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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6 27 복음에 대한 바울의 열정 이정현 목사 2021-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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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고린도후서11:1-3절 개역개정

1.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

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경본문] 사도행전20:23-24절 개역개정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고후 11:1-3, 20:23-24, 복음에 대한 바울의 열정

 

어느 분의 글을 보니까, 다음과 같은 감동스러운 예화가 있어서 소개를 하겠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라톤 선수가 있습니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아베베라는 선수입니다. 이 분이 1960년 로마올림픽 때에 우승을 했는데 맨발로 뛰었습니다. 요즘은 스포츠 공학에 근거하여 운동화도 그 선수의 발에 맞추어서 특수하게 제작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어느 마라톤 선수를 위해서 모 회사에서 10만 불(12천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서 특별한 운동화를 만들었습니다. 이 아베베 선수는 운동화도 없이, 맨발로 뛰어서 승리했습니다. 그래서 전 세계가 인간승리라고 극찬했습니다.

그리고 4년 후에 도쿄 올림픽에서 연속 우승을 했습니다. 이 때는 운동화를 신고 뛰었습니다. 세계가 또 한번 놀랐습니다. 두 번을 연이어서 우승을 했으니, 많은 사람들이 놀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아베베 선수는 우승 기념으로, 나라에서 자동차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자동차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또다시 놀랍니다. 이제 더 이상 달리는 모습을 보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4년 후에 런던에서 장애인 올림픽이 열렸는데, 휠체어를 타고 달려서 또다시 우승했습니다. 전 세계 언론들이 대서특필해서 기사를 썼습니다.

올림픽에서 마라톤으로 세 번을 우승한 후에 어느 기자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놀라운 기적을 이룰 수가 있었습니까?” “, 저는 그저 열심히 했을 뿐입니다. 특별히 교통 사고가 난 후에도, 실망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비록 휠체어를 타고 있었지만, 날마다 달리는 생각을 했고, 또한 열심히 달렸습니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 금메달을 획득할 수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아베베 선수의 마라톤을 향한 집념과 열정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고, 제게는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오늘도 지난주에 이어서, 두 본문을 근거로 열정 회복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있어서 열정, 열심이라는 단어는 대단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열정이 운동 선수에게 뿐만아니라 공부도 그렇고, 직장생활이나 사업도 마찬가지이고, 배우나 음악가도 그렇고,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그 일에 열심히 노력하면 만족도 얻을 수 있고, 소기의 목적에 도달할 수 있고, 성공과 명예도 얻을 수 있고,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열심히 주의 일을 하면서, 경계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위선적인 열심은 아니됩니다.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열심, 자기의 의를 드러내고자 하는 열심, 맹목적인 열심, 보여주기식의 열심, 더 나아가서 자기들의 어떤 철학이나 사상, 이데올로기를 성취하기 위한 열심은 경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경에도 보면 바리새파나 열심당원들이 이러한 열심을 가졌습니다. 이들은 종교적인 열심이나 민족적인 열심이 대단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을 율법적으로 철저하게 지켰고, 성경에서 요구하는 11조 이상으로 헌금을 했고, 1주일에 이틀은 금식을 했고, 하루에 세번씩은 기도했고, 또한 열심당원들은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열심이 대부분 위선적이며, 자기의 의를 들어 내고자 하는 것이고, 자기들의 이데올로기를 성취하고자 하는 열심이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이같은 열심은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과거에 자신도 여기에 속한 사람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사도행전 22장이나 갈라디아서 1장을 보면, 바울이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의 상황을 이야기합니다. 빌립보서 35-6에서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했습니다. 유대교의 종교적인 열심 때문에 교회를 핍박했다는 겁니다. 그러니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면 밤낮 가리지 않고 쫓아가서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던 것입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것을 보고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기 이전까지는, 분명 바울은 잘못된 열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독교를 핍박하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제 그가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180도 변화가 되어서, 이제는 바른 열정을 가지고, 주를 위해 충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먼저 고린도후서 11장의 말씀을 좀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은 1절에서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고 얘기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어리석다고 하는 내용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앞에서 누차 말하고 있는, 자기를 자랑하는 것을 말합니다(3:1, 5:12, 10:12). 바울은 자기의 업적, 공로를 자랑하는 것, 자신의 선행을 떠 벌이고 다니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지적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자기가 자랑을 좀 하겠으니, 나의 이 어리석음을 용납하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바울이 얘기를 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고린도교인들이 다른 사람들의 자랑스러운 이야기에 너무 자주 현옥되어 진리에서 떠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외모만 보았다고 말합니다(10:7). 미사여구를 쓰서 자기의 자랑거리를 널어놓는, 그들의 외적 모습만 보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바른 것을 보여주고, 진리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어리석은 자가 되더라도, 이야기를 해야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씩이나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는 말을 사용하셨습니다. 이는 바울이 자신의 사도적 업적과, 권위를 예증하는 일을 결코 쉽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조심스럽고 어렵게 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이 말을 하는 것이니, 나의 어리석음을 너희들이 용납해 주기를 바란다고 하는 것입니다.

