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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6 20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 이정현 목사 2021-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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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열왕기하19:29-37절 개역개정

29. 또 네게 보일 징조가 이러하니 너희가 금년에는 스스로 자라난 것을 먹고 내년에는 그것에서 난 것을 먹되 제삼년에는 심고 거두며 포도원을 심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30. 유다 족속 중에서 피하고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내리고 위로 열매를 맺을지라

31. 남은 자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피하는 자는 시온 산에서부터 나오리니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3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을 가리켜 이르시기를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이리로 화살을 쏘지 못하며 방패를 성을 향하여 세우지 못하며 치려고 토성을 쌓지도 못하고

33. 오던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하셨으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시라

34.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였더라

35.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36. 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

37. 그가 그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쳐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그들이 도망하매 그 아들 에살핫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620일 왕하 19:29-37,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

 

애굽의 뒤를 이어서, 세계적인 신흥 강대국이 일어났는데, 바로 앗수르입니다. 앗수르 나라는 주전 722년에 북쪽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많은 사람을 이스라엘의 수도였던 사마리아로 이주를 시켜서, 하나님의 백성을 혼혈족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 이후 앗수르는 이제 남쪽 유다를 침략해 온 것입니다. 1차 침략은 앗수르 왕 산헤립이 남 유다 제 13대 왕이었던 히스기야 시대 때 였습니다. 그때가 BC 701년 정도 되었습니다. 당시의 앗수르는 20년 전에 북쪽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때보다 훨씬 강성한 나라였습니다. 그런 나라가, 작고 힘 없는 나라 유다를 침략해 왔던 것입니다. 앗수르는 유다를 공격하여 많은 유다 성읍들을 점령하였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급히 사신을 보내서 자기가 범죄하였다고 시인하고 조공을 바치겠다고 맹세합니다. 앗수르의 산헤립은 전쟁 배상금으로 금 30달란트, 300달란트를 요구하자 히스기야는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모든 금은과 심지어 성전 기둥에 입혔던 금까지를 다 벗겨서 왕에게 주었습니다. 이것으로 1차 전쟁이 마무리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치욕을 당하였던 유다 왕 히스기야는 당시 앗수르 다음으로 강성했던 애굽과 손을 잡고 애굽을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앗수르의 산헤립은 2차로 유다를 침공한 것입니다.

 

산헤립의 신하 랍사게가 나서서, 유다 왕 히스기야를 모독하며 항복을 요구하였습니다. 히스기야가 의지하는 애굽은 상한 갈대와 같으므로, 결코 너희를 도와주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그것조차도 신뢰할 수 있는 것이 못 된다고 말합니다. 이어서 우리가 말 2천필을 줄 터이니, 그것을 탈 만한 자가 있느냐고 비꼬아 말하고, 더 나아가서 우리가 유다를 멸하려고 온 것은, 곧 여호와의 뜻이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더 비참한 것은 너희들은 이제 곧 우리의 대변과 소변을 먹게 될 것이라고 했고, 너희는 너희 왕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고 이제라도 항복하면, 우리가 너희에게 포도주와 무화과를 주어 먹게 하겠다고 말합니다. 더욱더 치욕스럽고 망령된 말은, 열국의 어떤 신이든지 간에, 앗수르의 손에서 그 백성을 구원한 신이 없다고 하면서, 너희 신 여호와도 우리의 손에서, 너희를 건지지 못할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왕하 18:18-37).

 

이런 모독과 항복을 요구하는 말을 했음에도. 유다 왕 히스기야가 특이한 반응이 없자, 이제는 재차 항복을 요구하는 앗수르 왕의 편지를 보내게 됩니다. 그 편지를 읽은 히스기야는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하나님의 전으로 들어갔습니다. 왜냐하면 그 편지의 내용은 한마디로 하나님을 훼방하고 모욕하는 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그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펼쳐 놓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사정을 당시 선지자였던 이사야게 말하고, 이 백성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선지자 이사야를 보내어 히스기야에게 응답해 주신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뿐만 아니라, 그 앞부분에도 하나님이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해 주신 내용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21절 이하의 말씀을, 몇 단락으로 나누어서 생각해 봄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특히 이번 주와 다음 주에는 열정 회복이 주제임으로, 거기에 맞추어서 본문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이 앗수르를 향하여 책망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21-26).

