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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0 17 오직 믿음 이정현 목사 202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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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창세기15:6절 개역개정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경본문] 로마서1:16-17절 개역개정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15:6, 1:16-17, 오직 믿음(Sola Fide)


지난 두 주간에 걸쳐서,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라는 주제로 설교를 하였고, 오늘은 오직 시리즈 세 번째로, 오직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사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게 된 실제적인 배경이 되었던 것이, 바로 이 주제 때문이었습니다. 독일의 루터가 신부로서 비텐베르크대학교에서 교수를 하고 있었을 때, 당시 교황은 레오 10세로 면죄부를 팔아서, 엄청나게 크고 웅장하고 찬란한 베드로 성당을 건축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교황은 전 유럽의 가톨릭 신자들에게, 면죄부라는 문서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이 문서를 사기 위하여 헌금함에 돈을 넣으면, 그 즉시로 모든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적용하다가, 나중에는 돌아가신 분들을 위한 면죄부도 팔기 시작했습니다. 가톨릭은 연옥을 주장하는데, 천국에 가지 못한 부모들이 연옥에서 고통을 당한다면, 그들을 위하여 이 면죄부를 사면, 역시 부모님들이 연옥의 고통에서 해방되어 천국으로 가게 된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므로 당시의 가톨릭 신자들은 이 면죄부를 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위한 면죄부와 돌아가신 조상들을 위한 면죄부를 사므로, 자동적으로 가톨릭은 엄청난 돈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이때 가톨릭의 사제였던 루터가, 교황과 추기경의 면죄부를 판매하라는 서류를 보면서, 이것은 성경에 위배된 주장이라고 생각하여, 95개조 반박문을 작성하여, 비텐베르크 대학교회의 정문에 붙이게 된 것입니다. (사진) 이것은 처음부터 종교개혁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해서 한 것이 아니고, 단순히 한 사람의 신학자로서 성경을 읽어보니, 면죄부 판매는 부당하다는 것을 알리고, 거기에 관해 서로 토론하자는 의미로 반박문을 붙이게 된 것입니다.

 

거기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21, 교황의 이름으로 된 면죄부를 사면, 죄의 형벌을 면죄 받게 되고,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27, 면죄부를 산돈이 헌금함에 찰랑 소리 내며 떨어질 때, ‘연옥에 있던 영혼이, 연옥 밖으로 뛰어나온다고 설교하는 것은 허황된 거짓말이다.
 

86, 엄청난 부를 소유한 교황은, (면죄부를 팔아) 가난한 크리스천의 돈으로 성 베드로 대성당을 건축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돈으로 해야 할 것이 아닌가.
 

마틴 루터의 95개 조항은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95, 크리스천은 많은 고난을 거쳐 천국에 가는 것이지 (면죄부를 샀다고) 안심하는 마음으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다.
 

마틴 루터는 장장 95개 항목에 이르는 긴 글을 통해서 교황의 면죄권과 면죄부의 효력에 대해서 단호히 아니오라는 입장을 천명했습니다. 이런 마틴 루터의 ‘95개 조항은 당시 가톨릭교회를 근본부터 뒤흔드는 지각변동의 진원이 되었고, 15171031일은 교회사에 있어서 종교개혁이라는 새로운 장을 여는 역사적인 날이 되었습니다.

당시 면죄(Indulgence)의 논리는, 교회에 일정한 액수의 돈을 바치면, 죄로 인하여 천국에 가지 못하고 연옥에 가 있는 자의 형벌이 면제된다는 것입니다. 이 주장은 당시에 상당한 인기가 있었고 이것으로 인하여 많은 부를 축적하게 되었지만, 성경에 위배된 교리일 뿐입니다. 면죄부를 산다고 해서 죄가 면하여지는 것이 아니고, 망자를 위하여 헌금을 한다고 그가 고통가운데 있다가 천국으로 가는 게 아니며, 천국과 지옥 사이의 연옥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고,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인류는 죄로 인하여 죽고, 죽음 이후에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인류를 위해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피 흘려주셨고, 우리를 의롭다하시기 위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은 죄 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동시에 죽음과 지옥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면죄를 받을 수 있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유일성이고 독특성입니다. 이것이 무너지면 기독교도 무너지는 것이고, 이것을 상실하면 기독교는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이고, 구원의 종교이고, 영원한 종교이고, 유일한 종교인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이것을, ‘신자와 교회를 서게도 하고 넘어지게도 하는, 중요한 교리이다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것은, 창세기에서부터 가르치는 진리입니다. 창세기 15:6,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하셨습니다이것을 루터나 칼빈같은 개혁자들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교리의 근거가 된다고 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후사의 언약을 주셨을 때 그대로 믿었고, 그 믿음으로 그는 의롭다고 인정된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받고,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말씀이, 할례보다 훨씬 이전에 나오고, 율법은 아브라함 이후 500년이 지나서야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할례보다 먼저, 율법보다 먼저, 아브라함 때에 벌써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거나, 아니면 율법을 지켜야 의롭게 된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구약 하박국 선지자는, 주로 요시야와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 시대 때, 유다를 위하여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하박국 당시 시대적인 배경은,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고 우상숭배하며, 극도로 타락하고 부패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기 일보 직전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오고 있음을 유다에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박국서 1-2장은 선지자와 하나님과의 대화 내용입니다. 두 가지 질문에 두 가지 대답을 받게 되는데, 두 번째 대답 중에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2:4). 다수가 부패하고 타락하여 자기 마음대로 살아간다 할지라도, 또한 하나님의 심판과 멸망의 위기 속에 놓여 있다 할지라도,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신약의 로마서(1:17)를 비롯하여, 무려 세 번이나 인용이 되었습니다(3:11, 10:38).

