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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8 08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이정현 목사 2021-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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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이사야40:27-31절 개역개정

27.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88일 사 40:27-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이사야서는 전체 66장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을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1-39장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너희들의 죄로 인하여 너희가 심판을 받는데, 그 심판은 너희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간다는 예언입니다.

 

그리고 40장에서 마지막 장까지는, 그런 심판 중에,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너희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달리말하면 바벨론의 포로 생활 중에서, 너희가 구원과 해방을 받아 귀환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러니까 뒷부분은, 하나님의 위로와 회복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서는 간단히, 앞부분은 죄로 인한 심판을 말하고, 뒷부분은 하나님의 위로와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하나로 묶어서 한마디로 말한다면, 심판 중에 하나님이 회복시키신다는 메시지입니다.

 

오늘 본문은 후반부의 시작이기 때문에, 회복과 구원에 대한 메시지의 서론에 해당 되는 부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사야 1-39장을 통하여, 죄로 인한 심판의 메시지를 실랄하게 들었습니다. 그들의 대표적인 죄는 위선, 탐욕 그리고 우상숭배였습니다. 이같은 죄는 북쪽 이스라엘 뿐만아니라, 남쪽 유다에게도 동일하게 있었습니다. 이같은 심각한 죄에 빠져있던 남북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여러 선지자들을 보내어, 죄를 책망하며 회개할 것을 권고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할 줄 모르고,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여 살다가, 결국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서 망하고 말았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이 계속하여 죄를 범하다가 망한 것을 보고도, 남 유다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여, 여전히 죄악 가운데 거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27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여기의 야곱이나 이스라엘은 동격으로, 개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 전체가 아우성치며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들을 깨닫지 못하고, 어리석게 하나님을 원망하는 조로, 불 신앙적인 불평만 하는 것입니다.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다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동안 걸어왔던 숱한 고난을, 하나님이 외면하셨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고난과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이 좀 돌보아 주시거나 굽어살펴 주셔야 하는데, 그러지를 아니하셨다는 표현입니다.

 

내 송사는 하나님에게서 벗어났다는 얘기는, 원한 썪인 일들을 하나님께 아뢰었을 때, 하나님께 받아들여지지 않고 멀리 지나가 버렸다는 의미입니다. 나의 억울함을 표출하였는데, 거기에 하나님이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결국 저들은 자기들의 고난과 억울함으로 인하여, 좌절하였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도와주시고 억울한 일을 풀어주셔야 되는데, 그러지를 못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당시의 사람들뿐만아니라, 오늘날의 사람들도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정은 여호와가 알지 못해, 우리의 원통함을 하나님이 돌아보시지 않아.’ 내 사정을 어떻게 하나님이 알아, 내 원통함을 어떻게 하나님이 해결해줘. 내 인생의 역경과 고난과 힘든 것과 원통함을, 하나님이 전혀 돌보시거나 굽어 살펴보시지 않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조금 살다 보면 세상에 쉬운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시험과 리포트에 질려서 빨리 졸업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학교를 졸업하니 직장문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렵게 취직은 했으나, 눈칫밥 먹는 것, 상사의 잔소리가 싫어서 직장을 뛰쳐나왔더니, 그래도 꼬박꼬박 월급 받았던 때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빨리 시집이나 갔으면 해서 일찌감치 결혼 했는데, 지독한 신랑 만나 말 못할 고생도 어지간히 했습니다.

 

사업을 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것 같습니다.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서 실패하기도 하고, 친구와 동업하다가 실패하기도 하고, 보증 잘 못 서서 망하기도 하고, 직원 잘못 써서 부도 나기도 하고, 대박을 꿈꾸다가 가까운 사람에게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잘 되다가 한순간 교만하여 다 말아먹기도 하였습니다. 나의 이런 사정을 누가 알아줍니까? 나의 억울한 일들을 누가 나서서 해결해 줍니까?

 

모든 영적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고뇌가 있습니다. 풀지 못한 숙제가 있습니다. 눈물을 주체할 수 없는데, 왜 이런 시련이 나에게 있는지, 뜻 모르는 눈물을 마음에 간직하며 살아갑니다. 다 아픔과 원통함과 억울함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그런 일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기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렵다고 말하고, 억울하다고 말하며, 원망과 불평만 하고 있을 것입니까?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말합니다. 곧 하나님의 능력과 전능성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선지자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고 말씀합니까? 하나님은 피곤하지 않으시고,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원통하다, 하나님도 내 사정 모른다, 죽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묻고 계십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이 말은 알고 있잖아, 들어 본 적이 있잖아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알면서 모르는 척, 들었으면서도 못 들은 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에 대하여 그렇게 시치미를 떼고 있다는 말입니까? “영원하신 하나님, 땅 끝까지 창조하신 하나님은, 피곤치도 아니하시며 곤비치도 아니하시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명철이 한이 없다는 진리입니다. 이런 하나님으로 여러분은 알고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이제 이후로는 알면서도 시치미 떼지 마세요, 그런 하나님으로 들었으면서 시치미 떼지마세요. 알고 들었으면서, ‘내 고통을 돌아보지 아니하셨어, 내 억울함을 해결해 주시지 않으셨어라고 하며, 원망불평하느냐는 것입니다.

