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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0 1 외모와 중심을 분별하시는 하나님 이정현 목사 2023-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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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무엘상16:6-13절 개역개정

6.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8.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을 지나가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

9. 이새가 삼마로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라

10. 이새가 그의 아들 일곱을 다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11.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12.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3101일 삼상 16:6-13, 외모와 중심을 분별하시는 하나님

 

10월의 주제가 분별과 후함입니다. 앞으로 세 주간은 분별에 대한 말씀을 듣게 될 것이고 나머지 두 주간은 후함에 대한 말씀을 듣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추석 지나고 첫 주일인데 분별에 대한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분별이라는 단어를 국어 사전에서는 세상 물정에 대한 바른 생각이나 판단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이 정의에 바른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래서 분별은 긍정적으로 사용될 때가 많고 다른 말로 바른 판단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분별은 곧 바른 판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분별과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는 낱말이 판단입니다. 판단은 사물을 인식하여 논리나 기준에 따라 판정을 내림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판정의 기준이 논리와 기준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판단은 문맥에 따라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기준이 바르면 긍정적으로, 바르지 않으면 부정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단어가 바로 판단입니다.

 

두 단어의 정의를 볼 때, 사실상 판단분별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판단의 범주 안에서 바른 기준이 적용된 것은 분별 혹은 바른 판단이고, 잘못된 기준이 적용된 것을 잘못된 판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물정에 대한 분별을 할 줄 알아야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분별을 잘 해야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이 두 단어가 사용된 것을 근거로 하나님의 분별과 판단에 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성경에 분별이라는 단어가 28번 나오고 판단이라는 단어는 무려 75회나 나타나고 있습니다. 두 단어를 합하면 100회가 넘게 사용이 되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분별과 판단은 항상 긍정적이고 옳은 것입니다. 시편에 보면 그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라 그의 판단이 온 땅에 있도다”(105:7),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옳으니이다”(119:137)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판단이 온 땅에 있다는 말은 그는 전 세상을 지혜로운 판단으로 다스리신다는 뜻이고 그분의 판단은 항상 옳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고보는 재판자, 판단자는 오직 한 분이신데,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는하나님이시라고 말합니다(4:12). 구원하시기도 하시고 멸하기도 하시는 하나님 여호와가 진정한 판단자이시라고 하셨습니다.

 

신명기 32:36에서는 참으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판단하신다고 하셨고 욥기 35:14에도 하나님은 일을 판단하시는 분임을 말씀하셨고 그 외 시편 기자는 여러 군데에서 하나님은 의의 세계를 판단하시며’(98:9) 또한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해 달라’(17:2, 26:1, 35:24, 43:1)고 기도하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서 2장에 보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꾸었는데 바벨론의 박수 점쟁이 술사들은 아무도 그 꿈을 알아내지 못하였습니다. 왕이 크게 노하여 그들을 다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근위대장이 바벨론의 현자들을 찾아서 죽이려고 하는데 이때 다니엘이 나서서 자기가 왕의 꿈과 그 해석을 보이겠다고 말합니다. 그 밤에 다니엘은 같은 유대인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기도하다가 환상 중에 그 꿈과 해석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이 하나님께 찬송하며 하나님께 이런 고백을 하게 됩니다. “20 다니엘이 말하여 이르되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능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21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도다 22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 데에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 23 나의 조상들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제 내게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우리가 주께 구한 것을 내게 알게 하셨사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고 주를 찬양하나이다 곧 주께서 왕의 그 일을 내게 보이셨나이다 하니라”(2:20-23). 다니엘의 고백 중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분명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분은 지혜와 능력이 있는 분이시고 그 분은 때와 계절을 바꾸시는 분이시고 그분은 왕들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분이시고 그분은 깊고 엄밀하고 흑암 중에 있는 것도 아시는 분이시라고 하셨습니다. 세상 만물에 대한 주권자이시고 만물을 분별하여 판단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런 지혜와 능력을 홀로 가지신 분이시라는 고백입니다.

