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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6 06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나라사랑 이정현 목사 2021-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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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에스더4:1-17절 개역개정

1. 모르드개가 이 모든 일을 알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 통곡하며

2. 대궐 문 앞까지 이르렀으니 굵은 베 옷을 입은 자는 대궐 문에 들어가지 못함이라

3. 왕의 명령과 조서가 각 지방에 이르매 유다인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울며 부르짖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

4. 에스더의 시녀와 내시가 나아와 전하니 왕후가 매우 근심하여 입을 의복을 모르드개에게 보내어 그 굵은 베 옷을 벗기고자 하나 모르드개가 받지 아니하는지라

5. 에스더가 왕의 어명으로 자기에게 가까이 있는 내시 하닥을 불러 명령하여 모르드개에게 가서 이것이 무슨 일이며 무엇 때문인가 알아보라 하매

6. 하닥이 대궐 문 앞 성 중 광장에 있는 모르드개에게 이르니

7. 모르드개가 자기가 당한 모든 일과 하만이 유다인을 멸하려고 왕의 금고에 바치기로 한 은의 정확한 액수를 하닥에게 말하고

8. 또 유다인을 진멸하라고 수산 궁에서 내린 조서 초본을 하닥에게 주어 에스더에게 보여 알게 하고 또 그에게 부탁하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 앞에서 자기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 하니

9. 하닥이 돌아와 모르드개의 말을 에스더에게 알리매

10. 에스더가 하닥에게 이르되 너는 모르드개에게 전하기를

11. 왕의 신하들과 왕의 각 지방 백성이 다 알거니와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 규를 내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하라 하니라

12. 그가 에스더의 말을 모르드개에게 전하매

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15.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17.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가 명령한 대로 다 행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66, 에스더 4:1-17,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나라 사랑(20210606)

 

오늘 본문이 에스더 4장인데, 이 말씀의 배경이 되는 부분을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의 배경을 알아야, 본문 말씀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자기들의 죄로 인하여, 바벨론 나라에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는데, 66-7년 정도 지났을 때, 유다를 포로로 잡아온 바벨론 제국과, 그 위쪽 지방을 다스리고 있었던 신흥 국가였던 페르시아와 전쟁을 하게 됩니다. 이 전쟁에서 바벨론이 폐함으로, 자동적으로 바벨론에 잡혀 온 유다 포로들은, 페르시아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3년 후인 536년에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유다 백성들이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칙령을 내리게 됩니다. 그래서 유다 백성들은 스룹바벨의 인솔을 받아 1차로 귀환을 하고, 2차가 에스라의 지도를 따라 BC 456년에 귀환을 하고, 3차는 느헤미야의 인솔로 BC 444년에 귀환을 합니다.

 

그런데 본국으로 귀환을 하지 않고 바벨론이나 페르시아 지역에 그대로 남아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모르드개와 그의 조카 에스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당시 수산에 살고 있었고, 이들의 이야기는 페르시아의 5대 왕이었던 아하수에로 왕 때였고, 1차 귀환은 이미 끝났고, 2차 귀환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던 때의 일이었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즉위한지 3년이 되었을 때, 그리스와 전쟁을 하기 전에 자기의 전 신복들을 불러 놓고 6개월 동안 잔치를 벌이게 됩니다. 이 성대한 잔치의 목적은 그리스를 침략하기 위한 작전 회의로 모인 것이고, 출전 준비를 점검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또한 신복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잔치의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6개월간의 잔치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왕은 수산 성 사람들만을 위하여 1주일간의 잔치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이때 왕후였던 와스디의 아름다움을 그들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왕후를 배석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왕후가 왕명을 거역하고 불응한 것입니다. 왕이 화가 나서 왕의 권위를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왕후를 폐위시키게 됩니다.

