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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0 24 오직 은혜 이정현 목사 2021-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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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에베소서2:1-10절 개역개정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1-10, 오직 은혜(Sola Gratia)

 

조직신학에서 인간론을 배우는데, 그 내용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는 창조된 인간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셨다는 것과, 육체와 영혼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내용입니다. 사람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고 또한 아메바가 점점 고등한 것으로 진화한 것도 아닙니다. 다른 것은 전부 말씀으로 만드셨지만 인간은 하나님이 손으로 직접 흙을 빚어 만드신 것입니다. 그것도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영혼이 있는 존재로 빗으신 것입니다.

 

다음은 타락한 인간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타락을 하고 실낙원을 하여 땀을 흘리고 수고해야 먹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인간은 자연과 형제자매와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여 상실하고 만 것입니다. 죄는 불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이 곧 죄입니다. 그 죄를 짓고 타락하고 말았고, 그것의 결과로 곧 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재가 단절 된 것입니다.

 

마지막은 은혜 언약 아래에 있는 인간을 말합니다.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은 인간을 말합니다. 죄에서 자유롭게 되어 이제부터는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찾아서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론을 창조된 인간, 타락한 인간, 은혜언약 아래에 있는 인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세 단 계 중에, 두 번째와 세 번째에 해당되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타락한 인간의 모습과 예수님을 믿고 변화된 인생을 말하고,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은혜 받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종교개혁자들이 외쳤던 슬로건 5개 중에, 3개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오직성경, 오직그리스도, 오직믿음입니다. 오늘은 종교개혁자들이 외쳤던 슬러건 중 네 번째로 오직 은혜라는 주제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오직이라는 말은 성경본문에 나타나지는 않지만 그 뜻은 분명합니다. 구원은 인간의 행위에 있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있다는 말입니다. 어느 신학자는 기독교와 가톨릭의 차이점은 오직과 그러나에 있다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주장하지만, 가톨릭은 은혜로 구원받는다, 그러나 인간의 공덕도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은혜라는 말은, 총애, 호의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총애 또는 호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일이나 공덕이 필요 없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총애에만 달려 있다는 말입니다. 이 총애는 선수적이며 자발적이며 값없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우선적으로 먼저 총애하셨고, 타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총애하셨고, 또한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으시고 값없이 호의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이제 본문을 세 단계로 나누어서 살펴봄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오늘 본문 1-3절은 인간의 본래 형편’, 즉 타락한 인간의 형편을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고, 상실한 인간의 형편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여기의 는 하나님을 말하고, 허물과 죄로 죽었다는 것은, 타락과 그 결과를 말하는 것입니다. ‘허물이라는 단어는 잘못된 발걸음침범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허물은 경계선을 넘는 죄, 바른 길에서 이탈하는 죄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표적을 맞추지 못하였다,’ ‘표적에서 빗나갔다는 뜻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인간편의 실패를 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도에서 완전히 빗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허물과 죄는 비슷한 뜻이 됩니다.

 

여기서의 죽은 상태죽어가고 있는 상태죽을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이미 죽어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허물과 죄로 인하여 죽은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기절한 상태를 말하는 것도 아니라, 완전히 소생불가능하게 죽은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인간이 살아서 활동을 하는데, 죽은 상태라고 말하는 것은 영적으로 죽은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영혼은 마치 시체처럼 하나님께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음 두 구절에서 바울은 허물과 죄로 죽은 인간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설명합니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허물과 죄로 죽은 자는 이 세상 풍속을 따른다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떠난 사회의 가치관을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반대되는 이 세상 풍속을 좇는 것을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육체의 일을 행하고 즐기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 풍조를 따라 사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라 사는 상태라고 했습니다. 공중 권세 잡은 자는 사탄을 말함으로 사단에게 속하여 사단을 위하여 봉사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바울은 이 사단을 가리켜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고 소개합니다. 사단은 항상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합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은 그들이 알든 모르든, 항상 사탄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탄의 조종을 받으며 살기 때문에, 육체의 일을 행하며, 세상 풍조를 따라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한 3절에서는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사는 상태라고 했습니다.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여기서의 육체는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말합니다. 그리고 욕심은 금지된 것을 갈망하는 것을 말합니다.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죄에 매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칼빈은 이것을 가리켜, 우리의 본성과 마음의 뜻을 따라서 사는 상태라고 했습니다.

 

이런 욕심은 자연적인 욕심과는 차별이 있습니다. 자연적인 욕심-식욕, 성욕, 수면욕-은 죄가 될 수 없으나, 이것이 죄의 성격을 띄게되면, 육체의 욕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음식에 대한 욕망이 폭식이 되고, 잠에 대한 욕망이 태만이 되고, 성에 대한 욕망이 정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적인 욕심이 과하면, 육체의 욕심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3절 하반부에서 이들은 본질 상 진노의 자녀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불신자들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라 살며, 육체의 욕심을 따라서 사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것은 곧 본질 상 진노의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참으로 비참한 자리에까지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이제 진노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칼빈의 말처럼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한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그리스도 없는 인간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한 은혜를 누리기 이전의 인간의 상태는 너무나 비참하다는 겁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기 이전에, 그들의 죄악상을 심각하게 기술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에 대한 바른 견해를 갖지 않으면, 은혜에 대한 바른 견해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2. 은혜언약 아래에 있는 인간을 말한다고 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산 자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지금까지 말씀하신 인간의 상태가, 이제부터는 180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인간은 죄와 허물로 죽었으나 이제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그 큰 사랑으로 살리셨다고 말합니다. 주어로 하나님이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다시 말해 1-3절에서는 주어가 없었으나, 이제야 그 주어가 나타나는데, 곧 긍휼이 충성하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죽었던 인간을 살리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고 사랑이 크신 분이십니다.

