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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7 28 <아시아에서의 전도와 마게도냐인의 환상> 이정현 목사 2024-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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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도행전16:1-10절 개역개정

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2.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3.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4.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5.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4728일 행 16:1-10, 아시아에서의 전도와 마게도냐인의 환상

 

 

사도행전 15장 마지막 부분에서 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을 시작합니다. 마가 요한을 데려가자는 문제로 바나바와 바울이 서로 심히 다투어 결국에는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서로 심히 다툰 것은 분명히 큰 문제점이지만 여기에는 하나님의 섭리 중에 긍정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전도팀이 두 개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부로 섬으로 전도하러 갔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수리아와 갈라디아 지방으로 전도하러 갔습니다. 결국 이들에 의해 좀 더 넓은 지역으로 복음이 확신되었고 교회가 평안히 든든히 서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다투는 사건은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이 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오늘의 본문은 바울과 실라가 소아시아 지역에서 전도하는 장면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실라와 함께 안디옥 교회가 있는 수리아 지역을 다니며 전도합니다. 그리고 바울의 고향인 길리기아 다소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마침내 1차 전도 여행의 마지막 지역이었던 더베와 루스드라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곳에서 바울은 디모데를 만나게 됩니다.

 

이 디모데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아마도 바울의 1차 전도 여행 때인 것 같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신앙이 잘 성장해 온 청년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유대인이었으나 아버지는 헬라인이었습니다(딤후 1:5). 이는 혼혈아란 말입니다. 그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영광그리고 보배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은 보배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성경은 그를 가리켜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말하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자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디모데는 혼혈족이라는 비난 속에서도 신앙으로 바르게 성장하여 칭찬을 듣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남들로부터 칭찬을 듣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그는 수준 높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루스드라에 기거하여 살았지만 이고니온 사람들로부터도 칭찬을 받았다고 말합니다(2).

 

우리는 여기서 교회의 지도자를 세울 때 성도들과 이웃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됩니다(1:22, 6:3, 딤전 3:7). 그리고 눈에 보이는 부모나 형제에게 잘하지 못하는 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어찌 잘할 수 있겠느냐고 하신 예수님의 책망의 말씀도(15:4) 상기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이 당시 디모데의 나이가 16세 정도 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젊었을 때부터 그는 영적 지도자가 되기에 잘 준비되어 갔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잘 성장한 디모데가 필요해서 그를 데리고 전도 여행을 떠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디모데가 헬라인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복음전파 하는 일에 방해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할례를 줍니다. 디모데의 무할례가 말썽이 되어 복음 전도에 지장이 될까봐 염려가 되어 그에게 할례를 받게 한 것입니다.

 

이것은 갈라디아서 2(3-5)에서 순수 헬라인 디도에게 할례를 줄 필요가 없다고 한 것과는 다른 처사였습니다. 디도에게 할례를 거부한 것은 할례가 구원의 전제 조건이 아님을 강력히 말하고자 한 것이며 여기 디모데에게 할례를 준 것은 유대인들에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만약 여기서 디모데가 할례를 받지 않았다면 후에 회당에 들어가서 설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이야기는 구원의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효과적인 사역 차원에서 행한 일로 보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디모데는 루스드라를 떠나기 전에 안수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바울과 교회의 장로들은 그를 구별하고 그에게 사역을 위임한다는 의미로 안수했을 것입니다(딤전 4:14, 딤후 1:6). 디모데는 이때부터 바울의 영원한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이 로마 옥에 갇혀 있었을 때 그 때에도 디모데가 함께 있었습니다(1:1, 2:19, 1:1, 1:1).

