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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4 07 교회의 불평을 해결하여 더 전진함 이정현 목사 2024-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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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도행전6:1-15절 개역개정

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4.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8.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9. 이른 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

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11. 사람들을 매수하여 말하게 하되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12.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13.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이르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14.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447일 사도행전 6:1-15 교회의 불평을 해결하여 더 전진함

 

누가는 사도행전 6:6까지 첫 사도들의 활동을 주로 다루고 있고 6:7부터는 그 강조가 스데반, 빌립, 바울과 같은 2세대 리더들에게 그 초점을 맞추어 기술하고 있습니다. 물론 10장에서 베드로의 사역도 말하지만 주로 예수님에 의해서 세움을 받은 사도들에게서 점차 2세대 교회 지도자들에게 복음전파의 바통이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1세대 교회 지도자들은 손놓고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고 그들은 주로 검증자 역할을 합니다. 빌립에 의해 복음이 사마리아에 전파되었을 때 베드로와 요한이 내려가서 도와주는 역할을 했고(8:25) 안디옥에 전파되었을 때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그 일을 체크하라고 바나바를 보내는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11:19-20).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복음 전파의 선두는 2세대 리더들이고 사도들은 그 뒤에서 그들을 격려하고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성경을 관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행전 5장에서 교회가 성장함에 따라서 문제가 하나 발생했습니다. 거짓된 구제가 일어났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통하여 잘못된 동기의 구제가 일어날 뻔했습니다. 교회 안에 거짓되고 위선된 구제가 생김으로 교회의 성결이 깨질 뻔하였습니다.

 

본문에서는 교회가 성장해 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것도 구제의 문제인데 이번에는 구제의 불균형 문제였습니다. 앞에서는 거짓된 구제가 문제였다면 이제는 구제가 균형있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구제의 불균형과 모순의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교회가 작으면 조용할 수 있지만 성장하면 이런저런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죄악된 인간들이 모이는 곳이 교회이므로, 그 사람들이 모이면 이처럼 구린내가 나는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불평과 원망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사도들이 특별한 책임을 감당할 새로운 교회의 지도자를 세우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는 사도들이 감당해야 할 우선순위, 기도와 말씀 사역을 효과적으로 감당하기 위한 조력자를 세우는 것이기도 합니다.

 

5장에 이어 6장에도 초대교회의 이런 문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1절에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여기서 제자가 더 많아졌다는 말에서 제자는 12사도를 말하지 않고 예수를 믿는 신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협의적으로는 제자라는 말이 12제자를 말하지만 넓은 의미로는 예수를 주로 믿는 모든 신자를 일컬어 제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보면 마태와 마가는 주로 협의적으로 이 단어를 쓰고 누가와 요한은 광의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의 사도행전도 이 단어를 넓은 의미로 사용하여 제자는 믿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그런 제자가 더 많아진 것입니다.

 

그런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 구제에 빠짐으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의 헬라파 유대인들은 헬라어를 주로 쓰는 유대인을 말하고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를 주로 쓰는 유대인을 말합니다. 특히 헬라파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외국에 살다가 메시아의 도래를 열망하여 예루살렘으로 이주한 교포 출신 유대인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주로 헬라어로 의사소통을 하였을 것입니다. 교회가 이런 사람들로 점점 커지니 불공평한 구제의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인종차별과 비슷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에게 공평하게 구제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어떤 과부에게는 구제금이 가고 어떤 과부, 즉 헬라어를 사용하는 과부에게는 구제금이 가지 않음으로 불평이 생긴 것입니다.

 

이 문제는 사도행전 5장에서 생긴 사건하고는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앞장에서는 사탄이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마음에 가득하여 이 일을 하게 했지만 6장은 교회 안에 사람이 많이 생김으로 자연스럽게 생겨난 일입니다.

 

이 문제를 사도들은 어떻게 해결합니까? 사도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보면 상당히 지혜로우며 지극히 모범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놓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2)라고 말합니다. 사도들은 이 문제가 누구로부터 왔는지 그 책임자를 색출하여 문책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헬라파 과부들에게 구제하지 않았느냐? 왜 이런 소리를 듣느냐?’라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우리도 구제하는 이 일에 가담하여 열심히 했는데 해 보니까 하나님의 말씀 전하는 것이 소홀해지더라고 말합니다. 즉 구제하는 일에 전념하다보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이 소홀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구제와 접대와 재정출납에 집중하다 보니 본연의 사명이었던 기도하는 것과 말씀 선포가 소홀해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제의 불균형 문제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문제 해결의 방안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3-4절에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4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고 말합니다.