 

그래서 왕은 왕후가 공석인 상태에서 그리스 원정을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는 살라미스 해전(200척이 부서짐)과 미칼레 전투에서 연패하여 귀국하게 됩니다. 전쟁에서 패하고 돌아온 아하수에로 왕은 왕후를 폐위한 것을 후회하였을 때, 대신들이 새로운 왕후를 맞이할 것을 주청하게 됩니다. 그때 새로운 왕후를 간택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모르드개의 사촌 에스더였던 것입니다. 이때가 아하수에로 왕이 왕 위에 오른지 7년 째이며, BC 479년 이었습니다. 성경 에스더 2:17의 말씀입니다. “왕이 모든 여자보다에스더를 더 사랑하므로 그가 모든 처녀보다 왕 앞에 더 은총을 얻은지라 왕이 그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 와스디를 대신하여 왕후로 삼은 후에

 

그 이후 2:19이후부터 3장에 걸쳐서는 에스더의 사촌 오빠 모르드개와 아하수에로의 국무 총리였던 하만이라는 사람 사이의 갈등과 적개심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만은 아말렉의 후손인데, 아하수에로 왕의 국무 총리였기 때문에, 대단한 권세를 가지고 있었던 거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왕궁을 출입하는데, 그 왕궁 문의 관리로 있었던 사람이, 유다에서 포로로 잡혀 온 모르드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만이 지나가면 모두가 엎드려 그에게 절을 해야하는데, 모르드개는 신앙적 신념에 따라서, 그에게 무릎을 꿇거나 절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니 하만으로서는 화가 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만이 분개하여 모르드게 뿐만아니라, 모든 유다인들을 죽일 계획을 짜서, 왕을 찾아가서 조서에 도장을 받아 낸 것입니다. 하만은 은 1만 달란트를 왕에게 뇌물을 주면서, 이 조서에 의인을 찍게 하였습니다. 이 조서를 전국에 보내어 공고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 조서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이에 그 조서를 역졸에게 맡겨 왕의 각 지방에 보내니 열두째 달 곧 아달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을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여인들을 막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 하였고”(에스더 3:13).

 

이 조서의 내용이 수산성에도 전파가 되었습니다. “역졸이 왕의 명령을 받들어 급히 나가매 그 조서가 도성 수산에도 반포되니 왕은 하만과 함께 앉아 마시되 수산성은 어지럽더라”(에스더 3:15). 하만은 왕과 함께 술판과 여흥을 즐기고 있는데, 같은 시간 수산성 사람들은 당황스러워 하며 크게 동요하고 있는 상태에 빠진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인간 왕은 뇌물이나 받아먹는 무책임한 사람이고, 하만은 잔인하고 파렴치함 악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아니라 한 민족 전체가 멸절될 위기에 놓여있는대도, 오히려 좋다고 술로 흥을 돋구고 있는 이런 파렴치한 인간 정치인들, 권력자들을 보게 됩니다. 자기들에게 이익만 되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유지할 수만 있다면, 무참히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잔혹한 인간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게 됩니다.

그 다음 이야기가 오늘 본문에서 이어집니다. 이 본문은 왕후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자기 민족애가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나라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모르드개가 이 모든 일을 알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 통곡하며”(1). 모르드개가 이 모든 일을 알았다고 했는데, 무엇을 알았다는 말입니까? 그가 안것은 하만의 계략으로 인해 유다인을 멸하라는 왕의 조서가 공고되었다는 것을 알았다는 말입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그는 하만이 조서를 받아내기 위하여, 상당한 뇌물을 왕에게 바쳤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만이 자기만 아니라 자기 민족 유다를 진멸하려는 이 계획을 알고, 그는 왕궁 대문 밖으로 나가서,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대성 통곡한 것입니다. 그의 이같은 모습은, 자신의 극한적 슬픔을 외적으로 표현하던, 히브리 사람들의 한 관행이었습니다(37:29, 34, 삼상 4:12, 삼하 1:2, 13, 19, 15:32, 왕상 20:31, 왕하 6:30, 2:12). 너무 괴롭고 고통스러운 자기의 마음 상태를 이렇게 표현을 한 것입니다.

