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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02 12 시인들이 말하는 겸손 이정현 목사 2023-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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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이사야14:12-15절 개역개정

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15.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경본문] 예레미야13:1-11절 개역개정

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베 띠를 사서 네 허리에 띠고 물에 적시지 말라 하시기로

2. 내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띠를 사서 내 허리에 띠니라

3.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4. 너는 사서 네 허리에 띤 띠를 가지고 일어나 유브라데로 가서 거기서 그것을 바위 틈에 감추라 하시기로

5. 내가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가서 그것을 유브라데 물 가에 감추니라

6. 여러 날 후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유브라데로 가서 내가 네게 명령하여 거기 감추게 한 띠를 가져오라 하시기로

7. 내가 유브라데로 가서 그 감추었던 곳을 파고 띠를 가져오니 띠가 썩어서 쓸 수 없게 되었더라

8.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9.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이같이 썩게 하리라

10. 이 악한 백성이 내 말 듣기를 거절하고 그 마음의 완악한 대로 행하며 다른 신들을 따라 그를 섬기며 그에게 절하니 그들이 이 띠가 쓸 수 없음 같이 되리라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띠가 사람의 허리에 속함 같이 내가 이스라엘 온 집과 유다 온 집으로 내게 속하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이 되게 하며 내 이름과 명예와 영광이 되게 하려 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3212일 사 14:12-15, 13:1-7, 선지자들이 말하는 교만과 겸손

 

지난주에는 시인이 말하는 겸손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겸손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 그리고 겸손과 교만의 결과에 대하여 주로 잠언서를 통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선지자들이 말하는 겸손과 교만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주로 이사야와 예레미야 선지자가 말하는 교만과 겸손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예언서 안에서는 겸손보다 교만에 대한 교훈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래서 제목도 교만이라는 말을 먼저 썼고 설교의 내용도 교만에 대하여 먼저 말하고 그 분량도 훨씬 많을 것입니다.

 