 

창세기 6:5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사람들의 행위와 마음까지 항상 악함을 판단하셔서 홍수로 심판하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은 누가 의인이고 누가 악인인지를 정확하게 분별하여 의인은 방주로 구원하시고 악인은 물로 십판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분명히 하나님의 정확한 분별과 분명한 판단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사람은 사람의 마음과 생각과 그 행동의 저의를 잘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생각까지 아시고 우리의 언행의 저의까지 다 아시고 정확히 분별하시며 판단하시는 분이십니다. 악한 마음을 품었는지 선한 마음을 품었는지 알지 못하고 했는지 알면서도 했는지를 다 아시는 하나님이심으로 그것에 대하여 분명히 판단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별력과 판단력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하나님이 사울을 패하시고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기 위하여 사무엘을 이새의 집으로 보내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무엘 선지자를 이새의 집으로 보내시면서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삼상 16:1)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다 알고 보시고 계셨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은 작정과 섭리 가운데 당신의 일을 당신의 뜻대로 진행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지시를 받은 사무엘은 암송아지 한 마리를 끌고 가서 제사를 드리면서 이새의 가족들을 제사에 초청한 것입니다. 제사를 다 마치고 선지자가 큰 아들 엘리압을 보고 마음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6). 사무엘이 보기에는 키도 크고 용모도 준수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7)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단호하게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의 용모는 얼굴 생김새나 풍채 등을 말합니다. 외부로 드러나는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 머리에 기름 부을 자를 택할 때 결코 외적인 모습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말이 용모나 신장은 무조건 배격하고 무시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그러한 것이 결코 하나님의 일꾼이 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데 있어서 외모적인 것이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의 일 순위는 외모가 아닌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그를 버렸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이새의 큰 아들을 한 인격체로 포기하거나 버렸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왕깜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시면서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나는 그 중심을 본다는 그 유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울을 선택할 때 그의 탁월한 신체를 중시했던 것처럼(9:2, 10:23-24), 여기서 지금 사무엘도 그같이 외모를 중시했음을 암시해 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에 있어서 인간의 척도와 하나님의 척도가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비록 인간은 사람의 외적 용모, 신장, 배경 등을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내적 겸손, 신앙, 인격, 진실성 등을 감찰하신다는 의미입니다(대상 28:9, 7:9, 16:15).

 

어느 중년 신사가 여름에 키도 크고 날씬한 여자 청년이 배꼽티를 입고 교회에 온 것을 보았습니다. 무심결에 이 신사가 그 여자 청년의 하얀 속살이 드러나 있는 배꼽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참 쳐다보고 있으니까 이 청년이 아이 집사님 왜 남의 배꼽을 쳐다 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집사가 이렇게 말을 했답니다. ‘하나님도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중심을 본다고 해서 나도 한 번 중심을 봤지.’ 남자 여러분, 절대로 이러시면 안됩니다. 이런 여성이 교회 와도 남자분들은 얼굴만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외모를 본다고 했으니까. 우리는 사람 몸의 중심을 볼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중심은 마음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마음을 살피신다는 뜻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그 사람의 마음까지 보고 알고 분별하시고 판단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엘리압의 외모만 보고 이 사람이다라고 판단을 해서 기름을 부으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그의 마음을 보고 판단하시니까 이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새가 둘째 아비나답을 불러서 세웠더니 하나님이 이 사람도 아니라고 하셨고 셋째 삼마를 세웠더니 역시 하나님은 그를 택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이새가 그의 아들 일곱을 다 불러서 선지자 앞에 세웠지만 하나님은 그때마다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지자 사무엘이 여기서 면접을 마치려고 하다가 이새에게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11)라고 물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네 아들이 7곱 명이 다냐라고 물은 것입니다. 이때 이새가 조금은 엉뚱한 말을 합니다.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여기의 막내는 8번째라는 말이겠지요. 그런데 약간 혼동이 오는 것은 역대상 2:13-15에 기록된 다윗의 가계에 따르면, 이새의 아들은 다윗까지 포함하여 도합 7명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이새의 아들이 다윗까지 포함하여 도합 8명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차이는 분명 이새의 8명의 아들들 중 한 사람이 어려서 일찍 죽었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본문에 보면 분명 다윗은 이새의 여덟 번째 아들입니다. 그가 들판에서 양을 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은 왜 들판의 양치기로 있고 형들이 있는 이 제사에 참여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바로 다윗이 그처럼 어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당시에는 이런 제사에 참여할 수 있는 나이 제한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의 가장 어린또는 가장 작은이라는 뜻을 가진 막내라는 단어가 이를 증명하는 것 같습니다.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아직 그는 제사에 참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당시 다윗의 모습은 사울의 큰 키는 너무나도 대조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9:2, 10:23). 그러면 이때 다윗의 나이가 몇 살 이었을까요?