모르드개 뿐만아니라, 이 조서의 내용을 알게 된 각 지방의 유다인들도, 거의 동일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왕의 명령과 조서가 각 지방에 이르매 유다인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울며 부르짖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3). 이와 같은 일련의 행위들을 통해 유다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의 허물을 회개하고 또한 구원의 손길을 바라는 기도를 드렸을 것으로 봅니다(3:40-66). 그들도 모르드개처럼 크게 애통하며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이 사실을 알지 못했던 왕궁의 왕후 에스더는,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왕후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지만, 왕궁의 대문을 관리하는 자기 사촌의 모습을 보고,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만 짐작을 했습니다. 사촌의 그 모습만으로도 조카 에스더는 근심하였다고 했는데, 이는 가슴 아픈 근심에 깊이 사로잡힌 것을 가리킨다는 뜻입니다(Keil). 그래서 왕후는 내시를 시켜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보게 됩니다. 아직 모르드개는 성문 안으로 들어 온 상태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개인적인 일로 베옷을 입고는 성문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성 바깥 광장에서 베옷을 입고 실성한 사람처럼 통곡하는 것입니다.

왕후의 명령을 받은 자가 모르드개에게 가서 물었더니, 모르드개가 자기가 당한 모든 일부터 차근차근히 몇 가지 일을 얘기합니다. 여기 모르드개가 당한 일은, 자기가 하만에게 신적 경배를 거부함으로써(3:2), 그의 원한을 샀던 것을 가리킵니다(3:5).

그리고 유다인을 멸절시키려는 하만의 계획을 말하면서, 하만이 왕에게 주기로 한 은의 액수까지 정확하게 일러 줍니다. 모르드개가 이것을 각별히 부각시키는 것은, 하만의 계획의 부당성과 사악함을 철저히 폭로시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유대인 대학살 결정이, 거액 기부 약속으로 인하여 이루어졌음을 알 경우, 그녀가 심히 진노하리라는 기대를 했을 것이며, 더 나아가 그녀가 하만을 불구대천의 원수로까지 여기게 되기를 바랬을 것입니다. 사실 불의의 뇌물로써 타인을 해치는 행위야말로, 억제하기 힘든 분개를 자아내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기대하고 이 정보를 알려 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왕의 조서 초본까지를 보여주었는데, 이는 유대인 대학살의 실행 날짜가 결정됐고, 그것에 관한 변개될 수 없는 명령이 전국에 하달되어, 대응책을 강구치 않을 경우 유대 민족이 진멸될 상황에 처해 있음을, 에스더로 하여금 확실히 깨닫게 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지금 유다가 처한 환경은 풍전등화와 같으니, 빨리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모르드개는 왕후에게 부탁하기를, ‘왕에게 나가서 자기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고 말합니다. 모르드개가 굵은 베를 입고 벗기를 계속 거부했던 이유는, 에스더가 바로 이와 같이 행해 주기를 바랬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모르드개의 이 같은 요구는 (1) 유대인들이 대학살을 피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전혀 없었던 상황에서 나온 것이었으며, (2) 에스더를 향한 아하수에로의 애정에 호소하여 위기를 극복해보기 위함이었으며, (3) 나아가서 에스더가 왕후의 자리에 오른 것이, 유대인들을 대학살의 위험으로부터 건져내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로 본(14) 때문이었습니다.

 

한편, ‘자기 민족을 위하여, 에스더에게 유대 민족을 구출해 내야 할, 절대적 의무가 있음을 암시해주는 문구입니다. 또한 지금까지 고하지 않았었던 출신 근본을(2:10, 20) 이제는 도리어 왕에게 고해야 할 때임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합니다(Paton). 사실, 이제 에스더가 자신의 민족인 유대인들을 구출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자신의 신분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의 간절히 구하라’(바카쉬)는 어떤 일의 달성을 위해서 부지런히 탄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네가 지금 그 자리에 있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너는 왕에게 들어가서, 이 민족의 구원을 위하여 부지런히 탄원하라는 것입니다.

내시 하닥이 돌아와서 모르드개의 말을 왕후 에스더에게 그대로 전해 주었습니다(9). 그런데 모르드개의 이야기를 들은 에스더의 반응이 본문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고대 라틴 역본에는 본절 다음에(다시말해 9절 다음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얼마 후 에스더가 그녀 오빠의 편지를 다 읽었을 때에, 자신의 겉옷을 찢었고 심하게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많이 울었는데, 이에 따라 그녀의 신체는 극도로 약해졌다.” 그러나 이 같은 내용은 다만 참고할 뿐이지, 정경 속에 포함되지는 않은 것입니다.

