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목사설교

  • 홈 >
  • 예배 · 설교 >
  • 이정현목사설교
이정현목사설교
2024 04 14 스데반의 설교와 순교 이정현 목사 2024-04-14
  • 추천 0
  • 댓글 0
  • 조회 111

http://isomang.net/bbs/bbsView/13/6383482

[성경본문] 사도행전7:1-60절 개역개정

1. 대제사장이 이르되 이것이 사실이냐

2.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3.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4.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5. 그러나 여기서 발 붙일 만한 땅도 유업으로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그와 그의 후손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

6.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후손이 다른 땅에서 나그네가 되리니 그 땅 사람들이 종으로 삼아 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시고

7. 또 이르시되 종 삼는 나라를 내가 심판하리니 그 후에 그들이 나와서 이 곳에서 나를 섬기리라 하시고

8. 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 그가 이삭을 낳아 여드레 만에 할례를 행하고 이삭이 야곱을, 야곱이 우리 열두 조상을 낳으니라

9.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10.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그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통치자로 세웠느니라

11. 그 때에 애굽과 가나안 온 땅에 흉년이 들어 큰 환난이 있을새 우리 조상들이 양식이 없는지라

12. 야곱이 애굽에 곡식 있다는 말을 듣고 먼저 우리 조상들을 보내고

13. 또 재차 보내매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알려지게 되고 또 요셉의 친족이 바로에게 드러나게 되니라

14. 요셉이 사람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 야곱과 온 친족 일흔다섯 사람을 청하였더니

15.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 자기와 우리 조상들이 거기서 죽고

16. 세겜으로 옮겨져 아브라함이 세겜 하몰의 자손에게서 은으로 값 주고 산 무덤에 장사되니라

17.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더니

1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애굽 왕위에 오르매

19. 그가 우리 족속에게 교활한 방법을 써서 조상들을 괴롭게 하여 그 어린 아이들을 내버려 살지 못하게 하려 할새

20.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의 아버지의 집에서 석 달 동안 길리더니

21. 버려진 후에 바로의 딸이 그를 데려다가 자기 아들로 기르매

22.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23. 나이가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

24. 한 사람이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 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 죽이니라

25. 그는 그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였더라

26. 이튿날 이스라엘 사람끼리 싸울 때에 모세가 와서 화해시키려 하여 이르되 너희는 형제인데 어찌 서로 해치느냐 하니

27. 그 동무를 해치는 사람이 모세를 밀어뜨려 이르되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

28. 네가 어제는 애굽 사람을 죽임과 같이 또 나를 죽이려느냐 하니

29. 모세가 이 말 때문에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

30.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31. 모세가 그 광경을 보고 놀랍게 여겨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니 주의 소리가 있어

32.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신대 모세가 무서워 감히 바라보지 못하더라

33. 주께서 이르시되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34. 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확실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그들을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이제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하시니라

35. 그들의 말이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으로 관리와 속량하는 자로서 보내셨으니

36. 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라

37.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38.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39. 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

40. 아론더러 이르되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이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고

41. 그 때에 그들이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더니

42. 하나님이 외면하사 그들을 그 하늘의 군대 섬기는 일에 버려 두셨으니 이는 선지자의 책에 기록된 바 이스라엘의 집이여 너희가 광야에서 사십 년간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43. 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이로다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으로 옮기리라 함과 같으니라

44. 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증거의 장막이 있었으니 이것은 모세에게 말씀하신 이가 명하사 그가 본 그 양식대로 만들게 하신 것이라

45. 우리 조상들이 그것을 받아 하나님이 그들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인의 땅을 점령할 때에 여호수아와 함께 가지고 들어가서 다윗 때까지 이르니라

46.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하게 하여 달라고 하더니

47.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4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49.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50.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52.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53.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4414사도행전 7:1-60 스데반의 설교와 순교

 

사도행전 6(9)에 보면 자유민, 리버티노(Libertino)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들은 폼페이에 의해서 로마로 포로가 되어 갔다가 자유민이 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의 후손들을 말합니다. 그들이 스데반과 더불어 변론을 했으나 당하지 못하자 거짓 증인들을 세워서 스데반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했다고 주장하게 합니다.

 

결국 스데반은 공회에 끌려가 변증을 하나 그것으로 인해 사형선고를 받게 됩니다. 사형을 받을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스데반은 죽임을 당합니다. 본문은 스데반 집사님이 그 공회 앞에서 변증한 내용이자 그들 앞에 길게 설교한 내용입니다.

 

이 사도행전 7장 전체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전반부는 스데반의 설교이고 후반부는 스데반의 순교 장면입니다.