 

그 중에 두 번을 사도 바울이 인용을 하였습니다. 바울은 구원론을 다룬 유명한 로마서 1:17에서, 하박국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의는 인격체인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믿음에 이른다는 말을, 아퀴나스는 현재적 믿음에서 미래적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으로설명했고, 혹자는 객관적 믿음에서 주관적 믿음으로라는 말로 해석을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설명은 앞의 믿음은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기본적인 믿음을 말하고, 뒤의 믿음은 앞의 믿음에 근거한 보다 더 성숙한 믿음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여기서 할례나 율법을 지키거나, 그 어떤 공로로 말미암아 죄인이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며, 그런 사람은 또한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진리를 설명하신 것입니다.

 

하박국의 이 말씀은 이제 바울을 넘어, 16세기 종교개혁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어, 그들이 종교개혁을 이룰 수 있는 동기가 되었던 말씀이 되기도 합니다. 개혁의 선구자였던 루터는 성경을 반복 정독하고 연구하는 중에, 당시 로마 교회의 교리와 제도가, 성경과 모순되는 점이 너무나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로마서 1:17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말씀에 크게 깨달음을 받고, 이 구절을 슬로건으로 하여 종교개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오직 믿음(솔라 피데)라고 외치게 된 것인데, 이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가 다 믿음이다(from first to last)라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오직 믿음의 교리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근거하고, 하박국에 이어 바울에게 왔고, 바울은 루터와 칼빈에게 계통을 이어, 이것이 기독교의 구원론을 형성하게 된 것입니다이같은 믿음의 도리는 세상 어느 한구석에서 시작된 것도 아니고, 어느 개인의 주장도 아니고, 시대적 유행을 따른 사상도 아니고, 성경에 근거한 것으로, 유구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내려온, 구원의 교리인 것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오직 믿음이라고 했을 때, 그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신학사전에서는 믿음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행하시고 약속하신 바를 신뢰함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다라고 정의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신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장으로 알려진 히브리서 11장에서는 믿음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1). 여기서의 실상은 본체의 형상’(1:3)확신하는 것’(3:14)을 말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에 대해, 지금 품고 있는 하나님이 주신 확신을 말합니다. 비록 내 손에 잡히거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내 손으로 잡고, 바라보는 실체처럼 확신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뒤에 이어서 나오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기도 했는데, 이는 신앙은 경험적 증거를 근거로 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보지 못하였으나 하나님이 주신 확신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뜻으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던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은 믿음을 받아드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곧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진실된 마음으로 받아드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을 맡기고 신뢰하는 것으로 설명을 하기도 합니다. 가령 여기에 위암을 앓는 환자가 있다고 가정하십시다그 환자가 그 병에서 나을 수 있는 길은, 의사에게 수술을 받아 그 암세포를 제거하고항암치료를 받는 길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 환자는 의사가 나의 몸을 수술 할 수 있도록, 내 몸을 그에게 맡기고, 그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처럼 인간은 근본적으로 죄인이며 그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데, 이런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만민의 죄를 지시고 대신 죽으신 구세주에게, 나를 죄에서 구원해달라고 나 자신을 맡기고, 주님만을 의지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마게도니아의 영웅 알렉산더 대왕(사진), 한번은 열병을 앓아 생명이 위험하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왕의 시위(주치의) 빌립은 정성을 다해 왕을 간호했고, 왕은 또 빌립을 믿고 그가 시키는 대로 요양을 했습니다하루는 왕이 신임하는 부하 장군이 일선에서 왕에게 밀서를 보내왔는데, 그 내용은 빌립이 적군에게 매수되어, 왕을 독살하려는 혐의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것이었습니다편지를 읽고 있는데, 빌립이 약사발을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왕은 그 약을 의심 없이 받아 마시면서, 신하의 밀서를 그에게 주었습니다그 후 왕은 곧 건강을 회복하여, 전선에 다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그 때 왕이 주치의를 믿지 않았다면, 자신의 병도 고치지 못하고, 궁중에는 피비린내 나는 비극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처럼, 우리도 주님께 철저히 맡기고, 주님을 신뢰하고 받아들이는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으면, 의인은 또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은,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원 얻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 이후의 생활도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제 더욱더 성숙한 믿음, 차원 높은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과 관계하여, 세 등급의 신앙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일 낮은 등급은, 믿음이 없는 단계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큰 믿음이 있어 보였지만, 사실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율법에 대한 많은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었고, 하나님이 있다고 믿었고, 천국과 지옥과 천사와 부활과, 하나님의 심판을 믿는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는 사람들이었고,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철저히 드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은 옷깃에 계명들을 써서 다니고, 이마에 말씀상자를 달고 다닐 정도로, 굉장한 믿음을 가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이 있는 척 한 위선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서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23:15)라고 하셨고,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11:52)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믿음이 없는 자는 지옥 자식이며,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이 세대를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책망하셨고요, 바울은 돈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다(딤전 6:10)고 말하고, 진리를 대적한 자는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받은 자들이라고 했습니다(딤후 3:8).