아무튼 이야기의 전모를 들은 에스더는,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아울러 자기가 이 일을 처리해야 할 때인 줄 알았지만,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에게도 사정이 있다는 것을 모르드개에게 전달합니다. “왕의 신하들과 왕의 각 지방 백성이 다 알거니와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 규를 내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하라 하니라”(11).

여기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왕에게 나아가면...죽이는 법이 나오는데, 이것은 메대의 디오세스(헤로도투스) 왕에 의해서 처음 시행되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하수에로의 부왕 다리오 1세도 이 같은 법을 사용했었다고 합니다. 페르시아의 왕들이 이러한 법 제도를 만들어 사용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왕의 처소로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함으로써, 왕이 피살되는 사태를 방지하려는 의도 때문이었습니다. 다리오 1세가 궁궐 내에서 암살 기도자 두 명을 적발하여 죽인 사실이 있고, 아하수에로 왕을 죽이려 한 모살기도자 두 명이, 모르드개에 의해서 대궐 내에서 적발된 사실도 있고(2:21), 아하수에로 왕이, 결국 궁내에 머물던 내시에 의해서 암살된 사실 등을 볼 때, 수많은 정적을 가졌던 페르시아 왕들에게, 그 같은 법이 절대로 필요했었음을 능히 깨닫게 됩니다.

 

페르시아 왕들이 이같은 법을 사용한 또 다른 까닭에는, 왕을 만나기가 매우 힘들다는 사실을 인식시킴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더욱 높이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같은 법에도 불구하고, 왕의 호출 없이도 왕에게 나아갈 수 있는 권한의 소유자들이 몇 명 정도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일곱 모사와, 특별히 하만’(3:15) 등이 포함됐을 것입니다. 그러나 왕후에게는 그 같은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지만 왕후의 경우는 사전에 면담 요청을 함으로써, 왕의 허락을 받아 왕에게 나아갈 수는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에스더가 이러한 요청을 왕에게 하지 아니한 까닭은, 그 경우에는 면담 요청과 함께 그 분명한 사유를 밝혀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럴 경우, 에스더는 당시로서는 왕의 절대적 신임을 받았던 하만의 방해를 받아서, 면담 요청도 거절될 뿐만아니라, 왕의 미움을 받고, 왕에게 나아갈 길이 완전히 봉쇄되어 버리고 말 소지가 다분하였다고 봅니다(Keil).


그리고 내가...왕에게 나아가지 못한지가...삼십 일이라는 말은, 에스더에 대한 아하수에로 왕의 사랑이 식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에 따라 에스더는 다른 후궁들처럼 왕이 불러주기를 기다리는(2:14)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적어도 에스더는 왕후에 오른 후, 얼마 동안은 왕의 총애를 받았지만, 본문 당시의 상황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에스더는 왕궁에서의 규례를 말하면서, 또한 자기가 지금 왕의 부름을 받지 못한지가 1달이나 되었다고 부정적으로 말하면서, 지금 상황에서 어찌 내가 왕에게 나아가서, 우리 민족의 구원을 탄원할 수 있겠느냐고, 비관적인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모르드개에게 전달하자, 모르드개는 신앙의 아버지답게, 영적 부모답게, 그리고 믿음으로 단호하게 조카 에스더에게 답을 합니다. 13-14절입니다. “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너는 왕궁에 있으니...면하리라 생각지 말라는 말은, 단지 동족들의 위험에 대한 에스더의 무관심을 책망하는 것만은 아니라,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도 결국 닥치고 말, 신변의 위협에 대해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모르드개를 포함한 모든 유대인들이 몰락하게 될 때, 에스더도 유대인임이 드러나고 말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하만은 에스더도 학살의 대상으로 삼아서, 죽일 것은 분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스더가 왕궁에 있다고 살 가능성은 희박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모르드개는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절대로 멸망 당하도록 방치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모르드개의 믿음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의 이같은 믿음은, 하나님에 의해 자신의 조상들에게 주어진 언약들(17:7-8, 9:31)에 기초했었음이 분명합니다. 또한 그는 이스라엘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왔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 다시 팔레스틴으로 돌려보낸 사실(1:1-2, 30:3)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는 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떠한 환난 중에서도 구원될 것이 틀림없으며,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이 좌절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문제는 누가 과연, 하나님에 의하여 백성들의 구출자로 사용되느냐하는 점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네가 왕후의 자이에 있는 것은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에스더로 하여금, 그녀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구출할 하나님의 도구로 소명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기 위한 설득조의 반문입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출을 위해 하나님의 섭리 중에 왕후의 위에 오르게 되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했다고 봅니다.

