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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0 23 신앙성장과 성경
이정현 목사 2022-10-23 추천 0 댓글 0 조회 771

2210월 넷째주 설교, 1:1-3, 신앙 성장과 성경

 

여러분은 이 성경이 어떤 책이라고 생각합니까? 유명한 문학 작품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의 종교 서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성도들의 간증을 모아놓은 책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의 좋은 도덕 교과서로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여러 가지 인생 문제에 해답이 적혀있는 지침서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도 있겠고 또는 부분적으로 동의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성경이 어떤 책인가를 오늘 본문은 분명하게 대답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확인하시고, 이 말씀을 통하여 은혜와 복 받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려면 성경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달리 말해서 성경을 통한 우리의 신앙 성장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계시록의 제목이 요한계시록이라고 되어 있는데, 실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단지 그 계시를 요한이 기록했다는 뜻에서 요한계시록이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말은,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나타내 보여주신 예언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시(아포칼립쉬스)라는 단어는 본래 감추어져 있던 것을 드러내 보인다라는 뜻입니다. 사실 이 계시가 없으면 인간은 아무도 삼위일체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드러내 보여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 계시를 보아서 하나님을 알고 믿고 따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계시를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했는데, 혹자는 이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라고 주장했(Hughes), 다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계시라고 주장을 했습니다(Ladd). 이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보다는 두 사람의 의견을 종합해서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그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요한에게 주어진 것이며,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 자신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계시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에 관한 것을, 요한에게 주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계시를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말씀’, ‘그리스도의 증거’, 또는 이 예언의 말씀등으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거의 같은 뜻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계시, 이 말씀이 우리에게 전달된 과정을 보면, 하나님이 그리스도에게 주시고, 그리스도는 천사에게 주시고, 천사는 요한에게 주셨고 요한은 그것을 다 증언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결국 기록자는 요한이지만, 이 말씀의 근원을 따져 올라가면 결국 거기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 말씀의 기원이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요한계시록을 포함한 모든 성경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왔습니다. 고로 이 성경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인간의 책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책입니다.

 

성경이 신적인 기원을 갖는다는 것은, 유명한 인간들의 책이나 전문서적과는 다름을 말하는 것이고, 여기에는 전혀 잘못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만약 그의 말씀에 잘못이 있다면 그것을 말씀하신 하나님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임으로 신적인 기원을 가짐과 동시에, 여기에는 하나의 오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본이나 번역본에는 인간이 한 것임으로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원본에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성령의 영감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이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오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전재로 우리는 성경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 성경이 우리의 복과 무관하지 않고, 오히려 절대적인 관계가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복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이 말씀을 항상 가까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복이라는 개념은 상당히 범위가 넓습니다. 구원과 건강과 물질의 풍성함과 좋은 인간 관계와 출산과 자손의 번성, 추수, 아이들의 자라감 곧 성장, 성숙한 인격 등등 영육적인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복입니다.

 

