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목사설교

  • 홈 >
  • 예배 · 설교 >
  • 이정현목사설교
이정현목사설교
2024 07 21 <예루살렘 총회와 제2차 전도여행 시작> 이정현 목사 2024-07-21
  • 추천 0
  • 댓글 0
  • 조회 196

http://isomang.net/bbs/bbsView/13/6420504

[성경본문] 사도행전15:1-41절 개역개정

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2.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3.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12.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듣더니

13.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14.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

15.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도다 기록된 바

16. 이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21.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

22.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들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결정하니 곧 형제 중에 인

23. 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 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24.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지시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혼란하게 한다 하기로

25.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며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노라

26. (25절에 포함됨)

27. 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그들도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

28.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29.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30. 그들이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31.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32.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33. 얼마 있다가 평안히 가라는 전송을 형제들에게 받고 자기를 보내던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되

34. (없음)

35.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수다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

36.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4721일 행 15:1-41, 예루살렘 총회와 제2차 전도여행 시작

 

사도행전 13장과 14장은 안디옥교회의 파송을 받은 바나바와 사울이 구브로와 남 갈라디아를 중심으로 제1차 전도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가는 곳곳마다 복음을 전하여 여러 교회를 세우고 교회 치리자로 장로들을 세움으로 교회를 견고하게 해 나가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본문인 15장은 예루살렘 총회와 제2차 전도여행의 시작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1-35절에서는 예루살렘 총회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고, 그 이하(36-41)는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의 시작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에서 교회 역사상 최초의 종교회의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또한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의 초기에 바나바와 서로 다투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오늘은 몇 가지 질문을 하고 거기에 대한 답변을 통하여 본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예루살렘 총회란 무엇입니까? 이 총회는 기독교회 역사상 최초의 총회입니다. 그리고 바울의 제1차 전도여행과 제2차 전도여행 사이에 있는 삽화적 사건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이방인 교회였던 안디옥교회의 요청으로 바나바와 바울을 파송하여 예루살렘에서 모인 회의였습니다. 문제의 이슈와 회의 과정과 그 결과는 이후 모든 회의의 원리적인 측면에서 모범이 된다고 봅니다.

˃

다음은 왜 모였습니까? 모이게 된 이유와 목적에 관해서는 본문 1절에서 5절 사이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1절에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이 사람들은 예루살렘교회의 공식적인 파송자들이 아니고 그들의 주장도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니었습니다. 24절에 나오는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지시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혼란하게 한다는 말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교회에서 파송한 공식적인 지도자들이 아닌데도 그들은 이방인 교회를 찾아와서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이들의 주장은 안디옥 교회를 혼란하게 했고 성도들을 괴롭히는 처사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예루살렘의 유대주의자들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유대주의자들은 안디옥에서 뿐만 아니라 유대에서도 이방인들이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강경하게 주장을 했던 것입니다. 여기 마땅하다는 말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이것을 확정적인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갈라디아교회에도 이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3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2:3-4). 그들이 교회 안에 가만히 들어 온 것은 우리가 주안에서 가진 자유를 빼앗아 종으로 삼고자 함이라고 했습니다. 거짓 교사들과 거짓 선지자들, 거짓 이단들은 전부 다 가만히 교회 안에 들어오는 아주 못된 사람들입니다. 속이고 사기치고 거짓말해서 우리가 가진 신앙을 빼앗고 자유와 믿음을 빼앗아 마귀의 종으로 만들고자 함인 것입니다.

 

이 문제로 인하여 안디옥교회 안에서 적지 않은 변론과 다툼이 일어났습니다(2). 여기의 변론과 다툼의 원어는 엄청난 투쟁과 반목, 분열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는 단어입니다. 다른 성경에서는 이 단어를 폭동혹은 반란으로 번역되기도 했습니다. 그 정도로 교회에 심각한 영향을 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일 중의 하나가 변론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에서 하나님의 사람이 피해야 할 첫 번째 사항이 변론과 언쟁이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는 문제 해결도 안 될 뿐만 아니라 아무런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 문제를 가지고 자기들끼리 아무리 변론해 봐야 좋은 결론이 나지 않으니까 안디옥교회는 이 문제를 예루살렘교회로 보내기로 합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사도들과 장로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이 문제를 질의해서 해답을 받아보자는 얘기입니다.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2).