2절에서는, 너희들이 나를 용납해 주어야 하는, 약한 이유를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바울은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고 있으니, 나의 어리석음을 좀 용납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열심은 두 번 다 시기와 질투라는 뜻으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영역 성경 중 RSV, NIV에서는 시기질투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 구절의 내용이, 하나님의 질투하심과 동일한 질투를 가지고,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침입해 들어온, 적대자들을 대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린것처럼 하나님이 시기하기까지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시고 보호하신다는 의미이고, 하나님의 그 마음으로 바울도 고린도교회를 위해 열심을 낸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여기서 하나님의 열심으로 열심내고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곧 고린도교회를 그리스도에게 정결한 처녀로 중매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구약에서 나타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혼인 관계를 근거로(50:1-2, 54:1-8, 62:5, 1-3), 고린도 교인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혼인 관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바울은 여기서 너희들을 그리스도에게, 정결한 처녀로 중매하는 일에 열심을 낸다는 것입니다.

 

여기의 정결한 처녀로 중매한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중매한다는 이 단어는 약혼시켰다’(betrothed, RSV), 또는 정혼시켰다’(공동번역)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순결한 처녀인 고린도 교인들을, 오직 한 남편인 그리스도에게 약혼시켰다(5:27, 요일 3:2-3)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원문상의 의미이고, 여기서의 중매의 실질적인 뜻은, 고린도 교인들의 개종’, ‘회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사람들을 예수 믿게 해서,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가 되게하였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약혼한 당사자로서, 고린도교인들은 순결을 계속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의 신부로서의 이스라엘이, 이방의 우상을 섬겨서는 안 되며, 오직 남편인 하나님에게만 충성을 다해야 하는 것처럼, 불신의 상태에서 그리스도에게로 회심한 고린도 교인들은, 그리스도만을 믿으며, 주님께만 헌신적으로 충성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거짓 교사들이나, 또 다른 미혹자들의 꾀와 유혹에 빠져서, 처녀의 정결성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3절에서 이렇게까지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3).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침투한 거짓교사, 미혹자들, 거짓 사도, 적대자들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행했던 행위를, 뱀이 하와를 미혹하여 하나님을 배반하게 한 행위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3:13). 사단의 대리인인 뱀에 해당하는 거짓 사도들이, 고린도 교회에 몰래 들어와서 그곳의 교인들을 미혹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여기서 미혹한다’(엑세파테센)란 표현은, ‘완전히 속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완전 미혹, 완전 속임수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거짓 사도들이 고린도 교인들의 마음을, 바울의 가르침에서 멀어지게 하는 데 성공했음을 암시합니다. 그들은 옛 뱀처럼, 고린도교인들을 완전히 속이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알고 있던 바울은,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한다고 했습니다.


거짓 사도들은 고린도 교인들을 감쪽같이 속여, 그리스도를 저버리도록 유도하려 하기에, 바울은 그들의 영적인 아버지로서(12:14, 고전 4:15) 그것을 염려하는 것입니다. 약혼한 딸이 결혼할 때까지, 그 정결함으로 유지하도록 도와주어야 할 사람은 아버지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내가 너희들의 영적 아버지로서, 너희들이 깨끗함에서 떠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떠나란 말은, ‘망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떠나는 것은, 순결함을 떠나는 것은 곧 망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거짓 교사들의 목적은 고린도교인들을 미혹하여 그리스도에게서 떼어 놓는 것이고, 저들을 미혹하여 죄를 지음으로 더럽게 만들고 드디어 부패하고 타락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들의 영혼과 육체를 망치는 일입니다. 만약 바울이 두려워하는 것처럼, 고린도 교인들이 이처럼 그리스도를 배반한다면(4), 그것은 고린도 교인들의 불행을 뜻할 뿐만 아니라, 고린도 교회에 쏟아부은 바울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고, 아울러 고린도 교회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1).

