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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2 24 목자들의 경배 이정현 2023-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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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누가복음2:8-21절 개역개정

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17.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18.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20.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21. 할례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잉태하기 전에 천사가 일컬은 바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31224일 눅 2:8-21, 목자들의 경배

 

베들레헴 목자들의 경배 이야기는 4개의 복음서 중 누가복음에만 기록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먼저 천사가 나타나서 목자들에게 구세주이신 그리스도가 태어나셨다는 것을 알리는 장면부터 시작됩니다. 이어서 천군 천사가 찬양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목자들은 베들레헴으로 급히 가서 이를 확인하고, 자기들이 듣고 본 것을 예수님의 부모에게 알려주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오면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것으로 본문이 끝납니다.

 

따라서 목자들의 경배 이야기는 두 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알려주는 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베들레헴 마굿간에 태어나신 아기 예수를 보고 목자들이 경배하는 장면입니다.

 

누가복음의 목자들의 경배 이야기는 마태복음의 동방박사 이야기와 대비가 되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께 경배를 드린 목자들은 유대인이었다면, 동방박사들은 이방인들이었습니다. 목자들은 사회에서 가장 낮은 계층의 사람들이었다면, 동방박사들은 왕과 같은 높은 계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목자들은 가까운 곳에서 찾아 왔지만 박사들은 먼 곳으로부터 오로지 경배하기 위하여 찾아왔습니다. 목자들은 있는 그대로 왔지만 박사들은 귀한 예물을 준비하여 드렸습니다. 즉 목자들과 동방박사의 경배는 유대인과 이방인 그리고 가깝고 먼곳으로부터 찾아왔고 세상의 높고 낮은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아기 예수께 경배하기 위해 나아 왔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일은 오늘 본문과 대비되는 마태복음 2장의 동방박사들의 경배에 대하여 설교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누가복음의 이 본문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봄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천사가 목자들에게 나타나서 메시야의 탄생을 알려주고 그 천사와 천군이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는 장면입니다(8-14).

 

본문 앞의 말씀을 근거하여 볼 때 이미 예수 그리스도는 약속의 말씀에 따라 유대 땅 베들레헴에 탄생하셨습니다. 그것도 사관에 있을 곳이 없어서 낮고 천한 곳에서 태어나셔서 지금은 강보에 쌓여 구유에 뉘어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상황과 환경은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겸손한 모습으로 태어나셨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낮고 천한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그 베들레헴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자기의 양 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목자들은 유대 사회의 여러 가지 직업들 중에서 아주 천시받는 직업이었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목자들은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고 목자들이 하는 일을 부정한 것으로 간주하였습니다. 이같은 사실에 근거하여 볼 때 분명한 것은 복음이 먼저 그 당시 사회적으로 천대를 받던 사람들에게 전해졌다는 사실입니다. 누가는 그의 복음서에서 이 사실을 여러 번에 걸쳐 강조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는 예수께서 양들을 위해 목숨마져 아끼지 않는 선한 목자처럼 인류를 위해 당신의 몸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칠 어린 양이심을(20:18, 1:29) 암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런 목자들이 밤에 자기들의 양떼를 지켰습니다. ‘밤에라는 말은 밤 새워라는 뜻이고, ‘지키다는 말은 보호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 말은 밖에서 여러명의 목자들이 교대로 밤을 새워 도둑이나 다른 들짐승들로부터 양떼를 지키며 보호하는 일련의 행동을 묘사한 것입니다. 팔레스틴 지방에서 목자들은 4월부터 11월까지 이런 식으로 양떼를 밖에서 방목하였으며 겨울철에도 날씨가 춥지 않을 때에는 종종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자기의 양들을 지키는 일에 협력하여 밤을 지새며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그 들판에서 한 주의 사자가 그들에게 나타났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주의 사자는 ....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가 나타나서 목자들 곁에 서서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었습니다. 주의 영광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존재 양식 중 하나이며 그분의 임재를 나타내는 가시적 표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매우 희고 밝은 빛같은 구름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쉐키나의 영광이 나타난 것입니다. 아무튼 휘황찬란한 주의 영광이 그들을 완전히 둘러싼 상태가 되었을 때 그들은 무서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천사가 나타나서 무서워하는 그들을 안정시키며 다음과 같은 위대한 선포를 하셨습니다.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되면 누구든지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부덜부덜 떨게 될 것입니다. 그 영광 앞에 제대로 서 있을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들판에서 자기 일을 하고 있던 목자들도 이런 광경 앞에 두려워 떨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목자들에게 천사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진정시킨 후에 그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선포한 것입니다.