˃

안디옥교회의 보냄을 받은 바울과 바나바는 예루살렘까지 오면서 여러 교회에 들러 간증을 합니다. 베니게와 사마리아 교회를 둘러 오면서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에 관하여 말했습니다. 이 은혜스러운 간증은 많은 형제들의 마음을 크게 기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에도 1차 전도의 결과를 보고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이때의 예루살렘 방문이 1차 방문(9:26-30)2차 방문(11:27-30)에 이어 3차 방문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예루살렘 총회가 모이게 된 것은 유대인 신자들이 이방인 신자들도 모세의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 것 때문입니다. 아울러, 유대인들의 의식을 지켜야만 하는가의 문제로 회의가 소집된 것입니다. 이것은 양쪽에게 심각한 교리적 문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

그러면 예루살렘 총회가 어떻게 진행이 되었습니까?(6-29) 총회의 의장 역할은 야고보가 맡고 순서는 서로 충분히 토론을 한 후 베드로, 바울(바나바)에 이어 마지막으로 의장이 연설하고 결론을 내리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많은 토론 이후에 있었던 베드로의 연설부터 보도록 하겠습니다. 베드로의 연설은 짧았지만 아주 강렬했습니다. 그는 고넬료 사건을 근거로 이방인의 자유를 강력히 주장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연설한 이때가 만약 주후 49년경이라면 적어도 10년 전의 이야기를 또다시 예루살렘 교회 앞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그 사건은 베드로 자신에게 충격적이고 의미 있는 계시적인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계속해서 베드로는 유대인들도 율법의 멍에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어찌 이방인들에게 그 짐을 지우려고 하느냐? 이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10). 여기서의 이나 멍에는 동일한 의미로 일반적인 종교적 의무들을 뜻합니다. 어느 누구도 율법을 온전히 순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인간들에게 무거운 짐일 수밖에 없습니다. 베드로의 결론은 우리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셨다’(8)는 것과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는다’(11)는 것입니다. 이방인들도 우리와 동일하게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

베드로의 증언에 이어 바나바와 바울이 나서서 말합니다. 그런데 누가는 이들의 사역을 간단히 기술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역도 많았고 한 이야기도 많았을 것이나 간단히 기록하고 넘어갑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셔서 기사와 표적이 일어났다고 공회 앞에서 진술했습니다.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듣더니”(12). 이들은 우리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의 일에 관하여 진술하였습니다.

˃

이어서 의장인 야고보가 연설을 하는데 사도행전 15장의 연설자들 가운데 가장 길고 상세하고 정확하고 지혜로운 말씀을 하셨다고 봅니다. 이때의 야고보는 주님의 동생 야고보이며 야고보서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여기서 대변인이자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결정자였으며 또한 선포자였습니다.

 

그는 먼저 베드로의 말을 지지하면서 그것은 선지자들의 말씀과 일치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구약의 아모스 9장의 말씀을 자유롭게 인용하여 시몬의 말이 옳음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자기의 의견을 말합니다. “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19-20).

 

이것은 교회의 화목을 깨지 않기 위하여 조심스럽고도 지혜롭게 이야기 한 것입니다.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온 자들에게 무거운 짐(할례나 기타 의식들)을 지움으로 그들을 괴롭게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특히 여기서 야고보가 할례의 문제 때문에 모인 것을 앎에도 직설적으로는 그 단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우회적으로 말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는 유대인들을 배려해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유대인들이 싫어하는 사항인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에 대하여 멀리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동등하게 받아들여야 하고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

야고보가 멋지게 마지막 연설을 하고 난 후 이제 예루살렘 공회는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립니다.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 할례를 받아야 할 필요가 없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믿음으로 받을 수 있다. 단 유대인들이 싫어하는 다음의 몇 가지 사항은 지키도록 하라.’ 이 결정을 수용하는 태도도 보면 참으로 놀랍습니다. 22절에 나오는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이 결정을 받아들였다는 것인데, 야고보는 평신도 지도자이고 어쩌면 장로였을 것인데 그의 주장을 사도들과 교회가 순순히 받아들이고 복종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들을 보아서 야고보는 교회의 지도자로서 상당한 존경을 받고 있고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의롭고 경건한 삶을 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낙타 무릎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그의 경건과 권위는 가늠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

