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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7 18 예수님의 수난 예고와 기본 제자도 이정현 목사 2021-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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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16:21-28절 개역개정

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2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16:21-28, 예수님의 수난 예고와 기본 제자도

 

7월의 주제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제자도 회복입니다. 그래서 지난 두 주간에 걸쳐서 권호 교수님과 오현철 교수님을 통하여 정체성 회복에 관한 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도 비록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생생한 유튜브 실시간 영상을 통하여,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며,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번주와 다음 주에는, 제자도 회복에 대한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제자도란 무엇을 말할까요? 제자도란,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에게, 제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 도리를 말합니다. 그래서 혹자는 제자도를 예수님이 살아가신 그 길을 그대로 걸어가는 것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이 제자도에 관하여 전체를 다 말할 수는 없고, 오늘은 아주 기본적인 몇 가지 사항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 앞부분에 보시면, 주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질문을 하셨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멋지고 훌륭한 신앙 고백을 했습니다.

 

베드로의 이 신앙고백이 있고 난 후에, 주님이 드디어 자신의 수난에 대하여 예고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21절을 보겠습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21).

주님이 스스로 예루살렘에 올라간다고 하신 것은,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능동적으로 그곳에 가겠다는 의지가 담긴 말씀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고난은 수동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능동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언급된 장로들, 대제사장들, 서기관들은 유대 최고 의결기구인 산헤드린 공회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매우 높은 직급의 사람들입니다. 이들로부터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들이 주님을 죽인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정치, 사회, 종교계 전체가 예수님을 배격할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주님이 자신에 관해 예고하신 내용은, 세 단어로 말하면 고난, 죽음, 부활입니다. 이것은 복음의 핵심된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핵심된 사역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백성 삼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3일 만에 부활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의 비로소 나타내셨다는 것은, 이제부터 그가 공표하기 시작하셨다는 말입니다. 자신의 고난과 부활을 이제부터 나타내기를 시작하셨다는 뜻입니다. 지금부터 주님은 자신의 죽음과, 죽음 이후의 부활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이때 베드로의 반응을 보시기 바랍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22).

 

베드로는 조금 전에 주님에 관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사람입니다. 그런 위대한 고백을 한 베드로가, 이제는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며 말합니다. 여기의 붙들다라는 말은, ‘옆으로 데려오다라는 뜻이고, ‘항변하다는 말은 꾸짖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주님을 자기 곁으로 데리고 와서, 마구 꾸짖으며 설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지금 주님 앞에서, 건방지며 황당한 말과 행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책망조로 예수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그 같은 일이 주님에게 결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렇게 만류하는 것입니다. 미래의 일을 반드시 방지하겠다는 의도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에게 고난과 죽음이 닥치지 않게 막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인간적인 반응이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구속 사역의 의미와, 메시야 왕국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혈기 방자한 인간의 감정을 내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23).

 

주님이 베드로보고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조금 전에는 베드로 보고 복되도다라고 하셨고, 천국 열쇠를 주시기도 하셨는데, 여기서는 사탄이라고 하시며,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사탄은 대적자라는 뜻입니다. 사탄은 항상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는 놈입니다. 처음부터 거짓말하고 속이는 놈입니다.

주님이 베드로보고 사탄이라고 하신 것은, 베드로 자신이 사탄이라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사탄에게 이용 받은 도구가 되어 예수를 넘어뜨리기 위하여 가까이 왔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와같이 사단은 살아있는 생물, 특히 사람들을 매개체로 자신이 목적하는 바에 접근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3:1-5, 13:27, 5:3, 12:9). 아담과 하와를 미혹하기 위하여 사단이 뱀 속에서 뱀을 통하여 역사하였고, 사탄은 가룟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고, 사탄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마음에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게 하였다고 했는데, 결국 사탄은 사람을 이용하여 천하를 미혹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베드로도 사탄의 도구로 예수님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한편 내 뒤로 물러가라는 이 꾸짖음은, 단순히 사단의 도구가 된 베드로가, 예수의 시야에서 사라지라는 의미가 아니라, 너는 내 앞길에 놓인 장애물이므로, 그 길에서 즉시 비켜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는 베드로로 하여금, 나의 길에 장애물이 되지 말고, 제자의 신분으로 돌아가라는 요구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사탄의 도구가 되지 말고, 속히 제자의 신분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제자란 따르는 존재이고 순종하는 존재이지, 주의 뜻을 거스리고, 스승의 길을 좌지우지하거나 이끄는 자는 아닌 것입니다(1:17, 20, 8:34).

