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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9 18 데살로노가, 베뢰아, 아덴 사람들이 말씀을 듣다 이정현 목사 2022-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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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도행전17:1-15절 개역개정

1.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2.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4.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5.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6.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7. 야손이 그들을 맞아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8.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9.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놓아 주니라

10.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2.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13.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

14.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머물더라

15.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17:1-15,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 사람들이 말씀을 듣다.

 

우리가 읽은 본문은 사도행전 17:1-15절이지만, 오늘 설교의 내용은 사도행전 17장 전체가 되겠습니다. 본문이 길고 복잡하게 보이지만, 제목이 보여주는 것처럼 세 지역에서의 전도로 기억하시면 되겠습니다.

 

지난주에는 바울 일행이 마게도냐 지역의 첫 성이었던 빌립보에서 전도한 것까지를 다루었습니다. 바울 일행은 이제 데살로니가 지역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전도 하다가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인하여 베뢰아로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도 데살로니가에서 따라온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아덴으로 가게 됩니다. 아덴에서 전도하는 바울의 모습까지의 기록이 본 장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7장은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의 경로 중 데살로니가와 베뢰아 그리고 아덴에서의 전도를 다루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와 베뢰아는 빌립보와 마찬가지로 마게도냐에 속하여 있고 아덴은 고린도와 겐그레아와 같이 아가야에 속하여 있기 때문에 바울의 마게도냐와 아가야 일부 지역에서의 전도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에서 데살로니가로 오면서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서 왔습니다. 각 지역에서 하루정도 묵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고 드디어 마게도냐에서 최고로 큰 도시인 데살로니가에 도착을 한 것입니다. 이 도시는 알렉산더의 이복누이이자 카산데르(Cassander)의 아내의 이름을 따서 데살로니가로 하였답니다.

 

데살로니가에서의 전도도 유대인의 회당에서 시작됩니다. 유대인들의 예배와 교육의 장소였던 회당을 바울은 최대한 이용을 하는 것입니다. 이곳에 들어가서 그는 세 안식일에 걸쳐 성경을 강론하였습니다. 이때의 성경은 물론 구약성경이었고 그것을 근거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관하여 증언하고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초대교회의 많은 사도들이 예수가 그리스도이다라고 전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시의 이단들, 특히 영지주의자들이 예수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주장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는 곳곳마다 이 역사적 예수가 곧 그리스도임을 증거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지역에서의 설교에도 남부 갈라디아에서와 같이 두 가지 반응이 일어났습니다. 긍정적인 반응으로는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이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른 것입니다. 바울의 말을 듣고 믿은 사람 중에 유대인도 있었으나 하나님을 경외하던 헬라인들이 많았던 것 같고 이들 중에는 고위 계층의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5절에 나오는 야손이나 사도행전 204절에 데살로니가 사람으로 기록된 아리스다고와 세군도 역시 이 시기에 개종한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반대로 여기에서도 바울의 말을 듣고 시기하는 유대인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야손이 그들을 맞아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놓아 주니라”(5-9).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던 이방인들이 바울의 말을 듣고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을 시기한 것으로, 그래서 그들은 잡류들을 끌어들여 성을 소동케 하는 것입니다. 잡류들은 제자들이 머물렀던 야손의 집을 덥쳐 야손과 그의 동료들을 잡아 읍장들 앞에 끌고 가서 그들을 고소하였습니다. 야손과 그의 동요들은 정치적 메시야 선동가들에게 숙소를 제공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습니다. 아울러 가이사 황제 외에 예수라는 다른 황제가 있다고 주장함으로 폭동을 선동하는 자라고 고발하고 있습니다. 바울과 야손에게는 그런 혐의가 전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내용은 회중들의 반감과 격분을 사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무리와 읍장들이......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놓아 주었다.”(9)는 말씀은 다시는 이런 소동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라는 약속이나, 바울이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않게 하라는 약속을 하고 그 보증금을 주었다는 말씀입니다. 일정기간 동안 이 약속이 잘 지켜지면 보증금은 찾아갈 수 있었겠으나 만약 그렇지 않다면 보증금은 지방재정에 예속되고 야손과 다른 형제들은 많은 고난을 받게 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의 신실한 형제들은 바울과 실라를 밤에 베뢰아로 보냅니다. 그들은 익나티우스 대로를 따라서 아가야 지방까지 갈 수 있는 남쪽 길로 죽 내려 온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에서 베뢰아까지의 거리는 약 100km 정도임으로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닙니다. 베뢰아에 도착해서도 그들은 역시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 들어갑니다.

