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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1 10 - 말씀 경청의 회복 이정현 목사 2021-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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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도행전17:10-12절 개역개정

10.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2.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경본문] 데살로니가전서2:13절 개역개정

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17:10-12, 살전 2:13, 말씀 경청의 회복

 

2021년 우리교회 표어가 회복이고 1월의 주제가 예배회복입니다. 그래서 지난주에는 예배회복의 셈플이 되는 천상예배에 관하여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배회복을 위한 우리의 한 가지 소원은, 하늘의 예배를 닮아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네 생물과 24장로와 모든 천군천사들과, 구속받은 수많은 사람들과 모든 피조물들이, 보좌에 앉으신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운 하나님과, 일찍 죽임을 당한 자 같은 어린 양 예수님께, 꿇어 엎드려, 감사와 존귀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그 모습이, 오늘 우리의 지상예배에도 실현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예배회복의 한 부분으로, 설교를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부분은 목사가 설교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성도가 말씀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말씀경청은 신앙생활에 필요하다는 정도를 넘어서, 내 영혼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입니다. 말씀경청은 내 영혼이 사는 길이고, 말씀대청(대충 듣는 것)은 내 영혼이 죽는 길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중요한 말씀 경청에 대하여 살펴봄으로 은혜 받고자 합니다.

 

1. 설교도 하나님의 말씀인가?

 

칼 바르트라는 사람이 말씀의 3중 형식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개혁교회에서는 3중 형식은 인정할 수 있으나, 바르트가 설명하는 내용은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그 형식 세 가지는 인용하지만, 그 내용은 개혁주의가 주장하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1)계시된 말씀-그리스도;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여기서의 말씀은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계시된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다”(1:1-2)고 했습니다.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그리스도는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고 경배해야 할 존재(대상)이십니다. 계시된 말씀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우리가 경배해야 할 대상입니다.

 

2)기록된 말씀-성경;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전혀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한 치의 틀림이 없는 이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기록입니다. 심위일체 하나님 특히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알려면 성경을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은 대단히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계시된 말씀인 그리스도를 경배하듯, 우리가 성경 자체를 경배하지는 않습니다. 무슬림들이 코란을 경배하듯이,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그렇게 경배하지는 않습니다.

 

3)선포된 말씀-설교; 설교라는 말은, ‘진리가 인격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선포된 말씀인 설교는, 계시된 말씀과 기록된 말씀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설교는 계시의 말씀인 그리스도처럼 경배의 대상도 아니고, 또한 기록된 말씀인 성경처럼 무오하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설교에는 인간의 연약함과 죄악 된 본성 때문에, 잘못이 있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수많은 설교자들의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인간 설교자가 무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지 못하여, 잘못 전하는 경우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이 말씀을 전하게 하기 위하여 당신의 종들을 선택하시고, 그들을 신학교에서 훈련시켜,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라는 사역자로 강단에 세워 주셨기 때문에, 그들이 전해야 할 성경은 곧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분명 설교는 계시된 말씀인 그리스도와, 기록된 말씀인 성경과 구별되지만, 하나님이 당신의 종들을 통해 말씀하시므로, 설교역시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음성으로 들려주시는 직접적인 말씀은 아니고, 종을 통해 말씀하시는 간접적인 말씀인 것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처음에 복음을 들을 때에, 사도 바울의 말로 듣지 아니하고, 사도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옳다, 그리고 그렇게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이 말씀이 역사한다고 했습니다. 설교를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얘기입니다.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 맞다면, 우리는 그 앞에서 경박한 태도를 가질 수 없습니다(28:9-10, 30:8-14, 33:30-33).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설교를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준비 없이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지요. 우리의 마음과 태도가 삐뚤어질 수가 없지요. 시선을 하나님께 둘 수밖에 없으며, 귀를 세속적인 것에 빌려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과 모든 지체를, 오로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과 태도를 보아서, ‘저 사람이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하고 있구나, 그렇지 않구나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설교를 들을 때 사람의 말로 받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게 옳고 마땅한 것입니다.

