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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7 04 진짜 나를 찾다 권호 목사 2021-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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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3:16-17절 개역개정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진짜 나를 찾다

3:16,17

내 생각의 소리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우리는 어떤 소리를 듣습니다. 이 소리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평가해보고, 내가 누구인지 생각해봅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소리를 듣고 계신지요.

제가 뉴스를 보다가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투신자살한 한 청년에 대한 뉴스였습니다. 이 청년은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투신 당일 그는 소주병 절반의 술을 마시고, 유서를 남긴 채 아파트 20층에서 뛰어 내렸습니다. 유서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나는 열등감 덩어리다. 내 인생은 쓰레기다. 주위 시선이 신경 쓰여서 보는 공무원시험... 외롭다.” 왜 이 청년은 이런 안타까운 선택을 했을까 생각해봅니다. 그가 사회진출을 위해 중요한 시험을 준비하면서 여러 가지 한계에 부딪쳐 절망했기 때문입니다. 쓰디쓴 절망 속에서 듣지 말아야 할 자기 생각의 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나는 열등감 덩어리, 쓰레기 인생이야. 외롭다. 뛰어내리자. 뛰어내리면 지긋지긋한 모든 것이 끝난다.’ 자기 생각으로부터 나오는 이 절망의 소리를 듣고 그는 삶을 마감했습니다. 투신 전에 그가 남긴 반쯤 비운 소주병이 그 청년의 가련한 인생 같아서 뉴스를 보며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

마태복음 3장에는 예수님이 30년의 개인적 삶을 마치시고 메시야로서 공적 사역을 시작하는 장면이 나옵니다(3:13-17). 예수님은 의를 이루시기 위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요단강에 오셨습니다. 겸손한 예수님의 모습이 보입니다. 겸손히 세례를 받으시지만 공적 사역을 시작하는 중요한 시점이었습니다.

자녀가 중요한 일을 시작할 때 부모는 자녀에게 무엇인가를 선물해줍니다. 제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어머니는 모아두신 돈으로 제게 멋진 옷 한 벌을 사주셨습니다. 그 옷을 입고 중요한 인생의 시점을 멋지게 시작하라고 격려해주신 것이죠. 공적 사역이 시작되는 이 중요한 시점에 하나님이 예수님께 무엇을 주실지 궁금합니다.

본문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습니다. 신비롭고 누구나 주목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입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시자 하늘이 열렸습니다. 성령의 임재가 시각화 되어 비둘기처럼 예수님께 임했습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3:16)

이 구절의 헬라어 원문에는 이두라는 말이 중간에 있습니다. 이 단어는 보통 보라’(look, behold)라고 번역되는데 극적인 순간, 청중이 집중해야 할 시점을 알려줍니다. 이 단어를 넣어서 번역하면 분위기가 더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습니다. 보십시오! 하늘이 열렸습니다.” 본문이 이렇게 우리를 집중시키며 하나님이 주실 것을 기대하게 합니다.

신기한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께 주신 것은 눈에 보이는 대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메시야 사역을 위한 충분한 돈이 아니었습니다. 로마 군인들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무기도 아니었습니다. 힘들고 바쁜 사역도 거뜬히 소화할 수 있는 건강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짧은 소리’(voice)를 예수님께 주셨습니다. 이 소리는 하늘로부터 왔습니다. 분명 하나님이 주신 소리였습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3:17)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이 공적 사역을 시작하는 중요한 시점에서 예수님께 주신 것은 소리였습니다. 이 소리를 통해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소리를 통해 예수님의 진정한 정체성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공적 사역을 시작하는 중요한 시점에서 예수님께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다시 들리는 소리

