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목사설교

  • 홈 >
  • 예배 · 설교 >
  • 이정현목사설교
이정현목사설교
2023 02 26 겸손에 대한 사도들의 권면 이정현 목사 2023-02-26
  • 추천 0
  • 댓글 0
  • 조회 367

http://isomang.net/bbs/bbsView/13/6215963

[성경본문] 골로새서3:10-13절 개역개정

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11.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경본문] 베드로전서5:5-6절 개역개정

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3226일 골 3:10-13, 벧전 5:5-6, 겸손에 대한 사도들의 권면

 

우리는 지난주까지 겸손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첫째주에는 시인들이 말하는 겸손과 교만에 대하여 말씀을 들었고 둘째주에는 선지자들이 말하는 교만과 겸손에 대한 교훈을 들었습니다. 지난주에는 김목사님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겸손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은 겸손에 대한 마지막 시간으로 사도들은 이 주제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두 곳이지만 그 외에 다른 신약성경에 나와 있는 겸손과 교만에 대해서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신약의 서신서들은 4복음서를 해석하고 적용하는 말씀이기 때문에, 사도들이 말하는 겸손은 곧 그리스도의 겸손에 근거하여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겸손에 대한 주님의 말씀과 겸손하게 행하셨던 그의 모습을 다시 해석하고 적용시키는 말씀인 줄 알고 들으시면 죄겠습니다.

먼저 골로새서 3장부터 보겠습니다. 바울이 골로새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너희가 이제 새 사람을 입었다고 말합니다. 새 사람과 반대되는 개념의 말은 옛 사람입니다. 옛 사람은 예수를 믿기 이전의 사람, 즉 자연인을 말합니다. 그러면 새 사람의 의미는 분명해 집니다. 새사람은 예수를 믿어 거듭난 사람을 말합니다. 골로새 교인들이 과거에는 어두움의 자식으로 우상숭배하며 죄를 지으면 살았지만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아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새 사람이 되는 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 차별이 없고 또한 할례파나 무할례파가 차이가 없으며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헬라인은 문화의 특권을 누렸던 사람이고 유대인은 종교의 특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어서 헬라인도 그 문화의 특수 지위를 자랑할 수 없고, 유대인도 그 소유했던 종교상 특권으로 인하여 이방인들을 멸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구원은 문화적 발달이나 종교상 특권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이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받는 은혜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할례당과 무할례당의 차이가 없다는 말은 외형적으로 할례를 받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심령으로 중생하여 새 사람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야인은 헬라 분화권 밖에서 사는 사람을 말하고 스구디아인은 야만인보다 더 거칠고 무례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얻는데 있어서 이들 사람들까지도 차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야만인들과 야만의 야만인들까지도 똑같은 축복을 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종이나 자유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 당시에는 노예를 학대했으므로 그들의 인권이 인정되지 못했습니다. 그런 사회제도 아래 있는 노예들에게 있어서, 사도의 이 말씀은 그야말로 복음이었습니다. 갈라디아서 3:28을 보면, 새 사람의 세계에 있어서는 남자나 여자의 차별 대우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결정하는 것은 어떤 문화의 특권이나 종교상의 외형적 특수 관계도 아니며, 민족적 우수성이나 사회상 지위도 아닙니다. 이 일에 있어서는, 그리스도만이 만유’(전부)이십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성립시키는 유일한 원인이시니만큼, 그가 이 원인의 전부란 말입니다. 그리고 그가 만유 안에 계시니라고 한 말은, 피조물 중에 그리스도의 주관과 권고를 벗어날 것이 하나도 없으므로, 그는 만유, 헬라인, 유대인, 야만인, 스구디아인, 노예, 자주자 할 것 없이 모든 인류에게 유일무이하신 구원자로 계신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전부이시며 유일한 구원자이시기 때문에, 차별이 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해석을 잘 해 주는 것이 로마서 10:12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저가 부르시는 모든 사람은 차별 없이 다 저들의 주가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부르시어 구원하시는 데에는 그 어떤 차별도 두지 않으셨음으로 오늘 우리가 구원을 받고 이 자리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라고 차별하지 않으시고, 백인이 아닌 황인이라고 차별하지 않으시고, 가진 것이 많지 않다고, 배운 것이 많지 않다고, 여자라고 차별하지 않으시고 동등하게 대하여 주셔서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의 반열에 서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제 옛 사람이 새사람이 되었다면 마땅히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삶이 있습니다. 새 사람에게는 새로운 삶의 방식과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골로새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새 사람을 입었으면, 마땅히 이행해야 할 바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은 세상과 구별된 사람이고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골로새 교인들에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 여기에 나오는 기독교인의 5대 삶의 주제를 간단히 정의해 보겠습니다. 먼저는 긍휼인데 이 말은 인격 속에서부터 솟아나는 불쌍히 여기는 열정을 말합니다. 영적으로 부요한 하나님의 자녀는 다른 사람의 가련한 상황을 살피는 데 민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의 자비는 성격의 인자함을 의미하는 바, 위엄있는 엄격한 성격하고는 정반대되는 것입니다(11:22). 이런 성격은 위에서 말한 긍휼의 소유자와 비슷한 사람입니다.