 

집사를 세워서 구제하는 일은 그 사람들에게 맡기자는 것입니다. 여기서 집사라는 말이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앞의 접대라는 말과 사도행전 21:8일곱 집사라는 말을 근거로 일곱 사람을 집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집사들을 세워서 구제하는 일을 그들에게 맡겨 구제의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집사의 자격과 목적을 명확히 말합니다. 집사가 되기 위한 자격조건은 1) 남자여야 하고(형제들) 2) 신자이며(너희 가운데서) 3) 영성이 있는 사람이며(성령 충만한 사람) 4) 지혜로운 자이며(지혜가 충만하고) 5) 평판이 좋은 사람(칭찬 듣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어서 5절에 보면 믿음 충만도 나옵니다. 그러니까 집사의 자격으로 남자 신자로서 성령과 믿음과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 듣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담당해야 할 일은 구제와 공궤(식탁을 시중드는 일)하는 일이고 사도들의 일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사역이었습니다. 사역을 명확히 제시해 준 것입니다. 여기서 사도들과 집사들이 차이가 있는데 세우는 자가 다르고 이들의 역할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주님이 직접 세우시나 집사는 교회에서 세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사역이 주 임무이나 집사들은 공궤하고 구제하는 일입니다.

 

이런 제의에 교회의 성도들이 기뻐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 중에 일곱 명을 뽑게 된 것입니다. 일곱 명을 사도들이 임명한 것이 아니라 회중에게 뽑아달라고 부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격에 맞는 사람 일곱을 선택합니다.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인 스데반과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5). 스데반과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니골라, 이상 일곱 명은 헬라파 유대인을 대표하는 지도자인 것 같습니다. 이들 중에서 스데반과 빌립의 지도력과 카리스마는 사도들의 영적 권위와 거의 같은 수준이었습니다. 회중은 이들을 사도들 앞에 세웠고 사도들은 회중의 결정을 존중하여 그들에게 안수하여 성경 최초의 안수집사를 세우게 됩니다. 신약교회 사상 처음으로 교회의 조직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세워진 목적에 따라 그들의 임무를 다하게 됩니다.

 

이렇게 초대교회는 최초의 분쟁 거리를 지혜롭게 극복하고 전화위복을 이루게 됩니다. 그 결과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교회의 문제를 원활히 하기 위하여 자격있는 집사를 세우고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에 집중하고 집사들은 봉사의 일을 다함으로 놀라운 결과가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7절에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힘있게 사방팔방으로 전해져 예수를 믿고 따르는 제자의 수가 심히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직분자를 세워 문제를 해결하고 각자가 사명을 다하니 교회가 크게 부흥을 한 것입니다. 직분자를 세워 놓고 그 직분자들 때문에 교회가 어려워지거나 시험에 들거나 퇴보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워진 직분자들 때문에 복음이 확산되어 믿는 자의 수가 더 많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했다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말씀에 순종했다는 뜻입니다. 제사장은 유대교의 종교 지도자입니다. 그런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했다는 것은 제사장들이 유대교의 성전을 버리고 이탈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유대교의 성전 중심 체제가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는 징조이기도 합니다. 당시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제사장의 수만도 무려 18,000여 명이었다고 하는데 그 중에 상당수가 주께로 돌아왔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중심에서 시작하여 연못의 파문처럼 퍼져 나갔습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복음은 이런 방식으로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현재의 우리 교회도 말씀이 왕성하여 제자의 수가 더 많아지기를 바라며 각계각층의 사람이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어지는 8-15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스데반의 활동과 이로 인해 박해가 더 심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스데반은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처럼 말씀을 전하기도 합니다. 7장에서는 유명한 설교를 하기도 합니다. 그는 은혜와 권능이 충만한 자입니다. 이적과 표적을 행하기도 합니다. 사도가 아닌 자들 중에 첫 번째로 이적을 행하는 사람이고 사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첫 번째로 대중 앞에서 설교하는 자입니다. 조금 뒤에는 최초의 순교자로 기록되기도 합니다.

 

이런 스데반과 논쟁을 벌이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이른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9). 여기의 자유민들(libertinus)은 한 때 노예였다가 자유롭게 된 유대인 교포들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오랫동안 외국 생활을 하다가 남은 생애를 예루살렘에서 보내기 위하여 귀국한 유대인 교포들입니다. 이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이 땅에 임할 하나님 나라의 지상 거점이라고 믿었고 예루살렘 근처에 두 개의 회당을 세우고 거기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구레네와 알렉산드리아인들, 즉 아프리카 지역에서 온 교포들을 위해서 회당 하나, 또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 즉 아시안들을 위하여 회당 하나를 지어서, 예루살렘에 임할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있어서 성전은 대단히 중요한 장소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본토 히브리인들보다 더 성전에 대해 과도한 충성을 바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종교적 열광주의자들입니다.

