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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02 05 시인들이 말하는 겸손 이정현 목사 2023-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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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10:17-18절 개역개정

17.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사오니 그들의 마음을 준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18. 고아와 압제 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사 세상에 속한 자가 다시는 위협하지 못하게 하시리이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경본문] 잠언3:34-35절 개역개정

34.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35.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영달함은 수치가 되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325일 시 10:17-18, 3:34-35, 시인들이 말하는 겸손

 

1월의 주제는 사랑이었고 2월의 주제는 겸손입니다. 이같은 주제에 대하여 말씀을 살펴보는 것은 모쪼록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고자 함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 사랑에 대하여 말씀을 들었으면, 작은 것부터 사랑을 실천함으로 그 성품을 닮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새로운 하나님의 성품, 겸손을 배우게 되는데, 이것도 마찬가지로 말씀을 잘 듣고 겸손을 배워서 진짜로 겸손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구약 성경을 구분할 때, 보통 율법서, 역사서, 시가서, 예언서로 구분을 합니다. 이 가운데 시가서에 해당되는 성경은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입니다. 5섯권의 성경 중에서 오늘은 주로 시편과 잠언서가 말하는 겸손에 대하여 알아보기 원합니다.

 

어떤 사람이 시가서의 겸손과 교만에 대하여 연구한 후에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결론을 내렸습니다. 첫째, 겸손보다는 교만에 관해서 훨씬 더 많이 언급했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서 겸손하라는 요청보다도 교만하지 말라는 요청이 더 강하게 요구된다는 말입니다. 둘째, 겸손과 교만, 또는 교만과 겸손이 언제나 대조되어 나오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겸손과 교만이 반드시 반대되는 말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교만하지 않는 것이 겸손한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즉 어떤 사람이 겸손하지 않다고 해서 그가 반드시 교만한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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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시편과 잠언서를 중심으로 겸손의 정의와 겸손과 교만의 결과에 대하여 몇 가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겸손 또는 겸손한 자라는 말과 병행하여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 있습니다. 먼저, 겸손(겸손한 자)은 사회적, 경제적인 약자를 일컫는 말로 표현을 합니다. 사람의 정신적인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약자를 가리켜 겸손하다고 표현을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착취를 당하거나 사회적 하류층 사람들을 일컬어 겸손한 자라고 말하는데, 이런 사람들은 가진 것이 없어서 결코 교만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겸손한 자를 가난한 자, 비천한 자, 낮은 자, 억압받는 자들이라고도 표현을 합니다. 오늘 시편의 본문을 보시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17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사오니 그들의 마음을 준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18 고아와 압제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사 세상에 속한 자가 다시는 위협하지 못하게 하시리이다.” 17절에 나오는 겸손한 자는 앞의 9절에 나오는 가련한 자와 원문상으로 같은 단어입니다. 그리고 이 가련한 자10절과 14절의 외로운 자’, 12절의 가난한 자’, 18절의 압박당하는 자와 동등한 의미로 사용되고, 또한 이 모든 단어는 궁극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의인과 동의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겸손은 사회적 경제적인 약자인 가난하고 가련한 자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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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겸손(겸손한 자)은 지혜로운 자와 의인과 같은 의미입니다. 잠언 11:2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분명히 겸손한 자와 지혜가 함께 나옴으로 결국 겸손한 자는 지혜로운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만은 욕을 동반하지만 겸손은 지혜를 수반하는 것입니다. 곧 겸손한 자는 지혜로운 자입니다. 또 잠언 3:33-35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33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 34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35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영달함은 수치가 되느니라.” 여기에 악인과 의인, 거만한 자와 겸손한 자,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가 평행을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도 결국 악인과 거만한 자와 미련한 자가 한 통속이고, 반대로 의인과 겸손한 자와 지혜로운 자는 한 무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겸손 한 자는 지혜로운 자이며 의인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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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겸손한 자와 병행하여 나타나는 말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입니다. 잠언 15장과 22장의 말씀입니다. “3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여기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겸손과 동일시 됩니다. 다시 말해 겸손은 자기의 지적 교만과 자신의 판단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가 되고 귀한 보상을 받게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결국 겸손한 자가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겸허히 자신을 낮추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마음의 높아지면 결코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곧 교만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며 그런 사람의 말로는 패망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시가서를 읽으면서 겸손 또는 겸손한 자라는 말이 나오면 그것은 가련한 자, 지혜로운 자, 의인 그리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같은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고 아시면 되겠습니다.

