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2 우리의 말을 경청하시는 하나님 | 이정현 목사 | 2023-07-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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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66:16-20절 개역개정16.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너희들아 다 와서 들으라 하나님이 나의 영혼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내가 선포하리로다 17. 내가 나의 입으로 그에게 부르짖으며 나의 혀로 높이 찬송하였도다 18.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19. 그러나 하나님이 실로 들으셨음이여 내 기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셨도다 20.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그의 인자하심을 내게서 거두지도 아니하셨도다 [성경본문] 누가복음12:16-21절 개역개정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23년 7월 2일 시 66:16-20, 눅 12:16-21, 우리의 말을 경청하시는 하나님 7월의 주제가 ‘경청’인데 이 주제는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한 달 동안 경청에 대한 말씀을 들을 때에 경청하여 깨닫고 은혜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경청이라는 말의 히브리어는 ‘귀를 쫑긋 세우다, 귀를 기울이다’는 뜻입니다. 상대방의 말이나 태도에 주의 깊게 귀를 기울여 듣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아들이 아버지의 말에 귀를 기울여 듣는 것을 일컬어 경청이라고 합니다. 잠언 5:1에 “내 아들아 내 지혜에 주의하며 내 명철에 네 귀를 기울여서”라는 말씀에서 ‘귀를 기울이다’에 해당되는 말이 경청(하트)입니다. 경청이라는 말은 ‘상대방의 말과 감정에 모든 주의를 집중하는 것’을 말합니다. 단순히 상대방의 말에만 주의 집중하는 것을 말하지 않고 상대방의 감정에도 주의 집중하는 것을 경청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경청하고자 하는 사람은 상대편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말고 잘 들어야 하고 또한 감정까지도 파악하며 주의깊게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40대 수련회를 했을 때, 첫째 시간에는 부부 사이의 소통에 대한 강의를 들었고 오후에는 부모와 자녀 사이의 소통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두 번째 시간의 강의자였던 민혜영 강사가 자녀들과 소통을 잘하기 위해서 2가지를 강조했는데, 그 첫 번째가 질문을 잘해야되고 다음은 질문에 따라 아이들이 대답을 할 때 그 말에 부모가 경청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책이나 강의를 통하여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가 부모가 자녀들의 말에 경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소통을 위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경청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엉뚱한 말을 하거나 이상한 질문과 대답을 해도 그 말에 주의 집중해서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경청을 방해하는 것이 산만입니다. 산만(하다)은 상대편의 말이 아닌 다른 것에 마음과 귀를 빼앗김으로 생각과 집중력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말합니다. 상대방의 얘기를 듣다가 갑자기 전화 벨이 울리거나 주위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거나 듣는 자의 시야에 갑자기 무엇이 나타나거나 아니면 새로운 생각이 들 때 산만하게 됨으로 경청에 실패할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설교 시간에 이같은 주위의 환경 때문에 말씀 경청에 실패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옆에 사람이 소근 거리거나, 불필요한 소리를 내거나 기침이나 재채기를 하거나 핸드폰이 울리거나 마이크의 하우링이 생기거나 부채질을 하거나 고개를 떨구며 졸거나 코를 골며 자거나 또한 자기가 설교를 듣다가 말씀과 관계없는 엉뚱한 생각을 함으로 설교 말씀을 경청하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자들은 항상 기도할 것이 예배를 잘 드리고 말씀을 잘 들을 수 있는 좋은 환경 경건한 환경이 되도록 기도해야 하고 또한 혹시 그런 산만한 환경이 되더라도 흔들림 없이 끝까지 말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산만의 결과는 실패입니다. 그래서 혹자는 산만을 우리의 집중력을 빼앗아가고 우리의 시간을 몰래 훔치는 도둑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산만의 결과를 실패라고 하고 반대로 경청의 결과를 은혜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경청의 반대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무신경입니다. 이 말은 감각이 아주 둔한 것을 말하기도 하고 어떤 것에 대한 관심과 반응이 전혀 없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남들의 말에 관심도 없으니 주의 집중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관심한 사람은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좋아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찾느라 바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경청의 반대는 무신경이라고 할 수 있는데,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무신경적 신앙생활은 아주 위험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시편 66편과 누가복음 12장인데 순서대로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편 66편의 저자가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시편 기자가 이 시편을 쓰게 된 배경과 중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기가 지난날 많은 어려움과 고난을 당하였는 데 그때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며 하나님께 소리 높여 찬송하였을 때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 주심으로 나를 고난 중에 건져 주셨음을 사람들 앞에서 간증하는 것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시인은 먼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자기에게로 초청을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말은 하나님이 무서워서 벌벌 떠는 사람을 말하지 않고 경건하고 의롭게 살려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초청하여 하나님이 나에게 행하신 일을 들으라고 선포합니다. 