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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03 08 - 하나님의 진노를 막아 설 자 이정현 목사 2020-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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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에스겔22:23-31절 개역개정

23.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4. 인자야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정결함을 얻지 못한 땅이요 진노의 날에 비를 얻지 못한 땅이로다 하라

25. 그 가운데에서 선지자들의 반역함이 우는 사자가 음식물을 움킴 같았도다 그들이 사람의 영혼을 삼켰으며 재산과 보물을 탈취하며 과부를 그 가운데에 많게 하였으며

26. 그 제사장들은 내 율법을 범하였으며 나의 성물을 더럽혔으며 거룩함과 속된 것을 구별하지 아니하였으며 부정함과 정한 것을 사람이 구별하게 하지 아니하였으며 그의 눈을 가리어 나의 안식일을 보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힘을 받았느니라

27. 그 가운데에 그 고관들은 음식물을 삼키는 이리 같아서 불의한 이익을 얻으려고 피를 흘려 영혼을 멸하거늘

28. 그 선지자들이 그들을 위하여 회를 칠하고 스스로 허탄한 이상을 보며 거짓 복술을 행하며 여호와가 말하지 아니하였어도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하였으며

29. 이 땅 백성은 포악하고 강탈을 일삼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압제하고 나그네를 부당하게 학대하였으므로

30.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31. 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2:23-31, 하나님의 진노를 막아 설 자

 

본서를 기록한 에스겔은 제사장 가문에서, 부시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제사장이면서 예언 활동을 한, 제사장 겸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비운의 선지자였습니다. 자기나라에서 자기백성들에게 예언했던 자가 아니라, 외국에서 그것도 전쟁포로로 잡혀가서, 고국의 멸망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말씀을 외쳐야 했던 선지자였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은 이스라엘을 세 차례나 침략해 왔습니다. 1차는 B.C 606, 2차는 B.C 597, 3차는 B.C 586년이었습니다. 그때마다 느브갓네살은 쓸 만한 전쟁포로들을 유다에서 바벨론으로 끌고 갔는데, 에스겔은 제2차 침입 때 사로잡혀 간 사람입니다.

포로로 잡혀가서 그는 그발강가의 텔아비브라는 곳에서 살다가, 포로 된 지 5년째 되던 해에, 선지자로 부름을 받고, 그 후 22년 동안 유다를 향해 예언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끝내 고국에 돌아가지는 못하고 아마도 바벨론에서 죽은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그의 사역을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앞부분은 유다의 죄악상을 지적하며 속히 회개할 것을 촉구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후반부는 유다가 바벨론의 포로 된 이후에는, 그래도 하나님은 자비하사 유다를 바벨론에서 해방시키신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에스겔서의 전반부는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이고, 후반부는 바벨론에서 해방시켜 주신다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성경 장수로 따져서 말하면, 32장까지는 전반부에 해당되는 것이고, 33-48장까지는 후반부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이 에스겔서 22장이기 때문에, 앞부분에 속한 것으로, 유다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며, 속히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올 것을 외치고 있는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오늘 이 말씀을 선택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에스겔서 22장의 말씀을 읽으면, 에스겔 당시의 유다가, 어쩌면 오늘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당시 하나님의 말씀을, 지금의 우리와 교회와 이 민족에게 적용을 시켜보고, 이 민족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 보아야 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600년 전에, 하나님이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유다 백성들에게 주신 이 말씀을,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우리 교회에 주시는 말씀으로, 더 나아가서는 이 민족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 겸손히 순종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이 민족이 다시 살 수 있고, 교회와 개인도 다시 회복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본문도 그렇지만 에스겔서 전체에는, 남 유다 백성들의 죄악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그러면 당시 유다 백성들의 죄악상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하나님은 그들의 죄악을 낱낱이 아시고, 그리고 그것을 세밀히 지적하고 계십니다. 전체를 하나로 묶어서 말씀하시지 않고 한 무리, 한 무리의 부패상을 조목조목 말씀하고 계십니다.