이어서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고 하셨는데, 이를 직역하면 너는 나에게 장애물(방해물)이다’(you are an offense to me)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사탄이 예수를 결코 넘어뜨리게 할 수는 없으나, 예수의 사역을 방해하고 훼방하기 위해서, 베드로를 통해서 교묘하게 덫을 놓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사실 조금 전만 해도,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반석이라 부르셨으나, 이제 사단의 도구로 전락한 지금은, 그를 다른 종류의 반석’(장애물)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벧전 2:8). 앞의 반석은 주님에 대한 신앙고백의 좋은 의미로 사용이 되었지만, 여기서는, 사탄의 도구인 장애물의 의미로 나쁘게 사용이 된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제자이지, 예수님을 가르치는 자가 아닙니다. 따르는 자이지 자기가 주도적으로 길을 만들어가는 자가 아닌 것입니다. 이런식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주님을 넘어지게 할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주님이 고난, 죽음을 통과하여 부활에 이르는 것이나, 사람의 일은 고난과 죽음 없는 영광을 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고난과 죽음을 통하여 영광과 부활에 이러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면, 고난 없이 영광에 이르려고 하는 것, 십자가를 지지 않고 부활에 이르려고 하는 것은 사람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사람의 일을 생각했지만, 주님은 고난과 죽음을 통한 부활, 즉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이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과 죽은 자 가운데서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예고하셨고, 거기에 대한 베드로의 반응을 볼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비록 위대한 고백을 하기는 했지만, 아직 온전하지 못하여 여기서는 사탄이라는 말을 들으며,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고 책망을 받았습니다.

 

24절 이하에서는 제자도의 기본 원리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중요한 제자도는, ‘자기 부인입니다. 이것은 육체의 죄된 유혹과 의지를 거절하라는 뜻입니다. 자기에게는 이런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무엇이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 즉 본성적인 욕정, 즐거움과 이득, 명예와 혈육과 목숨까지도 포기하고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는 그 어떤 것이든 간에, 그것들을 포기하고 버리고 죽이는 것을 자기 부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더 간단히 말하면 주님의 말씀에, 우리의 옛사람을 철저히 굴복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 부인과 반대되는 말이 무엇일까요? 남의 부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부인의 반대는 남의 부인이 아니라, ‘자기주장입니다.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 화합하지를 잘 못합니다. 자기주장이 강하면 부러지거나 꺾일 수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진리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자기주장을 가질 수 있지만, 진리가 아니면 너무 강한 자기주장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교회에서 진리가 아닌 것을 가지고 절대로 해야된다, 절대로 하지 말아야 된다고 하면, 교회의 화합은 깨지고 마는 것입니다. 자기주장이 관철되지 않는다고, 자기를 무시했다, 나는 더이상 그 일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분명 잘 못된 것입니다. 혹자는 강한 자기주장을 자기 절대라는 말을 쓰면서, 그것은 곧 우상숭배와 같다는 과격한 말로 표현을 했습니다. 그처럼 과한 자기주장은 심각한 결과를 낳는다는 말일 것입니다. 훗날 베드로는 다른 사람은 다 주를 부인한다 할지라도, 나는 끝까지 주님을 따르겠다고 호언장담했다가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자기주장을 하지 말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자기를 부인했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함으로, 오히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자기부인이 없으면 주님을 부인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자기주장만 하고 자기 부인이 없으면, 주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소망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라.’ 본문을 통하여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첫 번째 제자도는 자기부인임을 잊지 말고, 매일 매 순간마다, 언제 어디에서든지 자기주장이 아닌 자기를 부인하며, 그리스도의 참 제자답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십자가는 고난이요, 아픔이요, 수치요, 죽음을 의미합니다. 로마 사람들은 가장 극악 무도한 죄인을 십자가에 처형시켰습니다. 로마 사람들은 죄인을 십자가에 처형시킴으로 일벌백계의 효과를 얻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은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자기의 죄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한 대속적 희생제물로써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아버지의 뜻과 방법이 그것이었기 때문에 주님이 골고다의 그 길을 가신 것입니다. 앞부분에서도 살펴 본 것처럼,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서, 자기의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고 살을 찢기신 것은, 인류 구원을 위한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아셨던 주님은, 이제 그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가시겠다고 선언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이 자기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고난과 죽음의 길임을 제자들에게 선포하시면서, 너희들도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것이,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두 번째 제자도입니다.

