 북돋아 줍니다.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이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으므로 그는 그 하나님을 믿으며 분명 어느 섬에 도달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경 말씀을 그대로 보시기 바랍니다. “21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미항)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23 나의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26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이것은 절망과 두려움과 탈진과 죽음의 공포 속에 있었던 그들에게 주는 희망의 메시지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것은 바울 자신의 말이 아니라 위로부터 바울에게 주어진 하늘의 계시였던 것이고 바울은 이것에 근거하여 확신 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들을 다 네게 주셨다’는 말씀은 바울 자신만 살아서 황제 앞에 선다는 말이 아니고 ‘너 때문에 이 배의 모든 사람들이 생명을 보존하리라’는 계시인 것입니다. 그래서 배는 가라앉고 있지만 사람들은 구원받을 것인데 한 섬에 걸림으로 이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절망에 빠진 동료들에게 ‘나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25)는 믿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분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약속을 온 마음을 다해 의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바로 위대하신 하나님에 대한 그 믿음을 사람들에게 보여준 것입니다. 결론 본문은 사도행전 27장 앞부분입니다. 주요 내용은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어가는 과정을 다룬 것입니다. 가이사랴에서 그레데까지의 항해를 기록하고, 이어서 그곳에서 계속해서 항해를 하다가 유라굴로라는 큰 풍랑을 만나 고전을 하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본 장 1-26절까지의 내용을 다루면서 한 가지 배우는 교훈은 우리의 인생 여정에 바다의 풍랑처럼 우여곡절도 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순간순간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있음을 생각하고 믿음으로 그 목적에 부합한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바울은 가아사랴에서 2년 동안 감옥에서 고생했지만 이 고생과 어려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로마까지의 항해에서도 여전히 나타납니다. 풍랑을 만나 2주 동안을 죽다가 살아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서도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은 바울을 통하여 나타났습니다. 바울은 비록 죄수 아닌 죄수의 몸으로 배에 실려 가지만 그 안의 모든 사람들은 바울로 인하여 생명의 구원을 받으며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를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풍랑과 파선 중에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나타내며 주위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바울과 같은 이런 멋진 삶이 우리에게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되리라’고 믿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런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 역사가 실제로 우리 눈앞에 이루어짐으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통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고 믿음을 심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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