 

보라는 말은 뒤의 말이 매우 중요하고 중요한 말씀이니까 그 말씀을 하기 전에 주위를 집중시키는 말입니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을 얘기하기 전에 주목이라고 말하면서 산만했던 분위기를 주의 집중시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여러 군데에서 중요한 메시지 앞에 보라라는 단어를 넣어 놓은 것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 ‘보라,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여기서도 보라고 하시면서,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좋은 소식을 수식하는 내용이 두 가지가 있는데 먼저는 온 백성에게 미칠 좋은 소식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만 미치는 소식이 아니고 모든 이방인들에게도 미친 좋은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좋은 소식은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민족적 울타리를 넘어서 세계 만민에게 개방된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르게, 유대 백성들에게 복음의 기쁜 소식이 먼저 전달된 것은 그들을 통해 온 인류에게 전해지게끔 하고자 함이었다고도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좋은 소식은 어느 한 민족에게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의 모든 사람에게 미칠 좋은 소식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온 백성에게 미칠 좋은 소식일 뿐만아니라 다음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단순히 기쁜 좋은 소식이 아니라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마치 어렵고 힘겨운 전쟁 가운데 아군이 드디어 그 전쟁에 승리했다면 그것이 모든 국민들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 것처럼 주님의 탄생은 그 당시 로마의 압제 속에 살았던 그들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온 세상에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입니까? 이것에 대한 해답도 역시 천사가 일러주었습니다.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다윗의 동네는 베들레헴을 말하고 그곳에서 구주가 나시는데, 오시는 목적은 우리를 위함이고 그분은 곧 메시아, 기름 부음을 받은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약속된 장소인 다윗의 동네에서 다윗의 후손으로 우리를 위한 메시아가 오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작은 팔레스틴에만 미칠 소식이 아니고, 5대양 6대주 온 세상에 미칠 소식입니다. 그것도 우울한 나쁜 소식이 아니라,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어느 누가 온 인류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될 수 있습니까? 오직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와 같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시는 것입니다. 희망이 없고 절망의 늪에 빠져 있었고, 하루하루를 고통과 괴로움과 불안 속에 살았던 그들에게 메시야의 탄생은 참으로 기쁘고 좋은 소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사람들은 기쁘다 구주오셨네 만 백성 맞으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즐거운 성탄절입니다. 주님의 탄생은 안전하고 평화로운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도 기쁘고 즐거운 소식이지만, 전쟁의 포화 속에서 불안과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우크라이나 국민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도 기쁘고 복된 소식인 것입니다.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에게도, 그렇지 않고 배고픔과 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도 성탄은 큰 기쁨의 복된 소식입니다.

 

주님의 탄생은 당시뿐만아니라 오늘날에도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로 어느 동네 어느 누구에게도 주님만이 인류의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십니다.