 

2. 말씀 듣기의 중요성

 

목사님들에게 설교의 은사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진리의 말씀을 성도들에게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와 달란트가 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사람들임으로 반드시 설교의 은사, 가르치는 은사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목사로 선택하셨으면 분명 그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달란트를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학교에서 그 달란트를 계발하도록 교육과 훈련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에게는 듣는 은사가 있을까요? 매 주일, 다른 예배 때에도 말씀을 듣는 성도들의 입장에서도, 당연히 듣는 은사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목사가 교육과 훈련을 잘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선포한다면, 성도들도 듣는 것을 위하여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매 설교 시간을 통하여, 듣기 교육과 후년을 받는 것이지만, 오늘 이 시간을 통해서 더 많은 교육과 훈련을 받아서, 경청이 회복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듣기가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일단 주님이 듣기의 중요성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8장에 보면 예수님께로 씨와 밭의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비유의 초점은 네 가지 마음 밭에 있습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앗은 공중의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바위 위에 떨어진 씨앗은 싹이 났으나 습기가 없어 말라버렸습니다. 세 번째 밭은 가시떨기 속인데, 거기에 떨어진 씨앗은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아서 결실을 못하였고 마지막 좋은 밭에 떨어진 씨앗은 백배의 결실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이 비유가 무슨 뜻인지를 제자들이 물었을 때, 주님이 그 뜻을 차근차근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인데, 이 씨가 길가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었으나 마귀가 구원의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그 마음에서 말씀을 빼앗아갔다고 하셨습니다.

 

바위 위에 떨어진 씨는,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라고 설명하셨습니다.

 

그리고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었지만 생활 중, 여러 가지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하나님의 말씀이 좋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라고 해석을 해 주셨습니다.

 

결국 주님이 이 비유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나 대하는 사람의 마음 상태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가르치고자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듣는가, 말씀을 어떻게 대하는가를 설명하신 것입니다. 길가나 바위 위나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서는 안 되고, 좋은 땅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 착하고 좋음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인내함으로 순종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이 비유의 결론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8:18). 이것은 주님의 말씀을 듣는 태도에 대하여 주시는 경고입니다. 말씀을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듣고, 겸손과 믿음으로 들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항상 이런 마음과 태도로 말씀을 경청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점검해 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열매를 맺을 수 있고, 더 풍성한 은혜와 진리가 더하여 지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명령이 수 없이 많이 나옵니다. 몇 구절만 제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신명기 26:17- “네가 오늘 여호와를 네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또 그 도를 행하고 그의 규례와 명령과 법도를 지키며 그의 소리를 들으라.” 수호수아 3:9-“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리 와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시편 81:13-“내 백성아 내 말을 들으라.” 예레미야 2:4-“야곱의 집과 이스라엘의 집 모든 족속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예레미야 9:20-“부녀들이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너희 귀에 그 입의 말씀을 받으라.” 예레미야 28:7-“너는 내가 네 귀와 모든 백성의 귀에 이르는 이 말을 잘 들으라.” 이런 말씀 외에도 시편과 선지서에서는 말씀을 들으라는 명령의 말씀이 훨씬 더 많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복을 받느냐 아니면 저주를 받느냐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느냐 듣지 않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지키면 복을 받고, 듣지 않고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복과 저주는 말씀을 듣느냐 듣지 않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9:5-“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신명기 13:18-“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서 정직하게 행하면 이같이 되리라.” 신명기 28:1-“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그러나 신명기 28:15-16-“1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16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말씀을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서 복과 저주로 나뉘는 것입니다.

 

다음에 나오는 바울의 말을 보면, 말씀 듣는 것의 중요성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10:17). 그리스도의 말씀을 필연적으로 들어야,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한다면, 구원은 듣는것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 경청이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입니까? 기독교는 듣는 것부터 시작하는 종교입니다. 누군가가 전해주는 복음을 들어야, 그것을 통하여 믿음을 가질 수 있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신앙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고서 계속하여 믿음이 자라나려면, 역시 하나님을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구원을 받는데 필요한 것도 하나님 말씀 경청이고, 구원 그 이후 믿음의 성장과 성화를 위해서도 말씀 경청은 필수라는 것입니다. 결국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이 자라고 건강하고, 성숙한 믿음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것입니다.

