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6월 23일 25 of 52week | 이정현 목사 | 2024-06-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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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도행전12:20-25절 개역개정20.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는 까닭에 한마음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 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25.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24년 6월 23일 사도행전 12:20-25 악한 정사를 타격하는 하나님 나라 20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는 까닭에 한마음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25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사도행전 12장 앞부분에서 헤롯이 야고보 사도를 칼로 죽이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때의 헤롯은 헤롯 아그립바 1세라고 했습니다. 대 헤롯의 손자입니다. 그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야고보를 잡아 죽였을 때 예상대로 유대인들은 기뻐하며 헤롯을 지지했습니다. 그러자 이 여세를 몰아서 헤롯은 베드로를 잡아 감옥에 가둡니다. 유대인들의 중요한 절기인 유월절이 지나고 끌어내어 죽이려고 했지만 하나님이 하루 전에 그의 사자를 보내어서 옥에서 베드로를 이끌어 내 주셨습니다. 이때 마리아의 집에 모인 교회는 공동적으로 한 마음 한 뜻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교회의 기도를 들으사 베드로를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베드로를 죽이려는 헤롯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베드로를 찾아도 찾을 수 없자, 헤롯은 감옥을 지켰던 파수꾼들을 죽이고 가이사랴로 갑니다. 헤롯이 가이샤라로 황급히 간 것은 베드로를 놓친 것이 분하기도 하고 또한 들리는 이야기에 천사가 나타나 풀어주었다는 소문도 들려서 이런 것으로 인하여 유대인들이 자기의 통치력을 의심할까 봐 두려워서 그곳을 피해 간 것 같습니다. 혹자는 글라우디오 황제의 생일을 맞이하여 축제를 열었는데 그것을 축하하고 축제를 관람하기 위하여 내려갔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어떤일로 내려갔던, 헤롯의 마음은 편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은 바로 그곳에서 헤롯이 죽게 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헤롯이 왜 죽게 되며 어떻게 죽게 됩니까? 그는 종말을 고하지만 이상하게도 다른 하나는 번성하게 됩니다. 국가의 권세자는 비참하게 죽음으로 그 종말을 고하지만 다른 하나는 왕성하여 세상을 정복하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본문을 통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20절은 한 번 읽어서 금방 이해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어쩌면 몇 번을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는 까닭에 한마음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20). 앞부분을 보면 일단 헤롯과 두로와 시돈 사람들 사이가 안 좋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의 두로와 시돈은 가이샤라 지방에 속한 지중해 연안의 항구도시입니다. 그러니까 헤롯이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에 갔을 때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등장을 하고 또한 그들 사이가 좋지 않았고 심지어 헤롯은 그들에 대하여 대단히 노여워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헤롯이 이렇게 노여워 했을까요? 성경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충분히 짐작은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었다’고 했는데, 이 말은 두로와 시돈은 항구 도시이니까 쌀 농자가 잘 안되어서 자기들이 먹을 식량을 예루살렘에서 가져다 먹은 것입니다. 이는 성경에도 나오는 사실인데 솔로몬 시대 이후(왕상 5:9, 스 3:7)부터 식량을 유대 지역으로부터 수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과 유대 지역의 사람들은 두로와 시돈의 항구를 통해서 들어오는 무역품을 많이 사용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무역품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음으로 헤롯의 불만을 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헤롯이 보복 조처로 시돈과 두로 지방에 대해 아마 식량 공급을 중단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니 서로 사이가 안 좋은 관계에서 이런 자리가 마련된 것입니다. 여기에도 때가 왔습니다. ‘헤롯이 날을 택하여’라고 했는데 이 날이 과연 언제였을까요? 이 역사적 사실은 역사가 요세푸스의 글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의 생일 축제가 있었습니다. 축제는 여러 날 계속되는데 그 둘째 날입니다. 헤롯은 그 자리에 있지도 않은 글라우디오를 즐겁게 하겠다고 가이사랴에서 축제를 준비했습니다. 거기 주둔하고 있던 많은 로마 군인들을 초청하여 많은 사람들과 함께 큰 잔치를 벌였는데 로마 황제가 그 자리에 없으니까 결국은 자기가 황제처럼 나타나게 됩니다. 로마 황제를 위한 잔치라지만 결국은 자기가 가장 높은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은으로 만든 찬란한 옷을 입고 상석에 앉아서 뭇 시선으로부터 영광을 누렸던 것입니다. 