이같은 의미를 근거로 겸손 또는 겸손한 자를 정의한다면, ‘그는 가련하고 가난한 자여서 자기를 드러낼 수 없는 자이며 지혜의 근본이신 여호와를 잘 경외하며 세상의 가치관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바르게 살려고 하는 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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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편의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17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사오니 그들의 마음을 준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18 고아와 압제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사 세상에 속한 자가 다시는 위협하지 못하게 하시리이다.”

 

여기 17절의 겸손한 자18절의 고아와 압제당하는 자와 같은 사람임을 앞에서도 살펴보았습니다. 그 겸손한 자의 소원을 하나님이 들어주셨다면, 곧 하나님이 고아와 압제 당하는 자의 소원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악한 자의 소원은 그들의 모든 자랑과 함께 사라지지만, 의인의 간구, 겸손한 자의 간구, 가련한 자의 소원은 하나님이 들어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열방의 주일 뿐만아니라 가난한 자의 호민관이십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의 아버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속한 자, 곧 가난한 자를 착취하고 억압하는 자는 다시는 겸손한 자-가련한 자를 위협하지 못하게 하시리라고 시인은 말합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제 악인이 사라졌음으로 겸손한 자는 아무런 두려움을 갖지 않게 되었다고 시인은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본 시는 하나님이 악인을 심판하여 주시고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시고 소원을 들어주심으로 아무런 두려움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겸손한 자가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평안히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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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본문인 잠언 3장으로 가겠습니다. “34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35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영달함은 수치가 되느니라.” 하나님은 거만한 자를 비웃는다고 하셨습니다. 여기 비웃는다는 말은 업신여긴다 조롱한다는 뜻입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업신여김을 받고 조롱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한마디로 거만한 자를 거만하게 대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를 웃으시고 보응하시고 대적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스스로 높이는 자는 하나님이 낮추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낮추는 자를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보셔서 그에게 호의를 베푸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결국 스스로를 낮추는 자들은 높임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34절에서는 거만한 자와 겸손한 자를 대조하여 말씀하시다가 35절에서는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를 대비하여 말씀하십니다.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하셨는데, 여기의 영광의 기업은 모든 것의 풍부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받는 최고의 존경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결국 지혜로운 자(겸손한 자)는 풍성한 은혜와 최고의 존경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반면 미련한 자의 영달함은 수치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의 영달함은 여러 사람이 우러러볼 만한 위치에 올라가 가는 것을 말합니다. 한문으로 영달은 벼슬과 명망이 높아서 세상에 들어남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받게되는 그들의 영달함은 결국 하나님이 낮추심으로 그 모든 영달이 수치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 구절에서도 결국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의 결말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결국 거만한 자와 미련한 자가 같고, 겸손한 자와 지혜로운 자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살았던 결과도, 하나님이 동일하게 보응하시고 보상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편과 잠언의 말씀을 통하여 겸손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반대로 교만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를 보았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가난하고 가련한 사람이고, 지혜로운 사람이고 의인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반면 교만한 사람은 가진자이며 어리석고 미련한 자이고 악인이며 하나님을 경외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겸손한 사람에게 어떤 결과가 주어지고 교만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결과가 주어지는지도 보았습니다. 겸손한 자에게는 하나님이 그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시고, 세상에 속한 자가 다시는 위협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영광의 기업을 주십니다. 반면에 교만한 자에게는 하나님이 심판하시고 하나님이 비웃으시며 그들의 인생이 수치를 당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다른 몇 몇 성구들을 통하여 겸손한 자와 교만한 자에게 이 외의 어떤 것으로 보응, 보상하시는지를 살펴 보겠습니다.

