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목사설교

  • 홈 >
  • 설교 · 찬양 >
  • 이정현목사설교
이정현목사설교
2019 11 3 - 이기기를 다투는 자는 모든일에 절제하라 이정현 목사 2019-11-08
  • 추천 0
  • 댓글 0
  • 조회 87

http://isomang.net/bbs/bbsView/13/5651047

[성경본문] 고린도전서9:25절 개역개정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고전 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는 모든 일에 절제하라.

 

11월의 주제가 절제와 감사입니다. 모든 일에 절제해야 열매를 맺을 수 있고, 그래야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한 달 동안 매사에 절제함으로 성령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어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글 구약성경에는 절제라는 단어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신약에서는 12구절에서 13번 나타나는데, 1번을 제외하고는 전부 사도 바울이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주로 절제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절제라는 말의 원래의 뜻은, ‘우리가 가진 모든 욕망을 자제 한다’, ‘알맞게 조절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안에는 끝없이 욕망이 솟아오르는데, 그런 욕망들을 알맞게 조절한다는 것입니다.

 

영어번역에서는 self-control 즉 자제, 통제라는 말로 번역을 하였습니다. 방종하지 않도록 욕망을 이성으로 다스리는 것,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참는 것을 자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유명한 신학자인 어거스틴은 절제는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게, 그리고 썩지 않게 보전하는 사랑이다라고 했습니다.

 

헬라사람이 지켜야 할 4대 덕목이 있는데, 지식, 용기, 정의 그리고 절제입니다. 당시 아테네의 어른들은 젊은이들에게, 끊임없이 너 자신을 알라’, 그리고 너 자신을 다스리라는 말로 권면했다고 합니다.

 

플라톤이라는 철학자는, 이성을 흰말로 표현을 했고, 욕망을 검은 말로 표현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성의 흰말이 수레를 끌어야 인생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결국 이 말 속에는 욕망이 앞서거나, 그 욕망을 이성으로 다스리지 못하면, 인생은 무너진다는 교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스토아 학파의 조상인 제논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제자 중에는 돈이 좀 있다고 허영이 심하고, 겉치레에만 치중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가 늘 절제하지 못한 삶을 살기에, 하루는 제논이 그를 불러 야단을 쳤습니다. 그런데 그 제자는 그만한 돈이 있어서 내가 쓰는데 그게 무슨 잘못이 됩니까?”라고 반문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내 돈 내가 쓰는지 무슨 잘못입니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그 때 제논은 소금이 많이 있다고, 요리사가 요리할 때에 소금을 잔뜩 집어넣어도, 맛이 좋단 말이냐?”라고 하였습니다. 절제란 없거나 모자라기 때문에가 아니라, 많지만 아끼고 삼가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제자는 그것을 잘 알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성경은, 이기기를 다투는 자는 모든 일에 절제해야 한다고 했는데, 우리는 무엇을 절제해야 합니까?

 

언어의 절제가 필요합니다. 말을 절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귀는 2개를 만드시고, 입은 1개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듣기는 두 귀로 듣고, 양쪽 말을 다 듣고, 입은 하나이니 더디 말하라는 것입니다. 뚫린 입이라고 절제 없이 함부로 말하면, 실수도 많고 남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도 쉬운 것입니다.

 

거짓말도 하지 말고, 교묘한 혀로 사기 치지도 말고, 남을 이간질하지도 말고, 의심의 말이나 부정적인 말도 입 밖에 내지 말고, 불평불만 하거나, 불신의 말, 험담, 더럽고 지저분한 말, 욕하고 저주하는 말은 기독교인의 입에 합당치 않는 말들입니다.

 