모르드개의 말을 들은 에스더는, 자기의 미온적이고 부정적인 입장을 고쳐서, 이제 자기의 입장을 단호하게 말하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16). 당시 1차 귀환 이후의 남은 유대인들이 바벨론과 페르시아 전역에 흩어져 살았는데, 그렇다면 페르시아의 수도였던 수산 성에 살고있는 유대인들도 상당히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어떤 사람은 최소한 1천명은 살고 있었을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에스더는 수산 성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을 불러 모아서, 나를 위하여 삼일 금식기도를 해 줘라, 나도 왕궁에서 시녀들과 같이 금식기도를 하겠다고 말합니다. 이는 에스더가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이 오로지 하나님께 있음과, 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온 백성의 간절한 간구에 의존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인식하였음을 보여주는 구절이라고 봅니다(삼상 7:5, 2:1, 5:16). 이 문제의 해결책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또한 백성들의 연합 기도가 절대로 필요하다는, 에스더의 말입니다.

 

특이한 것은 에스더는 자기도 자기 시녀들과 함께 금식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보나트(Bonart)라는 사람은 에스더의 시녀들이 에스더의 신앙적 지도에 따라 여호와 신앙을 갖게 되었을 것으로 본다고 했습니다. 이 같은 추측은 상당한 가능성이 있고, 뿐만아니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대단한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에스더는 자신의 삶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드러냈고, 또한 진리를 가르침으로 그녀들을 개종시켰던 사람임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만일 그녀들이 개종을 하지 않았다면, 에스더가 이교도인 그들에게 하나님의 백성들의 구원을 위한 금식 기도를 굳이 명령했을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한 후 나는,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서 탄원하는데, 죽으면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왕이 나를 보고 금 규()를 내밀면 사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죽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민족의 구원을 위해, 죽으면 죽으리라는 왕후의 결단이자 믿음이며 신앙적 용기였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죽으면 죽으리라는 이 말은, 동사의 원문 시제 상 완료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이 말은 아직 에스더가 죽지 않았으면서도, 이미 죽은 것으로 표현을 했다는 뜻입니다. 마치 창세기 43:14에 보면, 야곱이 그의 아들 베냐민을 애굽으로 보내면서, ‘내가 자식을 잃으면 잃으리로다라고 하신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이 말을 하는 당시에는 베냐민을 잃지 않았지만, 이미 잃은 것처럼 두 번째 강조해서 말하는 것은, 아들을 잃은샘 치겠다는 야곱의 강한 의도를 나타내는 말인 것입니다. 그것처럼 여기서 에스더도 죽으면 죽으리라고 했던 것은, 나는 죽었다고 생각하고 왕 앞에 나아가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구약 주석가인 카일은 이것은 숙명적인 체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을 두려위함 없이, 의연히 동족(同族)을 위하여 희생할 것을 결의하고, 하나님의 섭리에 전적으로 복종하겠다는 단호한 결심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말 속에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탁하고,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극단적인 희생마저도 감수하고자 하는, 비장한 각오가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모르드개는 곧장 가서 에스더의 명령대로, 수산성에 사는 모든 유대인들을 불러 모으고 삼일 동안 금식하며 하나님의 도우심과 역사를 간구하게 됩니다.

