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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9 22 <에베소에서 일어난 소동> 이정현 목사 2024-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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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도행전20:1-12절 개역개정

1. 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2. 그 지방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3. 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

4.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5.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6.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7.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8. 우리가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9.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10.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11.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12.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4922일 사도행전 20:1-12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돌아서

 

사도행전 19장 후반부에 나오는 에베소의 소동은 이제 그쳤습니다. 은장색이 데메드리오의 소동이 잠잠해 졌습니다. 바울은 두란노와 주변 지역에서 가르쳤던 제자들을 불러서 권면을 한 후 그들과 작별을 합니다. 여기에 사용된 권하다라는 말은 예수님이 장차 오실 성령을 가리킬 때에 사용하신 용어입니다. 다시 말해 바울은 성령님이 하시는 사역처럼 그 마음으로 에베소 형제들을 위로하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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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바나바도 위로와 권면에 힘썼다고 기록하지만 바울도 열심히 이 일에 매진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13:15, 16:40, 20:1-2, 27:35-36, 28:15). 바울은 위로자였고 진리로 권면하는 일에 진력했던 자였습니다. 이처럼 에베소의 형제들을 잘 권면한 후 그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마게도냐로 갑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시간이 굉장히 빠르게 지나가고 압축되어 있으므로 유심히 관찰해야 본문의 혼동을 피할 수 있습니다. 일단 본문 전체를 간단히 분류하면 6절까지는 여행과정을 보고하고(에베소-마게도냐-아가야-빌립보-드로아) 이어서 7-12절까지는 드로아에서 성도들과 함께 만나는 내용입니다.

 

그러면 여행 경로부터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20:2그 지경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라는 말을 좀 더 구체적으로 풀어쓸 수 있습니다. 마게도냐 지경을 다녔다는 말인데 그는 먼저 에베소에서 드로아로 갔습니다. 여기서 먼저 고린도로 보낸 디도를 만나기로 했으나 만나지를 못했습니다. 전도할 기회도 있었지만 포기하고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마게도냐로 건너갔습니다. 거기에서 디도를 만나 고린도교회의 문제가 잘 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에서 고린도후서를 써서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2차 전도 여행 때 세웠던 빌립보 교회와 데살로니가 그리고 베뢰아 등지를 심방 하였습니다. 로마서 15:19에 나오는 일루리곤 전도는 아마도 이때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그리고 헬라에 이르렀다는 것은 아가야 지방으로 갔다는 말입니다. (지도 보여줌, 일루리곤까지 나오는 지도)

이어지는 3절 말씀에 거기 석 달을 있었다는 것은 고린도에 3개월 있었다는 말입니다. 아마도 주후 58년 겨울부터 59년 봄까지를 말한다고 봅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가이오의 집에 머물면서 로마서를 쓰게 됩니다(16:23). 2차 전도 여행 때 이곳에 16개월 동안 머물면서 데살로니가 교우들에게 환란 중에도 종말론적인 신앙을 유지할 것을 권면했었는데 이제는 로마교회에 죄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고 편지를 써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기독교 역사에 남을 만한 아주 중요한 작업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계획은 고린도에서 배를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그를 해하려는 공모가 탄로 나고 말았습니다. 겐그레아에서 배를 탈 때 유대인들이 습격하여 바울을 죽일 수도 있고 아니면 유월절이 되어 흩어졌던 많은 유대인들이 배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이때 배에서 바울을 해쳐 바다에 던질 계획을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이같은 계획을 알아차린 바울은 자기의 전도 여정을 변경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가야에서 마게도냐를 거쳐 육로로 돌아가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배를 타고 가는 것보다 육로로 가게되면 시간이 훨씬 더 오래 걸리고 많은 헌금을 수송해야 하기 때문에 고생이 더 많고 위험도가 더 높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로로 갈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4절에 나오는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이방인 교회들로부터 구제금을 거두어 예루살렘에 전달하고자 바울과 같이 가는 자들을 말합니다. 그들의 이름이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입니다. 이들은 바울이 개척한 교회들을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하고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기독교인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헌금한 교회의 대표였을 것입니다.

