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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05 03 - 아므람과 요게벳의 가정 이정현 목사 2020-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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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출애굽기2:1-10절 개역개정

1.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어

2.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3.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4.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5.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 강 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6. 열고 그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7. 그의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

8.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하매 그 소녀가 가서 그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오니

9.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10.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53, 2:1-10, 아므람과 요게벳의 가정

 

우리교회 5월의 주제는 가정과 가족구원입니다. 이번 한 달을 통하여 가정의 중요성과 가족구원의 가치에 대하여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가정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으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이 사회의 가장 기본 단위입니다. 여기에서 자녀들이 생겨나서 가문을 이루고, 여러 가문들이 생겨서 사회와 국가를 이루고, 그 국가들이 한 세계를 이루어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넓고 광활한 세계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가, 바로 가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이 건강하고 행복해야 사회와 국가가 건강하고, 뿐만아니라 교회도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의 영향력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 부부가 잘못되면 우리 가정 뿐만아니라, 우리 나라와 교회에도 치명적인 영향이 미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의 출생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가 되는 모세는, 어느 부모 밑에서 태어나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어떻게 성장하고 훈련받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모세에게 주의하기보다는, 그를 낳아 기르는 부모에게 초점을 맞추어 살펴봄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모세가 태어날 때 애굽에 있던 히브리인들의 상황

 

출애굽기 2장은 모세의 출생을 말하고, 1장은 히브리인들에 대한 애굽의 정치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장은 2장의 배경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태어나게 되었을 당시에, 히브리인들이 어떤 상황 속에 놓여 있었는지를 살펴보려면, 출애굽기 1장을 보아야 합니다.

 

가나안 땅에 큰 기근이 있었을 때, 애굽의 국무총리로 있던 요셉의 초청을 받아서,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가는 야곱의 가족은 70명이었습니다. 그들이 애굽의 고센 땅에 가서 살다가, 세월이 흘러서 아버지 야곱과 요셉을 비롯한 형제들이 다 죽었고,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등장을 했습니다. 이 새로운 왕이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이 왕에 의해서 히브리인들이 억압과 지배를 받으며, 노예 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심한 노동과 억압으로 인하여 히브리인들이 당한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인구는 엄청난 숫자로 확대되어 갔고 이것은 이집트 사람들에게 두려움이 되었습니다. 히브리인들의 수가 많아져서 저들의 힘으로 애굽을 탈출하거나, 다른 나라와 힘을 합하여 애굽을 칠까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집트의 왕은 인구 증가를 저지하기 위한 방안으로 감독들을 시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고 괴롭히기 시작하였습니다.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는데 히브리인들을 강제 동원시킨 것입니다. 비돔과 라암셋은 한 마디로 큰 도시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것을 건축하는 데 강제 동원되어 학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들은 학대를 받을수록 그 수는 더욱더 번성해 졌습니다.

 

심한 고역과 노동을 시킴으로, 저들의 인구 확산을 막아보려는 왕의 계획이 실패로 끝나자, 이번에는 직접적으로 히브리 산파를 시켜서, 여인이 해산할 때에 아들이면 죽이고 딸이면 살려두라는 명령을 했습니다. 이때의 히브리인의 대표적 산파는 십브라와 부아인데, 이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이를 살려두었습니다. 두 번째 명령은 산파들의 저항으로 계획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왕이 산파들을 불러 추궁하였지만, 산파들은 히브리 여인들은 산파들이 가지전에 이미 출산을 하여 어쩔 수 없었다고 둘러 댔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산파들을 돌보시고 그들의 집을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결국 애굽 왕의 두 번째 계획도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집트 왕은 이제 좀 더 적극적으로 아들이 태어나면 모두 나일강에 던지고 딸이면 살려두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이렇게라도 해서 이스라엘의 번성을 막겠다는 작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번성은 하나님이 그의 조상 아브라함과 약속하신 사항이었습니다. ‘너의 자손을 바다의 모래알처럼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 약속대로 지금 이루어 가시는 것인데, 바로 왕은 이것을 가로막으며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인간의 권력과 지혜로 하나님의 계획을 막으려고 한다하더라도 결코 막을 수 없으며 오히려 인간의 계획은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와 명철과 모략으로는 결코 여호와를 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21:30). 아무튼 모세는 자기 민족이 노예로 고통을 받으며, 이런 위기적이며 생명을 경시하는 참혹한 상황에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2. 아므람이 요게벳에게 장가들어 아들을 낳음

 