 

히스기야 왕이 산헤립의 편지를 들고 성전에 올라가서 그것을 하나님 앞에 펴 놓고, 산헤립을 대항하여 그를 처벌해 달라고, 간절히 적극적으로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20).

 

그리고 나서 하나님이 앗수르 왕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1절부터 26절까지는 앗수르 왕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을 향해 얼마있지 않아서, 시온이 너를 멸시하고, 비웃을 것이고, 너를 조롱할 것이라’(21)고 하셨습니다.

 

여기의 처녀 딸 시온은 례루살렘 성 자체와 그곳에 살고 있는 모든 주민들을 일컬어 부르는 말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예루살렘 성을 처녀라고 부른 것은 아직 정복되지 않은 거룩한 성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아직 이방인에 의해서 짓밟히지 않은 예루살렘이, 얼마있지 않아서, 너를 멸시하고 비웃으며 머리를 흔들것이라고 하셧습니다.

 

여기의 멸시하다와 비웃다는 동사는 전부 완료형으로 되었는데, 이는 지금까지는 유다가 여전히 앗수르의 침공으로 포위되어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이지만, 하나님은 이미 앗수르에 대한 남 유다의 승리를 확실히 보장한다는 의미로 완료형을 쓰고 계시는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곤란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지만, 하나님은 유다가 승리하여 그들을 멸시하고 비웃게 될 것을 확실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이 너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다는 것은 멸시와 조롱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지금까지는 앗수르 왕 네가 내 백성을 향하여 멸시하고 조롱하였지만, 이제는 너의 교만을 꺾어 버려서, 예루살렘이 너를 조롱하게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2절에서는, ‘지금까지 너희가 유다 왕과 이 민족을 향하여 모독하고 훼방한 것은 곧 나를 향해 한 것이라고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셨습니다(22). “네가 누구를 꾸짖었으며 비방하였느냐 누구를 향하여 소리를 높였으며 눈을 높이 떴느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그리하였도다”(22). 앗수르가 유다 왕과 그 백성을 향해 꾸짖고, 비방하고 소리를 높이고 눈을 부릎뜬 것은, 곧 나를 향해 그리했다고 하신 것입니다. 신약에서 교회를 핍박하는 것은, 곧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것과 동일하게 여기셨던 것처럼, 본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 여호와 앞에서의 앗수르 왕의 교만한 행동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의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는 세속과 분리된 여호와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본문에서 여호와를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로 표현한 것은, 세상과 인간을 초월하여 계신 하나님을, 감히 산헤립이 이방의 우상들의 수준으로 전락시켜서, 조롱하고 멸시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인간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이렇게 대하고서야, 어찌 살 수가 있겠습니까?

 

2. 하나님이 앗수르가 퇴각할 것을 말씀하십니다(27-28).

 

하나님이 앗수르 왕의 분노와 교만한 말을, 다 들어서 알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27절부터 28절 상반절까지의 말씀입니다. “27 네 거처와 네 출입과 네가 내게 향한 분노를 내가 다 아노니 28 네가 내게 향한 분노와 네 교만한 말이 내 귀에 들렸도다.”

 

하나님이, 내가 들어서 다 알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상응하는 벌을 내리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듣지 아니하고 알지 못한다면 어찌 그것을 바르게 판단하실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사람들의 말과 행동 그리고 그 의도와 계획과 생각까지도 다 알고 계시는 분이심으로 그분의 판단은 공의로운 것입니다. 여기서도 하나님은 앗수르 왕이 어디에 있는지, 막사를 얼마나 출입을 했는지, 네 마음이 어떤지를 다 아신다고 하셨고, 또한 나를 향한 너의 분노와 네 교만한 말도 다 들어서 알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주께서 산헤립의 행위 즉 겉으로 들어나는 것 뿐만아니라, 그의 감정의 상태까지를 다 알고 계시는 전지하신 분이십니다.