먼저, 스데반의 설교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스데반의 설교가 1절부터 53절까지 나오는데 이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설교 중에 가장 긴 설교입니다. 어쩌면 다른 제자들의 설교보다 더 훌륭하고 유명한 설교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아브라함부터 솔로몬까지의 이스라엘의 역사가 주욱 나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 모세, 다윗, 솔로몬까지(성전)의 역사이므로 적어도 1100년 동안의 이스라엘 역사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이스라엘의 네 명의 족장에 관한 기사가 1-16절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을 통하여 스데반은 실제로 창세기 앞부분(1-11)을 제외한 창세기 전부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굉장히 긴 역사적 스토리를 단 몇 16절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때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심으로 부름을 받게 되었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가다가 하란에서 아버지 데라가 죽었고 그 이후 이 땅으로 옮겨와서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이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며 또한 그 후손은 이방의 객이 되어 400년 동안이나 괴롭힘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이 그 압제자를 치심으로 우리 조상은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와서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런 설교 속에 이미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삭 그리고 그의 아들 야곱과 야곱의 열두 아들의 역사가 다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삭은 약속의 자녀이고 야곱은 12족속의 조상이 되었고 요셉은 여러 조상들(요셉을 시기했던 그의 형제들)의 시기로 애굽으로 팔려갔으나 하나님의 섭리로 국무총리가 되어서 야곱의 족속들을 재난의 고난 중에서 구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야곱의 족속들이 애굽으로 내려가 안전하게 살았지만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일어남으로 부역과 고통의 나날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이 아브라함을 비롯한 여러 족장들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바로 유대인의 진정한 조상은 모세가 아니라 아브라함이며 율법이 아니라 언약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스데반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을 특별히 인도하셨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또한 무엇을 강조하고 있습니까?(7:9)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영광의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아비가 죽고 난 이후 이 가나안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요셉이 애굽에 팔려 왔으나 그와 함께하시므로 형통케 하셨음을 말하면서, 스데반은 이 모든 조상들의 삶을 인도하시고 함께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의 광야교회 생활을 인도하시고 함께 해 주신다는 것을 힘주어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주로 아브라함과 관계하여 말한 스데반은 이제부터는 모세와 관계된 것을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사도행전 7:17-45에서 모세와 관련된 역사를 다룹니다. 모세의 인생을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애굽에서의 40, 미디안 광야에서의 40, 이스라엘의 인도자로서의 40년이 그것인데, 각 시기에 있었던 특징적인 사건들을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애굽에서의 40년 동안은 모세가 태어나게 된 짤막한 배경과 그가 버려진 후 바로의 딸에게 입양된 것과 애굽의 학문을 잘 배운 것을 지적합니다(20-22). 그리고 자기 동족을 돌보려는 마음이 발동하여 애굽 사람을 쳐 죽이게 되고 이것 때문에 결국 애굽을 떠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다음 미디안 땅(아라비아 북서지방)에서의 40년은 신앙의 체험기이며 훈련받는 단계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미디안 땅에서 장인어른의 양 무리를 치면서 혹독한 영적 훈련을 겪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호렙산 떨기나무 불꽃 중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이 부르심에 자기의 유약함을 들어 부정하지만 끝내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게 됩니다. 모세는 가기 싫은 땅이었지만 하나님이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는 말씀에 순종하게 됩니다.

 

마지막, 이스라엘 백성의 인도자로서의 40년 생활은 민족의 지도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거절하던 모세를 관리와 속량자로 세워 보냈습니다. 마지막 40년의 삶에 관해서는 본문 36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라.” 모세가 그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되었을 때 그 백성들은 모세의 말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자기들의 신이라고 섬겼고 여러 가지 불편한 일에 원망하며 불평하였습니다.

 

특히 41절에서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 앞에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어리석고 타락한 인간의 죄악된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자기들을 애굽의 속박에서 구원하여 주시고 지금까지 선하게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만 경배하며 그 하나님을 기뻐해야 할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이것이 우리를 인도하여 낸 우리의 신이라고 하며 절하며 기뻐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부재 중인 모세를 인식하지 못한 데서 참으로 어리석은 일을 한 것입니다. 이어지는 성경에서는 그들이 하늘의 군대’(별과 행성과 관련된 신들)를 섬겼고 몰록의 장막’(에돔 족속의 신으로 아이를 바치는 제사)레판의 별’(애굽에서 차용된 신)을 받들어 섬겼다고 지적합니다(7:43). 그들은 증거의 장막에 계시는 여호와를 섬기지 못하고 몰록의 장막에서 이방신들을 섬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애굽에서의 해방자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지금까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먹이고 입히고 보호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렸습니다. 그들은 너무 쉽게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는 스데반이 모세를 모독했다는 고소에 충분히 항변을 했다고 보여집니다. 리버티노들이 스데반을 기소한 내용 중 하나가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6:14)는 것이지만 너희들이 오히려 그 율법을 깨트렸다고 지적한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고소에 대한 항변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시내산에서 세워진 성막입니다. 이 성막은 인간과 하나님이 만나는 장소이며 동시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입니다. 모세 이후로 다윗 시대까지 하나님이 회막(성막)을 통하여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처소를 예비하게 해 달라고 하였으나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아들 솔로몬을 통하여 성전을 짓게 합니다.

 

사도행전 7:45-50은 솔로몬의 성전과 관계된 진술입니다. 구약시대 때 그렇게 중요했던 성전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신약과 관련시켜 종합적으로 한마디로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2:13-22, 고전 3:16-17, 고후 6:16).

