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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9 11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전도함 이정현 목사 2022-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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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도행전16:16-34절 개역개정

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17.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18.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19.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20.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21.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22.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24.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34.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911, 16:16-34,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전도함

 

바울은 실라와 함께 수리아와 길리기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다가 마침내 1차 전도여행의 마지막 지역이었던 더베와 루스드라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곳에서 바울은 디모데를 만나게 됩니다. 이 디모데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아마도 바울의 1차 전도여행 때인 것 같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신앙이 잘 성장해 온 청년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유대인 이었으나 아버지는 헬라인이었습니다. 그를 가리켜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말하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자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디모데는 혼혈족이라는 비난 속에서도 신앙으로 바르게 성장하여 칭찬을 듣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남들로부터 칭찬을 듣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수준 높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잘 성장한 디모데가 필요해서 그를 데리고 전도여행을 떠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가 헬라인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복음전파 하는 일에 방해를 받지 않케 하기 위하여 할례를 줍니다. 이것은 갈라디아서 2장에 나오는 순수 헬라인 디도에게 할례를 거부한 것과는 다른 처사였습니다. 디도에게 하례를 거부한 것은 할례가 구원의 전재조건이 아님을 강력히 말하고자 한 것이며 여기 디모데에게 할례를 준 것은 유대인들에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만약 여기서 디모데가 할례를 받지 않았다면 후에 회당에 들어가서 설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이야기는 구원의 본질적인 문제가 아닌 효과적인 사역 차원에서 행한 일로 받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그들은 세 사람으로 구성된 전도팀이 되었습니다. 아시아 지역의 여러 성으로 다니며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했더니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끊임없는 은총이 이들 사역 위에 함께 하신 것입니다.

 

이제 다음 구절에서 복음전파의 중요한 변수가 일어납니다. 바울은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기를 원했지만 성령께서 이를 막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을 지나서 무시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성령께서는 가지 못하게는 하셨어도 현재로는 갈 바를 지시해 주시지는 않았습니다. 여기서 북쪽에 위치한 아시아의 끝자락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섰지만 예수의 영(성령님의 다른 이름, 8:9, 4:6, 1:19)이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아시아(에베소를 비롯한 여타 지역)에서도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고 비두니아(아시아 북동쪽에 위치함)로 가지도 못하고 하셔서 바울 일행은 아시아의 서쪽 끝에 위치한 드로아로 내려갔습니다. 여기에서 비로소 바울은 어디로 가야할지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9절과 10절의 말씀입니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 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이것은 마게도냐 프로젝트에 관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지시였습니다. 바울은 마게도냐 사람의 손짓을 하나님의 인도와 부름으로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전도자들을 주권적으로 인도해 가시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사용된 단어 우리가에서 사도행전의 저자가 이 여행에 함께 동행 하고 있음을 엿 볼 수 있습니다. 누가는 어설픈 사료들을 이용해서 이 책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보고 듣고 체험한 바를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바울을 비롯한 전도자 일행은 실라, 디모데 그리고 누가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환상을 본 후 곧장 배를 타고 아시아를 떠나 마게도냐로 들어갑니다.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아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11-12). 드로아에서 배로 사모드라게라는 작은 섬까지 가고 거기서 하룻밤을 자고 아침에 네압볼리에 도착을 합니다. 여기서부터 육로로 16km 정도 떨어진 마게도냐 지역의 첫 성이라 불리는 빌립보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빌립보를 마게도냐 지역의 첫째가는 성으로 부른 것은 그 도시의 크기 때문이 아닙니다. 마게도냐 지역에서 제일 큰 도시는 데살로니가였고 그리고 네압볼리도 빌립보보다 더 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의 규모를 근거로 말한 것이 아니라, 행정구역에서 제일 중요한 도시였다는 뜻으로 말한 것입니다.

이 빌립보는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빌립 2세의 이름을 따서 만든 성입니다. 후에 로마의 식민지가 되어서 로마는 이곳에 로마의 수비대를 주둔 시켜서 치안을 유지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 빌립보에는 유명한 의학학교가 있었는데 아마도 누가가 이곳 출신이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 누가는 오래 전에 자기가 공부하던 곳에 바울 일행과 함께 온 것이 됩니다.

