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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0 30 데살로니가 교회의 신앙생활
이정현 목사 2022-10-30 추천 0 댓글 0 조회 1012
[성경본문] 데살로니가전서1:6-8 개역개정

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살전 1:6-8, 데살로니가 교회의 신앙생활

 

바울은 제2차 전도여행 때, 고린도에 도착을 해서 꼬박 1년 반(18개월)을 보내게 됩니다. 고린도라는 도시는 도덕적으로 부패하고, 종교적으로 타락했으며 성적으로 상당히 문란했던 도시입니다. 이런 곳에서 바울 일행은 16개월 동안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이 기간에 데살로니가 교회에 가서 교회의 상황을 살피고 온 디모데가 고린도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는 바울에게 데살로니가교회의 상황과 그들의 질문과 문제들을 상세하게 보고를 하였습니다. 그것을 근거로 바울이 편지를 쓰서 보낸 것이 바로 데살로니가전서입니다. 신약성경 27권 가운데 바울이 13권의 성경을 기록하는 데, 그 가운데서 제일 첫 번째 서신이 바로 데살로니가전서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데살로니가전서는 바울이 AD 51년 경에 쓰는 바울의 처녀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편지를 쓸 때에는 데살로니가교회가 복음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은 지 짧으면 6개월 길면 2년으로 잡습니다. 그러니까 믿은지 2년 도 채 되지 않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모습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편지 제일 앞장에서 먼저 그들의 신앙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근거로 간단히 몇 가지만 살펴봄으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먼저는 6절 말씀을 보시면,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처음에 복음을 받아들일 때, 많은 환난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의 환란은 외적 환경에 의해 생기는 고통과 핍박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평안하고 안전하고 어려움도 전혀 없이 복음을 들은 것이 아니고, 많은 환란 가운데서 복음을 들었으나,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바울을 통해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게 되었을 때, 적지 않은 고난과 환란이 있었지만, 기쁨으로 주를 믿은 것입니다. 우상을 버리고 참되신 하나님께 돌아와,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 환란이 있어도 감내했던 것입니다.

 

당시 데살로니가는 헬라의 수 없이 많은 신들이 산다는 산인 올림푸스 산에서 8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이런 신들을 열성적으로 섬겼습니다. 헬라 사람들은 신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이제 이 모든 우상들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9절의 버리다라는 말은 과격한 방향 전환, 또는 단호한 단절, 전 인격적인 전환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우상들로부터 과격히, 단호하게 돌아서서, 하나님을 향하여 갔다는 표현입니다. 그들의 철저한 회심을 강조하는 것이고,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우상을 이처럼 과감하게 버리고 180도 돌아서서 오직 유일한 참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입니다. 헬라의 다신교적 우상을 버리고 항상 살아계신 분, 참되신 분에게로 돌이킨 것입니다. 이제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들은 믿음과 삶을 바꾼 것 때문에, 가혹한 환란을 당하였다는 말입니다. 옛날 그대로 우상을 섬기고, 옛날 그대로의 삶을 살았다면 고난을 당할 이유가 없었겠지만, 이제 우상이 아닌 참 신을 믿고 섬기며, 세상의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에 파묻혀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구별되게 오직 믿음으로 살겠다고 하니 시련과 환란이 왔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기쁨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들이 우리와 주를 본받는 자가 되었다’(6)고 말합니다. 이 때의 우리는 1절에 나오는 바울, 실라 그리고 디모데를 가리킵니다. 이들은 훌륭한 믿음의 사람들이고 복음 전도자들이며 훌륭한 성경 교사들이었습니다. 이들을 본받아 산다는 것은 바람직한 신앙인의 태도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준, 영적 부모들을 본받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학부를 다닐 때, 조직신학을 가르치셨던 조석만 교수님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그분은 가끔씩 우리에게 너희들은 나를 본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할 때는 박윤선 교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신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제자들 앞에서, 또는 성도들 앞에서 이렇게 나를 본받으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 성경에서 바울은 신자들에게 자기를 본받으라고 답대히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1:1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또 빌립보서 3:17에서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고 했고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4:9)고 말 하였습니다.

 

이처럼 여러 구절에서 바울은 자기를 본받으라고 말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비록 당시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성도들은 바울을 비롯한 여러 지도자들의 신앙을 본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좋은 신앙적 태도라고 보집니다.

 

더 나아가서 주님을 본받았다고 말합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자기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준 사도들을 본 받은데서 그치지 않고 주님을 본받게 된 것입니다. 성도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의 가장 최선의 모델로 여겼던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목표도 바로 주님을 본받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구속적 성취를 닮아갔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의 도덕적 삶과 성품을 닮아갔다는 뜻입니다. 복음을 전하시고, 선을 행하시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시고, 자비를 베푸시고, 이웃을 위하여 기도하시는 주님의 모습과 주님의 온유, 겸손, 사랑의 성품을 본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머리로만 이해하고 말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행동까지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나도 말하고 주님이 생각하는 것을 나도 생각하고 주님이 행동하신 것처럼 나도 행동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 모두가 예수를 본받는다면 작은 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사랑하고 예수님처럼 순종하고 예수님처럼 섬기며 사는 것입니다. 이들은 계속적인 환란 중에도 사도들과 주님을 본받는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어쩌면 고난 중에도 환란 중에도 성령의 기쁨으로 살았고, 사도들과 주님을 본받으며 살았습니다. 한마디로 사도들과 주님의 무엇을 본 받았겠습니까? 고난과 역경 중에서도 기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나가는 그런 모습을 본받았고 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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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기서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들은 앞 구절에서 사도들과 주님을 본받아 살았음으로, 자기들도 모든 믿는 자들의 본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본받았음으로 본이 될 수 있었다는 애기입니다. 여기의 본(튀폰)이라는 말은, 똑같이 따르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당시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는 이미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이전에도, 이미 흩어진 기독교인들에 의해 복음이 전하여졌고, 그리고 이제 바울에 의해서 빌립보와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와 그 외 지방에서도 복음을 전함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그 리스 전역에 믿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많은 그리스도인들 중에 데살로니가 교회가 당연 신자들의 본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모범적으로, 삶의 샘플로 살았다는 말입니다.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가정에서 생활 터전에서 모범적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주위의 성도들을 우리와 똑같이, 주님을 섬기며 따르게 했다는 얘기입니다.

