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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8 15 우리가 무엇과 같이(어느정도)사모해야 하는가? 이정현 목사 2021-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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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107:9절 개역개정

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815, 107:9, 우리가 무엇처럼(어느 정도) 사모해야 하는가?

 

우리가 계속하여 사모함에 대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오늘은 지난주와 연결해서, 사모함에 대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지난주에는 이사야서의 말씀을 근거로, 지금은 젊은이들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는 세상이지만,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기만 하면 새 힘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독수리처럼 날개치며 올라갈 것이라고 하셨고, 또한 걸어가고 달려가도 피곤치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좀 더 확장해서,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사모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도, 간단히 살펴보았습니다. 성경을 근거로 우리가 사모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시편 기자 다윗이, ‘땅에서는 주밖에 사모할 자 없으며, 또한 그분의 말씀을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였다고 한 것처럼, 바라기는 우리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사모하되, 정말 헐떡이며 찾고 갈망하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63:1/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내가 물이 없어 황폐한 땅에서도(그만큼 살기가 어렵고 힘들어도), 주를 갈망해야 하겠습니다.

 

둘째, 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잘 섬기는 지혜는 우리 평생에 절대로 필요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너희에게 지혜가 부족하거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하셨으니, 이 약속을 그대로 믿고, 지혜를 사모함으로 간청하시기 바랍니다. 말세가 되면 선과 악을 구분하고, 진리와 비 진리를 분별하고, 참과 거짓을 구분하고,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을 구분하고, 성령님의 일과 마귀의 일을 잘 분별할 수 있는 영 분별의 지혜가 있어야,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마음의 정결을 사모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입고 다니는 옷이 깨끗하고, 여러분들의 몸과 외모도 깨끗해야 되지만, 그것들보다 더 정결해야 되는 것이 마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마음의 성결을 더 중요하게 보시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지저분하고 더러우면, 그 마음에 있는 것이, 입과 행동을 통해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악한 말이 나오고 음란한 말이 나오고, 세속적인 말이 나오고,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 나오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말이 나오고, 헐 뜯는 말이 나오고, 불평 불만하는 말이 나오고, 또한 마음에 계획하는 것이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도 외부에서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너희를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 마음에 있는 것이, 입을 통해 행동으로 나오는 것이 너희를 더럽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말과 행동은, 마음의 표출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도 우리도 마음의 깨끗함을 사모해야 합니다.

 

넷째, 선한 일을 사모해야 합니다. 여기서의 선한 일은(딤전 3:1), 성도들을 세워주고 돌보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비록 목사나 중직자들 뿐만아니라, 모든 성도들은 주님을 본받아 이웃 성도들을 섬기고 돌보고 세워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사들은 자기반 학생들을, 구역 인도자는 구역 식구들을 이처럼 섬기고 돌보는 것을 통해, 여러분의 선이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선한 일을 항상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다섯째, 은사를 사모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 나오는 9가지 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고치는 것, 능력 행함, 예언함, 영 분별함, 각종 방언 말함, 방언 통역입니다. 여기에 비해 로마서 12장에는 7가지 은사가 나옵니다. ‘예언, 섬기는 일, 가르치는 일, 위로하는 일, 구제하는 일, 다스리는 일, 긍휼을 베푸는 일등입니다.

 

중복되는 은사도 있지만, 그냥 합해서 말하면, 16가지의 은사가 두 성경에 기록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은사를 성령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에게 당신의 뜻대로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은사들을 사모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사모하며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 제일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성령님이 주시는 은사로 충만하여, 각자가 자기의 은사를 잘 사용함으로, 교회에 큰 덕을 끼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섯째,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재림을) 사모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장인데, 거기에 나타난 많은 성경 인물들은, 대부분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사모하였습니다. 그들은 환난과 핍박과 죽음이 와도, 자기들의 신앙을 굽히지 아니하고, 그 날을 바라보며 오로지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들이 굳게 믿었던 것은 곳,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이었습니다’(11:16). 또한 바울, 베드로, 대부분의 초대교회 신자들도,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사이는 주의 재림을 그처럼 사모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잘 살고 세상살이가 재미있으니까, 아무리 천국이 좋아도 이 세상에 더 살고 싶어 한답니다.