 

이들과 스데반이 서로 논쟁을 했으나 결국 지혜와 성령이 충만했던 스데반 집사를 당하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혜와 성령을 거역하는 자들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는 스데반의 말을 가로막거나 이길 수가 없었다고 봅니다. 이전에 했던 가말리엘의 말로 표현하자면(5:39) 스데반과 변론한 사람들은 사실상 하나님과 변론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튼 자유민들이 스데반을 당해 낼 수 없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매수하여 스데반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거짓말을 퍼뜨리게 했습니다. 유대인들의 마음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것은 성전이나 신성모독입니다. 이 두 가지 점을 들어서 스데반을 공격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백성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스데반을 잡게 만듭니다. 스데반을 공회에 세우게 하고 이제는 거짓 증인들을 세워서 거짓 증거를 하게 합니다. 거짓 증인들의 증언은 터무니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스데반이 이런 말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14). 스데반이 이 두 가지 내용으로 이야기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한 본의를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스데반을 고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지금 예루살렘 성전 주위에서 살고 있는 리버티노(Libertino)들 앞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장소로서 이 성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예배자의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면 그들은 이 성전이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며 성전모독죄를 뒤집어 씌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모세의 율법을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셨다고 이야기하면 그들은 모세의 규례를 고치겠다고 말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오해의 소지는 있을 수 있지만 스데반이 말한 그 본의를 깨닫지 못하고 이런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공회에 붙잡혀서 사람들 앞에서 모함과 거짓 증거를 받고 있던 스데반 집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습니까? 안절부절하여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본문 마지막 절입니다.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15). 시내산에서 내려온 모세의 얼굴처럼(34:29), 또 변화산에서의 주님의 얼굴처럼(17:9) 스데반의 얼굴도 밝고 기쁘고 평온한 천사의 얼굴과 같았습니다. 지금의 상황은 무섭고 불안하고 두려워해야 할 것 같지만 스데반은 반대로 천사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주시는 내면의 기쁨과 평안이 밖으로 표출된 것이라 봅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모든 성도들도 항상 이런 얼굴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현대의 기독교인들이 초자연적인 빛을 발하지는 못할지라도 그들의 얼굴에서 밝음과 온화함과 기쁨과 평화가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삶에서 타인과 다른 영적 매력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결론

 

교회에서 구제의 불균형 문제가 일어나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그 일을 할 수 있는 일꾼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구제와 봉사와 재정출납의 일을 할 사람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교회에서 일꾼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일 때문에 세우는 것입니다. 일감이 있으니까 거기에 걸 맞는 일꾼을 세워서 교회의 조직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다양한 일거리들이 있기 때문에 그 목적을 위하여 일꾼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 자신의 명예나 직분을 원함이나 교회의 재정적 필요 때문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그 직임에 맞는 일꾼을 뽑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꾼 선정에 있어서 그 자격요건이 중요합니다. 만약 초대교회처럼 성령과 믿음과 지혜가 충만하고 타인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 선정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런 인물로 양육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고 세움을 받는 본인도 자리를 탐하기보다 그 자리에 적합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일꾼을 세우면 반드시 그 일꾼들의 분업을 통하여 교회는 성장, 성숙하게 될 것입니다. 사도행전 6장 이전에 이미 사도들이 있었고 장로들도 있었습니다. 사도들은 본문에서도 밝히고 있는 것처럼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일에 전무해야 되고, 장로님들은 심방과 치리하는 일에, 안수집사님들은 재정출납과 봉사를 열심히 해야되고, 권사님들은 당회의 지도대로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보고 기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한 몸의 지체들로서 본인들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따라서 교회를 잘 섬기면 되는 것입니다.

 

본문의 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귀한 일꾼이 세워지면 그 교회는 새로운 일꾼들로 인하여 복음이 확산되어 더욱더 부흥해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사방으로 편만하게 전파되어 허다한 무리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함께 하나님께 예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사이 교회에는 오히려 중직자들을 세웠더니 교회에서 분란만 일으키고 문제만 일으키고 당만 짓고 교회의 부흥을 가로막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되고 그런 사람이 있어서도 안됩니다. 성경대로라면 이번에 세워진 30여명의 중직자들을 통하여 우리 교회는 더욱더 부흥 발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같은 과정을 통해 뽑힌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었던 스데반은 집사의 사명을 잘 감당했을 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복음을 전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거짓 증인들의 모함에도 불구하고 종교지도자들의 그릇된 판단과 공격 앞에서도 그는 꿋꿋이 복음 전달자의 역할을 감당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상황은 초조하고 불안하고 두렵고 위험하지만 그 곳에서도 천사의 얼굴로 평안을 유지하며 멋지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했던 스데반 집사였습니다. 그러나 누가가 강조하는 것은 스데반의 용기가 아니라 그의 삶 가운데 함께하셨던 성령님의 임재였습니다(6:10, 7:55). 우리도 날마다 성령의 온전한 통치 속에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성령의 통치, 다스림, 인도하심 가운데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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