 

다음에 나오는 겸손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태도를 말합니다(2:3).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려면, 우선 자신의 부족과 결함을 심각하게 인식해야 하며, 그리고 높고 낮은 것을 판결하시는 때는 현재가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때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를 남보다 우수한 줄로 생각하고 미리부터 상석, 높은 자리를 택하는 것은 너무도 외람된 일입니다. 누가복음 14:8-10의 비유에서 보여주는 대로, 현세에 있는 교회의 복음 전파는 사람들을 연회에 초청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교회 생활, 하나님이 초청하신 영적인 잔치집에 와서 우리가 스스로 자신을 높인다면, 그것은 연회에 초청된 객으로서 하나님의 하실 일을 월권하는 무례한 행동이라고 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초청하신 예배에 와서 하나님이 지정해 주시지도 않았는데, 우선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은 교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차라리 말석을 차지하는 것이 예법에 정당합니다.

우리가 정말 새사람이 되었으면 주님을 본받아서 겸손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겸손한 삶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나타내야 그들이 우리를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말로만 하고 실제로 행함이 없으면 그것은 죽은 믿음입니다. 겸손히 섬기는 모습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참 겸손한 사람입니다.

 

온유에 대하여 유명한 신학자 그레이다누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것은 베는 듯하고 쏘는 듯하고 찌르는 듯하는 것과 반대되는 것이며, 남에게서 손해와 방해를 받고도 격분되거나 원한을 품거나 반동하거나 복수하지 않는 것이고, 오히려 포용, 유화, 침착으로 진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남들로부터 방해나 손해를 보더라도 한을 품거나 복수하지 않고 오히려 포용하고 유하게 대하며 침착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온유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셨습니다.

 

오래 참음은 나를 괴롭게 하는 시험거리로 인하여 변절하거나 낙심하지 않음을 의미하지만, 특히 남이 해하거나 혹은 은혜를 배반하는 경우에 있어서는 노하지 않고 변함 없이 덕행을 계속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의 잠언에 오래 참는 덕을 칭찬하여 말한 귀절이 많습니다(14:29, 15:18).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하여 오래 참으시는 것을 볼 수 있고, 인간이 인간에 대하여 오래 참으라는 권면의 말씀도 많이 나타납니다.

 

마틴 루터는 그의 갈라디아서 주석에서 오래 참는 덕의 필요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사단은 그가 시험하는 사람을 폭력으로 정복할 수는 없으므로 같은 시험을 오랫동안 계속함으로 그 목적을 성취하려 한다. 그 이유는, 인간은 질그릇과 같아서 계속적 시험에는 넘어가는 줄 그놈이 알기 때문이다. 그놈은 이 방법으로 많은 사람들을 넘어뜨렸다. 이와 같이 장기적 시혹(試惑)을 이기려면 우리는 오래 참는 덕을 소유해야 된다”.