 

성전은 성막을 이어 온 것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7년 동안 웅장하고 아름답게 건축했으나 이 성전은 바벨론의 제3차 침입으로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바벨론의 70년 포로 생활이 끝난 후 스룹바벨이 제2의 성전을 건축하게 되었고 이어 주전 19년에 대 헤롯이 성전을 건축한 것이 바로 신약시대까지 이어져 온 성전입니다. 이 성전은 주후 63년에 완공이 되었으나 몇 년이 못 가서 70년에 로마에 의해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82년에 걸쳐 지어진 성전이 고작 7년 만에 완전히 파괴고 만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성전이 곧 신약의 그리스도를 말하고(2:21) 더 나아가서 그 예수를 믿는 신자들을 말한다는 사실입니다(고전 3:16). 그래서 더 이상 건물적인 의미의 성전은 존재하지도 않으며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오늘 성령을 모시고 있는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의 성전개념은 건물 개념이 아니라 인격적인 개념인 것입니다. 구약의 성막이나 성전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이며(그림자이며) 그리스도 이후 건물로서의 성전은 더 이상 필요없게 된 것입니다. 실체가 오면 그림자는 필요 없는 것이고 실제 아파트가 세워지면 모델하우스가 필요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스데반이 선지자의 글을 인용하여 이 성전에 관하여 말하기를, 지극히 높으신 주는 사람이 지은 성전에 계시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49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50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49-50).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이 작은 성전이나 온 오주에 모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보다 더 크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앞서서 지적한 리버티노들은(지금 심문하는 공회원들도 마찬가지임) 성전을 중요시 여겨서 지금 그 주위에 모여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만큼 성전을 사모하며 아끼고 중요시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형식주의에 빠져 메시야를 죽인 것입니다. 지금 성전의 실체로 오신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유대인들의 죄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성전을 그렇게 중요하게 취급을 한다면 당연히 성전의 실체로 오신 그리스도를 그 이상으로 영접하고 대우하고 존경하고 섬겨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했고 오히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여 지금 스데반은 아브라함부터 모세를 지나 솔로몬의 성전까지 구약의 이스라엘의 역사를 더듬어서 그리스도를 입증하고 그 그리스도를 죽인 유대인들의 죄를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데반은 과격하게 당시 유대주의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52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53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51-53). 정점에 오른 스데반의 설교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는 조상들과 똑같다, 목이 곧다,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다, 성령을 거역했다, 많은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였다,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했다는 지적이며 책망입니다. 천사가 모세를 통하여 준 율법을 어겨도 심판을 받는다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을 거역한 너희들이야말로 심판이 자명하다는 것입니다.

 

왜 스데반이 그들의 죄를 지적하며 강하게 책망했다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유대인들의 완악함과 외식함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으면서 그의 제자들을 극적으로 적대하는 그들의 완악한 마음과 위선되고 거짓된 마음 때문에 이렇게 강하게 책망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거역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스데반을 향하여 이를 갈았습니다.

다음은 스데반의 고결한 순교 부분입니다(54-60). 설교를 마친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주님은 승천하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서서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순교자를 격려하고 환영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브루스는 이 장면을 주님이 스데반의 변론을 위해 하나님 우편에서 계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56). 분명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승귀의 이 환상은 스데반을 충분히 격려하였을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주님이 보좌 우편에 계시고 그분이 우리를 격려하고 계심을 깨달을 때 우리도 고통과 위협 가운데서도 용기와 기쁨과 평안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때 유대인들은 큰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스데반에게 달려들어 그를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쳤습니다. 유대인들의 돌발적이며 폭력적이고 감정적인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설교 한 번 멋지게 하고 돌에 맞아 순교하던 스데반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기도합니다. “59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60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59-60). 스데반은 주님께 기도했으며(주 예수여, 주여) ‘자기의 영혼을 받아 달라고 그리고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말아 달라고 기도합니다. 분명 이것은 주님의 기도를 본받은 것이었습니다. 죽어가면서도 주님의 모습을 담았던 것입니다.

 

결론

 

스데반의 설교는 자기변명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말하면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사자들(선지자)을 늘 거역해 왔다는 것을 말하고 아울러 배교적 성향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성전 안에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님을 말씀하셨고 율법을 초월해 계신 분임을 증언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간접적으로 자기는 성전을 파괴하고자 하거나 신성을 모독하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자기 변호임과 동시에 너희가 못박아 죽인 의인 그리스도를 소개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순교하게 되었는데 기독교 역사 가운데 최초의 순교자가 됩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장렬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순교 시 그는 주님의 모습을 본받아 내 영혼을 받아 달라고 그리고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가 하나님 나라의 현재를 멋지게 살므로 그 미래까지 약속받았다고 단언할 수 있겠습니다. 주님을 본받아 순교했던 스데반의 모습대로 우리도 주님의 모습을 본받아 살아야 하겠습니다.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2024 04 21 박해속에서도 계속되는 복음 전파 운영자 2024.04.21 0 102
다음글 2024 04 07 교회의 불평을 해결하여 더 전진함 운영자 2024.04.07 0 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