그러므로 복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고, 본문의 복을 성장으로 이해해도 틀리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고 성숙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대하여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자라가려면 하나님의 말씀은 필수이고, 이 영의 양식인 만나를 가까이하지 않으면 절대로 자랄 수 없습니다. 신앙 성장의 필수가 성경을 가까이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신앙 인격이 자라가려면, 이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거스틴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는 아프리카 북부에 있는 타가스테(Thagaste)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354). 어거스틴은 청소년기에 신앙을 잃고, 카르타고에서 죄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한 여자와 동거를 하면서 18세에 아들을 낳기도 합니다. 또 어거스틴은 연극에 빠지기도 하고 극장의 쾌락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는 20대에 이단인 마니교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아들 어거스틴이 이렇게 살아가는 모습을 본 어머니는, 그때 그때마다 눈물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카르타고로 유학을 갈 때도 기도했고, 멀리 로마로 유학 갈 때도 어머니 모니카는 울면서 아들의 바른 신앙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더더구나 공부하라고 유학을 보냈더니, 어린 자식이 사고를 쳐서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는, 억장이 무너지는 듯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마음을 토해 놓았습니다. 더더구나 아들이 이단에 빠졌다는 말을 듣고는, 어머니 모니카는 눈물로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날 어거스틴이 죄로 인하여 고민하고 있던 중, 밖에서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드렸습니다. ‘들고 읽으라, 들고 읽으라.’ 어거스틴은 급히 성경을 폈는데 그 말씀이 이런 말씀이었습니다.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13:12-14). 어거스틴은 이 말씀을 읽고 꼬꾸라져 철저하게 참회하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밀란의 감독 암브로시우스(Ambursius, 340-397)에게 세례를 받고 그 이후 위대한 신학자가 되었습니다. 반 세기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할, 하나님의 신실한 사람이 되어서,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어거스틴은 성경을 읽다가 변화되었습니다. 자기가 성경을 붙잡고 읽었더니, 그 말씀이 자기를 붙들어 바로 세워주셨습니다.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빵 굽는 아버지 밑에서, 제임스 심프슨(James Simpson. 1811-1870)이라는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14살에 에딘버러 의과대학에 들어가 산부인과 의사 과정을 밟아 공부를 마치고 의사가 되었습니다. 늘 관심사가 어떻게 하면 환자에게 고통을 덜어주며 치료하여 줄까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놀라운 발견을 하였습니다.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2:21-23).

 

그는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의 갈비뼈 하나를 빼내셨다면 엄청난 수술이다. 대 수술이다. 그런데 아담이 아파하였다는 말이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아프지 않게 갈비뼈를 빼내실 수 있었을까?’ 심프슨은 감탄하였습니다. 그래서 심프슨은 하나님께 그 비결을 놓고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취제 개발 연구에 몰입하였습니다. 드디어 184711월 사람을 마취시켰다가 깨어나게 하는 클로로포름이라는 마취약을 발견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이 약은 1853년 빅토리아 왕후가 분만할 때 사용하여 온 세계에 떠들썩하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영국 의사로서는 최고의 공로를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발견이었습니다.

 

심프슨이 세상을 떠날 시즘에 제자들이 모여들어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하다가 어떤 제자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지금까지 선생님이 발견하신 발견 중에 가장 큰 발견은 무엇입니까?’ 이 때 심프슨이 대답하였습니다. ‘나의 가장 큰 발견은 내가 큰 죄인이라는 사실과, 예수님이 나를 구해 주신 큰 구세주라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결국 심프슨은 성경을 통하여 예수를 발견하고 성경을 통하여 몰핀을 발견한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역사적인 예를 말씀 드립니다. 미국의 록펠러가 설립한 스텐더드 석유회사가 있는데, 그 회사의 감독관이 하루는 구약성경 출애굽기 2장을 읽었답니다. 그 가운데 ‘3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라는 말씀을 읽었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역청이라는 단어가 자기 머리에 번갯불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왜냐하면 역청은 영어로 Pitch인데 Pitch는 석유의 원유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다시 한번 본문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모세의 어머니가 역청을 구할 수 있었다면, 틀림없이 이집트 나일강에 석유가 많이 매장되어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습니다. 감독관은 이 사실을 스텐더드 석유회사의 책임자에게 알렸습니다. 그 즉시 지질학자를 이집트 현지에 파견했고, 얼마 후 그는 라일강 주변에서 대규모 유전을 발견하는 개가를 올렸습니다.

 

어거스틴은 말씀을 읽고 변화되어 새사람이 되었고, 심프슨은 성경을 읽다가 클로로포름이라는 마취약을 발견하였고, 스텐더드 석유회사의 감독관도 말씀을 읽다가 큰 유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모두 다 말씀을 읽다가 받게 된 영육간의 복입니다.