모세가 태어나는 시대적 배경은 자유롭고 평안하고 안정된 좋은 환경이 아니었고, 억압받고 두렵고 불안하고 태어나면 버려지거나 죽어야 하는 비참하고 암울한 환경이었습니다. 그가 누구의 집에서 태어나게 됩니까? 본문에서는 한 레위인의 남자가 한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었다고 되어있고, 그 부모의 이름은 나타나지 않다가, 나중에 가서야 아버지는 아므람이고 어머니는 요게벳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6:20, 26:59). 남편인 아므람은 레위의 아들 고핫의 후손이었습니다(6:16, 18). 아므람의 이름은 백성이 높아졌다는 뜻이고 요게벳은 여호와는 영광이다라는 뜻입니다. 두 사람의 이름을 조합하면, 두 사람 사이에서 모세를 낳음으로, ‘여호와의 영광을 드러내고 이스라엘 백성을 드높인 가정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너무나 멋진 부모들의 이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가정의 부모들도 자식들을 낳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대한민국의 명예를 더 높이는 가정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요게벳이 임신하여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전에 이미 이 부부사이에서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누이 미리암과 형 아론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모세의 출생에 대하여서만 기술하는 것은 장차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큰 역할을 감당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의 형이 이미 태어났다면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그를 죽이라고 했던 바로의 명령을 형은 어떻게 피할 수가 있었을까요? 아마도 모세가 태어나기 직전에 바로의 이런 명령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래서 모세가 태어났을 때에는, 그가 남자임으로, 살 수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나일강에 버려야만 합니다. 갓난아이를 강에 버리게 되면 그것은 순간 물고기 밥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이 아이는 얼굴이 잘생겼다고 했습니다. ‘잘 생겼다는 말은 보기에 좋다는 말로,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마치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신 것과 같은 뜻입니다. 이 표현은 모세의 출생이 또 다른 창조, 즉 이스라엘 민족의 창조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부모는 모세의 아름다움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서 키웁니다. 이 부모는 애굽의 최고 권력자인 바로 왕의 명령을 어기면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생명을 지키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가정의 핵심은 생명을 낳고 키우며 지켜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타고난 부모의 마음이자 책임입니다. 가정에 주어진 생명은 하나님의 선물이자 축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중하게 다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아이를 숨겨서 키울 수가 없어서, 그를 나일강에 떠내려 보내기로 했습니다. “3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4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부모들은 그 아이가 자기 품 안에 있을 때뿐만 아니라, 강물에 떠내려 보내면서도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나, 살아날 수 있는 가능성을 최대한 높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묘안이 갈대 상자를 만들어 아이를 그 안에 넣어서 요단강에 띄어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에 의해 발견이 되면 아이가 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해서 이렇게 한 것입니다. 이 갈대 상자는 방수를 위하여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였다고 했습니다. 이 일은 아버지가 주로 했다고 봅니다. 갈대를 베어 와서 그것을 잘게 잘라서 말리고, 그것을 엮어서 아이가 들어갈 수 있는 상자를 만드는 것입니다. 상자와 뚜껑까지 다 만들고, 이제는 역청을 캐오고, 산에 올라가서 나무진을 따와서, 그것을 뜨거운 불에 잘 녹여 페인트처럼 만들어서, 여러번 칠한 것입니다. 역청은 콜타르를 말하고, 나무진은 나무에서 나오는 진한 액으로, 이것들은 모두 방수제와 방부제로 널리 사용되던 것들입니다. 상자 안으로 물이 새어 들어오지 않도록 꼼꼼하게 방수제를 바른 것입니다. 이것을 따뜻한 햇빛에 정성스럽게 잘 말려서 하나의 갈대 상자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의 갈대 상자를 원문에 테바라고 하는데 이는 상자를 말하고, 노아 홍수 이야기에서 방주를 가리키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여기의 갈대 상자와 방주는 같은 의미의 단어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아이의 부모는, 홍수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어갈 때, 방주 안에 탄 노아의 식구들이 생명을 건짐 받았듯이, 갈대 상자 속에 있는 이 아이의 생명을 구해 주실 것을 믿으며 이 상자를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 방주가 배가 아니듯, 여기의 갈대 상자도 돛단배가 아닙니다. 달리 말해 이것은 앞뒤 구분도 없고,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아무도 모르고, 오로지 하나님의 인도대로 흘러갈 뿐이라는 말입니다.

 

이 갈대 상자에 아이를 넣어서 나일강가 갈대 사이에 두었습니다.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서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 이름이 미리암인데 유대 미드라쉬에 의하면 아므람과 요게벳 부부 사이의 첫 번째 자녀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둘째가 아론이고 셋째가 본문의 모세가 되는 것입니다. 이 당시 미리암의 나이는 14-5세 정도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누나 혼자 이렇게 한 것은 아닌 것 같고, 아마도 그 부모님들이 시켜서 이렇게 하였을 것으로 봅니다. 아무튼 동생의 갈대 상자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바로 그때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강으로 나왔다가 그 갈대 상자를 본 것입니다. 시녀들보고 저 상자를 가져오라고 했더니 가져와서 그 상자를 열어보니까 3개월 된 남자 아이가 있었고 그 아기는 울고 있었습니다. 바로의 딸 공주는 그 아기를 불쌍히 여기며,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라고 말합니다. 새로운 생명을 바라보던 바로의 딸은 불쌍한 마음을 가졌고 또한 히브리 아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더불어 자기 아버지 바로 왕의 지엄한 명령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에게 연민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때 그 일련의 광경을 다 지켜보고 있던 누이 미리암이 공주 하셉수트에게 접근합니다.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 미리암은 왜 하필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찾아보겠다고 했을까요? 당시 비록 종으로 살았지만 히브리인들은 자기의 자식들을 기르면서 이방인들의 젖을 먹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부정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꼭 집어서 미리암은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찾아서 이 아이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라고 했던 것입니다.