바울은 이처럼 새사람이 된 자들은, 새로운 삶의 주제에 따라서 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옷을 입으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의 옷 입으라는 말은 우리가 옷 입은 것에 따라서 다른 사람의 평판을 받는 것처럼 우리의 이런 삶이 생활의 습관이 되어서 자연스럽게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통하여 선한 평판을 들으라는 의미입니다. 아 저사람 참 긍휼과 자비가 많은 사람이다, 참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이다, 저 사람 인내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좋은 평판과 칭찬을 듣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 주제에 맞추어서 설명한다면, 바울이 골로새교인들에게 너희는 이제 옛 사람이 아니라 새사람이 되었으니, 하나님의 자녀답게 겸손하고 온유하게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타인으로부터 주님을 닮은 겸손한 사람이라고 칭찬을 듣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이제 두 번째 본문인 베드로전서 5장으로 가겠습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5). 여기의 젊은자들은 뒤에 나오는 장로들과 대비되는 단어입니다. 즉 젊은 자는 교회 안에서 나이가 적은 사람들, 청장년층의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러면 당연히 장로들은 직분자 장로를 말하기 보다는 교회 안에서의 연장자를 말합니다. 베드로는 젊은 자들에게 권면하기를 연장자들에게 순종하고,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하셨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연장자에게 순복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마땅한 질서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어른들께 깍듯한 예의를 갖추어야 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어른들의 말에 경청해야 하고 어른들의 말씀에 순복해야 합니다. 한편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는 말은 겸손으로 옷 입다는 뜻입니다. 옛날에 노예들이 주인에게 시중들 들기 위하여 앞치마를 두르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수건으로 앞을 두르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을 상기시키는 권면입니다(13:14-17). 겸손히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을 써빙하기 위하여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시기 바랍니다. 상대편보다 자기를 높이면 결코 섬길 수 없는 것입니다. 상대편보다 자기를 낮추어야 겸손으로 허리를 동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5). 본 구절은 잠언 3:34의 인용으로 겸손해야 하는 이유를 말한 것입니다. 젊은 자들이 장로들에게 겸손해야 하는 이유는 교만한 자를 하나님이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적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의 뜻은 군대를 배치시킬 때 사용하는 군사 용어였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의뢰하지 않고 교만하여 자기의 능력만을 믿는 자들을 대적하셔서 파멸시키십니다. 그들을 대항하여 군대를 배치하여 그들을 물리치시겠다는 얘기입니다. 반면에 겸손하여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에게는 은혜를 허락하십니다. 결국 교만한 자는 파멸시키지만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6절에도 비슷한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나님의 능하신 손은 구약 시대에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악인들을 심판하실 때에 종종 사용되었던 표현입니다(3:19, 6:1, 13:3, 9:26, 21:5).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 아래서 교만할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마땅히 그분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겸손과 높임을 대조시켜서, 현재에 받는 어려운 고난을 통해 겸손할 때, 장차 그리스도의 때 곧 재림의 때가 되면, 거룩한 자리에 참여하게 되는 영광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겸손하면 하나님이 때가 되면 그를 높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베드로 사도의 권면도 하나님 면전에서 교만한 사람은 잘 될 수 없지만 겸손하면 그런 사람이 은혜를 받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몇몇 교회들에게 겸손하게 살라고 교훈하셨습니다. 에베소서 4:2에서,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라고 하셨습니다. 본 구절은 부르심을 입은 성도가 지녀야 할 구체적인 덕목들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 가운데 첫 번째로 겸손을 이야기 했는데, 예수님이 친히 낮아지시는 모범을 통해 겸손의 미덕을 보여주셨기 때문에(2:6-11, 벧전 5:5) 이것은 기독교 신앙의 모든 미덕가운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신앙 가운데 반드시 갖추어야 미덕인 겸손과 온유로 살라고 하셨습니다.


또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권면하면서도 겸손을 거론하였습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2:3). 바울은 본문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일치)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 것입니다. 소극적 측면에서 일치를 위해서는 다툼과 허영을 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툼은 이기적인 야심으로 인한 싸움을 말합니다. ‘허영내용 없는 영광이나 자랑을 의미합니다. 자기 자신을 높이고 헛된 영광을 추구할 때 다툼이 일어나게 되어서 교회의 불일치를 초래하게 됩니다. 한편 적극적 측면에서 일치를 위해서는 겸손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으로, 이 겸손을 통해서 사람 앞에서 타인을 자신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겸손의 본을 보여주심으로 겸손은 기독교 최대의 미덕이 되었습니다. 이런 겸손한 섬김을 통하여 일치를 이루게 됩니다.