여기의 ‘나의 영혼’은 ‘나’라는 존재를 말합니다. 하나님께 나에게 행하신 그 모든 일을 경건한 사람들에게 말할 것이니 들으라는 얘기입니다. 내가 간증하고 너희들이 들어야 할 핵심적인 말은 다음 몇 구절입니다. “17 내가 나의 입으로 그에게 부르짖으며 나의 혀로 높이 찬송하였도다 18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19 그러나 하나님이 실로 들으셨음이여 내 기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셨도다.” 내가 부르짖어 기도하고 소리 높여 찬송했다는 내용이고 내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셨을 것이나 마음에 죄악을 품지 아니하였음으로 하나님이 진실로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내 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셨다고 말합니다. 사방의 고난과 어려움과 환난 가운데서 시인은, 깨끗한 마음으로, 위에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고 입술로 높이 찬송하였습니다. 시인은 고난과 환란의 때에 그 누구에게 찾아간 것이 아니고 오로지 하나님을 찾아서 그만 의지하며 간절히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에게만 이 문제의 해결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하나님을 찾아 부르짖은 것입니다. 시편 121편의 저자가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라고 하신 것처럼 본문의 저자도 동일하게 주님만이 나의 도움이시라고 고백하며 기도한 것입니다. 여기의 ‘내가 부르짖으며’(17)라는 말은 내가 도움을 호소하며 급하게 울며 간절히 매달린다는 뜻입니다. 다급한 마음과 애절한 마음으로 기도한 것입니다. 또한 자기 마음에 죄악을 품지 않았습니다. 정결한 마음, 깨끗한 마음, 회개하며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죄를 짓지 않았으며 마음까지 죄를 품지 않았다는 표현입니다. 몸과 마음과 생각을 깨끗이 하고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시인은 하나님이 내 기도 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셨고 내 부르짖음을 들으셨다고 말합니다. 제가 이렇게 같은 말로 반복 강조하는 것은 성경이 그렇게 반복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들으셨고 귀를 기울이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20절에 이렇게 결론을 맺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그의 인자하심을 내게서 거두지도 아니하셨도다.” 시인은 이 시의 결론을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으로 마무리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나에게 행하셨던 일을 간증하면서 시작할 때도 하나님을 찬송하고 마치면서도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찬송하는 이유는 한 가지로 ‘그가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좀 더 넓게 확장시키면 ‘그의 인자하심을 내게서 거두지 아니하셨기 때문이’ 되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나를 향한 그분의 인자하심 때문이고 그것을 좀 더 좁게 말하면 내 기도를 들어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로 인하여 내가 여호와를 찬송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거두지 아니하실 때 우리의 기도가 응답될 수 있으며 그 기도 응답으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편의 배경은 시편 기자가 지금 많은 여려움과 고난을 당하고 있었고 그런 환경 속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 내용은 하나님은 나를 버리거나 외면하지 않으시고 인자하심을 거두지 않으시고 내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시고 들어 응답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내 입술로 기도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내 혀로 찬송하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찮은 인간의 말이나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주의하여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찬송과 기도를 들으신다는 성구는 수십 수백 구절이 될 것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따라서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고 우리 찬송 가운데 거하시면서 찬송을 흠향하시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가 읽은 두 번째 성구는 누가복음 12장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비유로 가르치신 유명한 구절인데 비유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한 부자가 넓은 농지에서 소출이 풍성해서 마음으로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하지?’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 부자도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을 했겠지만 그러나 결국은 하나님이 그 부자에게 자비와 은총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이 부자는 그 해에 더 많은 소출을 수확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많은 곡식을 쌓아 둘 곳을 염려하는 것입니다. 한참 고민을 하다가 18절과 같이 결론을 내렸습니다.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18). 