 

옛날 손양원 목사님은 주님을 고대하는 마음으로 이런 노래를 지어 불렀답니다.

1/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오시기만 고대합니다.

가실 때 다시 오마 하신 예수님/ 오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3/ 먼 하늘 이상한 구름만 떠도/ 행여나 내 주님 오시는가 해

머리 들고 멀리멀리 바라보는 맘/ 오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옛날 한국교회는 다 같이 이 노래를 부르며 주님오시기를 고대했는데(제가 어릴 때만 해도 이 찬송을 부르며 신앙생활을 했거든요), 지금은 살기가 너무 좋아져서, 이 세상 쾌락을 더 누리고 싶어 해서, 주님 오시는 것을 고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6가지를 사모하는 소망의 식구들이 되자고 했습니다. 다시 한번 더 말씀을 드립니다. 소망의 식구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 지혜, 성결, 선한 일, 은사, 재림을 간절히 앙망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앞에서 말씀드린 이런 것을(6가지) 사모해야 하는데, 어느 정도 사모해야 하는가, 무엇과 같이 사모해야 하는지를 알아 보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되 어느 정도 사모해야 하는가?

 

1. 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사모하듯 해야 합니다.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 갓난아이들이 배고프면 얼마나 애절하게 어머니의 젖을 찾습니까? 얼굴에 핏줄을 세우며 울고 조릅니다. 엄마의 젖을 그처럼 바라는 것입니다. 갓난 아이들이 어머니의 젖을 찾듯이, 우리도 순전하고 신령한 젖, 신령한 자양분,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갈급히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그처럼 사모하고 앙망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자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성도의 영적인 성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갓난 아이들처럼 간절히 사모해야, 그 영혼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교를 들을 때 귀는 쫑긋 새우고, 눈과 마음은 앞에 집중하고, 입맛을 다시면서 들어야 하는 것이고, 그래야 성도들의 영혼이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교회 다닌지 10년이 지나고, 집사가 되고 중직자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신앙이 성장하지 않았다면, 말씀에 대한 사모함을 체크 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신령한 젖을 사모하지 않고는, 신앙이 성장하지 않는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2.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42:1). 사슴은 열이 많은 동물이라, 물을 자주 먹으며 몸의 열을 식힌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땅은 우기에는 강수량이 조금 많지만(600mm), 건기에는 극심한 기갈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답니다. 그래서 우기 때는 그래도 괜찮지만, 건기 때에는 사슴이 견디기 어렵다는 것이고, 그래서 그들은 물을 찾아서 자주 이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건기 때에도 물이 있는 곳은, 사나운 맹수들이 이 사실을 알고, 이미 숲속에서 진을 치고 있다는 겁니다. 물을 찾다가 겨우 물 있는 곳을 찾아서, 그곳으로 사슴이 접근을 하면, 사자같은 맹수들이 지켜보고 있다가 적당한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같은 위험한 분위기를 직감하면서도, 사슴들은 목마른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물 가로 간다는 것입니다. 몸이 타는 듯한 갈증 때문에, 사슴은 위험을 무릎 쓰고 물가로 가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같은 상황을 염두에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사슴과 같이... 나도 그렇게 갈급히 찾는다고 말합니다.

 

시편 422절에도 비슷한 말씀이 나옵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여기의 영혼은 시편 기자의 생명, , 전 인격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전인격과 생명을 다하여, 하나님을 갈망한다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살아계시는 하나님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하나님은 죽은 우상들과 같지 아니하고, 또한 갈급한 심정으로 당신에게 나아오는 자에게, 풍성한 생명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시는 분이라는 의미가 담겨진 말씀입니다. 죽은 우상들 같지 아니하고, 자기를 찾는자들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실 하나님,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전심전력으로 갈망한다는 것입니다.