오늘이 6월 첫째주이고 66일 현충일입니다. 현충일은 조국 광복과 국토 방위를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순국 선열과 전몰 장병들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정한 기념일입니다. 우리 나라는 19488월에 정부를 수립한 뒤, 2년도 못 되어 6 · 25 전쟁을 겪었습니다. 이 때 25만 명 이상의 국군이 사망하였습니다. 이에 정부는 1956년에 대통령령으로 66일을 현충일로 정하고, 추모 행사를 갖도록 하였습니다. 결국 올해 66회를 맞게되는 현충일은 주로 6.25사변 때 국가를 위해 싸우다가 희생하신 분들을 추모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날에 6.25 전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북한은 같은 민족을 향해 19506.25일 주일 아침에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북한군은 중공군과 소련을 등에 업고, 남한 사람들을 무참히 공격하여 죽이고 시설물들을 파괴하였습니다. 이 전쟁에서 나라를 사랑하는 젊은 애국 청년들이 수 없이 죽었습니다. 나라 전체는 초토화가 되었고, 국민들의 삶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핍폐하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40년 이전인 1910년 한일 합방 이후에는, 우리 민족을 말살하려고 했던, 일본의 잔인한 정책과 총칼을 생각하게 됩니다. 36년 동안 일본의 압제에서 우리는, 나라 없는 고통과 수모와 멸시와 천대를 당하였고, 강제 성폭행과 강제 노동과 억울한 죽음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때에도 해방과 자유와 독립을 위해, 얼마나 많은 조선 사람들이 피를 흘렸습니까? 수없이 많은 기독교인들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버렸습니다.

 

이런 것들을 회상하며, 이제 본문을 근거로 애국심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6월의 주제가 애국심 회복입니다. 지금은 그때처럼 총칼을 들고 나가서 싸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군자금을 댈 수도 없고, 그들을 향해 수류탄을 던질 수도 없고, 숨어서 독립운동을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애국해야 하는 것입니까?

 

첫째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가져야 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은 사회주의도 아니고, 공산주의 국가도 아닙니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이것을 지키기 위하여 지난날 그처럼, 우리 선조들이 피를 흘리며 희생하셨던 것을 기억하고, 오늘 나는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잃거나 흔들리지 말고, 그것을 확고히 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와 인접 국가인 중국의 정치 체제는, 공산당 일당제 독재국가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독특한 사회주의 형태를 띄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런 반면에 시장경제는 자본주의 경제를 취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같은 정치와 경제 형태를 따르고 있는 나라들이, 베트남, 라오스, 쿠바가 있고, 이런 나라들보다 더 일인 독재정치, 공산주의 정치를 버리지 못한 나라가 바로 북한입니다. 만약 우리나라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되면, 우리에게는 종교의 자유는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종교의 자유가 사라지는 정도가 아니라, 순교가 아니면 우리의 신앙을 지키기가 어렵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국가의 정치 체제가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에 대한 분명한 정체성을 가져야 되고, 이것을 끝까지 지켜나가고, 후 세대에게 잘 물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내외부로부터 위협을 받지 않고 유지 발전되도록, 늘 기도해야 합니다.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애국하는 길인 것입니다. 과거 우리나라에 내외적인 어려움과, 도전과 위협과 위기가 있었을 때, 기독교인들은 여의도 광장에 모여서 금식하며 기도했고, 금요일마다 산이나 예배당에서 철야하며 기도했고, 각 구국기도원에서는 24시간 365일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지금은 그처럼 힘쓰고 애써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적은 것 같습니다. 저희들이 시골에 사는 학생들이지만, 그때에는 1년에 한 번쯤은 당연히 구국기도원에 가서, 오로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나라가 없으면 교회도 없고 가정도 없고 나도 없습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 나라 없이 떠도는 수 많은 난민들을 보지 않습니까? 보트를 타고 가다가 배가 뒤집혀서 집단적으로 바다의 고기밥이 되고, 철조망을 뛰어 넘다가 손이 찢기고 발이 부러지기도 합니다. 공기도 통하지 않는 탑차에 수십명이 쪼그리고 타고 가다가, 질식해서 죽는 것을 보았습니다. 겨우 난민 인정 신청을 해서 그 나라의 난민 인정이 된다 하더라도 그들이 타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 어려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나라 없는 서러움이라는 것입니다.