 

시편 139편의 말씀입니다. “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3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하나님은 우리 입의 말과 우리의 모든 행위를 감찰하시고 아시는 분이십니다.

 

앗수르 왕의 모든 언행을 알고 게시는 하나님께서, 그를 저주하고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갈고리를 네 코에 꿰고, 재갈을 네 입에 물려, 너를 오던 길로 끌어 돌이키리라 하셨나이다’(28).

 

갈고리로 코를 꿰고, 입에 자갈을 물려 끌고 가는 것은 본래 덫에 걸린 맹수를 다룰 때 취하는 행동이라고 합니다(J. Gray), 그런데 실제로 앗수르 사람들은 전쟁의 포로를 끌고 올 때, 마치 맹수를 잡아 올 때처럼, 이런식으로 포로들을 끌고 왔다고 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너희들이 했던 것처럼, 그대로 그에게 행하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하나님이 모욕적인 방법으로 너를 징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네가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7절에서 산헤립을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이제 그 말씀을 근거로, 산헤립을 강권적으로 되돌아가게 만들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주변의 상황과 정세와 저들의 끊임 없는 완고함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성취하고 말 것이라는, 하나님의 강한 의지가 담겨진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너를 퇴각시키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 두 구절의 말씀은, 앗수르 왕 네가 나 여호와께 한 모든 교만한 말들을 내가 다 듣고 알았음으로, 너를 꼼작 못하게 묶어서, 너를 퇴각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이 남 유다가 회복할 것을 말씀하십니다(29-34).

 

앞 단락에서 하나님은 앗수르 왕이 퇴각할 것을 말씀하셨고, 이제는 남 유다가 저들의 손에서 구원을 받을 것을 말씀하시면서, 그 징조 몇가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1)남 유다가 회복되어 첫해와 둘째해는 농사를 짓지 못하고 자연적으로 자라난 식물을 먹게 되고 3년부터는 너희들이 경작한 식물을 먹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앗수르 군대가 물러갔으나, 2년 동안은 땅이 황폐하여 농사를 짓지 못하다가, 3년째에는 전쟁의 상흔을 말끔히 씻고, 경작 가능한 땅으로 회복될 것임을 말한 것으로 보입니다(29).

 

2)이제 유다는 미래가 번영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앗수르의 침략으로부터 해방되어, 이제부터는 유다 민족이 번영하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30 유다족속 중에서 피하고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내리고 위로 열매를 맺을지라.”

 

여기서 피하고 남은 자, 앗수르와의 1,2차 전쟁을 피하여, 예루살렘 성 안과 시온산으로 피하여 남은 자를 가리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숨어서 지낼 필요가 없음으로, 자유로운 몸으로 각자 자기의 처소로 돌아가서, 평안히 풍성하게 살아갈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의 성취는, 다시말해서 앗수르의 군대를 물러 가게 하시므로, 유다 백성들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여, 미래에 안전하고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31).

여호와의 열심이라는 말은, 이사야 9:7에서도 동일하게 사용이 되었습니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하나님이 이 모든 일을 이루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사용된 열심이라는 단어는, 원래에 시기와 질투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열심은 하나님의 시기와 질투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는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을 원수들에게 빼앗기지 않고 그들을 구원하고 보호하기 위하여 강한 시기심 내지는 질투심을 갖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열심은 자기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의 역설적인 표현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라고 했는데, 이 말은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다를 앗수르의 손에서 건지시고, 그들에게 풍성한 삶을 주실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에 대하여, 말씀대로 확실히 성취하실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일을 이루시는 분은 전능하신 여호와이십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열심히 이루실 것임으로, 앗수르 왕은 결코 예루살렘을 치지 못하고, 왔던 길로 돌아가고 말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3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을 가리켜 이르시기를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이리로 화살을 쏘지 못하며 방패를 성을 향하여 세우지 못하며 치려고 토성을 쌓지도 못하고 33 오던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하셨으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시라.” 앗수르 왕의 예루살렘 정복의 실패를, 강한 부정의 의미를 4회나 반복하여 사용함으로 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앗수르 왕은 이 성에 이르지 못하고, 화살을 쏘지 못하며, 방패를 세우지도 못하고, 토성을 쌓지도 못하고, 결국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강하게 반복해서 너는 못한다고 하셨음으로, 아무리 군사력이 강한 앗수르 왕이라 할지라도 못하는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유다를 보호하고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해답이 34절에 나와 있습니다.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나님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시는 것은, 곧 하나님 자신과 다윗을 위하여, 이렇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또한 다윗과의 언약(삼하 7:13-16)을 이루기 위하여 이렇게 하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4. 하나님의 예언대로 그대로 성취가 되었습니다(35-37).

