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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0 15 예수님의 단호한 분별과 판단력 이정현 목사 2023-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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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도행전15:1-21절 개역개정

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2.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3.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12.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듣더니

13.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14.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

15.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도다 기록된 바

16. 이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21.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31015일 행 15:1-21, 사도들의 분별과 판단력

 

사도행전 13장과 14장은 안디옥교회의 파송을 받은 바나바와 사울이 구브로와 남 갈라디아를 중심으로 제1차 전도 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많은 교회를 세우고 교회 치리자로 장로들을 세움으로 교회를 견고하게 해 나가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본문인 15장은 예루살렘 총회와 제2차 전도 여행의 시작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은 사도행전 15:1-21까지만 살펴보는데 여기에는 예루살렘 총회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우리는 최초의 종교회의를 통하여 교회의 회의가 어떠해야 하고 그 결과가 무엇인지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몇 가지 질문을 함으로 본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예루살렘 총회란 무엇입니까? 이 총회는 기독교회 역사상 최초의 총회입니다. 그리고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과 제2차 전도 여행 사이에 있는 삽화적 사건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이방인 교회였던 안디옥교회의 요청으로 바나바와 바울을 파송하여 예루살렘에서 모인 회의였습니다. 문제의 이슈와 회의 과정과 그 결과는 이후 모든 회의의 원리적인 측면에서 모범이 된다고 봅니다. 예루살렘에서 사도들과 장로들이 함께 모여 신앙적, 신학적 문제를 논의한 것이 예루살렘 총회입니다.

 

다음은 왜 모였습니까? 모이게 된 이유와 목적에 관해서는 본문 1절에서 5절 사이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1절에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이 사람들은 예루살렘교회의 공식적인 파송자들이 아니고 그들의 주장은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도 아니었습니다. 24절에 나오는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지시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혼란하게 한다는 말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교회에서 파송한 공식적인 지도자들이 아닌데도 그들은 이방인 교회를 찾아와서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이방인 기독교인이 구원을 받으려면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들은 예루살렘의 유대주의자들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유대주의자들은 안디옥에서 뿐만 아니라 유대에서도 이방인들이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강경하게 주장을 했던 것입니다. 여기 마땅하다는 말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이것을 확정적인 하나님의 뜻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갈라디아교회에도 이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3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2:3-4). 바울은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어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이라고 하면서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인을 율법의 종으로 삼고자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문제로 인하여 교회 안에서 적지 않은 변론과 다툼이 일어났습니다(2). 여기의 변론과 다툼의 원어는 엄청난 투쟁과 반목, 분열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는 단어입니다. 다른 성경에서는 이 단어를 폭동혹은 반란으로 번역되기도 했습니다. 그 정도로 교회에 심각한 영향을 주었던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가 이방인 기독교인의 할례 문제로 폭동이 일어날 정도로 심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일 중의 하나가 변론과 다툼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에서 하나님의 사람이 피해야 할 첫 번째 사항이 변론과 언쟁이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는 문제 해결도 안 될 뿐만 아니라 아무런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교회만 소란스럽게 할 뿐입니다.

 

그들이 이 문제를 가지고 자기들끼리 아무리 변론해 봐야 좋은 결론이 나지 않으니까 안디옥교회는 이 문제를 예루살렘교회로 보내기로 합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사도들과 장로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2). 하위 기관에서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으면 상위 기관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안디옥교회의 보냄을 받은 바울과 바나바는 예루살렘까지 오면서 여러 교회에 들러 간증을 합니다. 베니게와 사마리아 교회를 둘러 오면서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에 관하여 말했습니다. 이 은혜스러운 간증은 많은 형제들의 마음을 크게 기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에도 1차 전도의 결과를 보고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이때의 예루살렘 방문이 1차 방문(9:26-30)2차 방문(11:27-30)에 이어 3차 방문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예루살렘 총회가 모이게 된 것은 유대인 신자들이 이방인 신자들도 모세의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 것 때문입니다. 아울러, 유대인들의 의식을 지켜야만 하는가의 문제로 회의가 소집된 것입니다. 이것은 양쪽에게 심각한 교리적 문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예루살렘 총회가 어떻게 진행이 되었습니까?(6-29) 총회의 의장 역할은 야고보가 맡고 순서는 서로 충분히 토론을 한 후 베드로, 바울, 바나바에 이어 마지막으로 의장이 연설하고 결론을 내리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많은 토론 이후에 있었던 베드로의 연설부터 보도록 하겠습니다. 베드로의 연설은 짧았지만 아주 강렬했습니다. 그는 고넬료 사건을 근거로 이방인의 자유를 강력히 주장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연설한 이때가 만약 주후 50년경이라면 적어도 10년 전의 이야기를 또다시 예루살렘 교회 앞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그 사건은 베드로 자신에게 충격적이고 의미 있는 계시적인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계속해서 베드로는 유대인들도 율법의 멍에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어찌 이방인들에게 그 짐을 지우려고 하느냐? 이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10). 여기서의 이나 멍에는 동일한 의미로 일반적인 종교적 의무들을 뜻합니다. 어느 누구도 율법을 온전히 순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인간들에게 무거운 짐일 수밖에 없습니다. 베드로의 결론은 우리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셨다’(8)는 것과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는다’(11)는 것입니다. 이방인 기독교인들에게 율법적 의무를 짐 지울 수 없다는 것이고 저들도 우리와 같이 성령을 선물로 받았고 우리와 동일하게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 받아 성령을 선물로 받은 이들에게 구원을 받기 위하여 할례를 받아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문제를 두고 구약의 말씀과 오순절 성령 사건과 하나님이 계시해 주신 보자기 환상과 고넬료의 변화를 근거로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기 위하여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분별하여 정확히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베드로의 증언에 이어 바나바와 바울이 나서서 말합니다. 그런데 누가는 이들의 사역을 간단히 기술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역도 많았고 한 이야기도 많았을 것이나 간단히 기록하고 넘어갑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셔서 기사와 표적이 일어났다고 총회 앞에서 진술했습니다.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듣더니”(12). 하나님께서 이방인 중에서도 역사하셔서 수 많은 표적과 기사를 행하심으로 이방인들도 복음을 통하여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다는 얘기입니다. 그들이 할레를 받거나 어떤 율법적인 준수를 통하여 구원 받은게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원래부터 이런 주장이었지만 총회원들 앞에서도 믿음으로 구원 얻는 것이지 할례를 행함으로 받는 것이 아님을분명하게 판단한 것입니다.