언어는 자기 인격입니다. 자기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한 말이 나오고 자기 마음에 쌓은 악한 것에서 악한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마음이 있는 것이 입술을 통해 밖으로 나오면, 그 말이 곧 여러분들의 마음이고 인격이라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말을 절제하시기 바랍니다. 입에 파숫꾼을 세우시고, 삼사일언하시고, 입에 재갈을 물리고, 이제 덕이 되고 은혜로운 말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은 소유욕의 절제가 필요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가지고자 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그것이 돈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고 또한 명예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보다는 더 많이, 더 좋은 것, 더 가치 있는 것, 더 쾌락적인 것, 더 높은 것을 가지려고 욕심을 부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거둘 때, 식구 수대로 하루 한 오멜씩만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필요한 일용할 양식인 적당한 양만 거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욕심을 부리는 사람들은 개인당 하루 두 배 세배를 거두니까, 다음날 아침에 그런 것은 다 썩어서 못 먹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욕심은 부정과 부패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욕심 중에 물욕을 절제해야 합니다.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한다고 하셨습니다(28:20). 물질에 대한 욕심을 과하게 부리면 결국 부정부패에 빠지고 형벌을 면치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리고성을 무너뜨리시고, 그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내게로 돌리고 너희는 하나도 건드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어기고 물질에 대한 욕심을 부렸던 아간은,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200세겔과 금덩어리 1개를 훔쳐서 자기 장막에 두었다가, 결국 발각이 되어 자기와 모든 가족들이 돌에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하신 것처럼, 물질을 사랑하고 물질에 대한 욕심을 부리면, 결국 죄를 낳는 것이고, 그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는 것입니다(1:15). 큰 집을 짓고 거기에 비싼 가구를 채우고, 고급 승용차를 타고, 비싼 옷을 입고, 고급 음식점을 다니며 자기의 부를 과시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깊은 구렁텅이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한 순간에 없어질 재물에 주목하지 말라(23:4)고 하셨습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식욕인데, 지금은 너무 많이 먹어서 탈이 납니다. 영양도 과잉섭취를 하여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동물들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먹을 만큼만 먹고는 더 이상 먹지 않지만 인간은 필요 이상의 것을 섭취하므로 비만과 더 많은 병에 걸리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해마다 버려지는 쓰레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합니다. 거기에 음식물 쓰레기는 일반 쓰레기의 30%을 차지하는데, 이것은 해마다 23천 톤이나 되고, 돈으로 환산을 하면 8조원이나 된다고 합니다. 북한의 1년 예산이 10조원이 안 된다고 하는데, 남한은 음식물 쓰레기로 해마다 8조원의 돈을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앨런 테인더닝이라는 학자가 소비사회의 극복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여기서 그는 지금의 시대를 소비사회라고 규정하면서, 심지어 일본과 미국의 최상류층 사회에서는, 금가루를 뿌린 초밥을 먹고 애완견용 밍크코트가 불티나게 팔린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같은 과소비와 낭비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이 세상을 파괴하고 오염시키는 죄라고 지적합니다.

잠언 2320-21/“20 술을 즐겨 하는 자들과 고기를 탐하는 자들과도 더불어 사귀지 말라 21 술 취하고 음식을 탐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자기를 즐겨 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 술에 취하고 음식을 탐하는 사람은 가난하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음식은 건강을 위하여 정당히 섭취하고 과식하거나 과음해서는 안 되고 절제해야 합니다.

 

잠언 23장에 보니까 식욕을 철저하게 절제할 것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네가 관원과 함께 앉아 음식을 먹게 되거든, 삼가 네 앞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를 생각하며, 2 네가 만일 음식을 탐하는 자이거든, 네 목에 칼을 둘 것이니라. 3 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라. 그것은 속이는 음식이니라.” 높은 사람들 앞에서 식사를 할 때 네 목에 칼을 둔다는 마음으로 식욕을 절제하라는 것입니다. 울은 만일 형제를 실족시키는 일이 있으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고후 8:13) 했는데 이는 곧 타인을 위하여 음식을 절제하겠다는 말인 것입니다.

식욕 못지않게 성욕의 절제도 필요합니다. 성욕의 절제가 쉽지 않습니다. 다윗은 목욕하는 우리아의 아내를 보고 정욕이 불탐으로 그 여인을 끌고 와서 간음을 행하였습니다. 그로인하여 다윗과 그의 백성들이 당한 심판은 참으로 괴로운 것이었습니다. 삼손도 들릴라에 대한 성욕을 피하지 못하여 머리카락이 잘리고 두 눈이 뽑히고 짐승처럼 연자 맷돌을 돌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 사람들은, 이성 간의 정욕에 빠진자들이 아니라, 동성 간의 정욕에 빠진 자들이었습니다. 이미 당시에 동성애가 소돔과 고모라 성에 만연되어 있었고, 집단적인 성폭행도 백주 대낮에 행해지고 있었던 도성이었습니다. 얼마나 죄악이 관영한 도시였으면, 하나님이 그 성을 멸하시기 위하여 내려오셔서 보았다고 말씀하시겠습니까? 그들의 동성애와 성적 죄악들이 얼마나 편만했으면, 하나님이 불과 유황불로 그 도시를 태워버렸겠습니까? 유황불로 완전히 진멸하시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AIDS 환자가 무려 13584명입니다(2016). 놀라운 것은 10대 아이들의 증가율이 무려 4.2배가 높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이 병에 결려서 죽어가고 있는 것은 대부분 동성애 때문입니다. 동성애 때문에 생긴 에이즈 환자들을 치료하는데, 국가의 세금을 1년에 1,000억원 이상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우리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20:13). 젊은이들이 성욕을 절제하지 못하여 이렇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현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식욕과 정욕의 절제입니다.

 

명예욕의 절제도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높은 자리에 앉고 싶어 합니다. 그 자리에서 사람들을 부리며 자기의 발아래에 두고 종처럼 일을 시키기를 원합니다. 목사들도 총회나 노회에서 높은 자리를 원하고, 박사학위를 원하고 장자리를 원하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교인들도 교회 안에서 직분을 섬기는 일로 보지 못하고, 계급으로 생각해서 높아지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권사를 딸려고 생각하고, 안수집사와 장로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의 직분은 전부 섬기고 봉사하고 희생하는 자리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격도 안 되는 데 그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것은, 교만이고 명예욕입니다. 신앙생활하면서 명예욕에 절제하지 않으면 교만하게 되고,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는 것입니다.