 

이제 그들은 세 사람으로 구성된 전도팀이 되었습니다. 아시아 지역의 여러 성으로 다니며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했더니,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게 되었습니다. 4-5절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4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5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여기의 여러 성은 두말할 것도 없이 제1차 전도 여행 때 바울이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운 도시들을 말할 것입니다. 그 도시들을 다니며 사도들과 장로들이 작성한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였습니다. 작정한 규례는 15:2029절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여기서의 규례’(타도그마타)라는 말은 로마 황제의 칙령’(2:1, 17:7)이나 유대인의 율법적인 규정’(2:15, 2:14)과 같은 뜻으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이 말은 예루살렘교회가 만든 작정한 규례가 황제의 칙령이나 율법적인 규정과 맞먹는 권위를 가진 결의 사항이며 문서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문서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였더니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욱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갔다고 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이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신앙적 차이가 없어지고 교회가 더욱더 안정되어 갔고 또한 성장해 갔다는 말입니다. 안정과 성장은 그 교회가 건강하다는 표현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끊임없는 은총이 이들의 사역 위에 함께 하셔서 남갈라디아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되어 갔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음 구절에서 복음전파에 중요한 변수가 나타납니다. 바울은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기를 원했지만 성령께서 이를 막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을 지나서 무시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성령께서는 가지 못하게는 하셨어도 현재로는 갈 바를 지시해 주시지는 않았습니다.

 

본문 6-7절을 통하여 이 사실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전도를 못하게 하셔서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을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무시아 앞까지 가서 여기서 북쪽에 위치한 아시아의 끝자락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썼지만 여기서도 예수의 영(성령님의 다른 이름, 8:9, 4:6, 1:19)이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바울은 아시아에서 전도하길 원하였지만 성령께서는 그것을 허락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이런 지역에 복음 전파를 허락지 아니하셨다는 것은 그 지역의 사람들을 버리셨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바울에 의한 그곳에서의 전도는 잠시 연기하셨을 뿐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비두니아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보면 주후 70년에 비두니아의 지사였던 플리니가 로마 황제 트랴얀에게 보낸 편지에 보면 플리니 지도하에 그곳에는 많은 그리스도인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 이후 누구를 통하여 성령께서 그곳에서 전도하게 하심으로 전도의 열매를 맺게 하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자기가 일하실 때와 장소와 사람을 당신의 뜻대로 정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가장 적당한 때에 그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아시아(에베소를 비롯한 여타 지역)에서도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고 비두니아(아시아 북동쪽에 위치함)로 가지도 못하게 하셔서 바울 일행은 아시아의 서쪽 끝에 위치한 드로아로 내려갔습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자기의 계획대로 된 것이 없습니다. 전도계획이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이것도 막히고 저것도 막혔습니다. 하나님이 아시아에서의 전도를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또한 전도의 문을 열어주시지도 않으셨습니다. 바울은 이런 일로 실망하고 낙심하여 원망, 불평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기의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고 쉽게 불평하거나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고 그 밤에도 잠잠히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여기에서 비로소 바울은 어디로 가야할지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2차 전도 여행 경로를 지도로 보겠습니다(안디옥-다소-브루기아와 갈라디아(6, 더베-루스드라-이고니온-안디옥)-무시아-비두니아-드로아)

 

드로아에 도착하였을 때 하나님의 인도가 이들에게 나타났습니다. 9절과 10절의 말씀입니다. “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바울이 밤에 환상을 보았는데, 이 환상은 잠자다가 본 것이 아니고 황홀함 중에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환상은 마게도냐 프로젝트에 관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지시였습니다. 바울은 마게도냐 사람의 손짓-와서 우리를 도우라-을 하나님의 인도와 부름으로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전도자들을 주권적으로 인도해 가시는 모습입니다. 결국 성령님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막으신 것은 우선 유럽에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우고자 하셨다는 것입니다. 복음 전파의 지역 선정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넘어가는데, 이것이 곧 성령님의 뜻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호소-와서 우리를 도와 달라)은 온 인류의 부르짖음의 표본입니다.’ 지금도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교회와 전도자들을 향하여 와서 우리를 도와 달라고 아우성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름을 느끼고 곧장 그들에게 달려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함으로 저들을 도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사용된 단어 우리’(we section)에서 사도행전의 저자가 이 여행에 동행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누가는 어설픈 사료들을 이용해서 이 책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보고 듣고 체험한 바를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바울을 비롯한 전도자 일행은 실라, 디모데 그리고 누가가 되는 것입니다.