 

좀 더 확장 정리해서 말씀을 드리면 마게도냐 교회의 대표는 소바더, 아리스다고, 세군도였으며 갈라디아 지역의 대표는 가이오와 디모데이고 아시아 지방 교회들의 대표는 두기고와 드로비모였을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의 대표는 나타나지 않지만 아마도 디도가 그 책임을 졌을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여러 지역의 교회가 이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교회 전체의 단합과 일체감을 더욱 높이는 효과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들 이방인교회 전체가 예루살렘의 어려운 유대인 신자들을 한마음으로 돕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는 이방인과 유대인의 차별을 뛰어넘는 사랑의 행위이고 또한 지역과 나라를 넘어선 범 세계적인 구제행위였던 것입니다.

 

바울의 훌륭한 동역자들 일곱 명 중에 여섯 번째로 나오는 두기고는 바울이 가장 신임하는 조수이며 로마 옥중에서까지 바울과 함께 했으며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의 전달자이기도 합니다(6:21, 4:7, 딤후 4:12, 3:12). 위의 7인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바울보다 앞서 마게도냐로 떠나게 됩니다.

 

여기 흥미 있는 단어 우리6절에 출현을 하는데, 이 단어는 사도행전 16:10-40에서 사용되었다가 사라진 단어였는데 여기에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가 여기서 합세했다는 말인데, 2차 전도 여행 때 빌립보에 머물렀던 누가가 다시 바울 일행과 합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빌립보에서 무교절을 보낸 그들은 배를 타고 닷새 만에 드로아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1주일을 머물게 됩니다. 이틀이면 도착할 수 있는 이 항로(16:11)5일이나 걸린 것은 역풍을 만났기 때문일 것이고 여기에서 먼저 도착한 형제들을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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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드로아의 교우들과 함께 모여 말씀을 들으며 친교하게 됩니다. 207절에 아주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이 나오는데 그들이 그 당시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드렸던 모임의 날이 안식일이 아닌 안식 후 첫날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도 시대에 이미 예배일이 안식일에서 안식 후 첫날’(지금의 주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이 말은 유대인의 날짜 계산을 따른다면 토요일 저녁이고 로마식 계산에 의하면 일요일이 됩니다. 성경은 이 날을 매주 첫날’(고전 16:2)주의 날’(1:10)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주일이라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초대교회의 문서 중에 가장 권위 있는 문서로 알려진 디다케라는 것이 있습니다(50-150). 여기에 이미 성도들이 주일이라고 불리는 날에 원근각처에서 한곳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안디옥의 감독이었던 이그나티우스(117년에 순교)안식일을 이제 지키지 않고 주일을 지킨다고 했으며 사데의 메리트(Melite, 170년경)주의 날에 대한 논문을 썼으며 고린도의 디오니시우스(Dionysius, 175년경)는 로마로 보낸 편지에서 고린도에 있는 교회는 주의 날을 성일로 지킨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역사적 증거들을 통해 볼 때 1세기에 이미 안식일이 주일로 지켜졌고 2세기에 와서는 완전 정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떡을 뗐다는 표현이 애찬을 말하는가 아니면 성찬을 말하는가라고 할 때에 브루스는 애찬으로, 칼빈은 성찬으로 말하나 후자가 더 정확하다고 보여집니다. 처음에 애찬을 하다가 나중에 성찬을 나누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여기서 알게되는 것은 초대교회의 예배에는 말씀과 성찬이라는 두 기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임의 시간대가 어느 때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저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들은 안식 후 첫날 모임을 토요일 저녁에 가졌다는 것인데 이는 요한복음 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를 근거로 이렇게 모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저녁에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림으로 주일을 시작한 것입니다.

