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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5 30 성경적인 관계 이정현 목사 2021-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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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에베소서5:22-33절 개역개정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29.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31.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경본문] 에베소서6:1-4절 개역개정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5:22-6:4, 성경적인 관계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이 관계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대부분 더 폭넓게 형성이 되어 갑니다. 사람이 죽을 때까지 이 관계를 맺기도 하고 끊기도 하고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하면서 살아갑니다. 때론 처음에는 좋았다가 나중에는 나빠지는 경우가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수평적인 관계 즉, 인간과 인간 사이뿐만 아니라, 수직적 관계인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수를 잘 믿음으로 좋은 관계로 있을 때도 있고, 가끔 신앙이 곤두박질 칠 때도 있고, 때로는 그 반대의 관계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수평관계와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한번 수직 관계를 맺었다면 궁극적으로는 좋은 관계로 끝을 맺는다는 것이고, 더 정확히 말씀을 드리면 이 수직 관계는 한번으로 인하여 영원한 관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았다면 결국 성령의 견인으로 인하여 영생에 이르게 된다는 말입니다.

 

관계는 분명 수평관계이든 수직관계이든 다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우리의 가족들 사이의 아름다운 관계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가족들 간의 성경적인 관계가 어떠해야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물론 이 수평적인 관계는 수직적인 관계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부부관계와 부자관계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진리의 말씀을 귀담아 잘 들음으로, 아내와 남편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며, 또한 자식과 부모 사이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배워서, 우리 가정도 아름다운 이 관계를 유지, 발전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아내와 남편의 관계

본문에서 바울은 이 관계를 명확하게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어떻게 해야 되고, 그리고 남편은 아내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해야 할 것은 한 가지입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22). 아내는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아내들은 복종이라는 말이 귀에 거슬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나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임으로 복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순종의 대상을 분명히 정해 주었습니다. 자기 남편입니다. 외간 남자가 아니고 다른 아내의 남편도 아닙니다. 자기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에게 복종한다면, 거기에는 분명히 큰 사달이 날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가 순종해야 할 대상은 자기 남편인 것입니다.

 

그런데 왜 아내가 남편에게 그래야 되지요?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십니다. 머리라는 말은 권위’, ‘통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운 권위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내가 순종함으로 남편의 권위를 세워줘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아내는 남편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비록 아내와 남편이 평등하게 지음을 받았지만 그 기능은 다른 것입니다. 남자는 지배하는 성향을 주셨지만, 여자에게는 순복하는 성향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기능에 따라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은 창조질서에 맞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내는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22). 매사에 아내가 남편을 쥐고 흔들려고 하면 안 됩니다. 남편을 자기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면 안 됩니다. 조금 못나고 부족하고 못 배우고 연하이고 어리석어도 자기 남편에게 범사에 순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것은 선택적 순종이나, 자기 기분에 따른 순종이 아니라 범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매사에 그리스도에게 순종해야 하는 것처럼, 아내는 자기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내는 남편에게 자발적으로순종해야 합니다. 강요나 억압에 의한 억지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의적으로 기쁨으로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33절 마지막 부분에,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는 말이 나옵니다. 지금까지는 순종하라 복종하라고 얘기하다가, 이 부분에서는 존경하라고 하셨습니다. ‘존경하라는 말은 두려워하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공포심에서 남편을 두려워하라는 뜻이 아니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마치 사라가 자기 남편인 아브라함을 주인님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경외하는 두려움으로 남편을 존경하라는 것입니다(벧전 3:16). 아내는 남편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소망교회의 모든 아내들은 자기 남편에게 범사에, 자발적으로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이어서 남편들이 아내에게 해야 할 일을 말합니다. 남편들은 자기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지극정성의 사랑이란 자기를 희생하고 온전히 내어주는 사랑을 말합니다. 25절을 보십시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8절에서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왜냐하면 부인은 남편의 반쪽이기 때문입니다. 헤드로서 남편은 자기 아내를 책임 있게 돌보고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내는 자기 남편에게 복종해야 된다는 말씀을 듣고 아내들이 이것은 너무 과한 말씀이라는 생각될지 모르지만, 실제로 남편에게 주어진 말씀이 더 과하고 중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남편들에게 요구하는 사랑은, 주님이 교회를 위하여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것처럼 희생적 시랑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을 아내를 위해 내어주는데 피 흘리기까지 희생하는 것입니다. 아가페적인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의 행복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자기 아내를 돌보기 위해서 가기를 내어주는 사랑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실제적인 예로는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아내를 위해 모든 것을 기꺼이 희생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갖는 것입니다. 아내가 좋아하는 것, 기뻐하는 것, 행복해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아내를 배려하고 아내를 돌보기를 자기 몸을 아끼고 돌보듯 하는 것입니다. 아내의 필요를 넉넉히 채워주는 것입니다. 아내가 영적으로 성숙하도록 기도해 주고 도와주는 것입니다. 아내를 신실하고 다정하게 대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수시로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잘했다고 말을 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다시 말해 아내는 남편에게 매사에 순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헌신적으로 사랑할 때, 아내와 남편의 관계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내와 남편의 관계가 순종과 사랑의 관계가 되려면, 그 중간에 인내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내가 순종할 수 없는 경우에도 인내로 순복하고, 남편이 사랑할 수 없는 경우에도 인내로 아내를 사랑하면 이런 아름다운 관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인내하심으로 순종하고 인내하심으로 사랑하여 아름다운 부부관계를 가지길 바랍니다.

