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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04 19 - 베드로가 전한 복음의 핵심 이정현 목사 2020-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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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도행전2:22-36절 개역개정

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25.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26.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27.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28.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

29.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30.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31.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419일 행 2:22-36, 베드로가 전한 복음의 핵심

 

4월의 주제는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첫째 주에는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전인격적인 고난에 대하여 말씀을 들었습니다. 지난주에는 부활주일이었기 때문에 부활에 대한 두 가지 소문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들었습니다. 지난 두 주간의 주제가 십자가와 부활인데, 이 두 가지를 합하면 바로 복음의 핵심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십자가와 부활, 즉 복음의 핵심을 설교한 베드로의 모습을 살펴봄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사도행전에는 베드로와 바울의 설교가 많이 나타납니다. 베드로의 설교만 보더라도 무려 9편이 나타나는데, 그 중에서 성령강림 사건 이후 처음으로 설교한 것이 본문의 베드로의 설교입니다. 이 설교는 가장 바람직한 모범적인 설교이며, 가장 효과적인 능력 있는 설교였다고 평가됩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2장을 근거로 베드로의 가장 모범적이고 효과적인 설교를 고찰함으로 은혜 받고자 합니다. 사도행전 2장 전체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베드로가 전한 복음의 핵심을 살펴보겠습니다.

 

1. 베드로는 오순절의 성령 충만은 요엘의 예언 성취라고 말합니다(1-21).

 

마가의 다락방에 120명의 성도가 적어도 10일 정도 한마음 한뜻으로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이 그들 위에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각 사람이 성령의 충만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미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던 아버지의 약속이 이 땅위에 성취된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의 결과로 제자들은 다른 언어를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4). 4절의 다른 언어6절에서는 자기의 방언이라고 했고, 8절에서는 난 곳 방언이라고 표현했고 11절에는 우리의 각 언어라는 말로 표현을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방언인데, 이때의 방언은 일종의 외국어였다고 봅니다. 제자들이 스스로 공부해서 터득한 언어가 아니라 성령이 필요하여 제자들에게 외국어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원문의 방언을 그로싸이스라고 하는데 이는 다른 말’(other tongues)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새 번역에서는 다른 나라 말, 공동번역에서는 여러 가지 외국어라고 번역을 하였습니다. 칼빈(Calvin)도 이것을 분명히 외국어라고 했고, 로버트슨(Robertson)은 이 부분에 관해 그들이 전혀 배우지 않은 언어, 그러나 실제의 언어로서 그들의 인접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라고 함으로 그도 역시 방언을 다른 나라 말이라고 해석하였습니다. 제자들은 대부분 갈릴리 출신들인데,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아닌 외국어로 유창하게 말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당시는 유대인들의 명절인 오순절을 지키기 위하여 전 세계 16개국(지방)에서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몰려와 있었습니다. 각 나라의 이름들이 9-11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9-11). 이 지역들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당시 세계 전역에 걸친 곳입니다. 그리고 이 민족들이 주로 사용하는 언어는 셈어, 아람어, 헬라어 그리고 라틴어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성령 충만을 받은 제자들이 오순절에 참여하기 위해 온 열방의 유대인들에게 적어도 4-5개 지역의 말로 말한 것입니다. 제자들은 전혀 배우지도 알지도 못한 말을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했을 때, 각 지방에서 온 사람들은 자기들의 언어이니까 듣고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듣는 이적(miracle of hearing)이 아니라 말하는 기적(miracle of speaking)인 것입니다

 

제자들이 방언으로 말한 것은 하나님의 큰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11).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큰 일은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 사역을 말하는데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가리킨다고 봅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하시기 위하여 다시 살아나게 하신 것이 곧 하나님의 큰 일인 것입니다. 바로 오순절 축제에 참여한 수많은 외국 사람들에게 이 하나님의 큰 일을 방언으로 말하게 되었고 각 지방 사람들은 자기들 언어로 듣게 된 것입니다.