먼저는 선지자들의 죄를 질타하셨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일컬어집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명으로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특별한 임무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들은 타협할 줄 몰라야 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고,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분명히 전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깨끗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어떻게 했는지 보십시오. “그 가운데에서 선지자들의 반역함이 우는 사자가 음식물을 움킴 같았도다. 그들이 사람의 영혼을 삼켰으며 재산과 보물을 탈취하며 과부를 그 가운데에 많게 하였으며”(25). 이 말씀을 단적으로 해석하면, 그들은 거짓예언과 잘못된 가르침으로, 사람의 영혼을 죽이면서 자기들의 권위, 명예, 부와 안락을 구했다는 말입니다.

선지자직은 참으로 귀한 직분이며, 땅에서 생겨난 직분이 아니며, 하늘에서 주어진 직분입니다. 그 귀한 직분을 잘 감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들의 배를 채우는데 사용한 것입니다. 백성들이야 살든지 죽든지, 잘 되든지 못되든지 상관없이, 자기들만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기주의라도 보통 이기주의가 아니며, 돼지 욕심보다 더한 탐욕을 가진 선지자들임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권력을 잡은 자들과 연합하여 자신들의 재산, 명예, 지위를 보호 받으며 권력의 시녀 노릇을 했던 것입니다. 28절에 그 선지자들이 그들을 위하여 회를 칠하고 스스로 허탄한 이상을 보며 거짓 복술을 행하며 여호와가 말하지 아니하였어도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방백들, 지금으로 말하면 정치인들에게 붙어서 불법적 고문관 역할을 했다는 뜻입니다. 아울러 더 안타까운 것은, 거짓 복술을 행했으며,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데도,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셨다고 외친다는 것입니다.

불법과 비리를 쳐서 바로 잡아야 할 선지자들이, 자기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서, 악한 통치자들의 악행을 정당화시켜 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같은 선지자들의 죄가 얼마나 잔인하고 악해 보였는지, 마치 우는 사자가 작은 사슴을 잡아 뜯어 먹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25절에 그 가운데에서 선지자들의 반역함이, 우는 사자가 음식물을 움킴 같았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처럼 잔인하고 욕심을 채우는데 빨랐음을 말한 것입니다.

선지자들의 죄악은 한마디로,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사명도 저버렸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부름 받은자들이, 권력자들 앞에서 아첨하며 거짓 복술을 행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지자들의 죄악을 지적하신 후, 그 타겟을 제사장에게로 옮겨 갔습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선지자와 맞먹는 중요한 직분 자들입니다. 이들은 주로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제사를 드리며, 백성들의 영적 상태를 살펴서, 하나님께 중보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백성들에게 나아가는 자라면, 제사장은 반대로 백성들의 문제를 안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백성들에게서 죄가 발견되면 그것을 자기 품에 안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이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중보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늘 거룩을 유지하는 것이며, 말씀대로 하나님을 잘 예배하는 일입니다. 이들이 율법을 어긴다거나 예배를 소홀히 하고, 제단을 더럽힌다는 것은 상상 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실제로 이런 것들이 그들 안에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 제사장들은 내 율법을 범하였으며, 나의 성물을 더럽혔으며, 거룩함과 속된 것을 구별하지 아니하였으며, 부정함과 정한 것을 사람이 구별하게 하지 아니 하였으며, 그의 눈을 가리어 나의 안식일을 보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힘을 받았느니라.” 제사장들이 율법을 범했고, 성물을 더럽혔고, 안식일을 보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들의 죄는 타인들이 이 죄를 범한 것보다 더 큰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어른이 여자 초등학생을 성폭행한 것과, 교사가 자기반 학생을 성폭행한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민간인이 도둑질을 한 것과, 도둑을 잡아야 할 경찰이 도둑질 한 것과는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이 음주운전을 한 것과 교회의 집사가 만취하여 운전한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그 누구보다 율법을 범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성물을 더럽혀서도 안 되고, 백성들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을 때 눈을 가려 못 본 척 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사장들이 바로 그런 일을 범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 앞에 우리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내가 그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았느니라.” 이 얼마나 슬픈 말씀이며, 가슴 아픈 여호와의 말씀입니까? 이 말씀을 하실 때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하셨겠습니까? 오늘도 우리 가운데 계신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가 아니면, ‘내가 너희들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았다고 하실까요?