선지자들은 교만을 오만 방자한 태도, 다른 사람의 궁핍과 가난에 대하여 빈정대면서 무정하게 대하는 태도, 우쭐대거나 잘난 체 하는 행동이라고 말합니다. 중동지역에서 교만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의 눈은 낙타의 눈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교만한 사람은 낙타의 눈처럼 내리깔고 모든 것을 내려다보기 시작한다는 의미입니다. 남들을 깔보고 무시하고 하찮게 여기는 태도와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교만은 항상 비참한 결과로 끝을 맺는 것입니다.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사건을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교만하여 성을 쌓아서 하늘 꼭대기에 닿게 하여 흩어짐을 면하자고 얘기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마천루를 쌓아서 하늘에 닿게 하자는 것은 인간의 교만함을 나타내며 또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며 흩어지지 않겠다는 것도 의지적인 교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그 바벨탑은 무너지고 사람은 언어의 혼잡으로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다니엘서(2, 4)에 보면 느부갓네살 왕의 거대한 꿈이 나옵니다. 거기에는 느부갓네살 왕이 큰 금 신상의 꿈을 꾸는데 머리는 금으로 되어 있고, 가슴과 두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는 철로 되었고 발은 철과 진흙으로 된 것입니다. 이 거대한 금상의 꿈을 다니엘이 해석하면서 그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라고 하면서 당신은 왕들 중의 왕이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바벨론 왕의 이 교만을 뜨인 돌이 나타나서 그것을 쳐서 부셔뜨렸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무너뜨리시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 14장에 보면 하나님이 유다 백성들을 압제하고 포로로 잡아갈 바벨론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보고 너는 이런 노래를 지어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바벨론아 네가 어찌 그리 되었는고, 네가 어찌 그리 패하였는고 하나님이 악인의 몽둥이와 통치자의 규를 꺾으셨도다’(14:4-5). 바벨론의 교만을 하나님이 패하시고 무너뜨리시고 그의 높음을 꺾어버리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이사야는 아침의 아들 계명성에 대하여 동일한 의미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15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14:12-15). 결국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라 불리는 교만한 마귀를 하나님이 그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려서 스올의 맨 밑에 처박아 넣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모든 악과 모든 교만의 시조인 사탄을 하나님이 제일 낮고 천한 자리로 낮추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아모스 6장과 8장에 보면 야곱의 영광(자랑)’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야곱의 영광(자랑)이 뭘까요? 남 유다 출신의 아모스가 북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에 대한 예언 속에 이런 말씀이 나온 것입니다. “내가 야곱의 자랑을 싫어하며 그 궁궐들을 미워하므로 이 성읍과 거기에 가득한 것을 원수에게 넘기리라 하셨느니라”(6:8, 8:7). 결국 여기의 야곱의 영광은 이스라엘의 교만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들은 상아 침대에서 자고 양 떼와 소 떼에서 어린 양과 송아지를 잡아 먹으며 비파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절거리는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교만을 심판하시겠다는 선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창세기의 바벨탑 사건, 느부갓네살 왕의 꿈과 큰 신상을 세운 것, 바벨론의 교만, 아침의 아들 계명성, 야곱의 영광을 상징하는 여로보암의 교만을 다 꺾어버리시고 짓밟아서 낮추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만은 항상 비참한 결과로 끝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좀 더 구체적으로 이사야서에 나타난 교만과 겸손에 대한 말씀을 보겠습니다.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남 유다 백성들에게 외치는 것입니다. ‘너희는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러면 당시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기 보다는 인생들을 의지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의지하고 살았던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곧 은과 금과 마필과 병거와 군사력이 강한 이방 나라와 언약을 맺고 그것으로 자기들의 안보와 번영을 보장받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유다 사람들이 의지했던 것들을 구체적으로 시적으로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레바논의 곧고 쭉쭉 뻗은 백향목, 바산 지역의 울창한 상수리나무들, 높은 산들과 우뚝 솟은 언덕들, 높은 망대들과 견고한 성벽들, 우람한 상선들과 항구들, 위대한 신전들과 건축물들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들의 공통점이 무엇인가요? 무엇인가 내세울 만한 것이고, 자랑할만한 것이고 뽐낼 만한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을 현대식으로 말하면, ‘우리에게는 엄청난 군사력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금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말로 떠들고 있는 다른 나라를 맹종하고 있는 유다인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런 것들을 의지하고 따라가는 자들이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이런 것들을 의지하지 말라, 곧 교만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하여 저들이 다른 나라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시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셨습니다. 회개를 촉구하신 것입니다. 경제적인 부와 군사적인 강함을 의지하지 말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하여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고 하셨습니다. 소돔의 관원들아, 고모라의 백성들아 여호와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고까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도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돌이키지 아니하고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벽돌이 무너졌으나 우리는 다듬은 돌로 쌓을 것이고 뽕나무들이 찍혔으나 우리는 백향목으로 그것을 대신하겠다”(9:10). 하나님의 심판으로 집들이 무너지고 파괴되면 이전의 것보다 더 좋고 튼튼한 재질로 집을 다시 건축하겠다는 것입니다. 완고하고 거만하고 교만하고 고집스럽고 목이 곧은 백성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교만한 자들을 하나님이 다른 방법으로 그들을 치시기도 합니다. 오로지 돌아오라는 목적으로 그들을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완악한 교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도 그 백성이 자기들을 치시는 이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도다”(9:13). 이처럼 유다 백성들은 부르고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의 잘못을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걍팍하고 고집하는 마음이 교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교만을 어떻게 낮추십니까? 여기에서 하나님은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신 것입니다. 바로 아침의 아들 계명성에 대한 말씀입니다. 앞에서도 언급을 했듯이 이놈은 바로 마귀라고 했습니다.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 교만하여 타락하여 마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놈이 얼마나 교만했느냐 하며는 바로 하나님같이 되려고 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와 같이 되려고 했다고 했습니다. 피조물인 주제에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권능과 은혜를 입은 놈이 자기의 지위를 지키지 못하고 감히 절대 주권자에게, 창조주에게 덤빈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계명성을 어떻게, 어디까지 낮추셨습니까? 가장 비참한 지옥의 아랫목까지 낮추신 것입니다.

 

