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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03 22 - 찬송의 대상, 하나님 여호와 이정현 목사 2020-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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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137:1-9절 개역개정

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2.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3.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4.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5.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6.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7.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그들의 말이 헐어 버리라 헐어 버리라 그 기초까지 헐어 버리라 하였나이다

8. 멸망할 딸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복이 있으리로다

9. 네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는 복이 있으리로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137:1-9, 찬송의 대상, 하나님 여호와

 

3월의 주제가 기도와 찬송입니다. 그래서 지난주까지는 기도에 관한 말씀을 드렸고, 오늘과 다음 주에는 찬송에 관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나라로 잡혀 갔습니다. 3차에 걸쳐 이방 나라에 포로로 잡혀 간 것입니다. 그 때가 BC 606-586년 사이입니다.

 

이들이 이방인들의 손에 팔려간 이유가 무엇입니까? 단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고, 우상숭배를 비롯하여 각 종 죄악을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두고, 자기들 마음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멸시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하였기 때문에, 이방인의 포로가 되어 갔던 것입니다.

 

이들이 포로로 잡혀가서, 먼 이국 땅에서 어떻게 살아갔겠습니까? 먹을 것, 입을 것, 잠잘 곳이 제대로 있었겠습니까? 이방인들로부터 인권을 보장받았겠습니까, 대우를 제대로 받았겠습니까? 정말로 비참하게, 고통 가운데, 하루하루를 눈물로 살았습니다. 본문 1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바벨론의 강가에서 고국을 생각하며 울었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날마다 이런 모습으로 살았을 것으로 봅니다.

이들이 이방 땅에서 70년 동안 살면서, 깊이 있게 생각한 것이 3가지 있었습니다. 1)성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겠다던 이 성전이, 어떻게 이방인의 손에 의해 파괴될 수 있는가? 우리가 다시 성전을 재건할 수 있을까?

 

2)왕위입니다. 영원히 계속 될 것이라는 다윗의 왕위가, 남 유다 20대 왕이었던 시드기야로 끝이났으니, 과연 누가 그 왕위를 이어갈 것인가?

 

3)하나님입니다. 우리를 이방 나라에 팔아버리신 하나님은, 과연 살아계시는가? 우리 민족의 신이 맞는가?

 

바벨론 포로지에서 유다 백성들은 이런 문제를 깊이 생각하다가, 그들은 많은 것을 깨닫게 되고, 정신을 차리고, 회개하고, 나름대로 신앙을 회복하게 됩니다.

 

오늘 시편 137편의 이 말씀은, 유다 백성들의 바벨론 포로 중, 거의 마지막 즈음에 쓰여졌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시를 통하여,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지에서 당하였던 수모와 수치를 보게 됩니다. 동시에 그들은, 그런 고통과 역경 가운데에서, 어떻게 신앙생활 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을 통하여 이런 면들을 살펴보면서, 오늘 우리가 이 세상에서, 비록 환경은 어렵고 힘들다 할지라도,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경배하며 어떻게 찬송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찬송하기를 참 좋아했습니다. 그들은 예배 중에도 시편을 노래했습니다. 아예 레위지파 중에서, 노래하는 자들을 따로 세워서, 찬양하게 했습니다. 수백명에서 수천명에 이르는 여호와 찬양하기를 배워 익숙한 자들이 웅장하게 하나님을 찬양했던 것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오래 전부터, 예배 중 찬양대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목동들이 양을 치면서도, 악기를 치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즐겁고 좋은 일이 있을 때에도, 노래를 부르며 찬송했습니다. 학교에서도 노래와 악기를, 많이 가르치고 배웠습니다. 이스라엘은 노래와 시를 좋아했던 민족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세계 여러 민족들 중에 특히, 아프리카 민족들도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의 예배 시간은 대부분 긴 편인데, 60-70%가 찬송과 춤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전부 일어나서 함께 춤을 추며, 박수를 치며, 환호하며 찬양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도, 노래를 좋아하는 민족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나라의 창은, 세계의 노래 중에, 가장 긴 노래에 들어갑니다. 한번 했다하면, 긴 것은 30분에서 1시간 동안, 창을 부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노래가 꺽이는게 많은데, 그것을 외국 사람들이 절대로 흉내 내거나, 따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렴 그렇지... 한 오백년 사자는데 왠 성화뇨...