 

그들이 타인의 표본이 되었던 한 가지 일이 고린도후서 8(1-5)에 나오는 헌금 이야기입니다. 바울은 비록 마게도냐인, 즉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비록 극하게 가난했음에도 다른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헌금을 했는데, 풍성한 연보를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어찌, ‘극한 가난이라는 말과 풍성한 연보라는 말이 같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성경 여기에서만,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이 말을 같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루 먹고 살것이 없어도, 있는 것을 다하여 거액의 연보를 함으로, 다른 모든 성도들의 본이 되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가 다른 교회들의 본이 되었다고 말하는 이 부분이 성경에 한번 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 66권 가운데서 이곳에서만 유일하게 데살로니가교회의 본 된 생활을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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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8절의 말씀에서는, 저들의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음으로 사도들조차도 더 이상 권할 말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저들의 믿음은 대단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고 순종했으며 그것을 전파하였습니다. 바울 일행으로부터 전수받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를 여러 곳에 전파하였다는 말입니다.

 

당시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신앙적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여기의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은 전 그리스를 말하는데, 지금도 이 두 개 지역을 합치면 우리나라 납북한을 합친 것의 여러 배가 될 것입니다. 그 정도 넓은 곳입니다. 이들의 믿음의 소문이 그런 지역을 넘어선 것입니다. 마치 종소리나 나팔 소리가 널리 널리 울러 퍼지듯, 저들의 믿음도 그렇게 퍼져나간 것입니다. 또는 전염병이 삽시간에 전 세계에 퍼저 나가듯이 성도들의 믿음이 퍼져 나갔던 것입니다. 전 그리스를 넘어서 아시아와 저 서쪽 지역인 로마와 스페인까지도 퍼져 나갔던 것으로 보입니다. 각처에, 모든 장소에,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멋지고 아름다운 믿음의 소문이, 그들의 신앙적 명성이 퍼져나갔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신앙이 이처럼 대단했기 때문에, 바울은 아무 말도 할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말로 성령의 능력으로 곳곳마다 복음을 전하고 있으니, 사방으로 다니며 복음을 전하라고 더이상 권면할 말이 없을 정도로 신앙생활을 잘한 것입니다.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거나, 성격이 좋아서 부모에게 순종을 잘하면 아이들에게 더 이상 권면할 말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맨날 늦게 일어나고 숙제도 안하고 시험 기간인데 핸드폰 가지고 게임만 하고 있고, 밤 늦게까지 공부는 안하고 뭐하는지 모르겠고, 주일 날 아침에 교회 가기 싫다는 거 겨우 깨워서 보내 놓으면 예배 시간에 자다가 오니까, 부모들은 잔소리를 하는 겁니다. 아이들이 자기가 알아서 모든일들을 척척 잘하면 잔소리나 권면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저들은 알아서 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저들은 믿은지 2년도 채 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요새 식으로 말하면, 아직 초신자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얼마 안 했습니다. 신앙생활의 연식이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연수로 봐서는 아직 걸음마 단계의 성도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렇게 잘 믿었다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 20-30년 신앙생활 한 사람들, 아니 모태신앙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우리의 신앙과 이제 믿는지 2년도 채 되지 않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신앙과 한 번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저들보다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말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나는 저들보다 낫다고 장담할 자가 누구입니까?

 

부끄럽기 그지없는 우리들의 신앙입니다. 믿는다고 한 연수는 오래되었고 직분도 받았고 나름대로 애써서 신앙생활 한다고 하지만, 아직도 부족하고 연약하기가 이를 데 없는 우리들입니다. 마땅히 성장하고 성숙해야 하지만 성장하지 못하고 성숙하지 못한 모습들입니다.

 

이제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환란 중에 성령의 기쁨으로 복음을 받았듯이, 우리도 아무리 어렵고 여러 가지 일이 있어도 주일 빼먹지 말고, 나와서 아무리 삶이 힘들어도 말씀을 성령의 기쁨으로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을 본받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 구역 안에서, 우리 교회 안에서부터 성도들의 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주님을 닮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들의 믿음의 소문이, 우리 교회를 넘어, 시흥시를 넘어, 경기도를 넘어,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에 소문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소망교회 아무개 성도, 아무개 집사, 아무개 교사, 아무개 권사, 아무개 안수집사, 아무개 장로, 아무개 목사 그러면 정말 훌륭해’ ‘우리는 더이상 권면할 말이 없어라고 할 정도로 훌륭한 신앙인들, 성숙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찬송/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기도 제목/ 나에게 어려움과 고통이 있어도,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듣게 해 주시옵소서.

주를 본받는 자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다른 사람들의 본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저나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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