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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8 28 바울의 1차 전도 여행과 그 결과 이정현 목사 2022-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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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도행전14:19-28절 개역개정

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20.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21.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

24. 비시디아 가운데로 지나서 밤빌리아에 이르러

25. 말씀을 버가에서 전하고 앗달리아로 내려가서

26. 거기서 배 타고 안디옥에 이르니 이 곳은 두 사도가 이룬 그 일을 위하여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라

27. 그들이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

28.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14:19-28,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과 그 결과

 

오늘은 바나바와 사울의 제1차 전도여행에 관하여 살펴봄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들의 1차 전도 여행은 사도행전 13장과 14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을 선교사로 파송하는 교회는 수리아 안디옥 교회였습니다. 예루살렘교회가 아니라 이방인 교회였던 안디옥 교회에서, 역사상 첫 번째 공식적인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입니다.

 

이 교회에는 선지자와 교사가 많았습니다. 선지자와 교사는 둘 다 하나님의 말씀과 관계된 직분자들입니다. 선지자는 일시적인 직분으로서, 교회가 공식적으로 조직되기 이전까지만 존재했던 직분자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주로 성령의 능력을 입어, 예언하고 설교하며 때로는 교회를 치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여기에 비해 교사는 하나님이 가르치는 은사를 주셔서, 교회의 유익을 위해 일하게 하시는 지속적인 직분입니다.

 

사도행전 13:1에 나오는 사람으로 우선 바나바를 볼 수 있고,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도 있고, 구레네 사람 루기오,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다소 출신 사울이 있었습니다.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신앙이력을 살펴 볼 때에, 모두가 다 훌륭한 신앙인임과 동시에 성경교사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교회가 평안히 든든히 서가고, 교회의 제 사명을 잘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들 중 몇 사람을 선교사로 파송하는 과정을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성령의 지시를 받아서 선교사로 파송합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13:2). 자기들의 뜻대로 하지 않습니다. 선교사로 가고자 하는 사람의 의도도 아닙니다. 전적인 성령의 지시로 이들을 구별하여 세웁니다. 그리고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그들이 기도한 것은 교회가 이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또는 파송 받은 사람들이 각 지역에서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위하여 기도했을 것으로 봅니다. 결국 저들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잘 받들어 준행하기 위함 이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안수하여 보냅니다. 안수라는 것은 성령의 지시에 순종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구별하여 사명을 맡겼음을 표하는 의식행위입니다. 교회에서 임직식을 할 때 목사, 장로, 안수집사에게 안수를 합니다. 이때도 마찬가지로, 이들을 구별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사명을 맡긴다는 의식적 행위인 것입니다. 이같은 파송 과정을 통하여 바나바와 사울은 정식 선교사로 파송을 받고 선교지로 나가게 되는데, 이때가 아마도 주후 47년경이었다고 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바나바와 사울은 성령의 보내심을 따라 구브로 섬 쪽으로 갑니다. 이들이 첫 번째 선교지로 구브로 섬을 정한 것도, 성령의 지시하심 때문입니다(13:4). 자기들 마음대로 선교지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보내심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구브로 섬의 동쪽 지역인 살라미에 도착을 한 것입니다. 이곳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고 또한 여러 회당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나바 일행은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한 결과에 대해서는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다만 이 복음전도에 요한이 수종들었다는 말씀만 나타납니다. 이때의 요한은 마가요한으로서 바나바의 생질입니다(4:10, 12:12).

 

살라미에서 복음전도를 마치고, 섬을 관통하여 서쪽에 위치한 바보라는 곳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바 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게 됩니다.’ 유대인이며 거짓 선지자이며 마술사라고 했는데, 유대 율법에는 이런 자를 돌로 쳐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사회에서 이런 자를 그대로 용납하여 마을에서 함께 살게 한 것을 보면 유대인들이 그 사람의 말에 상당히 미혹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동네에 지혜로운 총독 서기오 바울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마술사와 함께 있다가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마술사가 총독으로 하여금 믿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는 것입니다. 그때 사울이 성령으로 충만해서 그를 저주하게 됩니다. 정확하게, 그러면서 강하게 책망을 했습니다. ‘너는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라고 하면서,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못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너는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 되리라고 저주했더니, 그 즉시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어,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주의 손이 바울을 통하여, 마술사를 한 방에 봉사로 만든 사건입니다.

 

복음전파를 방해하던 마술사가 이렇게 된 것을 보고, 총독이 믿으며 주의 가르침에 놀랬다고 기록합니다. 펠톤(Felton)이라는 사람은 이 구절에서, ‘마술사의 눈이 감김으로 총독의 눈이 열렸다라는 의미 있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제 바울 일행은 구브로 섬에서, 육지로 올라와서 전도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좋지 못한 일이 하나 일어납니다. 함께 동행 했던 마가 요한이, 버가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아무래도 선교의 고난과 험난함을 생각하여 미리 선교를 포기한듯합니다.