 

소비의 절제가 필요합니다. 수입은 적은데 소비가 많으면 망합니다. 소비를 줄여야 합니다. 소비를 절제해야 합니다. 전기도 아껴 써야 합니다. 수돗물 생산가의 37%가 전기요금임으로 물도 아껴 써야 합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한 번 눌러는 데 500원이 들어갑니다. 주일날 10번만 눌러도 5000원이고, 100명이면 50만원입니다. 두 대면 100만원입니다. 종이도 아껴 써야 합니다. 쓰레기도 줄여야 하고 음식물 쓰레기도 줄여야 합니다. 자원의 낭비이고 환경오염의 주 원인입니다. 시간의 낭비도 막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6:12)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부분에서 낭비 되는 것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최규하 대통령은 달력을 잘라서 메모지로 사용을 하였고, 선풍기는 40년 전에 구입한 것을 썼고, 대통령 재임 때 입은 양복을 퇴임 후에도 계속 입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는 무엇을 절제해야 하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말을 절제하고 소유욕(물욕, 식욕과 성욕, 명예욕)을 절제하고, 소비도 절제해야 합니다. 이같이 우리가 절제해야 할 내용들은 따로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실은 한 줄로 죽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말과 물욕과 식욕과 성욕과 명예욕과 소비가 전부 다 이리저리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어느 하나라도 절제되지 못하면, 그것은 우리와 사회에 치명적인 악 영향을 주고 결국은 개인과 가정과 사회가 파멸로 치닫게 되는 것입니다. 잠언서 기자는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25:28)고 하셨습니다. 자기의 마음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의 삶이 무너진다고 하신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육체의 소욕대로 살면 성령을 거스리게 되는 것이고, 그런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5:17, 21). 신앙의 중요한 덕목인 절제에 실패하면, 결국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톨스토이의 동화 가운데 "사람에게는 어느 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주인공은 바흠이라는 농부인데, 그는 항상 비옥한 넓은 땅을 갖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런데 소문을 따라 간 어느 고장에서 넓은 땅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 고장에서는 땅을 하루치에 1천 루불리로 팔고 있었습니다. 하루치란 사람이 하루 종일 걸어서 갈 수 있는 땅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농부는 흥분했습니다. 그는 밤잠도 설친 채 아침해가 돋자 바로 출발을 서둘렀습니다. 단지 조건은 해지기 전에 출발점으로 되돌아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농부는 욕심껏 걸었습니다. 피곤하여 좀 쉬어야 하겠는데, 한치라도 더 갖고 싶은 욕심이 그를 쉬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간밤에 잠도 설친 데다가 뜨거운 햇볕 아래 쉴 사이 없이 걷고 있는 이 농부는 기진맥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얻을 땅을 생각하니 계속 걷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해질 무렵 그가 출발하였던 지점을 향하여 돌아오기는 하였으나 그만 거기 엎어져 입에서 피를 쏟고 죽고 말았습니다. 그의 하인이 그곳에 6자의 땅을 파서 그의 시체를 묻어 주었습니다. "사람에게는 어느 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여섯자 땅입니다.

이 동화는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으며, 그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탐욕으로 끝없이 치닫는 현대 문명에 대해 예언자적인 경고를 주는 동화입니다.

육체와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면 아간과 같이 되던가, 엘리사의 종 게하시처럼 나병에 걸리던가, 아니면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되던가, 아니면 삼손처럼 되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은 신앙생활에 승리하기를 원하십니까? 사단과 싸워 이기기를 원하십니까? 여러 가지 유혹에서 승리하기를 원하십니까? 죄를 이기고 이 악한 세상을 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모든 일에 절제해야 합니다.

 

결론
J. 프린스(Carl J. Prints)는 오랫동안 스웨덴과 캐나다를 오가며 행정관으로서 명성을 떨친 인물입니다. 그는 99세 생일을 맞이하는 날 텔레비전과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사회자가 그렇게 오래 사는 비결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에, 그는 한가지 절대적인 진리가 있는데 그것은 절제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덧붙일 것은 마음과 생명을 다 바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절제는 신앙입니다. 그리고 절제는 장수의 비결이자 행복의 비결입니다.

 

우리의 삶을 알맞게 조절하며 삽시다. 우리의 말을 절제하시고, 음식도 절제하시고, 성욕도 절제하시고, 물욕도 절제하시고, 명예욕도 절제하시고, 소비욕도 절제하시고 시간과 생각도 절제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승리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2019 11 10 - 하나님께 감사기도 하라 운영자 2019.11.10 1 124
다음글 2019 10 27 - 천국과 지옥은 이 세상에서 결정된다 운영자 2019.10.27 1 234