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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6 4 에베소 사람들의 결단성 이정현 목사 2023-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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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도행전19:8-20절 개역개정

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10.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17.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364일 행 19:8-20 에베소 사람들의 결단성

 

6월의 주제는 결단성과 책임입니다. 6월 첫째 주일인 오늘은 사도행전 19장의 말씀을 근거로 에베소 사람들의 결단성에 대하여 살펴봄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결단성 또는 과단성이라는 말을 국어 사전에서는 결정적인 판단을 하거나 단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뜻과 방법에 근거하여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무엇을 선택하거나 어떤 일을 결정할 때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이 되는 쪽으로 결정하는 능력을 가리켜 결단력이라고 합니다.

 

결단성의 반대는 두 마음입니다. 두 마음은 상반된 두 의견 사이에서 오락가락 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에 두 마음이라는 말이 전체 6번 나타나는데 이 말의 원뜻(딥쉬코스)두 번의 마음을 말하는 것으로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마음을 말합니다. 이 말은 신약에서 야고보서에서만 두 번(1:8, 4:8) 사용이 되었습니다. 이런 두 마음을 야고보는 정함이 없는 자, 의심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의 줏대가 없이, 말씀에 따라 분명한 결단력이 없이 오락가락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사람은 마치 바람에 따라 바닷물이 이리저리 요동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두 마음을 품는 자는 기도해야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 마음을 품는 것과 결단성은 분명 상반된 단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에게도 이 결단성이 있으심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일단 하나님의 결정은 무엇이든 선하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하신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은 선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이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들은 영원하리이다”(119:160). 주님의 말씀은 참이고 선이며 그것은 영원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온 세상을 심판한 날과 재판장을 미리 결정하셨습니다. 창조주로서, 만물에 대한 주권자로서 하나님이 이것을 결정하셨다는 말씀입니다.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17:30-31). 하나님이 심판주와 심판의 날을 정하셨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태초에 우리를 자녀 삼기로 작정하셨고 부르시고 선택하셨습니다.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1:4-6). 하나님은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예정하셨습니다. 이같은 중요한 몇 가지 사실만 보더라도 하나님에게도 결단성, 과단성이 있으심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도 과단성이 있으십니다. 예수님이 사탄의 시험을 받으셨을 때 말씀을 근거로 과감하게 물리치셨습니다. 사탄의 말을 듣지 않기로, 기록된 말씀에 근거하여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신 것입니다(4:10). 또 예수님이 갈릴리 지방에서의 사역을 마치시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기로 결정하시고 어떤 상황에도 단념하지 않으시고 그 일을 추진 하셨습니다. 주님은 맡겨주신 하나님의 일을 완수하시기 위하여 예루살렘 행을 결정하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자기의 뜻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뜻을 간구하셨으며 마침내 십자가를 지시기로 결단하셨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결국 아버지의 뜻에 따른 그리스도의 결단이 우리의 구원을 완상하신 것입니다.

 

이런 몇 구절의 성구를 근거하여 볼 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결단성의 성품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에베소 성도들의 결단성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제3차 전도 여행 때 에베소에 들려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에베소는 소아시아 서해안에 있는 항구도시로서 교통과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으며 아시아의 보고로 불리 울 만큼 번창하였습니다. 그러나 각종 미신들과 이방 종교들과 사회적 병폐들이 만연해 있었습니다. 당시 에베소인들은 정치적, 경제적 중심지로서의 위치를 점점 잃어가는 것을 염려한 나머지 이전부터 섬겨오던 아데미 여신을 더욱더 열심히 섬겼는데 이 여신의 신전은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습니다. 바울은 이런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로 결단하였던 것입니다. 본문의 흐름을 따라서 몇 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1. 바울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담대히 복음을 전합니다(8-10).


“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10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바울은 에베소 회당에 들어가서 3개월 동안 말씀을 강론하였습니다. 지금까지도 바울은 회당을 근거지로 복음을 많이 가르치고 전파하였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가르치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담대하게 하나님 나라를 강론하며 권면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처음부터 승천하시기까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시고 가르치셨던 것처럼 바울의 가르침의 중심도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바울은 이 하나님 나라를 그들이 받아들이도록 담대히 전하였고 또한 설득하려고 모든 노력을 동원했던 것입니다. 3개월 동안 전심전력을 다해 복음, 하나님 나라를 전했지만 그 결과는 너무 초라했습니다.