 

유명한 신학자 레온 우드(Leon Wood)15세 가량으로, 그리고 카일(Keil)20세 가량으로 추정합니다. 아무튼 당시 다윗이 제사 의식에 공식 참여치 못했다는 사실은 그가 만 20세 이상의 성년 남자가 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제 이새의 말을 들은 사무엘은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다’(11)고 말합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보내신 목적이 있음으로 밥 먹는 게 우선이 아니라 그것을 이루는 것이 우선이라는 마음으로 이렇게 얘기 한 것입니다.

드디어 막내가 사무엘 앞에 섰는데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12)고 하였습니다. 지금도 역시 사무엘은 선지자이지만 막내의 외모만 보고 있습니다. ‘빛이 붉다는 것은 머리털 색깔이 붉다는 것인데 이는 당시 근동에서 아름다움의 한 조건이 되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눈이 빼어나다는 말은 눈이 반짝여서 총기어린 아름다운 눈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얼굴이 아름답다는 것은 내면에서 풍겨나는 외적 아름다움을 가졌다는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양치기 소년 다윗의 외모도 만만치 않은 것입니다. 초대 왕 사울만큼은 아닌지 몰라도 그의 외모도 준수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외모가 아닌 그의 마음을 보셨습니다. 그의 마음이 어떠하였기에 하나님이 그 마음을 보시고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것입니까? 본문에는 다윗의 마음이 나와 있지 않지만 성경에 나타난 다윗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마음이었습니다(삼상 13:14). 여기의 합하다는 말은 여러번의 테스트를 통해 입증되었다는 뜻입니다. 다윗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이제 드디어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고 하셨습니다. ‘이가 그다는 말은 얘가 내가 세우고자 했던 바로 그 왕이라는 말입니다. 이 아이가 내가 이새의 가문에서 본 바로 그 왕이라는 말씀입니다. 그에게 기름을 부르라.


사무엘이 기름 뿔 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13). 다윗은 모두 3차에 걸쳐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 여기 첫 번째 기름 부음은 비공식적으로 이새의 가족만 참석한 가운데 은밀히 부어졌고, 두 번째는 헤브론에서 유다 족속의 왕으로 올랐을 때(삼하 2:3-4) 기름 부음을 받았고 세 번째는 마침내 다윗이 전체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했을 때(삼하 5:3)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다윗이 전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을 때의 나이가 30세였음으로, 첫 번째 기름 부음을 받고 난 이후 약 10-15년 동안 다윗은 많은 훈련과 시련을 겪은 후에 전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입니다. 다윗은 이 모든 고난과 시련의 세월을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위로와 안보하심 가운데 지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은 세상 만사 모든 일들의 원인과 목적과 그 일의 결과를 다 아시는 전지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또한 그 모든 것을 정확하게 분별하시며 판단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달리 탁월한 분별력과 판단력을 소유하고 계신분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분별과 판단은 항상 옳은 것이며 최종적이며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자녀들로서 그분의 이런 성품을 배워서 실천함으로 그분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분별을 잘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는데 분별을 잘하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 집중하고 그 말씀에 의존하여 살아갈 때 그 말씀이 나의 분별에 빛이되고 길이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내 앞길을 조명할 때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라도 바른 분별과 바른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119:30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성실한 길을 택하고 주의 규례들을 내 앞에 두었나이다.” 주의 규례들을 내 앞에 두었다는 말은 마치 글씨 쓰기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견본을 앞에 놓고 그것을 그대로 쓰면서 익히는 것처럼, 시편 기자도 성경을 앞에 두고 그 말씀을 정독하고 읽은 말씀 그대로 실천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평소에도 그 말씀을 따라서 성실한 길을 분별하여 선택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말씀에 의존해야 바른 분별을 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히브리서 4:12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 전부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입니다. 이런 정도로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영향을 준다면 우리는 그 말씀을 기준으로 분별하는 능력이 생기고 또한 사리를 바르게 판단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심지어 말씀에 의해서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기도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인가 잘 분별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해야 합니다.

 

또 분별을 잘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항상 성령님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는 분별하기가 어려운 문제들이 있습니다. 선과 악, 성 속, 하나님의 뜻과 아닌 것, 우선순위 등등의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지 모를 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께서 선하게 인도해 주십니다. 내 안의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자 하는 선한 마음으로 기도한다면 분명 그분의 인도를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 어떤 문제에 대한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분별한다면 그것은 곧 바른 판단이 될 것입니다.

 

말씀에 의존하는 삶, 항상 성령님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것을 통하여 분별을 잘하는 자가 되어서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찬송/

 

기도 제목/ 하나님의 분별과 판단을 잘 배워서 우리도 그런 성품으로 살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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