 

이어서 의장인 야고보가 연설을 하는데 사도행전 15장의 연설자들 가운데 가장 길고 상세하고 정확하고 지혜로운 말씀을 하셨다고 봅니다. 이때의 야고보는 주님의 동생 야고보이며 야고보서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여기서 대변인이자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결정자였으며 또한 선포자였습니다.

 

그는 먼저 베드로의 말을 지지하면서 그것은 선지자들의 말씀과 일치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구약의 아모스 9장의 말씀을 자유롭게 인용하여 베드로의 말이 옳음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자기의 의견을 말합니다. 이 말이 본문의 핵심이며 성경 전체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내용입니다. “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19-20).

 

이것은 교회의 화목을 깨지 않기 위하여 조심스럽고도 지혜롭게 이야기 한 것입니다.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온 자들에게 무거운 짐(할례나 기타 의식들)을 지움으로 그들을 괴롭게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특히 여기서 야고보가 할례의 문제 때문에 모인 것을 앎에도 직설적으로는 그 단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우회적으로 말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는 유대인들을 배려해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유대인들이 싫어하는 사항인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에 대하여 멀리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동등하게 받아들여야 하고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금지한 네 가지 사항 중 첫 번째는 우상숭배와 우상숭배를 위한 고기를 사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을 배려하여 두 가지 내용 다 금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금지사항은 음행입니다. 이것은 부도덕한 모든 성적 행위를 금지하는 것으로 간음, 근친상간, 수간, 동성애, 매춘 등등을 말합니다. 세 번째는 목매어 죽인 것을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는 목을 졸라 죽인 동물에는 피가 그 안에 있어 모세의 율법에는 이런 고기를 먹는 것을 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17:14). 네 번째 금지 내용은 피에 관한 것입니다. 피를 멀리하라는 말은 살인보다는 동물의 피로 만든 음식을 피하라는 의미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도 레위기 17:10-11에서 금지하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네 가지 사항은 유대인들이 혐오하는 율법적 규정으로 적어도 다신론적 우상숭배를 배경으로 하는 이방인 기독교인들이 그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금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야고보도 구약 성경과 사도들의 말에 근거하여 바른 분별력으로 이 문제를 바르게 판단한 것입니다.

 

