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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1 31 - 성경적 헌금 회복 이정현 목사 2021-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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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23:23절 개역개정

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경본문] 고린도후서8:1-5절 개역개정

1.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3.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4.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5.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경본문] 고린도후서9:6-8절 개역개정

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1131일 마23:23, 고후 8:1-5, 9:6-8, 성경적 헌금 회복

 

1월의 주제가 예배회복입니다. 예배에는 몇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그 중에 설교를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 찬송은 누구에게 어떻게 불러야 하는가, 기도에는 공중기도와 개인기도가 있는데, 공중기도의 종류와 개인기도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예배의 한 요소로 헌금에 대하여 살펴봄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실 오늘까지 예배의 요소 4가지를 말해도(설교, 찬송, 기도, 헌금) 중요한 한 가지 요소가 더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찬(성례)입니다. 이 성찬에 대해서는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살펴보기를 원하고, 오늘은 예배의 중요한 한 요소인 헌금에 대하여 말씀을 살펴봄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강단에서 헌금설교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합니다. 헌금설교 안 해도, 은혜받으면 다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은혜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면 그런 큰 은혜를 받았다면 당연히 주일에 감사함으로 헌금을 드려야 하지 않습니까? 오랜만에 남편이 교회에 나왔는데, 그 날따라 목사가 헌금설교를 함으로, 목사가 돈 내라고 했다고 시험에 들어 교회에 안 나오는 사람도 있답니다. 혹자는 헌금 설교하면, 목사가 돈이 부족한가보다, 그래서 헌금 설교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요사이는 헌금 없는 주일 운동캠페인을 벌이는 교회와 단체도 있답니다. 성도들이 헌금 드리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니까, 1달에 한 주일은 헌금을 드리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 돈으로 직접 선교하거나 구제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너희가 내 앞에 나올 때에 빈 손으로 오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과 정면 배치되는 운동임으로 비성경적인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에 헌금해서 그것으로 교회가 선교하고 구제하면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 맞추어서 해야 하는 데, 여기서는 헌금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에게 맞추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본주의적 사고에서 나온 잘못된 운동입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십일조를 하면 지옥간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십일조도 하고 의와 인과 신을 버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일조를 하고 안 하는 것을 기준으로 천국에 간다, 못 간다를 말하면 그것은 행위 구원자입니다.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자가 이 세상에 누가 있겠습니까? 결국 십일조에 대한 그런 사상을 가지고 있는 자들도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 되는 잘못된 주장인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전부 다 양의 옷을 입고 교회에 들어온 이리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자를 삼가야 합니다.

 

성도라면 헌금하지 못할 만큼,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한 성도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라 할지라도, 목사는 강단에서 헌금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설교를 해야합니다. 그 이유는 성경이 말씀하시는 중요한 진리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는 일이고, 또한 예수님도 헌금에 관해 많은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라, 하나님과 제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제단에 물질을 드리다가 형제와 불화한 것이 있으면, 먼저 형제와 화목하고 나서 예물을 드리라,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헌금에 관하여,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소득의 11조를 드리고 아울러 의와 인과 신을 버리지 말라, 나를 위하여, 전토와 가족을 버릴 정도로 헌신하는 사람은, 현세에서 복을 받고, 내세에서도 영생을 받는다.’ 이처럼 예수님의 설교와 교훈 중에, 헌금에 관한 내용이 많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이 모든 교훈과 진리를 가르치고 전파해야 할 책임이 있느 사람이 목사인데, 그것을 가르치지 않으면 그것은 목사의 직무 유기에 해당하고, 뿐만아니라 진리의 말씀을 듣고자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도 이런 주제의 설교를 들을 때, 부담스러워 하거나, 아예 듣지 않으려고 마음을 닫아 버리면 안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헌금에 관하여,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시는지를, 사모하며 잘 들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헌금에 관하여 몇 가지 사항을 살펴봄으로, 말씀에 함께 은혜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헌금이라는 용어

 

