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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6 09 주일설교<수리아 안디옥교회의 설립> 김승영 2024-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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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도행전11:19-30절 개역개정

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27.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28.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29.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30.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469일 사도행전 11:19-30, 수리아 안디옥교회의 설립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게 되면 그 사람들에 의해서 이런 단계로 복음이 전파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대로 예루살렘 일대에 복음이 편만하게 퍼져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구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는 순식간에 5천 명 이상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에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사마리아에서는 빌립에 의해 대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고 성령의 충만이 임하였습니다. 복음으로 유대와 사마리아 사이의 인종차별이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이 복음의 확산은 사마리아를 넘어 사도행전 10장에 와서 이방인이었던 고넬료 백부장에게 전달이 되었고 계속하여 북쪽으로 전파되어 마침내 수리아 안디옥까지 전파가 되어서 그곳에 아름다운 최초의 이방인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는 계기가 마련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능력으로 복음전파가 문화적 경계를 넘어 수리아 지역까지 퍼저 나가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수리아 안디옥교회가 누구에 의해서 세워지고 어떻게 부흥 성장해 가는지와 자기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주었던 예루살렘교회 하고는 어떤 관계를 유지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을 통하여 오늘날 복음전파와 교회개척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고 어떻게 해야 그 교회가 성장하며 그리고 모 교회와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그러면 안디옥교회는 누구에 의해서 세워지게 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9절부터 21절까지를 보면 그 해답이 명확히 나와 있습니다. “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사도행전 7장에서 일어난 스데반의 순교를 기점으로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 핍박을 피해서 흩어진 사람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종교, 신앙의 자유를 위하여 이렇게 고향을 떠나 타향으로 이주를 해 갔지만 그러나 신앙을 잃지 않고 오히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흩어진 유대인들(디아스포라)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지도 삽입/ 베니게 구브로 안디옥...295p,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흩어진 유대인들이 이방인인 헬라인들과 접촉하여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환란으로 인하여 흩어진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은 이방인들에게 주 예수를 전파하였습니다. 전도할 내용을 분명히 알고 전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하셔서 수 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왔습니다.’ 성도들은 주 예수를 전하고 주님은 그들을 도우사 믿는 자의 수가 많아지게 하셨습니다. 믿는 자의 수가 많아지는 것이 진정한 교회 부흥이라고 한다면 그 부흥은 주의 손이 함께 해 주셔야만 합니다. 주의 손이 전도자들을 도와 주시고, 복음을 듣는자들의 마음까지 터치해 주셔야 그들이 구주를 믿고 교회에 가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때나 지금이나 주의 손이 함께 해 주셔야 교회는 부흥하는 것입니다.

 

흩어진 신자들이 앞에서는 안디옥에 있는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했고 뒤에서는 안디옥에 있는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안디옥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결국 안디옥교회는 무명의 몇몇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사도들이 세운 교회도 아니고 훌륭한 집사들이나 지역 유지들이 세운 것도 아닙니다. 그 이름조차도 밝혀지지 않은 몇몇 신자들에 의해서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함께 모여서 하나의 기독교 공동체를 이룬 것입니다. 주로 이방인(헬라인) 그리스도인들로 이루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안디옥교회를 최초의 이방인 교회라고 부릅니다.

 

특별히 안디옥에 이런 최초의 이방인교회가 세워지게 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와 목적이 있겠습니까? 이 안디옥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48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도시는 그 당시 인구가 약 50만 명 정도 되었고 로마의 지배하에 있는 도시로서는 세 번째로 큰 도시였으며 수리아 지역의 수도이기도 했습니다. 지중해로부터 24km 정도 떨어진 곳이라 상업의 중심도시였고 물 공급이 원활하여 농작물도 잘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좋은 환경과 경제적 윤택함 속에서 그들은 이방 신들을 많이 찾았고 도덕적으로 많이 타락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곳에 하나님이 몇 명의 크리스천들을 통하여 교회를 세우신 것은 분명한 뜻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방 선교의 중심지, 본부로 삼고자 하셨다는 것입니다. 아시아와 유럽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지리적 위치가 좋았고 경제력이 있어서 선교하기에 용이 했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오늘날의 선교나 교회 개척도 이렇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믿는 사람들이 교회가 없는 지역에 가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여 그들이 믿게 되었을 때 그 사람들이 모여서 교회를 이루는 것입니다. 전도 대상자들을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가리지 않았듯이 우리도 빈부귀천 남녀노소 가리지 말고 학식 유무도 가리지 말고 피부색이나 지방색도 가리지 말고 복음을 전해서 한 교회 공동체 속에 들어오게 해야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워지는 교회를 개척교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안디옥에 복음이 전파되어 교회가 세워졌다는 이야기를 예루살렘교회가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교회가 헬라의 부흥을 조사할 사람을 보내게 됩니다. 과거 사마리아 지역에 교회의 부흥이 있었을 때 사도들이 그곳을 시찰하고 건강하게 성장 부흥하도록 그들의 신앙을 점검하여 잘못은 고쳐주고 잘한 것은 칭찬하고 위로해 주었듯이 이번에도 예루살렘교회는 안디옥으로 사람을 파송하게 됩니다.