야고보가 멋지게 마지막 연설을 하고 난 후 이제 예루살렘 공회는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립니다.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 할례를 받아야 할 필요가 없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믿음으로 받을 수 있다. 단 유대인들이 싫어하는 다음의 몇 가지 사항은 지키도록 하라.’ 이렇게 결론을 내릴 수 있었던 근거는 역시 성경과 성령의 역사하심과 사도들의 증언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종합하여 올바르게 분별하고 바른 판단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이 결정을 수용하는 태도도 보면 참으로 놀랍습니다. 22절에 나오는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이 결정을 받아들였다는 것인데, 야고보는 평신도 지도자이고 어쩌면 장로였을 것인데 그의 주장을 사도들과 교회가 순순히 받아들이고 복종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들을 보아서 야고보는 교회의 지도자로서 상당한 존경을 받고 있고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의롭고 경건한 삶을 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낙타 무릎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그의 경건과 권위는 가늠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이렇게 받아들여진 결정을 안디옥, 수리아, 길리기아 지방의 교회에 알리기로 했습니다. 유다와 실라를 뽑아서 그들에게 이 역할을 맡깁니다.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이들을 보내면서 결정문을 다시 한번 더 확고히 해 줍니다. “28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29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28-29).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사도들과 장로들의 이 결정은 교회만의 결정이 아니라는 것인데, 이는 성령이라는 주체에 관하여 먼저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단순한 교회의 결정이 아니라 성령님이 기뻐하시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나타난 네 가지 사항, 즉 우상의 제물, , 목매어 죽인 것 그리고 음행은 유대인들을 위한 이방인들의 규제 사항이었습니다. 이방인 기독교인들이 이 사항들을 지킴으로 유대 기독교인들과 화목하게 지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우상의 제물을 먹거나 고기를 피채 먹거나 하면 유대인들이 얼마나 혐오스럽게 생각하겠습니까? 교회가 화평하겠습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이 이렇게 결정한 것은 양편 모두에게 만족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유대인들은 구약 성경의 율법과 의식에 전혀 친숙하지 않은 새로운 이방인 신자들에 대해 인내하고 관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고 이방인들은 먼저 신자가 된 유대인들에 대해 신경을 써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런 결정문을 문제의 발단지인 안디옥교회에 보내게 됩니다. 유다와 실라는 이 편지를 받아들고 안디옥에 내려가 교회를 모으고 그것을 전합니다. 유다는 유대인이었고 실라는 헬라인이었기 때문에 이 편지의 내용을 전하는 데 가장 적당한 인물이었던 것 같고 아울러 그 회의 결정 사항에 신뢰를 더하여 주었을 것입니다. 안디옥 교인들은 그 편지를 읽고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유다와 실라도 자기들의 사명을 따라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위로, 권면하고 그들의 전송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옵니다.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 머물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주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합니다.

 

지금까지는 예루살렘 총회가 모이가 된 배경과 총회의 과정과 그 결과 그리고 결정사항의 전달까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결론

 

본문은 초기 교회의 문제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방인 기독교인과 유대 기독인들 사이의 갈등 문제였습니다. 단적으로 할례가 구원의 조건인가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안디옥교회의 요청으로 예루살렘 공회가 모인 것입니다.

 

모여서 회의를 하는데 사실 유대인들의 입장은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입장, 성령님의 입장, 사도들의 입장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서로에게 옳은 분별이었고 바른 판단이었습니다.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서로에게 유익하고 좋은 결정이었습니다. 성령께서 기뻐하시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회의의 결과가 통보되고 이후 모든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문제로 인하여 혼란해진 것이 아니라 지혜롭게 잘 결정함으로 이방인 선교에 더 박차를 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회의를 통하여 우리가 배우게 되는 중요한 내용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이들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었던 근거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역사였다는 것입니다. ...

 

아모스 7장에 보면 다림줄이 나오는데 이는 벽을 똑바로 세우기 위한 기준이 되는 줄을 말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다림줄은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 66권을 가리켜 캐논이라고 하는데 이는 라는 뜻입니다. 결국 성경은 모든 것의 표준자, 내 생활의 다림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있는 모든 시계는 영국의 그리니찌 천문대의 시간에 맞춥니다. 그 천문대의 시간이 기준이요 표준입니다.

 

우리는 이 성경, 다림줄, 표준자를 중심으로 무슨 일이든 분별해야 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이것이 선인지 악인지를 분별해야 하고, 이것이 거욱한 것인지 속된 것인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이것이 진리인지 아닌지, 이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이것이 양인지 양의 탈을 쓰고 온 늑대인지, 이것이 기독교인지 이단 사이비인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진짜를 알아야 합니다. 진리를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바른 복음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의 도리를 잘 알아야 합니다. 이것만 잘 알고 믿고 있으면 가짜, 비진리,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 거짓 복음, 엉터리 구원교리를 금방 분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진짜만 잘 알고 있으면 가짜는 금방 분별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카나다에 이런 얘기가 있답니다. “캐나다의 왕립 기마 경찰은 위조 지폐를 방지하는 훈련을 한답니다. 경찰국에서는 경관들에게 절대로 위조지폐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직 한 종류의 진짜 10, 100불짜리에 대해서 철저하게 연구하고 만져보고 한답니다. 수백 수천번씩 그 돈을 만져보고 연구하여 진짜를 알게 되면 쉽게 위조 지폐를 구별해 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캐나다 왕립 기마 경찰들은 위조지폐를 연구하지 않고 오로지 진짜만을 공부한다고 합니다. 진짜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어느 것이든지 가짜인 것입니다.”

 

여러분 진짜 성경, 진짜 진리, 진짜 복음을 알면 가짜들은 얼마든지 분별하고 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소망교회 성도 여러분, 성경을 잘 알아서 선악, 성속, 하나님의 뜻과 아닌 것, 이 시대를 잘 분별할 수 있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찬송/

기도 제목/ 주님과 사도들을 본 받아서 매사를 바르게 분별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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