 

바울은 계속하여 골로새교회를 향하여 겸손의 교훈을 주셨습니다. 골로새서 2:18입니다.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이 말씀은 골로새 교회에 퍼져있던 거짓 교훈에 대한 경고입니다. 여기의 가짜 겸손은 말 그대로 위선적인 겸손을 가리키며 천사 숭배는 영적 존재인 천사를 숭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당시의 거짓 교사들은 인간이 절대자이신 하나님께 직접 경배드리는 것은 교만한 것이므로 그보다 못한 천사에게 경배해야 하며 그것이 곧 겸손한 행위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천사 숭배를 강요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겸손한 채 하고 천사를 숭배하는 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독특하게 겸손도 가짜 겸손, 꾸며낸 겸손, 위선된 겸손이 있다고 지적하며 경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야고보서 4:6입니다.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교만은 남을 비웃거나 업신여기며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하며, 겸손은 자신의 부족을 인식하여 영적인 통회를 하며 창조주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야고보는 인용문을 통해 하나님을 떠나 자신만을 인정하고 자기 만족을 위해 쾌락을 추구하는 교만한 자와 자신의 부족을 인식하고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겸손한 자를 대조시켜서 수신자들에게 쾌락을 추구하는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며 순종하는 겸손한 자가 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베드로전서 3:8입니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사도는 신자들의 상호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희는 한 가지 일에 뜻을 합하여 동정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며 또한 겸손하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들 서로간의 관계가 주님이 원하는 관계가 되려면 무엇보다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를 낮추고 상대편을 높이는데, 그들이 서로 다투거나 분리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겸손하면 거기에는 화목이 있고 평안이 있는 것입니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는 겸손하여 사람의 몸을 입고 낮고 천한 곳에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온유하고 겸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겸손하여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겸손하여 허리에 수건을 동이시고 무릎을 꿇고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셨습니다.

주님은 겸손하여 조롱과 수모와 멸시와 천대를 다 받으셨으나 입을 열지 아니하시고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이 주님의 겸손을 근거로, 바울과 베드로와 야고보는 우리들에게 겸손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님의 겸손의 모습을 우리에게 설명해 주시고 삶에 적용시켜 주셨습니다.

 

너희가 새 사람을 입었다면 마땅히 겸손하게 살아가야 한다, 교회 안에 있는 젊은 자들은 연장자들에게 순종하고,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기독교인의 신앙 가운데 반드시 갖추어야 미덕은 겸손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섬김을 통하여 교회의 일치를 이루라, 그리고 꾸며 낸 겸손을 경계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며 항상 겸손한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사막 교부(Desert Father)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이 안토니우스입니다. 그 사람은 8가지 마귀가 있다고 합니다. ‘탐식, 간음, 탐욕, 슬픔, , 태만, 허영, 교만입니다. 그런데 가장 낮은 단계의 마귀가 탐식이고 가장 높은 단계의 마귀가 교만의 마귀라고 했습니다. 교만은 가장 악한 것이고 모든 죄악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결국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업이 잘될 때 조심해야 됩니다.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갔을 때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식들이 거창하게 결혼식을 한다고 할 때 조심해야 합니다, 남편이 승승장구한다고 할 때 조심해야 합니다. 이만하면 건강하다 백수는 하겠다고 할 때 조심해야 합니다.

 

내가 한 것처럼, 내가 잘해서, 내가 똑똑해서, 내가 노력해서, 심지어 내가 기도해서 이렇게 되었다고 하면, 그것은 교만일 수 있습니다.

 

이럴 때 교만하면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럴 때 거덜먹 거리면, 이럴 때 뭐가 된 줄로 알면, 이럴 때 마음을 높은 데 두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고 깔보고 무시하면 하나님이 순식간에 거두어 가십니다. 한 순간에 여러분들의 자랑거리를 없애 버리십니다.

 

단지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일 뿐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이 주신 목적대로 그 복을 잘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일 쎄다는 8번째 교만의 마귀가 여러분들의 삶에 침범하지 못하게 하고, 겸손하게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찬송/

기도 제목/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2023 03 05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 운영자 2023.03.06 0 378
다음글 2023 02 12 시인들이 말하는 겸손 운영자 2023.02.12 0 4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