 

그 날 밤에 하나님은 여호와의 사자를 앗수르 진영에 급파하셨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천사이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수행하는 천사이고,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고, 보호하는 천사를 말합니다.

 

급파된 여호와의 사자는, 앗수르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쳐서 죽였습니다. 산헤립의 교만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비방하고 유다 백성을 모독한 그들은, 한 순간에 다 송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이들 전쟁에 개입하셔서, 한판에 전쟁을 종결시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전쟁은 앗수르와 유다의 전쟁이 아니고, 앗수르와 하나님과의 전쟁이었던 것이고,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한 것입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은 유다 지역을 떠나서, 퇴각하여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에 가서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몇 년이 지나서 그가 자기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쳐 죽이고 말았습니다. 여기서도 한글 성경에 나타나지 않은 한 단어가, 히브리어 성경에는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의 아들들이라는 단어가 빠져 있는데, 이는 곧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산헤립의 아들들이었다는 말이고, 왕은 바로 자기 아들들에 의해서 살해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왕자들이 난을 일으킨 것인데, 산헤립의 말째 아들이었던 에살핫돈이 모반을 일으킨 형들과 싸워서 이김으로 형들은 아라랏 땅으로 도망하고, 막내 에살핫돈이 왕에 오른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사, 즉각적으로 이 전쟁에 개입하셔서, 앗수르의 공격으로부터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산헤립은 퇴각하게 되었고, 유다는 구원과 보호를 받아, 이제 땅의 소산물을 먹으며 안전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열심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열심히 이 모든 것을 선하고 아름답게 이루신 것입니다.

 

결론

 

유다 백성들은 앗수르의 공격으로 인하여,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께 이 나라를 앗수르의 손에서 건져 달라고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이 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셔서, 하나님의 사자를 통하여 군사 185천명을 죽이게 됩니다. 산헤립은 퇴각하게 되고, 고국으로 돌아가서 아들들에 의해서 살해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을 앗수르의 손에서 구원하여 주셨고, 그 땅의 소산을 먹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이 모든일들은 하나님의 열심이 하셨습니다.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자기 백성을 지키시고 보호하시기 위하여, 시기하기까지, 질투하시면서 사랑하신 그 하나님이 이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그 열심은 오늘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하여 주셨고,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어 주셔서, 푸른 초장과 맑은 물가로 인도해 주시고, 원수들이 넘보지 못하도록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안보하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열심 때문에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의 열심 때문에 지금까지 은혜와 사랑과 복을 누리며 살고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하나님의 열심을 본 받아서, 이 땅에서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열정적인 마음으로 맡은 바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코로나 상황이고 무더운 여름이 다가온다 할지라도, 우리의 신앙이 지치거나 약해지지 말고,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힘으로 말미암아, 열정적인 신자로 회복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걸어가고 달려가도 피곤치 않는 것은,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열심 때문입니다. 이것으로 새롭게 되어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일들을 감당하되, 열정적인 신앙으로 감당하므로 좋은 열매 많이 맺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농부가 봄에 씨앗을 심고, 여름에 이 무더운 날씨에도 수고하여 땀을 흘리며 열심히 농작물을 가꾸듯이, 우리에게도 이런 열정과 열심히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 달에 있을 도쿄 올림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수년 전부터 지금까지 땀을 흘리며 피나는 훈련을 하고 있을 것인데, 그래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농부의 마음으로, 선수들의 마음으로,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열심히 달려가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찬송/

 

기도 제목/ 하나님 우리에게, 매사에 열정적인 마음을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열심을, 조금이나마 닮아가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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