 

이런 설교를 들으면, 꼭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럼 둘 중에 누가 먼저 해야합니까?’ 서로 먼저 하기를 꺼리고 당신이 먼저 하면 내가 그렇게 하겠다고 말합니다. 부인은당신이 먼저 나를 그렇게 사랑하면 내가 당신에게 순종하겠다고 말하고 남편은 당신이 먼저 순종하면 내가 헌신적으로 사랑하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창조질서에 따라서 보면 여자가 먼저 죄를 지었으므로 여자가 먼저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그러나 구원사 입장에서 보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신 것이 먼저이기 때문에, 남편이 아내를 먼저 사랑해야 된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네가 먼저하라고 하지 말고, 피차 먼저하겠다고 나서면 부부가 더욱 행복할 것 같습니다. 혹자는 이 부분을 설명하면서, ‘순종과 아가페 사랑은 동의어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똑같은 의미의 단어일 뿐만아니라, 같은 무게와 동일한 순위를 가진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피차 순종하고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자녀와 부모의 관계

이제는 부자관계입니다. 자녀들을 향해 먼저 말씀하십니다.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의무를 말하기 전에, 자녀들이 부모에게 해야 할 일을 먼저 말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6:1).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것은 주님 명령이니 그대로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이 명령은 주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옳은 것이며, 이의를 달지 말고 그대로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모라 할지라도 자녀들에게 순종을 강압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더더욱 악한 것이나 하나님을 믿지 말라는 것이나 교회를 다니지 말라는 요구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요구가 있다하더라도 자녀들은 부모의 말을 거역할 수 있습니다. 안 믿는 부모가 죄를 범하라고 하는 것이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포기하라는 말에 순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비성경적인 것, 비도덕적인 것, 비윤리적인 일을 시킬 때에는 거기에는 순종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말은, 주 안에 있는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예수 믿는 부모에게만 순종하라는 말이 아니라 안 믿는 부모라도 주 안에서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다른 성경에도 보면, 자녀들은 부모의 것을 도둑질하지 말라고 했고, 저주하거나 조롱하지 말고 무시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부모를 하찮게 여기거나, 나보다 못 배웠다고 무시하거나, 가진 것이 없다고 원망 불평하거나 속이면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여기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전부 누구의 자녀이지만 부모는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녀 된 자로서 부모님을 공경하고 순종하는 것은 마땅한 것입니다. 이것이 옳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마땅한 부모공경에 하나님께서 복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여기의 공경은 순종을 넘어서는 말입니다. 공경은 사람을 존중하고 존엄하게 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순종은 하기 싫은데도 억지로, 때로는 불평불만을 하면서 시키는 일이니까 해야지라고 할 수 있지만, 공경하는 마음에는 위선과 거짓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을 공경하는 마음에서 순종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부모 공경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십계명 중 2계명과 5계명에만 약속이 주어져 있습니다. 둘째 계명 다음에 나오는 약속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20:6)라는 말씀인데, 이것은 제2계명을 지킴으로 얻을 수 있는 복을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약속된 복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앞에 나오는 질투하는 하나님에 대한 설명으로 주어진 말씀이지 복에 대한 약속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5계명이 주어진 이후에는 곧장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20:12)고 나오기 때문에 실제로 계명을 지킴으로 따라오는 복에 대한 약속은 5계명뿐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바울이 이것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라는 말도 숫자로 보기보다는, ‘중요하다는 의미로 보아서, 약속있는 중요한 계명으로 보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복을 약속하셨습니까? 주안에서 부모님께 순종하는 자녀들이 잘된다고 했습니다. 이는 복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땅에서 장수한다고 하셨습니다. 부모공경과 장수를 필연적 관계로 볼 수는 없겠으나, 그래도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믿을 수 있겠습니다. ‘장수 집안에 장수 난다는 말에는 어쩌면 그 집안 대대로 부모를 잘 공경했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고 보여 집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이 잘 되려면 그리고 이 땅에서 오래 오래 살려면 부모공경을 하시기 바랍니다. 결국 부모 공경은 나에게 유익과 은혜와 복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녀들의 부모공경에 관해 말씀하신 이후, 이제 부모들의 자녀 양육에 관하여 짧게 말씀하십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4). 바울은 소극적인 권면과 적극적인 권면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소극적인 권면으로는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노엽게 하는 경우가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부모가 자녀들에게 일관성 없이 말할 때, 부모의 주관을 강압적으로 말할 때, 감정적으로 잔혹하게 말할 때, 편애할 때, 무시할 때, 육체적으로 학대할 때 등등의 경우에 자녀를 노엽게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이런 짓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적극적인 면에서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의 교양은 자녀에게 본을 보여 자녀를 인도한다는 뜻입니다. 결국 부모는 자녀들에게 본 된 행동으로 교육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말씀대로 살고 예배하고 기도하는 모습을 통해 자녀들을 교육하라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훈계는 권면, 경고, 교훈 등의 뜻이 있습니다. 결국 훈계는 말로써 자녀를 훈련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12사도의 교훈집이라고 불리는 디다케4:9에 보면, ‘네 아들이나 딸에게 저주하지 말고, 젊었을 때부터 하나님 경외하기를 가르치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들의 자녀들을 무엇으로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부모들은 너무 세속적이고 세상적인 것들로만 교육을 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취미나 오락, 학교공부, 스포츠, 음악, 컴퓨터 등등을 위해서는 아이의 재능을 개발시켜 준다는 명목으로 돈과 시간을 아낌없이 쏟아 붓습니다. 기독교인 부모들도 아이들의 이런 면에 온전히 몸과 마음이 집중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이,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먼저 자녀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자녀들을 구원하여, 자녀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해야 합니다. 내 자녀로 사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자녀들의 영혼을 위하여 울지 않으면, 나중에 피눈물 흘릴 때가 있을 것입니다. 공부 잘 해서 좋은 대학 들어가는 것 중요하지요, 좋은 직장 들어가서, 척척 진급하고 하는 것도 중요하지요, 사업을 잘해서 돈도 많이 버는 것 중요하지요. 그러나 그것보다 예수 믿고 신앙생활 잘하는 게 훨씬 가치 있고 중요합니다. 육체적인 모든 일들은 잠시잠간입니다. 그러나 영혼은 영원한 것입니다. 육체적인 일은 궁극적인 가치는 없으나 영혼구원과 그 이후의 삶은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분명한 영적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녀가 중요한 것입니다.