두로와 시돈에서 온 사람들이 이 때를 타서 왕의 환심을 사고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헤롯이 일장 연설하고 난 후에 아첨하기를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22)고 했습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보면 저들이 아그립바를 향하여 ‘당신을 이제부터 신으로 섬기겠나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말에 헤롯 왕은 너무 기분이 좋았겠지요. 아첨하는 사람이 대개 이런 식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됩니다. 헤롯은 자기를 신이라고 추켜세우는 사람들 앞에서 오히려 기뻐했습니다. 그들의 칭찬과 아첨을 그대로 수용한 것입니다. 일은 그때에 일어났습니다. 칭찬과 아첨의 말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카네기가 그 차이를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칭찬은 진지하지만 아첨은 무성의한 것이고 칭찬은 마음속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지만 아첨은 이빨 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것이다.’ 칭찬과 아첨을 구분하지 못한 어리석은 헤롯은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그때에 아그립바는 극장의 천막 기둥에 앉아있던 불길한 징조의 올빼미 새를 보았고 그 순간에 복통이 일어나서 궁전으로 옮겨졌으나 회복되지 못하고 벌레로 인하여 몸이 썩어 닷새 후에 죽었다는 것입니다. 아그립바는 죽어가면서 이렇게 마지막 말을 했다고 합니다. ‘너희가 나를 신이라고 부른 것으로 인해, 나는 죽게 되었다.’ 그는 7년간의 통치를 끝내고 57세의 나이로 죽고 말았습니다. 그는 탐욕적이며 의인을 싫어하며 교만함이 넘쳤기에 결국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헤롯의 죽음을 간단히 23절에서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죽음의 이유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했기 때문이라고 했고, 어떻게 죽었는지는 주의 사자가 침으로, 벌레에게 먹혀 죽었다고 했습니다.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은 주의 사자(천사)가 왕을 쳤기 때문이고, 간접적인 사인은 벌레가 먹었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 원인 다 실제로는 하나님이 행하신 것입니다. 결국 헤롯 왕이 죽게 된 것은 왕이 교만함으로 하나님이 쳐서 죽인 것입니다. 한 권세자가 죽었습니다. 세속적인 통치자, 권력자, 분봉 왕이 죽었습니다. 야고보를 자기 마음대로 죽인 자였고 베드로도 이유 없이 잡아 가두고 죽이려고 했던 자였으며 두로와 시돈 사람들의 아첨을 한 몸에 받았던 대 헤롯의 손자, 아그립바 1세가 이렇게 비참하게 죽은 것입니다. 한순간에 그의 운명이 다하여 종말을 고하였고 그의 이름은 역사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다음과 같은 존 스토트의 말은 옳다고 인정이 됩니다. ‘폭군들은 교회를 반대하고 복음전파를 방해하면서 한동안은 뽐내고 떵떵거리지만 오래 지속되지는 못한다. 결국 그들의 제국은 망할 것이며 그들의 교만함도 무너지고 말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왕성하여 더하여졌습니다. 24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의 ‘흥왕하다’라는 말은 ‘싹이 나고 꽃이 만발하다.’, ‘커지다’, ‘자라나다’, ‘많아지다’, ‘배가되다’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환란과 핍박 중에도 말씀은 싹을 내고 꽃을 피웠습니다. 사방팔방으로 자라가고 퍼져나갔습니다. 배가가 되었고 열배 스무배로 늘어났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정치적인 권세자, 즉 핍박의 주체는 무너지고 멸망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더더욱 왕성해졌다는 것입니다. 이 일로 베드로가 높아지거나 바울이 높아지거나 스데반이 높아진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는 순교했고 베드로는 쫓겨 다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했다는 것입니다. 어느 개인이 잘되거나 왕성했다는 것이 아니고 다만 하나님의 말씀만이 흥왕했다는 것입니다. 말씀의 승리입니다. 환란과 핍박이 있어도 말씀은 매이지 않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교회의 성장은 어느 개인이나 어느 단체에 의존하기보다는 오히려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야고보의 순교와 베드로의 투옥 사건에 대한 반작용이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절에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25)는 말씀이 나옵니다. 안디옥에서 파송되어 유대로 구제금을 가지고 간 바나바와 사울이 그들의 임무를 마치고 다시 안디옥으로 돌아왔습니다. 올 때 마가를 데리고 왔는데 후에 그와 함께 제1차 전도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골로새서 4:10에서 볼 수 있듯이 마가가 바나바의 생질이었으므로 바나바와 사울이 예루살렘에 있었을 때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머물렀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이로써 이방 전도의 준비가 완료된 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론 헤롯은 집요하게 교회를 핍박하지만 하나님은 핍박받는 교회를 계속하여 안보하시고 뿐만 아니라 그 교회를 더욱더 부흥케 하십니다. 환란 중에서도 복음은 매이지 아니하고 계속하여 발전되어 나갔습니다. 하나님이 헤롯의 계획을 묵살하시고 그를 비참하게 죽게 만드시는 장면을 통해 세상의 권세를 하나님의 나라가 파괴하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일꾼들을 통하여 복음이 전 세계로 계속 확산되어 나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무리 큰 정치 세력이 교회를 핍박해도 교회는 망하지 아니하며 말씀은 더욱더 흥왕하고 하나님의 나라는 굳건하게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교회를 사랑하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흥왕하게 하시고 또한 그 나라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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