 

드로아 교회의 어느 주일 저녁에 바울이 설교를 하는데 내일 떠나야 하기 때문에 밤중까지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날이 캄캄하기 때문에 이곳저곳에 등불을 많이 켜놓고 예배를 드립니다. 바울은 진리를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자 하는 아비의 마음으로 더 오래도록 설교를 하는데 그만 졸음을 견디지 못한 유두고라는 청년이 창문에 걸터앉아 있다가 3층에서 떨어져 죽는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만약 오늘날 이런 일이 있었으면 해외 토픽감으로 신문이나 TV에 난리가 날 것입니다. ‘예배드리다가 아까운 청년이 죽었다.’ ‘교회가 안전장치를 안 해서 그렇다.’ 아니면 설교를 적당히 해야지 야밤까지 해서 그렇다.’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오가며 사회가 떠들썩했을 것입니다.

 

제가 오래전에 이 본문을 근거로 졸면 죽는다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열심히 설교하는데도 여전히 조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졸면 죽는다는 이야기를 하는데도 여전히 졸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심정이 얼마나 무디고 완악한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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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예배 드리던 한 청년이 3층 창문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급히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떨어진 청년을 일으켜보니까 죽었습니다. 바울에게 알렸더니 바울이 급히 내려와서 그 청년을 부둥켜안고 말하기를 떠들지 말라 생명이 저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죽었는데 바울이 볼 때에는 죽지 않고 숨이 붙어 있었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 청년은 기절한 것이 아니라 죽은 것입니다. 이것을 의사 누가가 판단을 하고 죽었느니라고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12절에 살아난 청년이라고 말하는 것은 죽음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주의 능력으로 죽은 청년 유두고를 살려 그들에게 위로를 주었고 계속하여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 했습니다. 밤새도록 복음을 가르친 바울은 다음날 밀레도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결론

 

그 본문은 3차 전도 여행 때 에베소를 떠난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을 거쳐서, 다시 역으로 아가야에서 마게도냐를 지나 아시아의 끝자락인 드로아까지 되돌아오는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주로 이 기간 동안에는 교회를 돌아보며 양육하고 든든히 세워나가는 일과 교회에 적당한 편지를 쓰는 것과 경제적으로 어려운 예루살렘 교우들을 돕기 위하여 구제금을 모으는 일을 하게 됩니다.

 

바울의 이같은 사역은 오늘날 교회가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복음을 전하고 말씀으로 그들을 양육하고 권면하거나 격려하기도 하며 또한 어려운 형제자매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는 위로 하나님을, 옆으로는 이웃을 잘 섬기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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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바울 일행은 마게도냐에서 아시아로 건너왔습니다. 드로아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다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3층에서 떨어져 죽은 유두고를 살리고 그들을 권면한 후 다음 목적지인 밀레도 섬으로 떠나는 바울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피곤하면 졸릴 수 있지만 예배 시간에 그것도 말씀 듣다가 조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예배 시간에 조는 것은 영적으로 죽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은혜받거나 깨달을 수 없습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말씀에 주의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졸지 말고 깨어 있으라고 하셨는데 제자들은 졸다가 결국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떠나고 말았습니다. 신앙에 실패한 것입니다.

 

칼빈도 예배 시간에 옆 사람과 숙덕거리지 말고 또한 졸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따르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에도 공중예배를 위한 회중의 모임과 그 태도에 관해 목사나 예배하는 사람들을 방해하는 것을 금하며 멍하게 바라보거나 잠자거나 그런 보기 흉한 행동을 하여 자기도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고 남도 못하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배 시간에 졸리면 유두고를 생각해서 정신 바짝 차리고 예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유두고가 지금도 우리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예배 시간에 졸면서 그 영혼이 살자는 없다.’

 

어떤 사람은 설교가 너무 어렵다고 설교 시간엔 아예 귀를 막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기도에 적극적으로 분참하며 찬송을 열심히 부르며 정성스럽게 헌금을 드리는 것도 아닙니다. 예배 시간에 일찍 오는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으며 은혜가 되겠습니까? 간절히 바라기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소망의 모든 식구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제목/ 1)우리교회가 복음을 전하고 말씀으로 그들을 양육하고 권면하거나 격려하기도 하며 또한 어려운 형제자매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감당하게 해 주시옵소서. 2)하나님을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우리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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