지금 있는 창고를 헐고 창고를 더 크게 지어서 내 모든 곡식과 물건들을 그곳에 쌓아 두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곳간이 복수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단순히 더 큰 창고를 지었다는 얘기가 아니라 더 많은 새로운 곳간을 지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자기 영혼 곧 자기 자신에게 말합니다.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편안히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19). 이 부자는 조금 진부한 행복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먹을 것이 많으니까 그것을 마음껏 먹고 마시면서 즐기는 것이 인생의 행복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많은 물질이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 주는 것 아니고 저축 통장에 쌓인 많은 현금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의 미래에 대하여 이 부자는 자기 중심적이며 자기 탐닉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만약 이 부자가 나중에 흉년이 들면 자기의 곡물 가격을 올려서 팔기 위하여 창고에 저장해 두고자 했다면 욕심에 이끌린 이기적인 가치관과 행복관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때 그 부자를 어리석다고 말하면서, “20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거나 자신이 곧 죽거나 멸망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목숨이 오늘 밤에도 끝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재물에만 심취하여 있는 이 부자와 같은 사람을 어리석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 비유에 나오는 부자의 문제는 무엇인가요? 예수님이 이 비유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신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오직 자신만을 위하여 재물을 쌓지 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부자는 그리 살지를 못하였습니다. 특히 17절에서 이 사실을 강하게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거기에 ‘내 모든 곡식, 내 곳간, 내 물건, 내 영혼’이라는 말과 함께 ‘...할 것이다’라는 표현이 의도적으로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같은 말씀들을 볼 때 부자는 단지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을 갖고, 자신을 위해서만 물질을 쌓고 있는 이기적인 사람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 나라와 교회와 선한 일과 이웃들과 가난하고 병들어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1도 관심을 갖지 못한 사람이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마지막 구절에서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다’고 하심으로 현대 우리들에게 적용하시고 교훈하여 주셨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는 것은 궁극적으로 가치가 없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본문의 부자는 진정한 의미에서 부자가 아니고 이기주의적인 욕심꾸러기이고 결코 행복한 자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재물이 많든 적든 간에 그것으로 온전한 11조를 드리고 선한 일에 앞장서고 선교하고 장학하고 이웃들을 섬기고 도와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재물을 하늘나라에 쌓는 것입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본문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하여 한 가지 사실을 얼려주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은 ‘심중에 생각하고’ ‘자기 영혼에게 말하는 것과’ ‘부르짖어 기도하며 속으로 끙끙대며 기도하는 것’과 ‘우리의 작은 신음까지’도 다 알고 들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생각과 말과 계획과 모든 행위들을 속속들이 알고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사소한 일까지 주의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와 찬송을 경청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두 부분의 성경과 그 외 여러 구절의 말씀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대로 지은 인간들과 항상 교통하며 인간들의 작은 신음에도 귀를 기울이사 듣고 응답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너희에게 행하리라’(민 14:28)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결론 누가 여러분의 말과 감정에 귀를 기울여 주십니까? 남편입니까? 아내입니까? 아니면 부모님이십니까? 자녀들입니까? 목사님입니까? 아니면 주위의 이웃들입니까? 여러분들이 저들의 경청자입니까를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의 말과 감정을 경청해 주실 분이 누구인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여러분들의 마음과 생각과 감정과 말을 진지하게 귀 기울여 들어주십니까? 나의 소원의 소리, 가슴 아픈 슬픈 사연들, 심지어 마음 깊은 곳에 파묻혀 있는 여러 가지 죄악의 찌꺼기들까지 끄집어내어 회개하는 소리, 심지어 너무 괴로워서 말을 할 수가 없어서 하염없이 울고 있는 그 소리를 누가 듣고 해결해 주십니까? 바로 좋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말 뿐만아니라 생각과 마음까지 다 주의 집중하셔서 듣고 알고 계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형편과 상황과 처지를 다 알고 보시고 듣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셔서 감사합니다. 그 하나님께 어디에서 무엇이든지 다 아뢸 수 있고, 교제하며 교통할 수 있어서 감사할 뿐입니다. 우리의 기도 소리를 들으시고 우리의 가슴 아픈 사연까지 다 들으시고 우리의 찬양에 귀를 기울여 들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찬송/ 주만 바라볼찌라 기도 제목/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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