 

사람은 유한합니다. 사람은 능력, 지식, 수명, 관용 등 모든 면에서 유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이 세상과 온 우주는 모두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창조하시고, 온 세계를 유지하시면서도 그분은 피곤을 모르는 분이십니다. 또한 그분의 명철은 한이 없으십니다. 그분의 지혜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를 어찌 다 측량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진정 영원하신 분, 땅끝까지 창조하신 분, 세상 만물을 운행하시면서 전혀 곤비치 않으신 분, 명철이 한이 없으신 분으로 모르고 믿지 못한다면, 참으로 불쌍한 인간이 되지만, 하나님이 이런분임을 알고 믿는다면, 참으로 의미 있고 보람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눈물이 앞을 가릴 때, 앞이 캄캄하여 한 걸음도 전진할 수 없을 때, 위급한 상황이어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 때, 죽고 싶은 생각 그 외에는 어떤 생각도 들지 않을 때, 여러분 하나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알고 계시는 하나님, 여러분의 귀에 익숙한 하나님, 그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분을 확실히 믿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일본에 파송된 한국인 선교사들에게, 26대의 자동차를 선물하신 은퇴 목사님의 설교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스즈끼라는 분이십니다. 그 분이 말씀하시기를 위급할 때, 하나님을 기억하고 첫 글자인 만 외쳐도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첫 번째 일은,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그분은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고,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가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도와 줄 마음은 분명히 있는 것 같은데, 종종 능력이 되지 않을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으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도울 마음도 있으시고, 우리를 도울 능력도 있으시다는 사실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시편 55, 56, 57편은 다윗의 시인데, 이 시들의 배경은 다윗이 사울 왕의 칼날을 피하여 도망 다닐 때입니다. 사울은 자기의 군사를 풀어서 다윗을 죽이려 했을 때, 다윗은 그 창과 칼을 피하여 이곳저곳으로 도망 다니게 됩니다. 광야로 도망갑니다. 동굴 속으로도 숨습니다. 심지어 적국인 블레셋으로도 피합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다윗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위협과 절망과 고통 중에 그는, 하나님의 도움을 간청하며,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그 와중에서도 감사하며 찬송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여전히 하나님을 환란 중에 만날 큰 도움으로, 나에게 모든 것을 이루어주실 분으로 신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다윗처럼, 여호와만이 환란 중에 만난 큰 도움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사야는 이어지는 말씀에서, 오직 여호와를 앙망함으로 새 힘을 얻으라고 하셨습니다.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지금은 소년이라도 피곤하고 곤비합니다. 장정이라도 넘어지고 자빠지는 시대입니다. 젊고 싱싱하고, 건강한 소녀들과 젊은이들도, 피곤해 하고 넘어지고 자빠지는 시대 속에 살고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 속에서라도,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습니다.

 

여기에 사용된 앙망이라는 단어는 참 좋은 말입니다. 원문의 뜻은, “하나님 안에 소망을 두고 기대를 가지고 바라보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소망하는 자’(who hope in the Lord)라고 번역을 하였습니다. 한글 공동번역에서는 하나님을 믿고 바라는 사람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 볼 때에, 앙망이라는 말은 우리의 모든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을 사모하며, 하나님의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 사용된 앙망이라는 단어는 배고픈 짐승들이 먹이를 찾기 위해 갈망한다는 뜻으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모하다는 말은 무엇인가 찾기 위해 간절히 소원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앙망해야 합니까? 무엇을 간절히 기대하며 바래야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시편 73편에,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25)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늘과 땅에서 내가 사모할 대상은 주님밖에 없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다른 성경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사모함과 동시에, 그분의 말씀을 사모한다는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주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규례를 사모한다, 주의 법도를 사모한다, 말씀을 사모한다, 계명을 사모한다, 주의 법을 사모한다는 말을 합니다. 다윗은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119:131)라고 했습니다. 너무 갈급히 찾은 나머지 내가 피곤하다고 했으며, 입을 열고 헐떡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헐떡이며 찾는, 갈망하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지혜를 사모하는 자는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29:3). 지혜를 사모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하나님을 즐겁게 해 드리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여러분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지혜를 사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마음의 정결을 사모해야 합니다. 잠언 2211절의 말씀에 보니까,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넷째, 선한 일을 사모해야 합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딤전 3:1). 여기서 말하는 선한 일은 무엇일까요? 성도들을 돌보며 그들을 섬기는 일을 말합니다. 결국 이것이 감독의 직분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감독이 하는 일을 사모하라는 뜻입니다. 달리 말해 감독의 직분을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다섯째, 은사를 사모해야 합니다. 로마서에서는 은사의 종류를 7가지, 즉 예언, 섬기는 일, 가르치는 일, 위로하는 일, 구제하는 일, 다스리는 일, 긍휼을 베푸는 일 등을 말합니다. 고린도전서와 중복되는 은사도 있지만, 이 같은 은사들을 사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이런 은사들을 이야기하면서,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하셨고, 또한 그러면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큰 은사를 사모하면 하나님이 제일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은사로 충만해서, 그 은사를 잘 활용함으로, 교회에 큰 유익을 끼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섯째,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재림을) 사모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마지막으로 이런 고백을 합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8) 바울은 의의 면류관 쓸 것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주실 뿐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11:16)고 말씀하셨고, 베드로도,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진다”(벧후 3:12)고 하였습니다.