아무튼 앞부분의 본문에서 우리는, 거짓 사도들로부터 교인들을 지키려는 바울의 열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 지역에서 전도도 열심히 해서 고린도교회를 세웠고, 하나님의 백성들인 그들을 악한 적들로부터 진리로 더욱 견고하게 지키는데에도 전력투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의 열심으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사도행전 20장의 본문으로 넘어 가겠습니다. 이 성경은 사도 바울이 3차 전도 여행의 마지막 시즘에, 밀레도에서 에베소교회 장로님들을 불러 놓고, 작별인사를 하면서 자신의 심정을 고백한 것입니다. 23절부터 보겠습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였다는 말은 바울이 친히 성령의 지시를 받았을 수도 있으나, 그것보다는 바울이 통과해 지나가는 도시에서마다, 성령이 예언자들을 시켜 그가 예루살렘에서 당하게 될 운명을 말해준 것을 가리킨다고 봄이 더 자연스럽다고 봅니다(21:10-14). 이제 밀레도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바울의 앞에는, 지금까지 당했던 어떠한 어려움보다도 더 심한 상황들, 곧 문자 그대로 실제적인 투옥(쇠고랑)과 견딜 수 없는 극심한 환난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무거운 말씀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복음을 위해 사는, 사도 앞에 놓여진 현실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앞길에 이같은 결박과 환란이 기다린다 하지만, 사명 감당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24). 바울은 자기가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는데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 할지라도, 나는 그 사명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각오입니다. 혹시 복음을 전하다가 생명의 위협이 와도, 나는 생명을 팔아서라도 사명을 감당하겠다는 발언입니다. 이는 생명보다 사명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고, 생명보다 생명의 존재 이유가 더 가치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사명을, 생명과 바꾸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바쳐서라도 사명완수하겠다는 굳은 각오를 밝힌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자신의 생명을 관심밖에 둠으로써, 자기가 존재하고 있는 그 거룩한 목적을 완성하려고 한 것입니다. 바우어(Bauer)라는 학자는 이 구절을 “...을 다하기만 하면(...을 위해서라면) 나는 기꺼이 내 생명을 내 놓겠습니다(또는 나는 목숨이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라는 의미로 이해하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오직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만, 그의 생명을 내놓은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결국 바울에게 있어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살아있는 유일한 목적은 주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을 다 마치는 데 있었습니다(14:8, 1:20-21).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수없이 많은 고난과 핍박과 수모와 천대와 죽음의 위협을 당하였습니다. 그가 당하였던 고난의 실제적인 모습들을, 고린도후서 11장에 이렇게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인 고린도후서 11장 뒷 부분에 나옵니다. 길기 때문에 요약적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1:16-18절에서, 우리가 살펴보았던 1절과 연결하여, 자랑하는 것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지만, 그러나 나도 육신을 따라 자랑하겠다고 말합니다.

 

나는 히브리인이며 이스라엘인이며,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그리스도의 일꾼이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고,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고,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다. 나는 강과 강도와 동족과 이방인과 시내와 광야와 바다와 거짓 형제들의 위험을 당하였다. 나는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다.’

이런 고난과 환란 중에도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고 했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자기가 다 죽게 생겼는데도 교회를 염려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메섹의 아레다 왕이 나를 죽이려고 했는데, 나는 광주리를 타고 창문 너머로 내려와서, 그의 손에서 벗어났다고 얘기합니다.

이같은 성경의 기록들을 보면, 바울은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에는, 자기의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했던 인물이었습니다.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하나님의 나라에 얼마나 열정적인 사람입니까?

 

사랑하는 소망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도 바울처럼 복음전파의 열정적인 사람이 됩시다. 바울과 똑같은 전도인은 아니라할지라도, 바울은 전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지만, 우리는 내집 근처라도 다니며 전도해야 하겠습니다. 바울처럼 수많은 사람을 전도하여 그들을 중심으로 많은 교회를 세웠지만, 우리는 1년에 1-2 사람이라도 전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밖으로 나가서 전도하지 못한다면, 전도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사명을 위해 생명을 바쳤지만, 우리가 그 정도는 못돼도, 생명 부지하겠다고 어리석게 사명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정말 복음을 통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우리는 당연히 그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통해 진정한 은혜와 복을 받았다면, 우리는 마땅히 그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선물을 이제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이 하나님 나라 복음을 통하여 한 사람이라도 구원을 받으면 바로 그 사람 때문에 가정이 살고, 가정이 살면 시회와 국가가 살고, 우리 국가가 살면 우리나라를 통하여 세계가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마치 ...나비가 전 세계의 기후를 바꾸어 놓는 것처럼, 우리의 한사람 전도가 세계 복음화의 대 이적이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안양병원에 김태식 장로님이 있었습니다. 암 연구소 소장이신데, 이 분은 예수를 믿고는 하나님께서 나를 왜 의사로 만드셨나를 생각했답니다. 의사를 하면서 암에 걸려 온 사람들을 치료하면서 깨닫기를 ! 하나님께서 그들의 생명을 살리라고 하시는가 보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내가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 때부터 복음을 증거하는 데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모릅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암 환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지금까지 암으로 죽은 사람이 5억 명이랍니다. 이제까지는 10명이 죽으면 그 중에 3-4명은 암으로 죽었는데, 앞으로는 10명이 사망하면 암으로 죽는 사람이 4-5명이랍니다. 이 김 장로님이 암연구소 소장이니 얼마나 많은 암 환자들을 만나겠어요. 이 분은 자신에게 오는 환자에게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가리켜 주고 새 생명을 얻게 합니다.

