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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0 8 예수님의 단호한 분별과 판단력 이정현 목사 2023-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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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4:1-11절 개역개정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3108일 마 4:1-11, 예수님의 단호한 분별과 판단력

 

지난주에는 하나님의 분별과 판단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분별과 판단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그리스도에 대한 구약의 예언을 몇 군데 보겠습니다. 시편 기자 다윗의 예언입니다.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2:7).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가리켜 너는 내 아들이라 내가 너를 낳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으로 오셨습니다.

 

창세기 49장에는 자식들을 위한 야곱의 기도가 나오는데 이것은 단순한 기도가 아니라 아들들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입니다.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49:10). 유다 지파 가운데서 한 왕이 나오는데 모든 백성이 그에게 복종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예레미야의 예언도 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23:5). 다윗의 후손으로 왕이 태어나는데 그가 지혜롭게 행하고 공평과 정의를 행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미가서 5:2의 말씀도 보겠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나오는데 그의 기원은 아득한 옛날, 태초에까지 올라간다고 하셨습니다. 다니엘이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그분은 옛적부터 항상 계신 분이십니다(7:9, 13, 22).

 

그리고 이사야서에서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는 악을 거부하고 선을 선택할 줄 안다’(7:14-15)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후 줄곧 악을 거부하고 선을 선택하여 사셨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에 대한 이같은 예언의 말씀을 읽을 때마다 어떤 생각이 듭니까? 하나님의 예언은 정확하게 성취가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안듭니까? 그리스도는 예언대로 이 땅에 온전한 인간이자 온전한 신으로 오셨구나라는 생각이 안드시나요? 신인 양성을 가지신 온전한 구세주가 오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요한복음 1장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나님과 함께 하셨던 그리스도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고 이 세상에 참 빛으로 오셨지만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를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십니다. 곧 그리스도는 창조주요 구원자이시며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세상 만물에 대한 정확한 분별과 모든 악한 일에 대한 바른 판단을 하실 분이십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 예수는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온전한 분별과 판단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5:30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고 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요한복음 8:16에서도 내 판단은 참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님은 하나님의 원대로 하려고 하심으로 내 판단은 옳고 참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2장 끝부분에 보면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행하시는 여러 가지 표적을 보고 다수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다음 구절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24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24-25). 비록 사람들이 주를 믿고 따른다 할지라도 주님은 사람들의 마음까지 다 파악하여 알고 계시기 때문에 저들을 의지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주님이 저들의 마음까지 아셨기 때문에 저들을 의지하지 않으셨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전지하심에 근거한 바른 판단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7장에, 예수님의 분별과 판단에 대한 재미있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과 베드로가 가버나움에 가셨는데 세금 거두는 사람이 베드로에게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라고 말합니다. 베드로가 내신다고 말하며 집에 들어갔습니다. 이 상황을 아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라고 했더니 베드로가 타인에게서 세금을 받는다고 답을 했습니다. 주님은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금을 면하리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27). 당시 세상의 원리에 따르면 임금의 아들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주님도 하나님의 참 아들이시므로 세금을 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비상한 방법인 물고기를 통하여 한 세겔로 자기와 베드로의 세금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세금 납부의 원리 원칙을 초월한 타인의 유익을 우선 생각하시는 지극한 사랑의 원리에 따라 세금을 내라고 하신 것입니다.

 