 

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겸손한 사람에게 재물과 영광과 생명으로 보상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겸손한 자에게 하나님이 물질의 복을 주시겠다는 것이고 명예의 복을 말씀하셨고 아울러 왕성한 생명력을 약속하셨습니다.

 

15:3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겸손이 존귀의 앞잡이라고 하신 것은 겸손한 자에게 부귀와 번영의 복이 반드시 뒤따라온다는 말씀입니다.

 

18:12/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교만하면 멸망의 지름길이라는 말씀입니다.

 

16:5/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며 아무리 지들끼리 결탁을 해도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40:12/ “모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낮아지게 하며 악인을 그들의 처소에서 짓밟을지니라.” 교만한 자를 하나도 남김없이 색출하여 모두 낮아지게 하겠고 그들의 처소에서 짓밟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완전한 색출과 완전한 파괴를 말한 것입니다.

 

정리를 하면 하나님이 겸손한 자에게 재물, 명예, 생명을 주시고, 부귀와 번영의 복을 주시지만, 교만한 자들은 멸망하고 하나님의 미움을 받으며 심판을 피할 수 없고 낮아지고 완전히 파괴될 수 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결론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높이는 교만한 자를 미워하십니다. 대신 자신의 죄와 연약함을 인정하며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겸손을 좋아 하십니다. 지극히 높으시고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시며 만물의 창조주요 주권자가 되시는 하나님 존전 앞에 낮고 가련하고 어리석고 추악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대 항상 겸손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겸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이웃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지만 교만한 자에게 비웃으시며 결국 패망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의 말씀에 보면 애굽의 바로 왕은 교만하여 악을 행하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온유와 겸손함이 지상에서 뛰어난 사람으로 경건하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신앙과 행위대로 갚아 주시기를, 교만한 자 바로에게는 자기와 나라 전체가 망하게 하셨고, 겸손한 자 모세에게는 그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힘과 지혜와 은혜와 명예와 능력을 주셨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대면하여 뵈올 수 있는 영광을 주셨던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한 민족의 지도자로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성품이 겸손이라는 성경은 없지만,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경외하며 겸손으로 이웃을 섬기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복을 많이 받아 누리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나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말씀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랑스러운 한국교회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경남 남해군 이동면 탐정리라는 섬에서 태어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스스로 김제의 한 부자 집에 찾아가 머슴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교사로부터 전도를 받아 그 자신은 물론 주인집까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 그곳에 금산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 러다가 부잣집 주인 조덕삼과 머슴인 이자익 청년이 영수가 되어서 교회를 받들어 섬기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맡았던 선교사는 여러 교회를 개척하다보니 이곳 금산교회에만 머무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선교사가 없는 날은 으례히 조덕삼 영수보다 설교에 능한 이자익 조사가 주일 설교를 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1908년에 조덕삼과 이자익을 사이에 두고 장로 투표를 하게 되었는데, 투표 결과 이자익이 장로가 되었습니다. 주인은 떨어지고 머슴이 장로가 된 것입니다. 곧 교회 분위기가 서먹서먹해졌습니다. 이때 자기 집 머슴이 장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조덕삼 영수는 일어나 성도 여러분! 참 감사합니다. 나는 나이가 많아서 봉사하기가 어려운데, 젊은 이자익 영수를 장로로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이자익 장로를 잘 받들어 섬겨서 교회를 부흥시킵시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말에 교인들이 감동을 받아 그 다음해에 조덕삼 영수도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 후 이자익 장로는 선교사의 추천으로 평양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 장로교의 총회장에 세 번이나 당선되었습니다. 한편 조덕삼 장로님의 겸손하고 훌륭한 믿음은 자자손손 계승되어 오늘날까지도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린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소망교회 성도 여러분, 위선된 겸손 말고, 가짜 겸손 말고, 시가서가 말해주는 그 겸손을 배우고, 조덕삼 장로가 보여준 그 겸손을 배워서, 진짜로 겸손하게 살아가는 성도들이 됨으로, 약속된 귀한 은혜와 복과 사랑을 풍성히 누리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찬송/ 212(겸손히 주를 섬길 때)

기도제목/ 항상 겸손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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