 

곧 방언으로 전도한 것입니다. 이들은 대부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기 때문에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16개의 지방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왔다가 제자들로부터 난곳 방언으로 복음을 들었던 이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으로 각 지방으로 다시 흩어져서 자기가 살던 그 지방에 가서 복음을 확산시켰다는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특히 지금의 터키 동부지방의 갑바도기아라는 곳에 가면 초기 기독교인들이 동굴 속에서 예배를 드리며 공동체 생활을 했던 유적들을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제가 몇 년 전에 이곳을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사역을 하던 선교사님의 설명을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갑바도기아 그림과 유적지 사진)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들었던 다은 사람들의 반응은 놀랐고 당황했으며 더 나아가서 제자들을 조롱하기까지 했습니다. “12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12-13). 그들은 놀라며 당황했고 또한 조롱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새 술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글루코스인데 이는 아직 발효되지 않은 포도 주스를 말합니다. 그래서 어떤 영어 성경에서는(NASB) 이것을 sweet wine(향긋한 술)이라고 번역을 하였습니다. 헬라어 글루코스에서 영어 glucose(포도당)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이것을 볼 때 새 술이라는 말보다는 달콤한 포도주스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아무튼 순례자들은 가장 거룩한 성령의 역사를 가장 속된 말, 즉 술 취하였다고 비평을 한 것입니다. 마치 영적 통찰력이 결여된 엘리 제사장이 기도하는 한나에게 취하여 있지 말고 포도주를 끊으라고 말한 것처럼, 순례객들은 방언으로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에게 새 술에 취하였다고 조롱을 한 것입니다.

 

이 조롱이 계기가 되어 베드로의 설교가 시작됩니다. 베드로의 설교는 구약성경을 인용한 핵심이 분명한 논리 정연한 설교였습니다. 이 사건이 술 취한 사건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베드로는 지금의 시간이 제 3시이기 때문에 술 먹고 취할 시간이 아니라는 말로 변호를 합니다. 여기서의 3시는 현대 시간으로는 오전 9시를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이나 오순절 같은 중요 절기 때에는 오전 10시까지 금식을 합니다. 그런데 지금 오전 9시에 술에 취하여 횡설수설한다고 하면 말이 되겠습니까? 그리고 삼시 세끼 술 먹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지금 오전 9시에 술 취하여 있는 사람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것도 120명이 다 오전 술에 취하였다고 말하면 되겠습니까? 그래서 베드로는 술 취하였다고 조롱하는 그들에게 이들은 술 취한 게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본문의 사건이 구약성경의 예언 성취라고 주장을 한 것입니다. 이 일이 있기 약 800년 전에 하나님이 요엘 선지자를 통하여 이렇게 예언을 하셨습니다. “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30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31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2:28-31). 사도 베드로는 요엘서의 이 말씀을 그대로 인용해서 예루살렘에 모인 회중들에게 증거 한 것입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내가 만민에게 내 영(성령)을 부어주겠다, 그 성령을 받은 너희 자녀들은 예언하고, 늙은이는 꿈을 꾸고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다. 내가 기사와 징조를 베풀 것이며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요엘 선지자의 예언이 지금 이곳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엘의 예언 성취로 사도행전 2장 사건이 일어났다고 하면서, 실제적으로 방언에 관한 얘기는 하지 않은 것입니다. 다만 오래전에 예언된 하나님의 약속이 이제야 그것이 역사적으로 이루어졌음만을 증거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방언 말하는 것을 술 취한 행위로 조롱한 것은 이미 지금은 술 취할 시간이 아니라는 말로 종결을 지은 것입니다.

 

결국 성령 충만과 방언 사건은 인위적이거나 술 취한 현상이 아니라 예언 성취로서 성령 충만의 결과라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2. 베드로는 청중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 합니다(22-36).

 

앞에서 오순절 성령강림은 구약 요엘의 예언의 성취라고 진술한 베드로는, 이제 청중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 합니다. 방언으로 전도한 사건을 말한 사도는, 22절 이하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합니다.

 

예수님은 3년 동안의 공생애 기간 동안에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통하여 자신이 하나님이 보낸 메시야임을 밝히 드러내셨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주어진 사역을 잘 감당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어리석게도 이러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게 된 것은 우연한 사고나 무력에 의한 것이 아니고 사실은 하나님의 정하신 뜻 가운데 내어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이 정하신 뜻 가운데서 십자가에 달리시어 죽었습니다. 본문에서 베드로는 이 사실을 몇 구절을 통하여 반복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24절에서는 그의 사망이라는 말을 두 번이나 사용하셨고, 36절에서는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라는 말로 주님의 죽음 또는 십자가에 대하여 진술하였습니다. 이처럼 베드로는 예루살렘 순례객들을 향하여 주님의 죽음, 대속의 십자가, 우리를 위한 대속적 희생 제물에 대하여 말을 하신 것입니다.

