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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6 13 기독교인의 나라사랑 이정현 목사 2021-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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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로마서13:1-7절 개역개정

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3.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4.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5.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6.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7.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613일 롬 13:1-7, 기독교인의 나라 사랑

 

로마서는 전체 16장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을 둘로 나누면, 1-11장까지는 이신칭의를 다루고 나머지 12-16장까지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다룹니다. 앞에는 구원 교리를 말하고, 뒤에는 그렇게 구원받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분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 권세를 어떻게 대해야 하며, 기독교인의 나라 사랑이 어떠해야 되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애국심 회복이라는 주제에 맞추어, 본문을 근거로 기독교인의 나라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달리 말하면 기독교인의 국가에 대한 의무에 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국가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은, 긍적적이거나 소망적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금까지 수백년 동안 나라 없는 서러움과, 외세의 억울한 압제하에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북쪽 이스라엘은 앗수르 나라에 의해 멸망 당했고, 남쪽 유다는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고, 그 이후 페르시아의 압제하에 살았고, 그 이후는 그리스와 로마의 압제와 핍박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지금 바울이 로마서를 쓰고 있는(AD 57-58) 그 시대에도 여전히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고, 이같은 외세의 지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독립을 할 1948년까지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국가의 권세자들에 대한 생각은 상당히 부정적이며 소망적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유대 민족주의자들은, 로마에 대하여 항거하며, 무력으로 독립을 위하여 투쟁하는 일들도 많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대가 지나고 이제 바울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편지를 하면서, 크리스찬은 어떤 국가관을 가져야 하며, 국가 권력자들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지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팔레스틴은 로마의 지배하에 압제를 받으며 살고, 또한 기독교인들이 로마에까지 가서 살고있는 상황이니까,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기독교인들과 국가의 권력자들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되어야 하는가를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1절에 보면,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의 각 사람, 바울이 보내는 이 서신을 읽게 되는, 로마의 기독교인들 각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로마 나라에 살고있는 기독교인들을 말하지만, 좀 더 폭넓게 말하면 당시 세계에 흩어져 있던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위에 있는 권세들, 국가의 정치적 권세, 인간 통치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당시의 상황을 고려할 때, 로마의 권력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주로 로마의 통치자들과 정부의 재판관들을 말한다고 봅니다.


그들에게 복종(subjection)하라는 말은, 순종(obedience)하라는 말보다, 더 범위가 넓고 엄격한 단어입니다. 국가 권력자들에게 단순히 순종하는 정도가 아니라, 더 넓고 엄격하게 복종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광범위하고 엄격히 복종할 것을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나서 바울은,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1)고 하셨습니다. 이는 성도들이 정부에 복종해야 할 이유를 말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요한복음 19:11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 하시니.” 세상의 권세를, 위에 계신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서에서도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로 그 위에 세우신다”(4:17)고 하셨습니다.

성도들이 정부에 복종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가, 하나님은 정부가 차지한 권세의 원천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1-2).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옛날의 임금과 지금의 대통령은 하늘이 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이 말은 옳은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국민은 자발적으로 정부의 권세에 복종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정부의 권세의 원천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며 또한,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이 정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정부의 권세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곧 그를 세우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부의 권세에 순종하는 것은 필수라는 사실입니다.

2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여기의 거스리다는 말은, 복종하다의 반대어입니다. 이 단어는 종종 무장하여 저항하는 것과, 폭동을 일으키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정부의 정책이나 재판정의 판결이 마음에 안 들고, 심각한 손해와 억울한 판결을 당하였다면, 불복종하여 저항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식으로 권세를 거스리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2절 말씀의 논리는 매우 간단한 것입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권세를 거스리는 것은 곧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니, 그런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 권세자들을 거역하는 것은 곧 그 권세를 허락하신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과 같음으로 그런 사람은 곧 심판을 면치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심판은 적어도 권세자들이 하나님의 선한 사자들로서 선과 악을 구분하여 상과 벌을 준다는 의미입니다(3, 4). 다시말해서 주님의 최후심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권세자들이나 재판관들이 선을 행한 사람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상을 주고, 악을 행한 사람에게는 그 악행에 걸맞는 벌을 준다는 것입니다. 결국 세상 권력은 사회질서와 공의를 위해서, 선과 악에 대한 상벌을 주는 것입니다. 이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이 그들에게 권력을 주어 세웠음으로, 그들에게 복종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정부의 권력자들에게 복종해야 합니까? 둘째, 정부를 책임 맡은 사람들은, 선하고 의로운 것을 유지하고, 악한 자들을 벌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역자들이기 때문입니다.