 

일곱째, 병 고침을 사모해야 합니다. 38:9-14/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한 기도입니다. “14 나는 제비 같이, 학 같이 지저귀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내 눈이 쇠하도록 앙망하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압제를 받사오니 나의 중보가 되옵소서.” 히스기야가 슬피울며 눈이 쇠하도록 병고침을 사모함으로, 드디어 나음을 받고, 15년 더 생명을 연장받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우울증, 무기력증, 포기증, 좌절증에 빠진 사람이나, 가정의 경제적인 문제와 인간관계와 건강 때문에 지치고 쓰러져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혜를 사모하시고, 마음의 정결을 갈망하시고, 선한 일을 사모하시고,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시고, 그리스도의 재림과 병고침을 앙망하시기 바랍니다. 앙망하는 자가 살아납니다. 앙망하는 자가 고침을 받습니다. 앙망하는 자가 새로워집니다.

우리가 이런것들을 앙망하면 어떤 결과가 주어집니까?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1)새 힘을 주십니다. 이 새 힘은 피곤에 지쳐있는 사람들에게도 필요하고, 뿐만 아니라 낙심하고 좌절하여 주저앉아있는 사람에게도 필요합니다. 새 힘만 얻을 수 있다면, 우리의 어려운 환경은 문제가 안 됩니다. 능히 극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 힘을 얻으면 지치지 않습니다. 낙담하지 않습니다. 자빠지지 않습니다. 넘어지지 않습니다. 앙망하는 자가 새 힘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2)독수리처럼 올라갈 수 있습니다. 독수리는 새 중의 왕입니다. 독수리가 창공을 향해 솟아오르는데, m나 오를 것 같습니까? 최고로 높이 오르면 4000m까지 오를 수 있답니다. 백두산보다 더 높고, 구름보다 더 높은 것입니다. 독수리는 장애물이 있어도, 폭풍우와 구름을 뚫고 높이높이 솟아오를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간절히 찾는자는, 이처럼 그 신앙이 높이높이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3)달음박질 하여도 고단치 않고 걸어가도 피곤치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여호와를 앙망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그런 자에게 새 힘을 주셔서, 뛰어가도 곤비치 않고 걸어가도 피곤치 않는 것입니다. 넘어지고 자빠져도 다시 일어나게 됩니다. 다시 목표를 향해 뛰어가게 됩니다. 앙망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이런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고,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십니다. 우리의 연약한 부분을 강하게 해 주십니다.

 

결론

 

우리는 지금 코로나19, 세계 도처에서 발생한 폭우와 산불과 재난으로 인하여,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종교적으로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아갑니다.

건강이 좋지 않아 어려움과 고통 속에 지내는 분도 있습니다.

병원에 입원하여 있는 분, 항암치료를 받고있는 분, 수술을 하신 분,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분, 폐가 좋지 않아 호흡을 가쁘게 쉬는 분, 연로하여 기력이 쇠하신 분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 관계가 좋지 않아, 늘 반목과 다툼과 싸움과 불안함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은 왜 나를 도와주시지 않지?

왜 이런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않지?

왜 나의 이 고통을 외면하시지?

왜 모르는 채, 못 본 채 하시고 그냥 지나가시지?

 

그래서 실망과 낙심과 좌절과 불안과 염려 속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인간과 같지 않은 영원하신 분이고, 만물을 고유한 능력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아무리 세상 만물을 운영하셔도 곤비치 않는 분이시고, 명철이 한이 없으신 분이시고,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를 위하여 주신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앙망하시기 바랍니다. 더 간절히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사모함이 내 인생을 바꾸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면 새 힘을 주십니다. 앙망하면 독수리처럼 창공을 향하여 날아 오를 수 있습니다. 앙망하면 걸어가고 달려가도 피곤치 않습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새 힘을 얻어서, 다시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 주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기도제목/ 여호와를 앙망하므로 새 힘을 얻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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