 

다음으로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는데, 죽음보다 부활을 훨씬 더 강조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24절에서 시편을 인용하여 하나님이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다고 했고 27절에서는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라고 하셨고 29절에서 다윗은 미리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견했다고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그리고 32절에서는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고 하셨고, 36절에서는 십자가에 죽은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사)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청중 앞에서의 이같은 진술들은 자기의 말이 아니라 구약성경 시편 16편에 예언된 말씀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앞에서는 요엘서 2장의 말씀을 인용하여 성령 충만이 인위적이거나 술 취한 현상이 아님을 증명하더니, 이제는 다윗의 시편을 근거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파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요엘서 2장을 근거로 현 상황을 변호했고, 시편 16편의 말씀을 근거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언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분명히 32절에서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라’(32)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강림, 주님의 죽음과 부활 이 모든 일에 있어서 나뿐만 아니라 여기 성령 충만을 받은 우리 모두는 이 일에 증인이라는 말입니다. 이들의 이 증인 된 삶은 어느 때까지 가다가 중단 될 일이 아니라 영원토록 계속될 일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말하다가 성령강림 사건과 연결시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33). 부활하신 주님이 40일간 이 땅에 계시면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셨습니다. 그런 후 하나님이 홀연히 그를 하늘나라로 데려 가셨습니다.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내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데, 내가 올라가야 아버지께 구하여 보혜사 성령님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7입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한복음 14장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16-17). 예수님이 아버지께 구하여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시는데, 그게 요엘의 예언이고, 아버지의 약속이며, 바로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라는 말입니다.

 

베드로는 여기서 성자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영광스러운 부활에 관하여 분명히 선포했으며 이어서 그 주님이 보내신 성령 임재 사건이 곧 오순절 성령 충만 사건임을 전파한 것입니다. 그는 이 모든 것의 증명을 자의로 말하지 않고,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여 입증을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의 설교는 신빙성이 있고 능력이 있고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3. 베드로가 설교한 결과는 무엇입니까(37-41).

 

베드로가 이처럼 구약 말씀을 근거로 오순절 성령 충만 사건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힘 있게 전파하였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났습니까?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사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복음의 핵심에 관해 들을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그들은 베드로의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찔렸다고 했는데, 이 말은 말()이 달리면 말발굽에 의해서 땅이 파이듯, 베드로의 메시지로 인하여 양심의 가책을 느껴 마음이 움푹 파였다는 의미입니다. 사도가 전한 복음의 핵심이 그들의 마음을 후벼 판 것입니다. 이성적으로 큰 찔림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을 붙잡고 물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이 말에는 두 가지 물음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나사렛 예수를 죽인 죄가 이처럼 큰 죄가 되는 줄을 몰랐는데 그러면 이미 저지른 이 죄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앞으로 이런 죄를 범하지 않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과거와 미래의 문제를 함께 묻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찔림을 받은 사람들이 이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의미를 담아 구도자가 물었던 이 질문에, 베드로는 명확한 진리를 말해 줍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38, 40)고 했습니다.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고 성령을 받고 구원을 받으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어찌할꼬는 죄 문제를 가슴 아파하며 어떻게 행하여야 하는지를 묻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답도 역시 회개와 죄사함과 구원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물었던 구도자에게 베드로는 분명하게 그 해답을 주었던 것입니다.

 