 

3-4절 말씀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3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4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3절의 다스리는 자들4절의 하나님의 사역자들과 같은 사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 하나님의 수종자이며 통치자들을 가리킨다고 봅니다. , 최고 통수권자를 포함한, 일반적인 통치 세력을 가리킨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서 로마 황제를 포함한 일반적인 상층부의 관리자들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비록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는 사람들이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질서유지를 위하여 일하는, 하나님의 수종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칼(공권력)이 주어진 것은, 범죄자에게 벌을 주기 위함이고, 선을 행하면 칭찬하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국가가 교회와 다른 점은, 국가는 공권력을 가지고 백성을 다스린다는 점입니다. 악은 징벌하고 선은 칭찬하므로 장려하기 위하여, 통치자들을 하나님의 사역자들로 세우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는 사람은 세상 권력자들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것이고, 단 악을 행하는 사람은 권세자와 재판관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국가의 통치자들을, 바울 자신과 같이 하나님의 사역자들, 동일한 일꾼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들은 육적인 통치 기구인 국가에서, 그런 일들을 감당하는 자들이고, 우리는 영적 통치기구인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복음전파의 일을 감당하는 하나님의 사역자들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속 권력자도 당신의 권위자로 세우셨고, 목사도 교회의 권위자로 세우셨음을 알게 됩니다. 이 권위는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으로, 동일하고 동등한 권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국가 권력 앞에서 악을 행함으로 그들의 심판과 진노를 받아서는 아니되고, 오히려 선을 행함으로 칭찬듣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5절의 말씀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1절의 말씀대로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하면서, 동시에 진노 때문이 아닌 양심 때문에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복종하지 아니하면 처벌을 받게 될 것인데, 단지 그 처벌을 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신앙양심 상 옳기 때문에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이 양심을 따라 정당한 권세에 굴복해야 합니다.

 

결국 본문을 통해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기독교인이 권세에 복종해야 하는 것이 자명한 당위성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소극적인 의미로는 진노를 피하기 위하여 권세에 굴복해야 하지만, 적극적인 의미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의무감과 충성을 위해서 굴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권력에 복종하는 동기는,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양심의 준수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여기서의 양심은 분명히 하나님 말씀의 법에 근거한 양심입니다. 따라서 어떤 지상의 권력이 권선징악에 합당하게 그 권위를 행사한다면, 마땅히 모든 기독교인들은 그 권력에 복종해야 하겠지만, 혹 하나님의 말씀의 법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칼을 휘두른다면(4), 우리가 지상의 권력에 의한 핍박을 받더라도, 거기에 복종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4:19-20).

 

우리가 살펴본 3-5절까지의 내용은, 이 땅의 통치자들은 선과 악을 장려하고 억제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세우신 사역자들이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그들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어지는 본문의 마지막 두 구절은, 권세자들에게 복종해야 하는 내용과, 복종하는 실례를 말해 준다고 봅니다. 바울은 마지막 한 구절 속에서,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라는 한 대지 안에서, 네 가지 내용과 그 실례를 말하고 있습니다.

 

“6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7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바울이 말하는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라는 말은, 모든 자와 관련된 네 가지 의무를 말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Meyer). 좁혀서 말하면 기독교인 모두에게 해당되는 네 가지 당연히 해야할 의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는 실제적인 예를 말하는 것입니다.