 

성경을 많이 읽는 사람이, 그 신앙이 성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하기에 유익한 것이며, 우리의 영육을 깨우쳐 주는 능력의 말씀이기 때문에, 이 성경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과 인격이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열심히 읽으면, 성령께서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은혜받게 하시며, 그것을 통하여 우리의 인격을 조금씩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은혜의 수단이라고 할 때 말씀과 성찬과 기도를 말합니다. 그런데 말씀과 성찬이 동일한 은혜의 수단이지만 약간 다른 점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말씀은 신자든 불신자든간에 그 마음에 믿음을 격발시켜 줍니다. 그 속에 말씀을 통하여 믿음을 일으켜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찬은 신자들에게 있는 믿음을 더욱더 강화시켜 줄지언정 없는 믿음을 격발시키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주는 은혜로서의 믿음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주의 집중하여 말씀을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 읽기를 통하여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여 은혜로운 사람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읽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주보에 나온 요약 설교를 모아서 읽고 계시는 어르신이 계십니다. 젊은 분 가운데는, 교회 홈페이지에 있는 설교원고를 그대로 뽑아서,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설교를 읽는 분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제 설교집을 하루에 한 편씩을 읽고 하루일과를 시작하는 분도 있습니다. 설교가 성경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성경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설교문을 읽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어떤 모습으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해야만 신앙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토마스 제퍼슨은, “성경을 열심으로 정독하는 자는, 보다 나은 시민, 보다 나은 아버지, 보다 나은 남편이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미국 헌법을, 성경에 기초하여 만들었던 인물입니다. 계속하여 열심히 성경을 읽어서, 성장하는 그리스도인, 보다나은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려면, 이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것이지만 말씀을 귀담아 잘 듣는 일은 매우 주요하고 가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으면 복이지만, 잘 듣지 않으면 거기에는 분명히 문제가 발생합니다.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려고 하셨을 때,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구원하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래서 롯에게 이 성안에 가족들을 다 불러서 하나님의 계획을 얘기하고 빨리 이 성을 빠져나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롯은 자기 사위들에게 찾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는데, 그 사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장인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장인의 말도 농담으로 여길 수 없을 터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긴 사위들의 타락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 말씀을 잘 듣지 못하고 농담으로 여겼던 그들은 결국 유황불에 타서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하여 이런 말씀을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너희 조상들을 본받지 말라 옛적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외쳐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악한 길, 악한 행위를 떠나서 돌아오라 하셨다 하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내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1:4). 스가랴 선지자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외쳐 말씀하셔도 듣지 않았고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다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도 현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딤후 4:3-4). 지금의 때는 사람들의 귀가 가려져서 바른 교훈을 듣지 않는다고 하셨고,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른다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듣는 데서 출발하는 종교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에서 시작을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듣는 자가 믿음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들어야 합니까? ‘기도함으로 듣고,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사모함으로 듣고,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듣고, 아멘으로 들어야 합니다.’ 이렇게만 하면 깨닫게 됩니다. 은혜가 됩니다. 말씀이 체험됩니다. 그런 사람의 믿음이 자라는 것입니다.

 

주일에 설교를 듣는데, 관심도 없이 들어요, 졸면서 들어요, 사모함도 없어요, 기도도 안 하고 아멘도 안 해요, 형식적으로 마지 못해 몸만 앉아 있는 겁니다. 그러니 무슨 깨달음과 은혜가 되겠습니까?

 

듣는 귀가 열려야 하겠습니다.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귀는 있지만,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지 못하는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사탄이 말씀 듣는 귀를 막아버리고, 세상 소리는 듣도록 귀를 열어 놓는 것입니다. 진리를 듣지 못하고 하고, 세상의 허탄한 소리만 듣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이, 말씀 듣는 귀가 가려져 있는 것 같습니다.