구언과 관계하여 회개, 믿음, 성령에 대한 이 메시지는 참으로 중요한 교리적 설교입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의 대상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우리 하나님이 부르시는 모든 자에게라는 사실을 통하여 선택적 구원을 가르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선택적 구원은 구원인데, 이스라엘 자손들뿐만 아니라 그들로부터 먼 곳에 있는 이방인들에게도 이 복음은 적용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과거, 현제 그리고 미래, 각 지역에 속한 모든 선택자들에게 이 복음이 전파되어, 믿는 자들을 일으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도의 말을 들었던 사람들은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되었는데, 하루에 3천 명이나 더하여졌습니다. 초대교회에 폭발적인 수적인 부흥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들이 모여서 아름다운 신앙공동체를 이루게 됩니다. 거기에는 가르침과 교제가 있고, 기도와 표적이 있고, 물건 공유와 모이기에 힘씀과 사랑의 나눔이 있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찬미하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듣게 됨으로 구원받는 사람의 수가 날마다 늘어나게 되었습니다(42-47). 초대교회는 외적으로 놀랍게 성장하였고 내적으로도 아름답게 성숙하여 가장 이상적이고 모범적인 교회가 된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면 거기에는 회개와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바르게 능력 있게 전파되기만 하면, 그 말씀에 마음의 찔림이 일어나고 죄를 자복하는 진정한 회개가 일어나고 예수를 주로 믿고 세례를 받고 구원을 받아 멋지고 아름다운 신앙인으로 성장, 성숙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외적으로 성장하고 내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것도 강단에서 복음의 핵심이 바르게 전파될 때 가능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가 전파되지 않고 예수가 없이는 구원 받을 자가 없고 또한 교회가 부흥할 수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에 의해서 복음의 핵심인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전파되었을 때 거기에는 놀라운 내외적 부흥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결론

 

베드로 사도는 위대한 설교를 하였습니다. 성경을 근거로 요엘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증거 하였습니다. 너희들이 보는 이 같은 현상은 술 취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이 임한 현상과 결과임을 전하였습니다. 또한 시편을 근거로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셨고 하나님이 그를 높이 세워주셨으며 아버지의 약속을 그를 통하여 모든 성도들에게 부어주셨음을 분명히, 담대히 전파하였습니다.

 

성경적인 설교가 행하여졌을 때 나타난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회개의 역사로 하루에 3천명이 주 앞으로 나오게 됨으로 초대교회가 대 부흥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듣고 회개하게 되는 것은 분명 내적인 부흥이고 그런 자들이 다함께 하나님 앞에서 교제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며 교회의 제 기능을 역동적으로 감당하는 것은 분명 외적인 부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말씀을 통한 내외적 부흥의 역사가 일어남으로 교회가 평안히 든든히 서 가게 된 것입니다.

 

예일대학교의 야로슬라프 펠리칸(Jaroslav Jan Pelikan) 교수님이 예수의 역사 2000”(Jesus through the Centuries)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것은 예수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역사를 문화사적 측면에서 고찰한 책입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서 세계 역사라는 것은 곧 예수님의 역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세계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해석의 역사라는 것인데, 이는 예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예수를 어떻게 받아 들였느냐? 예수를 거절했느냐, 아니면 충성을 다했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겁니다. 또한 예수를 받아들였다면 어느 정도 받아들였느냐에 따라서 그 나라의 문화나 역사가 결정되었고, 그 나라의 정치 경제가 번영했다는 겁니다. 예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역사의 방향이 결정되었다는 겁니다.

세계 역사를 조금이라도 배운 분이라면 이 말에 동의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의 흐름을 주도했던 나라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 나라들은 한결같이 예수를 받아드린 나라들이었습니다. 옛날 로마가 그랬고 독일이 그랬고 영국이 그랬고 오늘날 미국이 그렇습니다. 이러한 것은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떻게 받아드리고 계십니까? 예수님을 어떻게 고백하고 계십니까? 세계 역사는 변함없이 예수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아니 예수님이 다스리시고 통치하고 계시는데 여러분의 기준이 무엇이냐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받아드렸느냐에 따라서 한 나라의 흥망성쇠(興亡盛衰)가 달려있듯이, 믿음생활하고 있는 저와 여러분들도 예수를 어떻게 받아드리느냐에 따라서 한 사람의 삶의 흥망성쇠가 달라지리라고 생각합니다.

구원의 문제에 정답은 예수 밖에 없습니다. 내 인생의 진정한 성공여부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아무리 기독교가 독선적이고 배타적이라고 해도 정답은 기독교 밖에 없습니다. 예수를 믿지 아니하면 구원이 없고 인생을 성공할 수 없다는데, 다른 방법이 없는데 어떡합니까? 하나님이 구원과 인생의 문제를 출제하시고 그 대답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4:12).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15:5).

 

본문의 베드로처럼 복음의 핵심인 예수를 믿고, 그 복음의 핵심을 알고, 복음의 핵심에 순종하고, 복음의 핵심을 전파하며 살아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더욱더 확장시켜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GS/ 오 주님께서 나를 살리셨네. 


기도제목/ 복음의 핵심을 붙들고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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