 

본문과 연관해서 이처럼 찬송을 좋아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지에 가서도 하나님 앞에 찬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수금을 타면서 시편을 노래했던 것입니다. 바벨론의 노예로서 심한 노동을 하면서도, 중간 중간 쉬는 시간에 몇 사람씩 모여서, 수금을 타며 찬송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일과가 다 끝나면 강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예르살렘을 바라보며 찬송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지켜보고 있던 바벨론 사람들이, 그 노래가 너무 듣기 좋고 감미로우니까, 우리를 위해서, 그 노래 좀 불러달라고 한 것입니다. 바벨론 사람들이 노래를 요구한 것이, 단순히 듣기 좋고 감미로웠기 때문만은 아니고, 새롭고 흥미로웠을 뿐만아니라, 포로자들에게 노래를 시켜서, 승리자의 우월감을 들어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유대인들에게 노래를 요구한 것입니다. 3절 말씀입니다.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정복자가 포로자들에게 노래를 시키면, 당연히 그들은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2절에 보면, ‘버드나무에 수금을 걸어버렸습니다.’ 유대인들은 비록 포로로 잡혀 온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을 위해서(바벨론 사람들의 흥을 돋구기 위해서), 찬송을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악기를 연주할 수 없다고, 수금을 버드나무에 걸은 것입니다. 여기 수금을 나무에 걸었다라는 말은 내 악기를 나무에 잠시 걸어두었다는 표현이 아니고, 다시는 내리지 못하도록 나뭇가지에 걸어서 줄로 꽁꽁 묶어 두었다는 뜻입니다. 이는 저들을 위해서는 절대로 이 수금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긴 말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바벨론 사람들은, 계속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너희들이 부르는 그 노래를, 불러 달라는 것입니다. 정복자의 요구를 계속 듣게 된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올려야 할 찬송을, 이방인들의 흥미를 위해서 결코 부를 수 없다고, 단호히 말하기도 합니다. 4절과 5절입니다.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5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유대 사람들은, 비록 포로로 잡혀 온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이방 땅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부르는 여호와의 노래를, 어찌 부를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차라리 내 오른 손의 재주를, 잊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말씀인지 아십니까? 내 오른 손의 재주는, 수금을 탈 수 있는 기능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수금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지 못하고, 너희 폭군들을 위하여 노래하라고 한다면, 차라리 이 수금 타는 기능을 잊었으면 좋겠다는 말입니다. 너희들을 위하여 연주할 바에는, 차라리 내 모든 재주를, 잊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유대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루살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께 대한 찬송을 잊어버리고, 너희들을 위하여 찬송을 부름으로, 너희를 즐겁게 할 것 같으면, 차라리 우리의 혀가 입천장에 붙었으면 좋겠다.  ‘혀가 입천장에 붙는다 것은, 말도 못하고 찬송도 못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올려야 할 찬송을, 하나님께 드리지 못하고, 바벨론 너희들을 위하여 찬송하라고 한다면, 차라리 벙어리가 되기를 바란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유대인들은, 비록 먼 이방나라로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이긴 하여도, 그들의 신앙의 대상과 찬송의 대상만큼은 분명하였습니다. 그들은 이국 땅에서 고향을 바라보며 수금을 켜며 하나님을 찬양하였고 입술을 벌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과 영광을 노래하였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찬송의 대상은 결코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의 흥을 돋구어주는 노래가 아니었습니다. 그 어떤 인간을 높이거나 칭송하는 노래가 아니었습니다. 포로지에서의 유대인들은 오로지 천지를 창조하시고 온 우주만물에 절대적 주권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만이 유일한 찬송의 대상이었고 영광을 올리는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찬송가 중에서 좋은 곡들이 많이 있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을 온전히 찬송하는 찬송가가 16장입니다. 1절 가사입니다. ‘은혜로신 하나님 우리주 하나님, 우주만물 만들고 우리를 택하여, 사랑하는 자녀로 삼아주신 것, 그 은혜가 고마워 찬양합니다’ 1절은 성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으로, 특히 우리를 선택하여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셨음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2절 가사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우리 주 예수님, 우리들의 모든 죄 다 씻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 지신, 그 큰 사랑 그 은혜 찬양합니다.’ 2절은 성자 예수님을 찬송하는 것으로, ‘그는 십자가로 우리의 죄를 씻어주셨음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1절이 성부, 2절이 성자이니까, 3절은 누구를 찬송하는 내용이겠습니까? 3절은 성령님을 찬송하는 내용입니다. ‘약속대로 임하신 보혜사 성령님, 충만하게 하시어 기쁨을 주시고, 구원 받은 확신을 주신 사랑에, 감사하며 찬송을 드리옵니다.’ 3위가 되시는 성령님은 구원 받은 확신을 주셨음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1, 2, 3절을 통하여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선택, 구속 그리고 구원에 관하여 아름답게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는 곡과 가사로 되어 있습니다. 이 곳을 이렇게 멋지게 만드신 분이 바로 공석한 장로님의 동생이신 공석준 장로님이십니다. 16장 오른 쪽 위에 보면 공석준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멋지고 아름다운 곡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유대 백성들은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결코 다른 곳에 돌리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께만 돌렸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음 중심으로 하나님을 향하여만 찬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편 67(:37)에서는,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라고 하셨고, 시편 66(:4)에서는, “온 땅이 주께 경배하고 주를 노래하며, 주의 이름을 노래하리이다 할지어다(셀라)”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150:6)라는 말씀도 나옵니다. 호흡이 있는 자들은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상천하지에 하나님 같은 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에게만 영광과 존귀와 찬송을 돌리는 것입니다.