 

이들이 환상의 지시를 따라 배를 타고 아시아를 떠나 유럽지역으로 건너가는데 이 광경을 에버릿 해리슨(Everett Harrison)이라는 사람이 알렉산더 대왕과 비교하여 이렇게 묘사한 글이 있습니다. “알렉산더는 세계를 멋지게 정복하여 손에 넣고자 모든 헬라인을 이끌고 서에서 동으로 진격했다. 이제는 개종한 한 유대인이 정반대 방향인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그리스도를 위해 정복에 나서고 있다.” 헬라의 알렉산더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기 위하여 서에서 동으로 진격했지만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제 복음으로 세계를 정복하기 위하여 동에서 서쪽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알렉산더와 바울의 사이의 차이점은 하나는 성령님의 지시없이 인간의 뜻대로 자기의 욕망을 이루기 위함이었지만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인도를 받아 유럽으로 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른 그 결과는 성공이었고 유럽 지역 전체가 복음으로 편만해 지고 곳곳에 교회에 세워지고 문명과 문화가 세계에서 가장 발전하는 나라들이 된 것입니다.

 

바울 일행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이전에는 주저하였으나 환상을 통해 그 뜻을 알게 되었을 때 즉각 순종하여 배를 타고 마게도냐로 건너가게 된 것입니다. 아시아를 떠나 유럽으로 건너간 것입니다. 이 선교팀의 유럽진출은 결국 서양의 역사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위대한 발걸음이 된 것입니다.

 

결론

 

우리가 사도행전 16장 앞부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무엇을 배우게 됩니까?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전도 계획이 아시아에 있지 아니하고 마게도냐 즉 유럽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부르기아와 갈라디아 지방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지만 집중적으로 전도하지 못하고 그 지역을 떠나야만 했던 것은 성령님이 막으셨기 때문입니다. 저 북쪽지역인 비두니아 전도 계획도 예수의 영이 막으셔서 전도를 하지 못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대신 성령님께서 전도자들을 드로아로 인도해 주셔서 그곳에서 환상을 통하여 마게도냐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바울은 부르기아, 갈라디아, 비두니아에서 전도하기를 계획했지만 성령님은 그들을 마게도냐 즉 유럽지역으로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우리가 계획을 세워도 그 걸음을 인도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아시아에 대한 전도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다른 계획을 갖고 계셨고 그것을 그대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전도 뿐만아니라 우리의 모든 일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인생의 계획을 아무리 치밀하게 세운다고 할찌라도 결국은 하나님이 그 모든 일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학업 계획, 결혼 계획, 자녀 계획, 직장과 사업 계획, 노후 계획, 영적 계획 등등을 당신이 원하시는 선하신 뜻대로 인도해 가시고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리빙스턴은 중국으로 가려고 선교 준비를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를 아프리카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캐리는 남태평양에 있는 동안 폴리네시아에 가려고 계획을 세웠으나 하나님은 그를 인도로 인도하셨습니다. 또한 허드슨은 먼저 인도로 갔으나 후에 하나님의 영에 이끌리어 버마(미얀마)의 선교사로 갔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결국 오늘 본문의 교훈을 뒷받침 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름대로의 인생을 계획하여 살고 있으나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설사 우리의 계획대로 되었다 할찌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지 우리가 잘나고 똑똑해서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자기가 마음대로 계획을 하고 마음대로 살면서 자기 인생은 자기 것이라고 큰 소리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참으로 교만하고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4:13-15).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20:24). 그리고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16:9)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16:3)고 하셨고 “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6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37:5-6)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의 계획을 예수의 영께서 막으셨으나 결국 주님은 유럽에 전도의 문을 활짝 열어주셔서 더 활발하게 복음 전파 사역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결국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선하고 좋은 길을 보이시고 그 길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성령님의 온전한 인도를 받으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성령님의 통치에 전적으로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분의 인도하심 가운데 하루하루를 복음 전하며 행복하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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