목마른 사슴이 너무 갈급하여, 위험을 무릎 쓰고 물가로 나오듯이, 또한 시편 기자는 그 이상인 전 인격적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갈급해 한다고 하였듯이, 이런 갈망함이 우리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3. 메마른 땅이 단비를 기다리듯 해야 합니다.

 

29:23/ “그들이 나 바라기를 비같이 하였으며 입을 벌리기를 늦은 비 기다리듯 하였으므로.” 몇 개월 몇 년 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땅들이 타 들어갑니다. 그런 땅들이 혹은 식물들이 입을 헐떡이며 단비를 기다리듯이,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을 갈망한다는 얘기입니다.

 

36개월 동안 이스라엘에 비가 오지 않았을 때, 엘리야가 하나님께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이 하늘에서 비를 주셔서 땅에 열매 맺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5:17-18). 이처럼 심하게 가물었을 때, 물 한방울 적시지 못하였던 그 메마른 땅, 그 땅이 36개월 동안 얼마나 갈급히 하늘의 비를 기다렸겠습니까? 그 타는 목마름, 기진 맥진한 그런 상태에서, 단비를 기다린 것처럼, 우리도 그처럼 하나님을 갈급해 해야 하는 것입니다.

 

4.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듯 해야 합니다.

 

130:6/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의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파수꾼의 간절한 바람은, 동이 틀 때 성취가 됩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을 간절히 바라는 성도들도 반드시 만족하게 될 것입니다. 간절히 사모하면 마침내 구원과 은혜의 자리에 이를 것입니다.

 

휴전선 근처에서 군인들이 밤새도록 보초를 서는데, 오후 5시 정도에 산에 올라가면, 밤을 홀딱 새고 아침에 내려옵니다. 그 파수꾼들이 아침을 얼마나 기다리는지, 밤새도록 경계근무를 서 본 사람들은 잘 알 것입니다. 그것처럼 신자들이 주님을 사모한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대통령이 연초에 각 부처를 순방하면서, 장관들로부터 보고를 받았습니다. 제가 사병으로써 국방부에 근무할 때, 두 분의 대통령이 연두순시 차 오셨습니다. 그 분이 오시기 한 달 전부터, 우리는 준비를 하고 예행 연습을 합니다. 내일 오전이 D-Day로 대통령이 오시는데, 그 전날 저녁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꼬박 12시간을, 작고 캄캄한 방에서 제가 근무를 했습니다. 장장 12시간 동안 제가 지켰던 것이, 대통령이 앉을 의자였습니다. 방안은 까만 커튼으로 둘려져 있었고, 가운데 놓여진 의자에는 까만 보로 쌓여져 있었습니다. 그 의자에는 노란 봉황이 그려진, 멋지고 위엄이 느껴지는 의자였습니다. 제가 살짝 앉아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왜 그렇게 안 가는지요. 30, 1시간이 그렇게 길었습니다. 졸다가 정신 차렸다가, 앉지도 못하고 서서 왔다 갔다 하며, 근무를 선 것입니다. 새벽이 다가오니까, 동터 오르는 아침이 그렇게 기다려질 수가 없었습니다. 야간 근무자(파수꾼)는 아침을 그처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갈망하자는 것입니다. 아니 시편 기자처럼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 하도다’-파수꾼보다 더 갈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앞에서 밝힌 이 같은 성경 말씀처럼, 우리가 이처럼 하나님을 사모하고 또 갈망하면 됩니다. 어린아이처럼, 목마른 사슴처럼, 메마른 땅처럼, 파수꾼처럼 하나님을 갈망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앙망함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만족, 여호와의 좋은 것으로 만족을 얻습니다.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사모하는 영혼과 주린 영혼은 같은 의미의 말이고, 또한 만족과 좋은 것으로 채워주신다는 말도 같은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사모하는 영혼이 만족을 얻는다는 말을 두 번 반복함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모하는 영혼은 확실히, 반드시. 만족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시는 주어가 그가인데, 이는 하나님 여호와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모하는 영혼들에게 반드시 좋은 것으로 채워주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의 만족을 주다는 말은 목마른 영혼이 마음껏 마시도록 하신다는 뜻이고, 채우다는 말은 배고픈 사람들이 좋은 것을 마음껏 먹어 배가 부르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모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만족할 때까지, 우리의 필요를 넘치도록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갈급한 영혼이 만족을 얻는 것입니다.