주목할 것은 같은 소리가 마태복음 17장에 또 등장합니다. 3장이 예수님이 공적 사역을 시작하는 중요한 시점이라면, 17장은 십자의 대속사역을 앞둔 중요한 시점입니다. 이제 곧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실 것입니다. 그 전에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이번에도 신비롭고 주목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조성됩니다. 예수님의 얼굴이 해 같이 빛났습니다. 옷이 빛과 같이 하얗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구약의 대표적 인물인 모세와 엘리야와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이 광경을 본 베드로가 놀라며 흥분했습니다. 베드로는 당장 초막 셋을 짓고 여기에 머물자고 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빛난 구름이 제자들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 구절에도 앞에서 살펴본 헬라어 강조어 이두가 등장합니다. “(보라)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17:5)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십자가 사역을 앞두고 하나님이 주신 것도 역시 소리였습니다. 이 소리를 통해 하나님은 다시 예수님 자신이 누구신지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인생에서 중요한 두 시점에 하나님은 소리를 주셨습니다. 한번은 메시야로서 공적인 사역을 시작할 때였고, 다른 한번은 십자가 대속 사역을 앞둔 때였습니다. 마태복음은 이 소리를 예수님의 사역 전반부와 후반부에 배치하는 인클루지오(inclusio) 기법을 통해 이 소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소리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확신하고 마지막까지 기억하셨습니다. 나사렛 출신이라며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의 소리에 예수님은 신경 쓰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을 저주하며 등을 돌렸던 세상의 소리도 듣지 않으셨습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 하나님이 주신 소리만을 들었습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

 

상처와 눈물을 만드는 소리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잘못된 소리를 들으면 영과 몸이 죽습니다. 사람들의 말이 유리 조각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날카로운 못처럼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이런 소리에 자꾸 노출되면 열등감이 심해집니다. 얼굴이 어두워지고 잔뜩 찌푸린 인상이 됩니다. 조금만 더 상처를 받으면 사람들의 소리뿐만 아니라 내가 속한 사회의 냉정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너는 이 사회에 불필요한 인생이야. 너와 함께 있고 싶지 않아.”

가난, 부끄러운 학업, 심한 열등감과 외모의 문제는 제게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 문제로 듣게 되는 내 생각의 소리, 사람들의 소리, 사회의 소리는 제게 더 큰 고통을 주었습니다. 제가 당시 내릴 수 있었던 선택은 무엇일까요. 죽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삶을 끝내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여기서 끝내자.’

저는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한참 즐거워야 할 어린 청소년이 이런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최근 자료를 보면 우리 청소년들 10명 중 2명이 자살을 생각했던 적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청소년 사망 원인의 1순위가 자살입니다. 청소년의 상황만 심각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고령자 자살률이 OECD국가 중 최고로 조사되었습니다. 어린 사람이던 나이든 사람이던 잘못된 소리를 들으며 몸과 영혼에 상처가 납니다. 그 상처가 계속 쌓이면 죽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진짜 나를 알려준 소리

희망을 접고 죽음을 생각했던 그 암울한 시기에 친구 한 명이 저를 교회 중고등부 수련회에 초대했습니다. 그날 저녁이었습니다. 도대체 이해 안 되는 설교를 참고 들어야 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 들었던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회개하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길 원하십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열이 확 올라왔습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반감이 솟았습니다. ‘하나님이 진짜 계셔? 그런데 왜 이렇게 세상이 불공평해? 내가 가난하고 공부 못한다고 사람들이 왜 나를 이렇게 서럽게 만들어. 하나님이 어디 있어, 거짓말이지. 하나님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화가 나서 속으로 씩씩 거리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제가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은혜를 경험한 것입니다. 저는 두 손을 모으고 어설프지만 솔직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이 계시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계신다면 제가 만날 수 있게 해주세요.” 순간 제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마음속에 드는 생각 같으나 분명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저는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떨립니다. “권호야, 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너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한다.”

순간 눈물이 터졌습니다. 저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있는 모습 그대로사랑한다고 하셨습니다. 가난해도 괜찮고, 공부를 못해도 상관없으며, 열등감이 심하고 외모가 못났어도 하나님은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부모님에게도 사랑한단 말을 듣지 못하고 자란 저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저를 사랑하신다고 하니, 그것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한다고 하시니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릅니다.

세밀하지만 조용하게 들리는 이 소리를 듣고 저는 바닥에 엎드렸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감격이 밀려오면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시간을 넘게 바닥에 엎드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울고 또 울며 사람들이 박아 두었던 유리조각 같은 말들과 못같이 아픈 소리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간절한 기도를 마치고 다시 조용히 무릎을 꿇었습니다.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몸은 눈물과 콧물과 땀으로 젖었습니다. 이 영적인 고투를 마치고 저는 마침내 확신했습니다. ‘나는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다. 더 이상 가난과 열등감에 시달리며 비굴하게 사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분이 나를 사랑하신다.’