좀 더 설명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율법 위에 계신 분으로서 율법이 정한 바 그 의무 조항을 능히 초월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타인의 유익을 우선 생각하시는 지극한 사랑의 원리에 따라 세금을 내라고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만약 여기서 예수께서 세금 납부를 거부하셨다면 그것으로 인하여 야기될 상황, 곧 예수가 왜 성전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자들이 예수와 그 제자들이 율법을 파괴하고 성전과 예배를 무시하는 자들로 오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당신의 복음을 먼저 배척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주님은 예방적 조처로서 세금 납부를 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금 조달 방법으로는 낚시를 해서 처음 올라오는 고기의 입을 열면 거기에 한 세겔이 있을 것임으로 그것으로 베드로와 주님 자신의 세금을 내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동전 한 닢이 고기 입 속에 있음을 미리 아시는 예수의 전지성과 그 동전을 이미 있게 하신 자신의 전능성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 자신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지만 타인의 유익을 위하여 기꺼이 세금을 내셨고 또한 독특한 이적을 통하여 그 돈을 조달하셨습니다. 주님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될 이유도 분명히 설명하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야 할 이유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과 타인들이 세금에 대한 오해가 없도록 명확하게 분별하여 가르쳐 주셨고 또한 그 자금을 조달함에 있어서도 바른 판단을 통하여 당신의 예지와 전능함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유대인의 지도자인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밤에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이런 저런 말로 높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엉뚱하게 찾아온 손님에게 거듭남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3). 거듭남은 인생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주제인데 니고데모는 이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어쩌면 니고데모가 이 밤에 찾아온 가장 시급한 그의 문제가 거듭남일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아신 예수님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거듭남을 전혀 알지 못하여 사람이 늙으면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주님은 네가 거듭나야 한다는 말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하시면서 바람이 임의로 부는 것처럼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같은 주님의 설명에도 니고데모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말함으로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주님이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12)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은 유대인의 지도자인 니고데모를 존경하고 신뢰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가 거듭나야 할 가련한 존재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밤에 주님을 찾아오신 근본적인 목적도 분명히 아시고 그를 거듭나야 할 사람으로 판단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사람들이 니고데모를 판단하는 것 같지 아니하게, 존경을 받는 인물이 아닌 거듭나야 할 가련한 존재로 정확하게 판단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분별과 판단력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말씀으로 보입니다. 주님은 40일 금식 기도를 하신 후 마귀로부터 세 가지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첫째로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40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굶주린 상태에서 이런 유혹을 받은 것입니다. 이 시험에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신명기 8:3의 말씀으로 대응하셨습니다. 주님은 정확한 성경 구절로 마귀를 대적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성령의 검입니다(6:17). 사탄을 공격할 수 있는 강력하고도 유일한 무기입니다.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떡을 의존하여야 합니다. 사람이 떡으로 사는 존재, 즉 육적인 방법으로 살아가는 존재임을 인정하나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영적인 양식도 필요한데 그것은 곧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입니다.

 

사실 떡과 말씀을 놓고 생각한다면 그 중요성은 후자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나는 육의 양식이나 말씀은 영원히 살게하는 영의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사실 40일 동안 금식기도하시면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게 아님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떡은 입에도 데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사탄의 시험이 잘못 되었음을 분명히 분별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바른 판단을 내리심으로 대적하신 것입니다.

 

둘째는 성전 꼭데기에서 뛰어 내리라 그리하면 천사가 너의 발을 붙들어 줄 것이라’(91:11-12 인용)는 것입니다. 5절의 뉘앙스를 보면 예수님이 마귀에게 강제로 끌려가신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고 시험하는 자를 자발적으로 따라가서 성전의 높은 꼭대기에 서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뛰어내리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명예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한번 너의 능력을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사뿐히 땅에 안착함으로 너의 능력을 보임으로 박수와 인기를 얻으라는 얘기입니다. 주목할 것은 이 두 번째 시험은 사탄이 성경을 인용하여 유혹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은혜받지 못하고 남을 시험하는 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진리를 악용하여 자기의 거짓을 비호하기 위해 얼마든지 동원할 수 있습니다. 말씀에 근거한 이런 유혹에 자칫 잘못하면 넘어가기가 쉬운 것입니다. 사탄은 성경을 잘 못 해석하거나 잘못 적용하는 것을 이용하여 시험을 가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 시험에 주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6:16)는 말씀으로 대응 하셨습니다. 근거 없이 하나님을 시험해 보는 것(trial)은 모두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tempt)입니다. 성전 꼭대기에 올라가는 것과 내려오는 것은 계단을 통하여 할 수 있는데, 그것을 굳이 이적으로 오르락 내리락 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결코 믿음의 행위가 아니며 오히려 주제넘은 오만불손한 행위가 될 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설교자가 물 위를 걸은 베드로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도 믿음만 있으면 우리도 물 위를 걸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물 위를 걸으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의도가 중요하다고 보아야만 합니다. 주님은 지금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실 이유도 없고 그렇게 하시지 않을 것임으로 물 위를 걷는 사람은 확실히 물속에 빠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물 위를 걷겠다고 하는 자체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됩니다.