 

그들은 여기서 안식일에 기도할 곳을 찾다가 강가에 모여 있는 여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이때 주께서 옷감장사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 말씀을 듣게 하시므로 그와 온 집이 구원을 받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성경은 루디아를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라고 소개하는데, 이는 자기 고향에서 많이 나는 고급 옷감을 가져다가 빌립보의 고급 로마 장교들에게 파는 일을 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녀에 대해 하나님을 섬기는 여인이라고 한 가지 더 덧붙여 설명합니다. 여기의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기보다 유대인의 유일신 하나님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 구원받은 사람은 아니며 구원과 가까이에 있는 여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이 바울이 전해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세례를 받아 바울 일행을 자기 집으로 영접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에서 루디아의 대접을 받으며 생활하게 됩니다. 루디아는 복음을 받아들인 후에 곧장 복음에 합당한 삶으로 남을 섬기며 살게 됩니다.

 

제가 이 지역을 여행하면서 루디아 기념교회를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제가 인상 깊게 본 것은 이 건물의 안쪽에 프레스코화로 그린 바울과 루디아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때의 루디아는 예쁜 얼굴 모습에, 왼손은 아래로 내려서 굳게 쥐고 있고 오른손은 위를 향해 들고 손바닥을 펴고 있었습니다. 가이드가 루디아의 이 특이한 모습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왼손에 주먹을 굳게 쥐고 있는 것은, ‘죽도록 충성하라는 의미라고 하고 오른손을 이렇게 들고 있는 것은, ‘나와 같이 되십시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둘을 하나로 묶어서 설명한다면, ‘나와 같이 죽도록 충성하십시오.’라는 뜻이 됩니다. 이런 깊은 뜻을 담아서 프레스코화로 루디아의 이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16절 이하에서는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그곳에서도 복음을 전함으로 한 가정을 구원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때도 바울 일행은 루디아를 만났을 때와 같이 기도하는 곳을 찾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게 됩니다. 그녀는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였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여종의 주인은 복수로 나타남으로 공동 주인인 셈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소녀의 불행을 착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사이 매춘업의 포주들처럼 소녀들과 여자들을 이용하여 자기들의 재정적 이익을 챙기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당시의 점쟁이들은 주인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자들로 주인의 사유재산과 같았습니다.

 

그 여자가 바울 일행을 따라오면서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고 소리 지르는 것입니다. 그 여자가 바울의 설교를 들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몰라도 정확하게 말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바울이 나타날 때마다 이런 말을 하니까 바울이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왜 바울을 괴롭게 했을까요? 그것은 만약 바울이 그 여자의 말을 받아들였다면 그가 전하는 복음이 귀신과 관련된 활동처럼 비쳐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복음전파가 귀신의 활동과 연결되면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엄청난 손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바울이 괴로워 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귀신을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고 함으로 그 여자에게서 귀신을 추방시켜 줍니다. 소녀는 그 시간 즉시로 완쾌되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귀신의 능력으로 인한 점치는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이 같은 이적과 표적으로 인하여 바울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지역의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보상과 대접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19절 이하의 말씀에 주의하십시오.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갔다가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19-23). 사람을 온전케 해 준 덕으로, 바울은 옷이 찢겨지고 매를 맞고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기록된 빌립보의 사람들 중, 여종의 주인들이든, 관리들이든, 상관들이든 모두 다 자기 눈앞의 이익에 눈이 먼 어리석고 법 없는 사람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피투성이가 될 정도로 얻어맞고 두 발에 착고가 채인 채로 깊은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터툴리안이 마음이 천국에 가 있는 사람은 그 발이 착고에 채워져도 아무런 감각이 없다.’는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하더라도 그 육체적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너무나 갑자기 당황 상황이고 너무 무식하게 일이 진행되어서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 속에 있었고 매를 심하게 맞아 육체적으로도 큰 고통 속에 있었던 그들이었지만 그 와중에서도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그것도 조용히, 마음으로 한 것이 아니라, 기력은 미약하고 손발이 부자연스럽지만 마음과 힘을 다하여 기도하고 찬송한 것입니다. 이들은 두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경배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이 소리를 다른 죄수들이 듣고 있었습니다. 여기 듣더라’(에페크로온토)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신자들이 고통을 당할 때 이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를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럴 때라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바른 모습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자들의 기도에 응답하셨고 그들은 기도 응답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큰 지진이 나고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열리고 매인 것들이 다 벗겨졌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이적은 바울과 실라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구원섭리 중에 있는 간수를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큰 지진으로 인하여 간수는 자다가 깨어났고 옥문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가 도망한 줄 알고 자결하려고 했습니다. 아마도 로마법에 따른 처형을 피하기 위해서 그랬을 것입니다. 이때 바울이 큰 소리로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고 말합니다. 이 말로 이미 바울은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린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간수가 등불을 가지고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어,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라고 묻습니다. 간수의 이 질문은 인생에게 있어서 가장 심오하고 중요한 질문이었습니다.