세 번째 그룹은 고관들(방백)입니다. 이들은 주로 불의한 이를 취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권력을 이용해서 재물을 탈취했는데, 심지어 선량한 사람들을 죽이면서까지 그랬다고 표현합니다. 마치 모 대통령처럼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 무고한 인민들의 피를 흘리고, 또한 부를 축적하기 위해서는 기업자들의 피를 빨아 먹는 일이, 그 시대에도 똑같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로 부정부패를 일삼는 탐관오리들입니다.

탐관오리는 오리의 종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검둥오리, 청둥오리, 흰뺨검둥오리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청렴하지 못한 벼슬아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탐관오리[貪官汚吏]라는 말은 백성의 재물을 탐내어 빼앗는, 행실이 깨끗하지 못한 관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백성들의 기름을 짜는 자들이며, 더 심한 말로는 백성들의 등을 벗겨 먹는 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에스겔 시대에 바로 이런 고관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고려말엽 송도에, 남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이상한 안경을 가진 도인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루는 그 사람이 그 안경을 쓰고, 중앙 통에 서서 퇴근하는 벼슬아치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니까, 사람같이 보이는 자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관리들의 마음이 전부 악한 짐승처럼 보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리 같고 어떤 사람은 사자 같고, 어떤 이는 뱀 같고, 또 어떤 이는 여우같이 보였답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이미 본문에도 나타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고관들의 마음이 전부 도둑놈처럼 생겼고, 늑대나 사자처럼 생겨서, 자기들의 욕망을 채우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일반 백성들의 죄를 말합니다. 그들은 강포하여 가난한 자들을 늑탈, 압제했으며 우거한 자들을 불법으로 학대했습니다. 높은 사람들은 그렇다치더라도, 백성들이라도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며 돕고 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들마저도 서로 헐뜯고 비방하며 살았고, 나그네를 부당하게 학대하였습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의 죄였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하여 그 땅 선지자들, 제사장들, 방백들, 그리고 일반 백성들의 죄악을 낱낱이 지적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참고할 때, 당시 유다는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모두가 타락하고 부패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이 전부 곪아 있는 것입니다. 곳곳에 냄새나는 것 뿐 이었고 더러운 것 뿐입니다.