 

긍휼은 죄인들을 위한 하나님의 태도라면, ‘사랑은 하나님이 죄인들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의 동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사랑이 크신 하나님이 허물과 죄로 죽엇던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셨습니까?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 구절에는 세 가지 동사가 나오는데, 함께 살리셨고, 함께 일으키셨고, 함께 앉히셨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개인 성도의 구원 경험을 나열한 말씀이라고 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경험을 뜻하는 것입니까?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를 살리셨다는 것은 성도들의 중생 경험을 뜻하는 말입니다. 5절뿐만 아니라 이미 1절에서도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허물로 인하여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고 말하며, 이어서 너희는 은혜로 구원 받은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일으키신 것은 성도의 부활을 뜻하는 것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된 자로서, 미래에 그의 능력으로 우리의 몸이 다시 일으키심을 받게 될 것입니다.

 

또한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는 것은, 성도가 그리스도와 함께 승천하여 하늘에 앉아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지체들이기 때문에,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앉아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튼 5-6절에서, 하나님이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를 살리신 것은 이미 이루어진 사실이고, 앞으로 미래적인 사건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를 일으키실 것이고, 그리스도와 함께 앉히실 것입니다. 이것은 현재에도 허물과 죄를 죽은 우리를 놀라운 은혜로 살려주셨지만, 미래에도 더 놀라운 은혜로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고, 하늘에 앉게 해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언약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놀라운 은혜인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거절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은혜입니다.

 

3. 은혜언약 아래에 있는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합니다.

 

본문 7절에 나오는데, 이는 5-6절의 목적을 설명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함께 일으키시고 함께 앉히신 목적을 7절에서 설명한다는 것입니다.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그 목적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는 목적때문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은혜가 풍성함을 다시한번 더 강조합니다.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의 은혜를 높이는 표현을 세 가지로 하셨습니다. 먼저는 그 은혜가 풍성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은혜는 부족함이 전혀 없는 풍성한 은혜입니다. 넘치는 은혜입니다.

 

다음은 지극히라는 말인데, 이 말로 풍성함을 수식합니다. ‘지극히라는 단어는 비교할 수 없는’(NIV), ‘측량할 수 없는’(ESV)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는 말로 측량할 수도 없고 그 무엇과 비교할 수도 없는 풍성한 은혜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은 이같은 놀라운 은혜, 풍성하고 측량할 수 없는 은혜가 우리에게 나타난 것은, 하나님의 자비하심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 대문에, 우리에게 지극히 풍성한 은혜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은혜가 우리에게 전달된 근본적인 동기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 천국 백성이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하늘나라 시민권자가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예수의 이름을 부르며 성령의 능력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이제 이같은 은혜를 입은 자들은, 오는 여러 세대 사람들에게 나타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의 나타내다는 말은 명백히 하다는 뜻입니다. 구원 받은 사람은, 곧 하나님의 전시물과 같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극히 풍성한 은혜를, 사람들 앞에서 명백히 드러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속 받은 사람들의 의무입니다. 구원 받은 이후부터 오는 영원한 세대에 이르기까지, 이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 두 구절은 너무나 유명한 말씀입니다.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구원은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이지, 인간 스스로에게서 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공로나 노력이 전혀 가산될 수가 없습니다. 믿음은 구원을 위한 도구요 수단이지 근거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하나님과 인간의 합작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이지, 믿음 때문에가 아닙니다.’ 구원을 얻었다는 말은 완료 시상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고 그 구원 받은 상태로 계속 살아가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므로, 아무도 자랑치 못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은혜로 구원하신 목적을 10절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처음 창조행위는 전능의 행위요, 두 번째 창조는 은혜의 행위입니다.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완전히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재창조 되었습니다. 선행을 위해서 지은 것입니다. 선행으로 구원 받는 것은 아니지만, 구원 받은 자는 선행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선행 조차도,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구절에서 말하는 이 선행, 7절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지극히 풍성한 은혜를 사람들 앞에서 명백히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선을 행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풍성하고 지극한 은혜를 분명하게 전하는 것입니다. 은혜 받은자라면 은혜 받은자 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자들이었습니다.

전부 다 세상 풍속을 좇았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며,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았고, 결국 본질 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그 큰 사랑으로 살리셨습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함께 일으키셨고, 함께 앉히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것이며, 하나님의 선물임으로 누구든지 자랑치 못합니다.

우리를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셨습니다. 두 번째 창조는 은혜의 행위입니다.

 

이렇게 해 주신 목적, 다시 말해 죄 많은 우리를, 그 풍성하신 은혜와 사랑으로 구원하여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사람들 앞에서 명백히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구속 받은 사람들의 의무입니다. 구원 받은 이후부터, 오는 영원한 세대에 이르기까지, 이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 풍성한 그 은혜, 측량할 수도 없고 비교할 수도 없는 그 은혜를,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드러내야 하는 것입니다. 은혜 받은 자가 은혜를 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은혜를 전하는 것을 보니까, 은혜 받은 자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도 이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은혜로 구원 받은 사람은, 그 은혜가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지극히 풍성한 그 은혜를 전파하기 위하여 더 많이 수고하되, 그 수고조차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GS/ 은혜로다(시작됐네)

 

기도제목/ 나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 풍성한 그 은혜, 측량할 수 없고 비교할 수도 없는 그 은혜를,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전하며 살게 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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