봄에 제비가 자기 새끼에게 먹이를 줄 때를 종종 봅니다. 제비는 보통 3개에서 6개 정도 알을 낳습니다. 약 보름만에 알이 부화하는데, 그 때부터 부모 제비는 번갈아 가며 열심히 곤충을 잡아다가 새끼에게 먹입니다. 그런데 어미가 먹이를 줄 때, 어떤 순서대로 줄까요? 태어난 순서대로 줄까요? 오른쪽에 있는 놈부터 줄까요? 아니면 그 반대 순으로 줄까요? 아닙니다. 순서대로는 순서대로인데, 목을 제일 길게 빼고 제일 크게 입을 벌리고 큰 소리로 짹짹거리며 어미에게 덤비는 놈에게 먹이를 줍니다. 무슨 말이지요? 갈급히 찾는 새가 먹이를 먼저 먹는다는 말입니다. 제일 배가 고픈 놈이, 입을 크게 벌리고 큰소리를 지르며, 먹이를 달라는 놈이, 육체적 만족을 얻는 것입니다. 먹이에 대한 갈급한 놈이 먹이를 먹고, 배부름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적, 정욕적인 것으로 만족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좋은 것으로 우리를 만족케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좋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닐 수 있으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은, 우리에게 언제나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 그것으로 우리의 영혼을 만족케 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늘의 신령한 것과, 땅의 기름진 것으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들은 마치 바닷물과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더 갈증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생수처럼 우리를 만족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좋은 것으로 우리를 만족케 해 주실 때, 우리에게는 더 이상 필요한 게 없는 것입니다. 더 이상 요구할 게 없는 것입니다. 그처럼 좋은 것은, 우리를 완전히 만족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피곤해 하느냐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박윤선 박사님이 계셨는데,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앞도 보지 말라 갈 길이 너무 멀어서 낙심하기 쉽고, 옆도 보지 말라 갈래길이 너무 많아 미혹을 받기 쉬우며, 뒤도 돌아보지 말라 지나온 과거가 부끄러워 절망하기 쉬우니, 위에 계신 예수님만 바라보라.” 앞뒤 좌우를 기웃기웃하지 말고, 예수님만 바라보자는 교훈입니다.

 

피곤에 지쳐, 힘들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이여, 하나님만 바라보시고 사시기 바랍니다. 여호와를 앙망할 때, 새 힘이 주어집니다. 여호와를 앙망할 때, 치유가 있습니다. 회복이 있습니다. 재기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앙망할 때, 독수리처럼 비상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앙망할 때, 위로가 있습니다. 여호와를 앙망할 때, 자유와 기쁨이 있습니다. 여호와를 앙망할 때, 피곤치 않습니다.이 모든 말씀을 한마디로 묶으면, 이 말이 됩니다. “여호와를 앙망할 때, 내 영혼이 좋은 것으로 만족을 얻습니다.”

 

 

 

 

찬송/ 목 마른 사슴 시냇물을 찾아

기도제목/ 우리가 마치 어린아이처럼, 목마른 사슴처럼, 메마른 땅처럼, 파수꾼처럼 하나님을 갈망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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