 

그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기까지했습니다. 전파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 문을 굳게 닫고 스스로 마음을 완악하게 하였습니다. 심지어 혹자는 바울에 대하여 적대감을 가지고 비방하기까지 하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더 이상 회당을 복음증거 장소로 이용할 수 없다고 느끼고, 두란노 서원으로 장소를 옮겼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3개월 동안 몇몇 사람을 건질 수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을 데리고 두란노 서원으로 온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거부하는 완악한 자들로부터 새로 얻은 그리스도인들을 따로 구분하여 새로운 교회를 형성하게 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비록 에베소 회당에서 복음 전도의 좋은 결과를 많이 얻지는 못했고, 오히려 완악한 사람들로부터 비방하는 말을 들었지만, 그래도 여기에서 포기하거나 실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쪽으로 결단을 내려서 소수의 제자들을 데리고 두란노 서원으로 자리를 옮겨서 복음전파를 지속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두란노는 이곳에서 가르쳤던 선생의 이름인지, 아니면 이 서원의 소유주의 이름인지, 그것도 아니면 단순히 이 서원 자체의 이름인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한편 본문에는 기록이 없지만 서방 본문’(Western Text) 몇몇 사본에 따르면 ‘5시부터 10시까지라는 말이 첨가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시간은 오늘날의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의 시간을 말합니다. 이 사건은 보통 당시의 오후 휴식 시간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사본들에 따르면 바울은 사람들이 일하는 노동 시간을 피하여 휴식 시간에 말씀을 가르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직장인들과 상인들과 사업가들의 휴식 시간을 이용해서 바울은 두란노에서 정기적인 성경공부 모임을 가진 것입니다.

 

이곳에서 바울의 가르침은 2년 동안 계속되었고 그러한 노력은 에베소에서 큰 결실을 이루어 많은 교회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10절에 보면 대단한 결과가 일어 났습니다. ‘아시아에 사는 자는...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2년 동안 바울의 열심 있는 사역은 조금 과장된 표현을 썼겠지만 아시아 사람들이 다 주의 말씀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바울의 사역은 에베소 교회를 중심으로 그 주변에 많은 교회를 탄생시켰습니다. 루커스 계곡(the Lycus Valley)에 골로새, 히에라볼리, 라오디게아 교회들이 세워졌고, 소아시아 지역에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등 여러 교회들이 속속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조금 전에 회당에서 3개월 전도 했을 때, 사람들이 마음을 완악하게 하여 적개심을 가지고 바울을 비방했을 때, 만약 낙담하여 포기했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두란노를 통한 이런 역사가 일어났을까요? 바울은 그때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을까,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일까?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고난과 비방 중에서도 지속적인 복음전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며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쪽으로 결단을 내렸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많은 열매를 맛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결단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나아갔을 때 2년 만에 놀라운 결과, 엄청난 열매, 많은 교회를 주신 것입니다.

 

2. 하나님은 바울을 통하여 놀라운 이적을 행하셨습니다(11-18).

 