이렇게 받아들여진 결정을 안디옥, 수리아, 길리기아 지방의 교회에 알리기로 했습니다. 유다와 실라를 뽑아서 그들에게 이 역할을 맡깁니다.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이들을 보내면서 결정문을 다시 한번 더 확고히 해 줍니다. “28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29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28-29).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사도들과 장로들의 이 결정은 교회만의 결정이 아니라는 것인데, 이는 성령이라는 주체에 관하여 먼저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단순한 교회의 결정이 아니라 성령님이 기뻐하시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결정한 것은 양편 모두에게 만족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유대인들은 구약 성경의 율법과 의식에 전혀 친숙하지 않은 새로운 이방인 신자들에 대해 인내하고 관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고 이방인들은 먼저 신자가 된 유대인들에 대해 신경을 써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

이제 이런 결정문을 문제의 발단지인 안디옥교회에 보내게 됩니다. 유다와 실라는 이 편지를 받아들고 안디옥에 내려가 교회를 모으고 그것을 전합니다. 유다는 유대인이었고 실라는 헬라인이었기 때문에 이 편지의 내용을 전하는 데 가장 적당한 인물이었던 것 같고 아울러 그 회의 결정 사항에 신뢰를 더하여 주었을 것입니다. 안디옥 교인들은 그 편지를 읽고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유다와 실라도 자기들의 사명을 따라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위로, 권면하고 그들의 전송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옵니다.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 머물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주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합니다.

 

지금까지는 예루살렘 총회가 모이가 된 배경과 총회의 과정과 그 결과 그리고 결정사항의 전달까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난 후 얼마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

바울은 각 성의 성도들이 어떠한지가 궁금했습니다. 바울은 한 번 더 선교여행을 떠나고 싶어 했습니다. 이번에는 제1차 전도 여행 때 개척했던 교회들을 재방문하는 데 중점을 두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나바에게 그들을 방문해 보자고 제의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바울과 바나바는 마가 요한의 동행 여부를 놓고 첨예한 갈등을 보이게 됩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가고자 하지만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함께 해 온 두 파트너 사이에 요한의 동행 문제로 논쟁이 가열되었습니다. 서로 옳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바나바는 안 데리고 가는 것을 옳지 않게 생각하였고, 바울은 데리고 가는 것을 옳지 않게 여겼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게 됩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가서 전도를 하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육로로 갈라디아 지방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바나바의 사역에 관한 기록은 사도행전에 나타나지 않고 바울의 사역을 중점적으로 취급합니다. 바울은 각 지역에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세워 교회를 든든히 하는 것이 주 목적이었는데 이제 그 일을 성실히 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1차 전도여행 이후 거의 3년 만에 실라를 파트너로 선택하여 2차 전도여행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 때가 주후 49-50년경이 되었을 겁니다. 그는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했습니다(41).

 

두 사람, 즉 바울과 바나바의 다툼은 신학적인 문제가 아니었고 또한 나중에 바울이 마가 요한을 동역자로 삼는 것과 무엇보다 이것을 통하여 두 개의 선교팀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보아 긍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결론

 

본문은 초기 교회의 문제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방인 기독교인과 유대 기독인들 사이의 갈등 문제였습니다. 단적으로 할례가 구원의 조건인가 아닌가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안디옥교회의 요청으로 예루살렘 공회가 모인 것입니다.

 

모여서 회의를 하는데 사실 유대인들의 입장은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입장, 성령님의 입장, 사도들의 입장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서로에게 좋은 결정이었습니다.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서로에게 유익하고 좋은 결정이었습니다. 회의의 결과가 통보되고 이후 모든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문제로 인하여 혼란해진 것이 아니라 지혜롭게 잘 결정함으로 이방인 선교에 더 박차를 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회의도 이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에 문제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문제가 있을 때 같이 토의하되 결정은 성령님의 입장을 고려하여 결정하시면 좋겠습니다. 내 주장이나 뜻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고 교회 공동체에 유익이 되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고 서로 화목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주 안에서 서로 아름답게 교제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생각해서 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의 두 번째 사역의 출발점에서 서로 다투는 모습이 나오지만 결국 하나님의 섭리 중에 두 개의 선교팀이 생겨나서 복음이 더욱 확산되어 가고 교회가 더 든든히 서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기도제목/ 교회안에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성령님의 뜻 가운데 잘 해결하여 지속적으로 복음전파에 힘쓰고 건강한 교회를 이루어 가게 하옵소서.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2024 07 28 <아시아에서의 전도와 마게도냐인의 환상> 운영자 2024.07.28 0 344
다음글 2024 07 14 <바울의 제1차 전도여행> 운영자 2024.07.16 0 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