아침에 환자를 볼 때에도 기도부터 하고, 수술을 하기 전에도 환자에게 가서 기도부터 한답니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어요. 종교가 없는 환자도 기도해야 하고, 절에 다니는 환자도 기도해야 돼요. 한번은 주먹을 쓰는 분이 왔는데, 그분도 기도해야 해요. 별수 없잖아요. 담당 의사가 기도하자고 하는데,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9천명을 살렸습니다. 대단한 거지요. 이 장로님의 소망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많은 생명을 살리는 의사가 되는 거랍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조지 포먼(George Foreman)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3-40대 이상 되신 분들은 기억하실 겁니다. 그는 무하마드 알리, 조 프레이저와 함께 70년대 권투계를 주름잡던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었습니다. 이 분은 흑인 슬럼가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학교에 가기를 싫어했고 자라나면서 휴스턴 뒷골목의 불량 청소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권투 코치를 만납니다. 그의 주먹에 엄청난 파괴력이 있음을 발견한 코치는 권투 선수를 하라고 권유합니다. 그래서 권투선수가 됩니다. 1973년 당대의 무적이었던 조 프레이저를 꺾고 헤비급 세계 챔피언이 됩니다.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세계가 흥분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듬해인 1974, 28세가 되던 해에 여러분이 너무나 잘 아시는 무하마드 알리에게 충격적으로 패합니다. 그 후유증으로 좌절에 빠져서 권투계를 떠납니다. 그러나 바로 이때에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어느 사람을 만나서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 안에서 삶의 참된 의미를 발견한 후에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됩니다.

그는 자기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서 마약과 범죄로 방황하는 흑인 청소년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교회를 개척합니다. 그는 교회에서 체육을 가르치고 제자 훈련을 시킵니다. 조지 포먼은 청소년들에게 좀더 체계적인 믿음과 삶의 교육과 훈련을 위해서 청소년 회관을 건축하는데 재정난에 부딪치게 되어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어떻게 자금을 조달할까 고민하다가 엄청난 결정을 내립니다. 권투선수로는 회갑의 나이로 불리는 38세에 회관 건립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다시 사각의 링에 서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나이 45세에 WBAIBF 통합 세계 챔피언이 되는 신화적인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그를 잘 아는 스포츠 기자는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마도 세계복싱 경기사상 돈을 위해서도 아니고 명예를 위해서도 아닌 다른 동기로 게임에 임한 유일한 케이스일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이 마지막 챔피언 전을 치르면서 복음으로 양육하는 수많은 청소년 제자들의 얼굴들을 떠올리면서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경기했다고 간증합니다.

그의 딸 나탈리는 그의 아버지의 생애를 증언하면서 아버지가 예수님을 만난 후에 가장 중요한 일은 오직 한 가지 뿐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내 아버지에게는 권투도 돈도 명예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내 아버지의 열정은 오직 한가지 일, 예수님을 증거하고 그분을 찬양하는 일이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요? 여러분의 열심은 어디에 있으십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열심은 복음에 대한 열심이어야 합니다. 전도하는 열심이어야 합니다. 전도하는 열심이야말로 가장 존귀하고 가치있는 열심입니다. 2021년 하반기에는 우리의 삶을 다른 곳에 낭비하지 마십시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 전도하는 일, 복음 증거하는 일에 여러분을 드려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이 너무나 아름답게 빛날 것입니다. 복음에 열심인 사람이 되어, 좋은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열정적인 성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교역자들도 자기가 맡은 부분에 게으르지 않고 열심을 품고 사역하고, 장로님들은 심방과 치리에, 없는 시간을 쪼개서 열심히 일하시고, 안수집사님들은 재정출납과 봉사에 땀을 흘리며 수고하고, 권사님들은 심방과 기도에 힘을 쏟고, 모든 성도들은 경건생활에 열정을 쏟는다면,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이 참으로 기뻐하시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조금 못하고 실수해도 괜찮습니다. 성과가 좋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열매가 많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내가 정말 땀 흘리며 애써서 최선을 다했으면,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12:11). 요한계시록 3장에 보면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열심을 내라” “열심을 내라고 강조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5-8). 우리도 의의 면류관을 받아 쓸 것을 소망하며, 고난을 받고 어려움을 겪더라도, 열정적으로 전도인의 직무를 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 나 주만 위해

기도 제목/ 매사에 열정적인 사람이 되게하여 주옵소서.

특히 바울처럼 복음 전파에 열정이 있게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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