“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하나님은 바울을 통하여 이적을 일으키시기 시작하셨는데 그 이적들은 제자들에게조차도 익숙지 않은 특별한 것들이었습니다. 베드로가 그의 그림자를 통해서 일으킨 이적(5:15-16)이 있지만 본문의 바울의 이적하고는 차이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같은 장소에서 역사가 일어났지만 바울은 쩔어진 장소에서도 이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 이적의 공통점은 하나님이 일으킨 이적이라는 점과 둘 다 영육적인 질병에서 고침을 받았다는 점입니다. 미신과 주술이 범람한 도시에서 하나님은 바울을 통하여 놀라운 이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심지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갔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신비한 능력을 행하신 것이지 앞치마나 손수건에 무슨 능력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심지어 어떤 물건을 통하여서도 얼마든지 능력을 행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희한한 능력이 나타나자 이것을 보았던 유대 마술사들이 똑같은 이적을 행하려고 바울의 행동을 모방해 보았습니다. “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 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마술사들이 에수의 이름을 들먹이며 귀신을 쫓아내려고 하였지만 결코 그리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온전히 믿고 의지하여 그 이름으로 귀신에게 명하는 것과 믿지도 않으면서 그 이름을 이용하여 무엇인가 해 보고자 하는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이제는 제사장 스게아의 일곱 아들이 나섰습니다. 이 구절의 문제는 헬라어 원문에는 스게아를 대제사장으로 언급을 하고 또한 여러 영어 번역본에서도 그를 대제사장으로 번역하고 있다는 것입니다(KJV, RSV, NASB, MB, NIV-chief priest, high priest). 그렇다면 대제사장이 이방인의 땅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다음 두 가지로 추측해 볼 수 있겠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예루살렘의 대제사장 가문에 속한 자들이었는지는 모르나 아마도 유대교의 신앙도 잃어 버리고 타락하여 귀신 쫓는 일이나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 다른 한 가지 이유는 이들은 대제사장 가문이 아니었는데 거짓과 사기로 대제사장이라고 함으로 유대인들로부터 관심과 도움을 받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두 가지 추측 다 확실히 믿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두 번째 설이 좀 더 신빙성이 간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유대 문헌에 스게아라는 이름의 대제사장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어떤 짓을 하고 그것으로 인하여 어떤 봉변을 당하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이들은 교활하고 사악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바울을 흉내내다가 결국 스게아의 아들들이 악귀 들려 상하고 벗은 몸으로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도 없이 또 사악한 동기에서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려는 자들에게는 오히려 사단의 징벌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악귀가 쫓겨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달려들어서 몸을 상하게 하고 부끄럽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이적을 보고 이런 나쁜 반응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17-18에 좋은 반응과 결과도 있었습니다. “17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바울이 예수의 이름을 사용할 때는 귀신이 쫓겨나고 주술사들이 예수의 이름을 사용할 때는 주술사들이 오히려 귀신에게 쫓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단지 그들은 예수의 이름이 모든 귀신을 압도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 이름을 높이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이 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에베소 시민들은 그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보지 못하고 경험해보지 못한 예수의 이름이 지닌 신비한 능력 앞에서 자신들이 지금까지 은밀하게 범하던 잘못들을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에베소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예수를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생활 습성을 청산하지 못하고 은밀하게 미신과 주술을 쫓거나 그 같은 일들을 직접 행하고 있었던 것들을 회개한 것입니다.

 

3. 에베소 신자 중 일부는 과감한 결단을 합니다(19-20).

 

“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서두에서 말씀을 드린대로 이 도시에는 마술을 행하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여기 마술이라는 단어는 쓸데없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누가가 마술을 쓸데없는 일이라고 표현한 것은 마술을 공허한 것을 섬기는 우상 숭배와 같은 차원에서 이해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에베소에 많았다고 했는데, 이들 중 많은 사람이 회개하게 되었고 또한 그리스도의 복음이 에베소 전역으로 확산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마술을 행하던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큰 결단을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악된 행동을 회개하고, 자신들의 변화된 삶을 공개적으로 증거하기 위하여 마술과 관계된 모든 서적들을 모아서 불사르게 됩니다. 이 책들은 주문이나 부적 등 미신적인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서 파피루스나 양피지에 기록된 것들이 많았는데 이러한 책들을 흔히 에베소의 책들이라고 불리워 집니다. 아무리 예수 믿고 변화되었다 하더라도 과거의 이런 책들을 창고에 보관을 하거나 버릴 수도 있고 팔 수도 있었을 것인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단호하게 불태워 버린 것입니다. 이는 완전히 그것을 단절하겠다는 강한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댓가를 치루더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하겠다는 단호한 결단을 한 것입니다.

한편 공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책을 불태우는 것은 그 내용을 공식적으로 배격하는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36:23). 따라서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공중 앞에서 공식적으로 과거 자신들의 죄악된 삶을 청산하고 이제 그리스도인들이 되었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불태운 책값을 계산하니 은 오만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에베소에는 대부분 헬라인들이 살았기 때문에 은 오만에 대한 화폐 단위는 아마도 드라크마데나리온이었을 것입니다. 이 두 화폐의 가치는 거의 같은 것으로서 한 드라크마는 당시 일용 노동자의 하루 품삯 정도에 해당 되는 돈입니다. 따라서 이것을 오늘날 액수로 환산 한다면 5*하루 일당 8만원을 잡아도 40억원에 해당합니다. 엄청난 액수의 돈입니다. 이러한 사실 하나만 본다 하더라도 당시 에베소에 미신이나 마술이 얼마나 극심했던가를 알 수 있고 또한 기독교인들의 결단이 얼마나 대단한 결단이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