 

이 일에 바나바가 사절이 되었습니다. 바나바는 우리가 잘 알듯이 구브로 출신이고 레위 지파의 후손이며 자기의 밭을 팔아서 구제헌금을 한 사람이고 사울이 회심하고 예루살렘교회의 사도들을 만나고자 했을 때 중재 역할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착한 사람,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였습니다. 한마디로 수직, 수평적으로 원만한 관계의 소유자였다는 것입니다. 어느모로 보나 참 훌륭한 신자였고 칭찬과 존경을 받을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믿음과 성령이 충만했고 헌금도 많이 했고 화목케 하는 역할을 잘 감당했던 초대교회의 보배와 같은 신자였습니다. 이 사람을 안디옥으로 보낸 것입니다.

 

바나바가 안디옥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표현이 본문 23절에 나옵니다.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24절 하반절에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라는 말이 재미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추상적인 것이라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누가는 바나바가 안디옥교회에 도착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했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외형적으로 나타난 것을 보고 기뻐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안디옥교회 성도들에게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이 외부적인 기쁨과 감사와 찬양과 사랑으로 흘러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는 사람 눈에 안 보이지만 은혜받은 사람의 모습 속에서 그것을 확인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기뻐하며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고 권고하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계속하여 유지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교도들의 도시에서는 이 같은 끈질긴 신앙 유지가 특히 필요했을 것입니다. 바나바의 이 권고와 위안은 마치 그들을 도와주시기 위하여 옆에 와 계신 보혜사의 위로와 같았을 것입니다(14:16, 15:26). 그들에게 이와 같은 권면의 말씀이 주어지자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졌습니다. 교회의 수가 늘어나기 전에 주께 더하여지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평신도들에 의해서 안디옥교회가 설립이 되고 평신도에 의해서 교회가 성장해 가다가 예루살렘에서 파송된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바나바에 의해서 더욱더 믿는 자의 수가 많아지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에 의해서 예루살렘교회가 급성장했다면 평신도들에 의해서 안디옥교회가 크게 성장해 간 것입니다. 유대 지역의 교회도 성장했고 사마리아 성에도 부흥했고 이제는 이방인 지역인 안디옥에도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교회가 커지면 해야 할 일도 많아집니다. 이 교회의 영적 지도자였던 바나바는 혼자 이 일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다소에 있던 바울을 찾아가서 데리고 안디옥으로 옵니다. 다소는 안디옥에서 윗쪽으로 올라가면 있는데, 사울의 고향입니다. 사울은 예루살렘에서 자기 고향 다소로 가서 지금까지 지금까지 수년을 기도하며 성령님에 의해 훈련받으며 지내고 있었습니다(9:26-30).

 

바나바는 사울과 함께 안디옥교회의 초신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1년 동안이나 큰 무리에게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아마도 그 해는 사울이 예루살렘을 방문하기 전 해이자 기근이 들었던 해인 주후 44년이었을 것입니다. 이 기간 동안 그들은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안디옥교회에는 초신자와 이방인들이 많았으니 가르쳐야 할 내용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바나바와 사울과 같은 좋은 성경 교사들이 자신의 사명을 따라 성실하게 교인들을 양육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무명의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교회가 설립이 되고 바나바에 의해서 교회가 부흥되다가 이제는 사울에 의해서 더욱 더 양육되고 신앙이 다져지는 것을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도 이렇게 부흥 성장해 가야 합니다. 훌륭한 성경 교사가 많아야 합니다. 그들에 의해서 더 다져져야 합니다. 말씀으로 신앙이 성숙해야 합니다. 좋은 성경 교사들에 의해서 말씀의 가르침을 받음으로 믿음이 말씀 위에 든든히 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26절에서 제자들을 부르는 새로운 명칭이 하나 나오게 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그 명칭은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26). 안디옥에서 처음 나오게 된 명칭입니다. 이 이름이 믿는 자들에게서 나왔겠는가 아니면 불신자들로부터 나왔겠는가-상당한 논란이 있어 왔습니다. 결론적으로 안 믿는 사람들이 이 용어를 만들어 사용한 것 같습니다.

 