 

누가는 베뢰아에서의 전도를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다만 데살로니가 사람들과 비교하여 베뢰아인들의 특징을 설명합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너그러운사람들이고 말씀을 들을 때 간절한 마음으로받고 또한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는사람이라고 설명합니다. 대단히 중요한 성품과 말씀에 대한 바른 태도를 소유한 민족입니다. 그들은 충분히 칭찬 받을 만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가져야 할 마음과 태도인 것입니다. 우리와 우리의 자손들이 말씀 앞에 이런 태도를 가지도록 늘 애써야 하겠습니다.

 

베뢰아에서의 전도가 구체적으로 그 내용이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좋은 열매는 있었습니다. ‘믿는 사람이 많았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였다.’(13)고 했습니다. 그 당시 믿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한 인물이 사도행전 204절에 나오는 보로의 아들 소바더입니다(참고, 16:21). 아무튼 여기에서도 하나님은 좋은 전도의 열매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베뢰아에서도 전도하고 있다는 소문이 데살로니가에 전달이 되어서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을 자극함으로 그들이 베뢰아까지 내려와서 소동을 벌이게 됩니다. 데살로니가에서 핍박에 어느 정도 성공한 그들은 이제 그 기세를 몰고 베뢰아까지 진출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핍박자 바울처럼 열심히 특심한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다시 한 번 더 신속하게 어디론가 자기의 몸을 피신해야 했습니다. 신사적인 베뢰아 형제들이 바울을 보호하며 그를 항구까지(메돈이나 디움 항) 데리고 가서 거기서 배를 태웁니다. 베뢰아 형제들은 아덴까지 선상에서 바울과 동행하지만 바울은 베뢰아에 디모데와 실라를 남겨두고 떠납니다. 아덴에 도착을 했을 때, 바울은 자기를 배웅해 주던 형제들에게 디모데와 실라를 아덴에서 속히 만나자는 말을 전하고 헤어집니다. 바울은 아덴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지금의 그리스 윗 지방은 마게도냐이고 아랫 지방은 아가야입니다. 아덴부터 아가야이기 때문에, 이제 마게도냐에서 아가야로 온 것입니다. 다시 말해 헬라의 본 고장에 온 것입니다. 바울이 베뢰아를 떠나와서 아덴에 도착을 했는데, 사실은 이곳에서의 전도계획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단지 베뢰아 사람들이 이곳에 데려다 주니까 온 것이고, 또한 디모데와 실라를 이곳에서 만나기 위하여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곳 사람들에게 전도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 아덴은 헬라의 수도이며 헬라문화의 중심지역입니다.

 

이곳에서의 전도는 의예로 길게 나와 있습니다. 먼저는 유대인과 헬라인을 상대로 전도한 것(16-21)과 다음은 아레오바고 강연(22-31)이 나오고 마지막 부분은 그 결과로, 일부는 기롱하고 일부는 믿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32-34).

 

아덴 전도의 동기가 되었던 말씀이 16절에 나타납니다.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바울은 동역자들을 기다리다가 아덴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격분하여 전도하기 시작합니다. 말 그대로 이 성은 우상의 도시입니다.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 팔테논 신전을 비롯하여 어마어마한 신전들이 즐비하게 있는 도시이고, 이곳에서 음란하게 우상숭배 하던자들이 수 없이 많은 도시입니다. 이런 것을 보고 마음의 의분이 일어난 것은, 바울의 마음에 복음으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바울은 회당에서 사람을 만나고 장터에서도 그리고 철학자들도 만나서 변론도 하고 복음도 전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전도의 대상을 구분하지 않았으며 모두에게 전도하려고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알려진 대로 아덴은 철학의 도시답게 에피쿠로스와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이 많이 있었고 바울은 그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무신론자들이고 유물론자들이며, 영혼도 물질로 되어 있어서 죽으면 다 소멸된다고 주장합니다. 지상에서의 목표는 오로지 행복과 향락입니다. 그리고 스토익 학파는 범신론자들로, 신을 세계의 영이라고 주장하며 도덕주의를 강조하고 내재하는 이성을 따라 살라는 것이 생의 모토인 철학입니다. 바울은 이런 철학자들과 논쟁을 합니다. 자기도 율법학자요 철학자이기 때문에 이들과 논쟁할 수 있었고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였습니다.