헌금은 주일이나 일정한 축일을 맞이하여 교회에 돈을 바치는 것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는 이 헌금을, 여러 가지 다른 말로 표현을 합니다. 연보(5, 11)-자기의 재물을 내어서 남을 도와주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서 연보금, 연봇돈이라는 말도 나왔습니다. 더 나아가서 성도를 섬기는 일’(12, 13)이라고 했고, 또한 선한 의지와 사심 없는 교제’(13)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이같은 헌금에 대한 다른 표현들을 통해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만, 사용처는 주로 불우한 이웃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헌금에 대한 또 다른 표현들을 기억하셨다가, 이런 말이 나오면, ‘아 저것은 헌금을 말하는 것이구나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2. 누가 헌금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이 쉽다고 생각하여, 누구나 다 헌금할 수 있지-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짜로 헌금할 수 있는 사람은 물질에 대한 선한 청지기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옛날에 동두천에 가시면 집창촌이 있었습니다. 주로 미군들을 상대로 몸을 파는 사람들이 사는 곳입니다. 여기에서 이런 여성들을 상대로 목회하는 분이 계십니다. 그 여성들이 목사에게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가져와서 기도를 부탁한답니다. ‘오늘은 손님이 많아서 십일조가 늘었다고’... ‘특별손님이 팁을 줬다고 감사헌금을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사연은 기구하고, 사정은 안타깝고 딱하지만, 과연 이들이 드리는 헌금을 하나님이 받으시겠는가?

 

말라기 시대 때,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하여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종은 주인을 공경하고 자식은 아비를 공경한다. 그런데 이 백성의 주인과 아비는 나 여호와인데, 그들은 나를 공경하지 않는다. 공경하기는커녕 오히려 나를 멸시하였다.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렸고, 눈먼 희생제물과 병든 것과, 훔친 물건과 속된 봉헌물을 가져오니, 누가 이런 것들을 받겠느냐? 너희 총독에게 이런 것을 드려보라. 그들이 너희의 예물을 받겠느냐? 그런데 하물며 나에게 이런 것을 가져와. 나는 온 우주를 창조하신 만군의 여호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나 헌금을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새 생명의 은총을 확실히 받은 사람이 헌금할 수 있습니다. 거듭남을 체험한 사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체험하고 고백하는 자(고후 8:9-10)라야 합니다. 백만장자가 수십억을 헌금 한다할지라도 그가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사람이 아니라면 하나님은 그 헌금을 받지 않으실 것입니다. 비록 적은 돈이라 할지라도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여 정성을 다하여 드릴 때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시고 받으실 줄 믿습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가진 것 다 빼앗기고 거반 죽을 정도로 맞아서 길바닥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이때 제사장이 이것을 보고도 그냥 지나갔습니다. 한 레위인도 그냥 지나가 버렸습니다. 한 사마리아 사람이 지나가다가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서 짐승에서 내려서 포도주를 그 상처를 씻어주었습니다. 자기 짐승에 그 사람을 태워서 주막으로 데려가서 보살펴 주었습니다. 그리고 주막 주인에게 내가 어디로 갔다고 돌아올 것인데, 혹시 치료비가 더 들면 와서 갚겠다고 말을 했습니다.

 

주님이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자비를 베푼자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주님이 그들에게 너희도 가서 이와같이 하라고 일러 주셨습니다. 이 비유를 통한 주님의 교훈이 무엇인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여기 강도 만난 사람들 주변에 세 그룹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강도인데, 그는 남의 것도 빼앗으면 내 것이 된다는 생각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이런 물질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강도입니다. 그리고 제사장과 레위인은 내 것은 내가 지킨다는 생각으로 사는 사람인데, 이 사람들은 나를 위해서는 돈을 쓰지만 남을 도와주기 위해서는 절대로 돈을 쓸 수 없다는 물질관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그룹의 사마리아 사람은 당신에게 필요하다면 기꺼이 내 것을 쓰겠다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물질에 대한 청지기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 강도가 헌금 할 수 있나요? 내 것이라고 물질을 꼭 붙 잡고 있는 사람이 헌금할 수 있나요? 주님의 말씀대로 자비를 베풀려면 자기의 호주머니를 여는 사람입니다. 돈에 대한 청지기 정신을 가진 자라야, 자비를 베풀고 헌금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돈은 꼭 필요할 때 쓰라고, 하나님이 일시적으로 나에게 맡겨 놓으신 것이라는 생각이 있을 때, 진정으로 하나님께 헌금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제자들 가운데 돈 궤를 맡은 사람이었지만 유다는 거듭나지 않았습니다. 돈에 대한 청지기 정신을 가지지도 못하였고 오히려 욕심을 가졌습니다. 탐욕을 가졌고 결국 은 30에 예수님을 팔아 버리고, 돈 때문에 망했습니다. 자살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흘러나와 죽었습니다. 그는 돈을 주님을 위하여, 가난한 이웃들을 위하여 드리지도 못하고, 사용하지도 못하였던 것입니다.

 

아무나 헌금할 수 있는 것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거듭나서, 새 생명의 은총을 받은 자로, 물질에 대한 청지기 정신을 가진 사람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물질을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3. 누구에게 헌금하고, 무엇을 위해 헌금하는가요?