 

에스더를 비롯한 전 유다 백성들이, 포로지에서 나라와 민족을 구해달라고 기도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리해야 합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 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되고, 차기 대통령 선거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되고, 공정과 정의가 하수같이 흐르도록 기도해야 되고, 국회의원들이 각종 해악된 법들을 재정하지 않도록 기도해야 되고, 코로나19를 통하여 깨닫고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며, 앞으로 자녀들이 살아가야 할 이 세상에 동성애를 비롯한 성적 문란이 판을 치고, 인형하고 결혼하는 것도 인정이 되고, 가정이 해체되는 그런 세상이 도래할 것인데, 이런 세상 가운데서 자녀들과 자녀들의 신앙을 붙잡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와 유다인들은, 3일간 금식기도하였고, 왕후가 왕에게 나아갔을 때, 왕은 그녀에게 금홀을 내밀어 그녀를 용납한 것은 물론, 그녀에게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으로 나아갔을 때 왕의 사랑도 회복되었고 원수도 처단하였으며 이 민족을 구해 달라고 했을 때,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 가운데 그들은 기적적으로 건짐을 받았습니다. 안전하게 보호를 받았던 것입니다. 오히려 아말렉의 후손인 하만의 족속들과 그의 가족들 75천명이 몰살하는 대 역전극이 벌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도 아멜렉과 싸우리라고 하신 그 말씀대로 하나님이 친히 싸우심으로 유대 백성들에게 승리를 안겨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남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뿐만아니라 그녀의 오빠인 모르드개는 제국의 제2인자가 되었고, 유다 민족의 위상에 페르시아 제국 내에서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훗날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지위가 높아진 것도, 이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를 들으사 이렇게 역사해 주신 것입니다.

 

국가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곧 교회와 가정과 나를 위한 기도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인들의 애국하는 길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애국하는 길, 하나만 더 살펴보겠습니다. 그것은 교인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에스더가 3일 금식기도 한 후에 이제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라고 했던 것처럼, 우리도 기도했으면 하나님의 그 뜻을 이루려면 행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제 각자의 위치에서, 일어나서 행동해야 합니다. 무모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에스더처럼 기도하고, 지혜롭게 때를 보아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일어나서, 이제는 무엇인가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당하고 억울한 일이 있으면 청와대에 국민청원도 하고, 성경과 정면 위배되는 법 재정을 하려고 하는 국회를 향해서는 다각도로 반대 서명도 하고, 시흥시가 시정을 잘 못하고 있으면 시정을 요구하는 시민참여 목소리를 내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좋은 일에도 같이 동참하여, 자기가 살고있는 지역과 사회와 학교에 선이 장려되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도우며, 서로 돕고 협력하고 봉사하여 지역사회의 발전을 도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이루기 위하여, 정말 죽으면 죽으리라는 심정으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애국하는 일입니다.

 

결론

처음에는 에스더와 모르드개도 자기들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고 살다가, 나중에는 당당하게 들어내고 신앙인의 삶을 살았던 것처럼, 우리도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정체성과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랑스런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한 국민이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과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다음은 민족이 위기에 처하였을 때, 에스더를 비롯한 모든 유다인들이 의지할 곳은 하나님 밖에 없음을 믿고, 하나님께 금식하며 민족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했던 것처럼, 이 나라의 안녕과 발전과 공의가 시행되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자유민주주의 체계를 위협하는 그 어떤 세력으로부터 이 민족을 구원해 달라고, 또한 잘못된 여러 가지 악법으로부터 건져 달라고, 더 나아가서 코로니19의 재앙으로부터 우리를 건져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에스더가 기도 한 후,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앉게 하신 이유가 바로 이때를 위함인 줄 알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으로 앞으로 나아갔던 것처럼, 우리도 이제는 기도의 자리에서 일어나서, 진리와 복음을 들고 이웃들에게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아울러 구제, 봉사, 협력함으로 교회의 대 사회적 사명을 감당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달란트와 재물과 시간과 능력과 건강을, 이제는 이웃을 위하여 섬기고 봉사하는 데 사용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 또한 애국하는 일입니다.

 

 

찬송/ 아버지 이 나라 주의 것 삼으소서...?

 

기도제목/ 우리 안에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을 일으켜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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