에베소 신자들이 옳은 일을 단호하게 결정하였을 때 어떤 결과가 주어졌습니까? 성경은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고 하셨습니다. 헬라어 본문에서 본 구절의 동사는 미완료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한 두 번 말씀이 흥왕하는 역사가 일어난 게 아니라 주의 말씀이 에베소에서 지속적으로 흥왕하였다는 말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거짓되고 미신적인 마술들을 물리치며 많은 사람들을 회개시켰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에베소 성도들의 단호한 결단의 결과로 말씀이 흥왕하게 된 것과 그것을 통한 회개의 역사가 곳곳에서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정리하면 바울의 결단성의 결과는 온 아시아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곳곳에 많은 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에베소 성도들의 결단의 결과는 주의 말씀이 흥왕하게 된 것과 말씀이 들어가는 곳곳마다 사람들이 회개하고 주 앞으로 돌아오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이나 말씀에 근거한 분명한 결단은 하나님이 좋은 결과를 주시는 것입니다.

 

4.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바른 결단을 할 수 있을까요?

 

1)하나님의 말씀에 주의 집중해야 합니다. 말씀을 알아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또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래야 그것을 근거로 바른 결정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기도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분별의 영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단호한 판단력을 달라고 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따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지 선택할 수 있는 결단력을 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십니다.

 

3)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성령 충만하여 인도를 받아야 좁은 길과 넓은 길을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길을 가야 영생의 문에 도달할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무엇인가 선택하고 결정할 때, 말씀과 기도와 성령님의 인도와 지도를 받아서 하면 되는 것입니다.

 

결론

 

한 가지 예를 들고 마치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에 영국의 한 선교사님이 인도 북부 지방인 아삼이라는 지역으로 선교를 갔습니다. 이곳은 우상과 신비주의가 성행하는 지역이었습니다. 선교사님은 이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식인종 한 사람을 전도하게 되었습니다. 식인종이 예수를 믿고 그의 아내와 두 아들도 예수 믿고 크리스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식인종이 마을의 많은 사람들에게도 예수님을 전하여 믿게 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마을 추장이 크게 화를 내며 마을 사람들을 한 곳에 모았습니다. 추장은 화를 내면서 처음으로 예수를 믿은 그 사람을 앞으로 불러 내었습니다. “너는 믿음을 버리라. 그렇지 아니하면 죽이겠다.” 이때 그 사람이 나는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정했습니다. 되돌아가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격분한 추장은 궁사를 시켜서 두 아들을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거칠게 다가와서 너의 믿음을 부정해라. 너는 두 아들을 잃었다. 이제 너의 부인마져 잃겠느냐?’ 그 남자는 장엄하게 대답합니다. ‘이 세상 사람 나와 함께 가지 않아도 나는 예수님을 따르고 뒤돌아가지 않겠습니다.’ 맹노한 추장은 그의 아내를 죽이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추장은 고함을 칩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겠다. 네 믿음을 부인하고 살아라. 세상에는 너를 위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 남자는 자신의 죽음을 마주하며 확고하게 대답을 합니다. ‘십자가는 내 앞에 있고 세상은 내 뒤에 있으니 나는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추장은 궁사에게 손짓하여 그 남자를 죽이라고 했습니다. 추장은 자기 앞에서 죽어가는 네 명의 크리스챤을 보면서 두려움이 다가왔습니다. 저들이 믿는 신은 도데체 누구인가? 그러다가 곧 그 추장은 자기 입으로 예수를 구주로 고백했답니다. ‘나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겠다.’ 마을 사람들은 크게 감동을 하였고 모든 마을 사람들도 추장을 따라서 예수를 믿었다고 합니다. 한 식인종의 결단성이 많은 사람이 구원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게 되었고 결국 가사가 쓰이고 곡이 붙여져서 노래로 불려지게 되었습니다. 첫 순교자가 나왔던 아삼 지역의 성도들이 부르기 시작했고 이어서 인도 곳곳에서 불리워 지다가 마침내 전 세계로 퍼져 나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I have decided to follow Jesus...no turning back no turning back).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한 그 결단성이 얼마나 귀한지를 가르쳐 주는 찬송입니다.

 

소망의 식구 여러분, 무엇을 선택할 때, 어떤 일을 결정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과감하게 결정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댓가를 치루더라도 그 길을 선택하면,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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