 

누구에게 헌금을 합니까라고 물으면, 그 대답은 하나님입니다. 목사나 장로님에게 헌금 드리는 것 아닙니다. 헌금은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과 감사의 표시입니다. 헌금은 하나님을 향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하나님을 믿는다는 믿음의 표시입니다. 하나님만 소망한다는 표시이기도 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표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베풀어 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이런 마음을 다 담아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의 대상이 하나님이고, 기도와 찬송의 대상이 하나님이시듯, 우리가 바치는 헌금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너희의 후한 연보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라고 했습니다.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개인적인 일이며 처음으로 하는 이야기라, 여러분들의 양해를 구합니다. 저는 교회를 개척할 때 결혼 자금과, 산 꼭데기에 방 한칸 전세금을 빼서 개척을 했습니다. 지금 계산하면 얼마 되지는 않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이 저의 전부였습니다. 이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양준일 장로님과 김효숙 권사님은, 광명시에서 집을 한 채 하나님께 받쳤습니다. 그곳에서 방을 개조해서 예배를 드렸으니까요. 시화에 와서는 .. 아파트 32평 짜리 하나를 교회에 헌납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난번 예배당 근처로 이사 왔을 때는, 또 대림 아파트 45평 짜리 한 채를 헌납하셨습니다. 이 교회를 이루기 위하여 두 분은 지금까지 집 3채를 헌납하는 헌신을 하셨습니다. 제가 사위이지만 사위에게 집을 사준게 아니라, 하나님께 바쳐서 교회가 사택으로 쓰게 한 것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도 결국엔 그런 것이 근거가 되어서, 사택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앞에 나올 때에 빈손을 보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혹시 누구를 구제하고 싶어도, 선교하고 싶어도, 장학하고 싶어도, 하나님께 헌금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가(장로님들이 잘 상의해서) 합당하게 투명하게 그것을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고, 드려진 헌금은 하나님의 교회가 결의하여 성도들과 이웃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헌금을 누구를 위해 사용하게 됩니까? 본문에는 이 연보를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한 구제금으로 사용을 합니다. 이 연보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자들을, 섬기는 행위였습니다. 고통을 분담하는 교제였으며 성도들을 평균케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고린도후서 8:13-14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균등하게 하려 함이니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당시 예루살렘교회는 가난한 자가 많았지만, 상대적으로 고린도교회에는 부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너희의 넉넉함으로 예루살렘교회에 나누어줌으로, 서로 평균케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베풀어 줌으로 서로의 부족을 채워나가는 것입니다. 바울의 이 권면을 들었던 고린도교회는, 예루살렘의 가난한 교인들을 위하여 풍성한 헌금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9:12/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로 말미암아 넘쳤느니라.” 로마서 15: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영적 유익을 받았던 고린도교회가 기쁜 마음으로, 육적인 것으로 예루살렘 교인들을 섬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헌금을 구제금으로 사용할 뿐만 아니라, 선교비, 장학금, 사례비, 교육비, 건물 유지비, 기타 등등 다양한 부분에 지출이 됩니다. 결국 헌금은 하나님께 드린 것을,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대표적인 헌금인 11조에 대하여 간단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마태복음 23:23말씀입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여기에 나오는 박하회향근채는 식물인데, 성경에 이런 것을 11조 내라는 말씀은 없습니다. 십일조의 품목은 토지소산물 중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 등의 십일조를 말합니다(14:22-23).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율법에 정해진 이런 것뿐만 아니라, 다른 것의 십일조도 바쳤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정해진 것 이상으로 드렸으니, 대단한 종교적 열심히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책망은 십일조는 이렇게 철저하게 드리는데, 이것보다 더 중한 바는 버렸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의 더 중한 바는 중량이 더 무겁다는 말이 아니라, 더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11조를 드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항이, 정의와 긍휼과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즉, 의와 인과 신은 인간의 사회생활과 신앙생활에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덕목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행하지 않고, 덜 중요한 것은 힘써 행하였다는 주님의 책망입니다.

 

그러시면서 예수님은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의 이것은의와 인과 신을 말하고 저것은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말합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후자를 실천하고 전자도 무시하지 말라’(You should have practiced the latter, without neglecting the former)고 하셨습니다. 십일조도 무시하지 말라는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이것은 분명 십일조를 부정한 것이 아닙니다. 십일조도 행하고 의와 인과 신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십일조를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에서 할지니라’(에데이)는 말은 당연히’(ought to) 해야 한다는 뜻과 에데이’(ἑδει)데이’(δει)의 미완료 과거형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continually) 해야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가르침은 십일조는 당연히 해야 되고, 지속적으로 해야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 말씀만 보더라도 십일조 폐기론자들의 주장은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11조는 성도의 당연한 의무이며, 형편이 좋을 때는 하고 가계가 어려울 때는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11조에 대한 주님의 분명한 진리의 말씀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11조를 부정한다면 그 사람들을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소망교회 성도들은 온전한 11조를 드림으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어떻게 헌금해야 하는가?