 

셋째 유혹은 천하만국을 보이며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다는 말입니다. 이 시험은 마귀의 가장 오만방자한 시험입니다. 왜냐하면 피조물인 마귀가 창조주에게 자기에게 경배하라고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자기가 세상의 주인처럼 내게 경배하면 이 모든 것-천하만국-을 너에게 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자기를 천하의 주인으로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자기 앞에 엎드려 경배하기만 하면 이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마귀는 어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들을 자기가 줄 수 있다고 큰 소리치고 있는데, 자기가 약속한 것을 줄 힘이 없는데도 그런 허황된 약속을 남발하는 것이 바로 마귀의 속성입니다. 이 시험에도 주님은 넘어가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시험도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6:13). 주님은 사탄이 더 이상 시험을 하지 못하도록 그를 꾸짖어 쫓아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만 드려야하는 것이고 너(마귀)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탄으로부터 시험을 받았을 때 무엇으로 이 시험을 이기셨습니까?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리하셨습니다. ‘기록되었으되라는 말이 본문에 세 번이나 나옵니다. 사탄이 시험을 할 때마다 주님은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응을 하셨습니다. 주님은 얼마든지 당신의 고유한 능력이나 지식이나 힘으로도 사탄을 물리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그런 것으로 사탄을 물리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기록된 말씀으로 물리치신 것은 우리에게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첫 번째 시험(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에서 떡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임을 분별하여 주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떡과 말씀 사이의 가치와 중요성을 분별하여 신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히 판단하여 주신 것입니다.

 

두 번째 시험(성전 꼭데기에서 뛰어 내리면 천사들이 너의 발을 붙들어 주리라)에서는 주님이 근거 없는 것으로 사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임을 분별, 판단하여 주신 것입니다. 물 위로 걸으면서 믿음만 있으면 걸을 수 있다고 하며 바다 위로 뛰어 내리는 것은 진짜 믿음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함부로 잘못되게 적용해서도 아니된다고 판단해 주신 것입니다.

 

세 번째 시험(나에게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다)에서 주님은 경배의 대상이 사탄인지 하나님이신지를 정확히 분별하여 주셨고 그리고 명확하게 하나님만 경배할 것을 판단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결론

 

육식동물은 주로 초식동물을 잡아 먹습니다. 예를 들면 사자가 사슴을 잡아 먹는데 먼저 사자가 사슴 무리를 지켜보면서 어느 사슴을 잡을 것인지 그 공격대상을 분별하여 선택을 합니다. 다음은 그 대상 사슴에게 조심스럽게 접근을 합니다. 어느 정도 사정거리까지 접근했다고 판단이 되면 거기에서 순간적으로 그 사슴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사자의 이같은 행동 가운데 분별과 판단이라는 중요한 두 단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물들도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분명한 분별과 가장 적당한 때를 가리는 판단을 한다면 우리에게도 당연히 정확한 분별과 바른 판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여러 군데 성경을 근거로 예수님의 분별과 판단에 관한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특히 예수님이 40일 금식기도 하시면서 세 가지 시험을 받으신 것을 근거로 주님이 무엇을 어떻게 분별하여 판단하심으로 사탄을 물리치셨는지를 배웠습니다.

 

지금도 사탄은 이 세 가지 차원에서 우리를 시험합니다. 우리의 아킬레스건을 찾아서 쉴 새 없이 공격하는 것입니다. 먹는 것, 명예의 문제, 누구를 경배하고 따를 것인가의 문제로 우리를 공격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주님의 분별과 판단을 잘 배워서 이런 시험에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떡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가치와 중요성을 분별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여 나의 명예를 높아지고자 한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임을 정확히 판단하여 생활해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내가 누구를 섬기며 따르고 있는지를 분명히 분별하고 바른 판단하에 주 하나님만 경배하며 따라야 하겠습니다.

 

또한 사탄의 이런 공격을 주님이 말씀으로 물리치셨듯이 우리도 성령의 검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여(6:10-17) 원수를 무찌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처럼 시험에 승리하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담은 시험에 넘어짐으로 모든 인류를 죄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지만 둘째 아담 예수님은 시험에 굴복하지 않으시고 당당하게 이기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시험에 대한 주님의 분별과 판단력을 잘 배우고 아울러 성령의 검으로 무장하여 시험에 승리하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찬송/ 342

기도 제목/ 주님의 분별과 판단력을 배워서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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