 

첫째가 조세입니다. 여기의 조세는 다른 말로 공세라고 하는데, 피정복민이 지배 국가에 바치는 조공’(朝貢)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국가에 대한 복종의 구체적인 예로, 납세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기독교인들은 이미 로마가 부과한 세금을 내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로마의 기독교인들이 납세를 거부하거나, 납세에 대해 저항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혹 로마의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이교도의 국가인 로마 정부에 세금을 내는 것을 못 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징벌이 두려워서 억지로 세금을 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은, 비록 이교 국가라 하더라도 로마 정부가 가진 권위를 부여하신 분이 하나님이므로 세금을 바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적 양심에 거리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세금에 관하여 이렇게 분명히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예수님의 다음의 말씀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22:21).

바울은 조세를 바치는 것이, 기독교인들이 권세자에게 복종하는 일 중의 하나라고 설명을 하면서,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이런 일에 항상 힘쓴다고 말합니다. 세리 공무원들이 공무에 전념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꾼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세금을 징수하는 일을 그들은 항상 힘쓴다고 했습니다. 로마에 조공을 바쳐야 하기 때문에 담당자들은 이 일을 힘써서 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납세를 잘 해야 기독교인으로서의 임무를 다하는 것이며, 이것이 곧 국가 권세에 복종하는 일면인 것입니다.

 

두 번째는 관세입니다. 관세를 다른 말로 국세라고 하는데, 이는 국가에 내는 세금을 가리킵니다. 본 절에서는 마땅히 납세를 해야 할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만약 당시의 모든 성도들이 다 세금 내는 일을 잘 준수하였다면, 사도가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로 보아 당시에 세금 내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혹자는 이들이 세상의 일상적인 질서, 현세의 정치 질서를 부정하는 열광주의자들이었을 것이라고 봅니다(Kasemann). 따라서 바울은 이 말씀을 통해, 그들에게 현세의 질서는 하나님에 의한 것이며, 그런고로 모든 사람은 이 질서를 따라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권세자들은 1차적으로 세금을 많어 거두어야 마음껏 나라를 통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올해 4월 말까지 에상보다 32조원의 세금을 더 거두었다고 하는데, 문제는 더 많이 거둔 세금을 나라 빚 값는데 쓰지 않고, 또다시 재난 지원금으로 사용한다고 하니, 내년도 나라 살림이 걱정이 됩니다.

혹자는 여기의 조세와 관세조공과 국세로 보지 않고, 조세(포로스)를 직접세(인두세, 토지세), 그리고 관세(텔로스)를 간접세(관세, 물품세)를 말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볼 수도 있겠으나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조공과 국세로 보아도 좋겠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조공을 바치는 것과 아울러, 국세를 잘 내는 것도, 통치자들에게 순종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네 번째로는,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의 두려움과 존경은 실제적으로 권력을 가진 자에 대한 내면적인 태도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권력에 대해서 절대적인 두려움을 가져서는 안되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에 순종하는 의미에서, 정당한 두려움과 존경을 품어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로마에 살고 있거나, 지금 유대 땅에 살고 있거나, 그들이 기독교인이라고 한다면, 각종 세금 잘 내고, 또한 그들을 마음으로 존경하는 것이, 바로 통치자들에게 복종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전체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신자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의 통치자에게 복종해야 하는데,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그를 권세자로 세워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그 자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성도는 통치자를 거역할 수 없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악한 자에게 벌을 주고, 선한 사람에게 상을 줌으로, 사회 질서를 세우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라고 하나님이 세우신 사역자이기 때문에, 그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칼과 상을 맡기셨기 때문에, 우리는 신앙양심을 따라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종해야 하는 내용과 실례로 조세, 관세, 두려움과 존경을 들어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만약 여기에서 설교를 끝내면, 여러분들에게 질문과 의문이 남을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의 통치자가 법과 질서를 어지럽히고, 자기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하여 각종 악을 행하고, 나라와 국민을 돌보지 않거나, 독재정치를 할 때에도 우리는 그에게 복종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입니다. 한마디로 기독교인은 통치자에게, 어느 정도까지(어디까지) 순종해야 하는가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문제 때문에 본문은, 지금까지도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역사적인 몇 사람의 예를 통하여,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얻으려고 합니다.