 

미리미리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9:5/ “그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연보를 미리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마게도냐인들에게 너희가(고린도교인) 1년 전부터 헌금하고 있다고 자랑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마음에 정한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강요나 명령에 의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에 따라 마음에 정한대로 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8:8/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고자 함이로라.” 이 말은 내가 말했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어려운 성도들에 대한, 너희의 사랑이 얼마나 진실한지를 알고자 하니까, 마음에 정한대로 헌금하라는 것입니다. )주일에 헌금 1000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려운 이웃들에 대한, 내 진실한 사랑의 표현인가를 생각해 보라는 애기입니다. 고린도후서 8:11-12/ “이제는 하던 일을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완성하되 있는 대로 하라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 있는 대로 하되, 이것이 어려운 이웃들에 대한 나의 진정한 사랑의 표현인가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9:7 중하반절/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헌금은 인색함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와 기쁨으로 하는 것이고, 헌금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헌금에 인색하면,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복 주시는 것도 인색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시려면 헌금을 하되 즐겨내시기 바랍니다. 세금 내 듯 하지 마시고, 아깝게 여기지 마시고, 이거면 옷을 한 벌 사는데, 이거면 맛있는 식사를 한끼 하는데, 이거면 아이들 핸드폰을 사주는데... 그러나 마땅히 드려야 할 헌금을 놓고는, 이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 이번에도 드릴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기쁨과 감사한 마음으로 이 물질을 드립니다.’-이런 마음으로 드릴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힘껏, 때로는 힘에 지나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앞장인 고린도후서 8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사도 바울이 마게도냐 교회를, 고린도교회에 소개하면서, 헌금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때의 마게도냐 교회는 주로 빌립보 교회였을 것으로 봅니다. 그 교회의 헌금에 관하여 말하기를, 그들은 극심한 가난 중에, 풍성한 연보(거액의 연보)를 넘치게 하였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힘대로 할 뿐만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했다고 했습니다.

 

마게도냐교회 즉 빌립보교회는, 비록 힘들고 가난했지만, 어쩌면 자기들이 구제금을 받아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한 가난 중에도 풍성한 연보를 했던 모범된 교회였습니다. 이것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너희는 빌립보교회보다 더 부자이지 않느냐, 더 많이 더 풍성히 가졌지 않느냐, 그렇다면 있는 것 가지고, 주어진 것 가지고, 최선을 다하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우리 교단을 대표할 만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성도들도 많고 1년 예산도 많습니다. 작년에도 149명이 새롭게 등록하였습니다. 그런데 작년 1년 동안 코로나 때문에 교회가 경제적으로 너무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당하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교회가 월세를 못내는 교회가 많고, 심지어 모 교회의 목사님은 파지를 주워서 생계를 이어가는 목사님도 있었습니다. 추운 겨울인데 관리비를 내지 못해서 난방을 하지 못하고 추운데서 예배를 드리는 교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는 작년 연말에 1억원의 예산을 세워서 어려운 100개 교회를 선정해서 100만원씩을 지급하자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 교회에 비하면, 우리 교회는 가진 것이 많고 넉넉한 교회입니다. 제가 부탁을 드립니다.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 중에 은행 통장에, 잔고가 1000만원 이상 있는 분들 100명만, 이 일에 동참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우리교회도 마땅히 해야 할, 선한 일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드리는 헌금을-어떻게 드리는 헌금입니까?(미리 준비하고, 마음에 정한대로, 인색하거나 억지로 하지 말고, 힘껏 하는 헌금),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5. 말씀대로 헌금할 때 어떤 결과를 주시는가?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 하셨습니다. 6/“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모든 은혜를 넘치게 하여,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8/“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넘치게 하시나니 d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에 부요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10-11/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씨와 먹을 양식을 주신다.”

 

마가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액면 그대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29-30). 주님을 위하여 물질로 헌신한 사람은, 현세에서 100배나 받고, 내세에서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물질에 대한 청지기 정신을 가지고, 성경대로 11조와 헌금을 드림으로, 성경에 약속된 이런 은혜와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GS/ 기도 제목/ 우리의 헌금이 성경적인 헌금이 되게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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