 

고난과 죽음을 각오하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다가 시련과 환난과 핍박을 당하여도, 기쁨과 자원하는 마음으로 짊어지고 가라는 의미입니다. 사실 24절의 마지막 구절인 나를 따를 것이니라는 말이, 현재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한 두번 따르다가 그만 두거나, 억지로 따르거나, 가끔씩 주님을 따르는 것을 말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주를 따르라는 명령입니다. 전심전력으로, 부단한 노력과 희생과 헌신으로, 계속 주님을 좇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 일은 한순간만 그리하는 게 아니라, 일평생 동안 전심전력하여 그 일을 하라는 말입니다. 마치 주님이 아버지의 뜻으로 여겼던 이 사항을, 너희도 그렇게 여기며 실행하라는 권고의 말씀입니다. 내가 가는 이 길을, 너희도 걸으며 끝까지 나를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세상으로부터 여러 가지 고난과 핍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그때부터 탄탄대로가 아니라, 오히려 믿음 때문에 애매한 고난을 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과 복음을 위해 헌신하고자 할 때, 그런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환란과 핍박은 더 심한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철저하게 신앙생활 하고, 좀 더 열정적인 마음으로 주의 일에 앞장서는 사람들에게, 어려움과 고난과 핍박이 더 많은 것 같더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좀 더 잘 믿어보고 싶고, 더 철저하게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고,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며, 교회 일에 헌신 충성하고 싶다면, 여러분에게 다가올 고난도 각오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살다가 받는 모든 고난과 핍박과 어려움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무겁고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십자가라 할지라도, 우리는 이것을 벗어 던지지 말고,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주님 가신 그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도 고전적인 영화 쿼바디스를 다 보셨을 줄 앎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네로 황제는, 소위 예술가를 자처하는 사람으로, 자신이 살고있는 로마시가 별로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거나 상관없이, 로마를 다시 만들기 위해, 일부러 불을 질렀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사람들의 비난과 원망이 쏟아지자, 당황한 네로는 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기독교인들에게 방화혐의를 뒤집어씌웠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기독교인들이 항상 불로 이 세상이 심판받는다고 떠들지 않았느냐며 결국 불을 지른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임에 틀림없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렸습니다. 그리하여 수만 명의 기독교인들이 원형극장에서 억울하게 처형당했습니다. 불을 지른 사람은 네로였는데, 피해는 기독교인들이 당하였습니다.


이때 베드로도 사람들과 함께 일단 위기를 잠시라도 피하기 위해 급히 로마를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걷다가, 예수님이 로마를 향해 가시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깜짝 놀란 베드로는 쿼바디스 도미네,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주님께서 나는 네가 버리고 나온 로마로 가서,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려고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이 말을 듣고, 다시 발걸음을 로마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 십자가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러나 감히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죽을 수 없다고 하며,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고 합니다.

 

만약 이 영화 속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베드로는 처음에는 고난과 핍박을 조금 피해보려 하였으나, 주님을 만나고 난 후에, 다시 복음 때문에 고난받는 현장 속에서 핍박을 받으면서, 복음 전파에 헌신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분명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주님이 가신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간 것입니다.

 

베드로뿐만아니라 나중에 사도가 되었던 바울도 그랬습니다. 그는 처음에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최고의 학문을 공부했기 때문에 출세가 보장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가 가는 곳곳마다 고난과 핍박과 환란을 당하였습니다. 매를 심하게 맞기도 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옥에 갇히고 생명의 위협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이 가신 그 길을 좇아갔습니다. 결국 그도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습니다.

 

바울은 사역을 하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그리고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2:20).

 

바울은 자기부정과 함께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위하여 믿음으로 살아가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베드로와 바울처럼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팽개치지 말고, 끝까지 그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라야 하겠습니다. 십자가가 무겁고 고통스럽다고 그것을 내려 놓으면 발걸음은 가벼울 수 있겠으나, 그 길이 영광스러운 길은 될 수 없으며, 또한 영생을 얻거나 의의 면류관을 받아 쓸 수 있는 결과는 되지 못할 것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는 어떤 고난이 있어도 절대로 벗어던지면 안됩니다.