 

공주가 이를 허락하자, 그 소녀는 자기 어머니이자 모세의 생모를 불러와서 공주에게 유모로 소개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모르고 바로의 딸은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인 중에는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 모세는 생명을 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오게벳은 공주로부터 삯을 받아가면서 젖을 먹이고, 자기 손으로 자기 아들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여기 젖을 먹이라는 말은 단순히 수유만 하라는 뜻이 아니라, 양육하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왕의 지엄한 명령 때문에 왕궁에서 히브리 남자를 키울 수 없었기 때문에, 요게벳은 자기 집에서 공주의 위탁을 받아 자기 아들을 키우게 된 것입니다. 더더구나 히브리인이 히브리 아이를 키우면 아이를 키우면서도 고된 노역에 나가야 했지만, 공주의 위탁을 받아 아이를 양육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노역장에 나가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아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누나는 누나대로, 온 가족들이 힘과 지혜를 모아 최선을 다해서 한 생명을 살려보겠다고 노력했는데, 하나님이 그들에게 기가 막힌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계획 가운데서, 모세의 생명은 건짐을 받았고, 친모의 젖을 먹으며 바로의 딸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3. 공주의 아들로 성장하는 모세

 

모세가 태어났을 때 그 부모는, 아이의 아름다움을 보고 석 달을 숨겨서 키웠다고 했는데, 이 때 그 부모는 믿음으로 이 일을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부성애나 모성애로 하지 않고 믿음으로 이 일을 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11:23). 부부는 단순한 감정이나 느낌이 아닌, 임금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으로 아이를 숨겨서 양육했고, 그렇다면 갈대상자를 만들어 아이를 그 안에 넣고 물에 떠내려 보내는 것도 역시 믿음으로 했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이의 생명을 지키며 3개월을 키우고, 다시 그 아이를 공주로부터 위탁받아 키우게 되는데, 역시 그 부모들은 믿음으로 그 아이를 양육했을 것입니다. 3년만 맡아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족들은 기도하면서 믿음으로 정성과 심혈을 기울려 아이를 키웠을 것입니다.

 

이 기간 동안 요게벳에게서 모세는 무슨 교육을 어떻게 받았겠습니까? 3살 때까지 교육을 받아봤자 얼마나 받았겠습니까? 그러나 유대인들의 유아교육은 우리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기간에 언어를 가르쳐 줍니다. 히브리어 알파벳을 가르쳐 줍니다. 항상기도해 주고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자기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이야기해 줍니다. 특히 요셉의 일대기에 대하여 수십 번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히브리인들의 민족정신과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라는 점, 언젠가는 우리가 약속의 땅으로 갈 것이라는 점을 이야기 해 줍니다. 그러니까 모세의 부모들은 3년 동안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이 사실을 말하고 가르쳤을 것입니다.

 

10절의 말씀으로 가겠습니다.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아이가 자랐다는 말은 젖을 먹지 않아도 될 나이가 되었다는 말인데 보통 3살 때를 가리킵니다. 아므람과 요게벳이 3년 동안의 양육과 교육을 담당하고 그 다음에는 공주에게 양육권을 넘기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실제로 바로의 딸이 모세의 엄마이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의 공주는 모세를 왕궁에서 모든 학문을 좋은 조건하에서 잘 교육하였습니다. 앞으로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언어와 정치, 경제와 군사, 문화와 교육 등등의 학문을 배워야만 했습니다. 모세는 애굽 왕실 가족으로 자라면서 당대 최고의 학문을 차근차근히 배웠을 것입니다. 1세기 유대인 사상가요 저술가인 필로(Philon)모세가 음악, 기하학, 수학, 과학, 예술 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인물이었다고 설명하는 것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세가 장성하였을 때 어떤 결과로 나타났습니까? 우선 바로의 궁정에서 세상 학문을 배운 결과로는,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한 것”(7:22)으로 나타났습니다. ‘말과 행사에 능하였다는 것은 모든 일에 대한 이론과 실천의 능력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그처럼 모세는 왕궁교육, 즉 세상 교육을 잘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어릴 때 자기의 부모로부터 받았던 신앙교육의 결과로는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모세가 장성하여 자기 백성들을 돌아볼 생각을 가졌다는 데서, 그는 자라면서 계속 히브리민족의 민족정신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더 나아가서 그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믿음으로 고난받는 길을 선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11:24-26). 그는 믿음으로 공주의 아들됨을 거절하였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들과 고난받는 것을 더 좋아하였고,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욕 받는 것을 더 큰 보상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도 이 부분을 이렇게 설명을 하였습니다. ‘당시 바로에게는 아들이 없었고 그의 딸인 공주에게도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모세가 그의 왕위를 계승하는 것은 당연하다. 모세가 장년이 되어 이런 제의를 받았을 때 모세가 거절했다는 말이다. 이 거절은 부와 영화와 권세뿐만 아니라 보좌도 거절한 것이다.’ 실제적으로 모세는 믿음으로 애굽의 왕위를 거절했다는 말입니다.

