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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6 30 <바나바와 사울에 의한 구브로 전도> 이정현 목사 2024-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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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도행전13:1-12절 개역개정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6.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7.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8. 이 마술사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10.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11.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12.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4630일 사도행전 13:1-12 바나바 와 사울에 의한 구브로 전도

 

이 본문은 바나바와 사울의 제1차 전도 여행을 기록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물론 본 장과 본문에서 1차 전도 여행을 전부 보여주는 것은 아니고 초창기 일부만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즉 사도행전 13장부터 바울의 1, 2, 3차 전도 여행을 살펴보게 됩니다.

 

이들을 선교사로 파송하는 교회는 수리아 안디옥교회였습니다. 예루살렘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이 아니고 이방인 교회였던 안디옥교회에서 역사상 첫 번째 공식적인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루살렘교회도 나름대로 사용하셨지만 이제 세계의 복음화를 위하여 안디옥교회를 사용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선교하는 데 지리적으로 용이하였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했고 인종차별도 없었던 지역의 교회를 하나님이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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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회에는 선지자와 교사가 많았습니다. 선지자와 교사는 둘 다 하나님의 말씀과 관계된 직분자들입니다. 선지자는 일시적인 직분으로서 교회가 공식적으로 조직되기 이전까지만 존재했던 직분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주로 성령의 능력을 입어 예언하고 설교하며 때로는 교회를 치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의 선지자들은 이미 예루살렘에서 내려온(11:27) 선지자들도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디옥교회 안에 선지자들의 수가 적지 않았다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이어서 나오는 교사는 하나님이 가르치는 은사를 주셔서 교회의 유익을 위해 일하게 하시는 지속적인 직분이었습니다. 나중에 에베소서에 가서 보더라도, 하나님이 교회에 목사와 교사의 직분자를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에베소서 4:11의 그 말씀에서 목사와 교사로 주셨다는 것은 한 사람에게 두 가지 기능을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즉 목사는 다 교사다라는 말입니다. 목사는 교회를 치리하고 가르치는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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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에 나오는 사람으로 우선 바나바를 볼 수 있습니다. 바나바는 사울보다 연장자이거나 사울보다 신앙의 연륜이 깊었던 사람으로 보입니다.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리더였습니다. 그래서 바나바의 이름을 처음에 거론한 것 같습니다.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이 나오는데 여기서의 니게르는 니그로라는 말로 흑인이라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자가 예수의 십자가를 진 구레네 시몬이라고 하나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 온 개종자로서 훌륭한 성경 교사가 되었다는 점은 사실입니다.

 

다음은 구레네 사람 루기오인데 혹자는 로마서 16:21에 나오는 바울의 친척 누기오로 보나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에서 젖동생이라는 말은 함께 자랐다’, ‘가족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마나엔은 헤롯 안디바(14:1-12, 23:7-12)와 함께 자란 가족으로 생각됩니다. 상당한 권세와 부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인데 이가 안디옥교회의 교사였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다소 출신 사울이 나옵니다. 그는 교회를 잔해하던 사람이었는데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방인을 위한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그에 의해 복음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될 것입니다.

 

이들 다섯 명이 교회를 섬기게 된 것입니다. 이들은 사회적, 지리적, 인종적인 차이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께서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공통성을 통하여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에 무엇보다 훌륭한 신앙인과 성경 교사가 있었다는 점이 안디옥교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교회가 평안히 든든히 서가고 제 사명을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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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이들을 선교사로 파송하는 과정을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성령의 지시를 받아서 이들을 선교사로 파송합니다. 자기들의 뜻대로 하지 않습니다. 선교사로 가고자 하는 사람의 의도도 아닙니다. 전적인 성령의 지시로 이들을 구별하여 세웁니다. 그리고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그들이 기도한 것은 교회가 이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또는 파송 받은 사람들이 각 지역에서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위하여 기도했을 것으로 봅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을 잘 받들어 준행하기 위한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안수하여 보냅니다. 안수라는 것은 성령의 지시에 순종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구별하여 사명을 맡겼음을 표하는 의식행위입니다. 교회에서 임직식을 할 때 목사, 장로, 집사에게 안수를 합니다. 이때도 마찬가지로 이들을 구별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사명을 맡긴다는 의식적 행위인 것입니다. 안수한 안수위원이 누구인지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시므온과 루기오와 마나엔이었을 것을 추측합니다. 이들이 안수를 받는 두 사람보다 직위가 높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들도 성령의 지시로 바나바와 사울에게 안수하였다고 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바나바와 사울은 성령의 보내심을 따라 구브로 섬 쪽으로 갑니다. 왜 하필 첫 번째 선교지로 구브로 섬을 정했을까요? 바나바의 고향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단지 이것도 성령이 시키는 일에 순종했을 뿐입니다. 4절에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서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갔다고 하십니다. 이것을 보면 전도와 선교는 성령의 역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기들 마음대로 선교지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보내심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디옥에서 실루기아까지가 약 25km 정도이고 실루기아에서 구브로 섬까지는 120km가 넘습니다. 그러므로 안디옥에서 출발한 이들은 적어도 150km 이상을 가서 구브로 섬의 동쪽 지역인 살라미에 도착을 한 것입니다. 이곳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고 또한 여러 회당들이 있었습니다. 바나바 일행은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특별한 결과에 대해서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이 복음 전도에 요한이 수종 들었다는 말씀만 나타납니다. 이때의 요한은 마가 요한으로서 바나바의 생질입니다(4:10, 12:12). 요한이 어떤 일을 감당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혹자는 수행원’(히페레테스-회당의 보조원)이라는 단어에서