 

결국 말씀 경청은 은혜 받고 못 받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서 이것은 내 영혼(신앙)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듣는 것이 우리의 신앙을 결정합니다. 듣는 것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 반드시 그 이전에, 말씀 경청이 필요하고, 신앙의 성장과 성화를 위해서도 필히 말씀 경청이 있어야 하므로, 듣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고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중생과 성화의 역사는, 말씀을 듣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마태복음 13장에서 비유를 말씀하시다가,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느니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으면 그것 자체가 복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말씀 경청의 중요성을 알고, 매 예배 시간마다 설교를 잘 듣는 복된 귀가 있기를 바랍니다.

 

3.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

 

예배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것은, 성경 봉독과 설교입니다. 교독문도 있지만 최근에는 하지 않는 교회가 많아졌습니다. 아무튼 예배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은 3개의 순서를 통하여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배 중 이 시간에 어떻게 말씀을 들어야 할까요?

 

1)기도함으로-말씀을 들을 때 기도해야, 성령께서 잘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 전에 조금 일찍 와서 성령의 조명을 간절히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내 지혜와 능력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깨달을 수 없음으로, 성령의 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2)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앞에서도 데살로니가교회의 예를 말씀 드린 것처럼, 말씀을 들을 때, 설교자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저 설교자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으로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말로 들으면 시험에 들 수 있고, 오해를 할 수도 있고, 말씀의 권위를 약화 시킬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말로 받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살전 2:13).

 

3)사모함으로(간절함으로)-17: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베뢰아 성도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찾듯이,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메마른 땅이 단비를 구하듯, 파수군이 아침을 기다림과 같이 사모하는 마음으로 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사모하는 망므을 만족케 하시고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을 채워주신다고 하셨음으로 설교를 들을 때, 간절함과 사모함으로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4)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님이 현장에서 간음하다가 붙잡혀 온 여인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이 나는 세상의 빛이요 진리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 빛과 진리에 관하여 죽 설명을 해 주셨을 때, 이 말씀을 듣던 많은 사람이 믿었습니다. 그때 주님이 자기를 믿은 그 사람들에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31-32)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이 말씀을 듣던 유대인 중에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를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않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들에게, “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라”(43)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듣지 못하는 것은,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결론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4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셨는데도, 말씀 듣는 자들이 상이한 반응을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이고, 그런 사람들은 말씀을 자기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간에, 이 시간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어야, 깨닫고 회개하고 은혜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다른 예로 역대 하 30:10-12과 롯의 사위를 들 수 있다).

 

5)아멘-고후 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든지 우리에게 아멘이 됩니다. 아멘(옳습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아멘은 내 앞으로 흘러가는 말씀을 끌어 들여 내 마음에 새기는 행위라고 봅니다. 아멘으로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말씀은 그냥 흘러 가 버리는 것입니다.

 

존 파이퍼의 말씀을 듣는 10가지 실제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Take Care How you Listen).

 

결론

 

예수님이 베다니 동네에서 마르다와 마리아를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오셨다고 마르다는 식사대접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예수님 옆에 앉아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르다가 와서 마리아가 식사준비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이때 주님이 마리아는 더 좋은 편을 선택했다고 하셨습니다(10:38-42). 여러분도, 말씀 듣는 더 좋은 편을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5:25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미래에도 이 말씀대로 될 것이고, 현재에도 이 말씀대로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종말의 때와 지금에도,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는자는 살아난다고 하셨습니다. 듣는 자는 그 영혼이 살아납니다. 그분의 말씀은 살리는 말씀입니다. 그분이 말씀하시면 듣는자는 그 육체가 부활합니다.

 

여러분이 설교를 들을 때마다, 말씀 경청의 중요성을 잊지 말고, 앞에서 말한 이렇게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5가지를 꼭 기억을 하고, 앞으로 이대로 말씀을 들음으로, 매 예배 때마다 깨닫고 은혜 받고 살아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 200(달고 오묘한 그 말씀)

 

기도제목/

1. 말씀 경청의 중요성과 원리를 알고, 올해는 말씀경청이 회복되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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