 

바울이 예수님의 부활철학을 말한 덕분에 아레오바고로 끌려가서 새로운 교리를 알고자 하던 그들 앞에서 연설을 하게 됩니다. ‘가장 새로운 것을 듣는 데만 시간을 썼던 그들에게’(가장 아덴적인 표현) 바울의 교리가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아레오바고는 월래 재판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왜 이 재판법정으로 끌려왔는지 모르지만, 혹자는 다른 법적인 문제에 걸려서 오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사람은 법적인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철학이론에 대해 설명하라는 자리라고도 말합니다. 후자가 더 합당한 것은 다음의 강연 중에서 바울은 법정에서 자기의 무죄를 변론하는 내용이 아니라, 복음에 대한 자기의 주장을 하고 있는데서 알 수가 있습니다.

 

아레오바고는 아크로폴리스 서편에 있는 암벽으로 된 언덕을 말합니다. 아골라에서 올라가는 16개의 계단이 있고 그 위는 평평한 바위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논쟁도 하고 재판도 했고(소크라테스도 이곳에서 재판을 받았다) 때로는 제사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너희는 범사에 종교심이 많다는 말로 강연을 시작 합니다. 철학적 방법을 써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내가 다니면서 보니까, ‘알지 못하는 신이라는 푯말도 보았는데, 이제 너희에게 참 신을 가르쳐 주겠다는 것입니다. 기가막힌 심정으로 강연을 하는 것입니다. 부르스의 말처럼 바울의 아레오바고 연설에는 많은 주석이 필요하겠지만 여기서는 간단히 그 내용을 요약합니다. 참 신이신 그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고(24) 인간의 생명을 창조하신 분이시며(25) 모든 족속의 창조자이시니(26) 그 하나님을 찾고 회개할 것을 촉구합니다.’ 마지막 부분인 하나님을 찾고 회개할 것을 촉구하는 28절 이하의 말씀을 같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라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28-31).

 

바울의 아레오바고 강연의 결과는 부정적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롱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철학자들에게 이해가 되는 이야기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아레오바고 법정을 설립할 당시 아덴 여신이 사람이 일단 죽으면 땅이 그 피를 마셔버리며 부활은 없다고 한 발표를 쉽게 뒤엎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듣던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몇 사람이 믿음을 가졌습니다.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34). 여기에 믿은 자 중 두 사람의 이름을 거론됩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은 아레오바고 관리인 디오누시오입니다. 그는 12인의 아레오바고 재판위원 중 1인이었다고 하며, 유세비우스는 그가 최초의 아덴 감독이 되었고, 그 후 고린도의 감독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95년 도미시안 황제 때 순교하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다마리라 하는 여자입니다. 디오누시오의 부인인지 아니면 지나가던 나그네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녀가 누구인지는 정확히 모르나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결론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먼저, 바울은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에서 전도를 하는데, 많은 핍박과 고난 중에서도 오로지 복음을 전파하는데 힘을 썼습니다. 빌립보에서 데살로니가로 온 바울은 복음을 전하여 좋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믿는 자도 많이 얻었고 교회도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베뢰아로 피해 갑니다. 베뢰아 사람들도 말씀을 듣고 그들도 구원의 반열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의 과격한 유대인들이 이곳까지 내려와서 박해를 하므로 베뢰아 형제들이 바울을 배로 아덴까지 호송해 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덴에서 전도할 때에는 큰 핍박은 없었지만 큰 열매도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복음을 전하되, 십자가만 자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 능력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자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각 지역 사람들의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바울의 말로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었고, 베뢰아 사람들은 신사적이었고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들었고 그 말씀을 날마다 공부하였고, 아덴 사람들은 자기들의 사상과 철학에 빠져서 말씀을 제대로 받지를 못하였습니다.

 

말씀을 대하는 태도는 아덴 사람들처럼 자기가 세워둔 어떤 사상이나 자기가 배운 어떤 이론과 철학에 맞지 않는다고 성경과 진리를 무시하거나 복음을 거절하면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고, 데살로니가와 베뢰아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여야 영생을 얻고 은혜받고 깨달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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