종교지도자들도 부패했고, 정치지도자들도 타락했고, 백성들까지 죄로 인해 더러워진, 모든 집단의 부패상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본인은 이런 것 하나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하나님이 그들의 죄를 지적하시면서 순서를, 선지자, 제사장, 방백들, 백성들 순으로 나열 하셨을까요?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한 나라의 타락과 부패는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시작된다는 암시가 아닐까요? 기독교 지도자들이 부패하면, 그 나라의 정치도 부패하고 마침내는 백성들까지 부패한다는 교훈입니다. 이 사실은, 구약성경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알 수 있는 진리인 것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물질욕과 명예욕을 버리고 겸손히 주의 말씀을 전파했던 시기는 그 사회가 밝았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나 제사장들이 자신의 사명을 잊어버리고,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워 있을 때는, 그 시대의 정치도 부정, 불법이 성행했음을 알 수 있고, 더 나아가서 백성들도 타락하더라는 것입니다. 결국 나라 전체가 어지럽고 불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목사들과 장로들의 타락을 방지하게 위해서, 자신들은 물론 온 성도들은 부단히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사탄은 교인들을 공격하는 것보다 목사와 장로들을 우선 공격하고 유혹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만 넘어뜨려 놓으면 다른 사람들은 쉽기 때문입니다. 그들만 타락하면 교회가 자동적으로 타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선 교회의 지도자들이 정신을 차리고, 이 시대를 바로 분별하여, 경성하여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흔들리지 말고, 욕심부리지 말고, 말씀을 벗어나지 말고 정도를 걸으며,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이스라엘의 종교, 정치, 백성들의 윤리와 도덕이 무너져 버리고 폐허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한 가지 희망을 걸어보십니다. 30절에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악 된 그 땅을 내려다보시면서, 혹시나 그들 가운데 이 땅을 위하여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하나님이여 이 땅을 멸하시면 안 됩니다. 한 번만 이 백성의 죄악을 용서해 주옵소서.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살려 주십시오. 멸망은 안 됩니다. 한번만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이렇게 탄원하는 자를 찾다가, 못 찾았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찾다가”- “얻지 못 한고로” - “진노의 불로 보응하셨다고 하십니다. 사실인즉, 아직 에스겔서 22장 시대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노의 불로 보응하였다.’는 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확정적인 예언이라는 뜻입니다. 비록 심판이 아직 오지는 않았지만, 심판이 확실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성 무너진 데를 가로막을 자를 찾으셨습니다. 그러나 찾지를 못하여, 그들 머리위에 진노의 불로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은 어떠합니까? 종교인들은 당연히 자기를 낮추며, 이웃을 섬기는 자세로, 세상의 빛이 되고, 또한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개신교회의 지도자인 목사와 장로들은 말과 행동을 조심하며, 세속에 물들지 않고, 늘 거룩하고 경건하게 삶으로, 본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기보다, 인정과 칭찬과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교회 지도자들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에 악한 영향을 끼치고 있기도 합니다.

과도히 욕심을 부리고 있고, 법을 어기면서 더 취하려고 합니다. 때로는 권력자들과 야합하여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려고 합니다. 심지어 거짓된 예언을 하여 종교적 안위를 줌으로 욕심을 채우기도 합니다. 기독교 이단과 사이비가 난무하여, 사회와 교회를 혼란하게 한 것도 지도자들의 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국가가 정도를 걷지 못할 때, 바른 소리를 하지 못한 것도, 목사의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이 나라의 정치 지도자들은 어떻습니까? 정치인들의 부정부패와 부도덕한 일들은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닙니다. 입법부, 사법부 그리고 행정부가 나름대로의 공직자 윤리 기준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기준에서 벗어난 공무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출세를 위하고, 돈을 위하고, 자리를 위해서는 아부하고 상관의 시녀 노릇을 하면서, 힘없는 국민들 앞에서는 세도를 부리고 거만하게 행동을 합니다.

시장이든 국회의원이든 판사든 대통령이든, 하나님이 세워서 백성들을 다스리고 선하게 인도하라고 주신 직분인데, 그 자리에 올라가기만 하면 전부 교만해져서, 권력남용으로 자기들의 배만 채우고 있습니다. 고관들은 백성들의 눈에서 억울한 눈물을 씻어주고, 법을 올바로 집행하여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백성들을 억압하여 등골까지 빼 먹습니다. 순진한 백성들을 교묘하게 속여서 백성들의 것을 착취하기도 하고, 가난한 자들을 학대하기도 합니다.

교역자들과 정치인들의 부정부패는 물론이고, 평민들의 죄악도 많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부부관계의 정조가 깨어짐으로 가정의 파탄이 속출하고 있으며, 자식들은 더 이상 부모를 공경하거나 효도하지 않고, 스승과 제자사이도 인격을 배우는 관계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서로 시기하고 싸우고 모함하고 헐뜯고, 사기짓하고 살인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는 파렴치하고 비도덕적인 언행을 서슴치 않습니다. 공공질서가 무너지고, 서로에 대한 인정과 감사가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인터넷과 게임과 핸드폰과 술과 담배와 유흥점으로 인하여 청소년들의 타락을 막을 길이 없으며, 가치관의 혼란이 야기되고 있습니다. 인생의 목표도 없이 하루하루 육체의 일시적 쾌락을 위하여 사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특히 청소년들의 성 범죄와 도덕적 타락은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심각하다고 봅니다. 도덕적인 부패와 음란은 일일이 말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유투브에 떠도는 음란 동영상은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어린이들의 영혼까지 좀먹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각종 주술과 마술과 점들이 사람들을 유혹하기도 합니다. 40대 한국 사람들의 인터넷 검색순위 1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오늘의 운세, 오늘의 토정비결을 보는 것이랍니다. 이 땅에 무속인이 10만 명이 넘는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아예 기업화 된 점술 시장이 4조원 규모가 된다고 하니 정말 한심하고 무서운 일입니다. 오죽하면 점술 공화국이라는 별명까지 붙었겠습니까?