 

주님이 요한복음 8:47에서, 무서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주 명확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사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로 작정하기만 하면, 그 수단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TV를 켜면, 기독교 관련 방송이 여러 군데 됩니다. 설교와 강론이 수 없이 많이 나옵니다. 인터넷을 켜면 더 많습니다. 수십 만 편의 설교와 강해와 예화들이 있습니다. 핸드폰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말씀이나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침저녁으로 출퇴근 하실 때, 기독교 방송을 틀어도 말씀을 들을 수 있고요, 또는 차 안에서 CD, 말씀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또 적어도 1주일에 한 번 이상씩은, 담임목사의 설교를 동영상을 통하여 듣는 것입니다. 자기 교회 담임목사의 설교도 제대로 안 들으면서, Tv를 통해서 다른 목사님의 설교만 듣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입니다. 다른 목사님의 설교는, 신앙생활의 보조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주로 자기가 섬기는 목사님의 설교를, 주의 깊게 잘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남의 집 밥을 얻어먹으면, 맛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맛보지 못한 특별한 맛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자기 집에서 자기 어머니가, 해 주시는 밥이 제일 좋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에게 가장 좋은 음식을 주기 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담임목사가 여러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정성스럽게 준비한 영혼의 양식이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가장 좋은 영양제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목자는 양을 알고,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아는 것입니다. 자기 목자의 음성을 잘 들어야, 믿음이 쑥쑥 자라가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믿음의 성장을 위하여 이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말씀을 읽고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듣고 끝내는 것은, 모레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읽고 듣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행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내 신앙의 집을 반석 위에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어려움이 와도, 신앙이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지켜야 좋은 결과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고, 복을 받게 되는 것이고 튼튼한 믿음의 집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너는 고향과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하나님이, 땅과 민족과 자손에 대한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다음의 성경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명령)을 따라서, 그대로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후에, 땅과 민족과 큰 복을 받았음을, 성경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켰더니, 하나님이 그에게 약속하신 것을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저는 다윗에 관한 이 부분의 말씀을 읽을 때마다, 큰 은혜가 되었습니다. 시편 119:60의 말씀인데요, 거기에 주의 계명들을 지키기에 신속히 하고 지체하지 아니하였나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얼마나 멋진 말씀입니까? 다윗은 말씀 지키기를, 속히 하였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신앙을 이 한 구절에서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다윗이 높임을 받고, 무엇보다 그의 신앙이 특별하다는 것을, 이 구절에서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는 스스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의 계명을 지키기를 내가 속히 하고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듣고 받았으면, 망설임 없이 속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즉시 순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순종을 늦추는 것은, 곧 불순종이다.’ 주일마다 듣는 말씀, 속히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일성수, 온전한 십일조, 말씀과 기도의 생활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는 것,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는 말씀을 들으면, 이유 달지 말고, 즉시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자기가 맡은 책임에는 충성하고, 짐을 서로 나누어지라고 했으면, 최선을 다하여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한창 바쁘게 복음을 전하고 계시는데, 그의 가족들이 찾아왔습니다. 제자들이 주님께 와서, ‘선생님, 모친과 형제들이 찾아왔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이 좀 엉뚱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8:21). 예수님은 새로운 가족개념에 관해서 말씀하신 것인데, ‘진정한 내 가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들이다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를, 주님은 당신의 가족으로 여기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귀신들을 쫓아내셨습니다. 이 때 무리중의 한 여자가 나서서,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여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봄으로, 저를 키운 자가 얼마나 복될까 하는 마음으로 이런 말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들은 주님은, 의외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11:28). 어쩌면 주님은, 나를 낳고 키워주신 내 어머니보다 더 복 있는 자가,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라는 것입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며, 그의 믿음이 점점 더 자라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1:25). 오늘의 본문이 있는, 계시록 마지막 부분인 22:7에도 보니까,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계시록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말씀과 관련한 복, 말씀과 연관된 믿음 성장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본문의 마지막 말이 때가 가까움이라입니다. 여기의 때(카이로스)는 보편적인 시간(크로노스)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결정적인 하나님의 섭리와 때를 나타내는 종말론적 시각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재림의 때를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 편에서는 정해진 시간이지만, 인간 편에서는 항상 임박한 긴장의 시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가까이 왔다고 말합니다.

 

그 때가 가까이 온 줄로 알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신앙생활의 유일한 기준인, 이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듣고 지킴으로, 은혜로운 신앙생활을 하고, 더욱더 믿음이 성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읽고 듣고 지킴이 없이는 아무도 그 믿음이 자라갈 수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과 신앙인격이 자라가려면, 반드시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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