 

3세기 교부였던 오리겐이라는 사람은, 오늘 본문을 주석하면서 이렇게 문제제기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종을 박해하고, 믿음을 공격하고, 종교를 파괴하는 그 권세조차도 하나님으로부터 왔는가?’ 오리겐은 로마의 박해를 심하게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로마서 주석을 다 쓰고 나서 얼마 있지 않아서, 로마의 데키우스 황제가 반 기독교 정책을 펴자, 그는 위의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함으로 투옥되어 고문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오리겐은 이렇게 말합니다. ‘정부가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도록 허용하는 곳에서, 교회는 세속 통치자에게 순종하나, 정부가 신앙을 박해하는 곳에서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할 필요가 있다.’

 

다음은 독일 신학자 에른스트 케제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930년대 말 독일의 나치 정권은 케제만과 독일의 교회 앞에 정치에 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말라고 했고, 소그룹 모임을 피하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케제만은 이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근거로 총통이 교회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교회의 주인이시며, 독일국민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성도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설교했습니다. 그 즉시로 비밀경찰에 의해서 케제만은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신자가 어디까지 통치자에게 순종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정부가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주권을 신실하게 증언하는 일과, 다른 사람을 겸손하게 섬기는 일을 금할 때, 그곳까지가 순종의 경계선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만약 정부가 교회()를 감옥에 보내거나 죽이게 되면, 바로 그 감옥이나 무덤에서 주님의 음성이 더 잘 들린다고 했습니다.

 

파울 슈나이더 독일 개혁교회 목사님 이야기입니다. 그는 독일의 두 교회를 섬기고 잇었습니다. 그런데 독일의 나치 정권이 교회에서 자그들의 소그룹 모임을 가지겠다고 하지, 그것은 불가하다고 하자, 경찰에 의해서 체포가 되어서 8주 동안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그 후 석방이 되었지만 그러나 교회로 돌아갈 수 없다는 퇴거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 때 그는 자기의 사명은 교회를 섬기는 것이고, 그곳에서 성도들에게 설교하는 것이라며, 그 퇴거 명령서를 갈기갈기 찢어버렷습니다. 그러면서 슈나이더는 정부는 나에게 롬13:1을 근거로 권력에 복종하라고 하지만 나는 사도행전 5:29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씀을 따를 것이다. 하나님이 마지막 날에 나와 정부간에 판단하실 것을 안다고 말했습니다.

 

슈나이더는 체포 구금을 반복하다가 강제 수용소로 보내졌고 거기에서 감옥 창문을 통해 복음을 전하였고, 나치 깃발에 절하지 않고, 히틀러 총통의 생일에 모자를 벗고 경의를 표하지 않았다고 잔인한 매질을 당하였고 고문을 받다가 1939718일 독일 나치 정부는 독극물 주사로 슈나이더 목사님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오리겐과 에른스트 케제만, 그리고 파울 슈나이더를 통해 분명한 것은, 우리가 어디까지 정부의 권력에 순종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부가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지 못하게 할 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지 못하게 할 때까지, 우리는 통치자에게 복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다른 성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딤전 2:2). “너는 그들로 하여금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준비하게 하며”(3:1).

 

베드로 사도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13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벧전 2:13-14).

 

결론

 

여러분 각자가 위에 권세자에게 복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그 자리에 세우셨음으로, 당연히 그리해야 합니다. 단 그들이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써 살아가지 못하게 할 때까지, 우리는 세금도 잘 내고, 두려움과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들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의 경건한 신앙생활과 평안을 위하여, 그들(정치인들)을 위해 기도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우리가 내는 세금이, 합당하고 효과적으로 사용되도록 위하여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통하여 모쪼록 우리 마음에,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우리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찬송/ 나의 백성이

 

기도제목/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옵소서.

세금 납부와 공경하는 마음으로, 위정자들에게 순종하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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