아마도 예수의 말씀을 모으는 일과 성경 두루마리를 돌보는 일이나 또는 두 사람의 여행 경비를 관리하는 일일 것이라고 추측을 합니다. 또 다른 사람은 그가 예수를 믿은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기독론을 가르친 것 같고 또한 세례를 베푸는 일에 수종 들었을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바울의 1차전도여행 사본.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2181pixel, 세로 1524pixel

사진 찍은 날짜: 2023년 06월 30일 오후 9:01

살라미에서 복음 전도를 마치고 섬을 관통하여 서쪽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물론 가면서 동네마다 들렀을 것이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도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서쪽 끝부분인 바보 지역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살라미에서 바보까지는 무려 180km 정도나 떨어져 있습니다. 이 거리를 걸어서 전도하며 온 것입니다. 그 바보에서 바 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게 됩니다.’ 바 예수는 여호수아의 아들이라는 이름 뜻을 가지고 있는 자입니다. 유대인이며 거짓 선지자이며 마술사라고 했습니다. 유대 율법에는 이런 자를 돌로 쳐 죽이라고 했는데(20:6),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 사회에서 이런 자를 그대로 용납하여 마을에서 함께 살게 한 것을 보면 유대인들이 그 사람의 말에 상당히 미혹되어 있었거나 아니면 총독이 그를 보호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온 동네가 그의 영향 아래 있었다면 모두가 정신적으로 이상한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이 동네에 총독 서기오 바울이 살고 있었습니다. 서기오 바울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했는데, 이 말은 신중하고 지성적이며 자기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 사람은 공명정대하면서 분별력이 있는 정치인이엇습니다. 이 사람이 마술사와 함께 있다가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했습니다. 총독은 마술사의 이야기보다 하나님의 종들의 이야기를 더 들으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이런 면에서 그를 지혜롭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마술사가 총독으로 하여금 믿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는 것입니다. 그때 사울이 성령으로 충만해서 저주하게 됩니다. 139절의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라는 말씀에서 처음으로 사울이 바울로 기록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여기서부터 사울이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보다는 원래 사울이 바울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한 것 같습니다. 사울은 유대인으로 태어났으나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유대인 이름은 사울(간구한다는 뜻)이고 로마식 이름은 바울(작은 자)이었던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누가가 의도를 가지고 사울을 바울이라고 부릅니다. 누가가 바울이라는 로마식 이름을 애용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바울이 이방 선교를 위한 일꾼이라는 점을 본격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식 이름을 안 쓰고 로마식 이름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그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마술사에게 이런 저주를 합니다. “10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11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10-11). 정확하게 그러면서 강하게 책망한 것입니다.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라고 하면서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못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너는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 되리라고 저주했더니 그 즉시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어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주의 손이 그에게 일격을 가하여 된 일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행한 첫 번째 이적인데 공교롭게도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받은 것과 똑같은 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주의 손이 마술사 엘루마를 침으로 소경이 되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였다고 했습니다(11). 마술사가 완전히 실명하여 혼자 걸을 수 없어서 길 안내자를 찾았다는 말입니다. 이전에는 자칭 선지자로 다른 사람에게 진리를 가르치고 갈 길을 안내해 주던 사람이, 이제는 혼자서 걸을 수도 없어 인도자를 찾는 엘루마의 모습에서 우리는 거짓 선지자(거짓 교사)들의 최후 비참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복음전파를 방해하던 마술사가 이렇게 된 것을 보고 총독이 믿으며 주의 가르침에 놀랐다고 기록합니다.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여기서 믿었다는 말은 이적을 통하여 확실히 주님을 믿었다는 뜻입니다. 혹자는 이 구절을 거짓 선지자의 비참한 말로를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체험하게 되었다고 설명을 하기도 합니다. 펠톤(Felton)이라는 사람은 이 구절에서 엘루마의 눈이 감김으로 총독의 눈이 열렸다라는 의미 있는 말을 남겼습니다.

 

결론

 

본문은 안디옥교회가 최초로 선교사로 파송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누구를 파송하는지를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이 아니라 전적인 성령의 지도하에 사람을 세워서 파송하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가는 사람이든 보내는 교회이든 성령의 명령에 순종하여 선교 일을 감당합니다.

 

교회의 파송을 받은 바나바와 사울은 구브로 지역으로 내려가서 전도합니다. 최초의 선교사들이 최초로 섬 전도를 한 것입니다. 살라미의 회당을 거쳐 넓은 지역을 가로질러 가며 전도를 하는데 바보에서는 마술사가 맹인이 되는 사건으로 그 지역의 총독 서기오 바울이 믿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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