당시 헬라사회에서는 헤롯인’, ‘가이사인이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헤롯인이란 말에는 헤롯에게 속한 사람, 헤롯에 의해서 사는 사람, 헤롯을 위하여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 주인의 이름 뒤에다가 영어의 ‘-ian’을 붙여서 사용한 것입니다. 가이사인도 같은 뜻입니다. 이런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었던 불신자들이 신자들을 볼 때에 저들이 헤롯인과 가이사인과 똑같아 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주인의 이름인 그리스도에다가 뒤에 ‘-ian’을 붙여서 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 그리스도에 의해서 사는 사람,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종교개혁 당시 개혁자들에게 붙여진 이름이 프로테스탄트’(Protestant)였는데 이는 항의자또는 항거자라는 뜻입니다. 개혁을 비난하고 못마땅히 여겼던 그룹에서 붙여준 이름입니다. 그러나 후일에 그 이름이 불의와 불법, 비진리와 인본주의에 항거하는 좋은 이름으로 사용이 된 것입니다. 또한 감리교를 의미하는 메소디스트’(Methodist)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그런 자들을 경멸하는 의도로 규칙자들이라고 했지만 후일에는 영광스러운 공식 명칭이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도 이런 것들과 비슷한 경우로 생겨난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제자들을 갈릴리 사람들’, ‘나사렛 당으로 불렀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제자들’, ‘신자들’, ‘형제들’, ‘성도들이라고 불렀지만 이제 이방인들은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 부른 것입니다.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이 명칭은 점점 퍼져나가서 2세기 초에는 신자들 측에서 받아들여져 공식 명칭이 되었습니다(익나티우스와 폴로갑의 글에서). 이 이름은 이제부터 유대인들과 제자들을 구별하는 이름이 되었고 이것으로 교회가 유대교와 구별이 되는 그룹이 된 것입니다. 기독교는 유대주의의 한 분파가 아니며 나사렛 이단도 아님을 나타내는 것입니다(24:5). 여러분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까? 남들이 그렇게 불러줍니까?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여러분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사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야 할 사람입니다.

이제는 본문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27절 이하에서는 안디옥교회와 예루살렘교회의 아름다운 관계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예루살렘에서 와서 천하에 흉년이 들 것이라고 예언을 했습니다. 이 예언대로 글라우디오 황제(41-54, 초기에는 유대인 우호적으로 선정을 폈으나 말기에는 억압함-52년에 유대인 추방 명령을 내림-18:12-아내가 독버섯을 먹여 죽이고 전남편의 아들인 네로를 황제로 세웠다.) 때에 각 지역에 흉년이 들었는데(그의 재위 2년과 10년째에 로마에, 4-7년 사이에는 팔레스틴에, 9년에는 헬라에 흉년이 있었다고 함) 예루살렘에도 심한 흉년이 들었습니다. 주후 45년이 이 기근의 절정기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이 큰 어려움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이때 안디옥교회가 나서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예루살렘교회에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합니다. 이때가 주후 46년쯤이었던 것 같고 바울이 두 번째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때라고 봅니다.

 

그리고 아가보의 예언은 안디옥에서 형제들로 하여금 앞당겨 자원하는 마음으로 부조를 보내도록 감동시켰을 것입니다. 이 구제헌금은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한 것이 아니고 자원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각자 각자가 그 힘대로 했습니다. 이방인 신자들도 헌금의 기본 원리인 감사함과 자원함과 힘대로 헌금을 했던 것입니다. 이방인 교회가 유대교회를 도운 것입니다. 이 두 교회의 관계를 보면 예루살렘교회는 안디옥에 복음을 주었고 안디옥교회는 예루살렘교회에 경제적 도움을 주었습니다. 서로 영적 육적 도움을 주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할례자와 무할례자가 서로 돕고 사랑하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한 지체가 경제적인 고통을 당하니까 다른 지체가 그 고통을 함께 나누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입니다.

 

후에 이 같은 구제헌금이 마게도냐와 고린도교회에서도 있었던 것을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고후 8:14, 9:1). 이것은 성도를 섬기는 아름다운 교제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평균케하려는 성도들의 선행이었습니다. 어려운 형제들을 기꺼이 돌아보는 지체의식의 행동이었습니다.

 

결론

 

선교나 교회개척이 본문의 성경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믿는 자에 의해서 불신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어 믿는 자가 많아져서 교회가 세워져야 합니다. 이것이 개척이며 이런 교회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한 교회에서 봉사하다가 분리해서 개척을 하거나 어려움과 분란이 있는 교회 앞에 개척을 해 놓고 이삭이나 줍겠다는 식의 개척은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본문이 가르쳐 주는 대로의 개척이 많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가 계속 성장 성숙하려면 좋은 성경 교사에게서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초대교회가 계속 부흥 발전하여 진리 위에 든든히 설 수 있었던 것은 진실한 성경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교회에 사도들과 성령충만했던 사람들이 있었고 안디옥교회에는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훌륭한 성경교사가 있었기 교회가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초창기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에는 사경회가 있어서 각 지역마다 사경회가 열리면 네 교회 내 교회 할 것 없이 모두가 참여해서 말씀 강론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때 교회가 폭발적으로 부흥한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든든히 부흥 발전하려면 좋은 성경 교사가 많아야 하고 그들에 의한 말씀의 가르침이 성실히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훌륭한 성경 교사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교사들의 가르침을 잘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모 교회와 선교지, 또는 모 교회와 지교회 사이의 관계는 서로 돕는 관계, 협력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도움을 받았으면 이제는 도울 줄도 알아야 합니다. 언어와 문화, 인종의 장벽을 넘어서 서로 도와야 하고 영적-육적인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으로 돕고 경제적으로도 도와야 합니다. 물질적으로도 돕고 기도로도 도와야 합니다. 말로도 돕고 실제로도 도와야 합니다. 이런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 구석구석까지 전파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도와줄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하여 도와주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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