오늘 이사야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교만했던 그 계명성을 낮추신 것처럼 교만하고 거만하고 완고한 너희들을 낮추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이방인의 나라, 바벨론으로 팔아버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들을 이방 나라의 종으로 팔아버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과 성전은 물론 유다 나라는 철저하게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교만과 그 결과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하셨지만, 겸손에 대해서도 몇 말씀을 주셨습니다. 세 구절을 연속적으로 보도록 하겠습니다.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11;4). “겸손한 자에게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가난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29:19). 겸손한 자에게 하나님의 기쁨이 더하여진다고 하셨습니다.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57:15). 하나님이 겸손한 자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그의 영을 소생기키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다음으로는 예레미야가 말해주는 교만과 겸손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이사야와 같이 겸손보다 교만에 대하여 더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사야와 거의 동일하게 교만을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존하려는 태도와 입장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입장에서의 하나님 외의 다른 것들은, 부와 명예와 권력, 그리고 국방력과 거대한 인구, 또한 우상들도 포함한 것입니다. 개인과 민족의 장래를 이런 것들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살아가는 이들을 교만한 자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예레미야의 본문으로 가 보겠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여호야김의 후계자이며 아들인 여고냐(B.C. 598)의 통치하에 주어진 말씀이라고 봅니다. 여고냐는 18세라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는데, 그 시즘에 갈대아인 장군들은 유다를 침공해 와서 이미 예루살렘 근처에 이르러서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왕하 24:8-11). 그러나 예루살렘에 대한 공격은 느부갓네살이 그 주력군을 이끌고 왔을 때에야 비로소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상황속에서 하나님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예레미야의 상징적인 행위를 통하여 유다 백성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였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베 띠는 일반인들의 허리띠를 말하지만, 여기서는 특히 제사장들이 에봇 위에 두르던 띠를 가리키는 듯 합니다(28:8). 이 띠는 에봇, 흉패, 관과 함께 거룩과 영화로움을 상징했습니다(28:40-43). 따라서 이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제사장 나라가 된 유다를 상징한다고 하겠습니다. 단적으로 이 베 띠는 유다를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지자 보고 이 베 띠를 하나 사서 두르되, 물에 적시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하나님의 지시대로 베 띠를 사서 차고 있는데, 두 번째 지침이 하달되었습니다. ‘네 띠를 가져가서 유브라데 강 바위 틈에 파 묻어두라고 하셨습니다.’ 선지자가 머물고 있는 곳은 아나돗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유브라데 강까지는 적어도 400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그 먼 곳까지 가서 이 베 띠를 숨기라고 하셨습니다. 선지자는 이 명령에도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리고 한참 지났는데 하나님이 세 번째 선지자를 부르셨습니다. 이번에는 유브라데로 가서 다시 그 베 띠를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또 그 먼길을 가서 바위 틈에 파묻어 둔 베 띠를 파보니 베 띠가 다 썩은 것입니다. 이제 더이상 베 띠로 사용할 수 없도록 썩어서 못 쓰게 된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임하셔서 이 썩은 베 띠의 의미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9 내가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이같이 썩게 하리라 10 이 악한 백성이 내 말 듣기를 거절하고 그 마음의 완악한 대로 행하며 다른 신들을 따라 그를 섬기며 그에게 절하니 그들이 이 띠가 쓸 수 없음 같이 되리라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띠가 사람의 허리에 속함 같이 내가 이스라엘 온 집과 유다 온 집으로 내게 속하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이 되게 하며 내 이름과 명예와 영광이 되게 하려 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는 유다인들의 현 상황이 어떠한지를 말하는 것으로서, 그들은 부패할 대로 부패해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위치에 있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아울러 이는 유다인들이 포로로 끌려가서 썩은 띠처럼 비참하게 연명해 가야 할 것을 나타낸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유다의 교만,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하나님이 이렇게 꺾어버리시겠다는 메시지입니다.

 

이같은 상황 속에 놓여 있는 유다 백성들에게 선지자는 끊임없이 경고하며 회개하라고 촉구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9:23). 그래도 그 백성들이 하나님 앞으로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0 그들이 오늘까지 겸손하지 아니하며 두려워하지도 아니하고 내가 너희와 너희 조상들 앞에 세운 나의 율법과 나의 법규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느니라 11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여 환난을 내리고 온 유다를 끊어 버릴 것이며 12 내가 유다의 남은 자들을 처단하리니... 그들이 다 멸망하여... 엎드러질 것이라 그들이 칼과 기근에 망하되 낮은 자로부터 높은 자까지 칼과 기근에 죽어서 저주와 놀램과 조롱과 수치의 대상이 되리라”(44:10-12).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시지만 듣고도 듣고도 귀를 막아버리고 돌아오지 않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고, 교만한 사람은 반드시 비참한 결과로 그 인생을 끝맺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외에도 겸손에 대한 선지자들의 메시지도 있습니다. 몇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에스라 8:21/ “그 때에 내가 아하와 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아이와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에스라는 스스로 겸손히 엎드려 하나님께 이 민족을 위하여 간구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2:3/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겸손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찾으며 부단히 겸손하게 살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살려고 하지 않고 세상의 부, 권력, 다른 신을 의지하여 행복과 부를 추구하려는 인생은 교만한 자입니다.

 

그런 사람의 말로는 비참합니다. 아침의 아들 계명성처럼 높은 곳에서 아주 낮은 곳으로 추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결국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반드시 받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이 말하는 겸손은 부함이나 용맹이나 지식을 자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면전에서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것을 겸손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사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기쁨을 더하시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계시고 또한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인용된 말씀에서만 보더라도 하나님이 겸손한 사람에게 상당한 은혜와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교만한 자는 필히 망하지만, 겸손한 자 역시 필히 은혜가 주어집니다. 지난 수요일 김목사님을 통하여, 내 삶의 화살표가 겸손이냐 아니면 교만에 맞추어져 있느냐에 따라서 복과 심판이 결정된다는 좋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기왕이면 내 인생의 화살표를 겸손에 맞추어 놓고, 겸손함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찬송/ 장윤정의 겸손’(찾아서 틀어 주도록)

 

기도 제목/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곧 겸손함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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