 

이제 세 명의 선교사는 둘이 되어서, 험난한 타우루스 산을 넘어, 비시디아 안디옥에 도착을 하게 됩니다. 혼동하지 말 것은 이들을 파송한 안디옥은 수리아 안디옥이고, 바울과 바나바가 타우루스 산맥을 넘어 도착한 안디옥은, 비시디아 안디옥이라는 겁니다.

이곳에 있는 한 회당에 들어가 예배를 드리며 전도하게 됩니다. 이 회당은 회당장이 두 명이 상이나 되는 것을 보니까, 그 규모가 다른 것보다 상당히 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회당장의 권면으로 설교를 하게 됩니다. 그 설교가 사도행전 13(16-41)에 길게 나와 있습니다.

 

먼저, 그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의 이스라엘의 역사를 요약합니다. 이어서 바울은 구약성경을 근거로, 예수님이 약속하신 메시야이며, 그는 십자가와 부활로 구속을 완성하신 분으로, 그에 대한 믿음을 권하고, 불신을 경계하는 내용입니다(13:23-41). 그리고 설교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예수로 말미암아 죄 사함과 의롭다하심을 얻는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어서 바울은 하박국의 말씀을 인용하여, ‘너희들이 믿지 않음으로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경고까지 했습니다.

 

회당에서의 바울의 설교가 끝났을 때, 그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다음 안식일에도 말씀을 전해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는 그만큼 말씀에 은혜와 깨달음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좋은 반응이 일어났습니다.

 

바울은 다음 안식일에 또 설교를 했습니다. 이제는 온 시민이 다 모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설교를 들었던 사람들이, 두 가지 다른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하나는 비방하고 방해하는 유대인들입니다. 이들은 마음이 악하여서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기까지 합니다. 다른 하나는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찬송하고, 믿어 구원을 받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무튼 그런 상황 속에서도 복음은, 그 지방에 두루 퍼지게 되었습니다(13:49).

 

그런데 이 같은 복음의 확산 중에, 유대인들의 박해가 일어납니다. 안디옥의 유대인들이 귀부인들과 지역의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사도들을 쫓아내게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전파를 방해하는 그들을 향하여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갔습니다. 이고니온으로 쫓겨가는 그들의 심령상태가 어떠했는지를, 성경을 이렇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13:52).

 

쫓겨난 두 사도가 이고니온에 왔는데, 이곳에서도 그들은 성공적으로 사역을 합니다. 그들은 이곳에 오래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적과 표적을 행합니다. 그런데 이들의 전도로 인하여 성이 두 파로 나누어집니다. 하나는 유대인을 따르는 무리이고, 다른 한 파는 사도들을 따르는 무리입니다. 태양이 비취는 곳에는 항상 빛과 그림자가 있듯이, 십자가의 복음이 미치는 곳에는, 항상 신앙과 불신앙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사도들의 복음전파를 싫어하여, 핍박하는 무리가 일어납니다. 유대인과 관리들이 사도들을 핍박하기 위하여, 이방인들과 손을 잡고 합력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돌로 치려하자, 그것을 피하여 루스드라와 더베로 내려갑니다. 루스드라에서는 한 번도 걸어 본적이 없는 절름발이를 고칩니다. 바울은 그 사람에게서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있음을 보고,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고 하니까, 그 사람이 일어나 걷게 되었습니다. 대단한 이적입니다. 인간으로써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바울을 통하여 역사하셨습니다.

 

이것으로 인하여 바울을 헤르메스(Hermes), 바나바를 제우스(Zeus) 신으로 오해를 받습니다. 바울을 헤르메스가 인간의 몸을 입고 내려왔다고 하는 것이고, 바나바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주신(主神), 제우스신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것을 근거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헤르메스와 제우스는 우상이며 그것들을 섬기는 것은, 우상숭배임을 과감히 선포하고 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고 전도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루스드라에서도 또 큰 어려움과 핍박을 받게 됩니다. 지나왔던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쫓아온 유대인들이, 루스드라로 내려와서 그 지역의 사람들을 선동하여, 함께 바울을 돌로 친 것입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울을 신으로 숭배하려고 했던 그들이, 돌변하여 바울을 돌로 쳐서 죽은 줄 알고, 끌어다가 성 밖으로 내버리게 됩니다. 바울은 죽지 않았고 다시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갔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더베에서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았다는 사실 외에, 다른 기록은 없습니다. 돌에 맞아 죽었다가 살아난 바울은, 여기서도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양육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든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더베에서 1차 전도여행을 마무리하고, 지금부터는 지나온 발자취를 따라서, 다시 그 지역 지역의 성도들을 격려하고 권면하기로 작심합니다. 그래서 1차 전도여행지를 따라서 귀환하게 됩니다. 다시 루스드라, 이고니온, 안디옥, 밤빌리아 버가로 와서 거기에서 앗달리아로 갑니다. 항구도시 앗달리아에서 배를 타고 수리아 안디옥으로 귀환을 합니다. 돌아갈 때에는 구브로 섬을 다시 들리지는 않습니다.