 

계시록 4-5장에 보면, 가운데 하나님의 보좌가 있고, 그 옆에 일찍 죽임을 당한 자 같은 어린양이 계시고, 그 다음엔 네 생물이 있고, 그 다음은 24장로님들이 계시고, 그 다음은 수많은 천군천사들이 구름같이 둘러 쌓여있고, 그 다음은 구속 받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서 있으며, 마지막은 온 피조물들이 보좌를 향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어린 양 예수께 경배하는 데, 모든 존재들이 꿇어 엎드려 경배하며 찬송을 합니다. 네 생물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이시라고 하니까, 이십사 장로들이,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옵나이다라고 말합니다.

 

한참 있다가 네 생물과 24장로들이, 어린 양 예수님께 새 노래로 찬송을 드리니까, 수만 수천의 천군천사들이 큰 음성으로,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도다라고 말합니다. 이 찬송 소리를 들은 모든 피조물들이 동시에,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라고 노래하니까,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앞으로 천국 가서 드릴 예배의 모습이고, 또한 찬송할 모습입니다.

 

우리도 그날에 하늘에 있는 모든 존재들과 함께,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만군의 주 여호와여라고 찬송할 것입니다. 시화 바오로 성당 건물 입구에 보시면, ‘쌍투스, 쌍투스, 쌍투스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말은 라틴어로서,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라는 말입니다. 한글로는 세 번 거룩하다라고 부르는 노래라는 뜻으로, 테러 쌍투스(Ter-Sanctus, 삼성송)이라고 합니다. 먼 훗날 앞서 간 성도들과 함께 우리가, 이 삼성송을 부르게 될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더 이상 설교도 없고, 기도도 없고 헌금도 없으나, 오로지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만 있는 것입니다. 테러 상투스만 있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더 질문합니다. 우리는 누구에게만 찬송해야 하는가요우리가 드릴 찬송의 유일한 대상은, 하나님 여호와 이십니다. 시편과 그 외 많은 성경에서, 이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여호와, 주님만이 우리의 찬송을 받으셔야 합니다.

 

주님의 이름(대상 29:13), 주님의 능력(21:13), 주님의 기사(89:5), 주님의 인자와 공의(101:1), 주님의 위대하심,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구원하심을 찬양하라는 말씀도 많이 나타납니다. 이런 것들은 다 하나님과 관계된 것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거나, 아니면 하나님이 하신 일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결국 다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말과, 같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42:8). 하나님만이 받으셔야 할 찬송의 영광을, 다른 우상에게 주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땅히 찬송과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려야 하는데, 이것을 다른 신에게 돌린다면, 그 때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것입니다. 찬송과 영광은 창조주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께만 드리는 합당한 행위인 것입니다.

 

결론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던 유대 백성들은, 비록 죄악으로 말미암아, 이방인에게 끌려갔지만, 그곳에서 신앙을 회복하게 됩니다. 그래도 예루살렘을 잊지 않고 다시 돌아가서, 조국에서 하나님께 찬송하고 예배드릴 것을 희망하며 살았습니다.

 

특별히 그들은 하나님께만 예배하고, 하나님께만 기도하고, 하나님께만 찬송하고 감사하며 지냈습니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예배와 찬송의 대상으로 알고 살았습니다. 비록 삶의 현장에는, 고통과 눈물과 아픔이 많았지만, 그래도 그 상황에서 하나님께만 찬양했던 것입니다.

 

그러던 그들에게, 바벨론 이방인들이 자기들을 위해 노래를 불러 달라고 했을 때,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드릴 찬송을 그들에게 돌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지배자의 명령이라할지라도,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결코 바벨론 사람들을 위해, 찬송을 부르거나 수금을 켜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수금을 버드나무에 걸었습니다. 기악을 하지 않겠다는 의도입니다. 내 오른손의 재주를 잊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악기를 다루는 재능을 잊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벙어리가 되었으면 더 좋겠다. 성악을 못해도 좋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소망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의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 여호와뿐입니다. 찬송의 대상, 기도의 대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다 백성들처럼 아무리 어려운 환경 속에 있다 하더라도 오로지 하나님 여호와께만 찬송하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찬송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을 뵈옵고 경험하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GS/ 찬송하며 살리라(이 험한 세상 나 살아갈 동안)

기도제목/ 위대하시고 전능하시고 거룩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만 찬송과 영광을 돌리며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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