이럴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 나라와 민족과 교회와 가정과 개인을 살리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여, 이 땅의 종교지도자들과 정치지도자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의 죄에서 돌이키게 하옵소서. 이 나라 젊은이들을 잘못된 문화에서 보호해 주시고, 성적 타락을 막아주시고, 이 사회가 소돔과 고모라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라고 무너진 데를 막아서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하며, 주일을 더럽히고 있고 십일조를 경히 여기고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 저들을 용서해 주옵소서. 돌이키게 하시고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서로 싸우고 당리당약만 주장하고, 서로 모함하고 데모하고 불법집회하고 파업하는 것으로는, 이 나라와 민족이 올바른 길로 갈 수 없습니다. 모두가 다 자기의 위치에서 자기성찰을 하고, 잘못을 겸허히 회개하며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마음을 떧으며 회개하고 죄에서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 사회 전반적인 면들을 생각하며, 무너진 데를 막아서야 합니다.

가정, 교회, 사회, 국가, 세계의 구석구석을 살펴서 무너진 데를 막아서야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의 불이 언제 임할런지 모르는 것입니다. 무너진 데를 막아서는 성도가 필요합니다. 그런 자를 하나님은 지금도 찾고 계십니다.

역대하 7장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14) 우리부터 겸손히 회개하면,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사 죄를 사하여 주시고, 이 땅을 고쳐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결론

 

에스겔의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어떤 자를 찾으십니까? 무너진 데를 막아 설 자를 찾으십니다. 토털적인 부패와 타락으로 인하여 곧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인데, 아니 이미 그 전초적인 재앙이 시작되었으므로, 지금이라도 하나님의 진노를 막아설 자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옛날 국민학교 교과서에 나왔던 이야기입니다. 육지가 바다보다 낮은 네덜란드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소년이 저녁에 둑 근처를 지나 가다가 물 흐르는 소리를 듣고 가보니 둑에 구멍이 나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물이 제법 흘러 내렸습니다. 이대로 두면 물 때문에 구멍이 더 커질 것 같고, 이 둑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그 소년은 자기의 팔뚝으로 그 구멍을 막고 서 있었습니다.

시간이 늦었는데도 소년이 집에 돌아오지 않자 마을 사람들은 그 소년을 찾아 나섰습니다. 한참 만에 사람들은 자기 팔뚝으로 둑을 막고 서 있는 소년을 발견했습니다. 이 어린 소년은 자기가 이 구멍을 막지 않으면 둑 밑에 사는 마을 사람들이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무섭고 팔이 시리지만 터진 데를 막아섰던 것입니다. 한 사람이 무너진 데를 막아서므로 마을 전체가 평안하고 안전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나라를 큰 위기에서 건져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이, 이 교회와 이 민족의 영적, 도덕적 상황을 직시하고, 무너진 데를 막아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나도 살고, 가정도 살고 교회도 살고, 이 민족도 사는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제목

1. 하나님 아버지, 종교인들, 정치인들, 온 백성이 하나님을 등지고 타락하였습니다. 총체적인 죄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는 한 사람으로서, 아버지 앞에 자복하고 용서를 구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2. 우리 가정의 무너진 데를 막아서는 자가 되게 해 주시고, 우리 교회와 이 나라와 민족, 세계의 무너진 데를 막아서는 자가 되게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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