 

예배를 잘 드리고 기도할 줄 아는 자녀로 양육하시고, 말씀을 스스로 섭취하여 영의 양식 삼을 줄 아는 자녀, 하나님께 찬송할 줄 알고, 선악을 분별할 줄 아는 자녀,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 안목의 자랑을 따라 살지 않는 자녀,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녀,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섬김과 사랑이 있는 겸손한 자녀로 양육해야 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교회의 예배와 교육이 중단됨으로, 이제는 가정에서의 부모들이 자녀교육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히브리인들이 그러하듯, 가정교육에 힘을 써야할 때입니다.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부모가 저들에게 신앙의 본을 보이고 말로도 진리를 가르쳐야 합니다.

 

결론

주안에서 아름다운 가정은 바로 이런 가족관계를 갖고 있는 가정입니다.

아내는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은 자기 아내를 헌신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내와 남편은 순종과 사랑의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잘 양육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자지간이 공경과 양육의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가정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고, 무엇보다 성경적인 가족관계가 되어서, 하나님 앞에서도 은혜와 사랑과 복을 많이 받는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부부가 더 사랑하고 순종하는 관계가 되고,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는 자녀들을 노엽게하지 않고 말씀으로 잘 양육하는 관계가 되어, 서로가 더 가까워지고 아름다운 관계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한가지 비결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월터 트로비쉬라는 사람이 나는 너와 결혼하였다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그림을 그려놓고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하나님

 

 

 

 

 

남편 아내

부모 자녀

 

남편과 아내가 가까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답은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된다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각각 하나님을 사랑하고 가까이하면, 자동적으로 부부관계는 가까워진다는 겁니다. 한쪽만 하나님을 열심히 가까이해서는 이 사이가 좁혀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같이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과 기도로 가까이한다면, 두 사람 사이는 멋지고 아름답고 행복한 부부관계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모와 자녀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사이처럼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멀어지고 삭막하고 파괴된 시대가 없는 것 같습니다. 부모는 부모대로, 자녀는 자녀대로 하나님을 가까이하시면, 부모와 자녀의 관계도 아름답게 회복될 줄로 믿습니다.

 

소망교회의 모든 가족들은 이런 관계가되므로, 주안에서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가/ 559(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기도제목/ 우리 가족들이 성경적인 가족관계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주 안에서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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