 

부모가 믿음으로 아이를 숨겨서 키우고, 믿음으로 아이에게 유아교육을 했더니, 그 아이도 믿음으로 자라서, 믿음이 성숙한 결단을 함으로, 훌륭한 민족의 지도자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키운 아이가, 믿음으로 행하는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결론

 

이스라엘 사람들은 구약의 인물 중에 가장 훌륭한 인물로 모세를 꼽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째는 광야 40년 동안 우리 민족을 지혜롭게 인도하여 가나안 땅까지 이끌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율법을 받아서 우리 민족에게 주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느 사람이 모세에 관하여 이렇게 표현을 하였습니다. “모세는 인품에 있어서, 믿음에 있어서, 구약의 언약의 중재라로서, 그에게 주어진 독특한 직위에 있어서, 그리고 공적에 있어서, 구약성경의 영웅들 중에 선두에 선다.” 모세를 다른 사람들과 다방면에서 비교해 보더라도, 당연 최고의 인물이라는 말입니다.

 

할데만(I. M. Haldeman)이라는 사람이, 모세의 생애 전체를 두고 이렇게 대조한 글을 썼습니다. “그는 노예의 자녀였으나 여왕의 아들이었다. 그는 오두막에서 태어났으나 궁중에서 살았다. 그는 가난을 물려 받았으나 극도의 부를 누렸다. 그는 군대의 지도자였으나 양떼를 지키는 자였다. 그는 능한 전사였으나 가장 온유한 자였다. 그는 궁정에서 교육을 받았으나 광야에 거했다. 그는 애굽의 지혜를 가졌으나 어린아이 같은 믿음을 가졌다. 그는 도시 생활에 익숙하였으나 광야에서 방황했다. 그는 죄악의 즐거움의 유혹을 받았으나 덕행으로 어려움을 견디어 내었다, 그는 말에 어눌했으나 하나님과 이야기 했다. 그는 목자의 지팡이를 가졌지만 무한한 능력을 가졌다. 그는 바로로부터 망명자였지만 하늘의 사신이었다. 그는 율법의 증여자였으나 은혜의 선구자였다. 그는 모압산에서 홀로 죽었으나 그리스도와 함께 유대에 나타났다. 아무도 그의 장례를 거들지 않았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장사하셨다.”

 

모세는 이처럼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이요 민족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모세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누가 모세가 이런 인물이 되게 하였습니까? 물론 하나님이십니다. 그를 들어 쓰시기 위하여 이런 인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중에 이 가정을 다스리시고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분문에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말해 모세의 출생과 성장까지의 일거일동에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역사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이 모세라는 생명을 아므람과 요게벳의 가정에 주셨을 때, 그 가족 구성들이 그 생명을 보존하려고 얼마나 믿음으로 애썼는지, 다시 그 생명을 위탁받았을 때는, 그를 믿음으로 양육하고 교육하는데 얼마나 애썼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보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도 한 아이가 태어나면, 생명은 하나님의 축복이며 선물인 줄 알고, 끝까지 그 생명을 잘 보존하도록 온 가족이 믿음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아이를 낳았다고 부모의 책임이 끝나는 게 아니고, 그 생명을 보호하고 보존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그 아이를 믿음으로 양육하고 교육하는 책임도 부모에게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이를 보살피고 믿음으로 교육하면, 그 아이가 믿음의 사람이 되고, 믿음으로 결단하고, 믿음의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부모들의 이 책임을 잘 감당함으로, 여러분의 가문에서도, 모세처럼 만인의 존경을 받는 이 민족의 훌륭한 지도자가 배출되기를 바랍니다.

 

 

 

GS/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559)

 

기도제목/ 우리의 기장이 아므람과 요게벳의 가정처럼, 믿음으로 자녀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자녀들을 믿음으로 양육하여, 그들이 믿음의 사람이 되어 믿음으로 일하는 큰 일꾼이 되게 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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