 

천사가 이렇게 목자들에게 좋은 소식으로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태어났다고 전해주기는 하였는데, 그 아기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그 아이가 그리스도라는 어떤 표적이 있을까요? 천사는 친절하게 이것까지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아이가 구주라는 표적, 메시야라는 표적이 무엇이냐? 그 아기는 강보에 쌓여 구유에 뉘어 있다는 것입니다.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표적이라는 말은 표시, 징조라는 뜻으로 영어로 sign이라고 합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대부분 아이를 낳으면 어머니는 긴 옷감으로 아기를 포근히 감싸줍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새로 태어난 아기를 따뜻하게 하고 병으로부터 보호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기 예수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놓여있다는 것을 특별한 표적이라고 언급한 것입니다. 그 당시 베들레헴에도 많은 아이들이 태어났을 것입니다. 그들 중에 누가 메시야인가? 누가 구세주 그리스도인가를 알려면 강보에 쌓여 구유에 뉘어 있는지를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런 낮고 천한 곳에서 태어나시고 동물들의 먹이통에 뉘어졌다는 것은 그분의 겸손함과 이런 자들을 구원하러 오셨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와같은 가련한 상태에 놓인 이스라엘과 나아가 온 인류를 구원하고 돌보시기 위해 스스로 비천한 자리(구유)에 누이셨던 것입니다.

천사의 이같은 선언이 있고 난 후 이제는 수 많은 천군들이 나타났습니다. 여기의 천군은 구약 성경에서 종종 천체(henvenly bodies)를 가리키지만(9:6), 여기서는 일군(一群)의 천사들을 가리킵니다(103:21). 주로 하늘에 있는 수 많은 천사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탄생을 계시하여 준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그들이 한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아들을 증거한 것입니다.

찬송의 내용은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는 평화라는 것입니다.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이 찬송은 본문의 절정입니다. 앞부분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했는데, 그러면 그리스도의 탄생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하나님의 영원하신 신성과 영광이 그리스도 안에 충만히 거하고 또한 그를 통해 확연히 나타나기 때문입니다(1:14). 2)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돌릴 것이기 때문입니다(고후 1:20). 3)그리고 하나님이 그 영원하신 섭리에 따라 이루고자 하신 계획을 그리스도를 통해 완수하시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주님의 탄생이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노래한 것입니다.


그리고 뒷부분에서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도 주님의 오심이 이 땅의 사람들에게 평화인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1)그리스도의 중재와 대속으로 인해 하나님과 사람들 간의 막혔던 장벽이 제거되고 화해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2:14). 그리스도를 모르는 자들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으로서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 놓여있으므로 늘 불화와 다툼의 수렁에서 허덕이지만, 하나님과의 근본적 화해를 이룬 사람은 세상이 알지 못하는 놀라운 평강을 선물로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14:27). 2)그리스도의 역사로 말미암아 세상의 모든 죄악이 제거되고 사람들간에 화해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2:16-18). 여기 언급된 평화는 메시아의 도래와 관련된 총체적 축복과 구원을 지칭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는 평강의 왕이시며(7:2), 백성들의 평강을 위해 사셨으며(7:50, 8:48) 그 평강을 위한 사역은 십자가상에서 절정을 이루셨습니다. 이런 모든 의미를 담아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목자들에게 나타난 주의 사자와 천사와 천군들의 행동이 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계시와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을 드린 것입니다.

본문의 둘째 문단은 목자들이 베들레헴에 가서 아기를 찾아 뵈옵고 아기에 대하여 전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부분입니다.

 

목자들에게 주님의 탄생 소식을 전해 준 천사들이 그 임무를 다 마치고 이제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이 영적인 존재들이 그냥 사라진 것이 아니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표현한 것은 그들이 하늘의 처소, 곧 시공을 초월한 곳으로 올라갔다는 의미입니다. 혹자는 이것을 가리켜 지각 가능한 상태에서 지각 초월 상태로 변화되는 광경이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천사들이 하늘로 올라갔을 때, 목자들은 이제 베들레헴에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고 했습니다. 이들이 급히, 빨리 움직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라는 말과 16절의 빨리 가서라는 말을 통하여 그들은 소식을 듣자 마자, 천사들이 떠나자 마자 곧장 행동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베들레헴 동네에 가서 천사의 계시대로 일이 이루어진 것을 보자고 한 것입니다. 천사가 말한 대로 그런 아이가 있는지 확인해 보자는 것입니다.