그날 밤 하나님께서 주신 그 소리를 듣고 저는 내가 진짜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청소년과 청년기를 거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거뜬히 이길 수 있었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내가 누구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소리를 들을 것인가?

우리 모두는 어떤 소리를 들으며 살아갑니다. 그 소리로 나를 평가하고, 내가 누구인지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계속 자기 생각의 소리를 들으며 살아갑니다. 조금만 잘 되면 역시 나다라는 교만한 생각의 소리에 취합니다. 조금만 안 되면 역시 난 안되라는 실망스런 생각의 소리에 꺾입니다. 이렇게 자기 생각의 소리를 듣고 살아가는 분들은 흔들리는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어떤 분들은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의 소리를 들으며 살아갑니다. 사람들의 칭찬 소리를 듣고 싶어서 그 기준에 맞추어 삽니다. 때론 사람들이 평가하는 소리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분노하기도 합니다. 많은 분들이 귀가 얇아서 이 사람 저 사람의 소리에 휘청거립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살아가는 분들은 의존적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어떤 분들은 세상의 소리를 들으며 살아갑니다. 자기 생각의 소리에 혼란을 겪고, 사람들의 소리에 휘청거리고 나면 세상의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세상은 종종 대학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좋은 직장에만 들어가면 된다고 말합니다. 다 필요 없고, 그냥 돈만 있으면 된다고 말합니다. 만약 세상이 최고라고 말하는 이런 것들을 갖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좋은 대학과 직장에 들어가지 못하면 우리는 삼류인생이 되는 건가요? 좋은 대학, 안정적인 직장, 돈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삶의 본질이 아니라 외형만을 강조하는 세상의 소리가 틀렸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소리를 들으며 살아가는 분들은 껍데기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속에 넣어주시는 그분의 소리는 이런 소리들과 다릅니다. 그 분의 소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가르쳐주고, 우리를 회복시켜 세우는 소리입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과 딸이다.” “네가 아무리 죄를 짓고 도망가도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는다.” “애야 이제 돌이키거라. 너는 그렇게 살 사람이 아니다.”

우리에게 들려오는 하나님의 소리는 마음 깊은 곳을 울리며 영혼을 적십니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진짜 내가 누구인지 다시 깨닫게 합니다. 이 소리를 듣고 사시는 분들은 하나님 자녀의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사단이 창세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를 좌절시키고 파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속에 주시는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짜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게 합니다. 그렇게만 하면 사단은 우리가 어떤 좋은 재능을 가졌던지 다 잃게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긍정적인 마음을 가졌어도 절망시킬 수 있습니다. 신앙까지 포기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영혼과 몸이 죽은 지경까지 이르게 할 수 있습니다.

 

겸손히 엎드려 듣다

여러분이 인생의 중요한 시점에 있다면 지금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진짜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이 주시는 소리를 들어야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어떤 소리를 듣고 계신지 살펴보십시오. 그 소리가 여러분을 누구라고 말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은 젊은 시절에 목수로 살았지만 자신을 목수로만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겸손하고 진실하게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를 통해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이 확신을 가지고 메시야로서의 공적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십자가 대속의 사역을 앞두고 예수님은 동일한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후에 십자가에 달려 사람들이 저주하고 조롱할 때도 예수님은 전혀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기억하며 죽음으로 대속의 사명을 완수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도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너무 자신의 생각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소리에도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마십시오. 너무 크게 세상의 소리가 들린다면 내 인생의 채널에서 그것을 잠시 꺼두십시오. 이런 소리로는 진짜 내가 누구일지 알 수 없습니다.

세례를 받기 위해 요단강으로 나오시는 겸손한 예수님처럼 지금 하나님께 나오십시오. 조용한 기도로, 때론 간절한 기도로 하나님 앞에 엎드리십시오. 내 생각과 경험을 내려놓고 성경 앞에 차분히 앉아 묵상하십시오. 어떤 순간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그 소리가 알려주는 여러분이 진짜 여러분입니다. 기대하십시오. 곧 듣고 꼭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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