 

이 질문에 바울도 가장 정확하고도 중요한 대답을 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믿으라고 것이고 믿음의 대상을 주님으로 정하면, 너 뿐만아니라 집안의 모든 식구들도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진리는 비단 이 간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그 외의 모든 간수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현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메시지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계기로,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였습니다.’ 그 밤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맞은 자리를 씻겨주고 자기와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제자들을 집으로 데리고 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한 간수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그의 가족들도 각자의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서 모두다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음으로 주님이 주시는 전천후 기쁨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이런 사실도 모르고 상관들은 다음날 아침에 부하들을 시켜서 그 사람들을 놓아주라고 합니다. 지난 밤의 일이 있은 후 이 사건이 더 이상 진척되지 않고 쉽게 끝나려는 분위기가 됩니다. 간수가 바울에게 가서 상관들의 말을 전했더니 이제는 바울이 튕기면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 대”(37). 이 말을 전해들은 상관들은 두려워하여 직접 감옥에 와서 제자들을 데리고 나가게 됩니다. 두 사람은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보고 위로하고 빌립보를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디모데와 누가는 여기에 계속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우리가 아닌 그들이 가니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 편의 드라마처럼 전개되는 사도행전 16장의 말씀을 들으면서 무엇을 배우게 됩니까? 하나님께서 하늘의 이 시나리오를 실제로 빌립보 무대에 올려놓으심으로 현대인들에게 보여 주신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한 사람의 선택된 백성이 어느 곳에 있든지 간에, 하나님이 전도자의 특별한 상황을 통해서라도 그 사람을 찾아가서 기필코 구원하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점하는 귀신들린 여인을 낫게 하시므로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깊은 감옥에 가게 됩니다. 그런데 거기에 하나님이 창세전에 선택하신 당신의 백성들이 있었기 때문에 상황을 그리 만들어 바울을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로 하여금 그곳에 들어가 사람과 가족을 구원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환경과 이 자리에 보내신 목적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고 모든 상황에서 복음전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분명히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과 실라가 당했던 그런 상황이 되더라도 불평하거나 원망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를 바라며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예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코리텐 붐 여사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 공항에서 자기 짐을 비행기에 싣지 않고 어디에다 놓아두고 비행기를 탔습니다. 비행기로 2시간이나 오다가 보니 자기 짐이 시드니 공항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자기의 평생의 모든 재산이 다 들어 있고, 모든 기록이 다 들어 있고, 여행의 모든 도구가 다 들어 있는 가방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스튜어디스를 붙들고 그 가방을 금방 가져와야 한다고 했지만 그 가방을 다시 되돌려 받으려면 나흘 후에야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붐 여사는 곧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했습니다. 마음으로는 잘 안 되지만 감사합니다. 찬송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일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붐 여사는 비행기 속에서 계속 감사하고 찬송하고 있었습니다.

 

한 참 가다가 비행기가 고장 났는데 그 고장이 심각한 고장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난 고장으로는 비행기가 추락하기가 쉬웠습니다. 그야말로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고 사색이 되어 있었습니다. 붐 여사 혼자 평온한 마음으로 찬송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비행기가 다시 시드니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몇 시간만에 그 비행기를 되돌려 보내 주셔서 그녀의 짐을 찾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붐 여사가 대합실에 서 있는데 어떤 유대인이 와서 내가 당신을 유심히 보니까 모든 사람은 사색이 되어 죽겠다고 아우성을 치는데 당신만은 찬송하고 감사하며 그 얼굴에서 평안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붐 여사가 그 사람에게 전도하여 그 사람이 예수를 믿었다고 합니다.

어렵고 힘들고 생명의 위험을 느끼는 그 순간에도, 믿음을 지키며 감사하고 찬송하는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은 택한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상황이 오더라도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생각하며, 한 영혼 구원을 우선해야 하겠습니다.

 

찬송/ 물 건너 생명 줄 던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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