 

어느 시골에 사는 여 집사님이, 너무나 힘들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시골 집으로 시집을 가서 아이가 둘이고 또한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었습니다. 몇 개월 전에 시부가 돌아가셨고 시모님은 지금 건강이 좋지 않은데 특별히 치매 초기 증세라고 합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둘째 아이가 사시인데,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쉽게 수술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있습니다. 그리고 5식구 가운데 오로지 이 집사님 혼자만 예수를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육적으로 영적으로 경제적으로 얼마나 힘든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겠습니까?

 

이 집사님은 늘 기도할 때마다 주님! 너무 힘듭니다. 너무 힘듭니다라고 부르짖었습니다. 한 번은 꿈을 꾸었는데, 자신이 커다란 십자가를 질질 끌고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집사님은 예수님께 이런 부탁을 했습니다. “주님! 주님은 목수시잖아요. 이 십자가가 너무 크고 무거워요. 조금만 잘라주세요.” 주님께서 빙그레 웃으시면서 잘라주셨습니다. 그래도 무거웠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주님께 더 잘라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집사님이 잘라달라는 대로 말없이 다 잘라주셨습니다. 어느덧 천국에 다다랐습니다.


이 집사님이 천국에 가서 보니까, 각 사람이 모두 십자가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런데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십자가 크기에 따라서, 상을 받게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집사님의 십자가는 손안에 들어올 정도로, 매우 작은 십자가였습니다.

그 순간 이 집사님은 깜짝 놀라 잠을 깼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중에 이 말씀이 떠 올랐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좇을 것이니라.” 그때 이 집사님은 울면서, ‘예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저에게 주신 십자가를 묵묵히 기도하면서 기쁨으로 잘 감당해 나가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때부터 이 집사님은 십자가를 무겁다, 어렵다, 힘들다라고만 받아들이지 않고, 기도하면서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함으로 자기 십자가를 붙들고 살았다고 합니다.

다음 두 구절의 말씀은 이전의 구절을 더욱더 강화시키는 말씀으로 보입니다.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주님의 이 말씀은 육적 생명에 애착을 가지고 그것만 지키려고 하는 자는 끝내는 영적 목숨까지 잃게 되나, 주님의 참 제자로 자신의 육적 생명을 주를 위해 바치고자 하는 헌신 된 마음으로 살아가면 오히려 그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도 주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역설적인 교훈인 것입니다.

 

두 구절에 잃으면의 주체가 목숨인데 이 동사는 능동태입니다. 다시 말해 어쩔 수 없이 목숨을 잃는 것을 말하지 않고, 적극적인 헌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적극적이고 온전한 헌신을 통한 희생을 말함으로, 능동적인 잃음임에 분명 합니다. 그럴 때 그 육체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는 것은, 자발적인 노력으로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얻어놓고,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천하를 얻는 것은 인력으로 가능하나, 목숨은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목숨을 위한 대가로 무엇을 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인간의 최고의 가치는, 자기 생명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귀중하고 가치 있는 생명을, 주를 위해 기꺼이 바칠 것을 촉구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의 삶이 이래야 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을 마치시면서 재림과 심판에 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2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갑자기 주님의 재림을 말씀하시면서 그 때에, 자기를 부인하며 나를 위해 목숨을 버린자들에게는 내가 그 행한 대로 갚아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2:6에서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라고 하셨고, 고린도전서 3:8에서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 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 하셨으며, 고린도후서 5:10에서는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분명 그 날에 자기의 행위에 따라서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베드로가 실패했던 것을 거울삼아, 사람의 일을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일상 중에 항상 이것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사람의 일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일인가? 사람의 일은 죽이고 포기하고 버리고, 하나님의 일에 집중하고 충성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기본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진짜 그리스도인으로 살려면, 자기 부인과 고난과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잃으면 얻지만, 얻으려고 하면 잃고 마는 것입니다. 헌신과 충성을 다하면 하나님이 얻게 하시지만, 자기 욕심 챙기는 사람은 결국 잃고 만다는 교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다운 삶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제자도를 가슴 깊이 새기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도록 합시다.

 

 

 

 

찬송/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기도 제목/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제자도를 회복하게 도와 주옵소서.

자기부정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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