 

성경은 믿음이 없는 사람, 믿음에서 떠난 사람, 믿음에 관하여 버림받은 사람은, 정죄를 받고 저주를 받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 믿음의 단계는, 믿음이 적은 사람입니다. 믿음이 있기는 있지만, 믿음의 분량이 적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의식주를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6:30-31)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 위를 걸어오실 때, 베드로가 자신도 걸어가게 해달라고 할 때, 예수님이 걸어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파도가 치고 바람이 부니까, 예수님을 바라보던 그 눈을 돌려 바다를 바라보는 순간에, 물에 쑥 빠졌습니다. 그때 주님이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하십니다. 믿음이 적은 사람일수록 의심이 많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하나님이 버리지나 않을까 의심하고, 사랑하지 않으시는 줄 알고 실망합니다.


마태복음 8장에서도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하셨습니다. 환난이 일어나고 풍파가 일어나면, 두려움을 갖는 것 자체가 믿음이 적은 것입니다. 아무리 환난이 일어나고 풍파가 일어나도,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내가 죽고 사는 것, 흥하고 망하는 것, 부하고 가난하게 되는 것이 풍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손에 달려있음을 믿는다면,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7장에 간질병 가진 아들을 제자들에게 고쳐달라고 했을 때, 제자들이 고쳐 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고쳐 주셨는데, 그 후에 제자들이, 자신들은 왜 고쳐 주지 못했는지 물어봅니다. 그때 예수님은 믿음이 적은 연고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이 항상 지적을 당하고 책망을 듣는 것은, 너무 믿음이 적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문제인 것입니다. 믿음이 작은 자는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 제일 높은 믿음의 단계는 믿음이 큰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믿음이 큰 자를 칭찬하신 경우가 두 곳에 나와 있습니다. 먼저는, 가나안 여자가 자기 딸이 귀신들렸음으로 고쳐 달라고 애원하였을 때, 예수님께서 한 말씀도 대답지 않으셨고, 제자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고쳐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때 그 가나안 여자가 절하며 저를 도와 달라고 하자, 주님이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고 하셨습니다. 그 여자가 옳다고 말하며,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하자, 주께서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낫게 되었습니다(15:28). 예수님이 그녀의 지칠 줄 모르는 큰 믿음을 보시고, 그녀의 딸을 고쳐주셨습니다.

 

다른 한 경우는 누가복음 7장에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어떤 백부장의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예수님이 그 집으로 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주님이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6)라고 말합니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고,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는데,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8), 그러므로 주님도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백부장의 이 말을 들은 주님께서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9)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이 말씀을 하실 때 이미 백부장의 종은, 깨끗이 나음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큰 믿음의 사람을 칭찬하시고, 그를 통하여 크게 역사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론

여러분은 여러분이 간절히 원함으로, 구원을 받은 것 아닙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노력과 수고와 땀으로, 구원을 얻은 것 아닙니다.

여러분이 헌금을 많이 했거나, 어떤 공로가 있어서 구원을 받은 것 아닙니다.

여러분이 세례를 받거나, 율법을 지켰기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 아닙니다.

여러분의 부모님이 먼저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여러분이 구원을 받은 것 아닙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받아 의롭게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오직 믿음으로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어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들은, 마땅히 그 이후의 삶도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저주를 받습니다. 믿음이 적은 사람은 책망을 받습니다.

믿음이 큰 사람은 칭찬을 받고, 하나님이 그 믿음을 통하여 크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여러분이 마치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큰 믿음의 사람들처럼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소망교회 성도들은, 오직 믿음으로 사시고, 믿음에 굳게 선 자(2:7), 믿음이 부요한 자(2:5), 큰 믿음의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 땅에 펼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GS/ 세상 흔들리고(오직 믿음으로)

기도제목/ 오직 믿음으로 살게 해 주옵소서. 믿음으로 성숙한 믿음에 이르게 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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