 

바울일행이 돌아오면서 각 도시를 연속적으로 방문하여, 새로 개종한 자들을 가르치고 격려합니다. 또한 장로들을 세워서 안수함으로 교회를 조직하여, 장로들에게 교회를 치리하도록 부탁합니다. 그리고 처음 버가에 도착했을 때는 복음을 전하지 못했으나, 돌아가는 때에는 버가에서 복음을 전하기도 합니다(14:25).

 

1차 전도여행을 다 마치고, 파송교회인 안디옥에 도착한 바울 일행은, 교회를 모으고 선교보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14:27). ‘교회를 모았다는 말은 성도들을 모았다는 뜻입니다. 성도들을 모아 놓고 그들 앞에서 1차 전도여행의 결과를 보고합니다. 그 내용은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에 관한 것입니다. 자기가 행한 일이나, 자기가 일으킨 이적을 보고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고한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를 보고한 것입니다.

 

적어도 바울의 1차 선교는, 2년 내지 2년 반 정도 걸렸다고 보는데, 이 기간 동안의 선교가 성공적이었음을 파송교회에 보고를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는지, 얼마나 교회가 든든히 평안히 서가고 있는지를 보고한 것입니다. 그리고 난후 바울은,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서 오래 있었다고 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그들은, 자기들의 영적 재충전과, 성도들과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고 봅니다.

 

결론

 

저는 바울의 1차 전도여행을, 다음과 같이 간략히 평가함으로, 결론을 맺고자 합니다. 먼저 그들은 중요한 도시 중심으로 전도하되,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을 다니며, 전도하여 교회를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데 가서, 다수를 상대로 복음을 전하였고,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지역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여 예수를 믿게 하고, 그들을 모아 교회를 세웠던 것입니다.

 

다음은 많은 사람들을 제자로 삼아, 그들 가운데 장로를 세워서, 교회를 치리하게 하였습니다. 사람들을 먼저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고, 그들 가운데서 귀한 일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교회를 치리하게 한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에서 본 받아야 할 사항입니다. 일꾼을 세우기 이전에 제자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신실한 제자들 중에서 일꾼을 피택 해야 하며, 그들로 교회를 치리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회당에 들어가, 항상 유대인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바울 자신도 유대교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유대교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으면, 구약 성경적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근거로 메시야를 전하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난 것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구브로 섬에서 회당에 들어갔고, 안디옥에서도 회당에서, 그리고 이고니온에서도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만 가르치고 전파하였습니다. 복음 선포의 내용은 항상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었고, 적용은 회개하여 그 메시야를 믿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본질적이고 원색적인 복음전파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왔고, 곳곳에 교회가 세워지고 일꾼들이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만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보다 더 중요한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바울과 바나바의 이 모든 사역은, 모두 성령께서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고, 도와주시고 역사하신 결과라는 것입니다. 선교사들을 따로 세워서 파송한 것도 성령님이시고, 구브로 섬 쪽으로 가게 하신 것도 성령님이시고, 엘루마가 봉사가 되는 것도 성령의 역사이고, 안디옥에서 유대인들의 핍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기뻐할 수 있었던 것도 성령 충만 때문이고,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일으킬 수 있었던 것도 성령의 역사이며, 이고니온에서 사울이 돌에 맞아 죽었다가 살아난 것도 성령님의 도우심이고, 이뿐 아니라 가는 곳곳마다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으로, 복음을 믿는 자가 생기고 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안디옥에 돌아와서 성도들 앞에서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한다고 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함께 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성령님이 함께 하시고 역사하신 일이라는 것이고, 자기들은 단지 성령의 역사에 쓰임 받았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전도와 선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성령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전도는 하나부터 열까지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우리와 교회는 단지 성령님의 사역에 쓰임 받을 뿐이고, 성령님이 쓰시는 도구일 뿐입니다. 귀하게, 끝까지, 전도와 선교하는 일에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GS/ 183(빈들에 마른풀 같이)

 

기도제목/ 성령님께 쓰임 받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바울처럼 어떤 핍박과 고난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잘 감당하는 자들이 되게 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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