목자들은 자신들이 돌보던 양 떼를 두고 지체하지 않고 서둘러 찾아 나섰습니다. 목자들은 즉각적인 반응으로 아기 예수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양 떼를 뒤로 했습니다. 그들은 온 동네를 샅샅이 찾았습니다. 부지런히 찾았습니다. 끊임 없이 찾았습니다. 이와같이 목자들이 아기 예수를 계속해서 찾아다녔으며, 그렇게 노력하여 찾던 끝에 정말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인 평강의 왕 아기 예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강보에 쌓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은 것입니다. 그 아기는 마리와 요셉과 함께 있었습니다.

목자들은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주위의 사람들에게 전하였습니다. 전한 대상자들이 분명히 누구인지를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일단 예수님의 부모와 이웃 사람들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들에게 아기에 대한 천사의 계시를 전한 것입니다. 이 목자들은 최초로 천사를 통하여 복음을 들었고 또한 최초로 아기 예수님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최초의 복음 수령자요, 최초의 복음 전파자가 된 것입니다.

 

목자들을 통하여 아기에 대한 이야기, 곧 복음을 들었던 사람들이 다 놀랍게 여겼습니다. 여기의 놀랍게 여겼다는 말은 이상히 여기다’, ‘놀라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초자연적인 혹은 신적인 사건과 접한 자의 경외스러운 감동을 시사하는 말입니다. 누가는 메시아에 대하여 선포하는 말을 들었던 이들이 그 말을 놀라게 여겼다고 여러번 언급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도 시므온이 예수께 대하여 하는 말을 듣고 놀랍게 여겼으며(33) 47절에 보면 성전에서 답변하는 어린 예수의 말을 들었던 모든 이들이 예수의 말을 기이하게 여겼다고 되어 있습니다. 또한 나사렛의 회당에서 예수가 이사야 61장의 어떤 부분을 읽고 나서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다고 했을 때 그곳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놀랍게 여겼습니다(4:22, 8:25, 9:43, 11:14, 20:26, 24:12). 사실 예수님에게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충만히 거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놀랍게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1:20).

다른 사람들은 목자들의 말에 이상한 반응, 놀라운 반응을 보였지만,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19)고 하였습니다. 아기의 어머니 마리아는 사건 전반을 기도하는 마음과 자세로 계속해서 그 말을 생각하고 그 의미를 되새겼다는 말입니다.


이제 목자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찬송하며 자기의 양 떼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목자들이 왜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까? 무슨 이유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것입니까?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20). 이 말은 목자들은 그들이 천사들로부터 들은 바와 실제로 본 것이 똑같음을 알고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올렸다는 것입니다. 천사들의 계시와 자기들이 목도한 것이 똑같이 일치하였다는 것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역사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그대로 이 땅 위에 성취가 되는 것인데, 21절에서도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사건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21 할례 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잉태하기 전에 천사가 일컬은 바러라.” 1년 전에 천사가, 아이가 태어나면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하셨는데, 태어 난 후 8일 만에 할례를 받을 때 그 이름을 예수라고 불렀다는 것이고, 이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예언대로 성취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 이름은 부모의 의도대로 된 것이 아니라,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계시로 주신 이름입니다.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1:21).

 

결론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당시 목자들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천사들의 찬송처럼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평화입니다.

 

나에게 있어서 주님은 참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우리의 가정에도 주님은 참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여러분의 일터에서도 주님은 여전히 기쁘고 좋은 소식이십니다.

 

여러분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여러분의 전 생애에 있어서 주님은 한결같은 기쁨과good news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의 인생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기쁨이요 복된 소식입니다. 주님은 온 세상에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임에 분명한 것입니다.

 

이제 이 기쁜 소식을 듣고 알고 믿고 있는 우리들은 목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이 복된 소식을 그대로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큰 은혜와 사랑과 복을 받은 우리는, 이제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많은 이웃들에게, 이 기쁘고 복된 소식을 전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큰 기쁨이요 좋은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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